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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례] 세례의 의미

본문

독일교회는 모이는 숫자는 적지만 저력이 있다는 것이다. 국가 고시를 보아 합격을 하면 물론 목사가 되지만 불합격하는 사람은 적어도 한 마을의 동장에 배치된다는 것이다.
모든 초중고 공립학교에서는 13년동안 매주 한주일에 2시간 종교교육을 하고 세례를 받으려면 시험을 처서 90점 이상이 되어야 비로서 교회에서 세례를 베푼다. 그리고 세례받는 선물로는 결혼식 때 받는 선물보다 더 값진 것을 받는다는 것이다.
또한 2년에 한번씩 교회의 날이 있는데 그날이야말로 교회가 입추의 여지없이 모여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가지고 축제를 한다고 한다.
그리고 통독되기 전 서독은 10개주로 되어 있었는데 각주마다 비숍이 있고 비숍의 봉급은 그 나라 수상과 같고 모든 목사들은 국가에서 봉급을 받으면 호봉제이고 도시목사는 도시수당(자동차 운영비 기타) 지방목사는 벽지수당을 받는다는 것이다.
설교는 각 주 본부에서 매주 설교를 만들어 주 산하교회에 발송하면 산하 목사들은 그 설교문을 일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 설교에 좀 성의를 들여서 말씀을 덧붙혀서 설교하는 교회는 교인이 비교적 많이 모인다고 한다.
심방은 출석여부는 상관없이 한 가정이 몽땅 목사 사택에 와서 일주일씩 함께 목사의 심방을 받는 다고 한다.
독일 국민은 종교세를 내는데 교회출석과는 무관하게 수입의 2%를 종교세로 세금을 내는데 강제가 아닌데도 98%가 세금을 꼬박꼬박 낸다는 것이다.
종교세를 내지 않은 사람이나 세례를 받지 않은 사람의 자녀는 유치원에도 못가고 결혼식, 장례식도 교회에서 안 해 주고 다른데 가보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다른데는 결혼식이나 장례식을 하는 곳이 없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세례를 받지 않거나 종교세를 내지 않은 사람은 평생 사람구실을 못한다는 것이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독일 장례식에는 어렸을 때 세례 받을 때 받았던 성경구절을 집례하시는 목사님이 읽으면서 그 성경구절이 그 할아버지의 일생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했답니다. 말하자면 세례받을 때 주는 성경구절은 그 사람의 평생을 좌우한다는 것이다.
세례를 받는 다는 것은 인생을 좌우할 만큼 중요한 례식입니다. 큰 선물을 받아서가 아니라 일생을 걸고 세례 받은 사람으로 살겠다는 중대한 결단인 것입니다.

예> 우리나라 최초 세례 - 우리 경신학교를 설립하신 선교사 원두우 목사님이 우리나라에 1885년에 오셨는데 오자마자 세례를 베풀게 되었다. 최초 개신교 선교사 원두우 목사가 들어오기 전에 이미 우리나라에는 개신교 교인이 있었던 것입니다. 세례를 받아야 할 텐데 목사가 없어서 세례를 받지 못하고 있었는데 원두우 목사님이 오셨으니 이제 세례를 받을 수 있다고 하면서 원두우 목사님에게 세례를 달라고 70명이나 몰려 왔다. 그런데 큰 일이 었다. 우리나라에서 안에서는 세례는 금지되었고 만일 국내에서 세례를 받은 것이 들어나면 여지없이 사형에 처하게 되었던 시대였었다. 선교사 원두우 목사님이 오셨지만 교회도 못짓게하고 사람들에게 예수 믿으라고 전도도 할 수 없었다. 물론 세례도 줄 수 없다. 만일 세례 받는 일이 발각되면 세례 받은 사람도 세례준 사람도 사형에 처하게 법으로 금지되어 있었다. 그런데 70명이 원두우 목사님에게 와서 세례 받고 들켜서 죽더라도 좋으니까 세례를 달라고 했다.
