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례] 세례와 그리스도인
본문
오늘은 “세례와 그리스도인”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개신교의 성례(聖禮) 곧 거룩한 예식은 세례와 성만찬이 있습니다. 반면에 천주교는 일곱 가지 성례를 주장합니다. 개신교가 인정하는 세례와 성만찬을 비롯해서 견진, 고해, 신품, 혼인, 종부 성사가 그것입니다. 그러나 천주교의 주장은 성경의 지지를 받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정하시고 행하라고 명하신 성례는 오직 세례와 성만찬 예식 두 가지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성만찬 예식은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예루살렘의 어느 다락방에서 제자들과 가지신 마지막 만찬 석상에서 제정하신 것입니다. 누가복음 22장 19절로 20절에 이 같이 증언합니다. “19)또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20)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1장 23절 이하에서 이 같이 말씀합니다.
“23)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24)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25)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26)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27)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느니라 28)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찌니 29)주의 몸을 분변치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성찬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을 기념하기 위한 예식입니다. 우리가 나누는 작은 떡 조각은 주님의 살을 의미하고 포도즙은 주님의 피를 의미합니다. 이처럼 우리가 성찬의 의미를 올바로 알고 참여할 때 대속의 은혜를 깊이 깨닫게 됩니다.
그 다음, 세례에 관해서 설명을 드리자면, 세례는 예수님께서 제정하신 것이 아니고 그 이전부터 유대인들 사이에서 행해져 오던 예식을 우리 주님께서 그 뜻을 새롭게 해서 받아들이신 것입니다. 모세의 율법에 의하면 아론의 후손 제사장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는 반드시 물로 손발을 씻었는데(출 30:17-21), 이 같은 제사장들의 의식에서 세례가 비롯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예로부터 유대교에서는 개종한 사람에게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세례의 형식은 몸을 물속에 잠갔다가 나오는 것인데, 이는 물로써 죄와 부정을 씻어낸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물론, 물로써 우리 영혼의 죄와 부정을 씻어낼 수는 없지만 이를 상징하는 신앙 행위로서 가치가 있는 성례입니다. 다시 말하면, 세례는 회개와 죄 사함을 의미하는 성례입니다.
그러나 신약성경을 살펴보면 세례는 회개와 죄 사함의 의미 외에도 신생(新生)의 의미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로마서 6장 3절 이하에 보면, 세례의 뜻을 이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3)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4)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5)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이 말씀에 의하면, 세례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면, 세례 시에 물속에 우리의 몸을 잠그는 것은 그리스도 예수의 죽음에 동참하는 것을 의미하고, 물속에서 나오는 것은 그리스도 예수의 부활에 동참하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례 받는 분들은 세례가 갖고 있는 영적 진리를 이해하고서 이 성례에 참여해야 하는 것이지, 그렇지 않고 단지 몸을 물속에 잠갔다가 나온다면 의미가 없습니다.
지금까지 말씀해 드린 대로, 세례와 성만찬은 기독교의 핵심적인 진리를 내포한 성례이므로 우리는 준비된 마음으로 이 두 성례에 참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세례와 성만찬의 의미를 이해하고 세례 받고 성찬에 참여하는 신자라야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세례는 기독교의 입교식에 해당합니다. 왜냐하면 세례 받는 사람이 교회 앞에서 공개적으로 자기의 신앙을 입술로 고백할 뿐 아니라 물속에 들어갔다 나오는 세례를 통해서 확증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간혹 보면, 주일마다 예배에 참석하지만 아직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확고하게 갖지 못했기 때문에 다음으로 미루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자리에 그런 분들이 있다면, 제가 소개하는 세례서약문답을 들어보시고 “예”라고 대답할 수 있는지 자신의 신앙을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세례 문답에 모두 “예”라고 답할 수 있다면 지체 마시고 이번에 세례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첫째로, 여러분은 천지만물의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를 경외하며, 또한 예수 그리스도가 여호와 하나님의 독생자이심과 우리의 유일하신 구세주 되심을 믿습니까 (답) 예
둘째로, 여러분은 죄와 허물로 죽었던 자들로서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죄인인 것과 그의 진노를 면치 못할 자였으나 이제 여호와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구원 받았음을 믿습니까 (답) 예
셋째로, 여러분은 이제부터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며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입각한 성도의 삶을 살아갈 것을 서약하십니까 (답) 예
넷째로, 여러분은 이번 침례를 받음으로 본 교회의 정회원이 되어 교회의 치리에 순종하며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해 헌신할 것을 서약하십니까 (답) 예
자, 어떻습니까 세례 받기 위한 조건은 까다로운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고 예수님을 나의 주님이요 그리스도로 영접한 사람이면 됩니다. 그러나 이 같은 문답에 대하여 진심으로 “예”라고 대답할 수 없다면 세례를 받아서는 안 됩니다.
