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위일체] 오직 삼위일체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자.
본문
오늘 말씀은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과 그 당시 각지에 흩어져 살고 있는 성도들에게 마지막 축원을 하는 말씀입니다.
위로가 필요하고 격려가 필요한 시점에서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바울은 그 당시 어려움에 처한 성도들에게 필요한 것, 그것은 우리가 믿는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여호와 하나님인지 분명하고 밝히 드러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말씀으로 끝을 맺습니다. 삼위일체 여호와 하나님을 분명하게 드러내며, 그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은혜주시며 동행해 주신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환기시켜 주는 것입니다.
삼위일체라는 말만 해도 벌써 머리 아파하시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저도 이 삼위일체라는 개념에 대해 무척 고민하고 머리 쥐어짜던 때가 있었습니다. 잘 이해가 안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삼위일체의 여호와 하나님을 깨닫는 순간 너무도 풍성한 은혜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같이 나누려고 하는 것입니다. 제가 경험하고 깨달은 그 은혜를 같이 나누길 원하기 때문입니다.
삼위일체 여호와 하나님을 이야기할 때 가장 많은 어려움은, 여호와 하나님은 한 분이라고 했는데, 어떻게 세 분이냐 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는 누구에게 해야 하며, 각 여호와 하나님은 어떤 관계냐란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한 분이신 것은, 절대의 신이 둘 일 수 없고 진리의 신이 둘 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진리는 하나이지 둘이면 그것은 진리가 될 수 없습니다. 절대적인 신이 둘, 셋 이라면 그것은 절대적인 신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오직 진리되시고 절대적이시며 스스로 계신 여호와 하나님은 한 분 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 여호와 하나님은 한 분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절대적이시고 완전하신 여호와 하나님이 한 분이시기에, 동일본질의 성부 여호와 하나님, 성자 여호와 하나님, 성령 여호와 하나님은 모두 완전하신 여호와 하나님이시고 동일하신 여호와 하나님이 되십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는 성자 여호와 하나님과 성령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시고 내주하십니다. 또한 성자 여호와 하나님도 성부 여호와 하나님과 성령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시고 동일하게 내주하고 계십니다. 마찬가지로 성령 여호와 하나님도 동일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서로 교통하시고 인격적인 관계 안에서 사랑하십니다. 서로 존중하시고 사랑하시며 하나이심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성부 여호와 하나님의 완전성은 동일하게 내주하고 계시는 성자 여호와 하나님과 성령 여호와 하나님과 동일하므로 완전성도 동일합니다. 그래서 성부 여호와 하나님과 성자 여호와 하나님, 성령 여호와 하나님은 동일한 완전성을 가지고 계시며 또한 동일본체이십니다. 그러나 위격이 다르고 각 인격이 있으십니다. 그래서 성부 여호와 하나님은 사랑으로 성자 여호와 하나님과 성령 여호와 하나님을 보내주셨고, 성자 여호와 하나님은 순종의 은혜로 오신 것입니다. 여기에 성령 여호와 하나님은 믿는 성도들과 교통하심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위로를 이루시고 완전케 하십니다.
태초부터 스스로 계신 여호와 하나님은 삼위일체로서 계셨습니다. 그러나 구지 나눈다면 성자 여호와 하나님과 성령 여호와 하나님은 성부 여호와 하나님에게로부터 나셨으며, 성령 여호와 하나님은 성부 여호와 하나님과 성자 여호와 하나님에게서 나셨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의 잣대로 본 것일 뿐, 여호와 하나님은 동일하시고 언제나 함께하시며 태초부터 함께 계셨습니다.
그리고 성부와 성자와 성령 삼위일체 여호와 하나님 안에 있는 상호 내주의 관계성은, 각 위격이 다른 위격과 분리되거나 독립되어 각자의 유일성을 가진 개별자로 존재하지 않으심을 보여줍니다. 성부 여호와 하나님의 존재와 삶이 성자 여호와 하나님과 성령 여호와 하나님의 삶과 존재에 의존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동일본체이시기 때문에 서로의 삶과 존재는 영향을 받고 의존하며 상호 연관을 맺으며 존재하고 계신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고 계시고 서로 존중하고 계시며 서로 영원한 사귐을 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이러한 모든 것이 우리 여호와 하나님의 모습이며 삼위일체의 여호와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생각하는 여호와 하나님은 성부 여호와 하나님이시면서도 성자 여호와 하나님이 되시고 성령 여호와 하나님이 되십니다. 왜냐하면 모두가 하나이신 삼위일체 여호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머리 속에 일부로 삼위일체 여호와 하나님을 그리면서 기도하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대상은 하나이신 여호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다른 분에게 기도하는 것이 아니고 오직 우리를 사랑하시고 은혜주시고 동행하시는 한 분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한 분이십니다.
