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 동박박사들의 성탄 축하
본문
구주 성탄절을 맞이하여 여러분과 가정에 여호와 하나님의 평화가 넘치시기를 기원합니다.
오늘 성탄절은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신 날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세상에 오신 날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람의 형상을 입으시고 세상 죄를 구속하시고자 탄생하신 날입니다. 그러므로 온 인류가 함께 기뻐해야 할 날이요, 화평을 누려야 할 날입니다. 2천년 전의 그리스도의 탄생은 인간에게 최대의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예수 탄생일은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 날입니다.
‘그리스도(Christ)’ 란 말은 희랍어로서 ‘메시야’ 와 같은 뜻으로 ‘기름 부음을 받은 자’ 란 뜻입니다. ‘마스(mas)’ 는 ‘미사’ 입니다. ‘미사’ 는 ‘예배’ 를 말합니다. 성탄은 평화의 왕이요 대제사장이시요 참 선지자이신 예수님께 예배드리는 날입니다.
본문은 멀리 동방에 있던 박사들이 위험한 산을 넘고 강을 건너서 아기 예수님이 계신 곳을 찾아온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동방박사들은 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아기 예수님을 찾아 왔을까요
본문은 동방박사들의 여행의 목적이 주님께 경배하기 위함임을 말씀합니다. 우리는 동방박사들을 통해서 어떻게 예수께 경배해야 하는가를 배울 수 있습니다.
1. 그들은 정성을 드렸습니다.
본문 2절에 보면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고 했습니다. 그들은 메시야를 찾았습니다.
동방박사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먼 길을 찾아왔습니다. 여러분, 예배란 하나의 종교의식이 아니고 생명을 바쳐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는 결단이요 헌신입니다. 동방 박사들은 예언대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인류의 메시야를 경배하기 위해 생명을 바치고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먼 길 베들레헴까지 왔습니다. 그들의 목적은 ‘경배’ 하기 위해서 입니다.
동방박사들이 별을 따라 그 먼 길을 올 때 그들은 죽을지도 모르고 중간에 도적 떼를 만나서 보물을 다 빼앗길지도 모릅니다. 더구나 그들은 그들의 목적지, 곧 예수가 태어난 곳이 어디인지도 모릅니다. 무작정 별 하나를 보고 생명을 다해 길을 찾아 떠났습니다. 그래서 만난 분이 예수였습니다.
여러분, 오늘 어떤 태도로 교회에 나오셨습니까 혹시 성가대 찬양을 구경하러 온 사람은 없습니까 혹시 친구 만나러 또는 자기 과시하려고 온 사람은 없습니까 그리고 설교 한번 들어보기 위해서 나오신 분은 안 계십니까 이런 분의 마음 속에 어떻게 여호와 하나님이 만나지겠습니까
“아기를 보고”동방박사들은 예수를 만났습니다. 그리스도를 한번 보면 인생이 달라집니다. 우리 중에 예수를 만나지 못한 분이 있습니까
생명을 걸고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보려고 애써 보세요. 어떤 희생의 대가를 치르더라도 나는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고야 말겠다고 결심해 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이 만나집니다. 왜 그 많은 세월을 사는 동안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습니까 강렬한 욕구, 정성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2. 그들은 예물을 드렸습니다.
본문 11절에 보면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 모친 마리아의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배의 태도에 대해서 배울 수 있습니다. 참된 예배란 정성어린 예물을 드림으로써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성경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시 51:17)고 했습니다. 구약에서는 타락한 제물에 대해, 정성 없는 제물, 마음에 없는 안식일에 대해 여호와 하나님이 진노하시는 모습이 나옵니다(사 1:1-17).
동방박사들은 그 먼 길을 생명을 바쳐서 찾아 왔을 뿐만 아니라 보배합 속에 그들이 가장 귀히 여기는 예물을 준비하고 예수께 나왔습니다. 그들이 준비한 예물은 황금과 유향과 몰약입니다. 황금은 예수님의 왕되심을 표현해 주기 위한 예물이요, 유향은 예수님의 신성을 표현해 주기 위한 예물이요, 몰약은 사람을 장사할 때 쓰는 것으로서 예수님의 인성을 보여주는 예물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예배가 능력이 없고 감격과 기쁨이 없는 것은 진정한 예물이 없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예물은 오늘날 헌금이라는 형태로 나타납니다. 헌금을 드릴 때 참으로 많이 내느냐 적게 내느냐가 문제가 아닙니다. 그 헌금에 눈물이 있느냐가 문제입니다. 여러분의 헌금에 기도가 있고 감격이 있고 기쁨이 있습니까 아니면 등록금 내는 식으로 그렇게 헌금 하십니까 예물이 있는 곳에 진정한 예배가 있었던 것을 우리는 동방박사들을 통해서 보게 됩니다. 헌금하는 것, 봉사하는 것, 모임에 참여하는 것, 교회 일 열심히 하는 것 등 겉모습을 보고는 아무도 무엇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도 동방박사들처럼 우리의 가장 귀한 것을 예물로 드립시다.
