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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성령이여 만물을 새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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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대한성공회 교단소속 서울교구 주교좌성당에 시무하는 김근상 신부입니다. 이렇게 귀한 교환예배를 드릴 수 있어서 저 개인적으로도 무척 감격적이고 더욱이 여러분들도 잘 알다시피 내일 역사적으로 대단한 의미있는 날입니다. 50년 6월 동족상잔의 피흘림으로 돌이킬 수 없을정도로 상처를 깊게 입고 갈라졌던 남북의 허리를 잇는 대역사가 시작하는 날입니다. 지난 55년 분단의 뼈아픔이 어찌 한순간에 회복될 수 있겠습니까만은 민족대통합을 갈망하는 백성들의 그 마음을 담아서 그 갈망에 부응하는 귀한 전기가 바로 오늘이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기도하면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저는 전쟁을 모릅니다. 제가 태어날때쯤 괴뢰군이라 불리는 이북군이 막 쫒겨나고 있을 때였습니다. 고작해야 제 기억으로는 미군은 아군이고 악수표 밀가루가 곳곳에서 있었고 학교에서 주는 밀가루 옥수수가루를 받으러 줄을섰던 기억과 미군만 보면 ”기브미 쪼꼬렛”을 기억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북쪽에는 괴물과 악한만 존재하는 것으로 늘 쇄뇌되어 왔었고 어떻게서든 힘을 길러서 북쪽에서 신음하는 인민들을 해방시키고 옛 발해의 땅을 탈환해야 한다는 반공 그리고 승공의 꿈을 키우며 청년기를 맞이 했습니다. 저는 서강대학교에서 대학생활을 하면서 여러 가지 꿈꾸는 청년으로 사는 바 그때에 그야말로 말도안되는 군분의 전횡을 이겨내지 못하고 좌절과 우울, 강박관념과 치기로 인생을 함부로 내동댕이쳤던 기억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나서 저는 하늘을 바라볼 수 있었고 그 하늘이 구원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비로서야 그때서야 주님을 먼 발치로부터 따라 나설 수 있었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얼마후에 80년 광주를 경험하고나서 저는 역사인식의 대전환뿐만이 아니라 마음속 깊이 내재되어 있던 정신분열에 가까운 영적 갈등에 대한 치유도 비로소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저에게 처음 광주사건은 아마도 여러분 대개가 그랬듯이 북의 사주를 받은 좌경폭도들이 나라를 어지럽히는 난동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얼마후 어찌하여 보게되었던 광주테입의 그 참혹하고 잔인한 장면과 함께 그들의 피울음으로 들려오는 총소리와 함성소리를 듣는 순간 저는 온몸의 전율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은 내면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영혼을 뒤흔들어 깨우고 새로운 여호와 하나님의 계시를 체험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저는 그 당시에 강화 마니산 근처에 작은 교회에 시무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그 자리에서 제가 바라본 하늘 그 잿빛 하늘을 비디오에서 보았던 광주의 잿빛 하늘과 조금도 다를바가 없습니다. 내가 치뜬 눈으로 바라본 하늘이 바로 광주를 바라보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저는 갈릴리 사람들이 그랬듯이 광주는 내 아버지의 땅이고 내 누이의 땅이고 이제 내 땅이기도 하다는 그런 인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한 처음부터 그 하늘은 조금도 변하지 않는 그 하늘이었습니다. 그 하늘아래 아담이 생겨났고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났으며 모세가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데리고 홍해를 건넜습니다. 그 하늘아래서 마리아는 예수를 잉태했고 예수는 십자가에 돌아가셨으며 다시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미국의 하늘이 내 나라의 하늘과 다름이 없고 북쪽의 하늘이 남쪽의 하늘과 다름이 없었습니다. 광주의 하늘과 서울의 하늘과 평양의 하늘이 조금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 옛날 고구려 신라의 하늘과 조선의 하늘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하늘이 조금도 다를바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늘은 그 하늘이었습니다.
얼마전에 우리는 교회력으로 승천일이라는 것을 지켰습니다. 말 그대로 하늘로 오르셨다는 표현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일대기는 이로써 끝이 나야 하는 것입니다. 하늘로 오셨다가 하늘로 올라가시면 그것으로 끝난 것입니까 흔히 우리는 보통 사람이 죽으면 ’소천하셨다’는 말을 합니다. 하늘에서 불러 가셨다는 뜻 아닙니까 단지 차이가 있다면 우리는 우리는 끌려가고 예수님은 스스로 올라갔다는 차이일 겁니다. ’하늘로 올라갔다. ’ 이것은 끝난 사건입니다.
