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례] 우리의 구원
본문
성찬성례전 예배에 참석한 여호와 하나님의 가족, 한소망의 가족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우리 안에 예수님이 계시고 이 예배 가운데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예배가 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마음속에 모시지 못하신 분들은 오늘 이 예배를 통하여 예수님을 마음속에 모셔들이고 여호와 하나님의 가족된 감사와 감격으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이 예배가 끝나고 나면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이 된다 할지라도 오늘이 온 인류의 마지막이, 지구의 마지막이 된다할지라도 한소망의 사람들 한사람도 버림받지 아니하고 모두다 들림 받아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스런 나라에 들어가게 되는 복된 복을 모두 함께 누리게 될 줄로 믿습니다.
복음 전도가 D. L. 무디가 65세쯤 될 때의 일입니다. 그 당시 평균 나이가 60세 막 넘었을 때니까 65세쯤되면 평균 나이를 지나 오늘 내일 여호와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있던 말년을 지낸 그 시점이었지요. 조간 신문에 무디에 관한 글이 실렸습니다. “Old Moody가 어떻다. ” 늙은 무디가 어떻다. 신문에 실렸습니다. 사실 그 내용은 무디를 칭찬하는 내용이었어요. 그런데 무디는 Old - 늙었다. 이 말 한마디 때문에 굉장히 기분이 상했습니다. 주일날 강단에 섰습니다. “여러분 오늘 아침 신문에 보셨지요. 날보고 늙었다고 그래요. 여러분 제가 늙었습니까” 교인들이 가만히 있었습니다. “제가 곧 죽을 줄 알았던 모양이예요. 저는 100살은 살 거예요. ” 교인들이 다 고개를 숙였습니다. “아닙니다. 나는 천년은 살 거예요. 아니 나는 만년은 살 거예요. 아니 나는 10만년의 10만년을 살아 영원히 살 영생을 얻을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할렐루야!” 모든 성도들이 “아멘!” 대답했습니다.
기독교가 무엇인가 기독교는 구원의 종교입니다. 영생의 종교입니다. 기독교는 사회 참여도 해야 됩니다. 구제도 해야 됩니다. 기독교가 해야 될 일이 많이 있습니다. 그 모든 것들도 해야 될 사역이지만 기독교의 중심은 “우리가 구원 얻었느냐 예수님을 통하여 영생을 얻었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2. 구원의 확신 오늘 죽으면 천국
“장로님 목사님들 오늘이 우리 생애의 마지막 날이라고 한다면 오늘 죽어도 천국에 들어갈 확신이 있으십니까” “사랑하는 한소망 가족 여러분 여러분들도 오늘이 생애 마지막 날이라고 한다면 오늘 죽어도 천국에 들어갈 확신이 있으십니까” 많은 사람들에게 이것을 물어보면 의심없이 “아멘 - 나는 구원 얻었습니다. ” 확신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을 보면 “구원은 얻은 것 같은데 좀 더 충성한 다음에, 좀 더 열심히 신앙생활한 다음에, 착한 일도 하고 좀 공적을 쌓은 다음에 구원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어떤 사람들은 구원이 왔다 갔다 합니다. 기분이 좋고 열심히 신앙생활하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으면 구원얻은 사람 같애요. 그런데 충성이 식어지고 부부싸움 한바탕하고 교인들간에 갈등이 생기고 신앙생활에 시험이 들면 구원이 팔원도 됐다가 칠원도 됐다가 삼원쯤 내려가기도 합니다. 여러분 구원은 느낌의 문제가 아닙니다. 감정의 문제가 아닙니다. 기분이 좋으면 왔다가 기분 나쁘면 가는게 아니예요.