그런가하면 여호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기본적인 신앙고백을 하면서도 세례 받기를 미루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세례를 받기에는 아직 부족한 점이 너무 많기 때문에 좀 더 거룩하게 된 이후에 받겠다고 말하는 경우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분들은, 세례에 대하여 무언가 크게 오해를 한 것입니다.
앞에서도 말씀한 대로, 세례는 회개와 죄 사함의 의미를 가진 성례입니다. 만약에 죄가 없는 사람이라면 구태여 세례를 받을 이유가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모습 그대로를 받으시기 원하십니다. 부족한 점이 있으면 부족한 그대로, 죄가 있으면 죄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 앞에 나오는 것이 신앙입니다.
한번은 예수님께서 가버나움 거리를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은 것을 보시고 “나를 좇으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는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해서 세리직을 그만 두고는 예수님을 위해서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열고는 동료 세리들과 평소 거래하던 사람들을 초대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이를 보고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말하기를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고 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들으시고 말씀하시기를 “12)…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13)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마 9:)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거룩한 사람이 된 후에 예수를 믿겠다고 하거나 그런 후에 세례를 받겠다고 하는 것은 주님의 가르침에 맞지 않는 생각입니다. 주님 앞에서 자신을 꾸미려고 하지 마십시오. 주님께서는 우리가 우리의 모습 그대로 그 앞에 나오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그 다음, 교리적인 지식을 내세워서 세례 받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구원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받는 것이지 세례와는 상관이 없는 것’이라고 하면서 세례 받기를 거부합니다. 물론, 세례 그 자체가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아닙니다. 세례가 귀한 것은 우리 마음속에 있는 믿음을 교회 앞에서 공개적으로 표명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자들이 세례를 받아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우리 주님께서 세례를 받으라고 명하셨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8장 18절에서 20절에 보니 “18)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9)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20)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고 증언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세례를 받은 것은 주님께서 세례 받을 것을 명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명령이 우리가 세례 받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주님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여러 가지 이유를 내세워 세례 받기를 거부한다면, 아무리 기독교 교리에 관해서 아는 것이 많더라도 그리스도인이라고 인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단지 기독교 교리에 대한 지식을 가진 사람에 불과하지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세례 요한에게 물세례를 받으신 사실을 아실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마태복음 3장에 보면 이 같이 증언합니다.
“13)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서 요단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신대 14)요한이 말려 가로되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15)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신대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16)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 오실쌔 하늘이 열리고 여호와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17)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죄가 없는 분이므로 회개와 죄 사함을 의미하는 물세례를 받으실 이유가 없으셨지만, 구세주로서 범사에 우리와 같이 되시기 위해서 또한 우리에게 모범을 보이시기 위해서 자청해서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구세주의 신분으로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다니 얼마나 겸손하신 주님이십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명령 앞에 우리의 완고함을 내세우는 죄를 범치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례는 믿은 지 얼마나 지나서 받는 것이 좋을까요 그것은 믿은 즉시로 받는 것이 원칙입니다. 사도행전 2장에 보면, 오순절에 성령 충만 받은 사도들이 예루살렘 거리에 나가 복음을 전했더니 수많은 사람들이 듣고 주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사도들은 그 날에 믿기로 결심한 모든 사람에게 세례를 주었습니다. 성경에 이 같이 증언합니다.
