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례] 세례 예식
본문
세례란 말은 '밥티조'(Baptizo) 인데, '담근다, 물에 빠뜨리다, 목욕하다' 등으로 쓰입니다. 대개 초신자들은 한발은 교회에, 한발은 세상에 양다리를 걸치고 신앙생활을 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새로운 결단이 필요합니다.
그 결단이 무엇입니까 바로 세례의식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사역을 시작하실 때 세례요한에게 친히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요단강에서 우리는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시기 위해 스스로 취하신 비하의 모습을 봅니다. 그런데 이 행위는 아무런 영광 없이 끝나지 않습니다.
(막 1:10 - 11). “곧 물에서 올라오실 새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이 비둘기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그리고 그가 제자들에게 사명을 주셨을 때에도 세례를 강조하셨습니다.
마 28:19절에 보면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했습니다.
주님의 명령을 받은 제자들도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파하고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그 세례를 통하여 제자들은 새로운 삶을 향한 결단을 촉구하였고, 수많은 백성들이 주님의 사람으로 돌아왔습니다. 오늘은 그리스도인이면 누구나 반드시 알아야 할 세례의 영적 뜻이 무엇이며 우리에게 어떤 유익을 주는 가를 알기 위해 말씀을 상고하고자 합니다.
1. 세례는 죄사함 받는 의식입니다.
세례의식에서 중요한 역할은 물입니다. 물은 생활 속에서 사람의 생존과 관련된 가장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또한 물은 더러운 것을 씻을 때 사용되며, 옷이나 몸을 깨끗이 씻는데 사용됩니다. 즉 더러움을 정결케 하는 성결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세례는 죄를 깨끗이 씻고 죄사함을 받는 상징적인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마 3:11절에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 "라고 했습니다. 세례요한은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기 직전까지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구약의 예언대로 주님의 길을 예비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세례를 베풀었던 목적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회개하여 죄사함을 받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행 2:38절 보면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라고 했습니다.
사도바울은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함이니"라고 했습니다. (6절)
그렇습니다. 세례의 제 1차적인 의미는 과거에 죄의 종노릇하던 인간이 죄사함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알기 전에 우리의 삶이 어떠했습니까 오직 세상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많은 실수와 죄를 범하며 살아오지 않았습니까 몸도 마음도 생각도 너무나 많이 오염되어 있지 않았습니까 이제 주님을 만나고 보니 해결해야 할 죄들이 너무 많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죄 문제의 해결, 그 증표가 바로 "세례"입니다.
물론 물 그 자체가 죄를 씻는 능력을 가진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주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주님을 철저히 신뢰하는 가운데 그 능력이 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주님 앞에 죄를 고백하고 용서하심을 구해 보십시오. 마음속에 깊은 신뢰와 믿음을 가지고 이 세례의식에 임하면 단지 의식으로 끝나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세례의 의미는 씻음의 의미로, 죄를 물로 씻을 수는 없지만 십자가의 보혈로 죄사함 받았다는 것을 뜻하고 예수님의 부활사건을 받아들임으로써 우리가 새 생명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2. 세례는 예수님과 함께 옛사람이 죽겠다고 고백하는 의식입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롬6:3)
물 속에 잠긴다는 의미는 옛 사람이 죽는다는 뜻입니다 즉, 옛 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죽었다가 예수님과 함께 다시 산다는 것입니다. 세례는 이제 내가 사는 것은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며 예수님이 내 인생의 주인이라고 교회와 회중 앞에 고백하는 믿음의 행위입니다(갈 2:20).
우리가 세례를 받는 것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연합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2천년 전 예수님의 죽으심이 바로 나의 죽음이 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예수님은 우리의 죄 때문에 죽으셨습니다. 죄가 없으시고 죄를 알지도 못하는 분을 여호와 하나님이 죄인으로 삼으셨습니다. 우리를 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가 짊어질 죄의 대가를 예수님이 지도록 하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죄의 삯을 다 갚아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죽음은 곧 우리의 죽음입니다. 이 죽으심이 나로 인한 것임을 고백하는 사람에게 세례를 베풉니다. 그러므로 세례는 그리스도의 죽으심과의 연합입니다.
