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 성령의 내주
본문
성령은 우리 안에 계셔서 실제적으로 인도하시며 큰 능력을 베푸십니다. 그리고 성령을 알 때 우리의 삶이 변하게 됩니다. 신앙생활을 잘 하기 위해서는 성령에 대한 이해와 지식이 필요합니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사역으로 오셨기에 구원 받은 후에 범죄를 범해도 성령은 우리를 결코 떠나지 않으나 죄 가운데 있는 것을 탄식하며 기도 하십니다. 이처럼 성령은 각자의 상태와 관계없이 계십니다.
성령에 대한 지식을 알 때 깨끗하게 되며 소유욕, 명예욕, 자기의 욕망, 자기 생활, 자기의 생명을 버려야 합니다. 이처럼 자기의 결심을 분명히 하여야 성령 충만으로 채워 주십니다. 성령은 우리의 삶에 항상 있는 것을 알 때 변화를 하게 되며 현재의 삶을 영원한 가치 있는 것으로 변화시켜 주십니다.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 반드시 알아야 될 지식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창조주의 존재를 알아야 합니다 누구든지 여호와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을 믿어야 할지니라 하는 말씀 속에서 먼저 창조주에 대한 지식이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유일하신 천지를 지은 창조주에 대한 지식과 믿음이 있어야 됩니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 구세주에 대한 믿음이 또한 성경을 통해서 있어야 됩니다 창조주뿐만 아니라 그가 우리 구세주가 되었다는 사실을 성경 말씀을 통해서 알아야 합니다. 또한 현재 실제적인 신앙생활을 위해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성령에 대한 지식도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결국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한 지식은 창조주와 구세주와 현재 우리와 함께 하시는 성령에 대한 지식과 믿음이 있어야 된다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성령의 內住라는 제목으로 함께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성령의 내주(內住)란 우리 속에 성령께서 계시다는 놀라운 진리 중에 진리를 설명하는 말입니다 성령은 우리 안에 게시며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겠다는 약속의 말씀처럼 우리 안에서 역사하십니다. 중요한 신앙고백의 내용 중에 하나가 성령을 믿사오며 하는 고백입니다 그래서 사도신경의 내용에도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이렇게 중요한 신앙의 내용을 나열하는데 성령을 믿는다라는 고백은 중요한 빼놓을 수 없는 핵심적인 진리 중에 하나입니다. 성령은 소위 말하는 삼위일체의 한 位를 차지하고 계십니다 성부 여호와 하나님 성자 여호와 하나님 그리고 성령 여호와 하나님 삼위일체라는 진리를 나타내는 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불행한 것은 이러한 중요한 성령에 대한 지식이 오해되거나 또는 전혀 성령에 대한 지식이 없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초대교회 에베소 교회가 태동할 당시에 에베소 사람들은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들은 성령의 존재조차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혹 우리 가운데도 무지함 속에서 신앙생활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이 간혹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령에 대한 가르침은 난해한 신학적인 주제도 아니고 단순한 영향력이나 감화력 능력만을 나타내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 성경말씀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성령에 대해서 함께 공부해 보고자 합니다 성령에 대한 것이 참으로 중요한 것은 성령이 우리 안에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생명과 사망이 나뉘어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성경은 단호하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우리가 곧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성령은 우리 안에 게시며 더욱 단지 계실 뿐만 아니라 실제적으로 역사하고 지금도 우리를 인도하고 계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성령에 대한 의무는 생명과 사망을 나누는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을 합니다. 누구든지 믿음 안에 있는가 자신을 시험하고 확증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고린도후서 13장 5절에 그런 엄중한 말씀으로 중요성을 일깨우고 계십니다.
지금 읽은 본문 14장 16절에 보면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라고 말씀하십니다. 보혜사라는 말이 있는데 그 보혜사라는 말은 성령의 이름 중에 하나입니다 이름이란 그 분의 역할과 하시는 일을 우리에게 설명해 주고 있는 표현입니다. 보혜사라는 말은 보호해 주며 은혜를 베푸시며 가르치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한자 하나하나가 성령이 하시는 일을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보호하다 保 은혜 惠 스승 師 자를 씁니다. 보호하시며 은혜를 베푸시며 가르치시는 분 그분이 바로 성령이신데 여기 성령을 표현한 보혜사라는 말 앞에 다른 보혜사라는 말을 사용하고 계십니다. 또 다른 보혜사라는 것은 예수님 자신이 제자들에게 있어서 보혜사 역할을 하셨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제자를 보호하시며 은혜를 베푸시며 가르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예수님은 세상을 떠나 여호와 하나님 앞으로 가셔야 합니다 예수님이 가신 뒤에 예수님과 같은 그러한 역할로서 제자들을 돌봐줄 성령을 보내시겠다는 표현 속에서 또 다른 이라는 말을 사용하셨습니다.
요한일서 2장 1절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대언자라는 말 옆에 3이 있고 난하주에 보면 혹 보혜사라고 되어 있습니다 대언자라는 말과 보혜사 라는 말은 같은 단어를 번역한 것입니다. 대언자는 여호와 하나님 앞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예수님 자신이 우리들의 대언자이며 보혜사입니다 그는 여호와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성령을 또 다른 보혜사라고 표현한 것은 바로 하늘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고 있는 그분이 계시고 또한 땅에 살고 있는 우리 속에 보호하시고 은혜를 베푸시고 가르치시는 성령이 있다 라는 것을 일깨워주는 표현입니다. 아버지 앞에 예수 그리스도 우리 대언자 보혜사가 계십니다.
그리고 이 세상 땅 위에 그리스도인 속에 우리를 위한 대언자 보혜사가 계십니다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하늘에서 지금도 제사장의 역할을 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시며 땅에서 현재 우리와 함께 계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중보자가 둘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늘에는 여호와 하나님 앞에 지금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대 제사장 되신 승천하신 예수님이 계시고 땅에는 현재 우리의 삶 속에 우리 속에 성령이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령은 우리 속에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친히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대언자 보혜사가 현재 우리 삶 속에 함께 있음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와 같이 성령께서 현재 우리의 삶 속에 함께 하시며 더욱 우리 속에 계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게 될 때 우리는 신앙생활의 큰 유익과 힘의 근원을 갖게 됩니다.
요한복음 14장에 다시 돌아가서 12-14절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승천하신 예수께서 이제 성령을 통해서 우리에게 능력을 베푸시며 우리 안에 큰일을 할 수 있는 힘을 베푸십니다 그는 능력의 근원이십니다 성령은 우리와 함께 계시며 우리 속에 큰 능력을 베풀고 계십니다. 석유는 오랫동안 땅속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석유의 존재를 알지 못했고 전혀 석유를 활용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석유의 존재를 발견하게 되고 석유를 사용하기 시작했을 때 인류는 비약적인 문명의 발전을 이룹니다. 20세기 문명은 석유문명이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석유의 사용은 엄청난 삶의 質을 변화시켰습니다 마찬가지로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에게 베푸시는 능력이 얼마나 큰지를 깨닫게 될 때 우리의 삶에 변화가 생깁니다 이미 우리 속에 거하시는 성령에 대한 지식을 갖고 성령을 의지하고 신앙생활을 하게 될 때 우리는 능력의 근원에 접붙임 바 되어 그 능력이 우리의 삶 속에 나타나도록 할 수 있습니다 성령은 능력의 근원입니다.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우리 삶 속에 권능을 베푸십니다
그런데 단지 권능과 능력만 베푸시는 것이 아닙니다. 26절에 보면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성령은 가르치시고 생각나게 하십니다 우리를 더욱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며 진리에 대한 이해력을 주고 진리를 따라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가르치시며 생각나게 하는 역사를 성령께서 이루십니다.
뉴턴이 중력, 만유인력을 발견하기 전에도 세상에는 중력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뉴턴이 사과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중력을 발견했습니다 발명이 아닙ㅌ니다 없었던 것을 만든 것이 아니라 있는 현상을 발견한 것입니다 뉴턴이 만유인력을 발견하고 만유인력에 대한 이해를 했을 때 비로소 자연 모든 현상에 대한 이해력이 생겼습니다 우주의 질서와 조화에 대한 명확한 이해력이 만유인력의 발견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와 함께 계시는 우리 속에 계신 성령에 대한 깨달음을 가질 때 우리는 비로소 영적인 수많은 현상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으며 기록된 성경말씀에 대한 깨달음을 갖게 됩니다 성령은 가르치시며 생각나게 하시는 역사를 이루시게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성령에 대한 인식은 영적 수많은 사실에 대한 이해력을 주며 특별히 기록된 말씀에 대한 지식을 주게 되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27절에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성령은 평강의 왕이십니다. 그는 평강의 근원이십니다 우리 배에서 생수의 근원이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그의 받을 성령을 나타냄이라고 표현되어 있는데 바로 평강의 근원이며 평안의 근원이 되십니다. 성령에 대한 지식은 우리 마음 속에 내적인 평강과 평안을 유지하는데 큰 힘이 됩니다.
우리와 함께 계시는 성령에 대한 지식과 믿음이 우리를 평강으로 인도하고 우리를 평안하게 만들어줍니다. 캄캄한 어두운 곳을 여행하던 사람이 발을 헛디뎠습니다 낭떠러지로 떨어졌습니다. 간신히 팔을 내젓다가 나뭇가지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죽을 힘을 다 해서 매달렸습니다. 낭떠러지에서 떨어졌으니 손을 놓게 되면 큰일나지요 그런데 문제는 아무도 건져주는 사람이 없었고 점점 손의 힘이 빠져갑니다. 그러나 손을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흑암 속에서 낭떠러지에서 손을 놓게 되면 큰일나겠지요. 죽을 힘을 다 해서 나뭇가지를 붙들고 매달렸습니다 결국 새벽녘까지 매달렸는데 해가 떠오를 때 가만 보니까 밝은 빛 속에서 낭떠러지를 쳐다보니까 1m 밑에 바닥이 있더랍니다 너무 허망했습니다 진작 알았다면 아등바등 매달려 있지 않았을 텐데 모르는 바람에 밤새도록 애를 쓴 것입니다 빛이 비춰지니까 사실이 드러나고 바로 밑에 안전한 바닥이 있다는 것을 보게 된 것이지요 성령은 그와 같은 이해력을 줍니다. 주님의 손 안에 있다 라는 지식을 줌으로 인해서 두려워하지 않게 해 줍니다 평안하게 해 줍니다.
그런데 우리와 함께 계시는 성령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밤새도록 캄캄한 어둠 속에서 온 힘을 다 해서 매달리고 마음고생과 육체적인 고생을 하게 됩니다 성령에 대한 이해가 왜 중요합니까 이와 같이 능력의 근원을 알게 하며 영적 사실에 대한 이해력을 주며 우리 마음에 평안을 주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성령에 대한 분명한 이해와 믿음은 능력의 근원을 발견하게 하며 성경을 이해할 수 있는 힘을 주고 우리 마음에 평안을 줍니다 그래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우리 속에 계시는 성령에 대한 분명한 지식과 믿음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현재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는 비결은 성령에 대한 이해와 믿음입니다 승리하는 생활이라는 우리의 관심을 끌 수 있는 매혹적인 제목을 갖고 있는 책들을 간혹 보신 적이 있을 것입니다 여러 가지로 표현했지만결론적으로는 함께 하시는 성령에 대한 지식과 믿음을 이야기합니다 성령에 대한 지식과 믿음이 있어야지만 현재 우리의 삶 속에 여호와 하나님의 임재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능력과 이해와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성령에 대한 지식이 우리에게 온전한 신앙생활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합니다
우리의 지식은 과거에 관련된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죽고 부활하심입니다 역사적인 사실에 대한 인식입니다 완성된 성취된 사역에 대한 지식과 믿음이 있습니다 과거입니다 미래는 무엇입니까 미래에 대한 지식도 있습니다 장차 예수께서 영광 중에 나타나실 것 재림에 관한 지식과 믿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과거에 대한 믿음도 있고 미래에 대한 믿음도 있는데 현재에 대한 믿음이 어디 있습니까 현재에 대한 믿음은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 우리 안에서 사역하시고 활동하시는 성령에 대한 믿음입니다 만일 성령에 대한 온전한 지식과 믿음이 없다면 신앙은 과거에 미래에 매어버립니다. 현재는 답답하지요 예수님이 완성한 사역은 우리에게 기쁨을 주고 장차 오신다는 것도 기쁨을 주지만 아무튼 현재는 힘들고 어렵다 라는 절망적인 생각만 들게 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신앙은 현재에도 의미가 있습니다 현재 우리와 함께 계시는 성령을 알 때 그에 대한 온전한 믿음을 같게 될 때 우리는 신앙의 현재성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성령에 대한 지식은 우리가 알아야 될 중요한 핵심적인 내용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초두에 말씀드린 것처럼 창조주에 대한 믿음 구세주에 대한 믿음 오늘 함께 나누고 있는 성령 우리와 함께 계시는 보혜사에 대한 지식과 믿음이 있어야 됩니다.
