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 제2의 생명인 성령
본문
여호와 하나님께서 지으신 이 우주는 얼마나 많은 신비에 쌓여 있습니까
그 중에서도 가장 신비한 것은 인간의 생명입니다. 우리에게 생명이 있기 때문에 살아 움직이고 말하고 듣고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생명이 우리를 아름답게 만들고 열매맺게 하고 기쁨으로 충만하게 합니다.
만약 이 지구에 생명이 없었다면 이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오직 죽음의 정적만이 가득한 세상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생명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천지 우주만물을 만드시고 사람에게 생기을 부어 넣어주시므로 우리가 생령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신 이 생명을 분류하면 크게 3차원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제1의 생명은 육체의 생명으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생명이 된 우리의 육신을 말하는데, 이 육체의 생명은 죽음과 함께 흙으로 돌아가고 맙니다. 우리는 이러한 생명을 가진 사람을 육적인 사람, 세상적인 사람, 마귀에 속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제2의 생명은 영적 생명을 의미합니다. 이는 육체의 생명에 성령이 임하셔서 거듭난 생명으로 죽지 않고 영생에 이르게 됩니다. 우리는 이러한 생명을 소유한 사람을 거듭난 사람, 예수의 사람, 영적인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제3의 생명은 부활의 생명을 말합니다. 육체적 생명은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지만 이 부활의 생명을 가진 사람은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여호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강림하실 때 부활의 몸으로 변화되어서 하늘나라로 올라갑니다.
제가 이렇게 생명을 제1생명, 제2생명, 제3 생명으로 분류해서 말씀드리는 것은 여러분들로 하여금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에 대한 이해를 쉽게 하고 자세히 알아 사모함을 갖게 하기 위함이지 성경의 다른 교리를 가르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들께서는 성경에 나와있는 '생명'에 대해 잘 아시고 더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제1의 생명을 가진 사람은 제2의 생명을 갖지 않았기 때문에 제2의 생명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고 느끼지 못합니다. 마치 죽은 사람이 산 사람에 대해 전혀 모르듯이 육의 생명을 가진 사람은 영의 생명을 가진 사람이 느끼는 것에 대해 전혀 느끼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제2의 생명을 가진 사람,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영생으로 들어가는 생명은 얻었지만 영생의 신령한 몸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느낄 수 없습니다. 즉 제2의 생명을 가진 사람은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기쁘고 즐겁기는 하지만 그 실체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그 신령한 몸을 이해하고 알 수 있겠습니까
이와 같이 제1, 제2, 제3의 생명은 분명하게 구분되어 집니다. 이렇게 서로 다른 생명에 대해 구분이 되면 성령에 대해 이해하기가 쉽고, 성령에 대해 이해하기가 쉽다는 것은 바로 거듭남이 무엇인가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또 이 거듭남은 생명과 관계가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우리들은 생명에 대한 사모함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1. 제2생명인 '성령'을 받아야 하는 이유
우리의 생명은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왔습니다. 가장 먼저 지음을 받은 아담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호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흙으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시므로 말미암아 생령이 되어 우리의 첫 조상이 된 것입니다(창2:7).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지으신 후에 그들과 함께 에덴 동산에서 영원히 지내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우리는 그 이유를 두 가지로 추측할 수 있는데,
첫째,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에덴 동산에 두시고 거기 오셔서 그들을 만나셨습니다.
둘째, 그 당시 사람들의 식물은 에덴 동산에 있는 과일이었는데 그 중에 특별한 과일인 생명나무 과일과 선악과가 있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생명나무 과일을 비롯한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임으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2:17)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아담이 에덴 동산에 있는 과일을 차차 먹어 들어가다가 결국은 생명나무 과일을 먹음으로 영생할 수 있도록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계획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마귀 유혹에 넘어가 먹어야 할 생명나무 과일은 먹지 않고 먹지 말라고 금하신 선악과를 먹었던 것입니다.
