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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신자의 삶과 성령

본문

신자의 삶의 특징적인 부분은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생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할 때 어떤 면에서 막연하고 추상적인 개념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사랑은 느낌으로 아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할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감정을 어떻게 느낄 수 있을까요 이성간에 서로 사랑한다고 할 때 감정이나 느낌(feel)이 중요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그 느낌은 상대방의 관심을 끌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든지 표현하게 되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슬슬 때리고 찝쩍거리는 방법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적극적으로 좋은 선물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지난해에 결혼한 헐리우드의 스타 마이클 다글러스와 케서린 제타 존스가 화제가 된 바가 있습니다. 여러 화제 가운데 하나가 마이클 더글러스가 청혼을 하며 사랑을 표현한 다이아몬드가 100캐럿 짜리인데 우리 돈으로 약 9억 5천만원이나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돈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면 신자들인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할 때 그 느낌을 어떻게 전달할 수 있겠습니까 어떤 방식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감정이나 느낌을 전달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이미 예수님께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4:15에 보면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계명을 지키게 되어 있습니다. 계명을 지키므로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우리의 마음과 감정을 전달할 수 있습니다. 특히 이 본문에서 주의를 기울여 볼 대목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는 말인데, 지킨다는 말이 헬라어 성경에는 미래 직설법으로 되어 있는데, 이 의미는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반드시 그 계명을 지킴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감정을 표현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에 다닌다고 하면서, 또는 여러 부흥회나 은사집회에서 은혜를 받았다고 하면서 여호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이 책의 저자인 사도 요한 요한복음의 속편(續編)으로 요한1서를 기록하였습니다. 요한1서 2:3-4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저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
그러면 신자의 특징, 신자됨이라는 것은 어떻게 표현될 수 있을까요 사실 모름지기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고 사랑하는 신자라고 말할 때 그 계명을 지키는 생활로 특징지어질 수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계명에 버릇없고 예절없이 행동하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계명에 거짓말하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계명에 게으름을 피우고 무책임하고 불성실하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계명에 부모를 공경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계명에 자녀들을 무례하게 버릇없이 키우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계명에 욕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계명에 남을 험담하고 부정적으로 말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계명에 이 사회에 살면서 자기중심적으로 살아라고 가르치고 있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무뚝뚝하고 불친절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까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계명은 진실하고 정직하며, 예의바르며, 맡은 일에 성실하며, 부모를 공경하며, 자녀들을 주의 교훈과 훈계로 착하고 바르게 키우며,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가난한 자들을 볼 때 구제하고, 희생하고, 봉사하고, 책임감이 강하고, 친절하고 상냥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때 연상되는 이미지는 성실하다, 정직하다, 선한 일이라면 희생하고 봉사한다, 책임감이 강하다, 친절하고 상냥하다, 예절바르다, 부모를 공경한다, 자녀들을 예절바르게 잘 키운다 등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말이 많고, 불성실하고, 거짓말을 잘하고, 부모를 공경하지 않으며, 자녀들을 자기만 알고 버릇없고 예의가 없는 자로 키우며, 회사에서는 부정을 일삼고, 국가의 관리로 있는 신자는 국가재산을 축내는 사람의 대명사로 인식되기도 합니다. 이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신자가 아닙니다.
2. 계명을 지키는 생활의 중요성
그러면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신자됨의 이미지를 표현하는 일이 왜 중요할까요 그 중요성은 요한복음 14:21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 본문을 편의상 이해하기 쉽도록 요한복음 14:16-20을 괄호 안에 넣고 14절과 21절을 연결하여 읽어보십시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 이미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문제는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행위요,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우리의 감정과 느낌을 표현하는 방법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킴으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랑의 감정을 표현하면 이 사랑을 전달받으신 여호와 하나님은 어떻게 사랑을 표현하실까요 무엇보다도 주님을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자는 여호와 하나님께 사랑을 받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보이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주님께서 그 존재와 능력과 사랑을 구체적으로 나타내 보이실 것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앞에서 요한복음 14:15에서 주님을 사랑하면 여호와 하나님의 계명을 당연히 지키게 된다는 것을 미래, 직설법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 본문에서 "나타내리라"는 표현도 미래, 직설법입니다. 이것은 주님의 계명을 지키면 반드시 주님의 능력과 사랑과 존재를 나타내 보이신다는 것입니다. 신자가 계명을 지켜야 할 중요성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여러분!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와 존재를 느끼고 경험하기를 원하십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십시오. 신자됨의 특징은 여호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생활로 나타나야 합니다. 신자가 무엇인가 다르다는 것은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그의 계명을 지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계명을 지키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랑의 감정이 느껴지게 될 것이고, 신비로운 여호와 하나님의 존재와 능력과 사랑을 경험하게 됩니다.