“37)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38)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39)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데 사람 곧 주 우리 여호와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40)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가로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41)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빌립 집사가 사마리아에 가서 복음을 전했더니 수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사도행전 8장 12절로 13절은 그 당시의 일을 이렇게 증언합니다. “12)빌립이 여호와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저희가 믿고 남녀가 다 세례를 받으니 13)시몬도 믿고 세례를 받은 후에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 다니며 그 나타나는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놀라니라”
그런 다음, 빌립은 주의 사자의 지시를 받고 사마리아를 떠나 남쪽으로 내려갔습니다. 그곳은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인적이 드문 광야 길이었습니다. 사마리아에서 할 일이 많은데, 외딴 광야로 가라고 하시니 참 이상한 일이지 않습니까 그러나 빌립은 순종하여 주의 사자가 지시하신 곳으로 갔습니다. 그랬더니 예루살렘 방면에서 병거 한 대가 오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병거에는 에디오피아 사람으로서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큰 권세가 있는 내시가 타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여호와 하나님을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자기 나라로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이 경건한 내시는 병거를 타고 가면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고 있었습니다. 때에 성령께서 빌립에게 이르시기를 “이 병거로 가까이 나아가라”고 하셨습니다.
빌립이 달려가서 글 읽는 것을 듣고 내시에게 말을 건넸습니다. “읽는 것을 깨닫느뇨” 그러자 내시가 대답하기를 “지도하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뇨” 그렇게 말하고는 빌립더러 병거에 올라오라고 청했습니다. 거기서 빌립은 이사야 53장에 나오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설명하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때 내시는 빌립의 전도를 받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였습니다. 길을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렀을 때 내시가 말하기를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세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뇨” 하며, 자기에게 세례 주기를 청했습니다. 이에 병거를 머물고 두 사람이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내시에게 세례를 주었습니다.
사도행전 9장에 보면, 사울이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기 위해 다메섹으로 가다가 영광중에 나타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회심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주님의 영광의 광채로 인해 사울은 눈이 멀었습니다. 다메섹 직가라는 거리에 있는 어느 골방에서 사흘 동안 금식하며 기도하고 있는데, 주님께서 아나니아라는 제자를 사울에게 보내셨습니다. 아나니아가 그 집에 들어가서 사울에게 안수하면서 말하기를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시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고 하니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그 때 사울은 곧바로 일어나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사마리아인이나 에디오피아 내시나 사울이나 다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던 사람이지 않느냐, 그러니 복음을 받으면 즉시로 세례를 받아도 되는 것이다. 전혀 여호와 하나님에 대하여 알지 못하고 우상을 숭배하던 이방인들은 예수를 믿더라도 어느 정도 시일이 지난 후에 세례를 주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도행전 16장에 나오는 간수와 그의 가족에 대하여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에 갔을 때였습니다. 사도 바울과 그 일행이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점하는 귀신 들린 여종 하나를 만났습니다. 이 여종은 점을 쳐서 번 돈을 주인들에게 갖다 바쳤으므로 그들에게 매우 소중한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이 여종이 사도 바울과 그 일행을 따라다니면서 소리 질러 말하기를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여호와 하나님의 종으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그것도 여러 날을 그렇게 했습니다.