이는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반역이며 타락으로, 아담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함으로 말미암아 인간에게는 죽음이 왔습니다. 이 죽음은 영적으로는 여호와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된 죽음을 의미하며 육신적으로는 흙으로 빚어진 우리의 육신이 흙으로 돌아가는 죽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첫 조상의 범죄 함으로 인하여 인간은 이 땅에 잠시잠깐 사는 동안에 수고와 슬픔뿐인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죄에 빠진 인간들을 구원하실 방법을 갖고 계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원래 계획하셨던 영원한 여호와 하나님과의 교제와 그로 인해 영생에 이르도록 하는 구원의 문을 열어놓으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인간의 모든 죄를 다 담당하시고 십자가를 지심으로 말미암아 인류의 모든 죄를 청산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14-15절)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분명하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구원하실 계획을 세우고 계셨습니다. 이것은 제1생명을 가진 사람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죽을 생명이 살아나고 한시적인 생명이 영생에 이르게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5절). 물과 성령으로 거듭날 때 거기에 제2생명이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물'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미하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만이 우리의 죄를 씻음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 우리가 죄인임을 회개하고 주님의 보혈로 사함 받을 때 성령님이 우리 안에 새 생명을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이 새 생명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것으로써 지금까지 우리가 가지고 있던 생명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생명으로 우리 안에 역사 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5:17)라고 하였는데 이 새로운 피조물이 제2의 생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제2의 생명이 사람들에게 들어갈 때 죄의 담이 무너져서 여호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었던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되며, 죄인이 의인이 되어 여호와 하나님과 계속 교제할 수 있는 신령한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우리들이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생명,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제1의 생명은 제2의 생명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의 지혜나 지식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니고데모가 그 사실을 증명합니다.
니고데모는 유대인의 선생이요, 공회원의 한 사람으로 학식이 높으며 존경받는 부자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여호와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3절)는 주님의 말씀을 전혀 알아듣지 못하고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4절)라는 엉뚱한 질문을 하였습니다. 주님께서는 육적인 것이 아닌 영적인 것을 말씀하고 계시는데 니고데모는 육적인 것을 생각하고 질문한 것입니다.
제1생명인 육적인 생명을 가진 세상 사람들은 제2생명인 성령에 대하여 전혀 알지 못합니다. 이에 주님께서는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으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6-8)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니고데모는 성령으로 거듭나야 된다는 영적인 것을 주님께서 말씀하셔도 깨닫지 못하고 믿지도 못하며 오히려 "어찌 이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9절)라고 반문하였습니다.
니고데모의 이러한 반문에 주님께서는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12-13절)고 말씀하시며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15절)고 말씀하심으로 예수님께서 바로 영생을 주시는 분이시라고 하셨습니다.
사도 요한은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일5:12)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요5:24-25)고 말씀하심으로 바로 그 생명을 주님께서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주님께서는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17:3)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제2의 생명인 성령을 받아 거듭나야만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믿고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2. 거듭난 자와 거듭나지 못한 자의 차이
성도 여러분, 거듭난 사람과 거듭나지 못한 사람과는 어떠한 차이가 있을까요
주님께서는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요6:63)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제1생명인 육의 생명을 가진 사람은 제2생명인 영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는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 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요14:16-18)라고 말씀하시 면서 우리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면 세상사람들은 왜 성령에 대하여, 거듭남과 제2의 생명에 대해서 모를까요 그것은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께서 우리로 하여금 제2생명을 보게 하시고 느끼게 하시며 그 안에서 살게 하셨기 때문에 우리들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거듭난 자와 거듭나지 못한 자와의 차이는 마치 산 자와 죽은 자의 차이와 같은 것으로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그 안에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빚으셨을 때와 거기에 생기를 불어넣었을 때와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단순히 흙으로 빚어진 형상은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죽은 자와 같지만 여호와 하나님께서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심으로 살아났을 때는 전혀 다른 차원의 생명이 존재하게 된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생기를 불어넣으시므로 말미암아 생명이 있는 사람은 느끼고 움직이고 생각하며 말할 수 있어 생명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제1생명만 가진 사람은 제2생명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죽은 사람과 똑 같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생명, 즉 거듭난 사람에게는 그리스도의 생명이 역사 합니다.
영적인 일이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믿고 행하는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영, 그리스도의 생명이 없기 때문에 주님께 기도드리지도 않으며 말씀을 사모하지도 않고 주님을 찬양하지도 않습니다.
