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 너희는 성령에 의하여 다시 살아나리라
본문
제가 중학교 다닐 때쯤에 한창 유행하던 말이 하나 있습니 다. 그것은 셰익스피어의 유명한 작품인 ‘햄릿’에 나오는 명대 사입니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주인공인 햄릿이 자신의 복잡한 처지를 한 탄하면서 ‘살기도 어렵고 죽기도 힘든’자신의 괴로운 심정을 털어놓은 말입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하루하루 살아간다는 것이 그리 쉽지 않습니다. 물론, 새 아침이 밝아올 때마다 ‘아, 오늘 도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새로운 아침을 주셨구나!’하면서 환희 와 감격 속에서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입니다. 하 지만, 하루하루를 죽지 못해서 억지로 사는 사람들도 적지 않 으리라고 여겨집니다.
보편적으로, 우리 인간이 갖고 있는 본능은 ‘행복하게 오래 살고 싶어 하는 마음’일 것입니다. 할 수만 있다면, 영원히 살 고 싶다는 것이 인간 본래의 마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루하 루 사는 것이 너무나 힘들어서 ‘어서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 ’고 생각하다가도, 건강에 좋다는 것이 있으면 이것저것 가리지 않 고 많이 먹어대는 것이 우리 인간의 습성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설교 중에도 파멸이 나 멸망, 지옥이나 저주와 같은 단어를 많이 사용하면, 성도들 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설교자 는, 성도들이 여호와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못할 경우, 파멸을 당하거 나 지옥에 빠질 염려가 많으니, 정신 바짝 차려서 성경말씀대 로 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뜻으로 전하는 말씀인데도, 성도들은 죽음과 관련된 단어 자체를 아주 싫어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 인간에게는 죽지 않고 오래 살고 싶다는 본능 이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건만, 오늘날 자살자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는 추세라고 하니,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 이 인간이라는 존재가 아닌가 싶습니다. 어쩌면 햄릿과 같이 ‘살기도 어렵고 죽기도 어려운’정말 복잡한 상황 속에서 ‘죽는 편이 더 낫겠다’싶어 죽음을 택하고 있지 않나 여겨집니다.
그러나 우리가 한 가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 것은 죽거나 사는 것이 우리 인간 맘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 니라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생명을 좌우할 수 있는 권한은 여호와 하나님께만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에게 생명을 주신 분도 여호와 하나님이시고, 그 생명을 거두어 가실 수 있는 분도 여호와 하나님이 십니다. 다만, 인간에게는 ‘영원히 사는 길과 영원히 죽는 길’그 두 길 중에서 하나를 택할 수 있는 선택권만 있습니다. 사실 성경은, 우리에게 육신적으로 죽고 사는 길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길’을 제시하고 있을 뿐입니다. 말하자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여호와 하나님께서 처음 인 간을 만드셨을 때의 그 목적과 그 기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 는지, 성경은 그 방법을 가르쳐주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육체적으로 살고 죽는 문제는 우 리 인간의 권한이 아닙니다. 그 문제는 전적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속 한 것입니다. 우리가 언제까지 살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떤 식으 로 죽게 될는지, 그것도 여호와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다만 우리 몸은 여호와 하나님이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이기 때문에, 사는 날까지 우리 는 우리 몸을 항상 건강하고 깨끗하게 관리해야 합니다. 그런고로, 우리 인간에게 주어진 권한이 있다면, 영원한 생명 과 영원한 죽음의 길 중에서 어떤 길을 택할 것이냐 하는 문제 입니다. 신명기에 있는 말씀을 보면, 우리 앞에는 생명의 길과 죽음의 길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과 우리 후손 이 잘살기를 원한다면 생명의 길을 택하라는 것입니다.
