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 성령의 강물이 흐르는 교회
본문
여러분, 여러분은 이 새해에 어떤 그림을 그리고 계십니까.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이 그리는 인생의 그림대로 올 한해를 살게 될 것입니다. 위대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위대한 한해를 살 것이요, 초라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초라한 한해를 살게 될 것입니다. 밝고 환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밝고 환한 한해를 살 것이요, 우중충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우중충한 한해를 살게 될 것입니다. 성공하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성공하는 한해를 살게 될 것이요, 실패하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실패하는 한해를 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그리는 그림대로 살게 돼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이 새해에 어떤 그림을 그리고 계십니까. 성공자의 그림입니까, 아니면 실패자의 그림입니까.
한 부인 있었습니다. 그 남편은 선장이었습니다. 남편은 바다를 너무 좋아했습니다. 그러다가 큰 파도에 휩쓸려 익사하고 말았습니다. 아들이 셋 있었는데 큰 아들도 바다를 동경해 배를 타고 나갔다가 죽고 말았습니다. 둘째 아들도 어머니를 속이고 바다로 나갔다가 죽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셋째 아들마저 바다를 동경해 선원이 되겠다고 고집을 피웁니다. 어머니는 울부짖습니다. '네가 바다로 가려거든 나를 죽이고 가라. ' 마침내 그 부인은 존경하던 목사님을 찾아가 상담을 합니다. 목사님은 그 부인 집에 찾아가서 셋째 아들을 한번 만나보겠다고 약속합니다. 목사님이 그 집에 와보니 마루에 아주 크고 멋진 바다 그림이 걸려 있습니다. 선장으로 일하던 정복차림의 남편을 그려놓은 바다 그림입니다. 목사님은 그 바다 그림을 당장에 치우고 평화로운 농촌 그림을 달아놓으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얼마 되지 않아 셋째 아들은 바다에 나가는 것을 포기하고 대신 농사를 짓겠다고 결심합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우리가 그린 그림대로 살게 돼 있습니다. 바다 그림을 그려놓고 그 그림을 자꾸만 바라보노라면 어느 새 내 인생은 저 바다를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농촌 그림을 그려놓고 그 그림을 자꾸만 바라보노라면 어느 새 내 인생은 저 들녘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그린 그림대로 살게 돼 있는 것입니다. 그림은 강력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림은 우리 인생을 그 그림의 방향대로 몰고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그리는 그림이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이 새해에 어떤 그림을 그리고 계십니까. 자기 인생의 그림을 그리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나 자기 인생의 그림을 그리면서 삽니다. 문제는 성공자의 그림을 그리느냐, 아니면 실패자의 그림을 그리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새해에 어떤 그림을 그리고 계십니까. 아예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고요. 그렇다면 실패자의 그림을 그리고 있는 셈입니다. 아무 그림도 그리지 않는다면 당연히 실패하게 돼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은 우리가 보는 그림대로 따라가게 돼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은 요단 들판의 그림을 바라보았고 그래서 요단 들판을 향해 떠났습니다.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내가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들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는 고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 같았더라.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들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하였고 롯은 평지 성읍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창13:8-12).
