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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성령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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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미국의 수도 워싱턴을 방문하였을 때 여러 가지 인상 깊었던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미국의 대통령 가운데 가장 훌륭한 가문의 출신으로서 미국사에 위대한 업적을 남긴 존 에프 케네디(John F. Kennedy)의 묘지를 방문한 것이었습니다. 짧은 재임기간에도 불구하고 온 세계에 강력한 인상을 남긴 용감한 대통령 케네디의 묘지 앞에는 많은 참배객이 그의 위대한 삶을 회고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묘소 앞에는 성화가 꺼지지 않고 타고 있었습니다. 왜 그렇게 꺼지지 않는가 하고 자세히 보았더니 기름 탱크에서 기름을 계속 공급해 주기 때문이었습니다. 기름이 충분히 공급되므로 말미암아 그 성화의 불꽃은 꺼지지 않고 계속 타오를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케네디 묘역의 불꽃이 결코 꺼지지 않는 것처럼 초대교회 선교의 열정 또한 꺼지지 않는 뜨거운 가슴의 불꽃이 되도록 계속해서 기름을 공급받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 제자들이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간절히 기도하다가 하늘로부터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 성령으로 새롭게 된 제자들이 시들지 않는 뜨거운 가슴과 복음의 열정으로 예루살렘과 사마리아와 안디옥과 소아시아와 구라파에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이 성령의 뜨거운 불길은 2천여 년이 지난 지금도 시들지 않고 훨훨 타오르고 있습니다.
오늘은 오순절 다락방에 임하셨던 성령강림을 묵상하면서 우리도 성령의 충만함을 입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1. 성령은 보혜사의 역할을 하십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요 14:16) 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승천하시기 전에 우리에게 보내주시기로 약속한 이 보혜사란 헬라어로 파라클레토스(παρακλητο s )로써 옛날 그리스 법정의 변호인을 가르킵니다. 보혜사는 요즘의 변호사처럼 선임비를 받고 일하는 전문인이 아니고 대부분 피고인의 친구들이었습니다. 때로는 죄인을 변호하다가 함께 죄인으로 몰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보혜사는 희생을 각오하고서 친구의 무죄판결을 위해 계속 곁에 앉아 위로하며 힘이 되어주는 친구 중의 참 친구였습니다.
그러니까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당신이 승천하신 다음에 좋은 친구를 붙여주시겠다고 약속하셨는데 그 친구가 바로 보혜사, 곧 성령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수난 당하실 때 비겁하게 예수를 부인하고 배반하였던 제자들이 유대인 고관대작들의 모임인 공회와 수많은 군중 앞에서 담대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소아시아와 로마제국 전역을 다니면서 열성을 다해 복음을 전했던 힘은 어디에서 나온 것이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보혜사 성령이 함께 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언제나 친구로 옆에 계시는 성령의 힘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선교의 열정을 꺾을 사람은 그 어디에도 그 어느 시대에도 없었습니다. 그 보혜사 성령이 오늘도 우리에게 한결같이 오십니다. 이 성령은 예수님과 똑같은 분이십니다. 여호와 하나님과 예수님은 한 분이시고 예수님과 성령님도 한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은 한 분이십니다. 이 삼위일체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은 성령께서 오셔서 우리와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요한 웨슬레 선생은 "The best of all is God is with us"라고 하였습니다. 즉, "세상에서 가장 좋은 일은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이다"는 말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우리가 그 어떤 생활 속에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에게는 최선의 시간이요 최대의 행복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후 부활하시겠다는 소문을 듣고도 믿지 못하여 고향을 향해 힘없이 걷고 있던 엠마오의 두 제자에게 주님은 오셔서 같이 걷고 계셨습니다. 주님은 성령으로 오셔서 걷고 계셨기 때문에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혹은 의식을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확실한 사람은 주님이 나와 함께 걷고 있는 것을 믿고, 나의 인생 길에 동행하신다는 사실을 확실히 압니다.
