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례] 주의 떡과 잔
본문
성전 자리를 가득히 메꾼 사랑하는 성도님들 모두 모두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크신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은 우리 교회가 지키는 성례주일이며, 또한 고난주일 이기도 합니다. 오늘부터 한 주간동안 우리는 고난주간으로 경건되이 지켜야 될 것입니다. 기독교 성례에는 두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성찬이요, 또 하나는 세례입니다. 우리교회 세례예식은 이미 어젯밤에 거행하였고 지금은 성찬예식을 거행하려 합니다.
성찬예식 그 유례는 예수님에게 있는데, 그것은 때는 목요일, 장소는 예루살렘에 있는 마가의 다락방에서 조촐하게 준비된 식탁 위였습니다. 예수님의 열 두 제자가 둘러앉아서 짤막한 감사 기도를 드린 뒤에 예수께서 준비하신 떡과 잔을 나누어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주시고 그들로 먹고 마시도록 하였습니다. 그 날 그 만찬이 바로 오늘 저희가 지키는 성찬예식의 출발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본문 23절에서 말씀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것은 주께 받은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찬예식은 예수님께서 제정하신 예식이며 또한 우리에게“이것을 행하라. ”고 당부하신 거룩한 예식입니다. 그러나 주의 떡과 잔을 먹고 마실 때마다 유념해야 될 것이 있습니다.
첫째로, 주의 죽으심을 기념하라.
예수님께서 성만찬을 행하실 때 친히 말씀하시기를 “이것을 행할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예수님의 무엇을 기념하라는 것일까요 본문 26절에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성찬 예식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것을 기념하는 예식이라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십자가 종교이며 그렇기 때문에 십자가가 없는 기독교는 참 기독교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셨을까요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떡을 떼어 주시면서 24절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나 같은 죄인을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예수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질 때 세상 죄를 지시고 고초 당하셨네 예수여 예수여 나의 죄 위하여 보배 피를 흘리니 죄인 받으소서-♪ 우리는 또한 기념할 때에 예수님의 부활과 재림도 함께 기념해야 될 것입니다. 본문 26절을 보면“오실 때까지라. "고 하신 말씀은 바로 예수님의 재림을 뜻하는 말입니다. 우리의 기쁨과 소망, 그리고 생명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내가 사니 너희도 살리라. ”바로 부활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곧 나의 부활이며 여기에 우리의 기쁨이 있고, 우리의 소망이 있으며 우리의 생명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할때 우리 주님께선 “내가 다시 오마. ”하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성찬예식에 참여하신 사랑하는 성도여! 날마다 기쁨으로 소망을 품고 사십시다! 날마다 예수 안에서 날마다 새날처럼 새롭게 출발하십시다!
둘째로, 자기를 살피라.
본문 28절에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찌니. "라고 하였듯이 사람은 살피는 존재입니다. 보통 식탁에 앉아 음식을 먹는 시간이라면 그냥 맛있게 먹으면 되지 자기를 살필 필요가 있겠습니까 밥을 먹는 끼니때마다 나는 과연 이 밥을 먹기에 합당한 존재냐 아니냐 이렇게 자기를 살필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또한 차 한잔을 마시면서도 나는 이 차를 먹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냐 없는 사람이냐 이렇게 자기를 살필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거룩하고 신령한 성찬예식에 참여하여 떡을 먹고 잔을 마시려고 할 때에 우리 믿음의 성도들은 반드시 자기를 살피지 아니하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죄를 범하는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자기를 살피라는 말이 무슨 뜻일까요 그것은 바로 "내 죄를 어찌할꼬"하며 자기 죄를 회개하라는 말입니다. "예수 십자가에 흘린 피로서 그대는 씻기어 있는가"하고 물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정말 내 죄가 깨끗하게 씻어졌는가 정말로 나는 회개할 것는 사람인가 물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회개 없이 이 예식에 참여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그렇게 하는 일은 심히 무모한 일입니다.