3. 그들은 순종을 했습니다.
본문 12절에 보면 “꿈에 해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심을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니라. ”고 하였습니다.
동방박사들은 별이 인도하는 대로 따라서 예수께서 탄생한 그 장소까지 왔습니다. 그들은 예수께 경배를 하고 찬양을 하고 여호와 하나님이 인간에게 오신 이 사실 앞에 무릎을 꿇고 보배합을 열어서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렸습니다. 이 기쁨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동방박사의 것입니다. 참된 예배란 드리는 자의 것이지 구경하는 자의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만난자만이 환호성을 지릅니다. 누가 무어라 해도 펄쩍펄쩍 뛰면서 나는 여호와 하나님을 만났다고 감격의 눈물을 흘립니다. 내 죄는 용서받았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예배입니다. 그러나 교회를 나와도 여호와 하나님을 만난 경험이 없기 때문에 세상 모든 일이 다 시시하고 교회 일도 그저 그렇고 그런 것입니다. 그렇게 평생 동안 예배드리는데 길들여진 사람들입니다.
동방박사들을 통해서 발견하는 마지막 예배의 조건은 순종입니다. 헤롯왕이 그들에게 경배를 마치고 나서 자기에게 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꿈에 한 지시가 내려졌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대로 했습니다. 이는 목숨걸고 하는 행동이었습니다. 왕명을 거역하면 생명의 위험이 있는 것은 뻔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헤롯보다 높은 전 인류를 지배하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고 하셨기 때문에 그는 헤롯의 명령을 포기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었습니다. 순종은 제사보다 낫습니다. 참된 예배는 순종으로 표현되고 순종으로 완성됩니다.
오늘은 성탄절입니다. 우리는 시간과 물질과 마음의 정성을 드려 축하해야 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축하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오늘 성탄절은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신 날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세상에 오신 날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람의 형상을 입으시고 세상 죄를 구속하시고자 탄생하신 날입니다. 그러므로 온 인류가 함께 기뻐해야 할 날이요, 화평을 누려야 할 날입니다. 2천년 전의 그리스도의 탄생은 인간에게 최대의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예수 탄생일은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 날입니다.
‘그리스도(Christ)’ 란 말은 희랍어로서 ‘메시야’ 와 같은 뜻으로 ‘기름 부음을 받은 자’ 란 뜻입니다. ‘마스(mas)’ 는 ‘미사’ 입니다. ‘미사’ 는 ‘예배’ 를 말합니다. 성탄은 평화의 왕이요 대제사장이시요 참 선지자이신 예수님께 예배드리는 날입니다.
본문은 멀리 동방에 있던 박사들이 위험한 산을 넘고 강을 건너서 아기 예수님이 계신 곳을 찾아온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동방박사들은 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아기 예수님을 찾아 왔을까요
본문은 동방박사들의 여행의 목적이 주님께 경배하기 위함임을 말씀합니다. 우리는 동방박사들을 통해서 어떻게 예수께 경배해야 하는가를 배울 수 있습니다.
1. 그들은 정성을 드렸습니다.
본문 2절에 보면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고 했습니다. 그들은 메시야를 찾았습니다.
동방박사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먼 길을 찾아왔습니다. 여러분, 예배란 하나의 종교의식이 아니고 생명을 바쳐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는 결단이요 헌신입니다. 동방 박사들은 예언대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인류의 메시야를 경배하기 위해 생명을 바치고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먼 길 베들레헴까지 왔습니다. 그들의 목적은 ‘경배’ 하기 위해서 입니다.
동방박사들이 별을 따라 그 먼 길을 올 때 그들은 죽을지도 모르고 중간에 도적 떼를 만나서 보물을 다 빼앗길지도 모릅니다. 더구나 그들은 그들의 목적지, 곧 예수가 태어난 곳이 어디인지도 모릅니다. 무작정 별 하나를 보고 생명을 다해 길을 찾아 떠났습니다. 그래서 만난 분이 예수였습니다.