여러분, 롯은 물이 넉넉한 요단 들판의 그림을 바라보았고 그래서 그곳으로 떠나갔습니다. 롯은 그가 바라본 그림대로 움직인 것입니다. 여러분, 롯은 그가 본 요단 들판의 그림을 따라 떠나가고 이제 아브라함만 덩그마니 혼자 남았습니다. 고향 갈대아 우르를 떠나올 때 유일한 낙으로 삼고 데려왔던 조카 롯, 이제 그는 제 살길을 찾아 떠나고 혼자 남은 아브라함은 고독에 사로잡힙니다. 이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큰 그림을 보여 주십니다. 조카 롯이 약삭빠르게 선택한 요단 들판의 그림과는 도저히 비교할 수 없는, 아주 큰 그림을 보여 주십니다.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창13:14-15). 여호와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동서남북 사방의 땅 그림을 보여 주십니다. 이제 아브라함은 이 동서남북 사방의 땅 그림에 사로잡히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아브라함 자신뿐만 아니라 그 아들 이삭, 그 손자 야곱, 그 증손자 요셉까지도 이 땅 그림에 사로잡히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요셉이 그 형제에게 이르되 나는 죽으나 여호와 하나님이 너희를 권고하시고 너희를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여호와 하나님이 정녕 너희를 권고하시리니 너희는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창50:24-25). 아브라함의 증손자 요셉까지도 증조 할아버지 아브라함이 바라보았던 그 동서남북 사방의 땅 그림에 사로잡혔던 것입니다. '
너희를...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 여러분, 창세기 50장의 대미를 장식한 요셉뿐만 아닙니다. 출애굽기의 서막을 열어가는 모세도 그 동서남북 사방의 땅 그림에 사로잡히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내가 내려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에 이르려 하노라'(출3:7-8). 지금 여호와 하나님은 다시 모세에게 그 동서남북 사방의 땅 그림에 대해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여러분, 그림은 강력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림은 그 그림을 보는 사람을 그 그림의 방향대로 끌어들입니다. 아브라함을 끌어들였던 그 동서남북 사방의 땅 그림은 아들 이삭, 손자 야곱, 증손자 요셉도 끌어들입니다. 나중에는 모세까지도 끌어들입니다. 아니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200만명의 이스라엘 자손들까지도 다 끌어들입니다. 이처럼 그림은 강력한 흡인력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여러분은 이 새해에 어떤 그림을 그리고 계십니까. 여러분 자신뿐만 아니라 여러분의 자손들까지도 끌어들일 수 있는 그런 그림이 있는 것입니까. 여러분, 야곱은 그림을 따라 산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그는 자기 가문을 한번 일으켜 세우고 싶었습니다. '야곱이 그에게 이르되... 내가 오기 전에는 외삼촌의 소유가 적더니... 나의 공력을 따라 여호와께서 외삼촌에게 복을 주셨나이다. 그러나 나는 어느 때에나 내 집을 세우리이까'(창30:29-30). 그는 외삼촌 라반처럼 큰 가문을 일으켜 세우고 싶었던 것입니다. '나의 공력을 따라 여호와께서 외삼촌에게 복을 주셨나이다. 그러나 나는 어느 때에나 내 집을 세우리이까. ' 그 후에 그는 자기의 고용주였던 외삼촌 라반과 다시 한번 임금계약을 체결합니다.
'오늘 내가 외삼촌의 양떼로 두루 다니며 그 양 중에 아롱진 자와 점 있는 자와 검은 자를 가리어 내며 염소 중에 점 있는 자와 아롱진 자를 가리어 내리니 이같은 것이 나면 나의 삯이 되리이다'(창30:32). 그는 앞으로 흰 양떼에서 태어나는 점백이 양이나 검은 양, 검은 염소에서 태어나는 점백이 염소를 자기 삯으로 하겠다는, 아주 불리한 임금계약을 체결한 것입니다. 이제 그는 완전히 흰 양떼와 완전히 검은 염소만 칩니다. 점백이 양이나 검은 양, 점백이 염소는 이미 다 골라내어 버렸습니다. 이제 희지 않은 양이나 검지 않은 염소가 태어나면 그의 삯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는 완전히 무에서 시작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는 그림을 그립니다. 먼저 마음속에 그림을 그립니다. 아주 대단한 그림을 그립니다. 점백이 양떼들로 뒤덮여 있는 그림을 그립니다. 그리고 그 그림을 따라 전략을 짜고 과감하게 실천합니다. '야곱이 버드나무와 살구나무와 신풍나무의 푸른 가지를 취하여 그것들의 껍질을 벗겨 흰 무늬를 내고 그 껍질 벗긴 가지를 양떼가 와서 먹는 개천의 물구유에 세워 양떼에 향하게 하매 그 떼가 물을 먹으러 올 때에 새끼를 배니 가지 앞에서 새끼를 배므로 얼룩얼룩한 것과 점이 있고 아롱진 것을 낳은지라'(창30:37-39). 그는 나무 가지들을 벗겨 얼룩덜룩하게 만들어 양떼가 물먹는 개천의 물구유에다 세워놓습니다. 그는 양떼가 얼룩덜룩한 나무 가지를 보고 새끼를 배면 점백이 새끼를 낳을 것이라고 생각해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는 점백이 양떼, 점백이 염소떼로 뒤덮인 그림을 계속 해서 그려 보았던 것입니다. 심지어 그는 점백이 양떼 꿈을 꾸기도 합니다.