성령이 어떻게 우리 안에 계시게 된 것일까 성령이 우리 속에 계시게 된 근거가 있습니다 그 근거에 대한 말씀을 먼저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요한복음 7장 39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신 고로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아니한 고로 예수께서 영광을 받으신다 하는 말은 죽음과 부활을 나타냅니다 예수님의 사역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단계입니다 그래서 성령이 아직 그들 속에 없었다고 말씀하십니다. 따라서 성령은 예수님의 영광 받으시는 사건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 죽고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성령이 제자들 속에 거하게 된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 속에 계시게 된 근거는 우리하고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 상태와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사역과 관련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구속의 사역과 관련해서 성령이 우리 속에 계시게 된 것입니다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서냐 듣고 믿음으로서냐 갈라디아 성도에게 바울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봤습니다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아니면 듣고 믿음에서냐 듣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을 받았습니다 성령이 우리 속에 오시게 된 것은 우리의 상태와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관련이 있어서 우리 속에 계시게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구속의 사역을 통해서 성령께서 우리 속에 계시게 된 것입니다
요한복음 16장 같은 맥락의 말씀을 찾아보겠습니다 7절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승천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죽고 부활하신 후에 승천하신다는 뜻인데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성령이 우리에게 오신 이유가 여기에도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 떠나가셨기 때문에 성령이 오실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승천의 사건을 통해서 성령이 우리 속에 오실 수 있는 근본이 마련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셨다 그리스도의 부활의 사건은 우리를 거듭나게 할 수 있는 근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속에 성령이 계실 수 있는 근거가 되었습니다 성령이 우리 속에 계시는 근거는 그리스도의 구속의 사역입니다 그가 죽고 부활하시며 여호와 하나님 우편에 지금도 우리를 위하여 중보자로 계시기 때문에 성령께서 우리 속에 계시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우리의 상태와 아무 상관없이 오직 그리스도의 사역과 관련해서 성령의 內住가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율법의 행위에서가 아니라 듣고 믿음으로 우리는 단지 그리스도를 믿었는데 그의 하신 일로 말미암아 성령께서 우리 속에 계시게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은 분명한 성경적인 지식은 늘 죄의 유혹 가운데 있는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지식이며 큰 위로가 되는 지식입니다. 왜냐하면 만일 우리의 선악이라는 상태에 따라서 성령이 오셨다면 혹 우리가 유혹을 받게 되거나 범죄에 빠지게 되었을 때는 성령은 떠나실 것입니다. 우리의 선악이라는 기준 때문에 성령께서 우리 속에 오셨다면 우리가 악해질 때 성령은 우리를 버리고 떠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처음에 오셨을 때 우리의 선악이라는 상태에 따라 오시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역 때문에 오셨습니다. 우리는 선과 악이 뒤섞였지만 그리스도의 사역은 완성된 변하지 않는 진리입니다. 그 진리를 따라 성령이 오셨기 때문에 혹 우리가 범죄한다 하더라도 우리 마음에 악한 유혹이 가득 찬다 하더라도 성령은 떠나시지 않습니다 근심하시고 탄식하시며 말할 수 없는 고통을 표현하신 말씀은 있다 하더라도 그러나 우리를 결코 떠나시지 않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이러한 진리는 혹 유혹을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또는 이미 죄가 생활 가운데 들어와서 범죄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낙심하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께 돌아올 수 있는 빛을 비춰주는 진리입니다. 성령은 결코 우리를 떠나시지 않습니다 혹 우리가 유혹 가운데 있거나 죄악 가운데 있다 하더라도 성령은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그는 죄 가운데 있는 우리를 보시고 근심하시며 탄식하시며 시기하시기까지 사모하여 혹 징계는 하실지언정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이러한 진리를 분명하게 선언하는 것은 혹 범죄하고 낙심 가운데 있고 스스로 자기를 비하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에서 스스로 떨어지는 자가 있을까봐 분명한 진리를 다시 한 번 명확하게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성령의 內住의 근거는 우리 안에 오시게 된 근거는 그리스도의 완성된 구속의 사역이지 우리의 상태와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상태에 따라서 성령이 결코 우리를 떠나시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혹 죄 가운데 있다 하더라도 우리로 하여금 가룟유다처럼 극단적인 절망에 처하지 않고 회개의 눈물과 함께 돌아올 수 있는 용기를 줍니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혹 구원받은 이후의 범죄는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에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사귐과 관련된 것입니다 관계라는 것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밀접한 관계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관계가 있습니다. 그것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 진리입니다. 혹 우리가 범죄하면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에 영향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사귐에 영향이 생기게 되어서 징계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들과 같이 우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징계를 받지 않는 아들이 있겠느냐 반문하십니다.
그러나 징계는 있되 결코 버리지 않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범죄한다 하더라도 성령은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그는 근심하시며 탄식하시며 말할 수 없는 슬픔으로 친히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십니다 그래서 마침내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 일어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우리는 절대로 끊어질 수 없는 그리스도의 사랑 가운데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완성된 구속의 사역을 믿고 의지함으로 성령은 우리 속에 오셨고 결코 우리의 상태에 따라서 우리를 버리지 않습니다. 이러한 진리는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관계를 통해서 쉽게 이해해 볼 수 있습니다 나는 내 아이를 낳을 때 이 아이가 잘 자랄 것인지 확신이 없었습니다 아이를 잘 키우려고 노력하지만 그 아이가 혹 자라면서 반항할 수도 있고 잘못된 길에 빠져들 수 있으며 범죄할 수 있습니다 나는 그 옆에서 걱정하고 탄식하고 슬퍼하겠지만 그 아이의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그때도 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아이가 범죄했다고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그 아이의 옆에서 올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해서 살아있는 한 끊임없이 노력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아이가 계속 범죄하면 아버지와 아들의 사귐은 흔들리기 시작할 것입니다 관계가 흔들리는 것이 아니지요. 사귐이 흔들려서 부자지간에 대화도 안되고 만나기만 하면 내가 화를 낼 수밖에 없고 그런 처지가 될 수밖에 없겠지만 부모 자식이라는 관계는 결코 끊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하물며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가 우리의 상태와 관련해서 은혜에서 끊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과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맺게 된 우리는 결코 끊어질 수 없는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맺어진 관계입니다. 마찬가지로 성령께서 우리 속에 계시게 된 근거도 그리스도의 구속의 사유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이러한 진리는 혹 범죄하고 자기 자신을 지나치게 학대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는 사람에게 큰 위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무엘상 12장 20-22절 ‘사무엘이 백성에게 이르되 두려워 말라 너희가 과연 이 모든 악을 행하였으나 여호와를 좇는 데서 돌이키지 말고 오직 너희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섬기라 돌이켜 유익하게도 못하며 구원하지도 못하는 헛된 것을 좇지 말라 그들은 헛되니라 여호와께서는 너희로 자기 백성 삼으신 것을 기뻐하신 고로 그 크신 이름을 인하여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실 것이요’
너희가 이같이 큰 악을 행하였으나 두려워말고 여호와를 좇는데서 돌이키지 말고 다시 마음을 돌이켜 여호와를 섬기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이렇게 큰 악을 행하였으니 이제 너희는 끝장이다 이렇게 이야기한 것이 아닙니다 너희가 이같이 큰 악을 행하였으나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 돌아오라 여호와 하나님은 그 크신 이름을 인하여 너희를 결코 버리지 아니할 것이다 이러한 진리는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에게 더욱 해당되는 진리입니다 여러분 혹 범죄했습니까 혹 유혹 가운데 있습니까 그런 큰 악 가운데 있지만 여호와를 좇는데서 돌아와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그 크신 이름을 인하여 우리를 다시 받아주십니다. 이 세상에 어떠한 이유도 구속받은 그리스도인을 하니의 은혜에서 결코 끊어낼 수 없습니다 처음부터 성령이 우리 속에 오신 것은 그리스도의 사역과 관련된 것이지 우리의 상태와 관련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죄를 볼 때 스스로 한심하고 여호와 하나님 앞에 자기 자신을 비하할 때가 많이 있지만 그렇다고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가 의심이 되어서는 절대 안됩니다 우리의 죄는 여호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의 깊이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죄가 있는 곳에 은혜가 넘칩니다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 여호와 하나님께 돌아와서 우리는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일흔 번에 일곱 번 범죄했다 하더라도 우리는 또 돌이켜야 합니다 이같이 큰 악을 행하였으나 여호와를 좇는 데서 돌이키지 말고 여호와께 돌아오라고 합니다 그는 변함없이 그리스도 안에서 일흔 번에 일곱 번이라도 우리를 받아주십니다.
사무엘하 7장 14-15절 ‘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니 저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내가 네 앞에서 폐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같이 그에게서는 빼앗지 아니하리라’
이러한 말씀은 신약시대에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받을 그리스도인들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나는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자녀가 되리니 바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합법적인 권세를 주신 그분께서 그리스도인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가 혹 죄를 범하면 사람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하겠다 그러나 은총을 빼앗지는 않겠다 징계는 있되 멸망은 없다 라고 약속하십니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피와 관련해서 우리에게 오신 것입니다 우리의 선악의 상태와 상관없이 성령은 우리 속에 오셨습니다. 성령께서 자기를 떠날 것이라는 염려는 불신에서 온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구약시대의 제사 이야기를 보면 피와 기름은 항상 관련이 있습니다 피는 속죄를 나타내지요 기름은 성령을 나타냅니다. 기름은 늘 피와 관련지어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피와 관련해서 우리에게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레위기 8장 30절 ‘모세가 관유와 단 위의 피를 취하여 아론과 그 옷과 그 아들들과 그 아들들의 옷에 뿌려서 아론과 그 옷과 그 아들들과 그 아들들의 옷을 거룩하게 하고’
거룩하게 한 것이 관유와 피입니다 피는 속죄를 나타내지요 관유는 기름이며 성령을 나타냅니다 성령은 피와 관련지어서 나타납니다 바로 그리스도의 피를 근거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믿는 한 절대로 성령은 우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혹 범죄하고 지나치게 낙심한 분들은 이러한 진리 속에서 위로를 얻고 여호와 하나님께 돌아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본문 요한복음 14장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성령에 대한 이해력이 없습니다. 그들은 성령의 사역에 대해서 철저하게 무지합니다 성령의 사역이 무엇입니까 죄인을 회개시키고 죄를 책망하고 회개시키고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주고 죄인에게 소망을 줍니다. 그리고 죄인에게 구원의 확신을 줍니다. 그러한 성령의 사역에 대해서 세상은 철저하게 무지합니다 세상은 능히 밝지 못합니다 성령이 우리를 사로잡게 될 때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보게 되어서 죄에 대한 깨달음을 갖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보고 죄에 대한 갈등과 고통을 겪게 됩니다. 그로 인해서 회개하게 되지요 뿐만 아니라 성령의 인도함을 받을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완성된 사역에 대한 지식과 깨달음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죄 가운데 있지만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랑의 증거를 갖게 되고 구원의 확신을 갖게 됩니다. 장차 주님께서 오셔서 우리를 데려가실 것이라는 소망을 갖게 됩니다. 이러한 성령의 사역으로 갖게 되는 지식은 세상은 알지 못합니다. 제가 죄에 대한 갈등과 고민 때문에 오랫동안 어린시절부터 함께 사귀었던 친구들에게 털어놓았던 적이 있습니다 그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너는 쓸데없는 생각을 한다 그런 것 가지고 고민하면 이 세상에 고민 안 할 사람이 어디 있느냐 친구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제가 하고 있는 갈등에 대해서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세상은 성령의 사역에 대해서 무지하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자신들과 같이 극한 방탕에 달음박질하지 않는 것을 보고 이상히 여겨 비방한다고 했는데 친구들도 그런 식으로 저의 행동에 대해서 비난하는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여호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이며 깨닫지도 못함이니라 이런 일은 영적으로 보아야 분변함이니라 그랬습니다 성령께서 우리 마음을 사로잡게 되어서 생기는 변화들 죄에 대한 책망 의에 대한 사모 그리스도에 대한 신뢰 구원의 확신 장차 오시는 재림하는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 이러한 성령의 가르침에 대해서 세상은 철저하게 무시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어떻습니까 그리스도인은 그러한 성령의 사역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으며 공감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앞서간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책을 읽어보고 주변에 있는 그리스도인들과 교제를 나누어보았습니다 내 속에 있는 갈등과 고민이 그들 속에 동일하게 있고 내 속에 주님께서 주셨던 위로가 그들에게 동일하게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일은 영적으로야 분변함이니라 말씀하십니다 세상은 성령의 사역에 대해서 전혀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죄에 대한 책망 회개 믿음 확신 소망과 같은 성령의 사역에 대한 이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처음 구원을 받고 앞서간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책들을 읽어보았습니다 몇백 년 전 청교도라고 일컬어지는 사람들의 책도 읽어봤고 1700년 1800년 전 초기교회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의 책들도 읽어보았습니다 놀라웠던 것은 그들 마음에 있었던 갈등이 내 속에 똑같이 있고 그들에게 주셨던 여호와 하나님의 위로가 내게 동일하게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성령은 동일한 역사를 이루십니다 진리의 영이시기 때문에 시대 환경 문화 어느 곳에 있다 하더라도 동일한 진리를 계시하십니다. 우리는 성령을 통해서 비로소 영적인 진리에 대한 이해를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그 진리에 대한 이해를 하지 못합니다 여기 성령을 진리의 영이라고 표현하고 계십니다 성령을 진리의 영이라고 표현한 것은 성령은 그리스도와 관련되어 있으며 성경말씀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진리가 무엇입니까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 예수님이 진리 자체라고 말씀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요한복음 17장 17절에 보면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라고 선언되어 있기도 합니다.
