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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례] 기적을 일으키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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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어려울 때 여러분은 어떻게 극복하십니까 특히 경제적 삶이 어려울 때 말입니다. 도움을 받으려는 생각을 할 것입니다. 삶이 어려울 때 나보다 더 큰 어려움을 겪는 사람을 생각해 본적이 있습니까
더 어려움을 겪는 사람에게 도움을 준 일이 있습니까 삶이 어려우면 왠지 우리는 모든 것을 줄여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줄여야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인간의 방법이요, 인간의 지식입니다. 상식입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의 법칙은 아닙니다.
가정이든 교회든 개인이든 재정적인 어려움에서 벗어나는 성경적인 첫 번째 원칙은 ‘주라!’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재정적인 어려움에 처하면 먼저 돈주머니부터 닫아버립니다. 그렇게 주머니를 닫으면 돈이 나갈 수 없지만, 들어올 수도 없다는 사실까지는 생각을 못합니다.
후원이나 기부로 운영되는 선교단체나 비영리단체는 특히 사회적인 불황의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힘들면 가장 먼저 기부금이나 헌금을 줄여버리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재정적 원칙을 성경대로 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부자들인 유대인들은 철저하게 성경적인 재정관을 가지고 살아가도록 어려서부터 교육을 받습니다. 그리하여 호황일 때는 열심히 저축을 하고 불황일 때는 열심히 기부를 합니다. 사람들은 어려울 때 도움을 주는 사람을 평생 고마워하고 은인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돈이 넉넉할 때는 아무리 많이 받아도 공돈처럼 생각할 뿐 은인이라고 까지는 생각 안 합니다.
나누는 것은 기독교의 기초이며, 그것은 내가 '돈'에 묶여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신앙고백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주는 것을 거절함으로써 여호와 하나님 보다 '돈'을 더 믿고 의지하고 있음을 말없이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여호와 하나님보다 '돈'을 더 의지함으로써 오히려 재정적인 속박에 묶여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 내용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기록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벳세다 들판에서 몰려온 군중들에게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어느 듯 시간이 저녁시간이었습니다. 해가 서산으로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수많은 군중들을 바라보는 제자들이 걱정이 되어 예수님에게 말하기를 “이 곳은 빈 들이요 날도 저물어가니 무리를 보내어 두루 촌과 마을로 가서 무엇을 사 먹게 하옵소서” 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대답하시기를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하셨습니다. 이때 제자들은 계산적으로 대답했습니다. “우리가 가서 이백 데나리온의 떡을 사다 먹이리이까”즉 우리가 이 많은 사람들에게 떡을 싸다 먹이려면 적어도 이백데나리온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는지 가서 보라”제자들이 찾아보니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1인분 도시락입니다. 이때 예수님은 제자들이 갖고온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는 군중들을 무리를 지어 앉게 하신 후에 그것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축복기도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주시면서 모든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시키는 대로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한 사람 먹으면 딱 맞는데 어떻게 나누어 주어도 계속 그대로였습니다. 오늘 본문 42절 말씀에 보면 다 배불리 먹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43절에서는 다 배불리 먹고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거두니 열두 바구니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먹은 사람이 자그마치 남자마나 5천명이나 되었습니다.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나눌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많은 것이라도 움켜쥐고 있으면 기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작은 것이라도 나눌 때에 기적이 일어납니다.
경북대학교 기독센터에서 사역하고 있는 이상욱 목사님이 추석 전에 아름다운 소식을 담은 메일이 도착했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기독센터에서 매일 새벽기도를 드리는데 다른 교회에 교인 중에서 센터와 가까이 사시는 동네 주민이 참석하는 분이 있다고 합니다. 추석 전에 동네 주민 한 분이 불쑥 기독센터 사무실을 찾아 왔다고 합니다. 기독센터 생활관에 살고 있는 한 학생의 어려운 가정 상황을 듣고 작은 도움이라도 주고 싶다며 금일봉을 들고 오셨다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돈을 아껴 쓰라고 해서 빠듯한 살림이지만 아껴 놓았는데 여기에 쓰라고 하시는군요”
테이블에 봉투를 놓고서 목사님은 그분과 함께 기도했습니다.
