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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례] 어린양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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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사느냐 도 중요한 문제이지만 사는 것만큼 중요한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값있게 죽느냐 하는 문제일 것입니다. 어느 자리에서든 우리가 썩은 밀알이 되어 죽으면 더 많은 열매를 맺게 되지만, 썩은 밀알이 되지 못하고 가라지가 되면 살아 있는 다른 생명들을 무참하게 해치는 역할을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번 주 중에 (2001. 9. 19일자) 한겨레 신문에는 자신이 스스로 밀알이 된 아주 빛나는 죽음을 맞이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실려 있었습니다. 지난 9월 11일 미국의 뉴어크 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샌프란시스코를 향해 비행하고 있었습니다. 공항을 떠난 지 1시간 쯤 되었을 때에 갑자가 3명의 중동인들이 좌석에서 벌떡 일어나 칼을 휘두르며 승객들을 비행기의 뒤편으로 몰아 넣었습니다. 테러범 중에 1명은 자신의 가슴에 매어 놓은 붉은 색 상자를 내어 보이며 움직이면 터뜨리겠다하고 소리를 지르며 비행기 안의 모든 승객들을 협박했습니다. 비행기는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 상공에서 갑자기 기수를 돌려 워싱턴으로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몰려 있던 승객들 중의 일부는 몰래 전화를 걸기 시작했습니다. 사업가인 토드 비머(32)라는 사람이 제일 먼저 교환원과 연결되었습니다. 그는 교환원으로부터 조금 전에 세계 무역 센터와 국방부에 비행기가 돌진해서 충돌했으며, 비행기에 탑승한 승객은 물론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상황을 짐작한 비머는 곧 바로 옆 사람들과 속삭이며 대책을 논의했습니다. 무언가 세 사람이 행동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잇따라 옆에 있던 제러미 글릭(31)이라는 사람은 집으로 전화를 걸어서 부인에게 말합니다. 여보! 지금 우리는 테러들에 의해서 납치가 되었소. 그런데 우리가 그냥 앉아서 더 많은 사람의 죽음을 불러들일 수는 없을 것 같소. 지금 우리 곁에 있는 세 사람 이서 무언가 행동을 하기로 했소. 나는 변함없이 당신을 사랑하오. 하나 뿐인 딸을 잘 키워 주시오. 부탁하오. 여보 하는 이야기를 남겼습니다. 옆에 있던 또 다른 승객인 토머스 버닛(38)도 부인에게 전화를 걸어서 여보. 우리 셋은 모두 다 죽을 겁니다. 그러나 우리 셋은 무언가 하기로 했소. 당신을 사랑하오. 남아 있는 가족들을 부탁해요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교환원과 통화 중이던 토드는 나를 위해서 기도해 달라고 교환원에게 말하고는 성경 시편 23편을 같이 암송하기 시작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 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도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시편 말씀을 암송한 토드는 전화기를 끄지 않은 채로 그대로 두고 자! 준비됐지. 그럼 출발하는 소리를 남겼습니다. 그럼 출발 하는 소리는 토드가 평소에 가족들을 데리고 외출할 때 입버릇처럼 쓰던 말이었습니다. 토드는 이 말을 남기고 저 하늘나라로 가는 영원한 외출을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는 비행기 안에서 비명과 고함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그리고 그 비행기는 플로리다 주의 어느 숲 속에 시속 750KM의 속력으로 곤두박질 치고 말았습니다.
만약에 비머와 글릿과 버닛. 이 세 사람의 용기 있는 죽음이 아니었다면 이 비행기는 세계무역센타에 부딪친 비행기처럼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빼앗아 갔을 것입니다. 이들 세 사람은 자신의 생명을 희생시킴으로 수없이 많은 또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살렸습니다. 이들의 죽음은 자신을 희생함으로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살린 희생정신을 보여준 것입니다. 이들의 죽음은 비행기를 탈취해서 승객을 실은 채로 세계 무역 센터에 몸을 던진 테러범들의 죽음과는 달리 정말로 자신의 생명을 희생시킴으로 더 많은 생명을 구한 희생적인 위대한 죽음이었습니다. 세 사람은 다른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희생 양의 길을 스스로 걸었던 것입니다.