진리는 아버지의 말씀이며 예수님 자신을 나타냅니다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된 분입니다 결국 진리는 성경말씀과 성경말씀이 가리키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냅니다 성령은 진리의 영입니다 곧 성령은 그리스도를 증거하며 성경말씀을 통해서 그리스도에 대한 명확한 진리를 제시하십니다 성령은 진리를 전해주고 진리로 인도하며 진리로 거룩하게 하십니다 성령은 진리의 영이라고 불리워지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런 진리의 영인 성령께서 어떠한 사역을 하시느냐에 따라서 우리는 성령이 어떤 분이신지 알 수 있고 우리 속에 성령의 사역이 어떤 일인지 또한 알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성령의 사역이 어떠한 일들인지 진리의 영이신 성령께서 어떻게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는지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성령은 예수님에 대한 개인적이며 체험적인 신앙을 갖게 해 줍니다.
여러분 예수님 속죄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들었습니까 그것은 백과사전을 찾아도 나옵니다. 백과사전을 찾아도 예수그리스도는 온 인류의 죄를 위하여 죽으신 사랑의 화신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어떤 중이 설교하는 것을 들었는데 중이 설교할 때 사랑에 대한 설교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성경을 수많이 인용을 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언급을 하는 것을 봤습니다 예수님은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로서 온 인류를 위해 죽음으로 사랑을 보여주었다 중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날 깨달았습니다 중도 알기는 아는데 믿지만 않는 거다 분명하게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에 대해서 상식적으로라도 세상에서 늘 듣고 살아왔습니다 또 교회를 조금만이라도 다녔다면 예수께서 온 인류를 위해서 우리 죄 때문에 죽었다는 것 안 들어본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늘 들었던 그 이야기가 어느 날 정말 나와 관련이 있었습니다 나를 위해서 죽으신 예수님이란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게 늘 식상할 정도로 들었던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던 십자가 이야기가 어느 날 나하고 개인적으로 연결이 되었습니다. 정말 나를 위한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이야기가 개인적 체험적으로 받아들여질 때 성령이 오신 것입니다
성령은 오셔서 우리 마음 속에 그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십니다. 성령의 첫 번째 사역은 예수님을 개인적 체험적으로 믿을 수 있도록 역사하십니다 어느 날 늘 들었던 십자가 이야기가 나를 위한 것이란 것을 알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체험적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그날 성령이 오셨습니다 그는 진리의 영이며 내 속에 오셔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개인적 믿음을 줍니다.
요한복음 15장 26절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성경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합니다 성령이 우리 마음 속에 오실 때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온 몸이 뜨거워지지도 않았고 환상이 보이지도 않았고 방언이 터지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예수께서 나를 위해 죽으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성령이 오실 때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다 우리 마음 속에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해 주십니다 개인적이며 체험적인 신앙을 갖게 됩니다.
왜 내게 성령 주셔서 내 맘을 감동해 주 예수 믿게 하는지 난 알 수 없도다
우리의 이해력을 초월했지만 분명한 것은 믿어졌다는 것입니다 정말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었다는 것이 분명하고 확실했습니다 성령이 그때 오셨습니다 성령이 오실 때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십니다 개인적이며 체험적인 신앙을 갖게 해 줍니다
히브리서 10장 15절 ‘또한 성령이 우리에게 증거하시되’ 성령이 증거한다고 했지요 성령이 우리 마음에 친히 증거하십니다 무엇에 대해서 증거하시느냐 하면 17-18절 ‘ 또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이것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느니라’
성령이 증거하십니다 속죄에 대해서 증거하십니다. 내가 너희 죄와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성령은 우리 속에 그리스도의 속죄에 대해서 증거해 줍니다 예수님을 증거하며 예수님이 이루신 속죄 사역을 증거하는 것이 성령이십니다 우리 마음에 감동을 주시고 믿게 하십니다. 우리 속에 성령이 계시다는 증거는 바로 예수님에 대한 개인적인 체험적인 신앙을 갖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오셨기 때문에 이루어진 사실입니다
나 속죄함을 받은 후 성령이 오셔서 여호와 하나님 자녀 된 것을 늘 증거합니다
엉망으로 된 노래를 들으셨는데 가사는 정확하게 전달이 되었습니다 성령이 우리 마음에 오셨다는 증거는 속죄에 대한 사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 된 것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 사역을 통해서 성령이 내 마음에 오셨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죄악을 속하여 주신 주 내 속에 들어와 계시네
십자가 앞에서 주 이름 찬송합시다
죄악을 속하여 주신 주가 내 속에 들어와 계셔서 속죄에 대한 사실을 증거하고 그리스도에 대한 개인적이고 체험적인 신앙을 갖게 해 주십니다 그것이 성령의 첫 번째 사역입니다 성령이 내 속에 오셔서 믿음을 주십니다 그렇게 어렸을 때부터 식상할 정도로 들었던 십자가 이야기가 정말 나를 위한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이는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한번도 보지 못했던 예수 그리스도 그가 내 마음에 감동을 주었고 한번도 보지 못했던 그분을 사랑할 수 있도록 성령께서 내 속에 역사하셨습니다 성령은 우리 마음 속에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증을 줍니다 부모님이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내가 느끼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함께 생활하고 부모님의 헌신적인 희생 속에서 성장하고 그것도 오랜 시간이 들어서 철이 든 이후에야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구나 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는 단지 기록된 문자를 읽었는데 수십 년 동안 간신히 깨달은 부모님의 사랑과 비교했을 때 너무나 놀랍게 문자적으로 기록된 책 속에서만 예수님의 사랑을 실제적으로 깨달았습니다
여러분 신기하지 않습니까 책을 통해서 전달된 지식이 한번도 보지 못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을 마음에 실제적으로 느끼게 해 주는 것이 신기하지 않습니까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은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마음에 부어줍니다. 그래서 기록된 십자가의 사건이 현재 정말 나와 관련이 있다고 믿어지게 됩니다.
로마서 5장 5-6절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나는 연약합니다 나는 아무리 결심해도 무너지고 흔들립니다 그런데 연약한 나를 위해서, 나는 경건치 않습니다 경건치 않은 나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으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이 내 작은 마음에 부어지니까 차고 넘쳐 버렸습니다 그래서 변화가 생기고 감동이 생기는 것입니다 죄를 발견하고 고통스러웠을 때 자기에 대한 혐오감과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어쩔 줄 몰랐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십자가의 완성된 사역을 계시했을 때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이 마음에 부어졌습니다 소망이 부끄럽지 않습니다 내 육체는 시체같이 추악하고 더러운 죄가 가득해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해 죽으셨다는 진리를 일깨워주셨을 때 소망이 부끄럽지 않습니다 나 같은 죄인도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자신있게 그리스도의 피를 의지해서 찬송할 수 있습니다
성령은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마음에 그렇게 부어줍니다 여러분 예수님 당시를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은 거룩하고 의로우십니다 그 거룩하고 의로우신 예수님께서 죄악 가운데 있는 제자들 속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마음과 생각을 보고 계십니다 거룩하신 주님이 죄성을 갖고 있는 제자들 속에 같이 있었습니다. 기적이지요. 그 기적이 지금도 우리에게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거룩하신 성령이 죄성이 있는 우리 속에 계십니다 그것은 죄 가운데 있었던 제자들에게 거룩하신 예수님이 함께 하실 수 있었던 기적처럼 놀라운 기적입니다 거룩하신 성령이 죄성이 있는 우리 속에 계시다 라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의 놀라운 깊이를 나타내주십니다 아무리 몹쓸 전염병에 걸려서 혐오스러운 상태에서 죄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그 사람 어머니는 전염의 위험을 무릅쓰고 그 냄새나는 상태를 무릅쓰고 그 아이의 병상을 지킵니다. 전염의 위험도 있고 더럽고 역겹지만 부모는 안쓰럽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식의 병상을 지킵니다. 피고름에다 입술을 대고 고름을 빨아줄 수 있는 용기는 사랑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성령은 지극히 거룩하신데 그 성령께서 죄성있는 우리 속에 오셨다는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게 바로 사랑입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건져내랴 우리도 그렇게 울부짖었는데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성령으로 우리 안에 계십니다. 우리의 더러운 죄성과 거룩한 주님의 속성은 대조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것은 사랑에 대한 놀라운 확증입니다. 소망이 부끄럽지 않습니다. 성령의 증거는 그와 같이 죄인 된 우리에게 소망이 부끄럽지 않는 담대함을 허락해 줍니다.
여러분 그것이 성령의 역사라는 것을 모르시면 안됩니다 소망을 부끄럽게 하지 않는 성령의 역사가 있습니다 아이들이 부르는 찬송에
예수님의 사랑 신기하고 놀라워 예수님의 신기하고 놀라워
예수님의 사랑 신기하고 놀라워 오 크신 사랑
그런 단순하고 어떻게 보면 유치해 보이는 가사가 마음에 공감이 되었을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신기하고 놀랍습니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이한 일로 인하여 그를 찬송할지어다 노예선 선장이었던 존 뉴턴이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시를 썼습니다 그의 시는 곡이 붙어서 가장 널리 불려지는 노래 중에 하나입니다.
Amazing Grace how sweet the sound that saved a wretch like me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라는 찬송입니다 그런데 앞에 영어가사가 마음에 와 닿지 않습니까 Amazing Grace 놀라운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신기하고 놀라운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입니까 나 같은 죄인 살리셨다는 것입니다 소망이 부끄럽지 않습니다 성령의 증거입니다
우리가 죄성을 깨닫고 그렇게 고통스러웠던 순간에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이 믿어졌다는 것 가장 밑바닥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한 것입니다 내 스스로를 대견하게 여기고 내가 의롭다고 생각하는 상태에서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절망적인 죄를 발견한 상태에서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놀라운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은 바로 죄 가운데 있는 우리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해서 소망이 부끄럽지 않게 해 줍니다 그것이 바로 성령의 역사입니다. 뿐만 아니라 성령은 우리 속에 계셔서 우리 안에 내적인 변화를 줍니다 종교는 외적인 변화를 강요합니다 하라 하라 그러나 그것을 행할 수 있는 힘은 주지 않습니다 성령은 우리 안에서부터 시작해서 내적인 변화를 줍니다 성령이 내 안에 오셔서 내적인 변화를 시작했고 그 일을 지금도 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점점 닮아갈 수 있도록 그가 역사하고 계십니다 우리 안에 혹 선한 것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성령의 역사의 결과입니다.
우리가 잃어진 영혼을 보고 안타까워할 때 내 본성은 그런 마음이 없습니다 안타까워하는 마음은 성령의 역사입니다 내게 주신 변화입니다 내가 자존심을 굽히면서 전도하려 했을 때 그는 내것이 아닙니다 내게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신 결과입니다 바울은 고백합니다 나의 나 된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고 이야기했는데 우리에게 나타난 모든 선한 것들은 우리에게 있었던 것들이 아닙니다 잘 생각해 보십시오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사역하신 결과입니다 그는 내적인 변화를 줍니다
에스겔 11장 19절 ‘내가 그들에게 일치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신을 주며 그 몸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서 내 율례를 좇으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여호와 하나님이 되리라’
우리 속에 새로운 마음을 주십니다 새 신을 주십니다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줍니다 성령께서 그러한 내적 변화를 시작하셨고 지금도 하고 계시고 점점 더욱 이루어가십니다. 성령의 내적인 사역을 통해서 그분이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저는 복음을 이야기할 때 정말 자제하지 않으면 감정적으로 격앙되어서 눈물이 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저는 절대로 그런 것 때문에 울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데 제가 예수님 이야기하고 십자가 이야기할 때 내 마음에 벅찬 감동이 있고 눈물이 난다는 것은 기적입니다 내게 그런 마음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굳은 마음을 제하시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신 주님께서 내 마음을 어린아이처럼 만드셨다고 생각합니다.
에스겔 36장 26-27절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이러한 말씀은 거듭난 사람의 내적 변화를 설명한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십니다 죄에 대한 혐오감을 주셔서 죄에 대한 저항력을 주시고 죄를 이길 수 있는 극복력을 주십니다 우리 안에 내적인 변화를 주셔서 그가 점점 그것을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성령은 내적 변화를 줍니다
어떤 어린아이가 네가 구원받은 이후에 생긴 변화가 무엇이냐 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구원받기 전에는 내가 죄를 좇아다녔는데 구원받은 이후에는 내가 죄를 피해서 도망다니고 있다고 표현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구원받기 전에는 우리가 죄를 좇아다녔습니다 재미난 일 없나 횡재할 일 없나 그런데 구원받은 이후에는 죄를 피해서 도망다닙니다 죄 때문에 고통을 받고 죄에 대한 저항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역사하셨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 그러한 성령의 역사가 없었다면 신앙생활 지탱할 수 없습니다 우리를 둘러싼 수많은 유혹이 있습니다 거친 물결처럼 우리를 사로잡습니다 그러나 성령은 그러한 유혹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줍니다.
