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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성령을 받을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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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매년 2월 하순이 되면 부흥회를 열어 우리의 신앙에 새롭게 불을 붙이게 됩니다. 이번에도 기도하고 준비한 부흥회를 통하여 큰 은혜를 받고 한 해 동안 성령으로 충만하고 주님 기뻐하시는 많은 일을 이루어 영광 돌리며 승리하시기를 축원 합니다.
우리 주님이 원하시는 삶은 성령으로 충만한 삶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성령을 받을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찾고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초막절 마지막 날에 예수님께서 매우 중요한 진리를 선포하셨습니다. 37, 38절입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
학자가 연구에 몰두하는 것은 지식에 대한 목마름 때문입니다. 새로운 것을 알고자하는 갈급함이 있습니다.
운동선수가 연습에 열중하는 것도 승리에 대한 목마름 때문입니다. 이기고 싶다는 것입니다. 환호성과 헹가래를 생각합니다. 그래서 목마름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업가가 밤낮으로 애쓰고 수고하는 것은 돈에 대한 목마름 때문입니다. 그 무엇인가를 향한 뜨거운 갈망이 타는 듯한 목마름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식이나 승리나 돈에 대한 갈망은 보편적이기보다는 특정한 사람들이 갖는 애착입니다. 누구나 지식에 집착하지는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지식보다는 운동에 더 강한 집념을 나타냅니다. 또 공부나 운동에는 별 관심이 없지만 장사에 특별한 관심을 가진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집착하고 몰두하는 것에 따라서 ‘저 사람은 학자로구나, 운동선수구나, 사업가로구나’ 하는 구분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예프스키가 도박에 관한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도박을 하는 이유가 돈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돈이 목적이 아니더라는 것입니다. 돈 때문에 도박을 하는 사람이라면 돈을 주면 도박을 하지 말아야 하는데, 돈이 생기면 여전히 도박장으로 달려가더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가끔 뉴스에서 도박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그때마다 이해 안 되는 부분은 부유층의 사람들이 도박을 한다는 점입니다. 의사, 교수, 회사의 중역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부인들이 도박을 하다가 붙들렸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참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가난 때문이거나, 돈이 궁해서 하는 짖은 분명히 아닐텐데 사람들의 눈을 피해가며, 음지에서 마음을 졸이며 화투짝을 붙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도스토예프스키가 내린결론은 "도박은 돈 때문이 아니라 육체의 깊은 목마름 때문이다"고 말했습니다. 채워지지 않고, 만족하지 못한 깊은 육체적 갈증 때문에 사람들은 이리 비틀거리고 저리 비틀거리는데 도박은 그 비틀거림의 한 형태라는 것입니다.
육체적 갈등(육체적 욕심)이란 무엇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까 우리의 부패한 본성입니다. 육체적 욕심의 근본 뿌리는 죄에 있습니다. 죄로 인하여 부패한 우리의 본성이 육체적 욕심을 자극하여 우리로 하여금 중단 없는 갈증을 느끼게 만드는 것입니다.
죄성을 가진 우리의 욕심은 쌓아도 쌓아도 끝이 없습니다. 즐기고 즐겨도 만족이 없습니다. 가지고 가져도 부족합니다. 나이가 들어 근력이 떨어지고, 기력이 쇠하여도 이 욕심은 우리의 마음에서 꿈틀거립니다. 내용과 크기와 모양은 바뀌었을 지라도 육체적 욕심은 떨어져 나가지 않습니다.
이 도시를 보십시오. 채워지지 않는 목마름 때문에 비틀거리는 욕망의 행렬은 멈추질 않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이 목마름을 해결하려고 헉헉거리며 도심의 거리를 헤매고 있습니다. 가히 도착적 증세를 보이며 끌려 다니고 있지 않습니까
이에 대한 대답이 오늘 예수님의 선포입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
그런데 사도 요한은 이 내용을 ‘믿는 사람이 받게 될 성령에 대한 말씀’이라고 39절에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성령에의 초대’입니다. 갈급한 사람들, 목마른 사람들은 다 오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이 생수의 강과 같은 성령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오늘은 ‘어떤 사람이 성령을 받는지’에 대해서 세 가지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오늘 말씀이 은혜가 되어 성령의 충만으로 갈급함을 푸시기를 축원합니다.
 첫째, 목마른 자가 성령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성령은 자신의 영혼이 목마르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성령을 갈망하는 사람에게 임합니다.