언뜻 보면, 그 여종이 복음 전파를 도와 줄 의도로 그런 것처럼 보이지만, 귀신이 그럴 리가 만무합니다. 사도 바울이 견디다 못해 돌이켜 그 귀신에게 이르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귀신이 즉시 나오고 그 여종은 정신이 온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일이 그만 문제가 되었습니다. 여종의 주인들이 보니까 더 이상 돈벌이를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화가 나서 바울과 실라를 잡아 가지고 관청에 끌고 가서 두 사도를 고소했습니다. 이리하여 바울과 실라는 많은 매를 맞고 두 발이 착고에 채인 채 깊은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러나 두 사도는 밤중에 일어나 옥중 죄수들이 다 듣도록 큰 소리로 기도하고 찬미했습니다. 그랬더니 홀연히 큰 지진이 나며 옥문이 다 열리고 죄수들의 결박이 다 끌러졌습니다.
간수가 졸다가 놀라 깨어나 보니 옥문이 다 열렸는지라 죄수들이 다 도망한 줄 알고 검을 빼어 자결하려고 했습니다. 그 때 사도 바울이 크게 외치기를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고 했습니다. 간수가 두려워 떨며 두 사도 앞에 엎드렸습니다.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그 밤에 두 사도는 간수와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주의 말씀을 전했고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습니다. 그 날 간수와 그의 권속이 다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와 같이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믿기만 하면 즉시 세례를 주는 것이 초대교회 당시의 규례였습니다. 그러던 것이 이 같은 전통이 여러 가지 사정에 의해 점점 퇴색하고 오늘에 와서는 일 년에 한두 번 날을 정해서 세례를 베풀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80세 된 한 노인이 세례를 받고 여호와 하나님을 잘 섬겼는데, 2년 후에 임종이 가까웠을 때 누군가가 그에게 나이를 묻자 대답하기를 “나는 겨우 두 살입니다. 왜냐하면 내 인생은 세례를 받고 여호와 하나님을 위해 태어난 때부터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곧 세례받기 이전의 80년 동안의 삶은 죽은 삶이었습니다. ”라고 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깊이 생각해 볼만한 고백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세례 받은 그 날부터 정식 그리스도인이 될 뿐 아니라, 세례 받은 그 날부터 교회의 정회원이 되며, 교회의 회의에 참여할 자격이 부여되고, 직분을 맡을 기본 자격이 주어집니다. 아무리 오랜 세월 교회에 출석했더라도 세례를 받지 않은 사람은 예비 신자에 불과합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세례의 형식에 관해서 말씀해 드리겠습니다.
세례의 형식에는 온 몸을 물에 다 잠그는 침례와 목사가 그릇에 담은 물을 손가락으로 찍어서 세례 받는 사람의 머리에 뿌리는 약식 세례가 있습니다. 어떤 방법으로 세례를 받든지 상관이 없지만, 우리가 알아둘 점은 우리 주님께서 명하신 세례 방법은 침례를 의미한다는 사실입니다. 사도들을 비롯해서 초대교회 당시에도 다 침례를 베풀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오늘에 와서는 형식을 간략하게 하고 본뜻을 살리자는 취지로써 약식 세례를 베푸는 교파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러나 제 생각에는 침례를 베푸는 것은 주님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지 형식주의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병이 들었거나 노쇠하여 물속에 들어갈 수 없는 사람에게는 약식 세례를 주되,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침례를 주는 것이 성경적이라고 봅니다.
침례를 베풀려면 약식세례를 베풀 때보다 여러 가지 번거로운 점이 있지만, 그런 것을 핑계로 삼는다는 것은 주님의 명을 소홀히 여기는 행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우리는 주님의 명을 따라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는 주님께서 명하신 성례인 성만찬과 세례를 결코 소홀하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이 두 성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허락하신 영광스러운 특권입니다.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 천국 백성이 되었다는 증표와 같습니다.
이에 대하여 베드로전서 3장 21절에 보니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여호와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15)…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16)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여기서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이 구원을 받는다”는 말씀처럼 믿음과 세례는 언제나 함께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자기의 믿음을 세례를 통해서 교회 앞에서 입증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세례는 입술로 하는 신앙고백과 마찬가지로 행위로 하는 신앙고백으로서 가치를 지니게 됩니다. 이는 이번에 세례 받으실 분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고 이미 세례 받은 성도들에게도 마찬가지로 해당되는 진리입니다.
