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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성령님의 열매 2

본문

오래참음(Long-suffering)
'우리는 얼마나 참아야할까요' "오래"
즉 오래참음(Long-suffering)이란 어떤 아픔 중에서도 오랫동안 인고(long on suffering)하는 것이다. 헬라어로는 다툼을 피하고, 상처를 치유할 수 있고 용납하고 용서하며, 선한 의지를 증진시킬 수 있는 능력을 뜻하는 말로써, 의미상으로는 "성내는데 오래 걸린다"는 뜻이다.
그러므로화해는 빨리할수록 좋고, 화냄은 더디할수록 좋다
안타까운 것은 현대인들은 갈수록 조급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성경은 이것을 말세 현상이라고 경고한다(딤후 3:1-4). "…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 조급하며"
오늘날 현대인들이 오래참지 못하는 이유는 마음이 조급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만큼 사랑이 식어져가고 있다는 증표이다. 따라서 우리는 자기 자신을 향하여 진지하게 질문을 던져보아야 한다
'당신을 화나게 하는 일들이 무엇인가' '당신은 주로 무엇 때문에 화를 내는가' 어느 심리학자의 말대로, "그 사람의 인격은 그 사람을 화나게하는 문제의 크기로 알 수 있다. " 다시 한 번 더 물어보자. '요즘 나를 화나게하는 일들이 무엇인가' 그것이 당신의 인격 성숙도를 판정해준다.
반면에 잠언 16장 32절 말씀은 우리에게 이런 용기와 긍지를 갖게 한다.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다. "
앞에서 정의한대로, "오래참음이란 견디는 사랑이다(love enduring). " 그래서 H. Drummond는, "사랑은 이해하며 따라서 기다려준다"고 정의한다. 즉 사랑하기에 기다려볼 수 있는 것이요, 오래참을 수 있는 것이다. M. Luther의 말대로 오래참음이란 반대와 손해와 비난을 수용할뿐만 아니라, 자기에게 잘못을 행하는 사람이 개선될 것을 기다려볼 수 있는 인내심이다.
1)여호와 하나님이 오래참고 계신다
오래참음이란 삼위일체 여호와 하나님의 속성이다. "그분은 오래참음이 풍성하시다"(롬 2:4). "그분은 꾸준히 참으시면서 너그럽게 대해 주신다"(9:22). "우리를 향한 여호와 하나님의 오래참으심은 다함이 없으시다"(벧전 3:20. 벧후 3:9. 렘 15:15).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일에 끝없이 참아주심의 본을 보여주신다"(딤전 1:16).
2)오래참음은 성령님만이 만드실 수 있는 성질이다
오래참음이란 우리가 달성할 수 있고, 도달할 수 있는 것으로, 다른 사람들의 실패나 실수에 대하여 비난하거나 판단하는 것을 정지시킬 수 있는 내적 능력을 의미한다. 이런 내적 능력은 오직 성령님 자신에 의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이처럼 기독교가 "인내의 학교(the Academy of the Patience)"라면, "성령님은 우리의 가정교사이시다(the Holy Spirit is our tutor). " 아, 복되도다! 우리에게는 그처럼 힘들고 어려운 것이 성령님께는 그렇게도 쉬우시다니!
따라서 성령충만한 사람들은 오래참음의 사람들이었다. 노아가 그랬고, 모세가 호렙산에서 성령충만함을 받은 후에는 얼마나 오래참는 사람이 되었으며, 요셉은 여호와의 신이 머무는 사람으로 그가 어떠한 억울함과 좌절의 늪으로 내동댕이쳐져도 그는 묵묵히 참고 기다렸으며, 성령이 떠난 사울은 잠시도 참고 기다리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버렸으나, 성령의 사람 다윗은 그 어떠한 인생의 딜레마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풀어주시고 해결하실 때까지 "기다리며 기다리고 오래참았다"(시 40:1)
우리 다같이 찬송을 불러 봅시다. "기다려 그때를, 주의 뜻 이뤄지리 기다려 …"
5. 자 비(Gentleness)
오래참음이 그리스도를 닮음에 있어서 수동적인 면이라면, 자비와 양선(gentleness & goodness)은 능동적인 면이라 할 수 있다.
