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본문
요한복음 14:25-31절은 14장의 결론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또한 서론은 1절입니다. 서론과 결론에서 이야기되고 있는 말씀은 근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특히 결론에서는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줄 것이니 두려워하지 말고 근심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니까 14장 말씀의 주제는 평안을 주노니 근심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처럼 고별설교를 통해서 근심하지 말라고 위로하시는 것입니까 바로 지금까지 제자들과 함께하시며 생명을 주셨던 주님께서 제자들을 떠나서 아버지께로 가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가룟 유다가 배교하고 베드로까지 부인하는 위기가 제자 공동체에 닥칠 것이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세상으로부터 제자 공동체가 많은 환난과 핍박을 당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소식을 전해들은 제자들이 큰 근심에 빠진 것입니다. 사실 근심하는 제자들을 위로하는 말씀은 14장 뿐만아니라 예수님의 고별사 전체에서 다루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들을 떠나서 아버지 여호와 하나님께로 가시는 것 때문에 근심하는 제자들을 향해서 예수님은 자신이 제자들을 떠나는 것이 오히려 제자들에게 큰 복이 된다는 사실을 가르치십니다. 물론 일시적으로 제자들에게 어려움과 근심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환난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완전히 제자들을 버리고 떠나시는 것이 아닙니다. 제자들을 떠나시는 이유는 아버지 집에 처소를 예비하기 위해입니다. 그리고 처소를 예비하면 다시 와서 아버지 집으로 제자들을 영접할 것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아버지께 나아갈 수 있는 길, 진리, 생명으로 길을 내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떠나시는 영광의 십자가의 사건을 통해서 예수님이 여호와 하나님의 계시자이심이 증거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다시 오실 것입니다. 먼저 다른 보혜사인 성령을 보내셔서 제자들을 위로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 자신도 다시 제자들과 믿는 자들에게 오실 것입니다. 또한 아버지 여호와 하나님께서도 아들과 함께 제자들과 믿는 자들에게 와서 거처를 정하시고 함께 생을 사실 것입니다. 바로 주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오실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여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에게 오실 것입니다.
성령께서 오심
그리고 나서 14장의 결론이라 말할 수 있는 오늘 말씀이 계속됩니다. 주님께서는 계속해서 성령의 오심과 사역에 대해서 증거하십니다. 25-16절입니다. "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어서 이 말을 너희에게 하였거니와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
지금까지는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거하시면서 말씀하시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내일이면 예수님께서 영광의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심으로 제자들을 떠나가실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함께하심과 말씀하시며 가르치시는 은혜의 일은 끊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죽어 아버지께로 가시면, 예수님을 대신해서 성령께서 오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제자들과 함께하시는 은혜의 일은 결코 끊어지지 않습니다.
아들의 이름으로 오심
예수님을 대신해서 제자들과 함께하도록 성령께서 오실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께서는 어떻게 오시는 것입니까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대신해서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실 것인데, 예수님의 이름으로 보내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성령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보냄받았다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그 의미를 바르게 알기 위해서는 예수님께서 아버지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보냄 받았다는 것을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요한복음 5장 43절입니다.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매 너희가 영접하지 아니하나. " "이름으로" 보낸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요한복음에서 "나를 보내셨다"는 말을 자주 사용하고 있습니다.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 사람이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여호와 하나님께로서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 "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함으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 "나를 믿는 자는 나를 믿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며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니라. " "... 너희의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 "
이상의 모든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은 아버지의 이름으로 보냄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신 아버지의 뜻을 행하기에 집중했으며 전념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행하신 일, 하신 모든 말씀이 예수님 자신의 뜻이나 생각이나 일을 하신 것이 아니라 이 땅에 예수님을 보내신 아버지의 일과 말씀과 뜻을 수행했다는 말씀입니다. 아버지 여호와 하나님의 일하심과 같이 일했으며, 아버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하심과 같이 말씀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향한 아버지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이룬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것들은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었습니다. 아들을 통해서 세상을 구원하시고 생명을 주시는 귀중한 뜻입니다.
그런데 지금 아버지의 이름으로 보냄을 받았던 예수께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소 가십니다. 그러나 세상을 향한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은 계속됩니다. 왜냐하면 아들의 이름으로 세상에 보내실 성령께서 아들을 대신해서 수행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로 성령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보냄을 받는다는 말은 예수님을 대행한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의 행하신 일과 말씀을 대행한다는 말씀입니다. 성령 여호와 하나님 단독으로 사역을 하시는 것이 아니라 아들의 뜻과 사역을 대행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아들의 뜻과 사역은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의 사역이기 때문에 아들을 통해서 이루시는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의 뜻과 사역을 성령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시도록 보냄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과 예수님을 떠나서 성령 여호와 하나님의 단독적인 사역에 대해서 성경은 말하지 않습니다.