"나같은 죄인 나같은 죄인" 나같은 죄인을 열번이라도 반복하며, 나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 죽으신 주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자기를 살필 때 주님의 그 크신 은혜에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자기를 살필 때 눈물을 흘리며 감격해 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웬말인가 날 위하여 주 돌아가셨나-♬ 사랑하는 성도여! 이 시간이 각자 자신의 모습을 살피며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집사인 사람은 교회에서 나는 과연 집사노릇 잘하고 있는가 살필 필요가 있겠고, 권사인 경우 나는 권사 노릇을, 장로인 경우 나는 장로 노릇을 잘하고 있는가 이 시간이 이렇게 자신을 살필 필요가 있는 시간이라는 말입니다. 사회에서 교수인 나는 교수다운 노릇을 잘하고 있는가 의사인 나는 의사다
운 노릇을 잘하고 있는가 공무원은 존경받는 공무원 노릇을 잘하고 있는가 위정자들은 정말로 민중의 지팡이가 될 만한 노릇을 잘하고 있는가 이렇게 자기를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가정에서 남편인 경우 나는 남편 노릇을 잘하고 있는가 아내는 아내 노릇을 잘하고 있는가 자녀는 자녀 노릇을 잘하고 있는가 그래서 가정의 화평을 도모하고 있는가 교회의 모범생은 되고 있는가 자기를 실필줄 알아야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 이시간 믿음이 부족한 자기를 살펴보십시다. 지금 예수님이 이곳에 오셔서 나를 보시고 칭찬 하실까 책망 하실까 살펴보십시다. 사랑이 부족한 자기를 살펴보십시다. 일곱 번 용서는 그대로 두고라도 한번용서라도 했던 나인가 믿고 있는 복음은 용서의 복음인데 나는 용서한 사람이 되고 있는가 우리는 살펴야 합니다. 또한 헌신이 부족한 자기를 살피십시다! 주님은 나를 위해서 몸을 버렸습니다. 그런데 “너는 나를 위하여 무얼 주느냐" 이시간 주님은 묻
고 계십니다. "늘 울어도 눈물로서 못 값을 줄 알아 몸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바칩니다. "
거룩한 예식에 동참하고서 은혜를 받고 새로 무장되어 새 출발하려고 할 때에 주님을 위하여 몸부림 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을 위하여 나의 시간을 드리고 나의 달란트를 드리고 나의 청춘을 드리고 내 생애를 드리고 내 인생의 전폭을 드릴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야만 “착하고 충성된 종아”하며 주님 앞에 칭찬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생활을 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로 주의 몸을 분변하라.
저마다 지성인들은 인생이 무엇이냐 고 묻습니다. 더러는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라고 말을 합니다. '생각하는 존재라는 뜻이지요. ' 이 생각은 모든 인생에게 주어진 특권도 되고 자랑도 됩니다. 그래서 위엣 것을 생각 할 수도 있고, 아랫것을 생각 할 수도 있습니다. 더러는 '호모 파베르(Homo Faber)'라고 말합니다. '도구를 만드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아담 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인생은 저마다 도구를 만들어 왔습니다. 원시적인 일용품울 만들고, 돌이나 나무나 철로 무기를 만들었던 그 두뇌는 이제 컴퓨터와 핵무기와 레이져 광선과 우주선과 유전 공학을 만들어 냈습니다. 장한 인생입니다. 그래서 과학을 때로는 메시야처럼 예찬하기도 합니다.