 고심하고 연구한 결과 압록강 위에서 세례를 주기로 했다. 왜냐하면 압록강 한복판에 가면 우리나라 국경을 넘어 중국 쪽 강이되니 거기서 세례를 베풀자는 것이었다. 그것이 유명한 선상세례식이었다. 물론 후에 세례받았다는 말도 못하고 세례주었다는 말도 못한다. 이와 같이 기독교 선교초기에는 세례는 목숨을 걸고 받던 것이다. 이렇게 목숨을 담보하고 받은 세례교인들은 세례받은 사실은 들어낼 수 없었지만 세례받은 사람으로 사는 삶만은 성경적이고 기독교적이었다는 사실이다.

 성찬예식은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예식 가운데 하나입니다. 특히 세례식은 예수님께서 친히 명령하신 예식으로써 세례를 통해서 우리는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고 교회 공동체의 일원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세례의 의미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말씀 드림으로 오늘 세례를 받으신 여러분들과 또 이미 세례를 받으신 성도 여러분 모두에게 세례를 통해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세례의 의미는 "씻는다"는 뜻입니다.
세례는 "씻는다" 세례(洗禮)의 洗字(세자)는 "씻을 세"字입니다. 그래서 세례는 씻는 예식입니다. 무엇을 씻느냐? 罪(죄)를 씻는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세례는 우리의 罪를 씻는 거룩한 예식입니다.
세례를 베풀 때 무엇으로 세례를 줍니까? 물로 세례를 줍니다. 물이라고 하는 것은 "씻음"의 상징입니다. 물은 더러운 것, 불결한 것을 씻는 작용을 합니다.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서 물로 세수를 하고 또 몸이 더러워지면 물로 목욕을 합니다. 더러운 옷은 물로 씻어 깨끗케 합니다. 이와 같이 물은 더러움을 씻어 내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례는 바로 罪를 씻는 상징입니다. 여러분의 죄가 세례를 통하여 깨끗이 씻음 받은 것은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처럼 세례는 죄를 씻는 거룩한 예식인데 실제로 물이 우리 육체의 더러움을 씻을 런지는 몰라도 어떻게 물이 우리의 더러워 진 마음과 영혼까지도 씻을 수 있겠습니까? 육체의 더러움은 씻을 수 있겠지만 영혼의 더러움은 씻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 예레미야서 2장 22절에도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네가 잿물로 스스로 씻으며 네가 많은 비누를 쓸지라도 네 죄악이 네 앞에 그대로 있으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잿물과 비누로 아무리 많이 씻을지라도 사람의 죄는 용서받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물은 하나의 상징입니다. 그렇다면 물이 상징하는 바 그 실체는 무엇일까요?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곧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보혈의 피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물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깨끗이 씻어 정결케 하시는 것입니다. 요한 1서 1장 7절 말씀에 "…..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罪에서 깨끗케 하신다"고 말씀 하셨고 에베소서 1장 7절에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다"고 말씀했습니다.
또 베드로전서 1장 18-19절에서는 "너희가....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 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오늘 세례를 받으신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 씻음 받은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일평생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며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며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세례의 의미는 "잠긴다"는 뜻입니다.
세례는 성경원어는 “밥티조”라고 하는데 그 의미는 "물에 잠긴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잠길 침(侵) 자를 써서 침례(浸禮)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요단강에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 물 속에 들어 가셨다가 나오셨습니다. 그래서 세례를 베풀 때 머리에 물을 붓는 것입니다. 머리에 물을 붓는 것은 머리까지 물에 잠긴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이 머리까지 물 속에 잠기면 어떻게 됩니까? 숨을 쉬지 못하여 죽게 되지요. 그러므로 물 속에 잠기는 것은 죽음을 상징하고 다시 나오는 것은 부활을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세례의 두 번째 의미는 죽음과 부활입니다. 우리의 옛 사람이 죽고 새 사람으로 다시 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바로 세례의 의미입니다. 오늘 본문 로마서 6장 3-4절 말씀에 보면 그 사실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 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도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아멘! 무슨 말입니까? 세례의 의미가 우리가 예수와 하나로 합쳐져서 예수와 함께 죽었다가 다시 예수와 함께 부활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세례는 예수와 우리가 하나 되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그리고 예수와 하나 된 우리가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무덤에 장사되었다가 다시 예수와 함께 부활하는 것입니다. 할랠루야! 그렇다면 우리에게 죽는 것은 무엇이고 다시 사는 것은 무엇입니까? 먼저 죽는 것은 우리의 옛사람입니다.