이와 같이 제1생명을 가진 사람은 전혀 주님 안에 있는 생명을 느끼지 못하기에 주님께서는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라"(마8:22)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제1생명인 육체의 생명만 가진 사람들은 주님의 일을 전혀 알지도 못하고 행하지도 못하다가 결국은 흙으로 돌아가 그 다음의 생명은 얻지 못하기에 주님께서는 세상 사람들을 '죽은 자'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생명이 우리 안에 들어온 사람은 주님을 기뻐하고 사랑하며 그 안에서 열매를 맺고, 이 후에 우리가 죽어 육신은 흙으로 돌아갈지라도 영은 주님 앞으로 올라갑니다. 죽은 자가 산 자를 모르듯이 그리스도의 영이 없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영이 있는 사람을 전혀 모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더욱더 성령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3. 성령충만 받고 거듭난 결과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영적인 생명을 부여받은 사람은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며 주님을 알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성경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는 사람은 죄를 멀리 합니다. 죄는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을 초래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영이 있는 사람은 우리의 죄와 허물을 날마다 주님 앞에 회개하며 주님의 보혈로 씻음을 받고 죄에 빠지지 않으려고 늘 근신합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죄를 씻음 받기보다는 그것이 죄 인줄도 모르고 자신들이 죄인인 것조차 깨닫지 못하기에 구원받을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법을 싫어하기에 여호와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고 여호와 하나님과 원수 되는 일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거듭나야 하며, 살아있는 생명이 성장하듯이 우리들도 그리스도 안에서 신령한 젖을 먹고 계속해서 성장해야 합니다.
살아있는 사람이 옳고 그름, 덥고 차가운 것 등을 분별하듯이 영의 사람은 영적으로 이로운 것인지, 해로운 것인지 분별하여 선택합니다. 그러나 육적인 사람은 전혀 영을 분별할 수 없습니다.
영적인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을 구원하러 오신 분임을 알고 가까이 하며, 우리를 도적질하고 멸망시키며 죽이려고 하는 마귀는 물리칩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죽은 세상사람들은 마귀가 있다는 사실조차 모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영적인 사람들은 전도에 힘을 씁니다. 자신이 새 생명을 얻고 보니 기쁘고 즐겁기에 핍박을 받아도 주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을 바라볼 때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생명이 없어 영생을 얻지 못하므로 그 영혼이 불쌍하고 안타까워서 계속 전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충만 받고 거듭난 사람들은 목표가 뚜렷합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 즉 성화되어 가는 것이 삶의 목표인 것입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므로 주님께서 속히 이 세상에 오시기를 기다리며 하늘나라를 위해 시간과 정성과 물질을 투자합니다.
이러한 증거가 거듭난 사람들에게 나타나야 합니다. 만약 여러분들에게 이러한 증거가 나타나지 않고 이러한 마음을 느끼지도 못하며 사모하는 심령이 없다면 빨리 거듭나셔야 됩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이렇게 영적인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생명, 거듭날 때의 기쁨을 늘 간직하고 항상 성령충만 받기를 사모합니다.
그런데 거듭남과 성령충만은 차이가 있습니다. 거듭남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지만 그것은 생명의 충만함은 아닙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의 열 두 제자들은 구원받고 거듭난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16:16)라는 믿음의 고백을 할 정도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그 안에 있는 거듭난 자들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그들 안에 있었기에 그들은 자신들의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좇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영적 전투를 벌이실 때 그들의 행동을 보면 무엇인가 부족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생명을 보전하기 위해 주님을 버리고 모두 도망가 버렸던 것입니다. 더군다나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다고 하던 베드로는 3번이나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하였습니다.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영적인 생명이 있는 거듭난 사람들이었는데 왜 주님을 모른다고 하였을까요 그것은 그들이 아직 완전하지 못하고 약했기 때문입니다.
거듭난다는 것은 영적으로 어린아이가 엄마 뱃속에서 태어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렇게 영적으로 태어난 사람은 계속해서 젖을 먹고 밥을 먹으며 성장해야 하듯이 우리들도 계속해서 성장하고 힘을 길러야 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믿음의 힘을 키워나갈 때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것입니다.