큰 유혹 가운데 있었을 때 갑자기 그 유혹에 대해서 단호하게 거절할 수 있었던 용기가 생겼고 그것을 실천한 적 없습니까 그 단호한 용기를 성령께서 주십니다 그때 여호와 하나님이 간섭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생활 속에서 수많은 죄를 지었습니다 아무리 지저분한 흙탕물도 뜨거운 태양열에 의해서 증발되면 깨끗한 물만 증발되어서 날아갑니다 수증기입니다 우리 마음은 더러운 흙탕물 같지만 성령이 햇볕처럼 우리에게 비춰주실 때 깨끗한 상태로 점점 변화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내적인 변화는 갑자기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순간적이고 일회적으로 받는 것이지만 구원받은 이후에 내적인 변화는 점진적이고 계속적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때로는 너무나 조금씩 변하기 때문에 자기 자신도 못 느끼거나 답답할 때가 있습니다 어린아이는 자기가 크지 않는다고 늘 불평을 가지고 있습니다 엄마 나 언제 어른 돼 늘 불평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일년 전에 봤던 친척이 오랜만에 방문하게 되면 아이를 보고
첫번째 하는 말은 야 너 많이 컸구나 하는 말을 합니다 아이는 자기가 자라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조금씩 실제로 자라고 있습니다. 우리가 늘 보는 나무는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몇 년 뒤에 그 나무를 보면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자라 있습니다.
우리의 영적 성장이 그러합니다 때로는 너무나 점진적이고 조금씩이기 때문에 자기 자신이 답답해 할 수 있습니다 나는 언제 어른이 되나 그러나 구원받은 후에 자기의 삶을 돌아보십시오 처음과 지금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 안에서 끊임없이 변화를 주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하면 스데반처럼 돌 맞고 피가 터져도 얼굴이 환해질 수 있습니다 신앙이 성장하면 우리도 스데반처럼 돌 맞아도 얼굴은 환하게 됩니다 삶의 역경은 있어도 얼굴은 환할 수 있습니다 성령은 우리 안에서 그런 내적 변화를 이루십니다 뿐만 아니라 성령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깨닫게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시고 생각나게 하시며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분별할 수 있는 분별력을 주십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이후에 생기는 첫 번째 변화 중에 하나는 성경이 이해되고 읽혀진다는 것입니다 물론 모든 말씀이 다 이해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분명한 것은 성경에 대한 이해력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너희에게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성령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깨달음을 주십니다 그래서 성경말씀이 다르게 읽혀지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교회 다녔던 어떤 장로님께서 확실하게 거듭난 이후 간증하실 때 이렇게 간증했습니다 내가 옛날에는 성경말씀을 많이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부품만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비로소 조립이 되어서 작동이 된답니다 아주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에도 부분적으로 많이 들었는데 부품만 가지고 있었지요 그런데 성령이 오셨을 때 그 말씀이 다 조립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역할을 하고 그 말씀이 드디어 작동하게 된 것입니다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시니 성령이지요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시며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친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기름 부음이 우리 안에 계셔서 우리를 끊임없이 가르치십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있다는 증거 중에 하나는 성경말씀의 이해와 감동입니다
성령은 진리의 영이며 지금도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성령이 스승 되셔서 진리를 가르치시고 거룩한 뜻을 깨달아 예수를 알기 원하네
성령은 우리에게 지금도 가르침을 베푸십니다
성령의 감화 받아서 여호와 하나님 말씀 배우니 그 말씀 한 절 한 절이 내 마음에 교훈되도다
성령은 이와 같이 진리의 스승이 되셔서 지금도 우리를 가르치십니다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되었습니다 따라서 성령의 감동으로만 성경이 이해될 수 있습니다 성령은 지금도 우리를 감동하셔서 그가 기록한 성경을 깨닫게 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성령은 지금도 우리를 인도하며 보호하며 우리를 위해서 간구하십니다 그 옛날 광야에서 이스라엘 사람들과 늘 함께 했던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로서 그들을 지켜주시고 보호하셨습니다 구름기둥과 불이 무엇입니까 바로 현재 우리 가운데 함께 계시는 성령을 나타냅니다 그는 늘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인디언들이 성인식을 하려면 맹수가 들끓는 깊은 숲속에서 혼자 하룻밤을 지새야 됩니다 아주 두려움을 주지요 그 성인식을 거치기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답니다. 어린아이가 성인식을 통과하는 의식으로 그 캄캄한 어둠 속 맹수들이 들끓는 밀림 속에서 하룻밤을 보냈습니다 너무 긴장하고 두려웠습니다 그런데 해가 떠오르고 무사히 성인식을 끝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아버지가 활을 매고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서 지켜주고 있었대요 진작 알았다면 늘어지게 잤을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십니다 보호하시며 인도하시며 지금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십니다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할 때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고 계십니다 풀무불에 던져졌던 다니엘의 세 친구를 기억하고 계십니까 그들이 불속에 던져졌을 때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 불 가운데 같이 계셨습니다 세 명을 던졌는데 네 명이 불속에서 왔다 갔다 했지요 그때만 거기 같이 계셨던 것이 아니라 바깥에서도 실제로는 같이 계셨던 것이 불속에서 분명하게 위기 가운데 나타났을 뿐입니다
그는 결코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셨습니다 보라 세상 끝날까지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하리라 성령은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이와 같이 성령께서 늘 우리와 함께 계시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될 때 우리의 삶이 변화됩니다 능력이 생기고 평강이 생기고 그리고 수많은 영적 사실에 대한 이해력이 생깁니다 내가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한다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 영원토록 함께 계시는 성령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지만 우리의 생활이 깨끗해질 수 있고 능력 가운데 살 수 있습니다 너희 몸이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 알지 못하느냐 모르면 안됩니다 우리가 성령의 전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우리 속에 성령이 계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생활이 구별되고 깨끗해 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보는 것을 지금도 그가 보시고 우리가 듣는 것을 지금도 우리와 함께 듣고 계시며 우리가 있는 곳에 지금도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러한 함께 계시는 성령에 대한 분명한 지식과 믿음이 있어야지만 생활을 거룩하게 할 수 있습니다 너희가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여호와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겠다고 했습니다 징계가 있습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 우리의 육체가 성령의 전입니다 우리는 그 사람을 모시고 삽니다 우리가 높고 귀한 분을 집에 모시게 되었다고 생각해 보지요 먼저 해야 될 일은 청소부터 해야 될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시다면 늘 청소해야 됩니다
옛날 장군한테는 당번병이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한테 성령이 계시고 우리는 성령의 당번병과 같은 것입니다 잘 성전된 우리 육체를 관리해야 됩니다 보는 것 듣는 것 행하는 것 있을 것 만나는 사람 모두 모두 성령을 인식하고 조심해야 됩니다.
이 성경에 보면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는 명령어가 많이 있습니다 성령은 우리 안에 계시는데 그 성령을 인정하고 그분이 활동하실 수 있도록 자리를 비어드리는 것이 성령의 충만입니다 성령의 충만을 위해서 먼저 해야 될 일이 있습니다 우리 자신을 여호와 하나님 앞에 비워야 됩니다 비워야만 채워질 수 있는 것입니다 마음을 비우고 생활을 비우고 생명을 비워야 됩니다 그래야지만 성령이 우리 마음에 충만해질 수 있습니다 마음을 어떻게 비웁니까 우리 마음 속에 있는 욕망 소유욕 미움 시기 질투 다툼 명예욕 이런 것들을 버려야 됩니다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시기하지 말지니라 명령하십니다 마음을 비워야 됩니다 자존심을 버리고 미움을 버리고 죄를 버려야 됩니다 그래야지만 성령이 우리 마음을 채워줄 수 있습니다
교회 사역자는 특별히 명예에 대한 것을 버려야 됩니다 영국의 유명한 전도자 해리무어 하우스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분이 오랫동안 부흥회를 했는데 회심자가 전혀 생기지 않았습니다 왜 사역이 실패할까 고민이 생겼습니다 그러던 중 부흥회 장소로 가다가 그 앞에 크게 써 있는 팻말을 보았습니다 위대한 부흥사 해리무어 하우스 라고 크게 써 있었습니다 그 말을 보자마자 왜 성령이 역사하지 않았는지 금방 깨닫게 되었습니다 위대한 전도자란 있을 수 없습니다 위대한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을 뿐입니다 해리무어 하우스가 그 말을 고치도록 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위대한 성령 위대한 여호와 하나님이 필요하지 위대한 전도자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해리무어 하우스는 기꺼이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자신의 존재를 낮게 여겼습니다 그때부터 사역에 성공을 이룰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명예욕을 버리고 형제 자매에 대한 갈등과 미움을 버려야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러 왔다가 혹 원망들을 일이 생각나거든 먼저 가서 형제하고 사과하고 오라고 말씀하십니다 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그런 헛된 영광 명예욕 시기 질투 이런 것을 버리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래야지만 성령이 우리 마음을 채워주실 수 있습니다
또한 생활을 비워야 합니다 생활을 비우면 성령충만이 이루어집니다 생활을 비운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너무 번잡하고 분주한 생활을 해서 성령께서 우리를 사용하실 시간을 없애버리면 안됩니다 성령충만을 위해서 생활을 비우는 것입니다 simple life입니다 삶을 단순화해서 성령이 쓰실 수 있는 시간을 많이 확보해야 합니다 복잡한 인간관계 복잡한 취미생활 복잡한 사교활동 이런 것으로 인해서 생활이 복잡해지면 성령충만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우리 삶을 simple life 단순하고 간단하게 정리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살다 보면 바쁘게 생활을 사니까 저녁에 생각해 보세요 오늘 하루동안에 하늘을 몇 번 쳐다봤을까 한번도 안 쳐다본 날이 많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현상이 영적으로도 벌어집니다 사느라고 바빠서 하늘을 쳐다본 적이 없습니다 병아리처럼 밥 먹을 때만 기도하고 먹었지요
삶이 너무 복잡하면 안됩니다 simple life 세례요한은 약대 털옷에 역청만 먹고 살았습니다 그게 단순화된 생활입니다 단순화된 생활 속에 나머지를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돌린 것입니다 그래서 생활을 비워야지 여호와 하나님의 충만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 것은 생명을 비워야 합니다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다 그러나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얻으리라 그런 역설적인 진리가 있습니다 생명을 비우라는 말은 내 삶의 존재목적을 여호와 하나님과 연계시켜서만 생각하는 것입니다 살든지 죽든지 우리가 주님 안에서 살겠다 라는 의지와 결심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생명을 비우는 것입니다 그래야지만 주께서 채우시고 우리를 온전하게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부인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따릅니다 그러니까 채워주려해도 채울 것이 적은 것이지요.
우리가 성령충만으로 채우기 위해서 자기를 비워야 합니다 마음을 비우고 생활을 비우고 생명을 비워야 합니다 그때 주께서 성령의 충만으로 우리를 채워주시고 능력 가운데 우리 삶을 더욱 변화시키며 현재 그분의 뜻 가운데서 각 사람을 귀하게 사용해 주실 것입니다 성령충만을 받으라 라는 말씀도 있지만 성령을 소멸하지 말라 성령을 근심케 하지 말라는 표현도 있습니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성령을 소멸할 수도 있고 성령을 근심케 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성령충만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 의지와 결심을 분명하게 해야 합니다 정말 하루를 살아도 주님 안에서 의미있게 살겠다 주님 뜻 가운데 살겠다 주님 안에서 온전하게 살겠다 라는 의지와 결심을 가져야 됩니다 그 의지와 결심을 가질 때 성령께서 비로소 우리를 사용할 수 있으며 비로소 우리를 충만하게 채워주실 수 있습니다 우리 자신이 여호와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순종하려는 의지와 결심이 있어야 됩니다 그래야지만 성령을 소멸하지 않고 소멸하지 않는다는 것은 성령의 뜻에 저항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을 근심하게 만들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과 반대되는 일을 하지 않는다면요.
우리 안에 이미 주신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현재의 삶을 영원한 세계의 가치 있는 것으로 바꿔주십니다 그리고 바꿀 수 있는 기회를 우리 각 사람에게 주십니다 성령은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영원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변화시켜 주시는데 그러한 놀라운 성령의 사역에 참여하기 위해서 먼저 주님 안에서 살겠다는 의지적인 결심을 해야 되고 마음을 비우고 생활을 비우고 생명을 비우는 생활이 필요합니다 그때 성령께서 우리를 충만케 하시며 성령의 충만은 주님 뜻 가운데 온전히 사로잡히게 해 주고 주님의 의의 도구로 좌우될 수 있도록 만들어주십니다
갈라디아서 5장 25-26절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우리 안에 성령이 계십니다 함께 계십니다 놀라운 것은 우리 속에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그분 의지대로 살아야 됩니다 그분 뜻 가운데 살겠다는 결심을 하고 우리의 자리를 비워드려서 그분이 우리를 사용하실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말씀을 우리 마음에 다시 한 번 일깨우고 싶습니다 성령으로 살면 성령으로 행할지니라
성령은 그리스도의 사역으로 오셨기에 구원 받은 후에 범죄를 범해도 성령은 우리를 결코 떠나지 않으나 죄 가운데 있는 것을 탄식하며 기도 하십니다. 이처럼 성령은 각자의 상태와 관계없이 계십니다.