또 어떤 사람들은 꽤 겸손한 척 합니다. “우리 인간이 어떻게 구원받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까 죽어봐야 하지요. 구원 얻고 싶지만 여호와 하나님이 주셔야 받는 것 아닙니까”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그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 성경 요한1서 5장 13절에 보면 “예수를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성경을 기록하는 것은 너희 안에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기분이나 느낌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뭐라고 말씀했나 그것을 통해서 우리가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확정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3. 왜 구원
우리는 왜 구원받아야 할까요 성경이 뭐라고 말씀하고 있을까요
“모든 사람들이 죄를 범하였으매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죄를 지었기 때문에,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아담 하와처럼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의 자리에 이를 수 없다고. 여호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성경은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죄인이기 때문에 우리는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범죄한 모든 인간들은 이 땅에 살아가는 삶이 시한부 인생과 같습니다. 예수 믿지 않는 모든 사람들은 이 세상에 숨이 다하는 그 날 영원한 멸망의 자리에 들어갈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암 병동에 심방을 간 적이 있습니다. 한 두 달, 석 달이 지나면 수명이 다하는 분임에도 불구하고 움직이는 대는 별로 불편이 없는지 이방 저방 다니면서 무료했든지 고스톱을 하고 있어요. 제가 심방을 갔더니 “목사님 오셨네. ” 겸연쩍은지 판을 섞고 돈을 호주머니에 넣어 자기 방으로 나를 안내했습니다. 기분이 좋아요. “기분이 괜찮습니다. ” 그랬더니 “돈 땄습니다. ” “얼마나 땄습니까” 3만원 땄데요. 아니 두 달 후에 돌아가실 분이 3만원 따고 그렇게 좋아하실 수가 없어요. 만원 저한테 내밀면서 “목사님 십일조 하면 안됩니까” 그럽니다.
아니 두 달 후에 돌아가실 분이 3만원 땄다고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어요. 여러분 우습지요. 이게 인생이예요. 두 달과 20년은 무슨 차이가 있는 것입니까 석 달과 30년은 무슨 차이가 있는 것입니까 20년 30년 후에 영원히 멸망 받을 인생이 뭐 좀 얻었다 그래서 좋아하고, 조금 잃었다고 그래서 슬퍼하고 이게 인생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인생이 어리석습니까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기로 결단했던 그 결단은 천지창조보다 더 위대한 결단이고 위대한 일이었습니다. 예수님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기 위함이다.
교회가 이 땅에 존재해야 될 이유가 무엇일까요 여러분이 교회 나오는 이유는 목적은 무엇일까요 교회는 죄인들이 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천국은 의인들이 가는 곳입니다. 때문에 교회 와서는 죄인들이 예수를 믿어 구원받고 죄 용서 받고 의인이 되어서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신 목적도 교회가 이 땅에 존재하는 이유도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서입니다.
로뎅이란 사람이 만든 작품 가운데 생각하는 사람이란 조각이 있습니다. 원 제목은 지옥문 앞에서입니다. 거기 보면 근육 짱의 사나이가 발가벗고 앉아서 뭔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원 제목은 지옥문 앞에서입니다.
이 땅에 살아가던 사람들이 아무리 부귀영화를 누리고 살아간다고 할지라도 많은 것을 가지고 살아갔다고 할지라도 여호와 하나님 앞에 갈 때는 저 세상에 갈 때는 발가벗고 가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합니다. 그래서 지옥문 앞에서 벌거벗고 앉아서 생각을 해요. 뭘 생각할까 짖궂은 젊은이들이 그럽니다. 내 팬티 누가 가져갔을까
4. 어떻게 구원
이 세상에 가장 불쌍한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오늘 숨이 다해 가는데 갈 곳이 없는 인생이예요. 이 시간 우리에게 묻는 가장 중요한 질문 한 가지를 던집니다. 어떻게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을까요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느니라”(요1:12).
예수 믿는 것을 너무 쉽게 설명하고 있지요.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것” 예수님을 내 마음속에 모셔들이는 것입니다. 예수님 내 마음속에 찾아오세요. 예수님을 내 인생의 주님으로 모셔들여요. 예수님을 구세주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요. 영접하는 것 그것을 믿는 것이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롬10:13). 얼마나 쉬운 일입니까 누구든지 주님의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다.
지옥에 가면 울음소리가 크다고 합니다. 왜 이렇게 쉬운 구원을 내가 왜 받지 못했을까 주님의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되는데, 예수님을 영접하기만 하면 되는데, 인정하기만 하면 되는데, 고백하기만 하면 되는데, 내가 왜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구원받지 못했을까 이것이 하도 억울해서 울음소리가 크다고 합니다.
만약 우리에게 100m를 9초에 뛰어야 구원받는다 그러면 모르긴 하지만 구원받을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는 것 같아요. 역기를 300kg 들어야 구원받는다. 난 아예 포기해 버리고 말겠어요. 예수 믿는 게 이렇게 쉬워요.
