[성탄절] 크리스마스의 신비
본문
오늘은 아기 예수님이 탄생하신 성탄절 - 크리스마스입니다.
너무나 기쁘고 감격스럽고 복된 날입니다. 아기 예수님 탄생하시던 밤에 천사들이 말 한대로 하늘에는 영광, 땅에서는 평화가 되는 날입니다. 우리뿐만이 아니라 온 인류가 기뻐해야 될 성탄절입니다. 우리 아기 예수님의 성탄의 축복과 은총과 평강이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충만하시고... 또 온 인류의 가슴에 성탄의 평화의 종소리가 널리 멀리 울러 퍼지기를 축원합니다.
성탄은 ‘이때에.. ’ 이루어진 사건입니다.
본문 1-2절을 봅시다.
‘이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 하라 하였으니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 되었을 때에 첫 번 한 것이라.. ’(1-2절)
로마제국에서 실시하는 인구조사는 두 가지 목적 즉 세금부가와 강제 병역동원을 위해서 시행되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에게는 병역이 면제되어 있었으므로 팔레스틴에서의 인구조사는 주로 과세(課稅)가 그 목적이었습니다. 이런 인구조사는 14년마다 행하여 졌는데 오늘 본문에 실시된 인구조사 자료는 남아있지 않지만, 그러나 주후 20년-270년까지 실시된 인구조사의 자료는 실제문서들이 그대로 남아있다고 합니다.
중요한 문제는, 예수님이 왜 하필이면 로마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가 천하에 호적명령을 내렸을 그때에 예수님이 이 세상에 탄생하셔야만 했는가 하는 문제인 것입니다.
앞서 언급한대로 14년 주기로 행해진 로마제국의 호적조사는 병역과 과세가 목적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다른 의미로 말하면 로마황제는 이 호적조사를 통해 자기가 통치하고 있는 로마제국 관활 안에 얼마나 많은 백성이 살고 있으며, 황제는 실제로 얼마나 많은 백성을 소유하고 있는가를 알기위한 것이 호적조사의 의미였습니다. 이것은 왕권과 관련된 것으로 그 호적에 조사된 모든 사람의 머리수(人頭)는 로마황제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때에.. ’ 하늘의 왕자이신 예수님이 탄생하셨습니다.
그 까닭은 세상의 모든 사람은... 로마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의 백성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이며 만왕의 왕이시요 만주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백성이 됨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 때에...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신 신학적인 비밀입니다.
이 선포는 로마제국을 무너뜨리는 선포요, 세상의 군왕들의 왕권을 파괴하는 인류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위협적인 선포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파악하는 것은 '이 때에.. ’ 탄생하신 아기 예수님의 탄생의 비밀을 바로 이해하는 것이 됩니다.
성탄은 베들레헴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본문 4-6절을 읽읍시다.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인 고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그 정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 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되었더라. 거기 있을 그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맏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사관에 있을 곳이 없음 이러라.. ’
예수는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셨다고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사렛에서 베들레헴까지의 거리는 120km 정도나 됩니다. 교통수단이 미개했던 당시에 만삭이 된 임산부를 데리고 그렇게 먼 길을 가기에는 매우 힘들고 고통스러운 여행이었을 것입니다. 숙소란 것은 공용도로에서 약간 떨어져 있는 헛간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여행자들은 각자가 음식을 가지고 다녔고 숙소주인이 마련하는 것이라고는 기껏해야 동물들의 사료였고, 요리에 사용될 물과 불을 준비해 주는 정도였습니다.
