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 어머니로서의 성령님!
본문
어떤 부장판사는 인터뷰에서 젊은 청년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자기가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재산과 명예과 권력을 다 버리겠노라고 말하는 것을 읽어 보았습니다. 아마 누구나 젊은 시절로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자기의 삶을 새롭게 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질 것입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이 시간을 뒤로 돌려서 보내주신다면 중학교 3학년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그 시점이 제 인생의 중요한 터닝 포인트(turning point)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중학교 시절을 보냈던 70년대 초에는 박정희 정권시절이었습니다. 그 당시에 온 나라의 관심은 중공업에 있었습니다. 중공업을 육성하여서 중동이나 외국에 인력을 수출하여 많은 외화를 벌어들이던 시절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공업고등학교의 인기가 무척 좋았습니다. 저는 아무 생각 없이 안양공업고등학교 기계과에 입학하였습니다. 아버님은 이미 초등학교 시절에 돌아가시고, 집안 살림도 넉넉하지 못한 형편으로 공업고등학교에 들어가서 좋은 직장에 취직하고 야간에 대학이라도 다닌다면 금상첨화(錦上添花)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을 그렇지 못했습니다. 정원보다 2배 가까이 신입생을 뽑은 학교에서는 교실이 없어서 운동장에서 집단으로 교육하는 일이 자주 있었습니다. 교실이 배정되어도 체육이나, 교련 시간에는 책가방을 들고 교실을 비워주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더욱 참을 수 없었던 것은 기계(機械)라는 놈입니다. 아무리 친해지려고 해도 그 기계가 싫었습니다.
결국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저의 인생은 제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전개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중요한 학창시절을 잃어버린 저는 지금도 그 시절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픕니다. 그래서 만약 여호와 하나님이 저에게 시간을 돌려주신다면 중학교 3학년으로 돌아가서 다시 시작하고 싶은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요한복음 3장에서는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는 산헤드린 공회원이며 바리새인이었습니다. 유대인의 사회에서는 지도자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항상 자기의 부족함을 깨닿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어둑어둑한 밤에 몰래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에게 가르침을 청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여호와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는 깜짝 놀랐습니다. 자기는 이미 늙어서 손자를 거느리고 있을 만큼 장성한 사람인데 어떻게 다시 태어나라고 말씀하시는가 의아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에게 이렇게 질문하였습니다.
"니고데모가 가로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이러한 니고데모의 질문에 예수님이 답을 주셨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여호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다시 태어난다는 것은 육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육체의 시간은 뒤로 돌려놓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영혼의 시간은 얼마든지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시는 분이 바로 성령님이라고 예수님께서는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 사실은 매우 놀라운 진리입니다. 성령님을 통하여 모든 사람들은 새로운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60을 넘긴 사람이라도, 80을 넘긴 할아버지라도 갓난 아기처럼 새롭게 인생을 시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성령님을 통하여...
본문 말씀 중에서 우리는 6절에 주목해야 합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요 3:6)
성령으로 잉태되어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이 거듭남의 비밀입니다.
누구나 우리의 육신을 낳아준 어머니와 아버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혼을 낳아준 성령님이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고 계십니까
바로 성령님이 우리의 영혼을 낳아주신 어머니입니다.
성령님이 여러분과 저를 낳아 주셨다는 것을 무엇으로 알 수 있습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주라고 시인하는 것을 볼 때 알 수 있습니다.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 12:3)
그러므로 여러분과 저는 성령님을 통하여 거듭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육체의 부모님이 계신 것처럼 영혼의 어머니인 성령님도 계십니다.
성령으로 거듭 태어난 사람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인물중에 하나가 베드로입니다.
베드로는 성령을 받기 전에는 예수님을 따를 때 육신적으로 따랐습니다.