아무쪼록 이 설교를 경청하신 성도님 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사는 세례의 의미를 마음에 새기고 세례 받은 성도답게 주님과 연합하는 은혜로운 삶을 영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만찬 예식은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예루살렘의 어느 다락방에서 제자들과 가지신 마지막 만찬 석상에서 제정하신 것입니다. 누가복음 22장 19절로 20절에 이 같이 증언합니다. “19)또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20)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1장 23절 이하에서 이 같이 말씀합니다.
“23)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24)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25)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26)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27)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느니라 28)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찌니 29)주의 몸을 분변치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성찬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을 기념하기 위한 예식입니다. 우리가 나누는 작은 떡 조각은 주님의 살을 의미하고 포도즙은 주님의 피를 의미합니다. 이처럼 우리가 성찬의 의미를 올바로 알고 참여할 때 대속의 은혜를 깊이 깨닫게 됩니다.
그 다음, 세례에 관해서 설명을 드리자면, 세례는 예수님께서 제정하신 것이 아니고 그 이전부터 유대인들 사이에서 행해져 오던 예식을 우리 주님께서 그 뜻을 새롭게 해서 받아들이신 것입니다. 모세의 율법에 의하면 아론의 후손 제사장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는 반드시 물로 손발을 씻었는데(출 30:17-21), 이 같은 제사장들의 의식에서 세례가 비롯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예로부터 유대교에서는 개종한 사람에게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세례의 형식은 몸을 물속에 잠갔다가 나오는 것인데, 이는 물로써 죄와 부정을 씻어낸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물론, 물로써 우리 영혼의 죄와 부정을 씻어낼 수는 없지만 이를 상징하는 신앙 행위로서 가치가 있는 성례입니다. 다시 말하면, 세례는 회개와 죄 사함을 의미하는 성례입니다.
그러나 신약성경을 살펴보면 세례는 회개와 죄 사함의 의미 외에도 신생(新生)의 의미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로마서 6장 3절 이하에 보면, 세례의 뜻을 이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3)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4)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5)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이 말씀에 의하면, 세례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면, 세례 시에 물속에 우리의 몸을 잠그는 것은 그리스도 예수의 죽음에 동참하는 것을 의미하고, 물속에서 나오는 것은 그리스도 예수의 부활에 동참하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례 받는 분들은 세례가 갖고 있는 영적 진리를 이해하고서 이 성례에 참여해야 하는 것이지, 그렇지 않고 단지 몸을 물속에 잠갔다가 나온다면 의미가 없습니다.
지금까지 말씀해 드린 대로, 세례와 성만찬은 기독교의 핵심적인 진리를 내포한 성례이므로 우리는 준비된 마음으로 이 두 성례에 참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세례와 성만찬의 의미를 이해하고 세례 받고 성찬에 참여하는 신자라야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세례는 기독교의 입교식에 해당합니다. 왜냐하면 세례 받는 사람이 교회 앞에서 공개적으로 자기의 신앙을 입술로 고백할 뿐 아니라 물속에 들어갔다 나오는 세례를 통해서 확증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간혹 보면, 주일마다 예배에 참석하지만 아직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확고하게 갖지 못했기 때문에 다음으로 미루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자리에 그런 분들이 있다면, 제가 소개하는 세례서약문답을 들어보시고 “예”라고 대답할 수 있는지 자신의 신앙을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세례 문답에 모두 “예”라고 답할 수 있다면 지체 마시고 이번에 세례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첫째로, 여러분은 천지만물의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를 경외하며, 또한 예수 그리스도가 여호와 하나님의 독생자이심과 우리의 유일하신 구세주 되심을 믿습니까 (답) 예
둘째로, 여러분은 죄와 허물로 죽었던 자들로서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죄인인 것과 그의 진노를 면치 못할 자였으나 이제 여호와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구원 받았음을 믿습니까 (답) 예
셋째로, 여러분은 이제부터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며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입각한 성도의 삶을 살아갈 것을 서약하십니까 (답) 예
넷째로, 여러분은 이번 침례를 받음으로 본 교회의 정회원이 되어 교회의 치리에 순종하며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해 헌신할 것을 서약하십니까 (답) 예
자, 어떻습니까 세례 받기 위한 조건은 까다로운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고 예수님을 나의 주님이요 그리스도로 영접한 사람이면 됩니다. 그러나 이 같은 문답에 대하여 진심으로 “예”라고 대답할 수 없다면 세례를 받아서는 안 됩니다.
