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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말씀과 성령

본문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분이며, 죄는 무엇이고,우리의 타락된 모습은 어떠하며, 예수님의 구속과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은, 이 세상은, 여호와 하나님 나라는 무엇인지를, 성령님은 누구이며 그 분과
동행하는 길을 모두 말씀으로 가르쳐 주신다.
본문에서 성령이 오시면 모든 것을 가르치신다. 특히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신다.
이처럼 주님의 말씀과 성령님의 역사는 하나이다.
-예수님과 동행하고 싶으신가 먼저 할 일은 기록된 말씀을 읽는 일이다. 말씀을 읽을
때에 성령께서 동행해 주신다. 말씀을 늘 읽는 것은 주님과 살겠다는 결심이다.
성경을 읽을 때에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한다. 그러면 읽은 그 말씀이 언젠가 필요한
현장에 살아 움직인다. 그러다가 필요할 때 성령의 검, 곧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귀를 대적하며 승리하게 하는 말씀이 된다.
주님과 동행하면 살려면 먼저 말씀을 충실히 읽어야 한다.
-본문에서 첫째,주님의 말씀을 잘 알려면 성령께서 함께 해주셔야 한다는 것과.
 둘째, 성령님은 다른 것이 아닌 예수님의 말씀을 증거하신다는 것이다.
 첫째, 성령님은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나게 해주신다.
-성령이 역사하실 때에 주님의 말씀은 내 생활 속에서 살아 움직인다. 레마가 된다.
말씀 앞에 우리는 반응해야 한다. 깨닫고 순종하던지, 아니면 무시하던지...
마리아는 어떠했는가 "주의 계집종이니 말씀대로... " 이로써 그녀는 여호와 하나님을 잉태한다.
우리 가운데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의 살아있는 역사가 부족한 것은 왜 그런가
말씀에 반응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아모스는 말씀의 기근에 대하여 증거했다. 말씀을 듣고 싶어도 못듣는 기근이었다.
오늘날 좋은 말씀들이 여기 저기서 나오고, 설교집과 성경공부 교재도 많다.
그런데 왜 한국교회는 문제가 많다고 하나 왜 내 삶은 변화되지 않는가
성령에 감동된 말씀이 사라진 영적 기근은 혹시 아닌가
귀한 말씀이 선포되고 있지만 성령으로 말씀을 받고 있지 못한 것은 아닌가
본문에서 성령님은 예수님을 증거한다고 했다.
주 예수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 성령의 역사를 외치기보다
문화적인 것을 전하며 , 또 듣기를 원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수많은 말씀을 알아도 그것이 레마되지 않고는 자기의 삶과 아무 관계가 없다. 저는
어릴 때부터 요3:16을 외웠었지만 정작 20년전 그 말씀이 저를 감동하셨을 때에야
비로서 그 말씀을 경험하고 구원의 은총을 누리게 되었다.
아무리 많이 들었던 말씀이라도, 성령의 감동없이는 내가 경험한 말씀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성령이 역사하면 말슴은 레마가 된다. 레마되게 하는 것은 성령이시다.
어떻게 우리가 예수를 믿게 되었던가 성령께서 구원의 말씀을 믿게 하셨다.
의심많은 우리가 어떻게 십자가의 희생과 구속을 믿었는가
바로 성령께서 말씀의 그 현장으로 인도하셨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보게 하셨다.
기록된 말씀이 감동되고, 살아 움직이며, 결단하게 하고, 자기를 포기하며 그 말씀의
요청과 부름 앞에 순종하여 행동하게 하는 말씀이 곧 자기가 경험한 말씀이다.
바로 성령께서 우리가 받은 그 말씀을 레마되게 하신다.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난다.
말씀을 읽어도 깨달아지지 않는가 다아는 말씀같긴한데 들어도 가슴에 와닿지않는가
성령의 역사를 간구하시라. 말씀을 깨닫게 해 달라고 성령의 감동을 간구하시라.
-말씀을 전할 때에도 성령이 역사하셔야 한다.
(눅4:18)에 예수님도 복음을 전하기 전에 먼저 성령이 충만히 임하신 것을 중거하신다.
그 말씀이 오늘 나의 삶 속에서 살아 역동하고 나를 지배하여 움직이게 해야한다.
레마가 필요하다. 그 사람이 은혜받은, 저 사람이 용서받은 ,그 사람이 병고침 받은
그 사람이 변화된, 말씀이 아니라 "내가" 경험한 말씀들이 필요하다.
레마로 받은 말씀이 있어야 우리는 사역할 수 있다.
자기가 구원받은 경험이 없거나 그 경험이 식어져 있는데
그가 전하는 복음이 어떻게 힘차게 선포되고,어떻게 한 영혼이 감동으로 부딪히겠는가
말씀이 나를 감동하신 것이 언제였던가 지나간 추억이 되어서는 안된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엠마오 도상의 낙심한 제자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실 때에
그들의 마음은 뜨겁게 감동되었다. 새 힘을 얻었다.
기도하자! 성령님 저를 그 제자들과 같이 말씀으로 뜨겁게 감동하여 주소서...
 성령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기억나게 하신다.