오늘 세례를 받으시는 분들은 곧 2천년 전 나를 대신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예수님의 공로가 바로 내게 해당되는 것, 나 때문에 예수님이 대신 죄의 값을 지불하기 위해 죽으셨다는 것을 알고 감사함으로 세례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또 이미 세례를 받은 분들도 우리가 세례 받은 것이 예수님이 나의 죽음임을 고백하는 것이었으며 그래서 그런 예수님께 감사하면서 세례식에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이렇듯 세례의 의미는 우리가 예수님의 죽으심과 연합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롬6:4)
세례는 주님의 장사와 연합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곧 그분의 장사와 함께 장사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장사란 죽은 사람을 묻는 일입니다. 그래서 장사 지낸 바 된 사람은 완전히 죽은 것입니다.
아직 완전히 죽지 않은 사람은 절대 장사지내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죽으면 며칠을 놔둡니다. 혹시 살아날까 해서 그렇습니다. 그러나 완전히 죽은 사람은 완전히 묻습니다. 장사지냅니다. 예수님이 장사지낸 바 되었다는 것은 십자가에서 가짜로 죽은 것이 아니라 진짜 죽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 우리들이 세례를 받는 의미는 마치 2천년 전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셔서 장사지낸 바 우리도 그 때 완전히 죽어서 장사 지낸 바까지 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세례란 내가 완전히 죽었다는 표입니다. 세례를 받지 않았으면 아직 좀 살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례를 받았으면 이제 나는 완전히 죽은 것입니다. 그것을 고백하고 인정하는 사람에게 세례를 베풉니다.
그런데 가끔 세례 받았다고 하는 사람 가운데 아직 완전히 죽지 않은 사람들 있습니다. 아직 옛 성격이 죽지 않았고, 분노가 죽지 않았고, 정욕이 죽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말은 세례를 받았다고 하지만 세례의 의미를 잘 모르는 사람입니다.
겉으로는 세례의 행위를 하고 세례증서도 가지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그 세례의 의미와 자신을 부합시킬 때 진정으로 세례를 받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세례란 내가 진정으로 죽는 것입니다. 겉으로만 아니라 실제로 완전히 죽은 자신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세례 받는 자들은 이 날이 내 장례식 날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또 이미 세례 받은 자들도 나는 이미 죽었다는 것을 깨닫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유명한 최권능 목사님이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가 회개하고 세례를 받은 후에 장터에서 전도하다가 옛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술에 거나하게 취해서 최권능 목사를 보고 놀려댔습니다. 앉혀 놓고는 술을 권하고, 마시지 않으니까 입을 벌리고 마시게 하려고 했습니다. 그래도 마시지 않으니까 어떤 친구가 얼굴에다가 술잔을 부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술로 세수를 하고, 옷이 온통 술에 젖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때 옆에 있는 친구가 큰 일 났다고 생각했습니다. 저 정도 되면 옛날 최봉석이라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 친구 오늘 장례 치르는 날이구만 하고 옛날처럼 주먹이 올라갈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 최권능 목사님은 가만히 있는 것입니다.
자기 옷을 털고 아무 일이 없는 듯이 태연히 앉아 있었습니다. 옆에서 보고 있던 친구가 하도 이상해서 괜찮으냐고, 어떻게 그렇게 참고 넘어가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최권능 목사님이 하시는 말씀이, "이 전의 최봉석이는 다 죽었어. 지금 살아 있는 것은 전도하는 최권능 목사야" 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최권능 목사님은 정말 예수님과 함께 죽고 장사된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이런 의미입니다. 과거의 나는 이미 죽었습니다. 갈라디아서 5:24 말씀처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한 것과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세례 받은 사람들은 그 정과 욕심을 온전히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고백함으로 세례를 받습니다. 그래서 오늘 세례 받을 사람들 한번 따라 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죽었다" "나 아무 아무개는 죽었다" "오늘 나는 죽는다" 이미 세례 받은 자들도 한번 따라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이미 죽었다"
3. 세례는 주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선포입니다.