여러분, 자고로 자신이 환자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사람이 병원에 가는 법입니다. 먼저 자신이 환자라는 것을 인정해야 병을 고쳐야겠다고 결심하고 의사를 찾아가는 것이지, 실제로는 병이 깊을지라도 자기는 멀쩡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병원을 찾지 않습니다. 그리고 병원을 찾지 않으니 의사를 만날 수 없는 것은 당연지사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은 병든 영혼을 가진 사람 중에서도 자신에게 영적인 목마름이 있음을 알고 또 인정하는 사람만이 받을 수 있는 생수입니다.
‘나는 그 동안 껍데기만 변했지 속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구나. 여전히 혈기 부리는 자요, 투기하는 자요, 미워하는 자요, 성내는 자요, 거짓말하는 자요, 다투는 자요, 편가르는 자요, 뽐내는 자요, 의심하는 자요, 염려하는 자로구나. 지금 내 모습 가지고는 안되겠다. 이 모양대로는 살수가 없다. 바꿔야겠다. 변해야겠다. ’ 하면서 ‘주님, 나는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어떻게 하면 건짐을 받을 수 있습니까’ 하고 탄식하는 사람, 그런 갈증에 목이 타는 사람이 바로 생수인 성령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삭개오처럼 목말라해야 합니다.
 거지 바디매오처럼 목말라 해야 합니다.
 문둥이 열 사람들처럼 목말라 해야 합니다.
때문에 성도여러분! 우리는 먼저 목마른 자이어야 합니다. 목말라 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 은혜에 목말라하고, 진리인 말씀에 목말라 하고, 반듯한 신앙인으로서의 내 모습 만들기에 목말라 해야 합니다. 간절히 바라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성령은 그런 사람에게 주어지는 여호와 하나님의 선물이요 특별한 은혜입니다.
 둘째, 예수께로 오는 사람이 성령을 받습니다.
오늘 주님은 ‘내게로 오라’고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네가 목마르냐 내게로 오너라. ”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님 앞으로 나오는 행동을 요구하십니다.
기독교는 행동의 종교입니다.
불교에 입산에서 고행하는 특징이 있고
유교에 성균관에 입문해서 책을 읽는 특징이 있다면 기독교는 날마다 예수님을 따르는 행동에 그 특징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나를 생각하라’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언제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주님께 나아간다고 하는 것은 주님을 따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을 만나서 주님을 배우고 주님의 손을 잡고 주님과 함께 주님처럼 살아가는 것, 그렇게 살 때에 그 사람이 성령을 받습니다.
집 나갔던 둘째 아들이 모든 재산을 다 탕진하고 실패자가 되었습니다. 그때 이 아들이 어떻게 합니까 다 외면하고 다 조롱할 때에 ‘아버지께로 가자. 아버지께로 가야겠다. ’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결국 아버지께로 갑니다. 그래서 어떻게 됩니까 못된 놈이라고 아버지가 쫓아냈습니까 도리어 아버지의 지극한 환대를 받습니다. 아버지 팔에 감싸여서 아버지 집에 들어갑니다. 그는 다시금 아들의 위치를 회복했습니다. 아버지 집의 모든 것이 다시금 자기의 것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눅15장)
오늘 우리가 예수님께로 가는 것은 바로 이런 은혜를 입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님께로 가기만 하면 성령도 내 것이 됩니다. 그래서 지금 나는 실패자요, 패배자요, 낙오자일지라도 내가 예수님께로 가기만 하면 성령이 내게 임하시므로 나는 성공자요, 승리자요, 앞선 자가 되게 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5장에 한 여인이 나옵니다. 이 여인은 열 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은 끝에 인생의 실패자요 낙오자가 된 여인입니다. 그런데 이 여인이 ‘어떻게 하든지 병을 고쳐야겠다. 예수님께로 가서 옷자락이라도 만져야겠다. ’고 결심합니다. 그리고 수많은 군중을 뚫고 온 힘을 다해 예수님께로 갔습니다. 혈루증은 율법이 정한 부정한 병이라 사람들과 일정 거리를 유지해야 했던 이 여인에게 예수님을 둘러싼 많은 사람들은 극복하기 힘든 큰 장벽이었지만 그래도 예수님께로 가기 위해서 그 장벽을 뚫고 나갔습니다.
결국 어떻게 됩니까 완전하게 나음을 입었습니다. 깨끗이 치료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11:28절) 오기만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쉬게 해주겠다는 것입니다. 주님께로 가는 것이 방법입니다.