그런가하면 여호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기본적인 신앙고백을 하면서도 세례 받기를 미루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세례를 받기에는 아직 부족한 점이 너무 많기 때문에 좀 더 거룩하게 된 이후에 받겠다고 말하는 경우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분들은, 세례에 대하여 무언가 크게 오해를 한 것입니다.
앞에서도 말씀한 대로, 세례는 회개와 죄 사함의 의미를 가진 성례입니다. 만약에 죄가 없는 사람이라면 구태여 세례를 받을 이유가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모습 그대로를 받으시기 원하십니다. 부족한 점이 있으면 부족한 그대로, 죄가 있으면 죄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 앞에 나오는 것이 신앙입니다.
한번은 예수님께서 가버나움 거리를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은 것을 보시고 “나를 좇으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는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해서 세리직을 그만 두고는 예수님을 위해서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열고는 동료 세리들과 평소 거래하던 사람들을 초대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이를 보고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말하기를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고 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들으시고 말씀하시기를 “12)…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13)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마 9:)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거룩한 사람이 된 후에 예수를 믿겠다고 하거나 그런 후에 세례를 받겠다고 하는 것은 주님의 가르침에 맞지 않는 생각입니다. 주님 앞에서 자신을 꾸미려고 하지 마십시오. 주님께서는 우리가 우리의 모습 그대로 그 앞에 나오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그 다음, 교리적인 지식을 내세워서 세례 받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구원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받는 것이지 세례와는 상관이 없는 것’이라고 하면서 세례 받기를 거부합니다. 물론, 세례 그 자체가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아닙니다. 세례가 귀한 것은 우리 마음속에 있는 믿음을 교회 앞에서 공개적으로 표명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자들이 세례를 받아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우리 주님께서 세례를 받으라고 명하셨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8장 18절에서 20절에 보니 “18)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9)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20)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고 증언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세례를 받은 것은 주님께서 세례 받을 것을 명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명령이 우리가 세례 받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주님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여러 가지 이유를 내세워 세례 받기를 거부한다면, 아무리 기독교 교리에 관해서 아는 것이 많더라도 그리스도인이라고 인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단지 기독교 교리에 대한 지식을 가진 사람에 불과하지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세례 요한에게 물세례를 받으신 사실을 아실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마태복음 3장에 보면 이 같이 증언합니다.
“13)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서 요단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신대 14)요한이 말려 가로되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15)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신대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16)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 오실쌔 하늘이 열리고 여호와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17)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죄가 없는 분이므로 회개와 죄 사함을 의미하는 물세례를 받으실 이유가 없으셨지만, 구세주로서 범사에 우리와 같이 되시기 위해서 또한 우리에게 모범을 보이시기 위해서 자청해서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구세주의 신분으로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다니 얼마나 겸손하신 주님이십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명령 앞에 우리의 완고함을 내세우는 죄를 범치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례는 믿은 지 얼마나 지나서 받는 것이 좋을까요 그것은 믿은 즉시로 받는 것이 원칙입니다. 사도행전 2장에 보면, 오순절에 성령 충만 받은 사도들이 예루살렘 거리에 나가 복음을 전했더니 수많은 사람들이 듣고 주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사도들은 그 날에 믿기로 결심한 모든 사람에게 세례를 주었습니다. 성경에 이 같이 증언합니다.