의식이나 예식은 그 내용이 무엇이든지 다른 사람에게 널리 선포하고 알림으로써 공식화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세례의식은 세례 받는 사람이 이제 명실상부하게 죄사함을 얻었다는 표시입니다. 그리고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많은 성도와 교회 앞에서 선포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여호와 하나님의 양자로 입양되었음을 선포하는 입양의식 입니다.
갈 3:26-27절에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고 했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세례는 죄인이었던 우리가 그리스도의 옷을 덧입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권세를 얻게되는 것입니다. 구원의 반열에 오르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법적 자녀로서 그의 후사가 된다는 말입니다. 그가 베풀어주시는 모든 것에 수혜자가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장차 그의 자녀들을 위해 예비해 놓은 천국은 우리가 상속받을 영광스러운 유산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례의식은 축복이며, 영광스러운 예식이며,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가 되며 그의 나라를 상속받을 후사라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선포하는 거룩한 예식입니다.
오늘 세례 받는 성도나, 이미 세례 받고 성찬에 임한 성도 여러분은 기쁨과 감사함을 가지며 소망과 겸손함으로 이 놀라운 은총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4. 세례는 주님을 위해 일평생 헌신을 다짐하는 의식입니다.
본문 13절에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같이 여호와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여호와 하나님께 드리라"고 했습니다.
세례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것을 의미합니다. 내 안에 예수그리스도께서만 사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례 받은 자의 마땅한 고백은 예수그리스도와 그의 나라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고백입니다. 이제까지 우리는 과연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가 누구를 위해 살아왔는가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다.
오직 나의 체면, 나의 지위, 나의 부귀, 나의 가족, 내 자신만을 위해 살아오지 아니하였는가 그러나 세례를 통해 이 모든 것들을 물에 수장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자기 자신을 과신하며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을 핍박하던 자였습니다. 자신의 학식과 출신을 자랑하며 스스로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의인이라고 자부하던 자였습니다.
그런데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세례를 받고 난 후 어떻게 변했습니까 빌 3:8절에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 "라고 했습니다.
진정한 헌신은 어떤 것입니까 오직 내가 죽고 예수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것입니다. 그가 나를 위하여 죽었기에 나도 그를 위해 죽겠노라고 고백하는 그곳에 참다운 헌신이 있습니다.
나폴레옹이 전쟁할 때 한 겨울에 적 기병대에게 포위되었습니다. 그들은 살기 위해 강을 건너야 했지만 적군들이 이미 모든 다리를 파괴해 버렸습니다. 나폴레옹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다리를 놓으라고 명령했습니다.
몇 사람이 강에 들어갔으나 강한 물결에 휩쓸려 갔습니다. 다른 몇 명의 군인들도 깊은 물 속에 잠겨버렸습니다. 수십 명의 군인들이 힘을 합쳐 어렵게 임시 다리를 가설했습니다. 다행히 모든 군인들이 무사히 도강했고,
나폴레옹은 그 임시다리의 기둥을 붙들고 있었던 군인들을 칭찬해 주려고 빨리 물에서 올라오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런데 그들 모두는 가설다리를 붙잡고 꽁꽁 얼어붙어 죽어 있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헌신이란 말은 낭만적인 말이 아닙니다. 그 말속에는 우리의 땀이 있고, 우리의 정열이 있으며, 우리의 생명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 앞에 이러한 헌신을 약속하는 세례의식이야말로 얼마나 엄숙한 예식이며, 얼마나 긴장이 되는 의식입니까
그러므로 이 시간은 우리의 마음을 드리고 우리의 정열을 드리고 우리의 생명을 드리는 결단하는 시간입니다. 오직 주님만 위해 살겠노라 고백하며 헌신을 다짐하며 세례 받는 자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은총을 받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고 하셨습니다. (마 10:39)
따라서 세례를 받은 자는 이미 죄에 대하여 죽고, 그리스도와 더불어 의 가운데서 사는 자입니다. 주님과 함께 영원한 새 생명을 얻은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세례 받은 성도의 삶은 이전의 옛 모습과 달라야 합니다.
