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본문
오늘은 성령강림절이다. 교회는 성령의 강림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성령이 오시기 전까지 심지어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께서 왜 십자가를 지셔야 했는가에 대해서 정확히 깨닫지 못했다. 그들은 전도가 무엇인지도 몰랐고, 알았더라도 용기와 열정이 없었다.
그러나 성령께서 오시자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제자들은 자신들도 이해할 수 없는 강력한 힘에 이끌리어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오늘날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도 처음에는 자신이 성령으로 충만한지 어쩐지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이 말은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면 이상한 힘에 사로잡혀서 무아지경에 이르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성령이 임하면 자기 자신의 정체성이 더욱 분명해진다. 자기를 깨닫고 자기의 위치를 깨닫고 자기의 진실된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들은 모두가 자기의 사명을 깨닫게 되고 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오늘 본문 말씀에도 예수님은 우리가 큰 사명을 감당하게 될 것을 미리 말씀하셨다.
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그런데 그동안 한국교회가 성령운동을 너무 신비스럽고 비신사적으로 한 부분이 있었다. 심지어는 많지는 않지만 일부에서는 샤머니즘적인 색채가 강해서 오히려 성령 충만을 꺼리는 현상까지 생겼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조선시대에도 사대부 가문에서는 무당에게 가는 것을 금기시 했고, 부득불 가야 하는 경우에는 아랫사람들을 시키거나 아낙네를 시켜서 점을 보게 하였다. 즉 영적이고 신비스러운 일들을 멀리해서 거기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일부 신비스런 성령운동이 사람들에게 샤머니즘적인 느낌이 들게 하였던 것이다. 물론 이런 분위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시대에 걸맞지 않다고 느낀다. 그래서 이런 분위기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성령께서 내 안에 거하시게 되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된다는 것이 무섭게 느껴지기도 한다. 신이 내게로 오는 것은 심지어 샤머니즘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대단히 싫어한다. 무당에게 신이 내리는 것은 좋아하지만, 자기에게 신이 내리는 것은 싫어하는 것이다. 왜냐면 무당에게 내리는 신은 귀신이요, 내리면 귀신에게 지배당하게 되고, 소위 무병에 걸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령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각 사람에게 임하는 것은 귀신이 우리를 지배하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사람이 범죄한 이후로 여호와 하나님의 영이 사람들과 영원히 함께 있지 않게 되었던 창세기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3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창6:3)
즉 원래는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거하셨는데, 우리의 범죄로 인해서 오히려 악령이 우리를 괴롭혔던 것이다. 사람은 여호와 하나님의 영, 즉 성령으로 온전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7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창2:7)
27 여호와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여호와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1:27)
그렇지 않으면 영이 죽어서 방황하고, 어찌할 줄 모르고, 마귀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사단의 노예가 되어서 죄중에 헤매게 된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모든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고 모든 죄에 대해서 무죄선언을 하신 후에 성령이 다시금 사람들에게 임하셨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이 승천하시고 난 후에 보혜사 성령께서 오시게 된다고 말씀 하셨다.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그것은 사람들의 모든 죄가 용서를 받았다는 것을 의미하고 마귀는 쫒겨나고 사람들의 죽었던 영이 회복되어서 다시 살아나게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것을 중생이라 한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 모든 자는 성령으로 충만케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또 다시 마귀의 꾐에 빠지게 되고 부끄러운 사람이 되고 만다. 그래서 오늘은 특별히 성령의 충만에 대해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는 것이다.
본론:
1. 회개해야 한다.
오늘 1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말씀 하시기를 세상은 능히 성령을 받지 못한다고 하셨다. 여기서 세상이란 자신이 아직 죄인인줄 깨닫지 못하고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는 자를 말한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또 죄를 인정하고 실수를 인정하는 것은 틀림없이 어떤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또 자신이 죄인이라고 인정은 하더라도 그것은 누구나 다 그렇게 하는 것이요, 벌을 받을만한 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심지어는 나보다 더 큰 죄인들도 거리를 활보하고 다닌다고 고발한다.
물론 그렇다.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이런 태도들이 진실을 가리게 한다. 나의 진면목을 보지 못하게 한다. 진정한 나를 발견하지 못하게 한다. 덩달아서 나에게 닥치게 되는 불행이나 위험도 발견하지 못하게 하고, 더 나아가서는 지옥의 형벌을 깨닫지 못하게 한다.