'그 양떼가 새끼 밸 때에 내가 꿈에 눈을 들어 보니 양떼를 탄 수양은 다 얼룩무늬 있는 것, 점 있는 것, 아롱진 것이었더라'(창31:10). 그는 계속 해서 점백이 양떼가 가득찬 그림을 그렸고 그래서 거부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에 그 사람이 심히 풍부하여 양떼와 노비와 약대와 나귀가 많았더라'(창30:43). 여러분, 우리는 우리가 그리는 그림대로 살게 돼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보는 그림대로 따라가게 돼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새해에 어떤 그림을 그리고 계십니까. 성공자의 그림을 그리고 계십니까, 아니면 여전히 실패자의 그림을 그리고 계십니까. 어떤 그림이든지 그림은 우리 인생을 그 그림의 방향대로 이끌어갈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그림다운 그림, 참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요. 간단합니다. 성령으로 충만하면 됩니다.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욜2:28). 여기서 장래 일을 말하는 예언은 언어로 그려지는 언어 그림입니다. 꿈은 마음속에서 그려지는 꿈 그림입니다. 이상은 눈에 그려지는 이상 그림입니다. 우리가 성령충만할 때 언어 그림이든지, 꿈 그림이든지, 이상 그림이든지 그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올해 우리 교회는 어떤 그림을 그려야 할까요. 저는 우리 교회에 성령의 강물이 흘러 넘치는 그런 그림을 그려봅니다. 우리 교회가 땅이라면 그 땅의 한 가운데를 가로질러 온 땅을 적시는 성령의 강물, 우리 교회의 온 땅을 적실 뿐만 아니라 동서남북 사방으로 흘러흘러 다른 땅까지도 적시는 성령의 강물. 저는 올해 이런 그림을 그려봅니다. 우리 교회 모든 성도들이 배불리 먹고 마시는 성령의 강물, 우리 교회 모든 성도들의 가정과 일터와 사업터에도 흘러 넘치는 성령의 강물. 저는 올해 이런 그림을 그려봅니다. 저는 한동안 이런 생각을 곰곰이 해보았습니다. '그 어떤 사람이 우리 교회에 찾아와도 그저 공짜로 줄 수 있는 게, 뭐 없을까.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우리 교회에 찾아와도 그저 공짜로 줄 수 있는 게, 뭐 없을까. 우리 교회가 아무 조건 없이 풍성하게 줄 수 있는 게, 뭐 있을까. 주어도 주어도 마르지 않는 게, 뭐 있을까. 돈도 모자라고 사람도 모자라는데 주어도 주어도 마르지 않는 게, 뭐 있을까. 그저 공짜로 수많은 사람들이 와서 즐길 수 있는 게, 뭐 있을까. 수많은 사람들이 줄줄이 서서 그냥 얻어갈 수 있는 것, 그것이 무엇일까. '
여러분, 우리 나라에 다음커뮤니케이션이라는 인터넷 회사가 있습니다. 이 회사는 인터넷의 관문이라고 할 수 있는 포털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인데 무려 500만명의 인터넷 회원을 거느리고 있습니다. 국내 인터넷 회원이 모두 600만명인데 이중에서 500만명을 거느릴 수 있다는 것은 실로 경이적인 일입니다. 여러분, 그 비결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무료 E메일 서비스입니다. 다음커뮤니케이션은 무료 E메일 서비스를 제공하는, 아주 획기적인 발상을 통해 작년 한햇동안 국내 인터넷 산업의 최강자로 부상할 수 있었습니다. 그저 공짜로 E메일 서비스를 제공한다니 수많은 사람들이 그리로 몰려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교회가 그저 공짜로 제공할 수 있는 게, 뭐 있을까요. 저는 성령 여호와 하나님과 그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교회에 아무나 와도 좋소. 와서 마시되 공짜로 마시세요. 우리 교회에 흘러 넘치는 성령 여호와 하나님의 강물을 마시세요. 마시되 그저 공짜로 마시세요. ' 저는 이 새해에 이런 교회의 그림을 그려보는 것입니다.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사55:1). 성령 여호와 하나님의 강물이 흐르고 성령 여호와 하나님의 포도주가 넘치고 성령 여호와 하나님의 젖이 솟구치는 그런 교회,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와서 그저 공짜로 마실 수 있는 그런 교회, 그래서 이 서부 경기도 일대에서 크고 바르고 힘있고 건강한 교회로 우뚝 서는 그런 교회. 저는 이 새해 정초에 이런 그림을 그려 보는 것입니다.