3. 신자의 삶과 성령의 관계 : 성령의 사역
그러면 신자는 이 계명을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요 앞서 우리가 요한복음 14:15을 보면서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고 하는 말씀을 살펴본 바가 있습니다. 여기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면 여호와 하나님의 계명을 반드시 지키게 되어있다는 당위성을 말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어떤 근거에서 그가 진정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요 신자요,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라면 여호와 하나님을 계명을 지킬 수밖에 없을까요 그 이유를 요한복음 14:16-20에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결론을 간단하게 설명하면 성령님을 보내어 주실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앞서 이 본문을 편의상 괄호 안에 넣으라고 하였는데 이 본문은 모든 신자가 계명을 지킬 수 있도록 성령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앞에서 요한복음 14:15의 말씀을 살펴본 바와 같이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당연히 그 계명을 지키게 되어있다는 점을 살펴본 바가 있습니다. 왜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계명을 지킬 수밖에 없고, 그리스도인의 이미지를 표현하며 살 수밖에 없을까요 16-20절의 말씀이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개역한글판에는 분명하게 표현이 안되어 있습니다만 원문에는 세미콜론(;)이 있습니다. 우리가 세미콜론이 의미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상식적으로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어떤 사실을 비교하거나, 이유를 나타내거나, 앞의 말을 부연설명하고자 할 때 사용되는 말입니다. 여기서는 주님을 사랑하는 자는 주님의 계명을 지켜야 한다는 당위성에 대한 이유나 설명을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앞의 절의 이유나 설명을 나타내는 세미콜론(;) 다음에 나오는 절이 성령오심과 그의 사역에 대한 기록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결국 이 말씀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내용은 주님을 사랑하는 방법인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일과 성령을 보내시는 사건이 밀접하게 연관이 되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성령오심의 중요성이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자는 이미 성령이 내주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참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자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그 계명을 지킬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는 주님을 사랑하는 자가 아니요, 구원받지 못한 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성령은 어떤 존재일까요 우리는 이 성령님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성령님에 대하여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에 대하여 먼저 살펴보는 좋은 것이 유익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로는 성령님을 삼위일체 여호와 하나님 가운데 성령 여호와 하나님으로 이해하지 않고, 한 능력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신비한 마술적인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하여서는 성경의 한 가지 예가 적절할 것입니다. 그것은 사도들이 행한 기적들을 보고 있던 마술사 시몬이 성령님을 잘못 이해한 경우입니다. 마술사 시몬은 빌립의 전도의 말씀을 듣고 세례를 받았습니다(행8:13). 그러나 그는 기독교에 대하여 아는 것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도들이 행하는 특별한 기적들을 보고 굉장히 놀라면서 자기에게도 안수하여 성령을 받아 그러한 능력을 행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때에 베드로는 "네가 여호와 하나님의 선물을 돈을 주고 살 줄을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함께 망할지어다. "(행8:21)라고 책망하였습니다. 두 번째로는 현대신학에서 생각하는 것인데, 성령을 정신의 한 영역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폴 틸리히(P. Tillich)나 슐라이에르마허(F. E. D. Schleiermacher)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성령을 인간이 여러 가지 문제를 만나게 될 때 거기에서 이겨낼 수 있는 한 정신적인 힘이라고 보았습니다. 세 번째로는 오순절 계통의 교회에서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성령을 여호와 하나님에게 종속된 한 능력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께 구하면 성령을 주신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성령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특히 이 본문에서는 여호와 하나님이 보내실 "다른 보혜사"라고 하는 말에 보혜사 성령이 삼위일체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증거하는 부분이 분명히 나타나 있습니다. 여기에 "다른"이라고 하는 말은 성질이 다르다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헬라어 단어의 어법 가운데 "다르다"고 하는 용어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헤테로스()라고 하는 말이고, 또 하나는 알로스()라고 하는 말입니다. 헤테로스는 전혀 성질이 다른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알로스는 성질이 같은 것을 말할 때 사용하는 용어입니다. 이 본문에서 "다른 보혜사"라고 할 때, "다르다"라고 하는 말은 같은 성질의 것인 알로스라고 하는 용어가 사용되었습니다. 이것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 한 가지 예를 들어 생각해 보겠습니다. 오래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만 제가 서울에 있는 생명의 말씀사에서 중요한 신학원서 한 권을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그 책을 읽는 가운데 중간에 몇 페이지 없다고 하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서울에 가는 길에 그 서점 담당자에게 "이 책의 몇 페이지가 없는 파본인데 다른 책을 주십시오. "라고 하였습니다. 그 때 그 담당자가 책을 찾으려 가더니 "다른 책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 책은 원서였기 때문에 한번 더 주문하려면 약 세 달의 기간이 걸린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러면 제가 그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서 보겠습니다. 대신 다른 책으로 바꾸어 주십시오. "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른 책으로 바꾸어 온 일이 있습니다. 여러분! 이 개념의 차이를 이해하시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이 본문에서 "다른 보혜사를 보내어 주겠다"고 하시는 것은 예수님과 동일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보내시겠다고 하는 말입니다. 그 말씀은, 곧 오실 보혜사 성령이 여호와 하나님이시라고 하는 것입니다.