가르치고 생각나게 하심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성령께서 아들을 대행하는 사역을 하십니까 26절입니다. "...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 성령께서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주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던 모든 말씀을 생각나게 하실 것입니다. 여기서 "가르친다"는 말이나 "생각나게 한다"는 말은 초자연적인 어떤 능력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제자들과 함께 계시면서 예수께서 많은 것들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눈이 어두워서 아직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온전하게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보혜사 성령께서 오시면 예수님이 말씀하셨던 모든 것을 다 깨닫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2장 22절을 봅시다.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및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고 말씀합니다. 예수께서 "너희가 이 성전을 헐러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고 하셨을 때 당시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이 무엇을 의지하는지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예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여 성령께서 오신 후에야 비로소 그 의미를 분명하게 알게 된 것입니다. 마치 "너희가 본 고로 믿느냐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더 복되다"고 하신 것처럼 성령께서 오신 후에 믿게 되는 자들이 예수님에 대해서 더 잘 알고 믿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성령께서는 이처럼 독단적으로 단독으로 사역하지 않습니다. 주님의 일을 대행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말씀을 증거합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증거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떠난 어떤 성령의 역사는 없습니다. 이런 것을 추구할 때 이방종교처럼 타락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떠나시지만,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은 끊어지지 않습니다. 성령께서 다른 보혜사로 제자들과 믿는 자들에게 오십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하신 말씀과 일을 깊이 있게 깨닫게 하십니다. 따라서 제자들은 다른 보혜사인 성령을 통해서 예수님과 함께하는 것입니다. 또한 성령안에서 아버지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끊임없이 깨닫게 하시고 가르치는 은혜의 일을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헤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제자들은 주님께서 그들을 떠나신다 해도 근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성령께서 제자들과 함께하심으로 세상이 주지 못하는 평강과 위로로 함께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약속하신 것처럼 부활 후에 근심하여 떨고 있는 제자들을 찾아오셨습니다. 20장 19-22절입니다.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 그리고 디베랴 바닷가에 제자들을 찾아 오셔서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물으시고, "내 양을 먹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주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이제 우리는 부활 이후에 살고 있습니다. 성령강림절 이후에 살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약속하셨듯이 주님은 우리와 육신으로 더 이상 함께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약속하신 다른 보혜사 성령께서 오셨습니다. 우리가 주를 믿고 고백할 때 성령께서 우리안에 내주하셔서 거처를 정하시고 함께 생을 사는 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아니 성령안에서 성삼위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의 심령에 내주하셔서 거처를 정하시고 계십니다. 지금도 주님께서는 성령을 통해서 끊임없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주님과 영적으로 교통하며 신령한 은혜안에 살아가도록 촉구하십니다. 성령께서는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를 통해서 영향력을 미치기를 원하십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을 때 깨달을 수 있는 빛을 비추십니다. 성경을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의 뜻과 주님의 음성을 듣게 하십니다. 또한 우리가 기도할 때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세미한 음성으로 말씀하시며 주님의 말씀과 뜻을 깨닫게 하십니다. 환경을 통해서 말씀하실 수도 있습니다. 다른 믿는 자들을 통해서도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도 합니다.
이처럼 우리는 성령안에서 여호와 하나님과 교통하는 복된 새 백성입니다. 부활의 백성입니다. 새 언약의 백성입니다. 성령을 받았고 성령이 우리 안에 내주하신다면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으로 다스림을 받고 성령이 우리의 전 인격을 지배하도록 그 분에게 순종하고 우리를 드려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과 지식을 십자가에 내려놓고 성령을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의 생각과 지식이 우리를 지배하도록 해야 합니다. 세상적인 물욕과 가치가 우리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안에서 여호와 하나님 나라의 가치가 우리를 감싸안아야 합니다. 우리의 날마다의 삶이 여호와 하나님의 간섭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의 옛 사람의 모습은 십자가에 내려놓아야 합니다. 우리의 아집과 욕심과 세상적인 모든 영역들을 십자가에 못박아야 합니다. 대신에 성령을 통해서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성령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내주하시는 성령을 한쪽 구속에 방치해놓고 분주히 자신의 생각과 지혜와 능력과 뜻으로 행하는 것은 믿음의 일이 아닙니다. 그런 일은 일시적으로 성공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결국은 실패하고 고통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예화) 성령님의 인도함 없이 분주히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예.