베드로가 육체적으로 예수님을 따를 때는 생각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에서 많은 약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십자가 지시는 것을 반대하다가 책망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죽기까지 따르겠다고 다짐하고서는 하루도 못되어 3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하며 저주하였습니다. (마 26:72)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보고도 그는 물고기 잡으러 갔습니다. (요 21:3)
그러나 오순절에 임하신 성령님을 받아 거듭난 이후에는 베드로의 모습이 완전히 변해버립니다. 그는 수 많은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담대하게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의 전도를 받은 사람들은 회개하며 3천명이나 예수님을 영접하였습니다. 초대교회의 역사는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행 2:14)
또한 예수님을 잡아 죽인 대제사장과 관원들 앞에서도 담대하게 예수님을 증거하였으며, 감옥에 같혀서도 결코 흔들리지 않고 담대하게 복음을 선포하였습니다. (행 4:8)
베드로의 이러한 변화는 바로 성령으로 다시 태어난 사람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사례로 꼽을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들의 모습이 다 베드로 같을 수는 없습니다. 베드로는 특별한 상황에서 특별하게 역사하신 성령님의 돌보심을 받은 인물입니다. 베도로는 바로 예수님이 피로 세우신 교회를 이 땅에 처음으로 세우는 일꾼으로, 사도로 세움을 입은 사람입니다. 따라서 우리와 베드로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성령님으로 거듭난 사람들은 달라진다는 사실입니다. 생각하는 것이 달라지고, 행동하는 것이 달라지고, 열매가 달라집니다. 왜냐햐면 우리의 영을 낳으신 성령님은 전지전능한 여호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의 능력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하고 막강합니다.
능력이 없는 엄마가 아기를 키우는 것과, 매우 탁월한 능력을 가진 엄마가 아기를 키우는 것에는 대단한 차이가 있습니다. 능력이 없는 엄마는 아기를 함부로 키웁니다. 그러나 능력이 있는 엄마는 아기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서 미리 준비하시고, 채워주시고, 지도해 주십니다. 우리를 낳으신 성령님은 능력이 무한하신 전능한 어머니이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탁월하게 키우실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사도 바울을 이러한 성령님의 능력에 대해서 고린도전서 12장에서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8 어떤 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9 다른 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10 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11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고전 12:8-11)
이 외에도 성령님의 능력은 무한하십니다. 고린도전서 12장 말씀은 자기가 낳으신 성도들을 키우기 위해서 주시는 대표적인 능력만을 몇 개 소개한 것 일뿐입니다.
이렇게 무한하신 능력으로 키우는 성령님의 자녀들에게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 (갈 5:22-23)의 열매가 나타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은 이러한 성령의 열매가 있습니까
있다면, 더욱 성령님을 의지하며 순종하십시오.
없다면, 왜 없습니까
무엇이 문제입니까
여러분은 성령님을 외면하거나 의지하지 않고 살아가는 잘못을 범하고 있을 것입니다. 성령님은 인격적이신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자기의 자녀를 억지로 두둘겨 패면서 교육하지 않으십니다. 설득하고 타일르십니다. 오래 참으시며 지켜보십니다. 비록 자기의 자녀가 자기를 무시하고, 소멸하고, 외면해도 화내지 않으시는 사랑의 어머니이십니다. 그리고 성령님은 자기의 자녀가 깨닿고 돌아서며, 자기를 의지할 때까지 엄청난 능력을 함부로 나누어주지 않으십니다. 고린도전서 12장에 나타난 성령님의 강력한 은사는 성령님을 사모하며, 의지하며, 소원하는 자에게 은혜로 나누어주십니다.
갓난아기가 엄마를 사모하며, 젖을 사모하며, 사랑을 원하듯이 우리들도 성령님을 사모하며, 의지하며, 사랑해야 합니다. 가장 훌륭한 신앙인은 자기의 힘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가장 훌륭한 자녀는 자기의 힘으로 돈을 벌어오는 것이 아니라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 새롭게 살아갈 특권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나이와 상관없이, 환경과 상관없이 우리들에게는 새로운 인생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의 영혼을 낳으신 영혼의 어머님이신 성령님이 우리에게 젖을 주시기 원하시며, 능력을 주시기 원하시며, 각종 성령의 열매를 주시기 원하십니다.
