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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례] 무엇을 먹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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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에는 광우병에 걸린 쇠고기 문제로 나라전체가 흔들거렸습니다. 그러나 광우병에 대한 것은 우려이지 실제적으로 광우병에 걸린 쇠고기가 수입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반면에 요즘 문제가 되는 중국산 멜라민(C3H6N6) 파동입니다.
이 물질은 포름알데히드와 축합하여 멜라민 수지를 만들거나 도료, 접착제 따위로 씁니다. 주로 합성수지를 만드는 출발물질로 쓰입니다. 멜라민은 압력하에서 디시안디아미드를 가열하여 만듭니다. 가장 중요한 반응은 분자량이 큰 수지성 화합물을 생성하는 포름알데히드와의 반응입니다.
이러한 수지들은 가열하여 만들어지나, 일단 생성된 후에는 내수성과 내열성을 갖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충전물과 색소로 가공되며 접시류, 그릇류, 조리용 기구류, 핸들로 만들어 사용하거나 목재·종이와 직물류의 피복제나 라미네이팅 시약으로 사용됩니다. 멜라민이 축적되면 신장에 많은 피해가 가며 멜라민을 계속 먹게 되면 신장염에 걸립니다. 또 계속 먹으면 신장이 점점 부풀어 오르고, 결국 사람이 죽어버린다고 합니다.
이런 물질이 어떻게 해서 과자류와 유지 제품에 들어갔는지는 아직 정확하게 모르지만 이런 것이 유통이 되었다는 사실에 시민들은 분노하고 있습니다. 세계가 떠들썩합니다. 결국 우리가 먹는 음식 가운데 완전하게 안심하고 먹을 것이 별로 없습니다.
먹는 음식을 가지고 장난을 치거나 음식에 유해물을 첨가시킨다는 것은 있어서는 안되는 일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내가 직접 농사를 지어서 먹지 않으면 믿고 먹을 것이 별로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무공해 농산물을 찾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무공해 음식이 우리의 건강에, 아니 우리의 생명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는 잘 모릅니다.
왜냐하면 북한 김정일씨의 경우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대통령이나 국가 최고의 권좌에 있는 사람에게 올리는 식탁은 예나 지금이나 얼마나 많은 신경을 쓰겠습니까 지난 화요일 동아일보에 보면 김정일의 식생활에 대한 글이 실렸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건강에 무척 신경을 쓴다고 합니다. 자신이 먹는 식품을 연구하기 위해서 ‘기초과학원’이라는 연구소까지 설립했을 정도라고 합니다. 북한 각 지역의 특산품은 ‘1호 식품’으로 분류돼 특별관리 된다고 합니다. 함경남도 금야군의 쌀, 황해남도 배천군의 야채와 과일, 강원도 통천군 앞바다에서 잡은 도미 등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특각(特閣)으로 불리는 전용별장도 생체리듬에 가장 좋다는 해발 500m의 경승지만 골라서 지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권력자도 생로병사(生老病死)의 섭리는 피해갈 수 없는 법입니다. 이제 66세밖에 안되었는데도 심장병으로 공식행사에 나타나지 않은지가 오래되었습니다.
그렇게 좋은 것만 골라먹어도 일흔 아홉 된 저희 아버님보다도 못하십니다. 그런 좋은 음식을 드시지 않은 우리 은퇴하신 원로장로님들이나 은퇴장로님들 보다도 건강이 훨씬 못합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좋은 음식을 먹은 것도 아닌데도 병원에 입원하시지 않고 오히려 건강한 모습으로 새벽기도 나오시는 등 얼마나 건강하신지 모릅니다.
요즘 멜라민 파동이나 광우병 파동 등을 보면서 어차피 세상에 살다가 한번 가는 인생인데 우리가 너무 지나치게 민감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우리가 아무리 좋은 천연 식을 해도 늙고요, 아무리 장수식품을 먹어도 죽습니다.
그러므로 음식으로 건강하게 살려고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우리가 음식을 통한 생명의 안전을 염려하는 것 보다 더 염려하고 걱정하며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영혼에 대한 건강과 영혼이 먹어야 할 내용입니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우리를 영생하도록 만들지 못합니다. 어떤 음식을 먹어도 세월이 흐르면 늙습니다. 노쇠해집니다. 죽습니다. 그러므로 영생하도록 하는 영혼을 위한 삶을 좀 성실하게 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배설해내는 음식은 우리를 영생하도록 하는 음식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무엇을 먹어야 영생합니까 그런 양식이 있습니까 그런 양식을 누가 공급해 줍니까
영생하는 양식이 있습니다. 요한복음6장27절에 보면,
“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분명히 영생하도록 하는 양식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 양식은 어떻게 얻을 수 있습니까 주님이 주신다고 했습니다.