죄사함 받고,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로서,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 거룩한 예식에 참여한 성도 여러분은 이와 같은 세례의 깊은 의미를 아시고, 주 앞에서 철저하게 변화되고 헌신된 자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 결단이 무엇입니까 바로 세례의식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사역을 시작하실 때 세례요한에게 친히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요단강에서 우리는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시기 위해 스스로 취하신 비하의 모습을 봅니다. 그런데 이 행위는 아무런 영광 없이 끝나지 않습니다.
(막 1:10 - 11). “곧 물에서 올라오실 새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이 비둘기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그리고 그가 제자들에게 사명을 주셨을 때에도 세례를 강조하셨습니다.
마 28:19절에 보면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했습니다.
주님의 명령을 받은 제자들도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파하고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그 세례를 통하여 제자들은 새로운 삶을 향한 결단을 촉구하였고, 수많은 백성들이 주님의 사람으로 돌아왔습니다. 오늘은 그리스도인이면 누구나 반드시 알아야 할 세례의 영적 뜻이 무엇이며 우리에게 어떤 유익을 주는 가를 알기 위해 말씀을 상고하고자 합니다.
1. 세례는 죄사함 받는 의식입니다.
세례의식에서 중요한 역할은 물입니다. 물은 생활 속에서 사람의 생존과 관련된 가장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또한 물은 더러운 것을 씻을 때 사용되며, 옷이나 몸을 깨끗이 씻는데 사용됩니다. 즉 더러움을 정결케 하는 성결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세례는 죄를 깨끗이 씻고 죄사함을 받는 상징적인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마 3:11절에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 "라고 했습니다. 세례요한은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기 직전까지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구약의 예언대로 주님의 길을 예비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세례를 베풀었던 목적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회개하여 죄사함을 받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행 2:38절 보면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라고 했습니다.
사도바울은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함이니"라고 했습니다. (6절)
그렇습니다. 세례의 제 1차적인 의미는 과거에 죄의 종노릇하던 인간이 죄사함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알기 전에 우리의 삶이 어떠했습니까 오직 세상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많은 실수와 죄를 범하며 살아오지 않았습니까 몸도 마음도 생각도 너무나 많이 오염되어 있지 않았습니까 이제 주님을 만나고 보니 해결해야 할 죄들이 너무 많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죄 문제의 해결, 그 증표가 바로 "세례"입니다.
물론 물 그 자체가 죄를 씻는 능력을 가진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주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주님을 철저히 신뢰하는 가운데 그 능력이 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주님 앞에 죄를 고백하고 용서하심을 구해 보십시오. 마음속에 깊은 신뢰와 믿음을 가지고 이 세례의식에 임하면 단지 의식으로 끝나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세례의 의미는 씻음의 의미로, 죄를 물로 씻을 수는 없지만 십자가의 보혈로 죄사함 받았다는 것을 뜻하고 예수님의 부활사건을 받아들임으로써 우리가 새 생명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2. 세례는 예수님과 함께 옛사람이 죽겠다고 고백하는 의식입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롬6:3)
물 속에 잠긴다는 의미는 옛 사람이 죽는다는 뜻입니다 즉, 옛 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죽었다가 예수님과 함께 다시 산다는 것입니다. 세례는 이제 내가 사는 것은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며 예수님이 내 인생의 주인이라고 교회와 회중 앞에 고백하는 믿음의 행위입니다(갈 2:20).
우리가 세례를 받는 것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연합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2천년 전 예수님의 죽으심이 바로 나의 죽음이 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예수님은 우리의 죄 때문에 죽으셨습니다. 죄가 없으시고 죄를 알지도 못하는 분을 여호와 하나님이 죄인으로 삼으셨습니다. 우리를 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가 짊어질 죄의 대가를 예수님이 지도록 하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죄의 삯을 다 갚아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죽음은 곧 우리의 죽음입니다. 이 죽으심이 나로 인한 것임을 고백하는 사람에게 세례를 베풉니다. 그러므로 세례는 그리스도의 죽으심과의 연합입니다.