모세가 백성들에게 권면하기를 ‘나는 오늘 하늘과 땅을 증인 으로 삼고 너희에게 묻는다. 생명을 택하고 복을 받겠는가 죽 음을 택하고 저주를 받겠는가 부디 너희는 생명을 택하여 후 손들과 더불어 오래오래 살도록 하라(신30:19)’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모세는 ‘너희는 생명이 되시는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면서 언제나 그분을 떠나지 말라. 그러면 너 희는 여호와께서 너희 조상에게 주시기로 약속하신 땅에서 오 랫동안 살게 되리라'고 말했습니다. 요컨대,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면 서 그 말씀에 순종할 때에 영원히 살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한편, 바울은 로마서에서 말하기를 ‘성령에 순종하고 살 때 에는 생명과 평안을 누리지만, 육신 따라 살 경우에는 죽게 된 다(8:6)’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육신의 생각은 여호와 하나님을 대적하 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강조하기를 ‘육신의 뜻대로 산 사람치고 말씀을 지킨 일도 없거니와, 또한 결코 지 키려고 하지도 않는다. ’고 말했습니다.
우리도 예수를 믿기 전에는 육신의 생각에 따라 살았습니다. 그래서 육신이 요구하는 대로 죄를 짓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 나님의 말씀을 몰랐으니, 무엇이 옳은 일이고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도덕군자 일지라도, 여호와 하나님 보시기에 엉망진창인 사람이 많았습니다. 아무튼, 우리 인간이 아무리 선하게 산다 하더라도 하늘 아 래에서 죄인 아닌 사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누구도 죄와 사망의 올무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죄 때문에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은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인생사는 즐거움은 잠깐뿐이고, 먹고사는 문제를 비롯한, 여 러 가지 복잡한 문제로 인해서 괴롭고 슬픈 나날을 보내야 합 니다. 하지만, 미래에 대한 소망이 있을 경우에는 현실적인 아 픔이나 고난을 잘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에게 는 ‘죄의 결과는 사망’이라는 숙명적인 굴레가 있기 때문에 영 원한 기쁨이나 즐거움을 누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인간의 비참한 모습을, 에스겔 선지자는 어떤 골 짜기에서 환상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백성들 중 많은 사람들이 포로로 잡혀가서 고난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다가, 이스라엘나라가 완전히 멸망을 당하는 소식을 듣 게 되자, 포로로 잡혀가서 살던 사람들은 거의 자포자기 상태 로 절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삶은 그야말로 전혀 사는 것 같지가 않은 인생을 살고 있었습니다.
이때 여호와 하나님은 에스겔 선지자를 어떤 골짜기로 데리고 가셔 서 바싹 마른 뼈들이 셀 수 없이 많이 흩어져 있는 모습을 보 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에스겔 선지자에게 “이 뼈들이 다시 살아 나서 사람노릇을 할 수 있겠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래서 에 스겔 선지자는 “그 일은 주님만 아십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여호와 하나님은 에스겔 선지자에게 뼈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하라고 시켰습니다. ‘나 여호와가 너희 뼈들에게 하는 말이 다. 너희가 다시 살아나서 사람노릇을 할 수 있도록, 내가 너희 속에 생기를 불어넣겠다! 그러면 너희가 다시 살아날 것이고, 그때에야 비로소 너희는 내가 주님인 줄을 알게 되리라. ’에스겔 선지자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그랬더 니, 그 뼈들이 다시 살아났습니다. 뼈들이 서로 연결되고 힘줄 과 살이 돋아나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엄청난 많은 수의 군인들로 변했습니다. 물론,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에스 겔 선지자에게 보여주신 환상이었습니다.
환상을 보여주신 다음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지금 이 뼈들과 같다. 너희는 생명력도 없고 희망도 사라졌다. 내가 너희를 이끌어내어 고국으로 데려갈 것이다. 그러면, 그제 서야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 깨닫게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말하자면, 인간의 생명을 주관하시는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이스라엘백성들이 믿고 의지하기를 바라셨던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백성들이 생명의 주관자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의지 한다면, 현실이 아무리 힘들고 암담하다 할지라도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새로운 소망을 가질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마른 뼈들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사람노릇을 할 수 있게 하실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생기는 여호와 하나님의 기운을 말 합니다. 바로 성령을 일컫는 말입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시 면, 우리는 다시 살아나 사람구실을 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수 있는 거룩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인생사는 것이 너무 힘들고 어려워서 지쳐 있는 사람도 성령 받으면 새로운 힘을 얻을 수 있고, 새로운 소망과 기쁨도 얻을 수 있습니다. 왜 살아야 하는지, 그 이유를 몰라서 방황하던 사 람들도, 성령을 받으면 사는 목적이 무엇인지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인생을 활기차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1.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영을 받아서 인간 본래의 모습을 회복해 야 합니다.