성령을 따라 사는 자는 가치관이 변화됩니다. 성령을 따라 사는 자는 여호와 하나님이 주시는 희락과 평강으로 충만합니다.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을 근심되게 해서는 안됩니다. 우리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을 소멸케 해서는 안됩니다.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고 성령의 전적인 지배를 따라 살아야 될 것입니다. 그럴 때 성령께서 여러분의 눈을 여시고 귀를 여시고 마음을 주장해서 신령한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들어 가실 것입니다. 아멘.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처럼 고별설교를 통해서 근심하지 말라고 위로하시는 것입니까 바로 지금까지 제자들과 함께하시며 생명을 주셨던 주님께서 제자들을 떠나서 아버지께로 가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가룟 유다가 배교하고 베드로까지 부인하는 위기가 제자 공동체에 닥칠 것이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세상으로부터 제자 공동체가 많은 환난과 핍박을 당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소식을 전해들은 제자들이 큰 근심에 빠진 것입니다. 사실 근심하는 제자들을 위로하는 말씀은 14장 뿐만아니라 예수님의 고별사 전체에서 다루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들을 떠나서 아버지 여호와 하나님께로 가시는 것 때문에 근심하는 제자들을 향해서 예수님은 자신이 제자들을 떠나는 것이 오히려 제자들에게 큰 복이 된다는 사실을 가르치십니다. 물론 일시적으로 제자들에게 어려움과 근심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환난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완전히 제자들을 버리고 떠나시는 것이 아닙니다. 제자들을 떠나시는 이유는 아버지 집에 처소를 예비하기 위해입니다. 그리고 처소를 예비하면 다시 와서 아버지 집으로 제자들을 영접할 것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아버지께 나아갈 수 있는 길, 진리, 생명으로 길을 내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떠나시는 영광의 십자가의 사건을 통해서 예수님이 여호와 하나님의 계시자이심이 증거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다시 오실 것입니다. 먼저 다른 보혜사인 성령을 보내셔서 제자들을 위로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 자신도 다시 제자들과 믿는 자들에게 오실 것입니다. 또한 아버지 여호와 하나님께서도 아들과 함께 제자들과 믿는 자들에게 와서 거처를 정하시고 함께 생을 사실 것입니다. 바로 주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오실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여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에게 오실 것입니다.
성령께서 오심
그리고 나서 14장의 결론이라 말할 수 있는 오늘 말씀이 계속됩니다. 주님께서는 계속해서 성령의 오심과 사역에 대해서 증거하십니다. 25-16절입니다. "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어서 이 말을 너희에게 하였거니와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
지금까지는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거하시면서 말씀하시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내일이면 예수님께서 영광의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심으로 제자들을 떠나가실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함께하심과 말씀하시며 가르치시는 은혜의 일은 끊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죽어 아버지께로 가시면, 예수님을 대신해서 성령께서 오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제자들과 함께하시는 은혜의 일은 결코 끊어지지 않습니다.
아들의 이름으로 오심
예수님을 대신해서 제자들과 함께하도록 성령께서 오실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께서는 어떻게 오시는 것입니까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대신해서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실 것인데, 예수님의 이름으로 보내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성령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보냄받았다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그 의미를 바르게 알기 위해서는 예수님께서 아버지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보냄 받았다는 것을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요한복음 5장 43절입니다.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매 너희가 영접하지 아니하나. " "이름으로" 보낸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요한복음에서 "나를 보내셨다"는 말을 자주 사용하고 있습니다.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 사람이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여호와 하나님께로서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 "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함으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 "나를 믿는 자는 나를 믿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며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니라. " "... 너희의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 "
이상의 모든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은 아버지의 이름으로 보냄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신 아버지의 뜻을 행하기에 집중했으며 전념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행하신 일, 하신 모든 말씀이 예수님 자신의 뜻이나 생각이나 일을 하신 것이 아니라 이 땅에 예수님을 보내신 아버지의 일과 말씀과 뜻을 수행했다는 말씀입니다. 아버지 여호와 하나님의 일하심과 같이 일했으며, 아버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하심과 같이 말씀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향한 아버지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이룬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것들은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었습니다. 아들을 통해서 세상을 구원하시고 생명을 주시는 귀중한 뜻입니다.
그런데 지금 아버지의 이름으로 보냄을 받았던 예수께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소 가십니다. 그러나 세상을 향한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은 계속됩니다. 왜냐하면 아들의 이름으로 세상에 보내실 성령께서 아들을 대신해서 수행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로 성령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보냄을 받는다는 말은 예수님을 대행한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의 행하신 일과 말씀을 대행한다는 말씀입니다. 성령 여호와 하나님 단독으로 사역을 하시는 것이 아니라 아들의 뜻과 사역을 대행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아들의 뜻과 사역은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의 사역이기 때문에 아들을 통해서 이루시는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의 뜻과 사역을 성령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시도록 보냄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과 예수님을 떠나서 성령 여호와 하나님의 단독적인 사역에 대해서 성경은 말하지 않습니다.