성령에 대한 지식을 알 때 깨끗하게 되며 소유욕, 명예욕, 자기의 욕망, 자기 생활, 자기의 생명을 버려야 합니다. 이처럼 자기의 결심을 분명히 하여야 성령 충만으로 채워 주십니다. 성령은 우리의 삶에 항상 있는 것을 알 때 변화를 하게 되며 현재의 삶을 영원한 가치 있는 것으로 변화시켜 주십니다.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 반드시 알아야 될 지식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창조주의 존재를 알아야 합니다 누구든지 여호와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을 믿어야 할지니라 하는 말씀 속에서 먼저 창조주에 대한 지식이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유일하신 천지를 지은 창조주에 대한 지식과 믿음이 있어야 됩니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 구세주에 대한 믿음이 또한 성경을 통해서 있어야 됩니다 창조주뿐만 아니라 그가 우리 구세주가 되었다는 사실을 성경 말씀을 통해서 알아야 합니다. 또한 현재 실제적인 신앙생활을 위해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성령에 대한 지식도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결국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한 지식은 창조주와 구세주와 현재 우리와 함께 하시는 성령에 대한 지식과 믿음이 있어야 된다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성령의 內住라는 제목으로 함께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성령의 내주(內住)란 우리 속에 성령께서 계시다는 놀라운 진리 중에 진리를 설명하는 말입니다 성령은 우리 안에 게시며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겠다는 약속의 말씀처럼 우리 안에서 역사하십니다. 중요한 신앙고백의 내용 중에 하나가 성령을 믿사오며 하는 고백입니다 그래서 사도신경의 내용에도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이렇게 중요한 신앙의 내용을 나열하는데 성령을 믿는다라는 고백은 중요한 빼놓을 수 없는 핵심적인 진리 중에 하나입니다. 성령은 소위 말하는 삼위일체의 한 位를 차지하고 계십니다 성부 여호와 하나님 성자 여호와 하나님 그리고 성령 여호와 하나님 삼위일체라는 진리를 나타내는 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불행한 것은 이러한 중요한 성령에 대한 지식이 오해되거나 또는 전혀 성령에 대한 지식이 없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초대교회 에베소 교회가 태동할 당시에 에베소 사람들은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들은 성령의 존재조차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혹 우리 가운데도 무지함 속에서 신앙생활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이 간혹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령에 대한 가르침은 난해한 신학적인 주제도 아니고 단순한 영향력이나 감화력 능력만을 나타내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 성경말씀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성령에 대해서 함께 공부해 보고자 합니다 성령에 대한 것이 참으로 중요한 것은 성령이 우리 안에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생명과 사망이 나뉘어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성경은 단호하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우리가 곧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성령은 우리 안에 게시며 더욱 단지 계실 뿐만 아니라 실제적으로 역사하고 지금도 우리를 인도하고 계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성령에 대한 의무는 생명과 사망을 나누는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을 합니다. 누구든지 믿음 안에 있는가 자신을 시험하고 확증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고린도후서 13장 5절에 그런 엄중한 말씀으로 중요성을 일깨우고 계십니다.
지금 읽은 본문 14장 16절에 보면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라고 말씀하십니다. 보혜사라는 말이 있는데 그 보혜사라는 말은 성령의 이름 중에 하나입니다 이름이란 그 분의 역할과 하시는 일을 우리에게 설명해 주고 있는 표현입니다. 보혜사라는 말은 보호해 주며 은혜를 베푸시며 가르치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한자 하나하나가 성령이 하시는 일을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보호하다 保 은혜 惠 스승 師 자를 씁니다. 보호하시며 은혜를 베푸시며 가르치시는 분 그분이 바로 성령이신데 여기 성령을 표현한 보혜사라는 말 앞에 다른 보혜사라는 말을 사용하고 계십니다. 또 다른 보혜사라는 것은 예수님 자신이 제자들에게 있어서 보혜사 역할을 하셨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제자를 보호하시며 은혜를 베푸시며 가르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예수님은 세상을 떠나 여호와 하나님 앞으로 가셔야 합니다 예수님이 가신 뒤에 예수님과 같은 그러한 역할로서 제자들을 돌봐줄 성령을 보내시겠다는 표현 속에서 또 다른 이라는 말을 사용하셨습니다.
요한일서 2장 1절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대언자라는 말 옆에 3이 있고 난하주에 보면 혹 보혜사라고 되어 있습니다 대언자라는 말과 보혜사 라는 말은 같은 단어를 번역한 것입니다. 대언자는 여호와 하나님 앞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예수님 자신이 우리들의 대언자이며 보혜사입니다 그는 여호와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성령을 또 다른 보혜사라고 표현한 것은 바로 하늘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고 있는 그분이 계시고 또한 땅에 살고 있는 우리 속에 보호하시고 은혜를 베푸시고 가르치시는 성령이 있다 라는 것을 일깨워주는 표현입니다. 아버지 앞에 예수 그리스도 우리 대언자 보혜사가 계십니다.
그리고 이 세상 땅 위에 그리스도인 속에 우리를 위한 대언자 보혜사가 계십니다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하늘에서 지금도 제사장의 역할을 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시며 땅에서 현재 우리와 함께 계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중보자가 둘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늘에는 여호와 하나님 앞에 지금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대 제사장 되신 승천하신 예수님이 계시고 땅에는 현재 우리의 삶 속에 우리 속에 성령이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령은 우리 속에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친히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대언자 보혜사가 현재 우리 삶 속에 함께 있음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와 같이 성령께서 현재 우리의 삶 속에 함께 하시며 더욱 우리 속에 계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게 될 때 우리는 신앙생활의 큰 유익과 힘의 근원을 갖게 됩니다.
요한복음 14장에 다시 돌아가서 12-14절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승천하신 예수께서 이제 성령을 통해서 우리에게 능력을 베푸시며 우리 안에 큰일을 할 수 있는 힘을 베푸십니다 그는 능력의 근원이십니다 성령은 우리와 함께 계시며 우리 속에 큰 능력을 베풀고 계십니다. 석유는 오랫동안 땅속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석유의 존재를 알지 못했고 전혀 석유를 활용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석유의 존재를 발견하게 되고 석유를 사용하기 시작했을 때 인류는 비약적인 문명의 발전을 이룹니다. 20세기 문명은 석유문명이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석유의 사용은 엄청난 삶의 質을 변화시켰습니다 마찬가지로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에게 베푸시는 능력이 얼마나 큰지를 깨닫게 될 때 우리의 삶에 변화가 생깁니다 이미 우리 속에 거하시는 성령에 대한 지식을 갖고 성령을 의지하고 신앙생활을 하게 될 때 우리는 능력의 근원에 접붙임 바 되어 그 능력이 우리의 삶 속에 나타나도록 할 수 있습니다 성령은 능력의 근원입니다.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우리 삶 속에 권능을 베푸십니다
그런데 단지 권능과 능력만 베푸시는 것이 아닙니다. 26절에 보면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성령은 가르치시고 생각나게 하십니다 우리를 더욱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며 진리에 대한 이해력을 주고 진리를 따라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가르치시며 생각나게 하는 역사를 성령께서 이루십니다.
뉴턴이 중력, 만유인력을 발견하기 전에도 세상에는 중력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뉴턴이 사과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중력을 발견했습니다 발명이 아닙ㅌ니다 없었던 것을 만든 것이 아니라 있는 현상을 발견한 것입니다 뉴턴이 만유인력을 발견하고 만유인력에 대한 이해를 했을 때 비로소 자연 모든 현상에 대한 이해력이 생겼습니다 우주의 질서와 조화에 대한 명확한 이해력이 만유인력의 발견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와 함께 계시는 우리 속에 계신 성령에 대한 깨달음을 가질 때 우리는 비로소 영적인 수많은 현상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으며 기록된 성경말씀에 대한 깨달음을 갖게 됩니다 성령은 가르치시며 생각나게 하시는 역사를 이루시게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성령에 대한 인식은 영적 수많은 사실에 대한 이해력을 주며 특별히 기록된 말씀에 대한 지식을 주게 되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27절에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성령은 평강의 왕이십니다. 그는 평강의 근원이십니다 우리 배에서 생수의 근원이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그의 받을 성령을 나타냄이라고 표현되어 있는데 바로 평강의 근원이며 평안의 근원이 되십니다. 성령에 대한 지식은 우리 마음 속에 내적인 평강과 평안을 유지하는데 큰 힘이 됩니다.
우리와 함께 계시는 성령에 대한 지식과 믿음이 우리를 평강으로 인도하고 우리를 평안하게 만들어줍니다. 캄캄한 어두운 곳을 여행하던 사람이 발을 헛디뎠습니다 낭떠러지로 떨어졌습니다. 간신히 팔을 내젓다가 나뭇가지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죽을 힘을 다 해서 매달렸습니다. 낭떠러지에서 떨어졌으니 손을 놓게 되면 큰일나지요 그런데 문제는 아무도 건져주는 사람이 없었고 점점 손의 힘이 빠져갑니다. 그러나 손을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흑암 속에서 낭떠러지에서 손을 놓게 되면 큰일나겠지요. 죽을 힘을 다 해서 나뭇가지를 붙들고 매달렸습니다 결국 새벽녘까지 매달렸는데 해가 떠오를 때 가만 보니까 밝은 빛 속에서 낭떠러지를 쳐다보니까 1m 밑에 바닥이 있더랍니다 너무 허망했습니다 진작 알았다면 아등바등 매달려 있지 않았을 텐데 모르는 바람에 밤새도록 애를 쓴 것입니다 빛이 비춰지니까 사실이 드러나고 바로 밑에 안전한 바닥이 있다는 것을 보게 된 것이지요 성령은 그와 같은 이해력을 줍니다. 주님의 손 안에 있다 라는 지식을 줌으로 인해서 두려워하지 않게 해 줍니다 평안하게 해 줍니다.
그런데 우리와 함께 계시는 성령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밤새도록 캄캄한 어둠 속에서 온 힘을 다 해서 매달리고 마음고생과 육체적인 고생을 하게 됩니다 성령에 대한 이해가 왜 중요합니까 이와 같이 능력의 근원을 알게 하며 영적 사실에 대한 이해력을 주며 우리 마음에 평안을 주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성령에 대한 분명한 이해와 믿음은 능력의 근원을 발견하게 하며 성경을 이해할 수 있는 힘을 주고 우리 마음에 평안을 줍니다 그래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우리 속에 계시는 성령에 대한 분명한 지식과 믿음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현재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는 비결은 성령에 대한 이해와 믿음입니다 승리하는 생활이라는 우리의 관심을 끌 수 있는 매혹적인 제목을 갖고 있는 책들을 간혹 보신 적이 있을 것입니다 여러 가지로 표현했지만결론적으로는 함께 하시는 성령에 대한 지식과 믿음을 이야기합니다 성령에 대한 지식과 믿음이 있어야지만 현재 우리의 삶 속에 여호와 하나님의 임재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능력과 이해와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성령에 대한 지식이 우리에게 온전한 신앙생활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합니다
우리의 지식은 과거에 관련된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죽고 부활하심입니다 역사적인 사실에 대한 인식입니다 완성된 성취된 사역에 대한 지식과 믿음이 있습니다 과거입니다 미래는 무엇입니까 미래에 대한 지식도 있습니다 장차 예수께서 영광 중에 나타나실 것 재림에 관한 지식과 믿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과거에 대한 믿음도 있고 미래에 대한 믿음도 있는데 현재에 대한 믿음이 어디 있습니까 현재에 대한 믿음은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 우리 안에서 사역하시고 활동하시는 성령에 대한 믿음입니다 만일 성령에 대한 온전한 지식과 믿음이 없다면 신앙은 과거에 미래에 매어버립니다. 현재는 답답하지요 예수님이 완성한 사역은 우리에게 기쁨을 주고 장차 오신다는 것도 기쁨을 주지만 아무튼 현재는 힘들고 어렵다 라는 절망적인 생각만 들게 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신앙은 현재에도 의미가 있습니다 현재 우리와 함께 계시는 성령을 알 때 그에 대한 온전한 믿음을 같게 될 때 우리는 신앙의 현재성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성령에 대한 지식은 우리가 알아야 될 중요한 핵심적인 내용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초두에 말씀드린 것처럼 창조주에 대한 믿음 구세주에 대한 믿음 오늘 함께 나누고 있는 성령 우리와 함께 계시는 보혜사에 대한 지식과 믿음이 있어야 됩니다.