“37)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38)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39)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데 사람 곧 주 우리 여호와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40)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가로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41)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빌립 집사가 사마리아에 가서 복음을 전했더니 수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사도행전 8장 12절로 13절은 그 당시의 일을 이렇게 증언합니다. “12)빌립이 여호와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저희가 믿고 남녀가 다 세례를 받으니 13)시몬도 믿고 세례를 받은 후에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 다니며 그 나타나는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놀라니라”
그런 다음, 빌립은 주의 사자의 지시를 받고 사마리아를 떠나 남쪽으로 내려갔습니다. 그곳은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인적이 드문 광야 길이었습니다. 사마리아에서 할 일이 많은데, 외딴 광야로 가라고 하시니 참 이상한 일이지 않습니까 그러나 빌립은 순종하여 주의 사자가 지시하신 곳으로 갔습니다. 그랬더니 예루살렘 방면에서 병거 한 대가 오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병거에는 에디오피아 사람으로서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큰 권세가 있는 내시가 타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여호와 하나님을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자기 나라로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이 경건한 내시는 병거를 타고 가면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고 있었습니다. 때에 성령께서 빌립에게 이르시기를 “이 병거로 가까이 나아가라”고 하셨습니다.
빌립이 달려가서 글 읽는 것을 듣고 내시에게 말을 건넸습니다. “읽는 것을 깨닫느뇨” 그러자 내시가 대답하기를 “지도하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뇨” 그렇게 말하고는 빌립더러 병거에 올라오라고 청했습니다. 거기서 빌립은 이사야 53장에 나오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설명하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때 내시는 빌립의 전도를 받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였습니다. 길을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렀을 때 내시가 말하기를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세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뇨” 하며, 자기에게 세례 주기를 청했습니다. 이에 병거를 머물고 두 사람이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내시에게 세례를 주었습니다.
사도행전 9장에 보면, 사울이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기 위해 다메섹으로 가다가 영광중에 나타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회심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주님의 영광의 광채로 인해 사울은 눈이 멀었습니다. 다메섹 직가라는 거리에 있는 어느 골방에서 사흘 동안 금식하며 기도하고 있는데, 주님께서 아나니아라는 제자를 사울에게 보내셨습니다. 아나니아가 그 집에 들어가서 사울에게 안수하면서 말하기를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시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고 하니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그 때 사울은 곧바로 일어나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사마리아인이나 에디오피아 내시나 사울이나 다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던 사람이지 않느냐, 그러니 복음을 받으면 즉시로 세례를 받아도 되는 것이다. 전혀 여호와 하나님에 대하여 알지 못하고 우상을 숭배하던 이방인들은 예수를 믿더라도 어느 정도 시일이 지난 후에 세례를 주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도행전 16장에 나오는 간수와 그의 가족에 대하여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에 갔을 때였습니다. 사도 바울과 그 일행이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점하는 귀신 들린 여종 하나를 만났습니다. 이 여종은 점을 쳐서 번 돈을 주인들에게 갖다 바쳤으므로 그들에게 매우 소중한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이 여종이 사도 바울과 그 일행을 따라다니면서 소리 질러 말하기를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여호와 하나님의 종으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그것도 여러 날을 그렇게 했습니다.
언뜻 보면, 그 여종이 복음 전파를 도와 줄 의도로 그런 것처럼 보이지만, 귀신이 그럴 리가 만무합니다. 사도 바울이 견디다 못해 돌이켜 그 귀신에게 이르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귀신이 즉시 나오고 그 여종은 정신이 온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일이 그만 문제가 되었습니다. 여종의 주인들이 보니까 더 이상 돈벌이를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화가 나서 바울과 실라를 잡아 가지고 관청에 끌고 가서 두 사도를 고소했습니다. 이리하여 바울과 실라는 많은 매를 맞고 두 발이 착고에 채인 채 깊은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러나 두 사도는 밤중에 일어나 옥중 죄수들이 다 듣도록 큰 소리로 기도하고 찬미했습니다. 그랬더니 홀연히 큰 지진이 나며 옥문이 다 열리고 죄수들의 결박이 다 끌러졌습니다.