요한복음 11장 1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예수께서 죽은 나사 로를 다시 살리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때 주님께서는 나사로 의 누이인 마르다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은 영 원히 죽지 않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요컨대, 여호와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우리 인간의 생명을 좌우하는 생명의 주관자가 되신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런데, 주께서 주 시는 새로운 생명이란 육체적인 목숨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영 원하신 여호와 하나님과 영적으로 교통할 수 있는 전인적(全人的)인 존재입니다. 다시 말해서,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고 ‘하나 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을 말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태초에 인간을 만드실 때, 그 본 래의 목적대로 살아가는 참된 인생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육신의 욕망에 따라 살던 사람이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살게 되는 것을 ‘거듭남’이라고 말합니다. 육신의 욕망과 감정에 따라 살면 영원히 죽습니다. 그러나 그 육신의 욕망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고, 주님의 뜻에 따라 살겠노라 굳게 다 짐하면,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인도함을 받으면 영원히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미국의 대선 주자들이 꼭 대답해야 할 첫 번째 질문이 있다 고 합니다. 그것은 “당신은 정말 거듭났느냐”고 하는 것입니 다. ‘찰스 콜슨’이라는 사람은 미국에서 교도소 선교로 아주 유 명한 사람입니다. 그는 닉슨행정부 때에 그 보좌관으로 있다가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는 감옥에서 고뇌하면서 기도하던 중에 친구가 넣어준 책 을 읽다가 성령으로 거듭나는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경험을 가지고 ‘거듭남(Born again)’이라는 제목의 책을 썼습니다. 이 책이 미국에서 엄청나게 많이 팔렸는데, 이를 계 기로 해서 ‘거듭남’이라는 말이 미국 사회에 큰 충격을 주기 시 작했습니다. 그래서 그 후부터 대통령에 출마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거듭난 사람’인가를 묻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도 성령으로 다시 한 번 새롭게 태어나야 하겠습니다. 에스겔 선지자가 환상 중에 보았던 그 마른 뼈들 이 여호와 하나님의 생기를 받아 다시 살아났던 것처럼, 그리고 죽은 나사로가 주님의 능력에 의해서 다시 살아났듯이, 오늘 우리도 여호와 하나님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거듭 태어나야 할 것입니다. 2. 그럴 때에 우리는 성령의 지시를 따르게 될 것이고, 그 결 과 여호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인간다운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바울 선생이 말하기를 ‘만일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여호와 하나님의 영이 너희 속에 계시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너희 속에 계시는 이 성령에 의해서 너희가 죽은 다음에도 너희의 썩을 몸을 다시 살리실 것이다(롬8:11)’라고 했습니다.
요컨대, 성령은 우리를 살리는 영이고, 악령은 인간을 죽이는 영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육신의 욕망을 따를 때에는 악령이 찾아오고, 우리가 인생사는 목적을 여호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 는데 둘 때에는, 성령이 찾아와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인생의 목적을 바로 가짐으로써 성령의 인 도하심을 받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현실적으로는 육신이 원 하는 대로 사는 것이 훨씬 편하지만, 그러나 영원히 살기를 원 한다면, 그래서 우리 후손들까지도 대대로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 안에 서 살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육신의 생각을 어떻게든지 잘 극 복하고 성령의 뜻에 따라 순종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성 프란시스가 구원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겪은 이야기라 고 합니다.