성령이 어떻게 우리 안에 계시게 된 것일까 성령이 우리 속에 계시게 된 근거가 있습니다 그 근거에 대한 말씀을 먼저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요한복음 7장 39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신 고로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아니한 고로 예수께서 영광을 받으신다 하는 말은 죽음과 부활을 나타냅니다 예수님의 사역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단계입니다 그래서 성령이 아직 그들 속에 없었다고 말씀하십니다. 따라서 성령은 예수님의 영광 받으시는 사건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 죽고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성령이 제자들 속에 거하게 된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 속에 계시게 된 근거는 우리하고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 상태와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사역과 관련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구속의 사역과 관련해서 성령이 우리 속에 계시게 된 것입니다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서냐 듣고 믿음으로서냐 갈라디아 성도에게 바울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봤습니다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아니면 듣고 믿음에서냐 듣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을 받았습니다 성령이 우리 속에 오시게 된 것은 우리의 상태와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관련이 있어서 우리 속에 계시게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구속의 사역을 통해서 성령께서 우리 속에 계시게 된 것입니다
요한복음 16장 같은 맥락의 말씀을 찾아보겠습니다 7절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승천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죽고 부활하신 후에 승천하신다는 뜻인데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성령이 우리에게 오신 이유가 여기에도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 떠나가셨기 때문에 성령이 오실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승천의 사건을 통해서 성령이 우리 속에 오실 수 있는 근본이 마련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셨다 그리스도의 부활의 사건은 우리를 거듭나게 할 수 있는 근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속에 성령이 계실 수 있는 근거가 되었습니다 성령이 우리 속에 계시는 근거는 그리스도의 구속의 사역입니다 그가 죽고 부활하시며 여호와 하나님 우편에 지금도 우리를 위하여 중보자로 계시기 때문에 성령께서 우리 속에 계시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우리의 상태와 아무 상관없이 오직 그리스도의 사역과 관련해서 성령의 內住가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율법의 행위에서가 아니라 듣고 믿음으로 우리는 단지 그리스도를 믿었는데 그의 하신 일로 말미암아 성령께서 우리 속에 계시게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은 분명한 성경적인 지식은 늘 죄의 유혹 가운데 있는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지식이며 큰 위로가 되는 지식입니다. 왜냐하면 만일 우리의 선악이라는 상태에 따라서 성령이 오셨다면 혹 우리가 유혹을 받게 되거나 범죄에 빠지게 되었을 때는 성령은 떠나실 것입니다. 우리의 선악이라는 기준 때문에 성령께서 우리 속에 오셨다면 우리가 악해질 때 성령은 우리를 버리고 떠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처음에 오셨을 때 우리의 선악이라는 상태에 따라 오시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역 때문에 오셨습니다. 우리는 선과 악이 뒤섞였지만 그리스도의 사역은 완성된 변하지 않는 진리입니다. 그 진리를 따라 성령이 오셨기 때문에 혹 우리가 범죄한다 하더라도 우리 마음에 악한 유혹이 가득 찬다 하더라도 성령은 떠나시지 않습니다 근심하시고 탄식하시며 말할 수 없는 고통을 표현하신 말씀은 있다 하더라도 그러나 우리를 결코 떠나시지 않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이러한 진리는 혹 유혹을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또는 이미 죄가 생활 가운데 들어와서 범죄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낙심하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께 돌아올 수 있는 빛을 비춰주는 진리입니다. 성령은 결코 우리를 떠나시지 않습니다 혹 우리가 유혹 가운데 있거나 죄악 가운데 있다 하더라도 성령은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그는 죄 가운데 있는 우리를 보시고 근심하시며 탄식하시며 시기하시기까지 사모하여 혹 징계는 하실지언정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이러한 진리를 분명하게 선언하는 것은 혹 범죄하고 낙심 가운데 있고 스스로 자기를 비하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에서 스스로 떨어지는 자가 있을까봐 분명한 진리를 다시 한 번 명확하게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성령의 內住의 근거는 우리 안에 오시게 된 근거는 그리스도의 완성된 구속의 사역이지 우리의 상태와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상태에 따라서 성령이 결코 우리를 떠나시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혹 죄 가운데 있다 하더라도 우리로 하여금 가룟유다처럼 극단적인 절망에 처하지 않고 회개의 눈물과 함께 돌아올 수 있는 용기를 줍니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혹 구원받은 이후의 범죄는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에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사귐과 관련된 것입니다 관계라는 것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밀접한 관계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관계가 있습니다. 그것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 진리입니다. 혹 우리가 범죄하면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에 영향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사귐에 영향이 생기게 되어서 징계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들과 같이 우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징계를 받지 않는 아들이 있겠느냐 반문하십니다.
그러나 징계는 있되 결코 버리지 않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범죄한다 하더라도 성령은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그는 근심하시며 탄식하시며 말할 수 없는 슬픔으로 친히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십니다 그래서 마침내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 일어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우리는 절대로 끊어질 수 없는 그리스도의 사랑 가운데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완성된 구속의 사역을 믿고 의지함으로 성령은 우리 속에 오셨고 결코 우리의 상태에 따라서 우리를 버리지 않습니다. 이러한 진리는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관계를 통해서 쉽게 이해해 볼 수 있습니다 나는 내 아이를 낳을 때 이 아이가 잘 자랄 것인지 확신이 없었습니다 아이를 잘 키우려고 노력하지만 그 아이가 혹 자라면서 반항할 수도 있고 잘못된 길에 빠져들 수 있으며 범죄할 수 있습니다 나는 그 옆에서 걱정하고 탄식하고 슬퍼하겠지만 그 아이의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그때도 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아이가 범죄했다고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그 아이의 옆에서 올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해서 살아있는 한 끊임없이 노력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아이가 계속 범죄하면 아버지와 아들의 사귐은 흔들리기 시작할 것입니다 관계가 흔들리는 것이 아니지요. 사귐이 흔들려서 부자지간에 대화도 안되고 만나기만 하면 내가 화를 낼 수밖에 없고 그런 처지가 될 수밖에 없겠지만 부모 자식이라는 관계는 결코 끊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하물며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가 우리의 상태와 관련해서 은혜에서 끊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과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맺게 된 우리는 결코 끊어질 수 없는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맺어진 관계입니다. 마찬가지로 성령께서 우리 속에 계시게 된 근거도 그리스도의 구속의 사유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이러한 진리는 혹 범죄하고 자기 자신을 지나치게 학대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는 사람에게 큰 위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무엘상 12장 20-22절 ‘사무엘이 백성에게 이르되 두려워 말라 너희가 과연 이 모든 악을 행하였으나 여호와를 좇는 데서 돌이키지 말고 오직 너희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섬기라 돌이켜 유익하게도 못하며 구원하지도 못하는 헛된 것을 좇지 말라 그들은 헛되니라 여호와께서는 너희로 자기 백성 삼으신 것을 기뻐하신 고로 그 크신 이름을 인하여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실 것이요’
너희가 이같이 큰 악을 행하였으나 두려워말고 여호와를 좇는데서 돌이키지 말고 다시 마음을 돌이켜 여호와를 섬기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이렇게 큰 악을 행하였으니 이제 너희는 끝장이다 이렇게 이야기한 것이 아닙니다 너희가 이같이 큰 악을 행하였으나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 돌아오라 여호와 하나님은 그 크신 이름을 인하여 너희를 결코 버리지 아니할 것이다 이러한 진리는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에게 더욱 해당되는 진리입니다 여러분 혹 범죄했습니까 혹 유혹 가운데 있습니까 그런 큰 악 가운데 있지만 여호와를 좇는데서 돌아와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그 크신 이름을 인하여 우리를 다시 받아주십니다. 이 세상에 어떠한 이유도 구속받은 그리스도인을 하니의 은혜에서 결코 끊어낼 수 없습니다 처음부터 성령이 우리 속에 오신 것은 그리스도의 사역과 관련된 것이지 우리의 상태와 관련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죄를 볼 때 스스로 한심하고 여호와 하나님 앞에 자기 자신을 비하할 때가 많이 있지만 그렇다고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가 의심이 되어서는 절대 안됩니다 우리의 죄는 여호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의 깊이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죄가 있는 곳에 은혜가 넘칩니다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 여호와 하나님께 돌아와서 우리는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일흔 번에 일곱 번 범죄했다 하더라도 우리는 또 돌이켜야 합니다 이같이 큰 악을 행하였으나 여호와를 좇는 데서 돌이키지 말고 여호와께 돌아오라고 합니다 그는 변함없이 그리스도 안에서 일흔 번에 일곱 번이라도 우리를 받아주십니다.
사무엘하 7장 14-15절 ‘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니 저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내가 네 앞에서 폐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같이 그에게서는 빼앗지 아니하리라’
이러한 말씀은 신약시대에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받을 그리스도인들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나는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자녀가 되리니 바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합법적인 권세를 주신 그분께서 그리스도인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가 혹 죄를 범하면 사람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하겠다 그러나 은총을 빼앗지는 않겠다 징계는 있되 멸망은 없다 라고 약속하십니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피와 관련해서 우리에게 오신 것입니다 우리의 선악의 상태와 상관없이 성령은 우리 속에 오셨습니다. 성령께서 자기를 떠날 것이라는 염려는 불신에서 온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구약시대의 제사 이야기를 보면 피와 기름은 항상 관련이 있습니다 피는 속죄를 나타내지요 기름은 성령을 나타냅니다. 기름은 늘 피와 관련지어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피와 관련해서 우리에게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레위기 8장 30절 ‘모세가 관유와 단 위의 피를 취하여 아론과 그 옷과 그 아들들과 그 아들들의 옷에 뿌려서 아론과 그 옷과 그 아들들과 그 아들들의 옷을 거룩하게 하고’
거룩하게 한 것이 관유와 피입니다 피는 속죄를 나타내지요 관유는 기름이며 성령을 나타냅니다 성령은 피와 관련지어서 나타납니다 바로 그리스도의 피를 근거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믿는 한 절대로 성령은 우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혹 범죄하고 지나치게 낙심한 분들은 이러한 진리 속에서 위로를 얻고 여호와 하나님께 돌아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본문 요한복음 14장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성령에 대한 이해력이 없습니다. 그들은 성령의 사역에 대해서 철저하게 무지합니다 성령의 사역이 무엇입니까 죄인을 회개시키고 죄를 책망하고 회개시키고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주고 죄인에게 소망을 줍니다. 그리고 죄인에게 구원의 확신을 줍니다. 그러한 성령의 사역에 대해서 세상은 철저하게 무지합니다 세상은 능히 밝지 못합니다 성령이 우리를 사로잡게 될 때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보게 되어서 죄에 대한 깨달음을 갖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보고 죄에 대한 갈등과 고통을 겪게 됩니다. 그로 인해서 회개하게 되지요 뿐만 아니라 성령의 인도함을 받을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완성된 사역에 대한 지식과 깨달음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죄 가운데 있지만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랑의 증거를 갖게 되고 구원의 확신을 갖게 됩니다. 장차 주님께서 오셔서 우리를 데려가실 것이라는 소망을 갖게 됩니다. 이러한 성령의 사역으로 갖게 되는 지식은 세상은 알지 못합니다. 제가 죄에 대한 갈등과 고민 때문에 오랫동안 어린시절부터 함께 사귀었던 친구들에게 털어놓았던 적이 있습니다 그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너는 쓸데없는 생각을 한다 그런 것 가지고 고민하면 이 세상에 고민 안 할 사람이 어디 있느냐 친구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제가 하고 있는 갈등에 대해서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세상은 성령의 사역에 대해서 무지하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자신들과 같이 극한 방탕에 달음박질하지 않는 것을 보고 이상히 여겨 비방한다고 했는데 친구들도 그런 식으로 저의 행동에 대해서 비난하는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여호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이며 깨닫지도 못함이니라 이런 일은 영적으로 보아야 분변함이니라 그랬습니다 성령께서 우리 마음을 사로잡게 되어서 생기는 변화들 죄에 대한 책망 의에 대한 사모 그리스도에 대한 신뢰 구원의 확신 장차 오시는 재림하는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 이러한 성령의 가르침에 대해서 세상은 철저하게 무시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어떻습니까 그리스도인은 그러한 성령의 사역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으며 공감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앞서간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책을 읽어보고 주변에 있는 그리스도인들과 교제를 나누어보았습니다 내 속에 있는 갈등과 고민이 그들 속에 동일하게 있고 내 속에 주님께서 주셨던 위로가 그들에게 동일하게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일은 영적으로야 분변함이니라 말씀하십니다 세상은 성령의 사역에 대해서 전혀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죄에 대한 책망 회개 믿음 확신 소망과 같은 성령의 사역에 대한 이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처음 구원을 받고 앞서간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책들을 읽어보았습니다 몇백 년 전 청교도라고 일컬어지는 사람들의 책도 읽어봤고 1700년 1800년 전 초기교회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의 책들도 읽어보았습니다 놀라웠던 것은 그들 마음에 있었던 갈등이 내 속에 똑같이 있고 그들에게 주셨던 여호와 하나님의 위로가 내게 동일하게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성령은 동일한 역사를 이루십니다 진리의 영이시기 때문에 시대 환경 문화 어느 곳에 있다 하더라도 동일한 진리를 계시하십니다. 우리는 성령을 통해서 비로소 영적인 진리에 대한 이해를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그 진리에 대한 이해를 하지 못합니다 여기 성령을 진리의 영이라고 표현하고 계십니다 성령을 진리의 영이라고 표현한 것은 성령은 그리스도와 관련되어 있으며 성경말씀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진리가 무엇입니까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 예수님이 진리 자체라고 말씀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요한복음 17장 17절에 보면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라고 선언되어 있기도 합니다.