베들레헴은 이미 호적하러 온 타지의 사람들로 혼잡하였고, 그나마 머물만한 방은 앞서온 사람과 돈푼이나 있는 사람들의 차지였다. 마리아와 요셉은 유숙할 방이 없었다. 그래서 아기 예수가 태어난 곳은 동물들이 거처하는 마구간이었다고 누가는 말합니다. 태어난 아기는 강보에 쌓여 구유 즉 짐승의 여물통에 뉘이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불행한 탄생입니다. 그러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신 아기 예수는 여느 아이들보다도 훨씬 더 열악한 환경에서 탄생하신 것임을 알게 됩니다. 이런 모습을 요한복음서에는 ‘그가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다’ 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1:11절)
베들레헴에서 나셨다. (4-7절)
베들레헴은 ‘떡집’이라는 뜻을 가진 지명으로 예루살렘 남쪽 약 8km 지점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으로 인정되는 성군(聖君) 다윗의 고향입니다. 이곳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가 탄생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기 예수는 다윗의 혈통을 가진 다윗의 자손으로 사람들의 생명과 관련된 떡집이 있는 곳으로 별명이 붙은 베들레헴에서 모든 동물의 밥통인 구유에서 태어나신 것입니다.
여기에는 오묘한 탄생의 신비가 숨겨져 있습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6장에서 자신을 ‘하늘로서 내려온 생명의 떡’이라고 소개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희생당할 자신의 살과 피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그렇게 생명의 떡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떡집이 있는 베들레헴에서 동물들의 밥통인 구유에서 탄생하신 것은 탄생지명과 너무나 신비한 일치를 이룹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와 섭리하심은 예언된 말씀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대로 응하는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은 놀라운 일이며, 그것 자체가 은혜가 됩니다.
방이 없었다. (7절)
누가는 사관에 있을 곳이 없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기 예수가 탄생하실 방이 없었다는 것은 예수님에게는 상징적(象徵的) 인 사건이 됩니다. 예수를 위하여 방이 있었다고 하면 ‘그것은 십자가뿐’ 이라고 영국의 성서신학자인 윌리엄 바클레이는 갈파했습니다.
지상에 방이 없으신 예수님은 사람들의 마음을 방으로 삼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여러 가지 일로 가득 찬 사람들의 마음속에 들어가 그들의 주님이 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입구를 찾으실 수가 없으십니다. 그리고 그 분은 오늘까지도 그 입구를 찾고 계시건만 사람들은 여전히 그를 거절하고 있습니다.
사관에 있을 곳이 없으신 예수님이 지금도 그 분이 거할 방을 찾고 계신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언젠가는 그 분에게 자기의 마음의 방을 내어 줄 수 가 있는 사람이니까.. !
성탄의 기쁜 소식은 목자들에게 제일먼저 들려졌습니다.
8-12절을 읽어봅시다.
‘그 지경에 목자들이 밖에서 밤에 자기 양떼를 지키더니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저희를 두루 비취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
목자들에게 들려진 메시야 탄생소식입니다.
인류역사에 가장 위대하고 가장 기쁜 소식이 들에서 양들을 치는 목자들에게 맨 먼저 전해졌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입니다. 천사들에게서 메시야 탄생소식을 맨 먼저 접수한 목자들 그들은 누구이며 왜 여호와 하나님은 목자들을 선택하셨을까요..
당시의 목자들의 신분은 보통사람의 위치보다 사람들에게서 멸시받던 신분이었습니다. 우선 그들은 율법의 규례를 따를 수 없었던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장로의 유전(遺傳) 인 손과 발을 씻는 수세(守洗) 규례를 지킬 수 없었습니다.
언제나 들에서 먹고 자며 양을 돌보아야 될 형편이었으니 당연히 수세규정을 따를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안식일이나 절기도 제대로 지킬 수 없는 위치였습니다. 그러니 정통 유대율법주의자들은 그들을 인정할 수 없었고 비천한 노동자로 낮추어 보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천사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메시야의 탄생소식을 이런 부류의 목자들에게 제일먼저 알린 것은 놀랍고도 신비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데는 아기 예수님의 메시야사역과 더불어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었을 것이라고 우리는 충분히 짐작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들이 양을 치는 목자들인 것과 베들레헴이 그들의 일터였음을 주목해야 합니다. 예루살렘 성전에는 아침저녁으로 하루도 빠지지 아니하고 흠 없는 어린양과 짐승들을 여호와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는 제사의식이 거행되었습니다.