식탁에도 같이 하시고, 침실에서도 같이 하시며, 학교에서, 직장에서, 공장에서, 시장에서도 함께 하십니다. 또한 실패와 좌절의 현장, 실직과 파산의 현장에서도 주님은 함께 계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보다 중요하고 귀한 일도 없습니다.
2차대전 때였습니다. 영국군인들 수십만이 불란서의 어느 항구를 통해 후퇴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서 독일군들은 영국군의 해상퇴로를 막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독일군들이 집결해 있는 항구에 대풍랑이 일어나서 도저히 배들이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정박해 있던 배조차도 산산조각이 날 정도로 피해가 대단했습니다. 그렇지만 영국군이 있는 항구의 날씨는 아주 잔잔하였기에 수십만 명이 아무 문제없이 후퇴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듯 영국군이 순조롭게 후퇴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지난 주일에 전 영국군이 모여 "여호와 하나님, 독일군에게서 우리를 지켜 본
국으로 무사히 돌아가게 하옵소서" 하며 기도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주일날을 성수하는 것은 중요한 것이고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오늘 우리 주님이 이 자리에 오셔서, 아니 여러분의 삶의 현장에 오셔서 참된 친구로 동행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나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수 1:9).
2. 성령은 영원한 평안을 주십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고 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세상에서 행복을 주는 것은 무엇입니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당연히 물질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더욱이 오늘날과 같은 큰 경제위기에 빠진 경우는 더할 나위 없이 물질처럼 귀한 것이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오늘의 경제위기를 빨리 극복할 수 있기를 기원하고 또한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 어떤 희생을 치르고서라도 이 경제위기를 이겨나가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실은 물질보다도 더 소중한 것은 마음의 평화요, 가정과 나라의 평안입니다.
물질은 순간적인 만족을 가져다 줄 수는 있지만 궁극적인 행복과 기쁨을 가져다주지는 못합니다.
어느 젊은 변호사가 이름을 날리게 되었습니다. 변호사로 많은 돈을 벌었고 수천 평의 땅을 사서 저택을 짓고 여유자금을 가지고서는 땅도 여기 저기에 마련해 두었습니다. 그는 어려운 사람을 위해서는 무료변론도 주저하지 않았고 인권 변호사로서도 명성을 날리게 되었기 때문에 대통령도 그를 인정해서 정부의 고위직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부동산 투기 의혹이 일어나 그는 그만 몇 일만에 그 자리를 사임하지 않으면 안될 비운을 겪었습니다. 그 뒤로 그는 마음을 걷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정상을 바로 눈앞에 두고 그만 탈락되어 죽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전에는 그렇게 뿌듯하게 여겨졌던 많은 재산도 이제는 마치 흉한 벌레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아무런 삶의 낙을 느끼지 못하며 그저 매일 술만 마시는 폐인으로 변해갔습니다.
벤자민 플랭클린은 말하기를 "돈은 결코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 수 없었고 앞으로도 절대 그렇게 하지 못할 것이다. 또 돈이 인간에게 행복을 가져올 줄로 생각하지만 사실 돈은 아무런 행복의 요소를 가지고 있지 않다.
사람은 돈을 많이 벌면 벌수록 더욱 큰돈을 벌려고 한다. 돈은 공허를 메우기보다는 또 하나의 공허를 낳을 뿐이다"라고 했습니다. 권력의 정상에 오르자마자 낙마하게 된 이 변호사는 그것 때문에 인생을 좌절하게 되었지만 권력도 물질도 명예도 모두가 다 인간을 잠시 잠깐동안만 즐겁게 해주는 것일 뿐입니다. 그러나 영원한 평안, 영원한 행복의 무지개는 거기에 있지 않습니다.