진리는 아버지의 말씀이며 예수님 자신을 나타냅니다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된 분입니다 결국 진리는 성경말씀과 성경말씀이 가리키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냅니다 성령은 진리의 영입니다 곧 성령은 그리스도를 증거하며 성경말씀을 통해서 그리스도에 대한 명확한 진리를 제시하십니다 성령은 진리를 전해주고 진리로 인도하며 진리로 거룩하게 하십니다 성령은 진리의 영이라고 불리워지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런 진리의 영인 성령께서 어떠한 사역을 하시느냐에 따라서 우리는 성령이 어떤 분이신지 알 수 있고 우리 속에 성령의 사역이 어떤 일인지 또한 알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성령의 사역이 어떠한 일들인지 진리의 영이신 성령께서 어떻게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는지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성령은 예수님에 대한 개인적이며 체험적인 신앙을 갖게 해 줍니다.
여러분 예수님 속죄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들었습니까 그것은 백과사전을 찾아도 나옵니다. 백과사전을 찾아도 예수그리스도는 온 인류의 죄를 위하여 죽으신 사랑의 화신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어떤 중이 설교하는 것을 들었는데 중이 설교할 때 사랑에 대한 설교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성경을 수많이 인용을 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언급을 하는 것을 봤습니다 예수님은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로서 온 인류를 위해 죽음으로 사랑을 보여주었다 중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날 깨달았습니다 중도 알기는 아는데 믿지만 않는 거다 분명하게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에 대해서 상식적으로라도 세상에서 늘 듣고 살아왔습니다 또 교회를 조금만이라도 다녔다면 예수께서 온 인류를 위해서 우리 죄 때문에 죽었다는 것 안 들어본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늘 들었던 그 이야기가 어느 날 정말 나와 관련이 있었습니다 나를 위해서 죽으신 예수님이란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게 늘 식상할 정도로 들었던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던 십자가 이야기가 어느 날 나하고 개인적으로 연결이 되었습니다. 정말 나를 위한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이야기가 개인적 체험적으로 받아들여질 때 성령이 오신 것입니다
성령은 오셔서 우리 마음 속에 그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십니다. 성령의 첫 번째 사역은 예수님을 개인적 체험적으로 믿을 수 있도록 역사하십니다 어느 날 늘 들었던 십자가 이야기가 나를 위한 것이란 것을 알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체험적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그날 성령이 오셨습니다 그는 진리의 영이며 내 속에 오셔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개인적 믿음을 줍니다.
요한복음 15장 26절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성경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합니다 성령이 우리 마음 속에 오실 때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온 몸이 뜨거워지지도 않았고 환상이 보이지도 않았고 방언이 터지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예수께서 나를 위해 죽으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성령이 오실 때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다 우리 마음 속에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해 주십니다 개인적이며 체험적인 신앙을 갖게 됩니다.
왜 내게 성령 주셔서 내 맘을 감동해 주 예수 믿게 하는지 난 알 수 없도다
우리의 이해력을 초월했지만 분명한 것은 믿어졌다는 것입니다 정말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었다는 것이 분명하고 확실했습니다 성령이 그때 오셨습니다 성령이 오실 때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십니다 개인적이며 체험적인 신앙을 갖게 해 줍니다
히브리서 10장 15절 ‘또한 성령이 우리에게 증거하시되’ 성령이 증거한다고 했지요 성령이 우리 마음에 친히 증거하십니다 무엇에 대해서 증거하시느냐 하면 17-18절 ‘ 또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이것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느니라’
성령이 증거하십니다 속죄에 대해서 증거하십니다. 내가 너희 죄와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성령은 우리 속에 그리스도의 속죄에 대해서 증거해 줍니다 예수님을 증거하며 예수님이 이루신 속죄 사역을 증거하는 것이 성령이십니다 우리 마음에 감동을 주시고 믿게 하십니다. 우리 속에 성령이 계시다는 증거는 바로 예수님에 대한 개인적인 체험적인 신앙을 갖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오셨기 때문에 이루어진 사실입니다
나 속죄함을 받은 후 성령이 오셔서 여호와 하나님 자녀 된 것을 늘 증거합니다
엉망으로 된 노래를 들으셨는데 가사는 정확하게 전달이 되었습니다 성령이 우리 마음에 오셨다는 증거는 속죄에 대한 사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 된 것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 사역을 통해서 성령이 내 마음에 오셨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죄악을 속하여 주신 주 내 속에 들어와 계시네
십자가 앞에서 주 이름 찬송합시다
죄악을 속하여 주신 주가 내 속에 들어와 계셔서 속죄에 대한 사실을 증거하고 그리스도에 대한 개인적이고 체험적인 신앙을 갖게 해 주십니다 그것이 성령의 첫 번째 사역입니다 성령이 내 속에 오셔서 믿음을 주십니다 그렇게 어렸을 때부터 식상할 정도로 들었던 십자가 이야기가 정말 나를 위한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이는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한번도 보지 못했던 예수 그리스도 그가 내 마음에 감동을 주었고 한번도 보지 못했던 그분을 사랑할 수 있도록 성령께서 내 속에 역사하셨습니다 성령은 우리 마음 속에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증을 줍니다 부모님이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내가 느끼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함께 생활하고 부모님의 헌신적인 희생 속에서 성장하고 그것도 오랜 시간이 들어서 철이 든 이후에야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구나 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는 단지 기록된 문자를 읽었는데 수십 년 동안 간신히 깨달은 부모님의 사랑과 비교했을 때 너무나 놀랍게 문자적으로 기록된 책 속에서만 예수님의 사랑을 실제적으로 깨달았습니다
여러분 신기하지 않습니까 책을 통해서 전달된 지식이 한번도 보지 못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을 마음에 실제적으로 느끼게 해 주는 것이 신기하지 않습니까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은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마음에 부어줍니다. 그래서 기록된 십자가의 사건이 현재 정말 나와 관련이 있다고 믿어지게 됩니다.
로마서 5장 5-6절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나는 연약합니다 나는 아무리 결심해도 무너지고 흔들립니다 그런데 연약한 나를 위해서, 나는 경건치 않습니다 경건치 않은 나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으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이 내 작은 마음에 부어지니까 차고 넘쳐 버렸습니다 그래서 변화가 생기고 감동이 생기는 것입니다 죄를 발견하고 고통스러웠을 때 자기에 대한 혐오감과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어쩔 줄 몰랐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십자가의 완성된 사역을 계시했을 때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이 마음에 부어졌습니다 소망이 부끄럽지 않습니다 내 육체는 시체같이 추악하고 더러운 죄가 가득해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해 죽으셨다는 진리를 일깨워주셨을 때 소망이 부끄럽지 않습니다 나 같은 죄인도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자신있게 그리스도의 피를 의지해서 찬송할 수 있습니다
성령은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마음에 그렇게 부어줍니다 여러분 예수님 당시를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은 거룩하고 의로우십니다 그 거룩하고 의로우신 예수님께서 죄악 가운데 있는 제자들 속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마음과 생각을 보고 계십니다 거룩하신 주님이 죄성을 갖고 있는 제자들 속에 같이 있었습니다. 기적이지요. 그 기적이 지금도 우리에게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거룩하신 성령이 죄성이 있는 우리 속에 계십니다 그것은 죄 가운데 있었던 제자들에게 거룩하신 예수님이 함께 하실 수 있었던 기적처럼 놀라운 기적입니다 거룩하신 성령이 죄성이 있는 우리 속에 계시다 라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의 놀라운 깊이를 나타내주십니다 아무리 몹쓸 전염병에 걸려서 혐오스러운 상태에서 죄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그 사람 어머니는 전염의 위험을 무릅쓰고 그 냄새나는 상태를 무릅쓰고 그 아이의 병상을 지킵니다. 전염의 위험도 있고 더럽고 역겹지만 부모는 안쓰럽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식의 병상을 지킵니다. 피고름에다 입술을 대고 고름을 빨아줄 수 있는 용기는 사랑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성령은 지극히 거룩하신데 그 성령께서 죄성있는 우리 속에 오셨다는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게 바로 사랑입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건져내랴 우리도 그렇게 울부짖었는데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성령으로 우리 안에 계십니다. 우리의 더러운 죄성과 거룩한 주님의 속성은 대조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것은 사랑에 대한 놀라운 확증입니다. 소망이 부끄럽지 않습니다. 성령의 증거는 그와 같이 죄인 된 우리에게 소망이 부끄럽지 않는 담대함을 허락해 줍니다.
여러분 그것이 성령의 역사라는 것을 모르시면 안됩니다 소망을 부끄럽게 하지 않는 성령의 역사가 있습니다 아이들이 부르는 찬송에
예수님의 사랑 신기하고 놀라워 예수님의 신기하고 놀라워
예수님의 사랑 신기하고 놀라워 오 크신 사랑
그런 단순하고 어떻게 보면 유치해 보이는 가사가 마음에 공감이 되었을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신기하고 놀랍습니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이한 일로 인하여 그를 찬송할지어다 노예선 선장이었던 존 뉴턴이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시를 썼습니다 그의 시는 곡이 붙어서 가장 널리 불려지는 노래 중에 하나입니다.
Amazing Grace how sweet the sound that saved a wretch like me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라는 찬송입니다 그런데 앞에 영어가사가 마음에 와 닿지 않습니까 Amazing Grace 놀라운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신기하고 놀라운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입니까 나 같은 죄인 살리셨다는 것입니다 소망이 부끄럽지 않습니다 성령의 증거입니다
우리가 죄성을 깨닫고 그렇게 고통스러웠던 순간에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이 믿어졌다는 것 가장 밑바닥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한 것입니다 내 스스로를 대견하게 여기고 내가 의롭다고 생각하는 상태에서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절망적인 죄를 발견한 상태에서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놀라운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은 바로 죄 가운데 있는 우리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해서 소망이 부끄럽지 않게 해 줍니다 그것이 바로 성령의 역사입니다. 뿐만 아니라 성령은 우리 속에 계셔서 우리 안에 내적인 변화를 줍니다 종교는 외적인 변화를 강요합니다 하라 하라 그러나 그것을 행할 수 있는 힘은 주지 않습니다 성령은 우리 안에서부터 시작해서 내적인 변화를 줍니다 성령이 내 안에 오셔서 내적인 변화를 시작했고 그 일을 지금도 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점점 닮아갈 수 있도록 그가 역사하고 계십니다 우리 안에 혹 선한 것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성령의 역사의 결과입니다.
우리가 잃어진 영혼을 보고 안타까워할 때 내 본성은 그런 마음이 없습니다 안타까워하는 마음은 성령의 역사입니다 내게 주신 변화입니다 내가 자존심을 굽히면서 전도하려 했을 때 그는 내것이 아닙니다 내게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신 결과입니다 바울은 고백합니다 나의 나 된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고 이야기했는데 우리에게 나타난 모든 선한 것들은 우리에게 있었던 것들이 아닙니다 잘 생각해 보십시오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사역하신 결과입니다 그는 내적인 변화를 줍니다
에스겔 11장 19절 ‘내가 그들에게 일치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신을 주며 그 몸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서 내 율례를 좇으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여호와 하나님이 되리라’
우리 속에 새로운 마음을 주십니다 새 신을 주십니다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줍니다 성령께서 그러한 내적 변화를 시작하셨고 지금도 하고 계시고 점점 더욱 이루어가십니다. 성령의 내적인 사역을 통해서 그분이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저는 복음을 이야기할 때 정말 자제하지 않으면 감정적으로 격앙되어서 눈물이 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저는 절대로 그런 것 때문에 울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데 제가 예수님 이야기하고 십자가 이야기할 때 내 마음에 벅찬 감동이 있고 눈물이 난다는 것은 기적입니다 내게 그런 마음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굳은 마음을 제하시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신 주님께서 내 마음을 어린아이처럼 만드셨다고 생각합니다.
에스겔 36장 26-27절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이러한 말씀은 거듭난 사람의 내적 변화를 설명한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십니다 죄에 대한 혐오감을 주셔서 죄에 대한 저항력을 주시고 죄를 이길 수 있는 극복력을 주십니다 우리 안에 내적인 변화를 주셔서 그가 점점 그것을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성령은 내적 변화를 줍니다
어떤 어린아이가 네가 구원받은 이후에 생긴 변화가 무엇이냐 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구원받기 전에는 내가 죄를 좇아다녔는데 구원받은 이후에는 내가 죄를 피해서 도망다니고 있다고 표현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구원받기 전에는 우리가 죄를 좇아다녔습니다 재미난 일 없나 횡재할 일 없나 그런데 구원받은 이후에는 죄를 피해서 도망다닙니다 죄 때문에 고통을 받고 죄에 대한 저항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역사하셨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 그러한 성령의 역사가 없었다면 신앙생활 지탱할 수 없습니다 우리를 둘러싼 수많은 유혹이 있습니다 거친 물결처럼 우리를 사로잡습니다 그러나 성령은 그러한 유혹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줍니다.