우리가 생각하지 않고 살아가도 우리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가 한 모든 기도들 듣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그 뜨거운 사랑 때문에, 끊임없이 솟아나는 은혜로 중보기도해 주십니다. 그리고 그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 믿는 성도들을 아끼시고 위로해주심으로 함께하시고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해주십니다. 우리 여호와 하나님은 이런 분입니다. 우리가 외면해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사랑하시고 선택해주시며 은사를 주신 것에 대해 후회나 변개하심이 없는 분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여호와 하나님은 영원토록 변함이 없으시고 동일하시고 깨어지지 않는 사랑을 주십니다. 우린 이러한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여호와 하나님은 그냥 여호와 하나님이 아닙니다. 우리를 위해 아들까지 내어주신 분이며,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지시고 죽기까지 하셨던 분입니다. 그리고 탄식과 눈물로 중보기도 해주시는 분이시고 영원토록 위로해주시고 함께 하시는 분이십니다. 이런 분이 바로 우리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바라봐야 할 분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입니다. 내 자신도 아니고 내 상황도 아니고 내가 가진 것도 아닌, 오직 우리를 사랑하시고 은혜 내려 주시며 함께 동행해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만 바라봐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참 기쁨이 있고 참 소망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주는 것이 너무도 엄청난 우리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에게 엄청난 것을 바라시지 않습니다. 오직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 그것만을 원하십니다. 하루의 모든 시간을 여호와 하나님께 돌리고 영광 돌려야 하지만 우리는 그러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렇게도 할 수 없습니다. 삶속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인정하고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것이 곧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내 삶의 주인으로 인정하고 생각의 근거와 판단의 기준을 여호와 하나님께 두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삶을 영유하며 그 안에서 기뻐하고 시시때때로 주시는 은혜에 감격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고 영광 돌리기 위해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곧 우리의 기쁨이고 자랑이며 존재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은 너무 커서 바다를 덮고 하늘을 덮습니다. 하지만 너무 커서 볼 수 없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 있음은 이 자체가 사랑이라는 사실을 증명합니다.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기대하시고 앞으로 미래에 드릴,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모습을 기대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우리는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위로의 여호와 하나님이 또한 주시는 은혜의 깨달음입니다. 영적인 깨달음인 것입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는 바다같이 넓고 우주같이 거대해서 느낄 수 없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셔서 죽으신 그 사랑의 순종은, 바로 알 수 있고 깨달을 수 있는 은혜입니다. 참 은혜입니다. 아무 댓가를 바라시지도 않으시고 그저 순종하심으로 은혜의 모습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 모두의 삶을 다 덮어주시고 우리의 모든 죄악과 모습을 덮어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은혜는 너무도 엄청난 것입니다. 도저히 우리가 가진 힘으로는 보답해 드릴 수 없는 엄청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여호와 하나님은 그런 것 보다도 우리의 의지와 우리의 생각이, 그리고 우리의 감정이 참으로 여호와 하나님만 바라보고 기뻐하기를 원하실 뿐입니다.