스님 한 분을 만났는데 그런 얘기를 해요. 불교는 신비하고 깊고 깊은 진리의 종교라는 겁니다. 자기는 머리가 좋으신 분은 편인데 30년을 공부하고 도를 닦았는데 아직까지 거기에 들어가려면 까마득하다는 겁니다. 머리 나쁜 사람은 300년을 공부해도 불교의 도리를 한바닥도 넘어가지 못한다고. 신비한 진리가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시냐고. 불교의 도리가 그렇게 깊고 오묘하냐구. 기독교는 너무 쉬운 종교라 저는 유치원도 가기 전에 기독교의 도를 통해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모셔들이고 그때부터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도를 통해버렸습니다. 기독교는 너무 쉬운 종교입니다. ” 얘기를 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믿는 종교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입니다. 우리 가운데 그 누구도 선하게 살아서 천국 갈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게며 악하게 살았다고 지옥 가는 사람이 없습니다. 예수 믿지 않아서 지옥 가는 것이고 예수 믿으면 누구나 천국 가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게 뭘까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돌아가셨는데 그것이 바로 나의 죄악의 짐을 짊어지시고 돌아가셨고, 그분을 나의 주님으로 모셔들이기만 하면 내 모든 죄는 사해지고 나는 구원받고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이것을 믿는 것입니다. 인정하는 것입니다. 입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나는 구원받은 백성이 되었다. 입으로 시인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 믿는 것입니다.
이것은 공짜로 받은 선물입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호와 하나님의 선물이라”(엡2:18).
선물은 공짜로 받는 것입니다. 많은 신학자들은 이것을 “가장 값비싼 공짜”란 말로 설명합니다. 모순되는 말이지요. 값이 비싸면 값이 비싸고, 공짜면 공짜지. 그러나 구원은 가장 값비싼 공짜입니다. 나는 공짜로 선물을 받았어요.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 입장에서 본다면 가장 값비싼 대가를 지불하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피 흘려 죽게 만들고 고난 받아 살이 찢기고 못 박혀 돌아가시게 한 다음에 우리를 구원해 주셨기 때문에 “가장 값비싼 구원”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거부하려고 하는 많은 움직임들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에 가장 악한 사상, 심지어 신학에도 “종교다원주의” 라는게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았다. 구원받는다는 것은 마지막 목표다. 그러나 거기에 가는 길은 한 가지 길만 있는 것이 아니다. 종교적인 아집을 버려야 된다. 종교간에 대화를 통하여 서로가 서로를 용납하고 인정해야 된다. 멋있어 보이지요. 멋있어 보이지만 사실은 아닙니다.
정발산 꼭대기에 올라가기 위해서 한 길이 있는 것이 아니다. 암센타로 올라가는 길도 있고, 초가집으로 올라가는 길도 있고, 동아 아파트로 올라가는 길도 있고 강선마을, 후곡마을에서 올라가는 길도 있다. 어느 길로 가든지 정발산 꼭대기에 가면 된다. 구원받기 위해서는 석가모니를 통해서도 공자님을 통해서도 마리아를 통해서도 구원받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아집과 독선을 버리고 서로가 서로를 포용하자. 이렇게 얘기합니다.
합리적으로 보여지지요. 이성적으로 여겨지지요. 합리적이고 이성적일는지 모르지만 진리는 아닙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오직 예수!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행4:12) 할렐루야!
5. 확신
이것을 인정하는 게 구원입니다.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이 우리인생에 구원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모셔들입니다. 주님만이 나의 구세주시요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우리가 믿습니다. 이렇게 믿고 나면 우리의 구원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변질되지 않습니다. 변경되지 않습니다. 그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너무나도 확실한 우리의 구원
윌버 채프만이란 사람이 있습니다. 젊은 시절에 D. L. 무디 선생님의 부흥회에 참석했다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했어요. D. L. 무디가 그에게 설명했습니다. “이제 당신은 예수를 믿었습니다. 당신의 모든 죄는 다 사해졌습니다. 당신은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오늘 죽어도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당신의 마음속에 확실히 믿어지십니까” “Well” 글쎄요. “다시 잘 들으세요. 당신은 죄인이었습니다. 당신은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예수님이 당신의 죄를 옮기시고 용서하셨습니다. 동이 서에서 먼 것처럼 당신의 모든 죄를 옮기시고 이제는 오늘 주님이 오신다 할지라도 당신은 천국에 들어갈 것입니다. 이제는 확신이 들지요” “Well” 세번 네번 설명해도 “Well” 글쎄요. 무디가 화가 났어요. “니가 뭔데 여호와 하나님이 용서한 죄를 Well이라고 얘기하느냐 니가 뭔데 여호와 하나님이 자녀가 되었다고 했으면 “아멘” 감사함으로 받아들이면 되지. 니가 Well이라고 얘기하느냐 니가 뭔데 여호와 하나님께서 너를 천국으로 받아주시겠다고 말씀하시는데 니가 Well이라고 얘기하느냐“ 화를 냈습니다. 그랬더니 “믿습니다” 소리질렀습니다. 그랬더니 믿어지는 거예요. 입으로 고백하는게 그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안 믿어졌던 믿음이 생긴 거예요. 성령이 찾아오신 것입니다. “나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습니다. ” 이미 성령이 찾아오신 것입니다. 성령님이 오시면 그때부터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6. What then
이제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빼앗기지 않습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자는 이미 영생을 얻었고”(요한5:24)
얻을지도 모르고가 아닙니다. 얻었고. 얻을 거고 - 미래형이 아닙니다. 얻었고 - 과거형입니다. 그분이 찾아오시면 인생의 목적이 달라집니다. 인생의 비전이 달라집니다. 성령님과 함께, 내 안에 계신 예수님과 함께, 내 인생을 의논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오시면 예수님이 우리 가운데 찾아오시면 비전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렇게나 인생을 살아가지 않습니다.