큰 유혹 가운데 있었을 때 갑자기 그 유혹에 대해서 단호하게 거절할 수 있었던 용기가 생겼고 그것을 실천한 적 없습니까 그 단호한 용기를 성령께서 주십니다 그때 여호와 하나님이 간섭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생활 속에서 수많은 죄를 지었습니다 아무리 지저분한 흙탕물도 뜨거운 태양열에 의해서 증발되면 깨끗한 물만 증발되어서 날아갑니다 수증기입니다 우리 마음은 더러운 흙탕물 같지만 성령이 햇볕처럼 우리에게 비춰주실 때 깨끗한 상태로 점점 변화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내적인 변화는 갑자기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순간적이고 일회적으로 받는 것이지만 구원받은 이후에 내적인 변화는 점진적이고 계속적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때로는 너무나 조금씩 변하기 때문에 자기 자신도 못 느끼거나 답답할 때가 있습니다 어린아이는 자기가 크지 않는다고 늘 불평을 가지고 있습니다 엄마 나 언제 어른 돼 늘 불평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일년 전에 봤던 친척이 오랜만에 방문하게 되면 아이를 보고
첫번째 하는 말은 야 너 많이 컸구나 하는 말을 합니다 아이는 자기가 자라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조금씩 실제로 자라고 있습니다. 우리가 늘 보는 나무는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몇 년 뒤에 그 나무를 보면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자라 있습니다.
우리의 영적 성장이 그러합니다 때로는 너무나 점진적이고 조금씩이기 때문에 자기 자신이 답답해 할 수 있습니다 나는 언제 어른이 되나 그러나 구원받은 후에 자기의 삶을 돌아보십시오 처음과 지금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 안에서 끊임없이 변화를 주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하면 스데반처럼 돌 맞고 피가 터져도 얼굴이 환해질 수 있습니다 신앙이 성장하면 우리도 스데반처럼 돌 맞아도 얼굴은 환하게 됩니다 삶의 역경은 있어도 얼굴은 환할 수 있습니다 성령은 우리 안에서 그런 내적 변화를 이루십니다 뿐만 아니라 성령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깨닫게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시고 생각나게 하시며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분별할 수 있는 분별력을 주십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이후에 생기는 첫 번째 변화 중에 하나는 성경이 이해되고 읽혀진다는 것입니다 물론 모든 말씀이 다 이해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분명한 것은 성경에 대한 이해력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너희에게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성령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깨달음을 주십니다 그래서 성경말씀이 다르게 읽혀지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교회 다녔던 어떤 장로님께서 확실하게 거듭난 이후 간증하실 때 이렇게 간증했습니다 내가 옛날에는 성경말씀을 많이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부품만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비로소 조립이 되어서 작동이 된답니다 아주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에도 부분적으로 많이 들었는데 부품만 가지고 있었지요 그런데 성령이 오셨을 때 그 말씀이 다 조립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역할을 하고 그 말씀이 드디어 작동하게 된 것입니다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시니 성령이지요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시며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친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기름 부음이 우리 안에 계셔서 우리를 끊임없이 가르치십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있다는 증거 중에 하나는 성경말씀의 이해와 감동입니다
성령은 진리의 영이며 지금도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성령이 스승 되셔서 진리를 가르치시고 거룩한 뜻을 깨달아 예수를 알기 원하네
성령은 우리에게 지금도 가르침을 베푸십니다
성령의 감화 받아서 여호와 하나님 말씀 배우니 그 말씀 한 절 한 절이 내 마음에 교훈되도다
성령은 이와 같이 진리의 스승이 되셔서 지금도 우리를 가르치십니다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되었습니다 따라서 성령의 감동으로만 성경이 이해될 수 있습니다 성령은 지금도 우리를 감동하셔서 그가 기록한 성경을 깨닫게 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성령은 지금도 우리를 인도하며 보호하며 우리를 위해서 간구하십니다 그 옛날 광야에서 이스라엘 사람들과 늘 함께 했던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로서 그들을 지켜주시고 보호하셨습니다 구름기둥과 불이 무엇입니까 바로 현재 우리 가운데 함께 계시는 성령을 나타냅니다 그는 늘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인디언들이 성인식을 하려면 맹수가 들끓는 깊은 숲속에서 혼자 하룻밤을 지새야 됩니다 아주 두려움을 주지요 그 성인식을 거치기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답니다. 어린아이가 성인식을 통과하는 의식으로 그 캄캄한 어둠 속 맹수들이 들끓는 밀림 속에서 하룻밤을 보냈습니다 너무 긴장하고 두려웠습니다 그런데 해가 떠오르고 무사히 성인식을 끝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아버지가 활을 매고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서 지켜주고 있었대요 진작 알았다면 늘어지게 잤을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십니다 보호하시며 인도하시며 지금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십니다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할 때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고 계십니다 풀무불에 던져졌던 다니엘의 세 친구를 기억하고 계십니까 그들이 불속에 던져졌을 때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 불 가운데 같이 계셨습니다 세 명을 던졌는데 네 명이 불속에서 왔다 갔다 했지요 그때만 거기 같이 계셨던 것이 아니라 바깥에서도 실제로는 같이 계셨던 것이 불속에서 분명하게 위기 가운데 나타났을 뿐입니다
그는 결코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셨습니다 보라 세상 끝날까지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하리라 성령은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이와 같이 성령께서 늘 우리와 함께 계시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될 때 우리의 삶이 변화됩니다 능력이 생기고 평강이 생기고 그리고 수많은 영적 사실에 대한 이해력이 생깁니다 내가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한다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 영원토록 함께 계시는 성령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지만 우리의 생활이 깨끗해질 수 있고 능력 가운데 살 수 있습니다 너희 몸이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 알지 못하느냐 모르면 안됩니다 우리가 성령의 전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우리 속에 성령이 계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생활이 구별되고 깨끗해 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보는 것을 지금도 그가 보시고 우리가 듣는 것을 지금도 우리와 함께 듣고 계시며 우리가 있는 곳에 지금도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러한 함께 계시는 성령에 대한 분명한 지식과 믿음이 있어야지만 생활을 거룩하게 할 수 있습니다 너희가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여호와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겠다고 했습니다 징계가 있습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 우리의 육체가 성령의 전입니다 우리는 그 사람을 모시고 삽니다 우리가 높고 귀한 분을 집에 모시게 되었다고 생각해 보지요 먼저 해야 될 일은 청소부터 해야 될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시다면 늘 청소해야 됩니다
옛날 장군한테는 당번병이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한테 성령이 계시고 우리는 성령의 당번병과 같은 것입니다 잘 성전된 우리 육체를 관리해야 됩니다 보는 것 듣는 것 행하는 것 있을 것 만나는 사람 모두 모두 성령을 인식하고 조심해야 됩니다.
이 성경에 보면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는 명령어가 많이 있습니다 성령은 우리 안에 계시는데 그 성령을 인정하고 그분이 활동하실 수 있도록 자리를 비어드리는 것이 성령의 충만입니다 성령의 충만을 위해서 먼저 해야 될 일이 있습니다 우리 자신을 여호와 하나님 앞에 비워야 됩니다 비워야만 채워질 수 있는 것입니다 마음을 비우고 생활을 비우고 생명을 비워야 됩니다 그래야지만 성령이 우리 마음에 충만해질 수 있습니다 마음을 어떻게 비웁니까 우리 마음 속에 있는 욕망 소유욕 미움 시기 질투 다툼 명예욕 이런 것들을 버려야 됩니다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시기하지 말지니라 명령하십니다 마음을 비워야 됩니다 자존심을 버리고 미움을 버리고 죄를 버려야 됩니다 그래야지만 성령이 우리 마음을 채워줄 수 있습니다
교회 사역자는 특별히 명예에 대한 것을 버려야 됩니다 영국의 유명한 전도자 해리무어 하우스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분이 오랫동안 부흥회를 했는데 회심자가 전혀 생기지 않았습니다 왜 사역이 실패할까 고민이 생겼습니다 그러던 중 부흥회 장소로 가다가 그 앞에 크게 써 있는 팻말을 보았습니다 위대한 부흥사 해리무어 하우스 라고 크게 써 있었습니다 그 말을 보자마자 왜 성령이 역사하지 않았는지 금방 깨닫게 되었습니다 위대한 전도자란 있을 수 없습니다 위대한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을 뿐입니다 해리무어 하우스가 그 말을 고치도록 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위대한 성령 위대한 여호와 하나님이 필요하지 위대한 전도자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해리무어 하우스는 기꺼이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자신의 존재를 낮게 여겼습니다 그때부터 사역에 성공을 이룰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명예욕을 버리고 형제 자매에 대한 갈등과 미움을 버려야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러 왔다가 혹 원망들을 일이 생각나거든 먼저 가서 형제하고 사과하고 오라고 말씀하십니다 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그런 헛된 영광 명예욕 시기 질투 이런 것을 버리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래야지만 성령이 우리 마음을 채워주실 수 있습니다
또한 생활을 비워야 합니다 생활을 비우면 성령충만이 이루어집니다 생활을 비운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너무 번잡하고 분주한 생활을 해서 성령께서 우리를 사용하실 시간을 없애버리면 안됩니다 성령충만을 위해서 생활을 비우는 것입니다 simple life입니다 삶을 단순화해서 성령이 쓰실 수 있는 시간을 많이 확보해야 합니다 복잡한 인간관계 복잡한 취미생활 복잡한 사교활동 이런 것으로 인해서 생활이 복잡해지면 성령충만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우리 삶을 simple life 단순하고 간단하게 정리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살다 보면 바쁘게 생활을 사니까 저녁에 생각해 보세요 오늘 하루동안에 하늘을 몇 번 쳐다봤을까 한번도 안 쳐다본 날이 많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현상이 영적으로도 벌어집니다 사느라고 바빠서 하늘을 쳐다본 적이 없습니다 병아리처럼 밥 먹을 때만 기도하고 먹었지요
삶이 너무 복잡하면 안됩니다 simple life 세례요한은 약대 털옷에 역청만 먹고 살았습니다 그게 단순화된 생활입니다 단순화된 생활 속에 나머지를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돌린 것입니다 그래서 생활을 비워야지 여호와 하나님의 충만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 것은 생명을 비워야 합니다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다 그러나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얻으리라 그런 역설적인 진리가 있습니다 생명을 비우라는 말은 내 삶의 존재목적을 여호와 하나님과 연계시켜서만 생각하는 것입니다 살든지 죽든지 우리가 주님 안에서 살겠다 라는 의지와 결심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생명을 비우는 것입니다 그래야지만 주께서 채우시고 우리를 온전하게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부인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따릅니다 그러니까 채워주려해도 채울 것이 적은 것이지요.
우리가 성령충만으로 채우기 위해서 자기를 비워야 합니다 마음을 비우고 생활을 비우고 생명을 비워야 합니다 그때 주께서 성령의 충만으로 우리를 채워주시고 능력 가운데 우리 삶을 더욱 변화시키며 현재 그분의 뜻 가운데서 각 사람을 귀하게 사용해 주실 것입니다 성령충만을 받으라 라는 말씀도 있지만 성령을 소멸하지 말라 성령을 근심케 하지 말라는 표현도 있습니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성령을 소멸할 수도 있고 성령을 근심케 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성령충만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 의지와 결심을 분명하게 해야 합니다 정말 하루를 살아도 주님 안에서 의미있게 살겠다 주님 뜻 가운데 살겠다 주님 안에서 온전하게 살겠다 라는 의지와 결심을 가져야 됩니다 그 의지와 결심을 가질 때 성령께서 비로소 우리를 사용할 수 있으며 비로소 우리를 충만하게 채워주실 수 있습니다 우리 자신이 여호와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순종하려는 의지와 결심이 있어야 됩니다 그래야지만 성령을 소멸하지 않고 소멸하지 않는다는 것은 성령의 뜻에 저항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을 근심하게 만들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과 반대되는 일을 하지 않는다면요.
우리 안에 이미 주신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현재의 삶을 영원한 세계의 가치 있는 것으로 바꿔주십니다 그리고 바꿀 수 있는 기회를 우리 각 사람에게 주십니다 성령은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영원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변화시켜 주시는데 그러한 놀라운 성령의 사역에 참여하기 위해서 먼저 주님 안에서 살겠다는 의지적인 결심을 해야 되고 마음을 비우고 생활을 비우고 생명을 비우는 생활이 필요합니다 그때 성령께서 우리를 충만케 하시며 성령의 충만은 주님 뜻 가운데 온전히 사로잡히게 해 주고 주님의 의의 도구로 좌우될 수 있도록 만들어주십니다
갈라디아서 5장 25-26절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우리 안에 성령이 계십니다 함께 계십니다 놀라운 것은 우리 속에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그분 의지대로 살아야 됩니다 그분 뜻 가운데 살겠다는 결심을 하고 우리의 자리를 비워드려서 그분이 우리를 사용하실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말씀을 우리 마음에 다시 한 번 일깨우고 싶습니다 성령으로 살면 성령으로 행할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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