저에게 있어서 여호와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가장 많이 느낄 때가 바로 오늘처럼 설교할 때입니다. 내 짧은 지식과 우매함이 설교에 묻어나 있지만, 내가 부여잡고 있는 것은 진리의 말씀, 성경이기에 둔한 내 혀를 사용하셔서 능력의 말씀이 함께 하심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제가 지식 있어서도 절대 아니요, 제가 경험이 많아서도 절대 아니며, 제가 깊은 영적 통찰력을 가져서 깨닫는 것도 절대 아닙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서 쓰고 계시고 느끼게 하시고 함께 해주심을 뼈저리게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절대로 내가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인한 은혜라는 것을 설교할 때마다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복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태어나면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라고 하신다면 어쩔 수 없지만, 그게 아니라면 꼭 다시 여호와 하나님의 일꾼으로 살고 싶습니다. 아직 목사도 안되었지만 전 늘 깨닫습니다. 설교 이외에도 수 많은 사건과 일들 속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느낍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저는 엎드려지게 되고, 여호와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은혜의 함께하심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여러분, 정에 메말라 계십니까? 우리 인간은 시간이 지나면 변합니다. 하지만 우리 여호와 하나님은 영원토록 변함없으신 분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만 매달리시기 바랍니다. 채울 수 없는 외로움이 있습니까? 그러면 넓고 커서 가늠해 볼 수도 없는 여호와 하나님의 위로하심에 풍덩 빠지시기 바랍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은 너무나 큽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는 도저히 말로다 다 설명할 수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 연약함을 아시고 동행해주심으로 끊임없이 기도해주시는 분입니다.
여러분, 다시 말씀드립니다. 여호와 하나님께만 매달리시기 바랍니다. 여호와 하나님께만 길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만 참 빛이 있습니다. 우리 여호와 하나님께만 위로와 기쁨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여호와 하나님께 붙잡혀 사는 인생은 미래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여호와 하나님께 붙잡혀 사는 인생은 소망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여호와 하나님께 붙잡혀 사는 인생은 담대함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만 의지하시고 내 삶 속에서 주인으로 모시기 바랍니다. 바울 사도가 원한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함께 하심을 바라보고 경험하길 바란 것입니다. 모든 믿는 성도들이 우리 여호와 하나님의 위로하심을 경험하고 의지적으로 영광돌리는 것을 원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먼저 경험해 봤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 은혜를 먼저 경험해보았고 깨달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이, 그 은혜가, 그 동행하심이 얼마나 크게 넓고 위대한지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함께하길 바랬고 같이 경험하길 원했으며 동일한 깨달음을 공유하기 바란 것입니다.
우리 여호와 하나님은 한 분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영원토록 변함없으시고 동일하신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성부 여호와 하나님은 사랑의 여호와 하나님이시며, 성자 여호와 하나님은 은혜의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성령 여호와 하나님은 위로하심으로 동행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 여호와 하나님은 각각의 다른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며 동일한 본질을 가지시고 완전하게 하나이신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서로 존중하시고 서로 사랑하시고 서로 아껴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믿는 여호와 하나님은 그저 그런 여호와 하나님이 아닌, 놀라운 여호와 하나님이시고 정말 위대하신 여호와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돌리시기 바랍니다. 오직 우리 주 여호와 하나님께만 은혜가 있고 사랑이 있습니다. 오직 우리 주 여호와 하나님의 위로하심만이 우리를 참 기쁨으로 인도합니다. 이것을 감사함으로 받으시길 바랍니다. 이 모든 것에 감사드리길 바랍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시편 107:1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드리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십니다. 영원을 창조하시고 영원부터 계신 우리 여호와 하나님, 그 큰 사랑으로 은혜를 베푸시고 인자하심을 보여주신, 우리 주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기 바랍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시고 변함없으신 우리 여호와 하나님께만 찬양드리기 원합니다.
삼위 여호와 하나님이 서로 사랑하시고 존중하시고 순종하신 모습은 우리가 가져야 할 모습입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며 겸손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는 서로 목소리 높이고 서로 핏대 세우는 것이 아닌, 인자와 사랑을 덧입은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했다면 우리 주위에 있는 어려운 이웃과 고통 당하는 사람도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는 사나 죽으나 다 주의 것임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따르려 노력하시길 간절히 원합니다. 쉽지 않지만 우리 노력해 봅시다.
그리고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고 이해하시며 은혜 내려 주시는, 나의 주 나의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돌리시기 바랍니다. 오직 주님만이 우리의 모든 것 아시는 분이십니다. 그 여호와 하나님이 지금도 우리를 사랑하고 계시며 은혜 내려 주시고 계십니다. 그 여호와 하나님이 지금도 저와 여러분과 함께 하시고 위로하고 계십니다. 우리 주 우리 여호와 하나님께만 영광 돌리시길 바랍니다.