27절에 보면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여호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고 했습니다. 영생하도록 하는 양식은 예수님이 주신다고 했습니다. 33절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때 제자들이 예수님께 부탁하기를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라고 했습니다. 다시 예수님은 그들을 향하여 35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예수님 자신이 생명의 떡이라고 했습니다. 48절에서도 “내가 곧 생명의 떡”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라고 했고 사람들이 그것을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라고 50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51절에서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라고 하시면서 이 떡을 멱으면 영생하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떡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가 51절 하반절에 보면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이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예수님의 살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성찬식에 초대받았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나누고자 하는 것은 떡과 잔입니다. 떡은 주님께서 영생을 얻게 하리라고 하신 ‘주님의 살’을 의미하고, 포도주는 우리의 죄를 씻기 위해 흘려주신 ‘주님의 보혈’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받고자 하는 떡은 배가 고파서 먹는 떡이 아닙니다.
이 떡은 맛이 좋아서 먹는 떡도 아닙니다. 이 떡이 유명메이커라서 먹는 것도 아닙니다. 이 떡을 먹는 것은 영생하도록 하기 때문에 먹습니다. 이 떡을 먹는 것은 구원을 얻게 하는 생명의 떡이기 때문에 먹습니다.
이 떡은 죽음에 위협을 주는 멜라민이 들어있는 떡도 아니요, 농약이 들어 있는 떡도 아닙니다. 이 떡에는 방부제도 들어있지 않습니다. 이 떡은 죽음의 위협을 주는 떡이 아니라 오히려 죽음에서 영생으로 살리는 생명의 떡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눌 떡은 거룩한 떡입니다. 그 어떤 위험요소도 들어있지 않습니다. 이 떡을 먹는 자는 인생이 달라집니다. 삶이 달라집니다.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39-40말씀에 보면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이 구절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의 뜻은 예수님을 통해서 주신 생명들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다 영생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영생함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면, 마지막 날에 다시 사는 것, 즉 부활을 의미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육체적으로 죽으나 영적으로 영원히 살아 새롭게 부활하는 것을 영생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우리가 마시는 포도주는 어떤 것입니까 53절하반절에부터 58절 까지의 말씀을 읽겠습니다.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이곳에서는 살과 피 둘 다 언급하고 있습니다. 살을 먹지 않고 피를 마시지 않으면 생명이 없다고 했습니다.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신다고 했습니다. 이유는 참된 양식이요, 참된 음료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 음료도 안전할 뿐만 아니라 생명을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생명을 살리는 음료입니다. 우리가 받을 포도주는 하나의 증표로서 의미를 가지고 예표하는 것입니다.
이 포도즙은 우리를 취하게 하여 이성을 잃게 만드는 알코올이 아닙니다. 이 포도즙은 우리의 소화를 돕기 위해 마시는 것도 아닙니다. 나의 기분전환을 위해 마시는 것은 더욱 아닙니다. 이 포도주는 나의 더러운 죄를 씻기시기 위해 흘린 주님의 피를 생각하며 마시는 잔입니다. 주님의 보혈과도 같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떡과 포도즙이 우리에게 어떻게 그런 영생을 얻게 할 수 있단 말인가 고린도전서11장에 보면 떡과 잔은 예수님의 살이 찢기고 피를 흘린 것을 기념하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예식에는 믿는자 만이 참여하게 됩니다. 그 사실을 믿을 때에 영생의 역사를 경험하게 되고 그런 경험자가 기념하는 떡과 잔을 받게 됩니다.
미국의 고전 시 중에 ‘거장의 손이 닿을 때(The Touch of the Master’s Hand)’라는 시가 있다고 합니다. 이 시의 내용을 풀어서 쓴다면 이런 내용의 시입니다. 경매장에 한 낡은 바이올린이 있었습니다. 3달러까지 부르는 사람이 있고 더 이상은 없었습니다. 이때 한 노인이 나타나더니 바이올린의 먼지를 털고 마치 보물을 다루듯 자기의 손수건을 꺼내 구석구석 닦았습니다.
그리고 현들을 조여 음정을 잡고 연주를 시작하였습니다. 그 아름다움은 천사의 음악같이 청중을 황홀하게 했습니다. 한 곡을 끝내고 노인은 감회 깊은 음성으로 중얼거렸습니다. ‘잘 있었느냐, 내 사랑하는 아들아. 40년 만에 너를 만져보는구나. ’ 그러고 나서 다시 연주를 시작하였습니다.
경매는 갑자기 활기를 띠어 결국 이 바이올린은 3천 달러에 낙찰 되었습니다. 3불짜리가 3천달러 되었으니 천배나 값이 뛰었습니다. 그 이유가 뭡니까 연주 잘하는 사람의 손에 들어갔을 때 무용의 물건이 유용한 물건이 되었습니다. 값어치 없는 물건이 가치 있는 물건이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누더기가 된 인간, 죄와 허물로 값없는 인간에게 거장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마무리 손질이 끝났을 때 아주 새로운 가치가 부여된다는 뜻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광선속에 먼지처럼 드러나는 인간의 전부를 볼 때 걸작품은 하나도 없습니다.
