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례] 나를 기념하라
본문
일상생활을 하다보면 기념일이 많습니다. 제일 많이 찾는 것이 결혼기념일입니다. 학생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기념일은 개교기념일입니다. 회사는 창사기념일, 국가는 개국기념일, 교회 같으면 창립기념일입니다.
뿐만 아니라 미덕이나 능력, 또는 국가나 인류에 큰 공을 세운 업적으로 말미암아 크게 유명해진 사람들의 영예를 기념하기 위해서 그들이 탄생한 날이나 죽은 날을 기념일로 삼는 것은 인간 역사에서 흔히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예외적으로 자신의 생애 동안 자기를 기념하도록 명하고 정하는 한 사람에 관한 기사를 읽게 됩니다.
그분은 자신을 따르는 모든 자들에게 규칙적으로 그것을 준수하도록 의식을 정하고 명령을 내립니다. 인류 가운데 가장 위대한 인물이 된 사람들 중에서, 인류에 가장 공헌을 한 위인들 가운데 누가 지금까지 자신의 명예를 걸고 열렬히 그리고 서둘러서 자신의 이름, 자신의 인격, 자신의 행위를 영원히 보존하고 존속시켜 줄 것을 요구함으로써 다가올 모든 시대를 통해 자신을 기념해 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었습니까
우리 예수님은 오늘 말씀에 보면 “나를 기념하라”고 하셨습니다. ‘나를 기념하라’고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무엇을 기념하라는 것인가 기념하라는 말씀을 하실 때 어떤 경우였습니까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오늘 행하는 성찬은 주님께서 직접 살아계실 때 제정해 놓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전 유월절에 제자들과 만나서 마지막 유월절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자신이 직접 떡을 들고 축복기도를 하신 후에 떼어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나누어주시면서 하신 말씀이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다시 포도주를 들고서도 같은 방법으로 주시면서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고 하셨습니다.
이것을 행하는 것은 무엇을 기념하기 위한 것인가 하면 주의 죽으심을 기념하기 위한 것입니다. 26절 말씀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이렇게 제정된 성찬은 기념, 증거, 그리고 친교에 관한 의식으로서, 그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닙니다. 호화로운 의식이 준비되어 있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태도도 규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단순히 떡과 포도주를 제공하라는 규정뿐입니다. 취하고 떼고 먹고 마시는 것 외에는 다른 규정은 없습니다. 그러나 영적 행동은 특별히 규정되어 있습니다.
우리 주님을 기념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시행하는 성찬의식은 실패하게 됩니다.
아무리 우리의 인생에서 기억될 만한 일들이 많더라도, 정말 아름답고 추억이 될 만한 기억이 있더라도, 아니 우리를 감동시키는 기억들이 있더라도 우리는 그분의 영예를 위해 성찬이 마련되었음을 알고 그분을 무엇보다 먼저 기억해야 합니다.
예컨대 죽음의 사선에서 건짐을 받은 기억이 있더라도, 성찬을 통한 주님의 십자가의 죽으심보다 더 앞서는 기억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위대한 대통령에 당선된 기쁨이 있더라도, 아니 목사 안수 받고 장로, 집사, 권사안수를 받던 날이 내게 즐겁고 감사한 날이라 할지라도 주님을 기념하는 성찬의 기억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성찬은 한 가지 거룩한 기념을 위해 유익합니다.
지금 성찬상에 차려진 떡과 포도주는 실제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가진 참사람으로서의 우리 주님의 인격을 보여주는 상징입니다.
이 거룩한 성찬에 참여하기 위해 앉아 있는 저와 여러분들은 주님과의 친밀한 교제와 우리가 그분께 가까이 나아감을 의미합니다.
조금 후에 제가 직접 떡을 뗄 때, 포도주를 부을 때 그것은 그분의 고난을 상징합니다.
떡과 포도주를 받아먹을 때 우리는 예수님의 생명보존능력을 보여주고, 그분을 우리의 가장 깊은 자아 속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성찬예식의 각 성물은 예수님을 지시하고, 우리는 거기서 여호와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아야 합니다.