인생에 낙담하여 술만 마시는 그 변호사의 집안에 또 다른 시련이 닥치게 되었습니다. 중학교에 다니는 외아들이 불치의 병을 앓게 된 것입니다. 정신이 든 이 변호사는 아들의 병을 고쳐보고자 일본으로 미국으로 세계적인 병원을 다 다녀보았지만 모두가 다 허사였습니다. 그 아이의 병은 현대의학으로는 도저히 고칠 수 없는 병이었습니다. 그는 자기의 출세길이 막힌 것도 분한데 자식에게까지 이런 시련이 닥친 상황을 도저히 참아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중고등학생과 대학 때 신앙생활을 했기에 여호와 하나님이 어렴풋이 생각이 나서 여호와 하나님께 욕도 하고 항변도 했습니다. 그 뒤에 아내가 자식이 죽게 생기니까 신유의 능력이 있다는 이들을 불러 들여 기도를 수 없이 받았습니다. 아마 수백 명은 다녀갔을 것입니다. 그는 자식을 위해서 기도원에도 가고 여호와 하나님께 부르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그 무엇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의학, 학위, 명성, 인간의 자랑, 돈, 그 무엇도 인간의 생명 앞에서는 무력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무심코 성경을 펴 읽다가 신비한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언제나 책꽂이에 꽂혀만 있던 먼지 묻은 성경책을 어느 한 순간 갑자기 읽고싶은 충동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책을 펼치게 되었는데 펼쳐진 성경말씀 앞에서 그가 그만 거꾸러졌습니다.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 이 말씀 앞에서 그는 자기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절망한 자신에게 하늘의 평강을 주시기를 원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뜨겁게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그 뒤 그의 아들은 세상을 떠났지만 그들 내외는 영원한 평안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세상이 달랐습니다. 해도, 달도, 사람도 다 다르게 보였습니다. 그는 오직 예수만을 위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를 그렇게 감격하도록 한 분은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영원한 평안을 주십니다. 그 평안이 있어야 참된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3. 성령은 진리의 영이십니다.
성령님은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영이십니다(요 14:17). 성령이 임하면 복음의 증인이 됩니다. 예수의 제자들도 오순절 성령강림 전에는 단 한번도 예수를 전하지 않았지만 성령을 받고는 지칠 줄 모르는 선교의 열정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런 힘은 성령에 의한 것이었지 인간의 자각 정도로 그렇게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부터 십 수년전 강원도 신림에 있는 가나안 농군학교에 가서 한 주간동안 김용기 장로님에게 훈련을 받은 일이 있습니다. 그 분은 막사이 상을 받은 저명한 분이었는데 그의 아들, 며느리, 딸, 사위 모두가 장로님과 함께 농군학교에서 우리 나라 젊은이들의 정신훈련과 복음적인 삶의 실천을 위해 사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그분의 일가족을 접하고는 눈물이 날 정도로 감격했습니다. 김용기 장로님은 우리 나라가 사는 길은 젊은이들이 복음 앞에 무릎을 꿇어야 된다는 일념으로 농군학교 운동을 하시었습니다. 그분의 그 숭고한 정신을 그분의 아들, 며느리, 딸, 사위, 모두가 따르고 있었습니다. 그분은 채플시간에 복음을 목이 터지도록 전했습니다. 그리고는 우리 훈련생들을 데리고 원주에 나가서 복음 전도실습을 시켰습니다.
그것은 그의 속에 계시는 성령님께서 강력하게 역사하시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성령은 진리의 영입니다. 성령이 함께 하면 복음을 담대히 증거합니다. 우리 성도들도 복음을 전하는데 생을 바쳐야 합니다.지금도 저 하늘나라에서 구름같이 많은 증인들이 우리의 복음전도생활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부끄럽게 서는 이들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주님과 허다한 증인들 앞에서 자랑스럽게 설 수 있도록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나를 통해서 구원받는 이들이 있어야 합니다.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강림하신 성령의 능력이 오늘 이 자리에 함께 한 우리 모두에게 뜨겁게 임하시어 우리도 성령의 역사를 이루어 가는 귀한 증인의 삶을 살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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