간수가 졸다가 놀라 깨어나 보니 옥문이 다 열렸는지라 죄수들이 다 도망한 줄 알고 검을 빼어 자결하려고 했습니다. 그 때 사도 바울이 크게 외치기를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고 했습니다. 간수가 두려워 떨며 두 사도 앞에 엎드렸습니다.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그 밤에 두 사도는 간수와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주의 말씀을 전했고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습니다. 그 날 간수와 그의 권속이 다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와 같이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믿기만 하면 즉시 세례를 주는 것이 초대교회 당시의 규례였습니다. 그러던 것이 이 같은 전통이 여러 가지 사정에 의해 점점 퇴색하고 오늘에 와서는 일 년에 한두 번 날을 정해서 세례를 베풀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80세 된 한 노인이 세례를 받고 여호와 하나님을 잘 섬겼는데, 2년 후에 임종이 가까웠을 때 누군가가 그에게 나이를 묻자 대답하기를 “나는 겨우 두 살입니다. 왜냐하면 내 인생은 세례를 받고 여호와 하나님을 위해 태어난 때부터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곧 세례받기 이전의 80년 동안의 삶은 죽은 삶이었습니다. ”라고 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깊이 생각해 볼만한 고백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세례 받은 그 날부터 정식 그리스도인이 될 뿐 아니라, 세례 받은 그 날부터 교회의 정회원이 되며, 교회의 회의에 참여할 자격이 부여되고, 직분을 맡을 기본 자격이 주어집니다. 아무리 오랜 세월 교회에 출석했더라도 세례를 받지 않은 사람은 예비 신자에 불과합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세례의 형식에 관해서 말씀해 드리겠습니다.
세례의 형식에는 온 몸을 물에 다 잠그는 침례와 목사가 그릇에 담은 물을 손가락으로 찍어서 세례 받는 사람의 머리에 뿌리는 약식 세례가 있습니다. 어떤 방법으로 세례를 받든지 상관이 없지만, 우리가 알아둘 점은 우리 주님께서 명하신 세례 방법은 침례를 의미한다는 사실입니다. 사도들을 비롯해서 초대교회 당시에도 다 침례를 베풀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오늘에 와서는 형식을 간략하게 하고 본뜻을 살리자는 취지로써 약식 세례를 베푸는 교파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러나 제 생각에는 침례를 베푸는 것은 주님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지 형식주의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병이 들었거나 노쇠하여 물속에 들어갈 수 없는 사람에게는 약식 세례를 주되,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침례를 주는 것이 성경적이라고 봅니다.
침례를 베풀려면 약식세례를 베풀 때보다 여러 가지 번거로운 점이 있지만, 그런 것을 핑계로 삼는다는 것은 주님의 명을 소홀히 여기는 행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우리는 주님의 명을 따라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는 주님께서 명하신 성례인 성만찬과 세례를 결코 소홀하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이 두 성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허락하신 영광스러운 특권입니다.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 천국 백성이 되었다는 증표와 같습니다.
이에 대하여 베드로전서 3장 21절에 보니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여호와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15)…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16)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여기서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이 구원을 받는다”는 말씀처럼 믿음과 세례는 언제나 함께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자기의 믿음을 세례를 통해서 교회 앞에서 입증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세례는 입술로 하는 신앙고백과 마찬가지로 행위로 하는 신앙고백으로서 가치를 지니게 됩니다. 이는 이번에 세례 받으실 분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고 이미 세례 받은 성도들에게도 마찬가지로 해당되는 진리입니다.
아무쪼록 이 설교를 경청하신 성도님 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사는 세례의 의미를 마음에 새기고 세례 받은 성도답게 주님과 연합하는 은혜로운 삶을 영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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