그 거룩한 기념은 본질상 우리를 위해 가장 필요합니다.
그것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우리 주님을 기념하기 위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믿음을 지속적으로 유지시켜 주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사랑에 대한 자극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소망의 원천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세상으로부터, 자아로부터, 논쟁으로부터, 수고로부터, 우리 동료들로부터 분리시키고 주님께 나아가도록 이끄는 효과를 낳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그것은 우리를 잠으로부터 깨우는 기상신호와 같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혼인만찬의 전주곡으로, ‘하늘에서 있을 혼인잔치’를 고대하도록 합니다.
무엇보다 먼저 그것은 우리 마음속에 우리 주님의 이름을 새겨놓도록 자극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한 가지 유의해야 합니다. 아무리 거룩한 것이라 할지라도, 아무리 우리에게 유익을 주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 의식에 참여할 때는 그 의식에 걸 맞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사실 성찬은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직 영적으로 주의 몸을 분별할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그것은 죄인들의 회심을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니라 제자들의 교육을 위해 주어진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잘 살핌으로써 권리를 갖고 있지 못한 일에 아무 소용없이 끼어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27절 말씀에 보면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이 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어서 하시는 말씀이 28절 말씀으로서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27-29절 말씀은 공관복음, 즉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에는 빠져 있습니다. 즉 초대교회 안에서 성찬에서 문제가 발생함으로 인해 바울을 통하여 추가로 주신 말씀입니다. 성찬의 본래의 의미를 살리지 못하고 변질되어감으로 인해 여호와 하나님은 이것을 보다 의미를 잘 살려 잘 지키도록 하기 위해 새롭게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합당치 않게 먹고 죄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는 자기를 살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살펴야 할까요
과연 내가 먹고 마실 자격이 있는가를 살펴야 합니다.
자신이 감당해야 할 책임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가.
우리는 엄숙한 마음으로 참례하고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식탁에 나아오는가. 그는 마음을 살펴야 하고 따라서 식탁에 겸손한 마음으로 나아올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적절한 확신과 즐거움을 가지고 나아오는가. 살핀 후에야 자신이 나아올 자격이 있는지 그리고 편안하게 임할 수 있는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초대교회 교부였던 크리소스톰은 회개하지 않고 성찬을 먹는 것이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것이라고 했고, 벵겔은 자기 성찰 없이 먹고 마시는 것이라고 했고, 앨 포드는 “주의 죽으심에 대한 올바른 이해나 믿음없이 먹고 마시는 것이라”고 해석했습니다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성찬의 자리엔 가룟 유다도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마태복음 26:21을 보면 “너희 중에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고 했고, 마26;23절을 보면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고 했고, 마26;24절을 보면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그가 바로 가룟 유다였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우리가 자신을 잘 살핀 후에 먹고 마셔야 한다는 가르침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필립 헨리는 성찬에 참여하기 전에 세 가지 질문을 해 봄으로써 자기점검의 시간을 갖도록 권면하고 있습니다. 1) 나는 어떤 존재인가 2) 나는 무엇을 했는가 3) 나는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
이런 일련의 자세를 갖추어 참여한다면, 성찬의 참여는 기쁨과 즐거움과 감사의 자리여야 합니다. 감히 주님의 십자가에 참여함은 곧 부활을 의미하며 부활은 영생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특별히 전세계교회가 지키는 ‘세계성찬주일’입니다. 아주 뜻 깊은 주일입니다. 따라서 ‘나를 기념하라’고 하는 말씀에 순종하여 참여한다면 우리가 참여하는 이 성찬을 통하여 주님의 십자가 사건이 나타나야 합니다. 그래야 기념하는 의미가 살아납니다. 이런 의미가 나타나야 그리스도와 나는 하나가 되어 영생을 얻게 됩니다.