♪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청년들은 환상을 보고 아비들은 꿈을 꾸리라
주의 영 임하면 성령이여 우리에게 임하소서
성령님이 오시면 그렇게도 안믿어지던 것들이 저절로 믿어지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오시면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느니라. 여러분들에게 권세가 있어요. 이제는 사탄을 대적하는 권세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악을 미워하는 권세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앞에 순복하는 권세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나라의 그 무궁무진한 자원들이 우리의 것이 되는 권세가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가족된 사람들이 누리는 무한한 특권들이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여호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과 더불어 누리게 될 영광스런 식탁을 이 땅에 있는 동안에 맛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성례전”이라고 합니다.
성례전이 무엇입니까 세례를 통하여 우리가 구원받은 가족이 되는, 여호와 하나님 나라에 등록하는 예식이 있는가 하면, 예수를 그리스도로로 영접한 모든 사람들이 성찬 예식, 주님의 찢겨진 살을 내가 먹고 주님이 흘려주신 피를 마심으로 말미암아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을 만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 시간은 무한히 감사를 드리는 시간입니다.
이것을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기념하라”. “기념” 결혼기념일처럼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그게 아닙니다. 아넴네시스 - 기념이란 말은 과거에 있었던 어떤 사건이 오늘 효력을 발생하는 것입니다. 과거에 있었던 어떤 사건이 오늘 내 안에서 그것이 역사로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넴네시스입니다.
2000년 전에 예수님께서 돌아가셨는데 오늘 성찬예식에 참여함으로 말미암아 지난시간 우리의 모든 것은 이미 죽었습니다. 율법과 함께 죽었습니다. 죄와 함께 죽었습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예수님께서 2000년 전에 부활하셨는데 오늘 성찬 성례전에 참여함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부활한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새로운 피조물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성품, 예수님의 능력, 예수님의 비전이 우리의 성품이 되고 우리의 비전이 되고 우리의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아넴네시스 - 기념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 것입니까 성령님이 오셔서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예배를 통하여 말씀을 통하여 기도를 통하여 성령이 떡 가운데에, 잔 가운데에 실제적으로 영적으로 임재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떡을 먹지만 그 떡은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찢겨주신 몸에 참예하는 것입니다. 받아 먹으라.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라. 내가 찢겨져야 되는데 예수님의 살이 찢겨져서 우리에게 나누어지는 시간입니다.
받아 마시라.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이니라. 내가 저주를 받아 영원히 흘려야 될 피를 예수님이 대신 흘려주셨기 때문에 나는 축복의 피를 받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내 안에 성령님이 찾아오시고 예수님이 찾아오시는 것을 확인하는 시간이 되는 것입니다.
모든 죄는 떠났습니다. 우리도 모든 사람을 용서할 수 있는 능력을 받게 된 것입니다. 성도의 거룩한 교제, 성도가 된 여호와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된 엄청난 영적인 교제를 누리게 된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을 이 거룩한 현존으로 초대합니다. 주님께서 임재하시는 이 거룩한 임재의 자리로 초대합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을 받아주시고 내가 예수 안에 예수가 내 안에 들어가는 엄청난 이 축복의 자리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한소망의 모든 가족들을 성찬 성례전으로 초대합니다.
나는 예수 안에서 구원받았습니다. 내 안에 예수님이 계십니다. 오늘 죽어도 천국에 들어갈 확신이 있습니다. 구원받은 백성들이 거룩한 성찬 성례전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1장에 있는 말씀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이니라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고전11:23-29).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지 아니했는데 호기심에 의해서 먹을 수 없는 빵입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주님으로 영접하지 아니했는데 여호와 하나님의 가족이 되지 못했는데 이것을 받는 것은 합당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내가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한없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내 죄를 다 담당하셨도다. 그분을 믿기만 하면 나를 여호와 하나님의 가족으로 받아주신다고 성경은 약속하셨다. 우리가 받은 구원에 대한 감사와 감격으로 여러분 모두 이 거룩한 성찬에 참여하시기를 바랍니다.