오직 필요 한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마무리 손질입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말끔히 씻음을 받는 일, 만신창이인 나를 여호와 하나님의 마무리 손질인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맡겨 용서를 받고 새사람이 되는 길만이 나의 인생을 걸작품으로 남기는 길이 됩니다.
성찬의 떡과 잔은 여호와 하나님의 마무리 손길에 의해 새로운 삶의 가치를 부여받은 자들이 은혜에 감사하며 나누는 거룩한 예식입니다. 비록 성찬은 예수님의 죽음을 기념하는 시간이지만, 이는 또한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며 기뻐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나누신 최후의 만찬을 찬미함으로 마치신 것은 예수님의 죽으심이 가능케 하신 잔치, 즉 미래에 예수님께서 그의 백성과 영광중에 함께 나누실 메시아의 연회잔치를 바라보게 합니다.
성찬은 천국 혼인 잔치를 바라보게 합니다. 성찬의 잔과 떡은 예수님의 몸과 피로 드린 희생 제물을 기념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리를 믿는 자들만 참여할 수 있습니다. 신약은 믿지 않는 자들이 성찬에 참여하는 상황을 전혀 염두에 두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성경은 주의 몸을 분변치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고전 11:29) 하며, 함부로 성찬의 떡을 먹고 잔을 마시는 자에겐 심판이 임할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살핀다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하고 있지는 않는지, 회개해야 하는 것들은 무엇인지, 기도하는 마음으로 신중하게 자신의 삶을 살피는 일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사 자신을 희생하신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지 살펴야 합니다.
중세기 이탈리아에 기사도 정신에 충렬한 한 성주(성주)가 있었습니다. 그는 살아생전에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공을 세웠으면 하고 골똘히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한 가지 일이 떠올랐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더불어 만찬을 나눌 때 사용한 금잔을 찾아내는 일이었습니다.
성주는 당장 많은 돈을 준비해서 말을 타고 나섰습니다. 그런데 그가 성문을 나서려 할 때였습니다. 성문 앞에서 한 문둥병자 거지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한 푼 도와주십시오. ” “무슨 소리냐 나는 지금 우리 구세주의 영광스러운 금잔을 찾으러가는 길이다. 냉큼 비키지 못할까!” “성주님, 저는 며칠을 굶었습니다.
제발 한 푼만!” 성주는 마지못해 금화 한 닢을 꺼내 땅바닥에 내던지며 소리 질렀습니다. “자, 이걸 가지고 떠나라. 나는 지금 내 인생의 큰일 때문에 너를 돌볼 겨를이 없다. ” 이때부터 수 십 년 동안 성주는 예루살렘은 물론 이탈리아 구석구석을, 그리고 멀리 애굽과 사막에까지도 금잔을 찾기 위해 뒤지고 다녔으나 헛수고였습니다.
드디어 돈은 떨어지고 머리에는 하얀 서리가 앉게 되었습니다. 그는 지치고 지친 몸을 이끌고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용마를 타고 비단옷을 입고 떠나던 때와는 달리 낡은 옷에 지팡이를 짚은 쓸쓸한 모습이었습니다. 그가 성문 앞에 다 달았을 때였습니다. 그의 앞에 예전의 문둥병자 거지가 나타났습니다. “한 푼 도와주십시오. ” 그동안 숱하게 겪은 고생으로 이제 그의 거드름은 잦아지고 사랑이 솟아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거지에게 나누어 줄 것이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마른 빵 한 조각 밖에는. 그는 빵의 절반을 잘라 거지한테 주었습니다. 그리고 허리에 차고 있던 쪽박을 들고 옹달샘으로 가서 물 한바가지를 길어왔습니다. “내가 이렇게 당신을 돕는 것이 변변치 못해 미안하오. 하지만 이것이 내 전부인 것을 어떡하오. ” 그러자 갑자기 문둥병자 거지가 예수님의 모습으로 변했습니다.
그리고 말씀했습니다. “두려워 말고 들어라. 금잔을 찾으려고 아무리 헤메어도 소용이 없다. 샘물을 길어온 그 보잘 것 없는 쪽박이 나의 성배이다. 네가 떼어준 빵이 나의 살이며 이 물이 내 피다. 가난하고 소외받는 이와 더불어 나누는 식사야말로 진정한 성찬이다. ”
우리를 사랑하사 십자가 지시고 우리 죄짐을 담당하신 주님께서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 하시며, 사랑이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라 하시며 사랑의 실천이 율법의 완성이며, 주님의 제자 된 표라 하셨으니 이 사랑을 실천 했는가를 다시 한 번 살피며 사랑의 실천자가 되길 다짐하며 함께 하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저와 여러분이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떡은 생명의 떡이요, 사랑의 떡이요, 희생의 떡인 그리스도의 살을 먹는 것입니다. 이 떡을 먹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영생을 얻습니다. 영생 얻은 기쁨을 갖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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