그러므로 멈추어 서서 자기의 진짜 모습을 보아야 한다. 자신의 현재 위치를 깨달아야 한다.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모습은 더 깨끗한 모습이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의 허물을 깨닫고 그 허물을 인정하는 것이 몹시 중요하다. 자기 얼굴이 더럽다는 것을 모르는 데 세수하려 하겠는가 자기가 죄인인 것을 인정해야만 비로소 죄에서 떠나려고 한다.
그러므로 회개는 여호와 하나님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에게 진실하지 않는 사람은 결코 행복하지 못하며 자기가 소원하는 삶을 살아가지 못한다.
회개는 진실된 자기의 모습을 발견하고 자기 자신에게 진지해 지려는 것이다. 귀챦아 하며 대충 넘어가려는 마음을 불러 세우는 것이다. 마치 경찰관이 법규를 위반한 사람을 불러 세우듯이 자기 양심으로 자기를 불러 세우는 것이다. ‘아, 잠깐 잠깐 너 스스로를 속이려 하지 말고 거기 서’
‘거기 서 계십시요. 두려워 하지 마십시요. 이미 여호와 하나님께서 당신의 벌금을 지불하셨습니다. 이미 예수님께서 당신을 위해서 대신 죽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해도 괜챦습니다. 무거운 죄책감을 벗어 놓을 수 있는 기회인 것입니다. 탕감 받을 기회인 것입니다. 죄악된 세상에서 광명한 곳으로 나올 수 있는 길이 열려있습니다. 그러므로 잠깐 서 계시기 바랍니다. ’이런 음성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두드리신다. 우리가 그 음성을 듣고 마음의 문을 열기만 하면 된다.
만약 내가 죄인이라는 것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면 결코 변화를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어느 누구보다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죄인임을 인정하는 것이 가장 복되다.
오직 회개하는 자에게 성령께서 임하시고 그 마음에 하늘의 기쁨을 주신다.
38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행2:38)
19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행3:19)
부디 선린교회 교인들은 한사람이라도 회개하지 않는 사람이 있어서는 아니된다. 모두 회개하여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할 것이다.
2. 복음을 믿어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사람이 회개하고 죄에서 벗어나려면 복음을 믿어야 그것이 가능하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기독교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깨닫고 우리에게 전파해 준 어떤 것이 아니라, 바로 예수 그리스도 그 자체이시다. 예수님이 어떤 좋은 것을 가지고 우리에게 주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 자신이 곧 우리에게 좋으신 분이시다.
우리 영이 굶주려서 죽어가고 있을 때 우리에게 양식이 되어주신 분이 예수님이시다.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할지 향방을 알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을 때 우리에게 길이 되어주신 분이 예수님이시다. 참과 거짓이 뒤엉켜서 도데체 무엇이 진리인지 알지 못하고 있을 때 우리에게 진리가 되어 주신 분이 예수님이시다.
우리가 죄를 짓고 그 대가로 사단에게 끌려가서 지옥의 형벌을 받아야하는데, 우리 대신 지옥의 형벌을 당하신 분이 예수님이시다. 우리가 모두 죽을 수 밖에 다른 도리가 없는데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깨우쳐 주시고 천국이 있음을 알려 주시고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셔서 영생에 대한 소망을 주시고 천국에 대한 소망을 주신 분이 예수님이시다.
그래서 예수님이 복음의 핵심이신 것이다. 우리가 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예수님을 마음속에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렇게 예수를 믿고 예수님을 마음속에 받아들이도록 우리에게 감동을 주신 분이 곧 성령이시다. 그러므로 성령의 충만을 받으려면 복음을 믿어야 한다.
3. 영혼에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공급해야 한다.
17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그런데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는 것은 일회적인 사건이 아니라 지속적인 사건이다. 성령의 임하심으로 우리 영혼은 되살아 나지만 지속적으로 영적인 능력을 공급받아야 한다.
우리 영혼에 이런 영적인 능력을 지속적으로 공급하는 것이 곧 생명의 양식인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인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렇게 지속적으로 우리에게 생명의 양식을 공급하시는 분이 또 성령님이시다.
그래서 성령의 별명이 ‘진리의 영’이다. 진리의 영이 우리 속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하신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참으로 놀라운 생명력을 우리에게 공급해 주신다. 마치 한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서 많은 열매를 맺는 것처럼 진리의 영이신 성령께서 우리 속에 한가지 말씀을 깨닫게 하시면 그 말씀이 씨앗이 되어서 뿌리가 돋고 싹이 나오고 무럭무럭 자라서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신다. 그리고 그 열매가 또 씨앗이 되어서 더 풍성하게 하신다. 바로 이것이 성경공부인 것이다. 그래서 성경말씀을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더 많은 것을 깨닫게 되고 우리의 삶은 더욱 풍성하여서 성령으로 충만한 삶을 살게 된다.