요한복음6장53-54절 말씀,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피는 참된 음료로다 네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오늘 이 성찬에 우리가 초대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이 성찬식을 통해서 주님의 십자가 사건이 드러나서 우리를 새롭게 만드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미덕이나 능력, 또는 국가나 인류에 큰 공을 세운 업적으로 말미암아 크게 유명해진 사람들의 영예를 기념하기 위해서 그들이 탄생한 날이나 죽은 날을 기념일로 삼는 것은 인간 역사에서 흔히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예외적으로 자신의 생애 동안 자기를 기념하도록 명하고 정하는 한 사람에 관한 기사를 읽게 됩니다.
그분은 자신을 따르는 모든 자들에게 규칙적으로 그것을 준수하도록 의식을 정하고 명령을 내립니다. 인류 가운데 가장 위대한 인물이 된 사람들 중에서, 인류에 가장 공헌을 한 위인들 가운데 누가 지금까지 자신의 명예를 걸고 열렬히 그리고 서둘러서 자신의 이름, 자신의 인격, 자신의 행위를 영원히 보존하고 존속시켜 줄 것을 요구함으로써 다가올 모든 시대를 통해 자신을 기념해 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었습니까
우리 예수님은 오늘 말씀에 보면 “나를 기념하라”고 하셨습니다. ‘나를 기념하라’고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무엇을 기념하라는 것인가 기념하라는 말씀을 하실 때 어떤 경우였습니까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오늘 행하는 성찬은 주님께서 직접 살아계실 때 제정해 놓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전 유월절에 제자들과 만나서 마지막 유월절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자신이 직접 떡을 들고 축복기도를 하신 후에 떼어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나누어주시면서 하신 말씀이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다시 포도주를 들고서도 같은 방법으로 주시면서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고 하셨습니다.
이것을 행하는 것은 무엇을 기념하기 위한 것인가 하면 주의 죽으심을 기념하기 위한 것입니다. 26절 말씀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이렇게 제정된 성찬은 기념, 증거, 그리고 친교에 관한 의식으로서, 그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닙니다. 호화로운 의식이 준비되어 있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태도도 규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단순히 떡과 포도주를 제공하라는 규정뿐입니다. 취하고 떼고 먹고 마시는 것 외에는 다른 규정은 없습니다. 그러나 영적 행동은 특별히 규정되어 있습니다.
우리 주님을 기념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시행하는 성찬의식은 실패하게 됩니다.
아무리 우리의 인생에서 기억될 만한 일들이 많더라도, 정말 아름답고 추억이 될 만한 기억이 있더라도, 아니 우리를 감동시키는 기억들이 있더라도 우리는 그분의 영예를 위해 성찬이 마련되었음을 알고 그분을 무엇보다 먼저 기억해야 합니다.
예컨대 죽음의 사선에서 건짐을 받은 기억이 있더라도, 성찬을 통한 주님의 십자가의 죽으심보다 더 앞서는 기억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위대한 대통령에 당선된 기쁨이 있더라도, 아니 목사 안수 받고 장로, 집사, 권사안수를 받던 날이 내게 즐겁고 감사한 날이라 할지라도 주님을 기념하는 성찬의 기억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성찬은 한 가지 거룩한 기념을 위해 유익합니다.
지금 성찬상에 차려진 떡과 포도주는 실제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가진 참사람으로서의 우리 주님의 인격을 보여주는 상징입니다.
이 거룩한 성찬에 참여하기 위해 앉아 있는 저와 여러분들은 주님과의 친밀한 교제와 우리가 그분께 가까이 나아감을 의미합니다.
조금 후에 제가 직접 떡을 뗄 때, 포도주를 부을 때 그것은 그분의 고난을 상징합니다.
떡과 포도주를 받아먹을 때 우리는 예수님의 생명보존능력을 보여주고, 그분을 우리의 가장 깊은 자아 속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성찬예식의 각 성물은 예수님을 지시하고, 우리는 거기서 여호와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아야 합니다.
그 거룩한 기념은 본질상 우리를 위해 가장 필요합니다.