갓난 아기가 되십시오. 갓난 아기가 오직 엄마만 의지하고 기대하듯이, 당신도 성령님만 의지하고 기대하십시오. 성령님은 우리에게 즐겁고 행복한 삶을 주시기 원하십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이 시간을 뒤로 돌려서 보내주신다면 중학교 3학년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그 시점이 제 인생의 중요한 터닝 포인트(turning point)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중학교 시절을 보냈던 70년대 초에는 박정희 정권시절이었습니다. 그 당시에 온 나라의 관심은 중공업에 있었습니다. 중공업을 육성하여서 중동이나 외국에 인력을 수출하여 많은 외화를 벌어들이던 시절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공업고등학교의 인기가 무척 좋았습니다. 저는 아무 생각 없이 안양공업고등학교 기계과에 입학하였습니다. 아버님은 이미 초등학교 시절에 돌아가시고, 집안 살림도 넉넉하지 못한 형편으로 공업고등학교에 들어가서 좋은 직장에 취직하고 야간에 대학이라도 다닌다면 금상첨화(錦上添花)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을 그렇지 못했습니다. 정원보다 2배 가까이 신입생을 뽑은 학교에서는 교실이 없어서 운동장에서 집단으로 교육하는 일이 자주 있었습니다. 교실이 배정되어도 체육이나, 교련 시간에는 책가방을 들고 교실을 비워주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더욱 참을 수 없었던 것은 기계(機械)라는 놈입니다. 아무리 친해지려고 해도 그 기계가 싫었습니다.
결국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저의 인생은 제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전개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중요한 학창시절을 잃어버린 저는 지금도 그 시절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픕니다. 그래서 만약 여호와 하나님이 저에게 시간을 돌려주신다면 중학교 3학년으로 돌아가서 다시 시작하고 싶은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요한복음 3장에서는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는 산헤드린 공회원이며 바리새인이었습니다. 유대인의 사회에서는 지도자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항상 자기의 부족함을 깨닿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어둑어둑한 밤에 몰래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에게 가르침을 청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여호와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는 깜짝 놀랐습니다. 자기는 이미 늙어서 손자를 거느리고 있을 만큼 장성한 사람인데 어떻게 다시 태어나라고 말씀하시는가 의아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에게 이렇게 질문하였습니다.
"니고데모가 가로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이러한 니고데모의 질문에 예수님이 답을 주셨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여호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다시 태어난다는 것은 육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육체의 시간은 뒤로 돌려놓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영혼의 시간은 얼마든지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시는 분이 바로 성령님이라고 예수님께서는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 사실은 매우 놀라운 진리입니다. 성령님을 통하여 모든 사람들은 새로운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60을 넘긴 사람이라도, 80을 넘긴 할아버지라도 갓난 아기처럼 새롭게 인생을 시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성령님을 통하여...
본문 말씀 중에서 우리는 6절에 주목해야 합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요 3:6)
성령으로 잉태되어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이 거듭남의 비밀입니다.
누구나 우리의 육신을 낳아준 어머니와 아버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혼을 낳아준 성령님이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고 계십니까
바로 성령님이 우리의 영혼을 낳아주신 어머니입니다.
성령님이 여러분과 저를 낳아 주셨다는 것을 무엇으로 알 수 있습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주라고 시인하는 것을 볼 때 알 수 있습니다.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 12:3)
그러므로 여러분과 저는 성령님을 통하여 거듭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육체의 부모님이 계신 것처럼 영혼의 어머니인 성령님도 계십니다.
성령으로 거듭 태어난 사람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인물중에 하나가 베드로입니다.
베드로는 성령을 받기 전에는 예수님을 따를 때 육신적으로 따랐습니다.