오늘 세례를 받으시는 분들은 곧 2천년 전 나를 대신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예수님의 공로가 바로 내게 해당되는 것, 나 때문에 예수님이 대신 죄의 값을 지불하기 위해 죽으셨다는 것을 알고 감사함으로 세례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또 이미 세례를 받은 분들도 우리가 세례 받은 것이 예수님이 나의 죽음임을 고백하는 것이었으며 그래서 그런 예수님께 감사하면서 세례식에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이렇듯 세례의 의미는 우리가 예수님의 죽으심과 연합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롬6:4)
세례는 주님의 장사와 연합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곧 그분의 장사와 함께 장사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장사란 죽은 사람을 묻는 일입니다. 그래서 장사 지낸 바 된 사람은 완전히 죽은 것입니다.
아직 완전히 죽지 않은 사람은 절대 장사지내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죽으면 며칠을 놔둡니다. 혹시 살아날까 해서 그렇습니다. 그러나 완전히 죽은 사람은 완전히 묻습니다. 장사지냅니다. 예수님이 장사지낸 바 되었다는 것은 십자가에서 가짜로 죽은 것이 아니라 진짜 죽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 우리들이 세례를 받는 의미는 마치 2천년 전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셔서 장사지낸 바 우리도 그 때 완전히 죽어서 장사 지낸 바까지 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세례란 내가 완전히 죽었다는 표입니다. 세례를 받지 않았으면 아직 좀 살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례를 받았으면 이제 나는 완전히 죽은 것입니다. 그것을 고백하고 인정하는 사람에게 세례를 베풉니다.
그런데 가끔 세례 받았다고 하는 사람 가운데 아직 완전히 죽지 않은 사람들 있습니다. 아직 옛 성격이 죽지 않았고, 분노가 죽지 않았고, 정욕이 죽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말은 세례를 받았다고 하지만 세례의 의미를 잘 모르는 사람입니다.
겉으로는 세례의 행위를 하고 세례증서도 가지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그 세례의 의미와 자신을 부합시킬 때 진정으로 세례를 받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세례란 내가 진정으로 죽는 것입니다. 겉으로만 아니라 실제로 완전히 죽은 자신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세례 받는 자들은 이 날이 내 장례식 날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또 이미 세례 받은 자들도 나는 이미 죽었다는 것을 깨닫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유명한 최권능 목사님이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가 회개하고 세례를 받은 후에 장터에서 전도하다가 옛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술에 거나하게 취해서 최권능 목사를 보고 놀려댔습니다. 앉혀 놓고는 술을 권하고, 마시지 않으니까 입을 벌리고 마시게 하려고 했습니다. 그래도 마시지 않으니까 어떤 친구가 얼굴에다가 술잔을 부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술로 세수를 하고, 옷이 온통 술에 젖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때 옆에 있는 친구가 큰 일 났다고 생각했습니다. 저 정도 되면 옛날 최봉석이라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 친구 오늘 장례 치르는 날이구만 하고 옛날처럼 주먹이 올라갈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 최권능 목사님은 가만히 있는 것입니다.
자기 옷을 털고 아무 일이 없는 듯이 태연히 앉아 있었습니다. 옆에서 보고 있던 친구가 하도 이상해서 괜찮으냐고, 어떻게 그렇게 참고 넘어가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최권능 목사님이 하시는 말씀이, "이 전의 최봉석이는 다 죽었어. 지금 살아 있는 것은 전도하는 최권능 목사야" 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최권능 목사님은 정말 예수님과 함께 죽고 장사된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이런 의미입니다. 과거의 나는 이미 죽었습니다. 갈라디아서 5:24 말씀처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한 것과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세례 받은 사람들은 그 정과 욕심을 온전히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고백함으로 세례를 받습니다. 그래서 오늘 세례 받을 사람들 한번 따라 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죽었다" "나 아무 아무개는 죽었다" "오늘 나는 죽는다" 이미 세례 받은 자들도 한번 따라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이미 죽었다"
3. 세례는 주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선포입니다.