어떤 과학자는 말하기를 과학은 인간의 행복의 조건이라고 말해요. 이 시대를 A, B, C 시대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A는(atom), B는(bacteria), C는( )모두 다 과학적인 용어입니다. 더러는 인간을 '호모 루덴스(Homo Ludens)'라고 말합니다. 유희하는 존재라는 뜻이지요. 산 자체를 즐기는 인생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여행을 하고, 그리고 랩의 붐을 일으키고 한다는 것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돔
판을 낳기도 합니다. 그런데 괴테는 말했습니다. 쾌락이 천사를 닮은 인생의 매춘부로 만들었다고 말입니다. 더러는 '호모 네간스(Homo Negans)'라고 말합니다. 부정 할 수 있는 존재라는 뜻이지요. 그러나 '예'라고 해야 할 때 '아니요'라고 연발한다면 큰 일이지요. 모든 인간에게는 '아니요'라고 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때와 장소를 분별치 못한다면 자신에게 큰 불행을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지금 이 시간 우리 모두는 성찬예식에 참여하려고 마음 가운데에 기도하며 준비하고 있습니다. 눈앞에 떡과 잔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믿음으로 이 떡을 먹고 믿음으로 이 잔을 미실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 29절입니다. "주의 몸을 분별치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 주의 몸을 분별치 못하면 죄인인 내가 또 하나의 엄청난 죄를 범하는 일이 된다고 하시면서 주의 몸을 분별하라고 말합니다. 여기 주의 몸을 분별하라는 뜻이 무엇일까요 주님의 죽으심이 흔하게 있는 보통 사람의 죽음과는 전혀 다르다는 뜻입니다. 여기 떡이 무엇인가요 24절입니다. 예수님께서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라. "고 했습니다. 이 말씀 중에서 "너희를 위하는" 이라는 이 말씀 앞에 감격해야 합니다. 여기 잔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입니다. 25절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잔은 내 피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이해 할 수 있을까요 물론 믿음이 아니고는 불가능합니다. 이 피 이것이 복음의 진수이기도 합니다. 성 프란시스는 이 은혜를 생각하면서 "이 무슨 은혜이며, 이 무슨 사랑인가" 하며 밤새도록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왜 예수님이 창에 허리를 상하여 물과 피를 다 쏟으셨을까요 이사야 53장 6절이 답합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 따라서 떡을 먹고 잔을 마시면서 우리가 부를 찬송이 무엇입니까 ♬-그 피가 맘속에 큰 증거 됩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6장 20절에서 말했어요.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 의인은 없나니 한 사람도 없다고 했지요. 그리고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5장 24절에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었느니라. " 어린양 예수의 피로 죄의 값을 지불하셨다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이제 나는 내 것이 아니라 값을 지불하신 주님의 것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도는 내 마음과 내 기분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대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내 마음과 내뜻대로 살아갈 때 치닫는 곳은 절망과 죽음뿐입니다. 성찬예식에 참여하는 사랑하는 젊은이여! 예수님 때문에 예수님 안에서 예수를 위하여 그분의 뜻대로 살고 싶지 않으십니까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라는 이 마음의 결심과 결단이 세상 끝날까지 변함 없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찬예식 그 유례는 예수님에게 있는데, 그것은 때는 목요일, 장소는 예루살렘에 있는 마가의 다락방에서 조촐하게 준비된 식탁 위였습니다. 예수님의 열 두 제자가 둘러앉아서 짤막한 감사 기도를 드린 뒤에 예수께서 준비하신 떡과 잔을 나누어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주시고 그들로 먹고 마시도록 하였습니다. 그 날 그 만찬이 바로 오늘 저희가 지키는 성찬예식의 출발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본문 23절에서 말씀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것은 주께 받은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찬예식은 예수님께서 제정하신 예식이며 또한 우리에게“이것을 행하라. ”고 당부하신 거룩한 예식입니다. 그러나 주의 떡과 잔을 먹고 마실 때마다 유념해야 될 것이 있습니다.
첫째로, 주의 죽으심을 기념하라.
예수님께서 성만찬을 행하실 때 친히 말씀하시기를 “이것을 행할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예수님의 무엇을 기념하라는 것일까요 본문 26절에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성찬 예식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것을 기념하는 예식이라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십자가 종교이며 그렇기 때문에 십자가가 없는 기독교는 참 기독교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셨을까요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떡을 떼어 주시면서 24절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나 같은 죄인을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예수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질 때 세상 죄를 지시고 고초 당하셨네 예수여 예수여 나의 죄 위하여 보배 피를 흘리니 죄인 받으소서-♪ 우리는 또한 기념할 때에 예수님의 부활과 재림도 함께 기념해야 될 것입니다. 본문 26절을 보면“오실 때까지라. "고 하신 말씀은 바로 예수님의 재림을 뜻하는 말입니다. 우리의 기쁨과 소망, 그리고 생명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내가 사니 너희도 살리라. ”바로 부활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곧 나의 부활이며 여기에 우리의 기쁨이 있고, 우리의 소망이 있으며 우리의 생명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할때 우리 주님께선 “내가 다시 오마. ”하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성찬예식에 참여하신 사랑하는 성도여! 날마다 기쁨으로 소망을 품고 사십시다! 날마다 예수 안에서 날마다 새날처럼 새롭게 출발하십시다!