어느 날, 그는 길을 가다가 우연히 나환자를 만났습니다. 그 나환자를 본 순간에 마음에서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한쪽 마음 에서는 그에게 가서 기도해주자는 것이었고, 다른 한쪽 마음에 서는 ‘나환자에게서 병이 전염되면 어떡하나’하는 두려움이 일 어났습니다. 결국 두려운 마음이 이겨서 나환자를 그냥 지나쳐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성령님께서 그의 다른 마음을 움직이기 시작했습니 다. 그는 그 마음 때문에 그 자리에 서서 “주님, 제가 나환자를 그냥 지나쳤는데, 그것이 잘못입니까”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러 자, 주님은 “왜 그냥 지나쳤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는 솔직 하게 대답하기를 “그에게서 그 나병이 저에게 전염될까봐 그랬 습니다. ”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때, 그에게 주님의 음성이 다시 들려왔습니다. “너는 그 더 러운 나환자보다 더 깨끗하더냐 너는 예전에 그 나환자보다 훨씬 더 더러운 죄인이었다. 그런데, 난 그런 너의 모습을 그대 로 받아주고 사랑했단다. ”
그 순간, 그는 나환자보다 더 추하고 더러운 죄인이었던 자 신에게 주님이 찾아오셔서 사랑으로 받아주셨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시금 나환자에게 돌 아가서 그에게 입을 맞춘 다음에 축복을 해주었습니다.
이때부터 아시시의 성자 프란시스는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 지 끊임없는 사랑의 순례를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는 마지막 목숨이 다하는 순간에 “나의 사랑, 나의 전부이신 예 수여!”라는 고백을 하면서 운명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 신 예수님이 아니었더라면, 무엇 때문에 사는지, 그 이유도 잘 모른 채, 아무렇게나 인생을 살다가 허무하게 생을 마치고 말 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피하지 않고 달게 지신 덕분에, 우리는 새 인생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주님의 그 은혜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 입니다. 세상을 바라보면서 좌절하거나 절망할 것이 아니라, 우 리는 날마다 성령을 받아서 새롭게 거듭나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 속에서 새로운 기운이 솟아날 것이고, 그 힘과 지혜로 말 미암아 여호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인생을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아무쪼록 영원한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는 그날까지, 육신 의 욕망을 잘 이겨내고 성령이 인도하시는 대로 살아가시는 저 와 여러분이 다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
사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하루하루 살아간다는 것이 그리 쉽지 않습니다. 물론, 새 아침이 밝아올 때마다 ‘아, 오늘 도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새로운 아침을 주셨구나!’하면서 환희 와 감격 속에서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입니다. 하 지만, 하루하루를 죽지 못해서 억지로 사는 사람들도 적지 않 으리라고 여겨집니다.
보편적으로, 우리 인간이 갖고 있는 본능은 ‘행복하게 오래 살고 싶어 하는 마음’일 것입니다. 할 수만 있다면, 영원히 살 고 싶다는 것이 인간 본래의 마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루하 루 사는 것이 너무나 힘들어서 ‘어서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 ’고 생각하다가도, 건강에 좋다는 것이 있으면 이것저것 가리지 않 고 많이 먹어대는 것이 우리 인간의 습성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설교 중에도 파멸이 나 멸망, 지옥이나 저주와 같은 단어를 많이 사용하면, 성도들 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설교자 는, 성도들이 여호와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못할 경우, 파멸을 당하거 나 지옥에 빠질 염려가 많으니, 정신 바짝 차려서 성경말씀대 로 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뜻으로 전하는 말씀인데도, 성도들은 죽음과 관련된 단어 자체를 아주 싫어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 인간에게는 죽지 않고 오래 살고 싶다는 본능 이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건만, 오늘날 자살자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는 추세라고 하니,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 이 인간이라는 존재가 아닌가 싶습니다. 어쩌면 햄릿과 같이 ‘살기도 어렵고 죽기도 어려운’정말 복잡한 상황 속에서 ‘죽는 편이 더 낫겠다’싶어 죽음을 택하고 있지 않나 여겨집니다.