의식이나 예식은 그 내용이 무엇이든지 다른 사람에게 널리 선포하고 알림으로써 공식화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세례의식은 세례 받는 사람이 이제 명실상부하게 죄사함을 얻었다는 표시입니다. 그리고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많은 성도와 교회 앞에서 선포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여호와 하나님의 양자로 입양되었음을 선포하는 입양의식 입니다.
갈 3:26-27절에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고 했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세례는 죄인이었던 우리가 그리스도의 옷을 덧입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권세를 얻게되는 것입니다. 구원의 반열에 오르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법적 자녀로서 그의 후사가 된다는 말입니다. 그가 베풀어주시는 모든 것에 수혜자가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장차 그의 자녀들을 위해 예비해 놓은 천국은 우리가 상속받을 영광스러운 유산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례의식은 축복이며, 영광스러운 예식이며,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가 되며 그의 나라를 상속받을 후사라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선포하는 거룩한 예식입니다.
오늘 세례 받는 성도나, 이미 세례 받고 성찬에 임한 성도 여러분은 기쁨과 감사함을 가지며 소망과 겸손함으로 이 놀라운 은총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4. 세례는 주님을 위해 일평생 헌신을 다짐하는 의식입니다.
본문 13절에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같이 여호와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여호와 하나님께 드리라"고 했습니다.
세례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것을 의미합니다. 내 안에 예수그리스도께서만 사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례 받은 자의 마땅한 고백은 예수그리스도와 그의 나라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고백입니다. 이제까지 우리는 과연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가 누구를 위해 살아왔는가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다.
오직 나의 체면, 나의 지위, 나의 부귀, 나의 가족, 내 자신만을 위해 살아오지 아니하였는가 그러나 세례를 통해 이 모든 것들을 물에 수장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자기 자신을 과신하며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을 핍박하던 자였습니다. 자신의 학식과 출신을 자랑하며 스스로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의인이라고 자부하던 자였습니다.
그런데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세례를 받고 난 후 어떻게 변했습니까 빌 3:8절에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 "라고 했습니다.
진정한 헌신은 어떤 것입니까 오직 내가 죽고 예수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것입니다. 그가 나를 위하여 죽었기에 나도 그를 위해 죽겠노라고 고백하는 그곳에 참다운 헌신이 있습니다.
나폴레옹이 전쟁할 때 한 겨울에 적 기병대에게 포위되었습니다. 그들은 살기 위해 강을 건너야 했지만 적군들이 이미 모든 다리를 파괴해 버렸습니다. 나폴레옹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다리를 놓으라고 명령했습니다.
몇 사람이 강에 들어갔으나 강한 물결에 휩쓸려 갔습니다. 다른 몇 명의 군인들도 깊은 물 속에 잠겨버렸습니다. 수십 명의 군인들이 힘을 합쳐 어렵게 임시 다리를 가설했습니다. 다행히 모든 군인들이 무사히 도강했고,
나폴레옹은 그 임시다리의 기둥을 붙들고 있었던 군인들을 칭찬해 주려고 빨리 물에서 올라오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런데 그들 모두는 가설다리를 붙잡고 꽁꽁 얼어붙어 죽어 있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헌신이란 말은 낭만적인 말이 아닙니다. 그 말속에는 우리의 땀이 있고, 우리의 정열이 있으며, 우리의 생명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 앞에 이러한 헌신을 약속하는 세례의식이야말로 얼마나 엄숙한 예식이며, 얼마나 긴장이 되는 의식입니까
그러므로 이 시간은 우리의 마음을 드리고 우리의 정열을 드리고 우리의 생명을 드리는 결단하는 시간입니다. 오직 주님만 위해 살겠노라 고백하며 헌신을 다짐하며 세례 받는 자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은총을 받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고 하셨습니다. (마 10:39)
따라서 세례를 받은 자는 이미 죄에 대하여 죽고, 그리스도와 더불어 의 가운데서 사는 자입니다. 주님과 함께 영원한 새 생명을 얻은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세례 받은 성도의 삶은 이전의 옛 모습과 달라야 합니다.
죄사함 받고,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로서,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 거룩한 예식에 참여한 성도 여러분은 이와 같은 세례의 깊은 의미를 아시고, 주 앞에서 철저하게 변화되고 헌신된 자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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