6절 말씀에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함이니" 우리에게 죽은 것은 옛사람입니다. 우리의 옛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옛사람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예수를 믿기 이전의 사람입니다. 곧 육신의 사람이요, 정욕의 사람이요, 이 세상에 속한 거짓과 교만과 욕심과 혈기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옛사람이 죽었다는 말씀입니다. 세례를 받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말씀입니다. 믿습니까?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그 옛사람을 일컬어 죄의 몸이라고 했습니다. 예수 믿기 이전에 세례 받기 이전에 여러분은 옛 사람이었고 여러분의 몸은 죄의 몸이었습니다. 그래서 죄에게 종노릇하고 있었습니다. 죄의 유혹에 따라 죄를 지으며 악을 행하며 살던 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세례와 합께 죄의 몸이 죽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죽은 사람은 말이 있습니까? 죽은 사람은 말이 없습니다. 아무리 욕하고 침 벧고 때려도 아무 반응이 없습니다. 아무리 금은보화로 유혹해도 끔쩍도 안 합니다. 罪에 대하여 족은 자는 이와 같습니다. 罪가 아무리 여러분을 유혹하고 세상 부귀영화와 즐거움과 쾌락이 여러분을 손짓해도 거기에 넘어가거나 반응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아무리 욕하고 때리고 헐뜯어도 거기에 분노하거나 혈기를 내어 죄를 지어서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옛 사람은 죽었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24절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했습니다. 여러분과 제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의 옛사람은 죽고 우리가 새 사람으로 다시 태어났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고린도 후서 5장17절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아멘! 이제 여러분은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롭게 지음 받은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습니다. 여러분의 옛사람은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태어난 새 사람이 된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 기독교 2000년 역사상 바울 이후 가장 위대한 인물로 손꼽히는 어거스틴, 그는 젊은 한 때 방탕한 생활로 허비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 어거스틴을 위하여 그 어머니 모니카가 눈물로 사랑하는 아들을 위하여 간절히 기도했는데 마침내 어거스틴이 긴 방황생활을 끝내고 여호와 하나님 앞으로 돌아 왔습니다. 그가 새사람이 되어 어느 날 길을 가던 중 전에 사귀든 창녀가 그를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를 했습니다. "오, 어거스틴, 요즘 어떻게 지내요? 왜 이렇게 만나기 힘들어요?" 하면서 전과 같이 손을 잡아끄는 것 이였습니다. 그때 어거스틴은 그 여인의 손을 뿌리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당신이 누군지 모르오. 왜냐하면 옛날의 어거스틴은 이미 죽었기 때문이요. 당신이 알던 어거스틴은 이미 죽었소" 그렇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로 지음 받은 성도의 모습입니다.
옛사람은 죽고 새 사람이 된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 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이제부터 사는 것은 여러분이 아니요 여러분 속에 그리스도께서 사는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옛 생활, 옛 습관, 옛 성품을 온전히 끊어 버리시기 바랍니다. 술먹고 담배 피우고 싸우고 욕하고 육신의 정욕을 따라 방탕하며 살아가던 여러분의 옛 생활을 청산하시기 바랍니다. 시기하고 질투하고 교만하고 속이고 혈기 부리고 거짓말하던 옛 성품을 온전히 십자가에 못 박으시기 바랍니다. 자기 욕심과 자기 고집과 자기 정욕대로 살아가던 옛 사람을 모두 버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제는 온전히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믿음으로 살아가는 새 사람,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옛 생활, 옛 습관, 옛 성품을 온전히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죽어야 삽니다. 죽지 않고는 다시 사는 부활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온전히 죽으심으로 다시 사셨듯이 오늘 우리들도 옛 사람을 완전히 십자가에 못박아 죽여야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다시 살아 날 수가 있는 것입니다. "... 그런 즉 이제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내가 죽어야 합니다. 내가 죽어야 내 속에 그리스도께서 사십니다. 내가 죽지 않으면 그리스도께서 내 속에 사실 수가 없습니다. 따라합시다. "내가 죽어야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산다" "내가 죽지 않으면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살지 못한다" 이제부터 온전히 나를 죽이고 내 속에 그리스도만이 사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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