성령충만을 받기 위해서는 성령세례가 선행되는데,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는 그 계기가 오순절 마가 다락방에서 있었습니다. 그들은 성령을 받으려고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습니까 그들은 주님의 죽음과 부활하심과 승천하심을 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약속을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120명의 문도들은 제2, 제3의 생명이 있다는 것을 눈으로 직접 보았기 때문에 그것을 얻으려고 몸부림을 치며 간절히 기도드렸던 것입니다.
지금 자신들이 받은 생명으로는 부족하여 세상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성령충만 달라고 간절히 기도 드렸을 때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행2:2-4)와 같이 성령의 능력이 입혀진 것입니다.
마치 여호와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므로 말미암아 흙으로 빚은 형상이 생명체가 되었듯이 생명의 바람과 성령의 불이 120명의 문도들에게 임하여 성령의 충만을 받은 것입니다.
이렇게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그들은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요즘 말로 표현하면 업그레이드(upgrade)한 것입니다. 이는 '증가시키다', '상승시키다', '향상시키다'라는 뜻을 가진 말인데, 여러분들도 컴퓨터를 많이 사용하시니까 이 말의 의미를 잘 아실 것입니다. 속도가 느리고 저장할 수 있는 양이 적었던 컴퓨터를 업그레이드시키면 속도가 빨라지고 모든 기능이 향상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우리의 믿음을 성령으로 업그레이드시키는 것을 성령충만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렇게 성령충만 받으면 거듭나면서 강하고 담대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성령충만해진 결과 비겁자였던 그들이 주님을 위해 목숨까지도 버리는 복음의 전도자로 변화된 것입니다.
그래서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16:31).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행4:12).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행4:19)며 담대하게 복음을 외쳤던 것입니다.
이렇게 성령충만 받은 사람들은 주의 이름을 위하여 능욕받은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감옥에 갇히고 채찍질을 당하여도 찬송하고 기뻐하며 전도하기를 쉬지 않았습니다. 이는 그들 마음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넘쳐흘렀기 때문에 육신의 고통을 이기고 기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스데반 집사가 돌에 맞아 죽는 그 순간에도 마음 속에 영생의 기쁨이 흘러 넘쳤기 때문에 얼굴이 천사와 같이 빛났고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행7:60)라고 기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영생을 받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은 초대교회 때, 그들은 가르치는 사도나 배우는 성도나 모두 열심이었습니다. 기도와 찬송도 열심이었고 모이는 것과 여호와 하나님께 드리는 것도 열심이었습니다. 그리고 성도와의 교제도 활발하였으며 가난한 자를 많이 구제하였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적과 이사가 일어나 성도의 수가 날로 날로 많아졌습니다.
오늘날도 이와 같은 증거가 많이 나타나야 그리스도의 생명이 충만한 교회이며 성도인 것입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의 생명이 없는 교회는 열심도 없고 잠잠하여 교회의 성장을 기대할 수 없으며, 그리스도의 생명이 없는 사람들은 오히려 자신들이 옳은 줄 알고 열심 있는 교회나 성도들을 핍박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풍성한 사람은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헌신, 봉사하며 전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습니다.
저희 교회에 중병에 걸려 다 죽게 된 자매님이 전도를 받아 나왔는데 주님께서 치료해 주셔서 살아났습니다. 건강을 회복한 자매님은 열심히 충성하여 집사가 되고 구역장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3년을 여호와 하나님 나라를 위해 헌신하던 그 집사님께서 어느 날 저를 찾아와 "목사님, 구역장도 안하고 집사도 안 할래요. 너무 바빠서 제 시간이 전혀 없어요. "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하기 싫으면 그만 두십시오. 그리고 다시 침대에 가만히 누워 계세요. "라고 대답하였더니 얼른 제 말뜻을 알아듣고는 "아이고 목사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주님의 일을 계속 하겠습니다. "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생명이 있는 사람은 활동해야 하며 여호와 하나님과 늘 교제해야 합니다. 그럴 때만이 우리가 성령 충만하여 영원한 생명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언젠가 주님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여호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강림하실 때 성령으로 거듭나서 그리스도의 생명이 충만한 사람들은 변화되어 제3의 생명에 이를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제3의 생명인 부활에 대해서는 부활주일인 다음 주일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제2의 생명인 성령을 충만히 받아야 강하고 담대해져서 많은 영혼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성령충만 받은 여러분을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고 그리스도가 땅 끝까지 전파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신비한 것은 인간의 생명입니다. 우리에게 생명이 있기 때문에 살아 움직이고 말하고 듣고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생명이 우리를 아름답게 만들고 열매맺게 하고 기쁨으로 충만하게 합니다.