율법의 규정에 따라 완전하고도 흠 없는 제물들을 언제나 용이하게 입수할 수 있도록 하기위하여 성전책임자들은 제물용의 짐승들을 별도로 관리하고 있었는데... 기록에 의하면 이 양떼들이 예루살렘 근교인 베들레헴들녘에서 사육되었다고 합니다. 그게 사실이라면 이들 목자들이 바로 성전용 양떼들을 돌보는 자들이었을 것이라고 충분히 짐작하는 것은 별 무리가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세상 죄를 지고 가실 여호와 하나님의 어린양, 인류의 속죄의 화목제물이 되실 어린양이 이 세상에 탄생하시던 밤에 천사들을 통하여 그 기쁨의 좋은 소식을 사람들에게 전하기를 원하셨을 때, 성전의 제물인 양들을 지키고 있는 목자들에게 가장 먼저 알리셨다는 것은 너무나 아름답고 자연스런 일이 됩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목자들은 낮과 밤을 가리지 아니하고 자기사명에 충실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사람들입니다. 양을 친다는 것은 다른 직업하고는 다른 점이 있습니다. 그것들이 비록 짐승의 범주에 속하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 양들은 생명을 지닌 소중한 생명체들입니다. 언제나 돌보고 지키지 않으면 생명을 유지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정리가 됩니다.
어린양으로 그 밤에 탄생하시는 예수님의 메시아 사역은... 그 중심이 생명을 살리고, 생명을 지키고, 생명을 풍성케 하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신분이십니다. 이런 생명운동과 관련된 사역을 하실 주님이 그 탄생하시던 밤에 들녘에서 잠자지 아니하고 생명을 돌보고 있는 목자들을 귀하게 보시지 않았겠습니까..
깨어 생명을 돌보고 있는 그 목자들이 제일 먼저 주님의 시야(視野) 에 들어오지 않았겠습니까..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 첫 번 크리스마스 사건에 목자들이 맨 먼저 등장하는 것은 결코 우연히 보아 넘길 일이 아닙니다.
주님이 재림해 오실 밤에도 그와 같은 일을 하는 자들에게 주님은 천군천사들을 통하여 재림의 기쁜 소식을 제일 먼저 전해 주실 것은 너무나 분명한 일이 됩니다.
예수님께만 집중하는 크리스마스가 됩시다.
옛날 페르시아에 Cyrus라는 왕이 전쟁을 하면서 자기 적대국가의 왕자와 그 부인과 아이들을 생포해 왔습니다. 그래서 Cyrus는 그들을 죽이기 전에 이렇게 질문을 했습니다.
"만일에 내가 왕자인 당신을 살려주면 어떻게 하겠느냐"
"내가 가진 재산의 절반을 드리겠습니다"
"당신의 아이들을 놓아주면 어떻게 하겠느냐"
"재산 전부를 드리겠습니다. "
"그러면 당신의 부인을 놓아주면 어떻게 하겠느냐" 했더니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 생명을 드리겠습니다”
Cyrus 왕은 깜짝 놀라서 어떻게 이런 아름다운사랑의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인가 감동이 되어 그들을 다 풀어주어 다시 자기 나라로 돌아가게 해주었다고 합니다.
다시 돌아온 왕자는 살아서 돌아온 것이 너무나 기뻐서 축하파티를 열었습니다.
그리고는 사랑하는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비록 Cyrus 왕이 적국의 왕이지만 참 훌륭한 분이더라. 정말 잘생긴 미남이고, 의젓하고, 늠름하고, 장수답고, 사나이답더라. " 이렇게 말하면서 자기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해요"
그 아내의 대답이 더욱 감동적입니다.
"저는 그 사람의 얼굴을 자세히 보지 않았습니다. 단지 나를 위해서 대신 죽겠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한 남자의 얼굴만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나는 당신의 얼굴을 바라보는 동안에 다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
그렇습니다.
크리스마스는... 나 같은 죄인을 위하여 하늘나라의 모든 특권을 포기하신 그 예수님! 자신의 마음을 깨끗이 비어 종이 되시고, 자기를 낮추어 우리를 위하여 기꺼이 십자가 희생을 치러주신 그 예수님만 바라보는 성탄절이 되어야 합니다.