여러분, 오늘 어떤 태도로 교회에 나오셨습니까 혹시 성가대 찬양을 구경하러 온 사람은 없습니까 혹시 친구 만나러 또는 자기 과시하려고 온 사람은 없습니까 그리고 설교 한번 들어보기 위해서 나오신 분은 안 계십니까 이런 분의 마음 속에 어떻게 여호와 하나님이 만나지겠습니까
“아기를 보고”동방박사들은 예수를 만났습니다. 그리스도를 한번 보면 인생이 달라집니다. 우리 중에 예수를 만나지 못한 분이 있습니까
생명을 걸고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보려고 애써 보세요. 어떤 희생의 대가를 치르더라도 나는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고야 말겠다고 결심해 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이 만나집니다. 왜 그 많은 세월을 사는 동안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습니까 강렬한 욕구, 정성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2. 그들은 예물을 드렸습니다.
본문 11절에 보면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 모친 마리아의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배의 태도에 대해서 배울 수 있습니다. 참된 예배란 정성어린 예물을 드림으로써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성경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시 51:17)고 했습니다. 구약에서는 타락한 제물에 대해, 정성 없는 제물, 마음에 없는 안식일에 대해 여호와 하나님이 진노하시는 모습이 나옵니다(사 1:1-17).
동방박사들은 그 먼 길을 생명을 바쳐서 찾아 왔을 뿐만 아니라 보배합 속에 그들이 가장 귀히 여기는 예물을 준비하고 예수께 나왔습니다. 그들이 준비한 예물은 황금과 유향과 몰약입니다. 황금은 예수님의 왕되심을 표현해 주기 위한 예물이요, 유향은 예수님의 신성을 표현해 주기 위한 예물이요, 몰약은 사람을 장사할 때 쓰는 것으로서 예수님의 인성을 보여주는 예물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예배가 능력이 없고 감격과 기쁨이 없는 것은 진정한 예물이 없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예물은 오늘날 헌금이라는 형태로 나타납니다. 헌금을 드릴 때 참으로 많이 내느냐 적게 내느냐가 문제가 아닙니다. 그 헌금에 눈물이 있느냐가 문제입니다. 여러분의 헌금에 기도가 있고 감격이 있고 기쁨이 있습니까 아니면 등록금 내는 식으로 그렇게 헌금 하십니까 예물이 있는 곳에 진정한 예배가 있었던 것을 우리는 동방박사들을 통해서 보게 됩니다. 헌금하는 것, 봉사하는 것, 모임에 참여하는 것, 교회 일 열심히 하는 것 등 겉모습을 보고는 아무도 무엇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도 동방박사들처럼 우리의 가장 귀한 것을 예물로 드립시다.
3. 그들은 순종을 했습니다.
본문 12절에 보면 “꿈에 해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심을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니라. ”고 하였습니다.
동방박사들은 별이 인도하는 대로 따라서 예수께서 탄생한 그 장소까지 왔습니다. 그들은 예수께 경배를 하고 찬양을 하고 여호와 하나님이 인간에게 오신 이 사실 앞에 무릎을 꿇고 보배합을 열어서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렸습니다. 이 기쁨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동방박사의 것입니다. 참된 예배란 드리는 자의 것이지 구경하는 자의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만난자만이 환호성을 지릅니다. 누가 무어라 해도 펄쩍펄쩍 뛰면서 나는 여호와 하나님을 만났다고 감격의 눈물을 흘립니다. 내 죄는 용서받았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예배입니다. 그러나 교회를 나와도 여호와 하나님을 만난 경험이 없기 때문에 세상 모든 일이 다 시시하고 교회 일도 그저 그렇고 그런 것입니다. 그렇게 평생 동안 예배드리는데 길들여진 사람들입니다.
동방박사들을 통해서 발견하는 마지막 예배의 조건은 순종입니다. 헤롯왕이 그들에게 경배를 마치고 나서 자기에게 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꿈에 한 지시가 내려졌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대로 했습니다. 이는 목숨걸고 하는 행동이었습니다. 왕명을 거역하면 생명의 위험이 있는 것은 뻔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헤롯보다 높은 전 인류를 지배하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고 하셨기 때문에 그는 헤롯의 명령을 포기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었습니다. 순종은 제사보다 낫습니다. 참된 예배는 순종으로 표현되고 순종으로 완성됩니다.
오늘은 성탄절입니다. 우리는 시간과 물질과 마음의 정성을 드려 축하해야 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축하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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