만약 이 지구에 생명이 없었다면 이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오직 죽음의 정적만이 가득한 세상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생명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천지 우주만물을 만드시고 사람에게 생기을 부어 넣어주시므로 우리가 생령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신 이 생명을 분류하면 크게 3차원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제1의 생명은 육체의 생명으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생명이 된 우리의 육신을 말하는데, 이 육체의 생명은 죽음과 함께 흙으로 돌아가고 맙니다. 우리는 이러한 생명을 가진 사람을 육적인 사람, 세상적인 사람, 마귀에 속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제2의 생명은 영적 생명을 의미합니다. 이는 육체의 생명에 성령이 임하셔서 거듭난 생명으로 죽지 않고 영생에 이르게 됩니다. 우리는 이러한 생명을 소유한 사람을 거듭난 사람, 예수의 사람, 영적인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제3의 생명은 부활의 생명을 말합니다. 육체적 생명은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지만 이 부활의 생명을 가진 사람은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여호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강림하실 때 부활의 몸으로 변화되어서 하늘나라로 올라갑니다.
제가 이렇게 생명을 제1생명, 제2생명, 제3 생명으로 분류해서 말씀드리는 것은 여러분들로 하여금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에 대한 이해를 쉽게 하고 자세히 알아 사모함을 갖게 하기 위함이지 성경의 다른 교리를 가르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들께서는 성경에 나와있는 '생명'에 대해 잘 아시고 더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제1의 생명을 가진 사람은 제2의 생명을 갖지 않았기 때문에 제2의 생명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고 느끼지 못합니다. 마치 죽은 사람이 산 사람에 대해 전혀 모르듯이 육의 생명을 가진 사람은 영의 생명을 가진 사람이 느끼는 것에 대해 전혀 느끼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제2의 생명을 가진 사람,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영생으로 들어가는 생명은 얻었지만 영생의 신령한 몸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느낄 수 없습니다. 즉 제2의 생명을 가진 사람은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기쁘고 즐겁기는 하지만 그 실체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그 신령한 몸을 이해하고 알 수 있겠습니까
이와 같이 제1, 제2, 제3의 생명은 분명하게 구분되어 집니다. 이렇게 서로 다른 생명에 대해 구분이 되면 성령에 대해 이해하기가 쉽고, 성령에 대해 이해하기가 쉽다는 것은 바로 거듭남이 무엇인가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또 이 거듭남은 생명과 관계가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우리들은 생명에 대한 사모함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1. 제2생명인 '성령'을 받아야 하는 이유
우리의 생명은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왔습니다. 가장 먼저 지음을 받은 아담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호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흙으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시므로 말미암아 생령이 되어 우리의 첫 조상이 된 것입니다(창2:7).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지으신 후에 그들과 함께 에덴 동산에서 영원히 지내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우리는 그 이유를 두 가지로 추측할 수 있는데,
첫째,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에덴 동산에 두시고 거기 오셔서 그들을 만나셨습니다.
둘째, 그 당시 사람들의 식물은 에덴 동산에 있는 과일이었는데 그 중에 특별한 과일인 생명나무 과일과 선악과가 있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생명나무 과일을 비롯한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임으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2:17)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아담이 에덴 동산에 있는 과일을 차차 먹어 들어가다가 결국은 생명나무 과일을 먹음으로 영생할 수 있도록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계획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마귀 유혹에 넘어가 먹어야 할 생명나무 과일은 먹지 않고 먹지 말라고 금하신 선악과를 먹었던 것입니다.