복음 전도가 D. L. 무디가 65세쯤 될 때의 일입니다. 그 당시 평균 나이가 60세 막 넘었을 때니까 65세쯤되면 평균 나이를 지나 오늘 내일 여호와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있던 말년을 지낸 그 시점이었지요. 조간 신문에 무디에 관한 글이 실렸습니다. “Old Moody가 어떻다. ” 늙은 무디가 어떻다. 신문에 실렸습니다. 사실 그 내용은 무디를 칭찬하는 내용이었어요. 그런데 무디는 Old - 늙었다. 이 말 한마디 때문에 굉장히 기분이 상했습니다. 주일날 강단에 섰습니다. “여러분 오늘 아침 신문에 보셨지요. 날보고 늙었다고 그래요. 여러분 제가 늙었습니까” 교인들이 가만히 있었습니다. “제가 곧 죽을 줄 알았던 모양이예요. 저는 100살은 살 거예요. ” 교인들이 다 고개를 숙였습니다. “아닙니다. 나는 천년은 살 거예요. 아니 나는 만년은 살 거예요. 아니 나는 10만년의 10만년을 살아 영원히 살 영생을 얻을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할렐루야!” 모든 성도들이 “아멘!” 대답했습니다.
기독교가 무엇인가 기독교는 구원의 종교입니다. 영생의 종교입니다. 기독교는 사회 참여도 해야 됩니다. 구제도 해야 됩니다. 기독교가 해야 될 일이 많이 있습니다. 그 모든 것들도 해야 될 사역이지만 기독교의 중심은 “우리가 구원 얻었느냐 예수님을 통하여 영생을 얻었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2. 구원의 확신 오늘 죽으면 천국
“장로님 목사님들 오늘이 우리 생애의 마지막 날이라고 한다면 오늘 죽어도 천국에 들어갈 확신이 있으십니까” “사랑하는 한소망 가족 여러분 여러분들도 오늘이 생애 마지막 날이라고 한다면 오늘 죽어도 천국에 들어갈 확신이 있으십니까” 많은 사람들에게 이것을 물어보면 의심없이 “아멘 - 나는 구원 얻었습니다. ” 확신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을 보면 “구원은 얻은 것 같은데 좀 더 충성한 다음에, 좀 더 열심히 신앙생활한 다음에, 착한 일도 하고 좀 공적을 쌓은 다음에 구원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어떤 사람들은 구원이 왔다 갔다 합니다. 기분이 좋고 열심히 신앙생활하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으면 구원얻은 사람 같애요. 그런데 충성이 식어지고 부부싸움 한바탕하고 교인들간에 갈등이 생기고 신앙생활에 시험이 들면 구원이 팔원도 됐다가 칠원도 됐다가 삼원쯤 내려가기도 합니다. 여러분 구원은 느낌의 문제가 아닙니다. 감정의 문제가 아닙니다. 기분이 좋으면 왔다가 기분 나쁘면 가는게 아니예요.
또 어떤 사람들은 꽤 겸손한 척 합니다. “우리 인간이 어떻게 구원받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까 죽어봐야 하지요. 구원 얻고 싶지만 여호와 하나님이 주셔야 받는 것 아닙니까”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그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 성경 요한1서 5장 13절에 보면 “예수를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성경을 기록하는 것은 너희 안에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기분이나 느낌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뭐라고 말씀했나 그것을 통해서 우리가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확정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3. 왜 구원
우리는 왜 구원받아야 할까요 성경이 뭐라고 말씀하고 있을까요
“모든 사람들이 죄를 범하였으매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죄를 지었기 때문에,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아담 하와처럼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의 자리에 이를 수 없다고. 여호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성경은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죄인이기 때문에 우리는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범죄한 모든 인간들은 이 땅에 살아가는 삶이 시한부 인생과 같습니다. 예수 믿지 않는 모든 사람들은 이 세상에 숨이 다하는 그 날 영원한 멸망의 자리에 들어갈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암 병동에 심방을 간 적이 있습니다. 한 두 달, 석 달이 지나면 수명이 다하는 분임에도 불구하고 움직이는 대는 별로 불편이 없는지 이방 저방 다니면서 무료했든지 고스톱을 하고 있어요. 제가 심방을 갔더니 “목사님 오셨네. ” 겸연쩍은지 판을 섞고 돈을 호주머니에 넣어 자기 방으로 나를 안내했습니다. 기분이 좋아요. “기분이 괜찮습니다. ” 그랬더니 “돈 땄습니다. ” “얼마나 땄습니까” 3만원 땄데요. 아니 두 달 후에 돌아가실 분이 3만원 따고 그렇게 좋아하실 수가 없어요. 만원 저한테 내밀면서 “목사님 십일조 하면 안됩니까” 그럽니다.