성령충만의 이 세가지 단계가 여러분 모두에게 다 일어나시기를 축원드린다.
그러나 성령께서 오시자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제자들은 자신들도 이해할 수 없는 강력한 힘에 이끌리어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오늘날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도 처음에는 자신이 성령으로 충만한지 어쩐지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이 말은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면 이상한 힘에 사로잡혀서 무아지경에 이르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성령이 임하면 자기 자신의 정체성이 더욱 분명해진다. 자기를 깨닫고 자기의 위치를 깨닫고 자기의 진실된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들은 모두가 자기의 사명을 깨닫게 되고 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오늘 본문 말씀에도 예수님은 우리가 큰 사명을 감당하게 될 것을 미리 말씀하셨다.
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그런데 그동안 한국교회가 성령운동을 너무 신비스럽고 비신사적으로 한 부분이 있었다. 심지어는 많지는 않지만 일부에서는 샤머니즘적인 색채가 강해서 오히려 성령 충만을 꺼리는 현상까지 생겼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조선시대에도 사대부 가문에서는 무당에게 가는 것을 금기시 했고, 부득불 가야 하는 경우에는 아랫사람들을 시키거나 아낙네를 시켜서 점을 보게 하였다. 즉 영적이고 신비스러운 일들을 멀리해서 거기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일부 신비스런 성령운동이 사람들에게 샤머니즘적인 느낌이 들게 하였던 것이다. 물론 이런 분위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시대에 걸맞지 않다고 느낀다. 그래서 이런 분위기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성령께서 내 안에 거하시게 되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된다는 것이 무섭게 느껴지기도 한다. 신이 내게로 오는 것은 심지어 샤머니즘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대단히 싫어한다. 무당에게 신이 내리는 것은 좋아하지만, 자기에게 신이 내리는 것은 싫어하는 것이다. 왜냐면 무당에게 내리는 신은 귀신이요, 내리면 귀신에게 지배당하게 되고, 소위 무병에 걸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령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각 사람에게 임하는 것은 귀신이 우리를 지배하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사람이 범죄한 이후로 여호와 하나님의 영이 사람들과 영원히 함께 있지 않게 되었던 창세기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3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창6:3)
즉 원래는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거하셨는데, 우리의 범죄로 인해서 오히려 악령이 우리를 괴롭혔던 것이다. 사람은 여호와 하나님의 영, 즉 성령으로 온전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7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창2:7)
27 여호와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여호와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1:27)
그렇지 않으면 영이 죽어서 방황하고, 어찌할 줄 모르고, 마귀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사단의 노예가 되어서 죄중에 헤매게 된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모든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고 모든 죄에 대해서 무죄선언을 하신 후에 성령이 다시금 사람들에게 임하셨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이 승천하시고 난 후에 보혜사 성령께서 오시게 된다고 말씀 하셨다.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그것은 사람들의 모든 죄가 용서를 받았다는 것을 의미하고 마귀는 쫒겨나고 사람들의 죽었던 영이 회복되어서 다시 살아나게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것을 중생이라 한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 모든 자는 성령으로 충만케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또 다시 마귀의 꾐에 빠지게 되고 부끄러운 사람이 되고 만다. 그래서 오늘은 특별히 성령의 충만에 대해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는 것이다.
본론:
1. 회개해야 한다.
오늘 1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말씀 하시기를 세상은 능히 성령을 받지 못한다고 하셨다. 여기서 세상이란 자신이 아직 죄인인줄 깨닫지 못하고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는 자를 말한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또 죄를 인정하고 실수를 인정하는 것은 틀림없이 어떤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또 자신이 죄인이라고 인정은 하더라도 그것은 누구나 다 그렇게 하는 것이요, 벌을 받을만한 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심지어는 나보다 더 큰 죄인들도 거리를 활보하고 다닌다고 고발한다.
물론 그렇다.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이런 태도들이 진실을 가리게 한다. 나의 진면목을 보지 못하게 한다. 진정한 나를 발견하지 못하게 한다. 덩달아서 나에게 닥치게 되는 불행이나 위험도 발견하지 못하게 하고, 더 나아가서는 지옥의 형벌을 깨닫지 못하게 한다.
그러므로 멈추어 서서 자기의 진짜 모습을 보아야 한다. 자신의 현재 위치를 깨달아야 한다.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모습은 더 깨끗한 모습이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의 허물을 깨닫고 그 허물을 인정하는 것이 몹시 중요하다. 자기 얼굴이 더럽다는 것을 모르는 데 세수하려 하겠는가 자기가 죄인인 것을 인정해야만 비로소 죄에서 떠나려고 한다.