이는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반역이며 타락으로, 아담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함으로 말미암아 인간에게는 죽음이 왔습니다. 이 죽음은 영적으로는 여호와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된 죽음을 의미하며 육신적으로는 흙으로 빚어진 우리의 육신이 흙으로 돌아가는 죽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첫 조상의 범죄 함으로 인하여 인간은 이 땅에 잠시잠깐 사는 동안에 수고와 슬픔뿐인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죄에 빠진 인간들을 구원하실 방법을 갖고 계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원래 계획하셨던 영원한 여호와 하나님과의 교제와 그로 인해 영생에 이르도록 하는 구원의 문을 열어놓으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인간의 모든 죄를 다 담당하시고 십자가를 지심으로 말미암아 인류의 모든 죄를 청산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14-15절)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분명하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구원하실 계획을 세우고 계셨습니다. 이것은 제1생명을 가진 사람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죽을 생명이 살아나고 한시적인 생명이 영생에 이르게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5절). 물과 성령으로 거듭날 때 거기에 제2생명이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물'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미하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만이 우리의 죄를 씻음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 우리가 죄인임을 회개하고 주님의 보혈로 사함 받을 때 성령님이 우리 안에 새 생명을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이 새 생명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것으로써 지금까지 우리가 가지고 있던 생명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생명으로 우리 안에 역사 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5:17)라고 하였는데 이 새로운 피조물이 제2의 생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제2의 생명이 사람들에게 들어갈 때 죄의 담이 무너져서 여호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었던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되며, 죄인이 의인이 되어 여호와 하나님과 계속 교제할 수 있는 신령한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우리들이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생명,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제1의 생명은 제2의 생명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의 지혜나 지식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니고데모가 그 사실을 증명합니다.
니고데모는 유대인의 선생이요, 공회원의 한 사람으로 학식이 높으며 존경받는 부자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여호와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3절)는 주님의 말씀을 전혀 알아듣지 못하고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4절)라는 엉뚱한 질문을 하였습니다. 주님께서는 육적인 것이 아닌 영적인 것을 말씀하고 계시는데 니고데모는 육적인 것을 생각하고 질문한 것입니다.
제1생명인 육적인 생명을 가진 세상 사람들은 제2생명인 성령에 대하여 전혀 알지 못합니다. 이에 주님께서는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으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6-8)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니고데모는 성령으로 거듭나야 된다는 영적인 것을 주님께서 말씀하셔도 깨닫지 못하고 믿지도 못하며 오히려 "어찌 이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9절)라고 반문하였습니다.
니고데모의 이러한 반문에 주님께서는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12-13절)고 말씀하시며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15절)고 말씀하심으로 예수님께서 바로 영생을 주시는 분이시라고 하셨습니다.
사도 요한은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일5:12)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요5:24-25)고 말씀하심으로 바로 그 생명을 주님께서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주님께서는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17:3)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제2의 생명인 성령을 받아 거듭나야만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믿고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2. 거듭난 자와 거듭나지 못한 자의 차이
성도 여러분, 거듭난 사람과 거듭나지 못한 사람과는 어떠한 차이가 있을까요
주님께서는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요6:63)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제1생명인 육의 생명을 가진 사람은 제2생명인 영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는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 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요14:16-18)라고 말씀하시 면서 우리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면 세상사람들은 왜 성령에 대하여, 거듭남과 제2의 생명에 대해서 모를까요 그것은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께서 우리로 하여금 제2생명을 보게 하시고 느끼게 하시며 그 안에서 살게 하셨기 때문에 우리들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거듭난 자와 거듭나지 못한 자와의 차이는 마치 산 자와 죽은 자의 차이와 같은 것으로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그 안에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빚으셨을 때와 거기에 생기를 불어넣었을 때와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단순히 흙으로 빚어진 형상은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죽은 자와 같지만 여호와 하나님께서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심으로 살아났을 때는 전혀 다른 차원의 생명이 존재하게 된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생기를 불어넣으시므로 말미암아 생명이 있는 사람은 느끼고 움직이고 생각하며 말할 수 있어 생명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제1생명만 가진 사람은 제2생명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죽은 사람과 똑 같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생명, 즉 거듭난 사람에게는 그리스도의 생명이 역사 합니다.
영적인 일이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믿고 행하는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영, 그리스도의 생명이 없기 때문에 주님께 기도드리지도 않으며 말씀을 사모하지도 않고 주님을 찬양하지도 않습니다.