우리 잠깐 옆에 계신 분들과 서로 인사 나누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쑥쓰러우시더라도 서로 얼굴을 마주 보시고 인사 나누시길 바랍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가득하시길 바랍니다”라고 서로 인사 나누시길 바랍니다. 예. 예. 감사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위로가 필요하고 격려가 필요한 시점에서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바울은 그 당시 어려움에 처한 성도들에게 필요한 것, 그것은 우리가 믿는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여호와 하나님인지 분명하고 밝히 드러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말씀으로 끝을 맺습니다. 삼위일체 여호와 하나님을 분명하게 드러내며, 그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은혜주시며 동행해 주신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환기시켜 주는 것입니다.
삼위일체라는 말만 해도 벌써 머리 아파하시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저도 이 삼위일체라는 개념에 대해 무척 고민하고 머리 쥐어짜던 때가 있었습니다. 잘 이해가 안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삼위일체의 여호와 하나님을 깨닫는 순간 너무도 풍성한 은혜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같이 나누려고 하는 것입니다. 제가 경험하고 깨달은 그 은혜를 같이 나누길 원하기 때문입니다.
삼위일체 여호와 하나님을 이야기할 때 가장 많은 어려움은, 여호와 하나님은 한 분이라고 했는데, 어떻게 세 분이냐 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는 누구에게 해야 하며, 각 여호와 하나님은 어떤 관계냐란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한 분이신 것은, 절대의 신이 둘 일 수 없고 진리의 신이 둘 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진리는 하나이지 둘이면 그것은 진리가 될 수 없습니다. 절대적인 신이 둘, 셋 이라면 그것은 절대적인 신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오직 진리되시고 절대적이시며 스스로 계신 여호와 하나님은 한 분 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 여호와 하나님은 한 분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절대적이시고 완전하신 여호와 하나님이 한 분이시기에, 동일본질의 성부 여호와 하나님, 성자 여호와 하나님, 성령 여호와 하나님은 모두 완전하신 여호와 하나님이시고 동일하신 여호와 하나님이 되십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는 성자 여호와 하나님과 성령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시고 내주하십니다. 또한 성자 여호와 하나님도 성부 여호와 하나님과 성령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시고 동일하게 내주하고 계십니다. 마찬가지로 성령 여호와 하나님도 동일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서로 교통하시고 인격적인 관계 안에서 사랑하십니다. 서로 존중하시고 사랑하시며 하나이심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성부 여호와 하나님의 완전성은 동일하게 내주하고 계시는 성자 여호와 하나님과 성령 여호와 하나님과 동일하므로 완전성도 동일합니다. 그래서 성부 여호와 하나님과 성자 여호와 하나님, 성령 여호와 하나님은 동일한 완전성을 가지고 계시며 또한 동일본체이십니다. 그러나 위격이 다르고 각 인격이 있으십니다. 그래서 성부 여호와 하나님은 사랑으로 성자 여호와 하나님과 성령 여호와 하나님을 보내주셨고, 성자 여호와 하나님은 순종의 은혜로 오신 것입니다. 여기에 성령 여호와 하나님은 믿는 성도들과 교통하심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위로를 이루시고 완전케 하십니다.
태초부터 스스로 계신 여호와 하나님은 삼위일체로서 계셨습니다. 그러나 구지 나눈다면 성자 여호와 하나님과 성령 여호와 하나님은 성부 여호와 하나님에게로부터 나셨으며, 성령 여호와 하나님은 성부 여호와 하나님과 성자 여호와 하나님에게서 나셨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의 잣대로 본 것일 뿐, 여호와 하나님은 동일하시고 언제나 함께하시며 태초부터 함께 계셨습니다.
그리고 성부와 성자와 성령 삼위일체 여호와 하나님 안에 있는 상호 내주의 관계성은, 각 위격이 다른 위격과 분리되거나 독립되어 각자의 유일성을 가진 개별자로 존재하지 않으심을 보여줍니다. 성부 여호와 하나님의 존재와 삶이 성자 여호와 하나님과 성령 여호와 하나님의 삶과 존재에 의존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동일본체이시기 때문에 서로의 삶과 존재는 영향을 받고 의존하며 상호 연관을 맺으며 존재하고 계신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고 계시고 서로 존중하고 계시며 서로 영원한 사귐을 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이러한 모든 것이 우리 여호와 하나님의 모습이며 삼위일체의 여호와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생각하는 여호와 하나님은 성부 여호와 하나님이시면서도 성자 여호와 하나님이 되시고 성령 여호와 하나님이 되십니다. 왜냐하면 모두가 하나이신 삼위일체 여호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머리 속에 일부로 삼위일체 여호와 하나님을 그리면서 기도하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대상은 하나이신 여호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다른 분에게 기도하는 것이 아니고 오직 우리를 사랑하시고 은혜주시고 동행하시는 한 분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한 분이십니다.