성경은 구약 시대부터 희생 양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7월 10일인 대 속죄일이 돌아오게 되면 아사셀 양을 선택해서 사막으로 이 양을 보내게 됩니다. 양이나 염소를 선택해서 그에게 자그마한 통이 달린 목걸이를 목에 겁니다. 그 목걸이에는 수없이 많은 조그만 통이 달려 있고, 그 통 속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저지른 죄악과 범죄의 죄목을 적어 놓은 아주 조그만 종이가 들어 있습니다. 그 목걸이를 짊어지고 아사셀 양은 사막으로 쫓겨납니다. 사막에는 아사셀이란 귀신이 살고 있어서 희생양을 잡아먹게 되는데 그때 비로소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은 모든 죄가 사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막으로 쫓겨난 아사셀 양은 낮에는 햇볕이 내리 쪼이는 사막을 헤매다가, 밤이 되면 기온이 급격하게 떨어지는 사막의 추위에 떨다가 어느 이름 모를 사막의 골짜기에서 최후의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사셀 양이란 이스라엘의 백성의 죄를 위해서 무거운 죄의 짐을 짊어진 채로, 사막에 나가, 자신을 희생하는 양을 말하는 것입니다.
요한은 예수님을 두고 말합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여호와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여기에서 어리다는 말은 죄가 없다는 말입니다.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는 어린아이들을 보면 그 눈이 얼마나 순수한지 죄가 없는 것으로 보이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죄가 없다는 말입니다. 죄가 많은 우리들의 죄는 죄가 없는 어린양의 피를 통해서만 씻음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양이란 무엇을 의미합니까 희생 제물이라는 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짊어지고 사막으로 향하는 아사셀 양처럼 모든 인류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으로 향하는 희생양 예수님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예수님을 두고 마치 세상의 온갖 질병과 고난과 죄를 짊어지시고 사막으로 나가는 아사셀 양처럼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사야는 일찍이 세상에 오는 메시야의 모습을 마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과 같다고 했습니다. 자신의 털이 다 깍이도록 조금도 반항하지 않는 양의 모습과 같다는 것입니다. 요한은 예수님을 인류의 죄악을 담당하신 희생 양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여호와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합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읽을 때면 꼭 생각나는 노래가 있습니다. 김두완 씨의 어린양을 보라는 부활절 칸타타에 나오는 한 소절 찬양입니다.
세상 죄 지고 가는 어린양을 보라. 세상 죄 지고 가는 어린양을 보라
채찍에 맞아 쓰러지네. 쓰러지네. 쓰러지네 채찍에 맞아 쓰러지니 또 끌려가네
나는 이 찬양을 드리면서 많은 눈물을 흘린 적이 있습니다.
주님은 내 죄를 지시고 내대신 죽으셨는데! 나는 왜 오늘도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주님은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 죽으셨는데 왜 우리가 이렇게 고통 속에 살아야 할까 주님은 우리 인류의 죄악을 담당하고 죽으셨는데도 인류는 왜 전쟁을 하고, 살인을 하고,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살아야만 하는 걸까 이 찬양을 부를 때마다 주님 앞에 죄송스러울 따름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지금 바로 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여호와 하나님의 어린양을 바라보아야 할 때입니다. 자신의 죽음과 희생을 통해 인류를 죄로부터 살려주신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주님께서 나를 위해서 인류를 위해서 달려 돌아가신 십자가의 희생 정신을 배워야 할 때입니다. 십자가는 자기 희생을 말합니다. 나를 죽이지 않고는 남을 살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나는 매일 매일 죽는다고 했습니다. 남을 살리려면 내 못된 성질이 죽어야 합니다. 남을 살리려면 내 물질이 주님 앞에 바쳐져야 합니다. 남을 살리려면 내 시간이 주님 앞에 드려져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친히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에게 이 희생의 정신을 몸소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 복음 6: 35절에서 나는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자신을 희생의 떡으로 주신 것입니다. 생명의 떡으로 주신 것입니다. 주님은 십자가 위에서 자신의 살과 피를 내어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살과 피를 먹음으로 내가 살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나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신 것입니다. 주님은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하고 말씀하시면서 우리의 죄를 위한 희생양으로 십자가 위에서 자신을 드린 것입니다.
최근 베스트 셀러 가운데 가시고기라는 책이 있습니다. 가시고기라는 민물고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민물고기는 엄마 가시고기가 알을 낳은 후 어디론가 달아나 버리면, 아빠 가시고기가 혼자 남아서 알을 돌봅니다. 홀로 남은 아빠 가시고기는 알을 먹으려고 달려드는 다른 물고기들과 목숨을 걸고 싸웁니다. 먹지도 않고, 잠을 자지도 않으면서 열심히 알을 보호합니다. 이윽고 알이 깨어납니다. 모든 알에서 새끼들이 부화하여 제 갈 길로 다 가고 나면, 홀로 남은 아빠 가시고기는 돌 틈에 머리를 처박고 죽어 버린다고 합니다.