“눈물을 잘 흘리지 않는데, 눈물이 나네요…” 하면서 이 성도님은 말끝을 흐리면서 돌아갔다고 하는 이야기 입니다. 추석 명절전에 따뜻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것이 나눔의 본질입니다. 누군지도 모르고, 도움을 받아야 할 사람이 있을 때 도울 마음이 생겨 돕는 것이 참된 나눔입니다. 아는 사람도 아니요, 그것으로 인해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이 없지만, 누가 알아주지 않지만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나누는 삶은 아름답습니다. 거기에는 반드시 기적이 일어납니다.
주님이 우리 우리에게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누가복음3장7절 이하에 보면 요한이 세례 받으러 나아오는 무리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에게 일러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고 하면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호와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예수님이 하시는 이 말씀을 듣고 있던 무리들이 예수님에게 물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예수님이 대답하시기를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한 마디로 말하면 나누어 주는 삶을 살아라는 것입니다.
열왕기상 17:8-16을 보면 엘리야와 사르밧 과부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가뭄에 밀가루 한줌과 기름 몇방울 남은 것으로 아들과 마지막으로 한끼를 만들어 먹고 죽으려고 작정한 사르밧의 과부였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보잘 것 없는 그것을 주의 종 엘리야를 위해 기꺼이 나누었습니다.
나눔은 기적을 가져왔습니다. 과부와 아들은 여러 날 먹었으나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의 삭개오는 나눌 줄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눅 19:1-10).
남의 것을 토색하고 부당하게 모으기만 하던 세리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난 후에 그는 나눔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눅 19:8). 나눔의 삶을 결심한 삭개오에게 내리신 예수님의 축복은 너무나 컸습니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눅 19:9).
누가복음18:18절 이하에도 보면 어떤 관리가 예수님을 찾아와서 묻기를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이때 예수님은 대답하시기를 “네가 계명을 아나니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즉 이 계명을 다 지켜라는 것입니다. 이때 이 청년은 자신이 어려서부터 다 지켰다고 대답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그 청년에게 대답하시기를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네게 보화가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사람이 큰 부자이므로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을 듣고서 심기 근심하며 돌아갔습니다. 돈을 많지 가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돈을 어떻게 나누느냐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아무리 많이 가져도 나눔이 없다면 그것이 화가 됩니다.
전도서11: 1말씀에 “너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 일곱에게나 여덟에게 나눠 줄지어다 무슨 재앙이 땅에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함이니라”
여러분 초대교회시대에 사도들이 모여 기도할 때 예수님이 보내신다고 약속하신 성령이 임재 하셨습니다. 그 때 어떤 현상들이 일어났습니까 사도행전2장43절 이하에 보면 많은 기사와 표적이 나타났고,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여호와 하나님을 찬미하였습니다. 이때 성도들은 온 백성들에게 칭찬을 받았습니다. 이런 결과로 주님은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셨습니다.
지난 9월 26일 필리핀 지역에 몰아닥친 제17호 태풍 케사나는 리잘주(州)를 포함해 메트로 마닐라 도시 전체(남한면적의 1/2)를 삼키는 피해를 안겼습니다. 사고가 나자 필리핀 한인회(회장 박일경)는 한인 기업가들의 후원을 받아, 1천 명분 비상식량을 지역 상황을 잘 아는 한인 선교사들의 도움을 얻어 주민들에게 전달했지만, 현재 구호품은 턱없이 모자란 상태이고, 까인따 지역에 사는 한인들에게는 전혀 손길이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현재 한인회의 활동 등으로 필리핀 주민에게 도움을 주고 있지만 부족한 상태이며, 필리핀 정부는 전혀 손을 쓰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필리핀 사람들에게는 구호품이 전달되지만 오히려 한인들에게는 잘 전달이 안된다고 합니다.
우리가 협력하는 차대현 선교사님이 급히 지원요청을 해왔습니다. 어제는 직접 전화를 해보았습니다. 차선교사님이 선교하는 지역이 강변입니다. 그래서 강변장로교회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선교사님의 집도 잠기고 성도들의 집도 많이 잠겨서 교회에서 함께 기거하고 있다고 합니다. 총회 사회봉사부에서 150만원 지원 온 것으로 쌀을 구입하여 100세대 정도 드리려고 했는데 구름떼같이 몰려들어서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다음에 도움이 오면 드리겠다고 사인한 표를 나누어주고 왔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우리교회는 받은 은혜가 큽니다. 이럴 때에 정말 우리가 도울 수 있는 기회를 가졌으면 참으로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구원받는 사람을 더하게 하기 위해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도움을 주기 위해 나눈다면 거기에는 반드시 기적이 일어납니다.