우리가 생각하지 않고 살아가도 우리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가 한 모든 기도들 듣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그 뜨거운 사랑 때문에, 끊임없이 솟아나는 은혜로 중보기도해 주십니다. 그리고 그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 믿는 성도들을 아끼시고 위로해주심으로 함께하시고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해주십니다. 우리 여호와 하나님은 이런 분입니다. 우리가 외면해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사랑하시고 선택해주시며 은사를 주신 것에 대해 후회나 변개하심이 없는 분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여호와 하나님은 영원토록 변함이 없으시고 동일하시고 깨어지지 않는 사랑을 주십니다. 우린 이러한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여호와 하나님은 그냥 여호와 하나님이 아닙니다. 우리를 위해 아들까지 내어주신 분이며,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지시고 죽기까지 하셨던 분입니다. 그리고 탄식과 눈물로 중보기도 해주시는 분이시고 영원토록 위로해주시고 함께 하시는 분이십니다. 이런 분이 바로 우리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바라봐야 할 분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입니다. 내 자신도 아니고 내 상황도 아니고 내가 가진 것도 아닌, 오직 우리를 사랑하시고 은혜 내려 주시며 함께 동행해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만 바라봐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참 기쁨이 있고 참 소망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주는 것이 너무도 엄청난 우리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에게 엄청난 것을 바라시지 않습니다. 오직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 그것만을 원하십니다. 하루의 모든 시간을 여호와 하나님께 돌리고 영광 돌려야 하지만 우리는 그러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렇게도 할 수 없습니다. 삶속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인정하고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것이 곧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내 삶의 주인으로 인정하고 생각의 근거와 판단의 기준을 여호와 하나님께 두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삶을 영유하며 그 안에서 기뻐하고 시시때때로 주시는 은혜에 감격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고 영광 돌리기 위해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곧 우리의 기쁨이고 자랑이며 존재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은 너무 커서 바다를 덮고 하늘을 덮습니다. 하지만 너무 커서 볼 수 없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 있음은 이 자체가 사랑이라는 사실을 증명합니다.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기대하시고 앞으로 미래에 드릴,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모습을 기대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우리는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위로의 여호와 하나님이 또한 주시는 은혜의 깨달음입니다. 영적인 깨달음인 것입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는 바다같이 넓고 우주같이 거대해서 느낄 수 없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셔서 죽으신 그 사랑의 순종은, 바로 알 수 있고 깨달을 수 있는 은혜입니다. 참 은혜입니다. 아무 댓가를 바라시지도 않으시고 그저 순종하심으로 은혜의 모습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 모두의 삶을 다 덮어주시고 우리의 모든 죄악과 모습을 덮어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은혜는 너무도 엄청난 것입니다. 도저히 우리가 가진 힘으로는 보답해 드릴 수 없는 엄청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여호와 하나님은 그런 것 보다도 우리의 의지와 우리의 생각이, 그리고 우리의 감정이 참으로 여호와 하나님만 바라보고 기뻐하기를 원하실 뿐입니다.
저에게 있어서 여호와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가장 많이 느낄 때가 바로 오늘처럼 설교할 때입니다. 내 짧은 지식과 우매함이 설교에 묻어나 있지만, 내가 부여잡고 있는 것은 진리의 말씀, 성경이기에 둔한 내 혀를 사용하셔서 능력의 말씀이 함께 하심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제가 지식 있어서도 절대 아니요, 제가 경험이 많아서도 절대 아니며, 제가 깊은 영적 통찰력을 가져서 깨닫는 것도 절대 아닙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서 쓰고 계시고 느끼게 하시고 함께 해주심을 뼈저리게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절대로 내가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인한 은혜라는 것을 설교할 때마다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복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태어나면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라고 하신다면 어쩔 수 없지만, 그게 아니라면 꼭 다시 여호와 하나님의 일꾼으로 살고 싶습니다. 아직 목사도 안되었지만 전 늘 깨닫습니다. 설교 이외에도 수 많은 사건과 일들 속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느낍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저는 엎드려지게 되고, 여호와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은혜의 함께하심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여러분, 정에 메말라 계십니까? 우리 인간은 시간이 지나면 변합니다. 하지만 우리 여호와 하나님은 영원토록 변함없으신 분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만 매달리시기 바랍니다. 채울 수 없는 외로움이 있습니까? 그러면 넓고 커서 가늠해 볼 수도 없는 여호와 하나님의 위로하심에 풍덩 빠지시기 바랍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은 너무나 큽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는 도저히 말로다 다 설명할 수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 연약함을 아시고 동행해주심으로 끊임없이 기도해주시는 분입니다.