이 소설은 백혈병에 걸린 열 살 짜리 정다움이라는 아들과 가난한 남편을 버리고 떠난 아내를 원망하지 않고 사는 어느 아빠의 독백을 통해, 부자 간에 뗄 수 없는 절절한 사랑을 그려 가고 있습니다. 이 아빠는 자신보다 더 소중한 아들을 살리겠다고 병든 아들을 2년 동안 지극 정성으로 돌봅니다. 전 재산을 팝니다. 자신의 자존심과 양심마저 팔아 병원비를 마련합니다. 마지막에는 골수이식을 하는 아들의 수술비를 마련하려고 불법 인줄 뻔히 알면서도 자신의 한쪽 눈마저 팔아 버립니다. 아빠로서 할 수 있는 마지막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눈을 뽑기 위해 종합 검진을 하는 가운데 아빠는 자신의 몸에 커다란 간암 덩어리가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아빠는 교회에 나가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고통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고통 속에 있는 아들을 살려 달라고 여호와 하나님 앞에 애원합니다. 아들 대신 자신의 목숨을 가져가 달라고 몸부림합니다. 아이는 다행히 골수이식이 잘되어 건강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은 간암 말기로 죽어 갑니다. 아빠는 목숨을 건진 아들을 엄마에게로 떠나 보내고, 이 가시고기 아빠는 아들과 40일을 함께 보냈던 산골 마을로 들어가 조용히 죽음을 맞습니다.
미물들의 세계 가운데에도 위대한 희생이 있다는 것입니다. 새끼들을 살리고 자신은 죽음을 맞이하는 아빠 가시고기처럼 우리는 어느 때보다도 더 희생정신이 필요한 시기를 살고 있습니다. 나는 살고 너는 죽어야 한다는 생각이 만연한 세상이 아닙니까 더 나아가서는 나도 죽고 너도 죽자는 생각이 판을 치는 세상이 아닙니까 그러나 십자가의 정신은 내가 죽음으로, 내가 희생 제물이 됨으로, 너와 우리를 살리자는 정신이 곧 예수의 십자가의 정신인 것입니다.
오늘 이 시대는 누가 살립니까 십자가의 희생 정신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세상을 살립니다. 오늘 이 시대의 교회는 누가 지킵니까 매일 매일 십자가만을 바라보면서 그 십자가 안에서 희생 정신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이 교회를 살립니다. 누가 여러분의 가정을 지켜 줍니까 내 가족의 고통의 십자가를 끌어안으면서 마지막까지 가시고기가 가지고 있는 희생정신으로 사는 사람이 우리의 가정을 지키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라고 했습니다. 관제로 드린다고 하는 말은 무엇을 말합니까 희생 제물로 드린다는 말입니다. 바울은 자신을 희생제물로 드린다고 고백합니다. 희생 제물이 된다 함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제단 위에 자신의 피를 뿌린다는 말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번제단 위에 자신의 살을 태운다는 말입니다.
바울은 여호와 하나님의 선교의 제단 위에 자신을 바쳤습니다. 모리아 산에서 자신의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친 아브라함의 심정으로 자신의 전 존재를 선교의 제단 위에 희생제물로 드린 것입니다. 바울의 희생 위에 오늘의 교회는 우뚝 서 있습니다. 바울이 자신을 여호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관제의 제물로 드렸기 때문에 오늘의 교회는 세계 도처에 우뚝우뚝 서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도 아사셀 양처럼 자신을 희생제물로 드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들도 가시고기처럼 남을 살리기 위해서 자신을 희생할 줄 아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여호와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님처럼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음으로 남을 살리고, 교회를 살리고, 민족과 인류를 살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성만찬에 참여함으로 자신은 죽고 남을 살리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오늘 주님의 살과 피에 참여함으로 자신은 죽고, 교회를 살리는 위대한 희생정신이 여러분의 마음에 꽃피우기를 바랍니다. 오늘 주님의 참된 떡과 음료를 마심으로 내 마음 속에 남아 있는 모든 죄의 찌꺼기가 씻겨지는 놀라운 은혜가 여러분에게 함께 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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