이와 같이 제1생명을 가진 사람은 전혀 주님 안에 있는 생명을 느끼지 못하기에 주님께서는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라"(마8:22)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제1생명인 육체의 생명만 가진 사람들은 주님의 일을 전혀 알지도 못하고 행하지도 못하다가 결국은 흙으로 돌아가 그 다음의 생명은 얻지 못하기에 주님께서는 세상 사람들을 '죽은 자'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생명이 우리 안에 들어온 사람은 주님을 기뻐하고 사랑하며 그 안에서 열매를 맺고, 이 후에 우리가 죽어 육신은 흙으로 돌아갈지라도 영은 주님 앞으로 올라갑니다. 죽은 자가 산 자를 모르듯이 그리스도의 영이 없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영이 있는 사람을 전혀 모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더욱더 성령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3. 성령충만 받고 거듭난 결과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영적인 생명을 부여받은 사람은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며 주님을 알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성경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는 사람은 죄를 멀리 합니다. 죄는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을 초래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영이 있는 사람은 우리의 죄와 허물을 날마다 주님 앞에 회개하며 주님의 보혈로 씻음을 받고 죄에 빠지지 않으려고 늘 근신합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죄를 씻음 받기보다는 그것이 죄 인줄도 모르고 자신들이 죄인인 것조차 깨닫지 못하기에 구원받을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법을 싫어하기에 여호와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고 여호와 하나님과 원수 되는 일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거듭나야 하며, 살아있는 생명이 성장하듯이 우리들도 그리스도 안에서 신령한 젖을 먹고 계속해서 성장해야 합니다.
살아있는 사람이 옳고 그름, 덥고 차가운 것 등을 분별하듯이 영의 사람은 영적으로 이로운 것인지, 해로운 것인지 분별하여 선택합니다. 그러나 육적인 사람은 전혀 영을 분별할 수 없습니다.
영적인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을 구원하러 오신 분임을 알고 가까이 하며, 우리를 도적질하고 멸망시키며 죽이려고 하는 마귀는 물리칩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죽은 세상사람들은 마귀가 있다는 사실조차 모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영적인 사람들은 전도에 힘을 씁니다. 자신이 새 생명을 얻고 보니 기쁘고 즐겁기에 핍박을 받아도 주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을 바라볼 때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생명이 없어 영생을 얻지 못하므로 그 영혼이 불쌍하고 안타까워서 계속 전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충만 받고 거듭난 사람들은 목표가 뚜렷합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 즉 성화되어 가는 것이 삶의 목표인 것입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므로 주님께서 속히 이 세상에 오시기를 기다리며 하늘나라를 위해 시간과 정성과 물질을 투자합니다.
이러한 증거가 거듭난 사람들에게 나타나야 합니다. 만약 여러분들에게 이러한 증거가 나타나지 않고 이러한 마음을 느끼지도 못하며 사모하는 심령이 없다면 빨리 거듭나셔야 됩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이렇게 영적인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생명, 거듭날 때의 기쁨을 늘 간직하고 항상 성령충만 받기를 사모합니다.
그런데 거듭남과 성령충만은 차이가 있습니다. 거듭남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지만 그것은 생명의 충만함은 아닙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의 열 두 제자들은 구원받고 거듭난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16:16)라는 믿음의 고백을 할 정도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그 안에 있는 거듭난 자들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그들 안에 있었기에 그들은 자신들의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좇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영적 전투를 벌이실 때 그들의 행동을 보면 무엇인가 부족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생명을 보전하기 위해 주님을 버리고 모두 도망가 버렸던 것입니다. 더군다나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다고 하던 베드로는 3번이나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하였습니다.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영적인 생명이 있는 거듭난 사람들이었는데 왜 주님을 모른다고 하였을까요 그것은 그들이 아직 완전하지 못하고 약했기 때문입니다.
거듭난다는 것은 영적으로 어린아이가 엄마 뱃속에서 태어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렇게 영적으로 태어난 사람은 계속해서 젖을 먹고 밥을 먹으며 성장해야 하듯이 우리들도 계속해서 성장하고 힘을 길러야 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믿음의 힘을 키워나갈 때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것입니다.