여러분, 다시 말씀드립니다. 여호와 하나님께만 매달리시기 바랍니다. 여호와 하나님께만 길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만 참 빛이 있습니다. 우리 여호와 하나님께만 위로와 기쁨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여호와 하나님께 붙잡혀 사는 인생은 미래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여호와 하나님께 붙잡혀 사는 인생은 소망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여호와 하나님께 붙잡혀 사는 인생은 담대함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만 의지하시고 내 삶 속에서 주인으로 모시기 바랍니다. 바울 사도가 원한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함께 하심을 바라보고 경험하길 바란 것입니다. 모든 믿는 성도들이 우리 여호와 하나님의 위로하심을 경험하고 의지적으로 영광돌리는 것을 원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먼저 경험해 봤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 은혜를 먼저 경험해보았고 깨달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이, 그 은혜가, 그 동행하심이 얼마나 크게 넓고 위대한지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함께하길 바랬고 같이 경험하길 원했으며 동일한 깨달음을 공유하기 바란 것입니다.
우리 여호와 하나님은 한 분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영원토록 변함없으시고 동일하신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성부 여호와 하나님은 사랑의 여호와 하나님이시며, 성자 여호와 하나님은 은혜의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성령 여호와 하나님은 위로하심으로 동행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 여호와 하나님은 각각의 다른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며 동일한 본질을 가지시고 완전하게 하나이신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서로 존중하시고 서로 사랑하시고 서로 아껴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믿는 여호와 하나님은 그저 그런 여호와 하나님이 아닌, 놀라운 여호와 하나님이시고 정말 위대하신 여호와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돌리시기 바랍니다. 오직 우리 주 여호와 하나님께만 은혜가 있고 사랑이 있습니다. 오직 우리 주 여호와 하나님의 위로하심만이 우리를 참 기쁨으로 인도합니다. 이것을 감사함으로 받으시길 바랍니다. 이 모든 것에 감사드리길 바랍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시편 107:1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드리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십니다. 영원을 창조하시고 영원부터 계신 우리 여호와 하나님, 그 큰 사랑으로 은혜를 베푸시고 인자하심을 보여주신, 우리 주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기 바랍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시고 변함없으신 우리 여호와 하나님께만 찬양드리기 원합니다.
삼위 여호와 하나님이 서로 사랑하시고 존중하시고 순종하신 모습은 우리가 가져야 할 모습입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며 겸손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는 서로 목소리 높이고 서로 핏대 세우는 것이 아닌, 인자와 사랑을 덧입은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했다면 우리 주위에 있는 어려운 이웃과 고통 당하는 사람도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는 사나 죽으나 다 주의 것임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따르려 노력하시길 간절히 원합니다. 쉽지 않지만 우리 노력해 봅시다.
그리고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고 이해하시며 은혜 내려 주시는, 나의 주 나의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돌리시기 바랍니다. 오직 주님만이 우리의 모든 것 아시는 분이십니다. 그 여호와 하나님이 지금도 우리를 사랑하고 계시며 은혜 내려 주시고 계십니다. 그 여호와 하나님이 지금도 저와 여러분과 함께 하시고 위로하고 계십니다. 우리 주 우리 여호와 하나님께만 영광 돌리시길 바랍니다.
우리 잠깐 옆에 계신 분들과 서로 인사 나누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쑥쓰러우시더라도 서로 얼굴을 마주 보시고 인사 나누시길 바랍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가득하시길 바랍니다”라고 서로 인사 나누시길 바랍니다. 예. 예. 감사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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