그러나 우리가 한 가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 것은 죽거나 사는 것이 우리 인간 맘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 니라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생명을 좌우할 수 있는 권한은 여호와 하나님께만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에게 생명을 주신 분도 여호와 하나님이시고, 그 생명을 거두어 가실 수 있는 분도 여호와 하나님이 십니다. 다만, 인간에게는 ‘영원히 사는 길과 영원히 죽는 길’그 두 길 중에서 하나를 택할 수 있는 선택권만 있습니다. 사실 성경은, 우리에게 육신적으로 죽고 사는 길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길’을 제시하고 있을 뿐입니다. 말하자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여호와 하나님께서 처음 인 간을 만드셨을 때의 그 목적과 그 기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 는지, 성경은 그 방법을 가르쳐주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육체적으로 살고 죽는 문제는 우 리 인간의 권한이 아닙니다. 그 문제는 전적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속 한 것입니다. 우리가 언제까지 살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떤 식으 로 죽게 될는지, 그것도 여호와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다만 우리 몸은 여호와 하나님이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이기 때문에, 사는 날까지 우리 는 우리 몸을 항상 건강하고 깨끗하게 관리해야 합니다. 그런고로, 우리 인간에게 주어진 권한이 있다면, 영원한 생명 과 영원한 죽음의 길 중에서 어떤 길을 택할 것이냐 하는 문제 입니다. 신명기에 있는 말씀을 보면, 우리 앞에는 생명의 길과 죽음의 길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과 우리 후손 이 잘살기를 원한다면 생명의 길을 택하라는 것입니다.
모세가 백성들에게 권면하기를 ‘나는 오늘 하늘과 땅을 증인 으로 삼고 너희에게 묻는다. 생명을 택하고 복을 받겠는가 죽 음을 택하고 저주를 받겠는가 부디 너희는 생명을 택하여 후 손들과 더불어 오래오래 살도록 하라(신30:19)’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모세는 ‘너희는 생명이 되시는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면서 언제나 그분을 떠나지 말라. 그러면 너 희는 여호와께서 너희 조상에게 주시기로 약속하신 땅에서 오 랫동안 살게 되리라'고 말했습니다. 요컨대,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면 서 그 말씀에 순종할 때에 영원히 살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한편, 바울은 로마서에서 말하기를 ‘성령에 순종하고 살 때 에는 생명과 평안을 누리지만, 육신 따라 살 경우에는 죽게 된 다(8:6)’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육신의 생각은 여호와 하나님을 대적하 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강조하기를 ‘육신의 뜻대로 산 사람치고 말씀을 지킨 일도 없거니와, 또한 결코 지 키려고 하지도 않는다. ’고 말했습니다.
우리도 예수를 믿기 전에는 육신의 생각에 따라 살았습니다. 그래서 육신이 요구하는 대로 죄를 짓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 나님의 말씀을 몰랐으니, 무엇이 옳은 일이고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도덕군자 일지라도, 여호와 하나님 보시기에 엉망진창인 사람이 많았습니다. 아무튼, 우리 인간이 아무리 선하게 산다 하더라도 하늘 아 래에서 죄인 아닌 사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누구도 죄와 사망의 올무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죄 때문에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은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인생사는 즐거움은 잠깐뿐이고, 먹고사는 문제를 비롯한, 여 러 가지 복잡한 문제로 인해서 괴롭고 슬픈 나날을 보내야 합 니다. 하지만, 미래에 대한 소망이 있을 경우에는 현실적인 아 픔이나 고난을 잘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에게 는 ‘죄의 결과는 사망’이라는 숙명적인 굴레가 있기 때문에 영 원한 기쁨이나 즐거움을 누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인간의 비참한 모습을, 에스겔 선지자는 어떤 골 짜기에서 환상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백성들 중 많은 사람들이 포로로 잡혀가서 고난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다가, 이스라엘나라가 완전히 멸망을 당하는 소식을 듣 게 되자, 포로로 잡혀가서 살던 사람들은 거의 자포자기 상태 로 절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삶은 그야말로 전혀 사는 것 같지가 않은 인생을 살고 있었습니다.