둘째로, 자기를 살피라.
본문 28절에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찌니. "라고 하였듯이 사람은 살피는 존재입니다. 보통 식탁에 앉아 음식을 먹는 시간이라면 그냥 맛있게 먹으면 되지 자기를 살필 필요가 있겠습니까 밥을 먹는 끼니때마다 나는 과연 이 밥을 먹기에 합당한 존재냐 아니냐 이렇게 자기를 살필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또한 차 한잔을 마시면서도 나는 이 차를 먹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냐 없는 사람이냐 이렇게 자기를 살필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거룩하고 신령한 성찬예식에 참여하여 떡을 먹고 잔을 마시려고 할 때에 우리 믿음의 성도들은 반드시 자기를 살피지 아니하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죄를 범하는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자기를 살피라는 말이 무슨 뜻일까요 그것은 바로 "내 죄를 어찌할꼬"하며 자기 죄를 회개하라는 말입니다. "예수 십자가에 흘린 피로서 그대는 씻기어 있는가"하고 물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정말 내 죄가 깨끗하게 씻어졌는가 정말로 나는 회개할 것는 사람인가 물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회개 없이 이 예식에 참여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그렇게 하는 일은 심히 무모한 일입니다.
"나같은 죄인 나같은 죄인" 나같은 죄인을 열번이라도 반복하며, 나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 죽으신 주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자기를 살필 때 주님의 그 크신 은혜에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자기를 살필 때 눈물을 흘리며 감격해 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웬말인가 날 위하여 주 돌아가셨나-♬ 사랑하는 성도여! 이 시간이 각자 자신의 모습을 살피며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집사인 사람은 교회에서 나는 과연 집사노릇 잘하고 있는가 살필 필요가 있겠고, 권사인 경우 나는 권사 노릇을, 장로인 경우 나는 장로 노릇을 잘하고 있는가 이 시간이 이렇게 자신을 살필 필요가 있는 시간이라는 말입니다. 사회에서 교수인 나는 교수다운 노릇을 잘하고 있는가 의사인 나는 의사다
운 노릇을 잘하고 있는가 공무원은 존경받는 공무원 노릇을 잘하고 있는가 위정자들은 정말로 민중의 지팡이가 될 만한 노릇을 잘하고 있는가 이렇게 자기를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가정에서 남편인 경우 나는 남편 노릇을 잘하고 있는가 아내는 아내 노릇을 잘하고 있는가 자녀는 자녀 노릇을 잘하고 있는가 그래서 가정의 화평을 도모하고 있는가 교회의 모범생은 되고 있는가 자기를 실필줄 알아야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 이시간 믿음이 부족한 자기를 살펴보십시다. 지금 예수님이 이곳에 오셔서 나를 보시고 칭찬 하실까 책망 하실까 살펴보십시다. 사랑이 부족한 자기를 살펴보십시다. 일곱 번 용서는 그대로 두고라도 한번용서라도 했던 나인가 믿고 있는 복음은 용서의 복음인데 나는 용서한 사람이 되고 있는가 우리는 살펴야 합니다. 또한 헌신이 부족한 자기를 살피십시다! 주님은 나를 위해서 몸을 버렸습니다. 그런데 “너는 나를 위하여 무얼 주느냐" 이시간 주님은 묻
고 계십니다. "늘 울어도 눈물로서 못 값을 줄 알아 몸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바칩니다. "
거룩한 예식에 동참하고서 은혜를 받고 새로 무장되어 새 출발하려고 할 때에 주님을 위하여 몸부림 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을 위하여 나의 시간을 드리고 나의 달란트를 드리고 나의 청춘을 드리고 내 생애를 드리고 내 인생의 전폭을 드릴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야만 “착하고 충성된 종아”하며 주님 앞에 칭찬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생활을 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로 주의 몸을 분변하라.