특히 이 성령의 이름을 우리가 가지고 있는 번역성경에는 보혜사(保惠師) 라고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만 헬라어 성경에는 파라클레이토스() 라고 하는 말인데 위로자(Comforter KJV), 상담자(Counselor N4), 돕는 자(Helper NASB) 등으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이 이름이 의미하는 것처럼 성령은 인격적인 분으로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도우시는 분이심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문제는 어떤 일을 하는데 위로해 주시고, 상담해 주시며, 도와주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령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주님의 계명을 지키게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게 해주시며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와 사랑을 경험하며 살도록 도와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참으로 주님을 알고, 그와 교제하는 자라면 거기에 합당한 삶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그것은 주님의 계명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생활입니다. 그래서 우리 신자에게 있어서 계명을 지키며 사는 생활은 구원의 결과입니다. 그래서 합당한 삶의 내용이 따르지 않으면 그는 구원받은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여러 차례 논의한 바가 있습니다만 구원과 행위는 분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행위로 구원받는 것은 아니고,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하여서 구원과 행위가 관계가 없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구원을 받았다면 합당한 행위가 나타나야 합니다. 이것이 구원받은 증거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솔직하게 구원함을 받고 주님의 계명을 지키려고 하지만 우리의 의지로는 잘 안된다고 하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문제는 구원과 행위의 이러한 연관성을 관념적으로는 이해가 되는데, 관념적으로 이해한 이 지식이 실천이 안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관념적으로 알고 있는 지식을 어떻게 실천적인 지식으로 바꿀 수 있느냐 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입니다. 성령의 오심은 바로 이 문제와 연관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얻어서 그 구원을 누리게 하고, 구원함을 받은 자들이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일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성령님을 보내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점이 성령오심의 가장 중요한 일 가운데 한가지입니다.
특히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보혜사 성령님을 우리가 관념적으로 알고 있는 지식들, 그 가운데 계명 지키는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보내어 주시겠다고 하는 사상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자라면 그의 계명들을 지키게 되어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계명들을 잘 지킬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성령님을 보내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성령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시는 분이십니다. 요한복음 14:16의 말씀을 보십시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성령님은 예수님의 구원사역의 결과로 우리 가운데 항상 내주해 계십니다. 보혜사 성령님은 우리가 큰 기쁨을 누리는 순간에만 임하는 것도 아니고, 극심한 환란이나 고통의 순간에만 임하는 것도 아닙니다. 보혜사 성령님은 항상, 그리고 영원히 우리와 함께 거하시는 분이십니다. 특히 오시는 보혜사 성령을 가리켜 "진리의 성령"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오시는 성령님이 진리를 증거하는 것과 관련하여 사역하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성령님의 오심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가져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성령님이 누구이신 지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우리 한국교회에도 많이 알려진 영국의 신학자 제임스 패커(James Packer)는 성령님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오늘날 신자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자신의 그리스도의 속죄의 죽으심으로 구속함을 받았다고 하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의 죽으심으로 이 세상에 오신 성령과 그 성령의 사역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다. " 우리는 이 말을 관심있게 들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성령강림절을 지키고 있는 이유는 이러한 성령오심을 기념하는데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과 교제하며 그 능력을 경험하는 방편으로 주신 모든 계명들을 지키는 문제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강림절을 맞이하여 성령오심을 기념하여 지키고 있는 것은 우리 가운데 항상 계시는 성령님의 존재를 확신하고, 이 성령님을 의지하여 살려고 하는데 있습니다. 우리는 성령오심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이루신 모든 구원의 은혜를 우리의 삶에 적용해 주시기 위한 것이라고 하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은 우리로 하여금 주님의 계명을 지킬 수 있도록 도우시기 위하여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참으로 구원받은 성도는 성령을 의지하여 계명을 지킬 수 있고, 계명을 지킴으로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랑의 감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의 존재와 능력과 사랑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여 계명을 지킴으로 주의 사랑과 능력을 경험해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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