그러므로 회개는 여호와 하나님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에게 진실하지 않는 사람은 결코 행복하지 못하며 자기가 소원하는 삶을 살아가지 못한다.
회개는 진실된 자기의 모습을 발견하고 자기 자신에게 진지해 지려는 것이다. 귀챦아 하며 대충 넘어가려는 마음을 불러 세우는 것이다. 마치 경찰관이 법규를 위반한 사람을 불러 세우듯이 자기 양심으로 자기를 불러 세우는 것이다. ‘아, 잠깐 잠깐 너 스스로를 속이려 하지 말고 거기 서’
‘거기 서 계십시요. 두려워 하지 마십시요. 이미 여호와 하나님께서 당신의 벌금을 지불하셨습니다. 이미 예수님께서 당신을 위해서 대신 죽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해도 괜챦습니다. 무거운 죄책감을 벗어 놓을 수 있는 기회인 것입니다. 탕감 받을 기회인 것입니다. 죄악된 세상에서 광명한 곳으로 나올 수 있는 길이 열려있습니다. 그러므로 잠깐 서 계시기 바랍니다. ’이런 음성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두드리신다. 우리가 그 음성을 듣고 마음의 문을 열기만 하면 된다.
만약 내가 죄인이라는 것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면 결코 변화를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어느 누구보다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죄인임을 인정하는 것이 가장 복되다.
오직 회개하는 자에게 성령께서 임하시고 그 마음에 하늘의 기쁨을 주신다.
38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행2:38)
19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행3:19)
부디 선린교회 교인들은 한사람이라도 회개하지 않는 사람이 있어서는 아니된다. 모두 회개하여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할 것이다.
2. 복음을 믿어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사람이 회개하고 죄에서 벗어나려면 복음을 믿어야 그것이 가능하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기독교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깨닫고 우리에게 전파해 준 어떤 것이 아니라, 바로 예수 그리스도 그 자체이시다. 예수님이 어떤 좋은 것을 가지고 우리에게 주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 자신이 곧 우리에게 좋으신 분이시다.
우리 영이 굶주려서 죽어가고 있을 때 우리에게 양식이 되어주신 분이 예수님이시다.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할지 향방을 알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을 때 우리에게 길이 되어주신 분이 예수님이시다. 참과 거짓이 뒤엉켜서 도데체 무엇이 진리인지 알지 못하고 있을 때 우리에게 진리가 되어 주신 분이 예수님이시다.
우리가 죄를 짓고 그 대가로 사단에게 끌려가서 지옥의 형벌을 받아야하는데, 우리 대신 지옥의 형벌을 당하신 분이 예수님이시다. 우리가 모두 죽을 수 밖에 다른 도리가 없는데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깨우쳐 주시고 천국이 있음을 알려 주시고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셔서 영생에 대한 소망을 주시고 천국에 대한 소망을 주신 분이 예수님이시다.
그래서 예수님이 복음의 핵심이신 것이다. 우리가 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예수님을 마음속에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렇게 예수를 믿고 예수님을 마음속에 받아들이도록 우리에게 감동을 주신 분이 곧 성령이시다. 그러므로 성령의 충만을 받으려면 복음을 믿어야 한다.
3. 영혼에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공급해야 한다.
17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그런데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는 것은 일회적인 사건이 아니라 지속적인 사건이다. 성령의 임하심으로 우리 영혼은 되살아 나지만 지속적으로 영적인 능력을 공급받아야 한다.
우리 영혼에 이런 영적인 능력을 지속적으로 공급하는 것이 곧 생명의 양식인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인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렇게 지속적으로 우리에게 생명의 양식을 공급하시는 분이 또 성령님이시다.
그래서 성령의 별명이 ‘진리의 영’이다. 진리의 영이 우리 속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하신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참으로 놀라운 생명력을 우리에게 공급해 주신다. 마치 한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서 많은 열매를 맺는 것처럼 진리의 영이신 성령께서 우리 속에 한가지 말씀을 깨닫게 하시면 그 말씀이 씨앗이 되어서 뿌리가 돋고 싹이 나오고 무럭무럭 자라서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신다. 그리고 그 열매가 또 씨앗이 되어서 더 풍성하게 하신다. 바로 이것이 성경공부인 것이다. 그래서 성경말씀을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더 많은 것을 깨닫게 되고 우리의 삶은 더욱 풍성하여서 성령으로 충만한 삶을 살게 된다.
성령충만의 이 세가지 단계가 여러분 모두에게 다 일어나시기를 축원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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