예수님의 말씀이 아닌 다른 것을 기억나게 하고 다른 것에 주의를 기울이게 하는 것은
성령의 역사가 아니다. 설교도, 성경 공부도 예수님이 생각나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
예수님이 생각나고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하게하는 것이 성령님의 말씀 사역이다.
-그러므로 모든 말씀 사역들, 곧 설교와 성경 연구에서는 성령의 역사를 간구해야 한다.
성령의 감동없는 독서, 단지 좋은 책으로서의 성경독서에는 중생의 변화도,권능도 없다.
불신자 중에도 연구하기 위해서 성경을 여러 번 읽은 사람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에게는 믿음도 영생도 없다.
-성경을 기록하게하신 분이 누구인가 (딤후3:16)에는 성령의 감동으로된 것이라 했다.
우리가 좀 부족해도 성경읽고, 말씀들을 때에 성경의 원저자로 기록하게 하신 성령께서
감동해 주셔야 주님을 만나고, 회개가 일어나고, 주님을 믿고, 주님의 역사가 일어난다.
그러나 아무리 지식으로 많은 것을 알아도 성경의 원저자이신 성령의 도움이 없이는
아버지의 뜻을 잘 알 수 없다. 성경은 영적인 책이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을 때에 말씀을 들을 때에 성령께 도움을 구하는기도를 드리자.
주님의 뜻대로 깨닫고 그 말씀이 나를 다스리시도록..
-요일2:27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기름부으심,곧 성령께서 여호와 하나님의 뜻대로 말씀을 깨닫게하신다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했다. 이것은 우리에게 주신 이성을
무시하고 성경을 배우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당시는 영지주의의 영향이 심했다.
너무나 헬라 철학에 빠져서 복음도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그가 하신 일도
모두 헬라철학의 이원론에 갖다 맞추려했고 결국 예수님의 성육신도 부인한다.
사도 요한은 이렇게 사람의 철학지상주의, 이성 최고주의를 경고하는 것이다.
그가 우리에게 주신 농리와 이성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신 지식을 잘 활용하여 말씀을 더 잘 배울 수 있다.
성경의 배경을 공부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이것은 좋은 준비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아직 말씀이 내싦에 살아있는 것이 아니다.
정작 그 말씀이 내 생명이 되려면 성령의 역사가 꼭 필요하다.
-말씀을 전하는 것도 성령께 감동되어야 한다. 본래 성령님의 직분이 무엇인가
(요15:26)"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 예수님을 증거하는 분은 바로 성령이시다.
(행4:8,4:13)베드로도, (행6:10) 스데반도 성령에 충만히 감동되어 말씀을 전했다.
에베소 교회도 성령충만받은 후 두란노서원에서 강력한 말씀의 훈련이 2년간 있었다.
그레서 예수님이 하시던 그 권능이 에베소에도 나타나, 전 에베소가 돌아오게 되었다.
 또한 성령의 역사는 성경 말씀으로 확인된다.
성령을 의지한다고 하면서 잘못되는 경우가 있다. 신비한 역사라도 다 믿으면 위험하다.
내가 못하는 것을 한다고 다 믿어서는 안된다. 성경에 비추어보고 분별해야 한다.
초대교회 시절부터 몬타너스파처럼 영적인 것만 추구하다가 이단이 된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일수록 육적인 모습들이 숨어 있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러므로 성경이 성령의 일을 확인해 준다. 성경에 예수님은 뭐라 하셨나
마12:33나무도 좋고 실과도 좋다 하든지 나무도 좋지 않고 실과도 좋지 않다 하든지 하라 그 실과로 나무를 아느니라 주님은 열매를 보아 그 나무를 알라고 하셨다.
성령의 역사인듯 할 때에 그 인격과 사역의 열매가 옳은 가를 봐야 한다.
-반대로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제한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성경에는 성령의 역사를
사모하라고 하는데 일르 거부하는 것이다. 성령의 열매가 중요하다는 경우도 있다.
옳다. 정말 성령이 역사하신 것이라면, 어찌 나쁜 열매가 나오겠는가
그러나 성령의 은사는 기피하고 성령의 열매가 최고라고 주장하면서,
사실은 성령이 맺게하시는 열매는 없고,오히려 무서운 타락이 숨겨진 것을 본적이있다.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능력에 있다고했다.
물론 성령의 능력도 없고... 가짜는 분별된다.
그러나 신비주의, 형식주의에 싸여 있다면 성도들이 어려움을 당한다.
말세에 성경적인 교회를 만나는 것이 복이다. 우리 교회가 그렇게 되도록 기도하자.
 결: 말씀과 성령, 이 둘이 우리 신앙의 중심이다.
그러므로 말씀을 충실히 읽고, 상령께서 감동하여 바로 깨닫도록 기도하자.
깨달은 말씀을 순종하여 내가 경험하는 말씀이 되게 해달라고 간구드리자.
성찬 예식을 한다.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행한다.
고린도 전서에 기록한 말씀에 따라 그 의미를 새기며 행한다.
이 말씀이 깨달아지고, 성령께서 감동하시는 순간이 되기를 기도하자.
이 성찬 예식 속에 성령께서 임재하셔서 떡을 떼며, 잔을 마실 때에
예수님이 날 위해 피흘리시고 몸찟기신 그 십자가의 현장에
성령으로 나도 함께 서 있게 해주시기길 기도하자. 성령의 감동으로 말씀따라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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