베드로가 육체적으로 예수님을 따를 때는 생각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에서 많은 약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십자가 지시는 것을 반대하다가 책망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죽기까지 따르겠다고 다짐하고서는 하루도 못되어 3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하며 저주하였습니다. (마 26:72)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보고도 그는 물고기 잡으러 갔습니다. (요 21:3)
그러나 오순절에 임하신 성령님을 받아 거듭난 이후에는 베드로의 모습이 완전히 변해버립니다. 그는 수 많은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담대하게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의 전도를 받은 사람들은 회개하며 3천명이나 예수님을 영접하였습니다. 초대교회의 역사는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행 2:14)
또한 예수님을 잡아 죽인 대제사장과 관원들 앞에서도 담대하게 예수님을 증거하였으며, 감옥에 같혀서도 결코 흔들리지 않고 담대하게 복음을 선포하였습니다. (행 4:8)
베드로의 이러한 변화는 바로 성령으로 다시 태어난 사람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사례로 꼽을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들의 모습이 다 베드로 같을 수는 없습니다. 베드로는 특별한 상황에서 특별하게 역사하신 성령님의 돌보심을 받은 인물입니다. 베도로는 바로 예수님이 피로 세우신 교회를 이 땅에 처음으로 세우는 일꾼으로, 사도로 세움을 입은 사람입니다. 따라서 우리와 베드로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성령님으로 거듭난 사람들은 달라진다는 사실입니다. 생각하는 것이 달라지고, 행동하는 것이 달라지고, 열매가 달라집니다. 왜냐햐면 우리의 영을 낳으신 성령님은 전지전능한 여호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의 능력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하고 막강합니다.
능력이 없는 엄마가 아기를 키우는 것과, 매우 탁월한 능력을 가진 엄마가 아기를 키우는 것에는 대단한 차이가 있습니다. 능력이 없는 엄마는 아기를 함부로 키웁니다. 그러나 능력이 있는 엄마는 아기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서 미리 준비하시고, 채워주시고, 지도해 주십니다. 우리를 낳으신 성령님은 능력이 무한하신 전능한 어머니이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탁월하게 키우실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사도 바울을 이러한 성령님의 능력에 대해서 고린도전서 12장에서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8 어떤 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9 다른 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10 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11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고전 12:8-11)
이 외에도 성령님의 능력은 무한하십니다. 고린도전서 12장 말씀은 자기가 낳으신 성도들을 키우기 위해서 주시는 대표적인 능력만을 몇 개 소개한 것 일뿐입니다.
이렇게 무한하신 능력으로 키우는 성령님의 자녀들에게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 (갈 5:22-23)의 열매가 나타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은 이러한 성령의 열매가 있습니까
있다면, 더욱 성령님을 의지하며 순종하십시오.
없다면, 왜 없습니까
무엇이 문제입니까
여러분은 성령님을 외면하거나 의지하지 않고 살아가는 잘못을 범하고 있을 것입니다. 성령님은 인격적이신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자기의 자녀를 억지로 두둘겨 패면서 교육하지 않으십니다. 설득하고 타일르십니다. 오래 참으시며 지켜보십니다. 비록 자기의 자녀가 자기를 무시하고, 소멸하고, 외면해도 화내지 않으시는 사랑의 어머니이십니다. 그리고 성령님은 자기의 자녀가 깨닿고 돌아서며, 자기를 의지할 때까지 엄청난 능력을 함부로 나누어주지 않으십니다. 고린도전서 12장에 나타난 성령님의 강력한 은사는 성령님을 사모하며, 의지하며, 소원하는 자에게 은혜로 나누어주십니다.
갓난아기가 엄마를 사모하며, 젖을 사모하며, 사랑을 원하듯이 우리들도 성령님을 사모하며, 의지하며, 사랑해야 합니다. 가장 훌륭한 신앙인은 자기의 힘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가장 훌륭한 자녀는 자기의 힘으로 돈을 벌어오는 것이 아니라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 새롭게 살아갈 특권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나이와 상관없이, 환경과 상관없이 우리들에게는 새로운 인생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의 영혼을 낳으신 영혼의 어머님이신 성령님이 우리에게 젖을 주시기 원하시며, 능력을 주시기 원하시며, 각종 성령의 열매를 주시기 원하십니다.
갓난 아기가 되십시오. 갓난 아기가 오직 엄마만 의지하고 기대하듯이, 당신도 성령님만 의지하고 기대하십시오. 성령님은 우리에게 즐겁고 행복한 삶을 주시기 원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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