여러분, 돈은 우리 밖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이 소유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권력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밖에 있어서 많이 소유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안에 있는 것이 있습니다. 돈보다도, 권력보다도 더 좋은 것입니다. 바로 성령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고전6:19). 여기서 '너희'는 단수로서 '너' 한 사람을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성도 개개인의 마음속에 성령 여호와 하나님이 계시는 것입니다. 또한 성도 개개인이 모여 형성된 교회속에도 성령 여호와 하나님이 계십니다. '너희가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여호와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고전3:16). 여기서 '너희'는 복수로서 '너희들' 여러 사람을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성령 여호와 하나님은 성도 개개인으로 형성된 교회속에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령 여호와 하나님은 성도 개개인의 마음속에 계시고 또 교회속에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사실을 귀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우리 안에 보배 중에 보배인 성령 여호와 하나님이 계신데 우리는 우리 밖에서 뭔가 대단한 것을 찾아 헤매는 것 같습니다.
사향노루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이 사향노루는 자기의 코끝을 자극하는 매혹적인 향기에 도취되곤 했습니다. 하루는 이 향기의 실체를 한번 찾아봐야 하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산과 강을 찾아 헤맸습니다. 그러나 끊임없이 코를 자극하는 향기의 실체를 찾아낼 수 없었습니다. 한번은 절벽 위에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절벽 아래에서 바람이 불어오자 산뜻한 향기가 코끝을 자극했습니다. 그 순간 노루는 향기의 실체를 찾기 위해 그만 절벽 아래로 뛰어내리고 말았습니다. 노루는 피투성이가 된 채 죽어갔습니다. 향기의 실체가 바로 자기 자신의 뿔이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죽어갔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자신도 이 어리석은 사향노루와 같지나 않습니까. 바로 우리 안에 계신 성령 여호와 하나님을 알지 못한 채 이리저리 방황하고 있지나 않습니까. 여러분, 우리 안에 있는 보배를 발견합시다. 성령 여호와 하나님을 발견합시다. 성령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을 발견합시다. 우리가 살고 또 남을 살리려면 우리 안에 계신 성령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안에서 흘러나와야 합니다. 강물처럼 흘러나와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요7:38).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우리 안에서 성령의 강물이 흘러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정말 우리 안에서 성령의 강물이 흘러나오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남을 살리기는커녕 내가 마실 물도 제대로 나오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약속이 잘못된 것입니까. 아닙니다. 문제는 우리 자신에게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 와 계신 성령 여호와 하나님에 대해서 무지합니다. 설사 알고 있다 해도 성령 여호와 하나님을 전심으로 찾지 않습니다. 성령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을 전심으로 구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구하기만 하면 우리는 성령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을 받을 수 있습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눅11:13). 우리는 우리 밖에 있는 어떤 것을 찾아 헤매지 말고 우리 안에 있는 성령 여호와 하나님을 간절히 찾아야 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도 이 땅에 계실 때 성령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으로 일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행10:38).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도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일하셨던 것입니다.
그 위대한 사도 바울도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일했습니다.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고전2:4). 대사도 바울도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일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더욱 더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일해야 할 것입니다. 먼저 우리는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기도부흥부터 일으켜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부흥을 통해 심령부흥을 일으키고 전도부흥을 일으키고 교회부흥을 일으켜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부흥을 통해 가정부흥을 일으키고 일터부흥을 일으키고 만사부흥을 일으켜야 합니다. 이 새해에 우리 교회에 성령의 강물이 흘러 넘쳐 우선적으로 기도가 부흥하고 그래서 심령이 부흥하고 전도가 부흥하고 교회가 부흥하고 가정이 부흥하고 일터가 부흥하고 만사가 부흥해야 할 것입니다. 이 새해에 저는 이런 그림을 그려봅니다. 성령 여호와 하나님의 강물이 흐르고 성령 여호와 하나님의 포도주가 넘치고 성령 여호와 하나님의 젖이 솟구치는 그런 교회,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와서 그저 공짜로 마실 수 있는 그런 교회, 그래서 이 서부 경기도 일대에서 크고 바르고 힘있고 건강한 교회로 우뚝 서는 그런 교회. 이 새해 정초에 저는 이런 그림을 그려보는 것입니다.
여러분, 저는 이번 송구영신 예배 때 이런 말씀을 골라 받았습니다. '소망의 여호와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케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롬15:13). 정말 이 말씀대로 올해 우리 교회 가운데 성령의 능력이 넘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모든 소망도 넘치기를 원합니다. 모든 기쁨도 넘치기를 원합니다. 모든 평강도 넘치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올해 우리는 우리 밖의 것으로 인생의 승부를 걸지 맙시다. 우리 안에 있는 것으로 인생의 승부를 겁시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 여호와 하나님으로 인생의 승부를 겁시다. 우리 모두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일합시다. 목회도, 교회봉사도 성령으로 행합시다. 가사 일도, 직장 일도, 사업도 성령으로 행합시다. 그리할 때 우리 심령도, 교회도, 가정도, 일터도, 사업터도 항상 물댄 동산 같아질 것입니다. 그래서 30배, 60배, 100배로 결실하게 될 것입니다.