이때 여호와 하나님은 에스겔 선지자를 어떤 골짜기로 데리고 가셔 서 바싹 마른 뼈들이 셀 수 없이 많이 흩어져 있는 모습을 보 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에스겔 선지자에게 “이 뼈들이 다시 살아 나서 사람노릇을 할 수 있겠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래서 에 스겔 선지자는 “그 일은 주님만 아십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여호와 하나님은 에스겔 선지자에게 뼈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하라고 시켰습니다. ‘나 여호와가 너희 뼈들에게 하는 말이 다. 너희가 다시 살아나서 사람노릇을 할 수 있도록, 내가 너희 속에 생기를 불어넣겠다! 그러면 너희가 다시 살아날 것이고, 그때에야 비로소 너희는 내가 주님인 줄을 알게 되리라. ’에스겔 선지자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그랬더 니, 그 뼈들이 다시 살아났습니다. 뼈들이 서로 연결되고 힘줄 과 살이 돋아나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엄청난 많은 수의 군인들로 변했습니다. 물론,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에스 겔 선지자에게 보여주신 환상이었습니다.
환상을 보여주신 다음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지금 이 뼈들과 같다. 너희는 생명력도 없고 희망도 사라졌다. 내가 너희를 이끌어내어 고국으로 데려갈 것이다. 그러면, 그제 서야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 깨닫게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말하자면, 인간의 생명을 주관하시는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이스라엘백성들이 믿고 의지하기를 바라셨던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백성들이 생명의 주관자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의지 한다면, 현실이 아무리 힘들고 암담하다 할지라도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새로운 소망을 가질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마른 뼈들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사람노릇을 할 수 있게 하실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생기는 여호와 하나님의 기운을 말 합니다. 바로 성령을 일컫는 말입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시 면, 우리는 다시 살아나 사람구실을 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수 있는 거룩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인생사는 것이 너무 힘들고 어려워서 지쳐 있는 사람도 성령 받으면 새로운 힘을 얻을 수 있고, 새로운 소망과 기쁨도 얻을 수 있습니다. 왜 살아야 하는지, 그 이유를 몰라서 방황하던 사 람들도, 성령을 받으면 사는 목적이 무엇인지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인생을 활기차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1.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영을 받아서 인간 본래의 모습을 회복해 야 합니다.
요한복음 11장 1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예수께서 죽은 나사 로를 다시 살리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때 주님께서는 나사로 의 누이인 마르다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은 영 원히 죽지 않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요컨대, 여호와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우리 인간의 생명을 좌우하는 생명의 주관자가 되신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런데, 주께서 주 시는 새로운 생명이란 육체적인 목숨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영 원하신 여호와 하나님과 영적으로 교통할 수 있는 전인적(全人的)인 존재입니다. 다시 말해서,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고 ‘하나 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을 말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태초에 인간을 만드실 때, 그 본 래의 목적대로 살아가는 참된 인생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육신의 욕망에 따라 살던 사람이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살게 되는 것을 ‘거듭남’이라고 말합니다. 육신의 욕망과 감정에 따라 살면 영원히 죽습니다. 그러나 그 육신의 욕망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고, 주님의 뜻에 따라 살겠노라 굳게 다 짐하면,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인도함을 받으면 영원히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미국의 대선 주자들이 꼭 대답해야 할 첫 번째 질문이 있다 고 합니다. 그것은 “당신은 정말 거듭났느냐”고 하는 것입니 다. ‘찰스 콜슨’이라는 사람은 미국에서 교도소 선교로 아주 유 명한 사람입니다. 그는 닉슨행정부 때에 그 보좌관으로 있다가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는 감옥에서 고뇌하면서 기도하던 중에 친구가 넣어준 책 을 읽다가 성령으로 거듭나는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경험을 가지고 ‘거듭남(Born again)’이라는 제목의 책을 썼습니다. 이 책이 미국에서 엄청나게 많이 팔렸는데, 이를 계 기로 해서 ‘거듭남’이라는 말이 미국 사회에 큰 충격을 주기 시 작했습니다. 그래서 그 후부터 대통령에 출마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거듭난 사람’인가를 묻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도 성령으로 다시 한 번 새롭게 태어나야 하겠습니다. 에스겔 선지자가 환상 중에 보았던 그 마른 뼈들 이 여호와 하나님의 생기를 받아 다시 살아났던 것처럼, 그리고 죽은 나사로가 주님의 능력에 의해서 다시 살아났듯이, 오늘 우리도 여호와 하나님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거듭 태어나야 할 것입니다. 2. 그럴 때에 우리는 성령의 지시를 따르게 될 것이고, 그 결 과 여호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인간다운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바울 선생이 말하기를 ‘만일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여호와 하나님의 영이 너희 속에 계시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너희 속에 계시는 이 성령에 의해서 너희가 죽은 다음에도 너희의 썩을 몸을 다시 살리실 것이다(롬8:11)’라고 했습니다.