아니 두 달 후에 돌아가실 분이 3만원 땄다고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어요. 여러분 우습지요. 이게 인생이예요. 두 달과 20년은 무슨 차이가 있는 것입니까 석 달과 30년은 무슨 차이가 있는 것입니까 20년 30년 후에 영원히 멸망 받을 인생이 뭐 좀 얻었다 그래서 좋아하고, 조금 잃었다고 그래서 슬퍼하고 이게 인생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인생이 어리석습니까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기로 결단했던 그 결단은 천지창조보다 더 위대한 결단이고 위대한 일이었습니다. 예수님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기 위함이다.
교회가 이 땅에 존재해야 될 이유가 무엇일까요 여러분이 교회 나오는 이유는 목적은 무엇일까요 교회는 죄인들이 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천국은 의인들이 가는 곳입니다. 때문에 교회 와서는 죄인들이 예수를 믿어 구원받고 죄 용서 받고 의인이 되어서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신 목적도 교회가 이 땅에 존재하는 이유도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서입니다.
로뎅이란 사람이 만든 작품 가운데 생각하는 사람이란 조각이 있습니다. 원 제목은 지옥문 앞에서입니다. 거기 보면 근육 짱의 사나이가 발가벗고 앉아서 뭔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원 제목은 지옥문 앞에서입니다.
이 땅에 살아가던 사람들이 아무리 부귀영화를 누리고 살아간다고 할지라도 많은 것을 가지고 살아갔다고 할지라도 여호와 하나님 앞에 갈 때는 저 세상에 갈 때는 발가벗고 가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합니다. 그래서 지옥문 앞에서 벌거벗고 앉아서 생각을 해요. 뭘 생각할까 짖궂은 젊은이들이 그럽니다. 내 팬티 누가 가져갔을까
4. 어떻게 구원
이 세상에 가장 불쌍한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오늘 숨이 다해 가는데 갈 곳이 없는 인생이예요. 이 시간 우리에게 묻는 가장 중요한 질문 한 가지를 던집니다. 어떻게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을까요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느니라”(요1:12).
예수 믿는 것을 너무 쉽게 설명하고 있지요.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것” 예수님을 내 마음속에 모셔들이는 것입니다. 예수님 내 마음속에 찾아오세요. 예수님을 내 인생의 주님으로 모셔들여요. 예수님을 구세주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요. 영접하는 것 그것을 믿는 것이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롬10:13). 얼마나 쉬운 일입니까 누구든지 주님의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다.
지옥에 가면 울음소리가 크다고 합니다. 왜 이렇게 쉬운 구원을 내가 왜 받지 못했을까 주님의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되는데, 예수님을 영접하기만 하면 되는데, 인정하기만 하면 되는데, 고백하기만 하면 되는데, 내가 왜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구원받지 못했을까 이것이 하도 억울해서 울음소리가 크다고 합니다.
만약 우리에게 100m를 9초에 뛰어야 구원받는다 그러면 모르긴 하지만 구원받을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는 것 같아요. 역기를 300kg 들어야 구원받는다. 난 아예 포기해 버리고 말겠어요. 예수 믿는 게 이렇게 쉬워요.
스님 한 분을 만났는데 그런 얘기를 해요. 불교는 신비하고 깊고 깊은 진리의 종교라는 겁니다. 자기는 머리가 좋으신 분은 편인데 30년을 공부하고 도를 닦았는데 아직까지 거기에 들어가려면 까마득하다는 겁니다. 머리 나쁜 사람은 300년을 공부해도 불교의 도리를 한바닥도 넘어가지 못한다고. 신비한 진리가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시냐고. 불교의 도리가 그렇게 깊고 오묘하냐구. 기독교는 너무 쉬운 종교라 저는 유치원도 가기 전에 기독교의 도를 통해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모셔들이고 그때부터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도를 통해버렸습니다. 기독교는 너무 쉬운 종교입니다. ” 얘기를 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믿는 종교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입니다. 우리 가운데 그 누구도 선하게 살아서 천국 갈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게며 악하게 살았다고 지옥 가는 사람이 없습니다. 예수 믿지 않아서 지옥 가는 것이고 예수 믿으면 누구나 천국 가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게 뭘까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돌아가셨는데 그것이 바로 나의 죄악의 짐을 짊어지시고 돌아가셨고, 그분을 나의 주님으로 모셔들이기만 하면 내 모든 죄는 사해지고 나는 구원받고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이것을 믿는 것입니다. 인정하는 것입니다. 입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나는 구원받은 백성이 되었다. 입으로 시인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 믿는 것입니다.