한 부인 있었습니다. 그 남편은 선장이었습니다. 남편은 바다를 너무 좋아했습니다. 그러다가 큰 파도에 휩쓸려 익사하고 말았습니다. 아들이 셋 있었는데 큰 아들도 바다를 동경해 배를 타고 나갔다가 죽고 말았습니다. 둘째 아들도 어머니를 속이고 바다로 나갔다가 죽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셋째 아들마저 바다를 동경해 선원이 되겠다고 고집을 피웁니다. 어머니는 울부짖습니다. '네가 바다로 가려거든 나를 죽이고 가라. ' 마침내 그 부인은 존경하던 목사님을 찾아가 상담을 합니다. 목사님은 그 부인 집에 찾아가서 셋째 아들을 한번 만나보겠다고 약속합니다. 목사님이 그 집에 와보니 마루에 아주 크고 멋진 바다 그림이 걸려 있습니다. 선장으로 일하던 정복차림의 남편을 그려놓은 바다 그림입니다. 목사님은 그 바다 그림을 당장에 치우고 평화로운 농촌 그림을 달아놓으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얼마 되지 않아 셋째 아들은 바다에 나가는 것을 포기하고 대신 농사를 짓겠다고 결심합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우리가 그린 그림대로 살게 돼 있습니다. 바다 그림을 그려놓고 그 그림을 자꾸만 바라보노라면 어느 새 내 인생은 저 바다를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농촌 그림을 그려놓고 그 그림을 자꾸만 바라보노라면 어느 새 내 인생은 저 들녘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그린 그림대로 살게 돼 있는 것입니다. 그림은 강력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림은 우리 인생을 그 그림의 방향대로 몰고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그리는 그림이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이 새해에 어떤 그림을 그리고 계십니까. 자기 인생의 그림을 그리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나 자기 인생의 그림을 그리면서 삽니다. 문제는 성공자의 그림을 그리느냐, 아니면 실패자의 그림을 그리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새해에 어떤 그림을 그리고 계십니까. 아예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고요. 그렇다면 실패자의 그림을 그리고 있는 셈입니다. 아무 그림도 그리지 않는다면 당연히 실패하게 돼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은 우리가 보는 그림대로 따라가게 돼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은 요단 들판의 그림을 바라보았고 그래서 요단 들판을 향해 떠났습니다.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내가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들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는 고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 같았더라.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들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하였고 롯은 평지 성읍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창13:8-12).
여러분, 롯은 물이 넉넉한 요단 들판의 그림을 바라보았고 그래서 그곳으로 떠나갔습니다. 롯은 그가 바라본 그림대로 움직인 것입니다. 여러분, 롯은 그가 본 요단 들판의 그림을 따라 떠나가고 이제 아브라함만 덩그마니 혼자 남았습니다. 고향 갈대아 우르를 떠나올 때 유일한 낙으로 삼고 데려왔던 조카 롯, 이제 그는 제 살길을 찾아 떠나고 혼자 남은 아브라함은 고독에 사로잡힙니다. 이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큰 그림을 보여 주십니다. 조카 롯이 약삭빠르게 선택한 요단 들판의 그림과는 도저히 비교할 수 없는, 아주 큰 그림을 보여 주십니다.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창13:14-15). 여호와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동서남북 사방의 땅 그림을 보여 주십니다. 