자비란 인자한 성품을 말한다. 즉 다른 사람에게 온화하고 친절을 다하여 호의를 베푸는 성품이다. 따라서 자비를 "친절(kindness)" 또는 "온정(kindliness)"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 바울이 자비를 "오래 참으면서도 친절한 것이라"고 정의한대로, 자비란 품위있는 사랑이다.
1)여호와 하나님을 닮은 성품이다
성경은 여호와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관하여 수없이 말하고 있다(시 103:8). 자비와 긍휼이 한이 없으신 분이시다. 예수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긍휼히 여기시며, 민망히 여기시며, 측은히 여기시는 너무나 온정적인 사랑을 보여주신다(눅 4:40. 5:13,3
1. 7:13).
즉 예수님의 품성은 자상한 성품이요, 동정적인 성품이요, 다정한 성품이다.
당신은 자비로우시고 온화하시며 온유하신 예수님을 따르는 참 제자인가
2)성령님의 위대한 능력이다
인생의 위대함(greatness)은 인자함(gentleness)에서 온다. 세상은 권력과 돈이 있어야 위대해질 수 있다고 가르치나, 성경은 인자함이 위대한 능력이라고 말한다. 다윗은 "주님의 인자하심이 나를 크게(great) 하셨다"고 감사한다(시 18:35). Henry Martyn은 인자한 성품만이 거칠고 강팍한 마음을 녹일 수 있는 불가항력적 능력(irresistible power)이라고 말한다.
이것이 곧 그리스도의 심장이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온유하시고 인자하신 말씀 때문에 그의 심성에 큰 감화를 받은 사실을 기억할 때마다 종종 울었던 것 같다"고 루터는 해석해 준다(요 21장).
"인자한 말을 가지고 사람을 감화시키며, 갈길을 잃은 무리를 잘 인도하게 하소서"(찬 347-2).
"인자한 자는 자기의 영혼을 이롭게 하고, 잔인한 자는 자기의 몸을 해롭게 하느니라"(잠 11:1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마 5:7).
6. 양 선(Goodness)
이미 언급한대로 양선이란 사랑의 실천적인 면이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양선은 행동하는 사랑이라"고 정의한다. 즉 선행을 행하는 착함을 말한다. 우리는 이런 성품을 착한 사마리아 사람 비유에서 볼 수 있다(눅 10:30-37).
특히 성경에서는 "선함"을 "아름다움"으로, "선한 일"을 "아름다운 일"로 번역한다.
1)삼위일체 여호와 하나님의 본성이시다
우리 여호와 하나님은 항상 우리에게 좋은 것만 주신다(창 1장. 시 103:5. 약 1:17. 마 7:11).
다윗은 이렇게 찬양한다. "주님이 베푸신 은혜(goodness)가 어찌 그리 큰지요"(시 31:19).
여호와 하나님(God)과 선(good)이라는 단어는 같은 어근에서 나왔다.
2)착한 일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한 우물에서 쓴물과 단물이 같이 나올 수 없고, 나무가 좋아야 열매도 좋다(약 3:1
1. 마 12:33).
즉 심성이 먼저 착해져야 착한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Evan H. Hopkins는 이 말씀을 참 아름답게 해석한다. "성품과 행실, 신앙과 행위, 말과 행동은 항상 하나가 되어야 한다(Character and conduct; creed and deed; word and work should always be united). "
특히 성령님은 선한 영이시다(시 143:10). 또 성령님의 열매는 모든 착함에 있다(엡 5:9).
그러므로 성령의 사람들은 모두가 그 심성이 착했다(요셉과 바나바 / 행 11:24).
더욱이 우리 예수님은 성령충만하신만큼 착한 일을 많이 하셨다(행 10:38).
이제 우리는 더욱 선한 것을 본받고(요삼 11절), 착한 말부터 하며(엡 4:29), 선행을 서로 격려하자(히 10:24). 예수님께서 우리의 짐을 덜어주신 것처럼, 우리 역시 다른 사람에게 선을 행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고통스런 짐을 덜어주는 자가 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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