요컨대, 성령은 우리를 살리는 영이고, 악령은 인간을 죽이는 영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육신의 욕망을 따를 때에는 악령이 찾아오고, 우리가 인생사는 목적을 여호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 는데 둘 때에는, 성령이 찾아와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인생의 목적을 바로 가짐으로써 성령의 인 도하심을 받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현실적으로는 육신이 원 하는 대로 사는 것이 훨씬 편하지만, 그러나 영원히 살기를 원 한다면, 그래서 우리 후손들까지도 대대로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 안에 서 살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육신의 생각을 어떻게든지 잘 극 복하고 성령의 뜻에 따라 순종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성 프란시스가 구원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겪은 이야기라 고 합니다.
어느 날, 그는 길을 가다가 우연히 나환자를 만났습니다. 그 나환자를 본 순간에 마음에서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한쪽 마음 에서는 그에게 가서 기도해주자는 것이었고, 다른 한쪽 마음에 서는 ‘나환자에게서 병이 전염되면 어떡하나’하는 두려움이 일 어났습니다. 결국 두려운 마음이 이겨서 나환자를 그냥 지나쳐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성령님께서 그의 다른 마음을 움직이기 시작했습니 다. 그는 그 마음 때문에 그 자리에 서서 “주님, 제가 나환자를 그냥 지나쳤는데, 그것이 잘못입니까”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러 자, 주님은 “왜 그냥 지나쳤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는 솔직 하게 대답하기를 “그에게서 그 나병이 저에게 전염될까봐 그랬 습니다. ”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때, 그에게 주님의 음성이 다시 들려왔습니다. “너는 그 더 러운 나환자보다 더 깨끗하더냐 너는 예전에 그 나환자보다 훨씬 더 더러운 죄인이었다. 그런데, 난 그런 너의 모습을 그대 로 받아주고 사랑했단다. ”
그 순간, 그는 나환자보다 더 추하고 더러운 죄인이었던 자 신에게 주님이 찾아오셔서 사랑으로 받아주셨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시금 나환자에게 돌 아가서 그에게 입을 맞춘 다음에 축복을 해주었습니다.
이때부터 아시시의 성자 프란시스는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 지 끊임없는 사랑의 순례를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는 마지막 목숨이 다하는 순간에 “나의 사랑, 나의 전부이신 예 수여!”라는 고백을 하면서 운명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 신 예수님이 아니었더라면, 무엇 때문에 사는지, 그 이유도 잘 모른 채, 아무렇게나 인생을 살다가 허무하게 생을 마치고 말 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피하지 않고 달게 지신 덕분에, 우리는 새 인생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주님의 그 은혜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 입니다. 세상을 바라보면서 좌절하거나 절망할 것이 아니라, 우 리는 날마다 성령을 받아서 새롭게 거듭나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 속에서 새로운 기운이 솟아날 것이고, 그 힘과 지혜로 말 미암아 여호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인생을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아무쪼록 영원한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는 그날까지, 육신 의 욕망을 잘 이겨내고 성령이 인도하시는 대로 살아가시는 저 와 여러분이 다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