이제 아브라함은 이 동서남북 사방의 땅 그림에 사로잡히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아브라함 자신뿐만 아니라 그 아들 이삭, 그 손자 야곱, 그 증손자 요셉까지도 이 땅 그림에 사로잡히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요셉이 그 형제에게 이르되 나는 죽으나 여호와 하나님이 너희를 권고하시고 너희를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여호와 하나님이 정녕 너희를 권고하시리니 너희는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창50:24-25). 아브라함의 증손자 요셉까지도 증조 할아버지 아브라함이 바라보았던 그 동서남북 사방의 땅 그림에 사로잡혔던 것입니다. '
너희를...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 여러분, 창세기 50장의 대미를 장식한 요셉뿐만 아닙니다. 출애굽기의 서막을 열어가는 모세도 그 동서남북 사방의 땅 그림에 사로잡히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내가 내려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에 이르려 하노라'(출3:7-8). 지금 여호와 하나님은 다시 모세에게 그 동서남북 사방의 땅 그림에 대해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여러분, 그림은 강력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림은 그 그림을 보는 사람을 그 그림의 방향대로 끌어들입니다. 아브라함을 끌어들였던 그 동서남북 사방의 땅 그림은 아들 이삭, 손자 야곱, 증손자 요셉도 끌어들입니다. 나중에는 모세까지도 끌어들입니다. 아니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200만명의 이스라엘 자손들까지도 다 끌어들입니다. 이처럼 그림은 강력한 흡인력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여러분은 이 새해에 어떤 그림을 그리고 계십니까. 여러분 자신뿐만 아니라 여러분의 자손들까지도 끌어들일 수 있는 그런 그림이 있는 것입니까. 여러분, 야곱은 그림을 따라 산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그는 자기 가문을 한번 일으켜 세우고 싶었습니다. '야곱이 그에게 이르되... 내가 오기 전에는 외삼촌의 소유가 적더니... 나의 공력을 따라 여호와께서 외삼촌에게 복을 주셨나이다. 그러나 나는 어느 때에나 내 집을 세우리이까'(창30:29-30). 그는 외삼촌 라반처럼 큰 가문을 일으켜 세우고 싶었던 것입니다. '나의 공력을 따라 여호와께서 외삼촌에게 복을 주셨나이다. 그러나 나는 어느 때에나 내 집을 세우리이까. ' 그 후에 그는 자기의 고용주였던 외삼촌 라반과 다시 한번 임금계약을 체결합니다.
'오늘 내가 외삼촌의 양떼로 두루 다니며 그 양 중에 아롱진 자와 점 있는 자와 검은 자를 가리어 내며 염소 중에 점 있는 자와 아롱진 자를 가리어 내리니 이같은 것이 나면 나의 삯이 되리이다'(창30:32). 그는 앞으로 흰 양떼에서 태어나는 점백이 양이나 검은 양, 검은 염소에서 태어나는 점백이 염소를 자기 삯으로 하겠다는, 아주 불리한 임금계약을 체결한 것입니다. 이제 그는 완전히 흰 양떼와 완전히 검은 염소만 칩니다. 점백이 양이나 검은 양, 점백이 염소는 이미 다 골라내어 버렸습니다. 이제 희지 않은 양이나 검지 않은 염소가 태어나면 그의 삯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는 완전히 무에서 시작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는 그림을 그립니다. 먼저 마음속에 그림을 그립니다. 아주 대단한 그림을 그립니다. 점백이 양떼들로 뒤덮여 있는 그림을 그립니다. 그리고 그 그림을 따라 전략을 짜고 과감하게 실천합니다. '야곱이 버드나무와 살구나무와 신풍나무의 푸른 가지를 취하여 그것들의 껍질을 벗겨 흰 무늬를 내고 그 껍질 벗긴 가지를 양떼가 와서 먹는 개천의 물구유에 세워 양떼에 향하게 하매 그 떼가 물을 먹으러 올 때에 새끼를 배니 가지 앞에서 새끼를 배므로 얼룩얼룩한 것과 점이 있고 아롱진 것을 낳은지라'(창30:37-39). 그는 나무 가지들을 벗겨 얼룩덜룩하게 만들어 양떼가 물먹는 개천의 물구유에다 세워놓습니다. 그는 양떼가 얼룩덜룩한 나무 가지를 보고 새끼를 배면 점백이 새끼를 낳을 것이라고 생각해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는 점백이 양떼, 점백이 염소떼로 뒤덮인 그림을 계속 해서 그려 보았던 것입니다. 심지어 그는 점백이 양떼 꿈을 꾸기도 합니다.