가르치고 생각나게 하심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성령께서 아들을 대행하는 사역을 하십니까 26절입니다. "...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 성령께서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주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던 모든 말씀을 생각나게 하실 것입니다. 여기서 "가르친다"는 말이나 "생각나게 한다"는 말은 초자연적인 어떤 능력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제자들과 함께 계시면서 예수께서 많은 것들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눈이 어두워서 아직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온전하게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보혜사 성령께서 오시면 예수님이 말씀하셨던 모든 것을 다 깨닫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2장 22절을 봅시다.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및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고 말씀합니다. 예수께서 "너희가 이 성전을 헐러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고 하셨을 때 당시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이 무엇을 의지하는지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예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여 성령께서 오신 후에야 비로소 그 의미를 분명하게 알게 된 것입니다. 마치 "너희가 본 고로 믿느냐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더 복되다"고 하신 것처럼 성령께서 오신 후에 믿게 되는 자들이 예수님에 대해서 더 잘 알고 믿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성령께서는 이처럼 독단적으로 단독으로 사역하지 않습니다. 주님의 일을 대행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말씀을 증거합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증거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떠난 어떤 성령의 역사는 없습니다. 이런 것을 추구할 때 이방종교처럼 타락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떠나시지만,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은 끊어지지 않습니다. 성령께서 다른 보혜사로 제자들과 믿는 자들에게 오십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하신 말씀과 일을 깊이 있게 깨닫게 하십니다. 따라서 제자들은 다른 보혜사인 성령을 통해서 예수님과 함께하는 것입니다. 또한 성령안에서 아버지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끊임없이 깨닫게 하시고 가르치는 은혜의 일을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헤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제자들은 주님께서 그들을 떠나신다 해도 근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성령께서 제자들과 함께하심으로 세상이 주지 못하는 평강과 위로로 함께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약속하신 것처럼 부활 후에 근심하여 떨고 있는 제자들을 찾아오셨습니다. 20장 19-22절입니다.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 그리고 디베랴 바닷가에 제자들을 찾아 오셔서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물으시고, "내 양을 먹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주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이제 우리는 부활 이후에 살고 있습니다. 성령강림절 이후에 살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약속하셨듯이 주님은 우리와 육신으로 더 이상 함께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약속하신 다른 보혜사 성령께서 오셨습니다. 우리가 주를 믿고 고백할 때 성령께서 우리안에 내주하셔서 거처를 정하시고 함께 생을 사는 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아니 성령안에서 성삼위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의 심령에 내주하셔서 거처를 정하시고 계십니다. 지금도 주님께서는 성령을 통해서 끊임없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주님과 영적으로 교통하며 신령한 은혜안에 살아가도록 촉구하십니다. 성령께서는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를 통해서 영향력을 미치기를 원하십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을 때 깨달을 수 있는 빛을 비추십니다. 성경을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의 뜻과 주님의 음성을 듣게 하십니다. 또한 우리가 기도할 때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세미한 음성으로 말씀하시며 주님의 말씀과 뜻을 깨닫게 하십니다. 환경을 통해서 말씀하실 수도 있습니다. 다른 믿는 자들을 통해서도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도 합니다.
이처럼 우리는 성령안에서 여호와 하나님과 교통하는 복된 새 백성입니다. 부활의 백성입니다. 새 언약의 백성입니다. 성령을 받았고 성령이 우리 안에 내주하신다면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으로 다스림을 받고 성령이 우리의 전 인격을 지배하도록 그 분에게 순종하고 우리를 드려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과 지식을 십자가에 내려놓고 성령을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의 생각과 지식이 우리를 지배하도록 해야 합니다. 세상적인 물욕과 가치가 우리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안에서 여호와 하나님 나라의 가치가 우리를 감싸안아야 합니다. 우리의 날마다의 삶이 여호와 하나님의 간섭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의 옛 사람의 모습은 십자가에 내려놓아야 합니다. 우리의 아집과 욕심과 세상적인 모든 영역들을 십자가에 못박아야 합니다. 대신에 성령을 통해서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성령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내주하시는 성령을 한쪽 구속에 방치해놓고 분주히 자신의 생각과 지혜와 능력과 뜻으로 행하는 것은 믿음의 일이 아닙니다. 그런 일은 일시적으로 성공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결국은 실패하고 고통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예화) 성령님의 인도함 없이 분주히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예.
성령을 따라 사는 자는 가치관이 변화됩니다. 성령을 따라 사는 자는 여호와 하나님이 주시는 희락과 평강으로 충만합니다.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을 근심되게 해서는 안됩니다. 우리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을 소멸케 해서는 안됩니다.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고 성령의 전적인 지배를 따라 살아야 될 것입니다. 그럴 때 성령께서 여러분의 눈을 여시고 귀를 여시고 마음을 주장해서 신령한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들어 가실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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