마틴 루터는 개심해야 할 세 가지로 마음과 정신과 재물을 말했습니다. 여기에서 바꾸기가 힘든 것은 재물이 아닐까 합니다. 마음과 정신은 바뀌었을지라도 재물에 대한 개념이 변하지 않으면 여전히 마음은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보물을 하늘에 쌓으라”고 합니다. 테레사 수녀는 “아플 때까지 주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우리는 주는 것을 중단할 때 아파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주는 것에 대한 위대한 특권이 무엇인지를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아낌없이 기부하는 사람에게 아낌없는 칭찬이 돌아옵니다. 반면 주는데 인색한 사람에 대해서는 인색한 평가가 내려집니다. 이것은 돈의 진정한 가치를 잘 말해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보물을 하늘에 쌓을 때 우리의 마음도 하늘을 향하게 되어 가치 있는 것을 바라도록 변화될 것입니다. 주는 자에게는 주시는 복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다 나누어 주셨습니다. 자신의 살과 피를 온 인류에게 나누어주셨습니다. 그로 인해 우리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기 위해 유월절 전날에 제자들과 함께 식탁을 준비하시고 떡을 가지고 축사하신 후 제자들에게 조금씩 떼어주셨습니다.
식후에 잔을 가지고 역시 포도주를 나누어 주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 자신이 모든 것을 남김없이 온 인류에게 나누어주심을 보여준 예표적인 행위였습니다. 그것을 오늘도 기념하기 위해 우리는 성찬에 초대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우리는 주님의 제자들로서 본을 받아 닮아가려고 하는 자들입니다.
우리도 주님처럼 나누어주는 것을 기뻐하며 살아야 합니다. 성찬을 받을 때 단순히 떡과 잔을 받을 것이 아니라 주님의 살과 피를 나누어 먹고 마시는 일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로 인해 우리가 구원의 은혜를 받게 되었다는 것도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가진 것, 재물, 재능, 지식, 시간, 심지어는 나의 생명까지도 이웃에게 나눈다면 여호와 하나님은 도로 갚아주십니다.
잠언25:21-22말씀, “네 원수가 배고파하거든 음식을 먹이고 목말라하거든 물을 마시게 하라 / 그리 하는 것은 핀 숯을 그의 머리에 놓는 것과 일반이요 여호와께서 네게 갚아 주시리라”
여호와께서 나누는 자에게 갚아 주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전도서11:1말씀에도 보면, “너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땅에는 우리가 돌보아야 할 생명들이 많습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도 끄지 아니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가지고 돌보아야 할 생명들이 많습니다(사 42: 3). 가난이나 질병과 싸우는 이웃들, 사람들의 따뜻한 시선을 받지 못하는 그늘진 곳에 있는 이웃들, 우리 주변에는 우리가 돌보아야 할 이웃들이 참 많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마음으로 그들을 위해서 작은 것이라도 나눌 수 있다면, 그 작은 것을 통해서 주님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실 것입니다. 한 어린아이의 오병이어의 헌신이 5천 명을 먹이고도 남은 것처럼, 우리들의 작은 나눔이 이웃을 살리고 세상을 살리는 사랑의 기적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성찬식을 거행한 것은 자신이 어떻게 나누어주시는가를 직접적으로 보여준 예표입니다. 예수님이 살을 나누어 주셔서 먹게 하시고, 피를 나누어 마시게 하심으로 인해 온 인류를 구원하셨습니다. 그분의 생명을 나눔이 인류를 구원하게 되었다면, 우리의 작은 나눔이 실행될 때 비로소 기적이 일어납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나눌 때, 주님의 나라를 위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이웃에게 나눌 때 그것으로 인해 수많은 생명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직접 보여주신 성찬식은 나눔의 절정이요, 신앙인으로서의 삶의 절정입니다.
떡과 잔을 받을 때 의미 없이 받을 것이 아니라 나도 주님처럼 살과 피를 나누겠다는 결단이 함께 있어야 할 줄 믿습니다. 오늘도 주님의 마음으로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고, 주님의 마음으로 이웃에게 손 내밀어 나눔의 기적을 이루어가는 삶이길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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