'그 양떼가 새끼 밸 때에 내가 꿈에 눈을 들어 보니 양떼를 탄 수양은 다 얼룩무늬 있는 것, 점 있는 것, 아롱진 것이었더라'(창31:10). 그는 계속 해서 점백이 양떼가 가득찬 그림을 그렸고 그래서 거부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에 그 사람이 심히 풍부하여 양떼와 노비와 약대와 나귀가 많았더라'(창30:43). 여러분, 우리는 우리가 그리는 그림대로 살게 돼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보는 그림대로 따라가게 돼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새해에 어떤 그림을 그리고 계십니까. 성공자의 그림을 그리고 계십니까, 아니면 여전히 실패자의 그림을 그리고 계십니까. 어떤 그림이든지 그림은 우리 인생을 그 그림의 방향대로 이끌어갈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그림다운 그림, 참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요. 간단합니다. 성령으로 충만하면 됩니다.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욜2:28). 여기서 장래 일을 말하는 예언은 언어로 그려지는 언어 그림입니다. 꿈은 마음속에서 그려지는 꿈 그림입니다. 이상은 눈에 그려지는 이상 그림입니다. 우리가 성령충만할 때 언어 그림이든지, 꿈 그림이든지, 이상 그림이든지 그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올해 우리 교회는 어떤 그림을 그려야 할까요. 저는 우리 교회에 성령의 강물이 흘러 넘치는 그런 그림을 그려봅니다. 우리 교회가 땅이라면 그 땅의 한 가운데를 가로질러 온 땅을 적시는 성령의 강물, 우리 교회의 온 땅을 적실 뿐만 아니라 동서남북 사방으로 흘러흘러 다른 땅까지도 적시는 성령의 강물. 저는 올해 이런 그림을 그려봅니다. 우리 교회 모든 성도들이 배불리 먹고 마시는 성령의 강물, 우리 교회 모든 성도들의 가정과 일터와 사업터에도 흘러 넘치는 성령의 강물. 저는 올해 이런 그림을 그려봅니다. 저는 한동안 이런 생각을 곰곰이 해보았습니다. '그 어떤 사람이 우리 교회에 찾아와도 그저 공짜로 줄 수 있는 게, 뭐 없을까.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우리 교회에 찾아와도 그저 공짜로 줄 수 있는 게, 뭐 없을까. 우리 교회가 아무 조건 없이 풍성하게 줄 수 있는 게, 뭐 있을까. 주어도 주어도 마르지 않는 게, 뭐 있을까. 돈도 모자라고 사람도 모자라는데 주어도 주어도 마르지 않는 게, 뭐 있을까. 그저 공짜로 수많은 사람들이 와서 즐길 수 있는 게, 뭐 있을까. 수많은 사람들이 줄줄이 서서 그냥 얻어갈 수 있는 것, 그것이 무엇일까. '
여러분, 우리 나라에 다음커뮤니케이션이라는 인터넷 회사가 있습니다. 이 회사는 인터넷의 관문이라고 할 수 있는 포털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인데 무려 500만명의 인터넷 회원을 거느리고 있습니다. 국내 인터넷 회원이 모두 600만명인데 이중에서 500만명을 거느릴 수 있다는 것은 실로 경이적인 일입니다. 여러분, 그 비결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무료 E메일 서비스입니다. 다음커뮤니케이션은 무료 E메일 서비스를 제공하는, 아주 획기적인 발상을 통해 작년 한햇동안 국내 인터넷 산업의 최강자로 부상할 수 있었습니다. 그저 공짜로 E메일 서비스를 제공한다니 수많은 사람들이 그리로 몰려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교회가 그저 공짜로 제공할 수 있는 게, 뭐 있을까요. 저는 성령 여호와 하나님과 그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교회에 아무나 와도 좋소. 와서 마시되 공짜로 마시세요. 우리 교회에 흘러 넘치는 성령 여호와 하나님의 강물을 마시세요. 마시되 그저 공짜로 마시세요. ' 저는 이 새해에 이런 교회의 그림을 그려보는 것입니다.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사55:1). 성령 여호와 하나님의 강물이 흐르고 성령 여호와 하나님의 포도주가 넘치고 성령 여호와 하나님의 젖이 솟구치는 그런 교회,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와서 그저 공짜로 마실 수 있는 그런 교회, 그래서 이 서부 경기도 일대에서 크고 바르고 힘있고 건강한 교회로 우뚝 서는 그런 교회. 저는 이 새해 정초에 이런 그림을 그려 보는 것입니다.
여러분, 돈은 우리 밖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이 소유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권력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밖에 있어서 많이 소유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안에 있는 것이 있습니다. 돈보다도, 권력보다도 더 좋은 것입니다. 바로 성령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고전6:19). 여기서 '너희'는 단수로서 '너' 한 사람을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성도 개개인의 마음속에 성령 여호와 하나님이 계시는 것입니다. 또한 성도 개개인이 모여 형성된 교회속에도 성령 여호와 하나님이 계십니다. '너희가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여호와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고전3:16). 여기서 '너희'는 복수로서 '너희들' 여러 사람을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성령 여호와 하나님은 성도 개개인으로 형성된 교회속에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령 여호와 하나님은 성도 개개인의 마음속에 계시고 또 교회속에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사실을 귀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우리 안에 보배 중에 보배인 성령 여호와 하나님이 계신데 우리는 우리 밖에서 뭔가 대단한 것을 찾아 헤매는 것 같습니다.