할렐루야.. !
너무나 기쁘고 감격스럽고 복된 날입니다. 아기 예수님 탄생하시던 밤에 천사들이 말 한대로 하늘에는 영광, 땅에서는 평화가 되는 날입니다. 우리뿐만이 아니라 온 인류가 기뻐해야 될 성탄절입니다. 우리 아기 예수님의 성탄의 축복과 은총과 평강이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충만하시고... 또 온 인류의 가슴에 성탄의 평화의 종소리가 널리 멀리 울러 퍼지기를 축원합니다.
성탄은 ‘이때에.. ’ 이루어진 사건입니다.
본문 1-2절을 봅시다.
‘이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 하라 하였으니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 되었을 때에 첫 번 한 것이라.. ’(1-2절)
로마제국에서 실시하는 인구조사는 두 가지 목적 즉 세금부가와 강제 병역동원을 위해서 시행되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에게는 병역이 면제되어 있었으므로 팔레스틴에서의 인구조사는 주로 과세(課稅)가 그 목적이었습니다. 이런 인구조사는 14년마다 행하여 졌는데 오늘 본문에 실시된 인구조사 자료는 남아있지 않지만, 그러나 주후 20년-270년까지 실시된 인구조사의 자료는 실제문서들이 그대로 남아있다고 합니다.
중요한 문제는, 예수님이 왜 하필이면 로마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가 천하에 호적명령을 내렸을 그때에 예수님이 이 세상에 탄생하셔야만 했는가 하는 문제인 것입니다.
앞서 언급한대로 14년 주기로 행해진 로마제국의 호적조사는 병역과 과세가 목적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다른 의미로 말하면 로마황제는 이 호적조사를 통해 자기가 통치하고 있는 로마제국 관활 안에 얼마나 많은 백성이 살고 있으며, 황제는 실제로 얼마나 많은 백성을 소유하고 있는가를 알기위한 것이 호적조사의 의미였습니다. 이것은 왕권과 관련된 것으로 그 호적에 조사된 모든 사람의 머리수(人頭)는 로마황제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때에.. ’ 하늘의 왕자이신 예수님이 탄생하셨습니다.
그 까닭은 세상의 모든 사람은... 로마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의 백성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이며 만왕의 왕이시요 만주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백성이 됨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 때에...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신 신학적인 비밀입니다.
이 선포는 로마제국을 무너뜨리는 선포요, 세상의 군왕들의 왕권을 파괴하는 인류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위협적인 선포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파악하는 것은 '이 때에.. ’ 탄생하신 아기 예수님의 탄생의 비밀을 바로 이해하는 것이 됩니다.
성탄은 베들레헴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본문 4-6절을 읽읍시다.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인 고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그 정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 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되었더라. 거기 있을 그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맏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사관에 있을 곳이 없음 이러라.. ’
예수는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셨다고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사렛에서 베들레헴까지의 거리는 120km 정도나 됩니다. 교통수단이 미개했던 당시에 만삭이 된 임산부를 데리고 그렇게 먼 길을 가기에는 매우 힘들고 고통스러운 여행이었을 것입니다. 숙소란 것은 공용도로에서 약간 떨어져 있는 헛간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여행자들은 각자가 음식을 가지고 다녔고 숙소주인이 마련하는 것이라고는 기껏해야 동물들의 사료였고, 요리에 사용될 물과 불을 준비해 주는 정도였습니다.