이것은 공짜로 받은 선물입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호와 하나님의 선물이라”(엡2:18).
선물은 공짜로 받는 것입니다. 많은 신학자들은 이것을 “가장 값비싼 공짜”란 말로 설명합니다. 모순되는 말이지요. 값이 비싸면 값이 비싸고, 공짜면 공짜지. 그러나 구원은 가장 값비싼 공짜입니다. 나는 공짜로 선물을 받았어요.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 입장에서 본다면 가장 값비싼 대가를 지불하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피 흘려 죽게 만들고 고난 받아 살이 찢기고 못 박혀 돌아가시게 한 다음에 우리를 구원해 주셨기 때문에 “가장 값비싼 구원”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거부하려고 하는 많은 움직임들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에 가장 악한 사상, 심지어 신학에도 “종교다원주의” 라는게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았다. 구원받는다는 것은 마지막 목표다. 그러나 거기에 가는 길은 한 가지 길만 있는 것이 아니다. 종교적인 아집을 버려야 된다. 종교간에 대화를 통하여 서로가 서로를 용납하고 인정해야 된다. 멋있어 보이지요. 멋있어 보이지만 사실은 아닙니다.
정발산 꼭대기에 올라가기 위해서 한 길이 있는 것이 아니다. 암센타로 올라가는 길도 있고, 초가집으로 올라가는 길도 있고, 동아 아파트로 올라가는 길도 있고 강선마을, 후곡마을에서 올라가는 길도 있다. 어느 길로 가든지 정발산 꼭대기에 가면 된다. 구원받기 위해서는 석가모니를 통해서도 공자님을 통해서도 마리아를 통해서도 구원받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아집과 독선을 버리고 서로가 서로를 포용하자. 이렇게 얘기합니다.
합리적으로 보여지지요. 이성적으로 여겨지지요. 합리적이고 이성적일는지 모르지만 진리는 아닙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오직 예수!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행4:12) 할렐루야!
5. 확신
이것을 인정하는 게 구원입니다.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이 우리인생에 구원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모셔들입니다. 주님만이 나의 구세주시요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우리가 믿습니다. 이렇게 믿고 나면 우리의 구원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변질되지 않습니다. 변경되지 않습니다. 그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너무나도 확실한 우리의 구원
윌버 채프만이란 사람이 있습니다. 젊은 시절에 D. L. 무디 선생님의 부흥회에 참석했다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했어요. D. L. 무디가 그에게 설명했습니다. “이제 당신은 예수를 믿었습니다. 당신의 모든 죄는 다 사해졌습니다. 당신은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오늘 죽어도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당신의 마음속에 확실히 믿어지십니까” “Well” 글쎄요. “다시 잘 들으세요. 당신은 죄인이었습니다. 당신은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예수님이 당신의 죄를 옮기시고 용서하셨습니다. 동이 서에서 먼 것처럼 당신의 모든 죄를 옮기시고 이제는 오늘 주님이 오신다 할지라도 당신은 천국에 들어갈 것입니다. 이제는 확신이 들지요” “Well” 세번 네번 설명해도 “Well” 글쎄요. 무디가 화가 났어요. “니가 뭔데 여호와 하나님이 용서한 죄를 Well이라고 얘기하느냐 니가 뭔데 여호와 하나님이 자녀가 되었다고 했으면 “아멘” 감사함으로 받아들이면 되지. 니가 Well이라고 얘기하느냐 니가 뭔데 여호와 하나님께서 너를 천국으로 받아주시겠다고 말씀하시는데 니가 Well이라고 얘기하느냐“ 화를 냈습니다. 그랬더니 “믿습니다” 소리질렀습니다. 그랬더니 믿어지는 거예요. 입으로 고백하는게 그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안 믿어졌던 믿음이 생긴 거예요. 성령이 찾아오신 것입니다. “나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습니다. ” 이미 성령이 찾아오신 것입니다. 성령님이 오시면 그때부터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6. What then
이제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빼앗기지 않습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자는 이미 영생을 얻었고”(요한5:24)
얻을지도 모르고가 아닙니다. 얻었고. 얻을 거고 - 미래형이 아닙니다. 얻었고 - 과거형입니다. 그분이 찾아오시면 인생의 목적이 달라집니다. 인생의 비전이 달라집니다. 성령님과 함께, 내 안에 계신 예수님과 함께, 내 인생을 의논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오시면 예수님이 우리 가운데 찾아오시면 비전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렇게나 인생을 살아가지 않습니다.