때문에 성도여러분!
주님께로 나와야 합니다. 주님께로 나와야 건강을 얻습니다. 주님께로 나와야 참된 쉼, 안식을 얻습니다. 주님께로 나오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입니다. 주님께로 나와야 성령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언제든지 교회 안에 있어야 합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 속해 있어야 합니다. 교회는 주님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최초로 어디에서 임하셨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오순절 다락방에 모인 120명의 모임 속에 임재하셨습니다. 오늘 여호와 하나님을 예배하는 이 자리에 나오신 여러분들에게 성령이 충만히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셋째, 믿는 자가 성령을 받습니다.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38절) 할렐루야!
믿음에는 ‘전폭적인 의지’와 ‘완전한 받아들임’이 들어 있습니다. 즉, 예수님을 완전히 수용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모든 것을 의탁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완전히 수용한다는 것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찾아오심을 전제로 하고, 예수님을 전폭적으로 의지하는 것은 우리가 예수님께로 나아가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그러니까 믿음에는 주님과 우리 사이의 오고 감이 있습니다. 이것을 ‘교통’이라고 합니다. (주보에 오타가 나와 있습니다. 오늘의 설교를 듣고 대답하기에
4. 나는 지금 주님을 전폭적으로 따라가고 있습니까가 아니고 전폭적으로 의지하고 있습니까 입니다. )
앞으로 몇 년만 지나면 텔레비전에 획기적인 변화가 있게 될 것입니다. 지금은 방송사에서 보내주는 화면을 일방적으로 받아 보기만 합니다. 그러나 아마도 몇 년 후에는 쌍방으로 화면을 주고받게 될 것입니다. 시청자가 안방에서 TV를 시청하면서 실시간으로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시대가 열릴 것입니다. 수 년 안에 TV에 설치된 카메라를 통해서 진행자와 인터뷰를 한다든지 프로그램에 직접 출연을 한다든지 하는 일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그 방면의 전문가들은 예측합니다.
그것이 바로 ‘교통’입니다. 교통은 서로 주로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내 모든 삶을 그 분께 다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교통이 전혀 무리 없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힘이 바로 믿음 속에 있습니다.
※ 인간관계 훈련 프로그램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두 사람이 짝이 되어서 한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등을 보이고 70cm쯤 떨어져서 서게 합니다. 그리고 등을 보인 앞사람에게 ‘그대로 뒤로 누우라’고 지시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 어떤 사람은 아예 동작을 하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은 뒤로 넘어지기는 하되 한 발은 뒤로 빼서 여차하면 자기 몸을 지킬 자세를 취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뒤에 서 있는 사람을 믿는 사람은 아무런 주저함 없이 뒤로 벌렁 누워 버립니다. 뒤에 있는 사람이 붙잡아 줄 것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그 밑바닥에 유리 조각이 가득하다 할지라도 뒷사람을 믿으면 아무런 두려움이 없는 것입니다.
믿음은 이런 것입니다. 우리는 넘어질 사람이고 예수님은 붙들어주는 사람입니다. 세상은 유리조각 같지만 예수님은 그 이전에 우리를 안전하게 붙잡아 주십니다. 때문에 예수님께 완전히 의탁하십시오. 완전히 맡겨드리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39절)
어떤 사람이 이 은혜를 누린다고 했습니까 "나를 믿는 자" 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어디에서 생수의 강이 흐른다고 했습니까 "그 배"에서 넘친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두 가지를 결심해야 합니다.
 첫째는, 내 속에 이미 성령이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둘째는, 내 속에 계신 성령이 강물처럼 흘러넘치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허락된 이 성령의 샘이, 이제 충만하게 흘러넘치기를 사모합시다.
성령의 역사를 사모하는 사람은 기도합니다.
성령의 역사를 사모하는 사람은 말씀을 사모합니다.
성령의 역사를 사모하는 사람은 순종합니다.
성도여러분! 오늘 여러분에게 그 어떤 갈급함이 있습니까 어떤 타는 듯한 목마름이 있습니까 갈급함이 있고 목마름이 있으면 언제든지 주님께로 오십시오. 주님께로 오면 주님이 성령을 주십니다. 성령이 여러분 인생 문제에 불같이 뜨겁게, 바람같이 강하게 임하셔서 인생의 갈급함과 갈증을 시원스레 풀어주실 것입니다.
목말라 주님께로 믿고 나아온 여러분들에게 이 시간 주의 성령께서 충만으로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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