베들레헴은 이미 호적하러 온 타지의 사람들로 혼잡하였고, 그나마 머물만한 방은 앞서온 사람과 돈푼이나 있는 사람들의 차지였다. 마리아와 요셉은 유숙할 방이 없었다. 그래서 아기 예수가 태어난 곳은 동물들이 거처하는 마구간이었다고 누가는 말합니다. 태어난 아기는 강보에 쌓여 구유 즉 짐승의 여물통에 뉘이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불행한 탄생입니다. 그러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신 아기 예수는 여느 아이들보다도 훨씬 더 열악한 환경에서 탄생하신 것임을 알게 됩니다. 이런 모습을 요한복음서에는 ‘그가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다’ 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1:11절)
베들레헴에서 나셨다. (4-7절)
베들레헴은 ‘떡집’이라는 뜻을 가진 지명으로 예루살렘 남쪽 약 8km 지점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으로 인정되는 성군(聖君) 다윗의 고향입니다. 이곳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가 탄생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기 예수는 다윗의 혈통을 가진 다윗의 자손으로 사람들의 생명과 관련된 떡집이 있는 곳으로 별명이 붙은 베들레헴에서 모든 동물의 밥통인 구유에서 태어나신 것입니다.
여기에는 오묘한 탄생의 신비가 숨겨져 있습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6장에서 자신을 ‘하늘로서 내려온 생명의 떡’이라고 소개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희생당할 자신의 살과 피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그렇게 생명의 떡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떡집이 있는 베들레헴에서 동물들의 밥통인 구유에서 탄생하신 것은 탄생지명과 너무나 신비한 일치를 이룹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와 섭리하심은 예언된 말씀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대로 응하는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은 놀라운 일이며, 그것 자체가 은혜가 됩니다.
방이 없었다. (7절)
누가는 사관에 있을 곳이 없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기 예수가 탄생하실 방이 없었다는 것은 예수님에게는 상징적(象徵的) 인 사건이 됩니다. 예수를 위하여 방이 있었다고 하면 ‘그것은 십자가뿐’ 이라고 영국의 성서신학자인 윌리엄 바클레이는 갈파했습니다.
지상에 방이 없으신 예수님은 사람들의 마음을 방으로 삼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여러 가지 일로 가득 찬 사람들의 마음속에 들어가 그들의 주님이 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입구를 찾으실 수가 없으십니다. 그리고 그 분은 오늘까지도 그 입구를 찾고 계시건만 사람들은 여전히 그를 거절하고 있습니다.
사관에 있을 곳이 없으신 예수님이 지금도 그 분이 거할 방을 찾고 계신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언젠가는 그 분에게 자기의 마음의 방을 내어 줄 수 가 있는 사람이니까.. !
성탄의 기쁜 소식은 목자들에게 제일먼저 들려졌습니다.
8-12절을 읽어봅시다.
‘그 지경에 목자들이 밖에서 밤에 자기 양떼를 지키더니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저희를 두루 비취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
목자들에게 들려진 메시야 탄생소식입니다.
인류역사에 가장 위대하고 가장 기쁜 소식이 들에서 양들을 치는 목자들에게 맨 먼저 전해졌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입니다. 천사들에게서 메시야 탄생소식을 맨 먼저 접수한 목자들 그들은 누구이며 왜 여호와 하나님은 목자들을 선택하셨을까요..
당시의 목자들의 신분은 보통사람의 위치보다 사람들에게서 멸시받던 신분이었습니다. 우선 그들은 율법의 규례를 따를 수 없었던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장로의 유전(遺傳) 인 손과 발을 씻는 수세(守洗) 규례를 지킬 수 없었습니다.
언제나 들에서 먹고 자며 양을 돌보아야 될 형편이었으니 당연히 수세규정을 따를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안식일이나 절기도 제대로 지킬 수 없는 위치였습니다. 그러니 정통 유대율법주의자들은 그들을 인정할 수 없었고 비천한 노동자로 낮추어 보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천사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메시야의 탄생소식을 이런 부류의 목자들에게 제일먼저 알린 것은 놀랍고도 신비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데는 아기 예수님의 메시야사역과 더불어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었을 것이라고 우리는 충분히 짐작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들이 양을 치는 목자들인 것과 베들레헴이 그들의 일터였음을 주목해야 합니다. 예루살렘 성전에는 아침저녁으로 하루도 빠지지 아니하고 흠 없는 어린양과 짐승들을 여호와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는 제사의식이 거행되었습니다.