♪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청년들은 환상을 보고 아비들은 꿈을 꾸리라
주의 영 임하면 성령이여 우리에게 임하소서
성령님이 오시면 그렇게도 안믿어지던 것들이 저절로 믿어지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오시면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느니라. 여러분들에게 권세가 있어요. 이제는 사탄을 대적하는 권세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악을 미워하는 권세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앞에 순복하는 권세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나라의 그 무궁무진한 자원들이 우리의 것이 되는 권세가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가족된 사람들이 누리는 무한한 특권들이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여호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과 더불어 누리게 될 영광스런 식탁을 이 땅에 있는 동안에 맛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성례전”이라고 합니다.
성례전이 무엇입니까 세례를 통하여 우리가 구원받은 가족이 되는, 여호와 하나님 나라에 등록하는 예식이 있는가 하면, 예수를 그리스도로로 영접한 모든 사람들이 성찬 예식, 주님의 찢겨진 살을 내가 먹고 주님이 흘려주신 피를 마심으로 말미암아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을 만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 시간은 무한히 감사를 드리는 시간입니다.
이것을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기념하라”. “기념” 결혼기념일처럼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그게 아닙니다. 아넴네시스 - 기념이란 말은 과거에 있었던 어떤 사건이 오늘 효력을 발생하는 것입니다. 과거에 있었던 어떤 사건이 오늘 내 안에서 그것이 역사로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넴네시스입니다.
2000년 전에 예수님께서 돌아가셨는데 오늘 성찬예식에 참여함으로 말미암아 지난시간 우리의 모든 것은 이미 죽었습니다. 율법과 함께 죽었습니다. 죄와 함께 죽었습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예수님께서 2000년 전에 부활하셨는데 오늘 성찬 성례전에 참여함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부활한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새로운 피조물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성품, 예수님의 능력, 예수님의 비전이 우리의 성품이 되고 우리의 비전이 되고 우리의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아넴네시스 - 기념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 것입니까 성령님이 오셔서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예배를 통하여 말씀을 통하여 기도를 통하여 성령이 떡 가운데에, 잔 가운데에 실제적으로 영적으로 임재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떡을 먹지만 그 떡은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찢겨주신 몸에 참예하는 것입니다. 받아 먹으라.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라. 내가 찢겨져야 되는데 예수님의 살이 찢겨져서 우리에게 나누어지는 시간입니다.
받아 마시라.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이니라. 내가 저주를 받아 영원히 흘려야 될 피를 예수님이 대신 흘려주셨기 때문에 나는 축복의 피를 받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내 안에 성령님이 찾아오시고 예수님이 찾아오시는 것을 확인하는 시간이 되는 것입니다.
모든 죄는 떠났습니다. 우리도 모든 사람을 용서할 수 있는 능력을 받게 된 것입니다. 성도의 거룩한 교제, 성도가 된 여호와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된 엄청난 영적인 교제를 누리게 된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을 이 거룩한 현존으로 초대합니다. 주님께서 임재하시는 이 거룩한 임재의 자리로 초대합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을 받아주시고 내가 예수 안에 예수가 내 안에 들어가는 엄청난 이 축복의 자리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한소망의 모든 가족들을 성찬 성례전으로 초대합니다.
나는 예수 안에서 구원받았습니다. 내 안에 예수님이 계십니다. 오늘 죽어도 천국에 들어갈 확신이 있습니다. 구원받은 백성들이 거룩한 성찬 성례전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1장에 있는 말씀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이니라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고전11:23-29).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지 아니했는데 호기심에 의해서 먹을 수 없는 빵입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주님으로 영접하지 아니했는데 여호와 하나님의 가족이 되지 못했는데 이것을 받는 것은 합당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내가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한없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내 죄를 다 담당하셨도다. 그분을 믿기만 하면 나를 여호와 하나님의 가족으로 받아주신다고 성경은 약속하셨다. 우리가 받은 구원에 대한 감사와 감격으로 여러분 모두 이 거룩한 성찬에 참여하시기를 바랍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