사향노루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이 사향노루는 자기의 코끝을 자극하는 매혹적인 향기에 도취되곤 했습니다. 하루는 이 향기의 실체를 한번 찾아봐야 하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산과 강을 찾아 헤맸습니다. 그러나 끊임없이 코를 자극하는 향기의 실체를 찾아낼 수 없었습니다. 한번은 절벽 위에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절벽 아래에서 바람이 불어오자 산뜻한 향기가 코끝을 자극했습니다. 그 순간 노루는 향기의 실체를 찾기 위해 그만 절벽 아래로 뛰어내리고 말았습니다. 노루는 피투성이가 된 채 죽어갔습니다. 향기의 실체가 바로 자기 자신의 뿔이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죽어갔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자신도 이 어리석은 사향노루와 같지나 않습니까. 바로 우리 안에 계신 성령 여호와 하나님을 알지 못한 채 이리저리 방황하고 있지나 않습니까. 여러분, 우리 안에 있는 보배를 발견합시다. 성령 여호와 하나님을 발견합시다. 성령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을 발견합시다. 우리가 살고 또 남을 살리려면 우리 안에 계신 성령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안에서 흘러나와야 합니다. 강물처럼 흘러나와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요7:38).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우리 안에서 성령의 강물이 흘러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정말 우리 안에서 성령의 강물이 흘러나오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남을 살리기는커녕 내가 마실 물도 제대로 나오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약속이 잘못된 것입니까. 아닙니다. 문제는 우리 자신에게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 와 계신 성령 여호와 하나님에 대해서 무지합니다. 설사 알고 있다 해도 성령 여호와 하나님을 전심으로 찾지 않습니다. 성령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을 전심으로 구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구하기만 하면 우리는 성령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을 받을 수 있습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눅11:13). 우리는 우리 밖에 있는 어떤 것을 찾아 헤매지 말고 우리 안에 있는 성령 여호와 하나님을 간절히 찾아야 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도 이 땅에 계실 때 성령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으로 일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행10:38).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도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일하셨던 것입니다.
그 위대한 사도 바울도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일했습니다.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고전2:4). 대사도 바울도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일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더욱 더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일해야 할 것입니다. 먼저 우리는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기도부흥부터 일으켜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부흥을 통해 심령부흥을 일으키고 전도부흥을 일으키고 교회부흥을 일으켜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부흥을 통해 가정부흥을 일으키고 일터부흥을 일으키고 만사부흥을 일으켜야 합니다. 이 새해에 우리 교회에 성령의 강물이 흘러 넘쳐 우선적으로 기도가 부흥하고 그래서 심령이 부흥하고 전도가 부흥하고 교회가 부흥하고 가정이 부흥하고 일터가 부흥하고 만사가 부흥해야 할 것입니다. 이 새해에 저는 이런 그림을 그려봅니다. 성령 여호와 하나님의 강물이 흐르고 성령 여호와 하나님의 포도주가 넘치고 성령 여호와 하나님의 젖이 솟구치는 그런 교회,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와서 그저 공짜로 마실 수 있는 그런 교회, 그래서 이 서부 경기도 일대에서 크고 바르고 힘있고 건강한 교회로 우뚝 서는 그런 교회. 이 새해 정초에 저는 이런 그림을 그려보는 것입니다.
여러분, 저는 이번 송구영신 예배 때 이런 말씀을 골라 받았습니다. '소망의 여호와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케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롬15:13). 정말 이 말씀대로 올해 우리 교회 가운데 성령의 능력이 넘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모든 소망도 넘치기를 원합니다. 모든 기쁨도 넘치기를 원합니다. 모든 평강도 넘치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올해 우리는 우리 밖의 것으로 인생의 승부를 걸지 맙시다. 우리 안에 있는 것으로 인생의 승부를 겁시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 여호와 하나님으로 인생의 승부를 겁시다. 우리 모두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일합시다. 목회도, 교회봉사도 성령으로 행합시다. 가사 일도, 직장 일도, 사업도 성령으로 행합시다. 그리할 때 우리 심령도, 교회도, 가정도, 일터도, 사업터도 항상 물댄 동산 같아질 것입니다. 그래서 30배, 60배, 100배로 결실하게 될 것입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