성령충만을 받기 위해서는 성령세례가 선행되는데,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는 그 계기가 오순절 마가 다락방에서 있었습니다. 그들은 성령을 받으려고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습니까 그들은 주님의 죽음과 부활하심과 승천하심을 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약속을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120명의 문도들은 제2, 제3의 생명이 있다는 것을 눈으로 직접 보았기 때문에 그것을 얻으려고 몸부림을 치며 간절히 기도드렸던 것입니다.
지금 자신들이 받은 생명으로는 부족하여 세상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성령충만 달라고 간절히 기도 드렸을 때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행2:2-4)와 같이 성령의 능력이 입혀진 것입니다.
마치 여호와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므로 말미암아 흙으로 빚은 형상이 생명체가 되었듯이 생명의 바람과 성령의 불이 120명의 문도들에게 임하여 성령의 충만을 받은 것입니다.
이렇게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그들은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요즘 말로 표현하면 업그레이드(upgrade)한 것입니다. 이는 '증가시키다', '상승시키다', '향상시키다'라는 뜻을 가진 말인데, 여러분들도 컴퓨터를 많이 사용하시니까 이 말의 의미를 잘 아실 것입니다. 속도가 느리고 저장할 수 있는 양이 적었던 컴퓨터를 업그레이드시키면 속도가 빨라지고 모든 기능이 향상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우리의 믿음을 성령으로 업그레이드시키는 것을 성령충만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렇게 성령충만 받으면 거듭나면서 강하고 담대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성령충만해진 결과 비겁자였던 그들이 주님을 위해 목숨까지도 버리는 복음의 전도자로 변화된 것입니다.
그래서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16:31).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행4:12).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행4:19)며 담대하게 복음을 외쳤던 것입니다.
이렇게 성령충만 받은 사람들은 주의 이름을 위하여 능욕받은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감옥에 갇히고 채찍질을 당하여도 찬송하고 기뻐하며 전도하기를 쉬지 않았습니다. 이는 그들 마음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넘쳐흘렀기 때문에 육신의 고통을 이기고 기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스데반 집사가 돌에 맞아 죽는 그 순간에도 마음 속에 영생의 기쁨이 흘러 넘쳤기 때문에 얼굴이 천사와 같이 빛났고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행7:60)라고 기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영생을 받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은 초대교회 때, 그들은 가르치는 사도나 배우는 성도나 모두 열심이었습니다. 기도와 찬송도 열심이었고 모이는 것과 여호와 하나님께 드리는 것도 열심이었습니다. 그리고 성도와의 교제도 활발하였으며 가난한 자를 많이 구제하였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적과 이사가 일어나 성도의 수가 날로 날로 많아졌습니다.
오늘날도 이와 같은 증거가 많이 나타나야 그리스도의 생명이 충만한 교회이며 성도인 것입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의 생명이 없는 교회는 열심도 없고 잠잠하여 교회의 성장을 기대할 수 없으며, 그리스도의 생명이 없는 사람들은 오히려 자신들이 옳은 줄 알고 열심 있는 교회나 성도들을 핍박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풍성한 사람은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헌신, 봉사하며 전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습니다.
저희 교회에 중병에 걸려 다 죽게 된 자매님이 전도를 받아 나왔는데 주님께서 치료해 주셔서 살아났습니다. 건강을 회복한 자매님은 열심히 충성하여 집사가 되고 구역장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3년을 여호와 하나님 나라를 위해 헌신하던 그 집사님께서 어느 날 저를 찾아와 "목사님, 구역장도 안하고 집사도 안 할래요. 너무 바빠서 제 시간이 전혀 없어요. "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하기 싫으면 그만 두십시오. 그리고 다시 침대에 가만히 누워 계세요. "라고 대답하였더니 얼른 제 말뜻을 알아듣고는 "아이고 목사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주님의 일을 계속 하겠습니다. "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생명이 있는 사람은 활동해야 하며 여호와 하나님과 늘 교제해야 합니다. 그럴 때만이 우리가 성령 충만하여 영원한 생명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언젠가 주님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여호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강림하실 때 성령으로 거듭나서 그리스도의 생명이 충만한 사람들은 변화되어 제3의 생명에 이를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제3의 생명인 부활에 대해서는 부활주일인 다음 주일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제2의 생명인 성령을 충만히 받아야 강하고 담대해져서 많은 영혼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성령충만 받은 여러분을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고 그리스도가 땅 끝까지 전파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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