율법의 규정에 따라 완전하고도 흠 없는 제물들을 언제나 용이하게 입수할 수 있도록 하기위하여 성전책임자들은 제물용의 짐승들을 별도로 관리하고 있었는데... 기록에 의하면 이 양떼들이 예루살렘 근교인 베들레헴들녘에서 사육되었다고 합니다. 그게 사실이라면 이들 목자들이 바로 성전용 양떼들을 돌보는 자들이었을 것이라고 충분히 짐작하는 것은 별 무리가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세상 죄를 지고 가실 여호와 하나님의 어린양, 인류의 속죄의 화목제물이 되실 어린양이 이 세상에 탄생하시던 밤에 천사들을 통하여 그 기쁨의 좋은 소식을 사람들에게 전하기를 원하셨을 때, 성전의 제물인 양들을 지키고 있는 목자들에게 가장 먼저 알리셨다는 것은 너무나 아름답고 자연스런 일이 됩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목자들은 낮과 밤을 가리지 아니하고 자기사명에 충실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사람들입니다. 양을 친다는 것은 다른 직업하고는 다른 점이 있습니다. 그것들이 비록 짐승의 범주에 속하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 양들은 생명을 지닌 소중한 생명체들입니다. 언제나 돌보고 지키지 않으면 생명을 유지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정리가 됩니다.
어린양으로 그 밤에 탄생하시는 예수님의 메시아 사역은... 그 중심이 생명을 살리고, 생명을 지키고, 생명을 풍성케 하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신분이십니다. 이런 생명운동과 관련된 사역을 하실 주님이 그 탄생하시던 밤에 들녘에서 잠자지 아니하고 생명을 돌보고 있는 목자들을 귀하게 보시지 않았겠습니까..
깨어 생명을 돌보고 있는 그 목자들이 제일 먼저 주님의 시야(視野) 에 들어오지 않았겠습니까..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 첫 번 크리스마스 사건에 목자들이 맨 먼저 등장하는 것은 결코 우연히 보아 넘길 일이 아닙니다.
주님이 재림해 오실 밤에도 그와 같은 일을 하는 자들에게 주님은 천군천사들을 통하여 재림의 기쁜 소식을 제일 먼저 전해 주실 것은 너무나 분명한 일이 됩니다.
예수님께만 집중하는 크리스마스가 됩시다.
옛날 페르시아에 Cyrus라는 왕이 전쟁을 하면서 자기 적대국가의 왕자와 그 부인과 아이들을 생포해 왔습니다. 그래서 Cyrus는 그들을 죽이기 전에 이렇게 질문을 했습니다.
"만일에 내가 왕자인 당신을 살려주면 어떻게 하겠느냐"
"내가 가진 재산의 절반을 드리겠습니다"
"당신의 아이들을 놓아주면 어떻게 하겠느냐"
"재산 전부를 드리겠습니다. "
"그러면 당신의 부인을 놓아주면 어떻게 하겠느냐" 했더니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 생명을 드리겠습니다”
Cyrus 왕은 깜짝 놀라서 어떻게 이런 아름다운사랑의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인가 감동이 되어 그들을 다 풀어주어 다시 자기 나라로 돌아가게 해주었다고 합니다.
다시 돌아온 왕자는 살아서 돌아온 것이 너무나 기뻐서 축하파티를 열었습니다.
그리고는 사랑하는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비록 Cyrus 왕이 적국의 왕이지만 참 훌륭한 분이더라. 정말 잘생긴 미남이고, 의젓하고, 늠름하고, 장수답고, 사나이답더라. " 이렇게 말하면서 자기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해요"
그 아내의 대답이 더욱 감동적입니다.
"저는 그 사람의 얼굴을 자세히 보지 않았습니다. 단지 나를 위해서 대신 죽겠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한 남자의 얼굴만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나는 당신의 얼굴을 바라보는 동안에 다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
그렇습니다.
크리스마스는... 나 같은 죄인을 위하여 하늘나라의 모든 특권을 포기하신 그 예수님! 자신의 마음을 깨끗이 비어 종이 되시고, 자기를 낮추어 우리를 위하여 기꺼이 십자가 희생을 치러주신 그 예수님만 바라보는 성탄절이 되어야 합니다.
할렐루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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