저마다 지성인들은 인생이 무엇이냐 고 묻습니다. 더러는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라고 말을 합니다. '생각하는 존재라는 뜻이지요. ' 이 생각은 모든 인생에게 주어진 특권도 되고 자랑도 됩니다. 그래서 위엣 것을 생각 할 수도 있고, 아랫것을 생각 할 수도 있습니다. 더러는 '호모 파베르(Homo Faber)'라고 말합니다. '도구를 만드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아담 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인생은 저마다 도구를 만들어 왔습니다. 원시적인 일용품울 만들고, 돌이나 나무나 철로 무기를 만들었던 그 두뇌는 이제 컴퓨터와 핵무기와 레이져 광선과 우주선과 유전 공학을 만들어 냈습니다. 장한 인생입니다. 그래서 과학을 때로는 메시야처럼 예찬하기도 합니다.
어떤 과학자는 말하기를 과학은 인간의 행복의 조건이라고 말해요. 이 시대를 A, B, C 시대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A는(atom), B는(bacteria), C는( )모두 다 과학적인 용어입니다. 더러는 인간을 '호모 루덴스(Homo Ludens)'라고 말합니다. 유희하는 존재라는 뜻이지요. 산 자체를 즐기는 인생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여행을 하고, 그리고 랩의 붐을 일으키고 한다는 것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돔
판을 낳기도 합니다. 그런데 괴테는 말했습니다. 쾌락이 천사를 닮은 인생의 매춘부로 만들었다고 말입니다. 더러는 '호모 네간스(Homo Negans)'라고 말합니다. 부정 할 수 있는 존재라는 뜻이지요. 그러나 '예'라고 해야 할 때 '아니요'라고 연발한다면 큰 일이지요. 모든 인간에게는 '아니요'라고 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때와 장소를 분별치 못한다면 자신에게 큰 불행을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지금 이 시간 우리 모두는 성찬예식에 참여하려고 마음 가운데에 기도하며 준비하고 있습니다. 눈앞에 떡과 잔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믿음으로 이 떡을 먹고 믿음으로 이 잔을 미실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 29절입니다. "주의 몸을 분별치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 주의 몸을 분별치 못하면 죄인인 내가 또 하나의 엄청난 죄를 범하는 일이 된다고 하시면서 주의 몸을 분별하라고 말합니다. 여기 주의 몸을 분별하라는 뜻이 무엇일까요 주님의 죽으심이 흔하게 있는 보통 사람의 죽음과는 전혀 다르다는 뜻입니다. 여기 떡이 무엇인가요 24절입니다. 예수님께서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라. "고 했습니다. 이 말씀 중에서 "너희를 위하는" 이라는 이 말씀 앞에 감격해야 합니다. 여기 잔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입니다. 25절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잔은 내 피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이해 할 수 있을까요 물론 믿음이 아니고는 불가능합니다. 이 피 이것이 복음의 진수이기도 합니다. 성 프란시스는 이 은혜를 생각하면서 "이 무슨 은혜이며, 이 무슨 사랑인가" 하며 밤새도록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왜 예수님이 창에 허리를 상하여 물과 피를 다 쏟으셨을까요 이사야 53장 6절이 답합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 따라서 떡을 먹고 잔을 마시면서 우리가 부를 찬송이 무엇입니까 ♬-그 피가 맘속에 큰 증거 됩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6장 20절에서 말했어요.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 의인은 없나니 한 사람도 없다고 했지요. 그리고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5장 24절에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었느니라. " 어린양 예수의 피로 죄의 값을 지불하셨다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이제 나는 내 것이 아니라 값을 지불하신 주님의 것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도는 내 마음과 내 기분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대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내 마음과 내뜻대로 살아갈 때 치닫는 곳은 절망과 죽음뿐입니다. 성찬예식에 참여하는 사랑하는 젊은이여! 예수님 때문에 예수님 안에서 예수를 위하여 그분의 뜻대로 살고 싶지 않으십니까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라는 이 마음의 결심과 결단이 세상 끝날까지 변함 없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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