그것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우리 주님을 기념하기 위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믿음을 지속적으로 유지시켜 주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사랑에 대한 자극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소망의 원천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세상으로부터, 자아로부터, 논쟁으로부터, 수고로부터, 우리 동료들로부터 분리시키고 주님께 나아가도록 이끄는 효과를 낳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그것은 우리를 잠으로부터 깨우는 기상신호와 같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혼인만찬의 전주곡으로, ‘하늘에서 있을 혼인잔치’를 고대하도록 합니다.
무엇보다 먼저 그것은 우리 마음속에 우리 주님의 이름을 새겨놓도록 자극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한 가지 유의해야 합니다. 아무리 거룩한 것이라 할지라도, 아무리 우리에게 유익을 주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 의식에 참여할 때는 그 의식에 걸 맞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사실 성찬은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직 영적으로 주의 몸을 분별할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그것은 죄인들의 회심을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니라 제자들의 교육을 위해 주어진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잘 살핌으로써 권리를 갖고 있지 못한 일에 아무 소용없이 끼어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27절 말씀에 보면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이 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어서 하시는 말씀이 28절 말씀으로서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27-29절 말씀은 공관복음, 즉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에는 빠져 있습니다. 즉 초대교회 안에서 성찬에서 문제가 발생함으로 인해 바울을 통하여 추가로 주신 말씀입니다. 성찬의 본래의 의미를 살리지 못하고 변질되어감으로 인해 여호와 하나님은 이것을 보다 의미를 잘 살려 잘 지키도록 하기 위해 새롭게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합당치 않게 먹고 죄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는 자기를 살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살펴야 할까요
과연 내가 먹고 마실 자격이 있는가를 살펴야 합니다.
자신이 감당해야 할 책임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가.
우리는 엄숙한 마음으로 참례하고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식탁에 나아오는가. 그는 마음을 살펴야 하고 따라서 식탁에 겸손한 마음으로 나아올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적절한 확신과 즐거움을 가지고 나아오는가. 살핀 후에야 자신이 나아올 자격이 있는지 그리고 편안하게 임할 수 있는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초대교회 교부였던 크리소스톰은 회개하지 않고 성찬을 먹는 것이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것이라고 했고, 벵겔은 자기 성찰 없이 먹고 마시는 것이라고 했고, 앨 포드는 “주의 죽으심에 대한 올바른 이해나 믿음없이 먹고 마시는 것이라”고 해석했습니다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성찬의 자리엔 가룟 유다도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마태복음 26:21을 보면 “너희 중에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고 했고, 마26;23절을 보면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고 했고, 마26;24절을 보면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그가 바로 가룟 유다였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우리가 자신을 잘 살핀 후에 먹고 마셔야 한다는 가르침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필립 헨리는 성찬에 참여하기 전에 세 가지 질문을 해 봄으로써 자기점검의 시간을 갖도록 권면하고 있습니다. 1) 나는 어떤 존재인가 2) 나는 무엇을 했는가 3) 나는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
이런 일련의 자세를 갖추어 참여한다면, 성찬의 참여는 기쁨과 즐거움과 감사의 자리여야 합니다. 감히 주님의 십자가에 참여함은 곧 부활을 의미하며 부활은 영생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특별히 전세계교회가 지키는 ‘세계성찬주일’입니다. 아주 뜻 깊은 주일입니다. 따라서 ‘나를 기념하라’고 하는 말씀에 순종하여 참여한다면 우리가 참여하는 이 성찬을 통하여 주님의 십자가 사건이 나타나야 합니다. 그래야 기념하는 의미가 살아납니다. 이런 의미가 나타나야 그리스도와 나는 하나가 되어 영생을 얻게 됩니다.
요한복음6장53-54절 말씀,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피는 참된 음료로다 네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오늘 이 성찬에 우리가 초대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이 성찬식을 통해서 주님의 십자가 사건이 드러나서 우리를 새롭게 만드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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