그런데 열흘이 지나고 뜻밖의 사건이 생겼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성령강림사건이라고 합니다. ’강림’ 말그대로 내려왔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내려온 것은 예수가 아니라 성령입니다. 이 부분에서 여러분이 가지고 계신 성경을 한번 더 들여다 봅니다. ”나는 지금 나를 보내신 분에게 돌아간다. 내가 떠나지 않으면 그 협조자가 너희에게 오시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가면 그 분을 네게 보내겠다. 아직도 나는 할말이 많지만 지금은 너희가 내말을알아들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너희를 이끌어 진리를 온전히 깨닫게 하여 주실 것이다. ” 이 복음을 묵상하면 대게 두가지의 회의에 빠지게 됩니다. 하나는 여호와 하나님과 한분이신 예수님도 못하시는게 있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되고, 둘째는 성령과 예수님이 한분이 아닐 수도 있구나 이런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나는 가고 그분은 오신다”고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회의는 성령강림의 현장을 기록한 사도행전 2장 1절을 보시면 우리가 생각하는 회의가 얼마나 무식한 것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마침내 순절이 되어 신도들이 모두 한군데 모여들었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세찬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가 들려오더니 그들이 앉아있던 온 집안을 가득채웠다. 그러자 혀같은 것들이 나타나 불꽃처럼 갈라지며 각 사람에게 내렸다. 그들의 마음은 성령으로 가득차서 성령이 시키는대로 여러가지 외국어로 말을 시작하였다. ” 이 장면을 보면 인간의 의지는 조금도 없습니다. 인간의 사상과 철학, 지식과 경험이 없습니다. 따라서 여기에는 의심과 회의가 용납되지가 않습니다. 그것은 영혼을 잘라먹는 불안과 두려움을 단번에 날려버리는 강제적인 힘이었고 모두가 어쩔 수 없이 당하고 마는 초자연적인 힘이었습니다.
인간은 오랜세월동안 여호와 하나님과 힘겨루기를 계속 해왔습니다. 꼭 구약의 역사가 아니더라도 너나 할 것 없이 우리의 주변은 여호와 하나님나라와 늘 적대적 관계 혹은 갈등의 관계를 가지고 왔다하더라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 못난 싸움은 여호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인간으로 끊임없이 여호와 하나님을 멀리하게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또 다른 나를 미워하고 죽이게 하고 종국에 가서는 역사의 파멸을 초래하게 했습니다. 인간이 인간이기를 스스로 거부했습니다. 피조물이 아니라 제가 스스로 창조주를 해보려고 대들었습니다. 이 때 여호와 하나님이 하실 수 있는 일은 무엇이겠습니까 이때 여호와 하나님이 하실 수 있는 일은 인간을 아예 없애버리거나 아니면 인간 안에 내재되어 있는 여호와 하나님의 형상을 끄집어 내는 일이었습니다. 하늘의 형상을 되살리는 일이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다고 복음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속 깊이 묶여 있는 여호와 하나님의 형상을 꺼내 보이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셨고, 이 일은 어느 한 사람의 사건이 아니라 누구에게도 경험이 되어야 할 사건임을 아시고 또 다른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성령님을 이 땅에 강림케 하신 것입니다. 실체도 형상도 없이 그렇기 때문에 누구나가 다 경험할 수 있게 해 주신 것이 바로 성령강림의 사건입니다.
언어도 종족도 넘어서 누구나가 다 가지고 있는 마음 속 깊이 내재되어 있는 여호와 하나님의 형상을 끄집어 내게 하시기 위해서 성령께서 우리게 오셨습니다. 우리는 그 힘으로 이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선택해서 이 곳에 온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힘으로 성령의 힘으로 이끌려서 이 곳에 온 것입니다. 경동교회와 성공회의 교환예배 또한 우리가 한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하신 일입니다. 이 일로 새로운 역사를 만들라고 하는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너희들 멋대로 세상을 살지 말고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때가 우리에게 명하시는 음성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설교말씀을 정리하려고 합니다. 처음에 저는 80년 광주를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그 80년 5월 광주의 사건을 성령강림의 사건으로 봅니다. 성서말씀대로 성령이 시키는대로 여러 가지 외국어로 말을 시작하였다고 했습니다. 또 오늘 구약 요엘서 기록대로 아들딸들이 예언을 하고 젊은이들이 계시를 보며 늙은이들이 꿈을 꾸리라는 그 말씀대로입니다. 모든 벽을 부수고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첫 새벽은 성서에 나타난 대로 바람소리대신 최루탄소리 총쏘는 소리를 들었을 뿐입니다. 혀같이 나타나 불꽃처럼 갈라지는 모습대신 곳곳에 불타오르는 빌딩숲의 차이뿐입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사는 사람들은 강제된 힘에 압도되어 하나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죽음이 두렵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 잿빛 하늘을 응시하고 잿빛하늘의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았을 뿐입니다.
경동교회 교우 여러분, 처음부터 하늘과 땅은 다른 세계가 아니었습니다. 도대체 어디부터가 하늘이고 어디부터가 땅이란 말입니까 하늘을 보면 땅이 보입니다. 땅을 보면 하늘이 보여야 합니다. 적어도 성령께서 저에게 성령강림절을 통해서 보여주신 계시는 하늘과 땅이 하나라고 하는 것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전라도와 경상도가 하나라는 사실을, 북과 남이 하나라는 사실, 경동교회 교인과 대성당교회의 교인이 하나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우리가 언제가 여호와 하나님앞에 가면 그 분께서 저에게 너는 어디서 태어났냐, 어디서 공부했냐, 어느 교단에 소속되어 있냐, 국적은 어디냐 이런 것을 절대 묻지 않으실 것이라는 사실을 저는 확신합니다. 아니 전혀 관심도 없으십니다. 우리 모두는 여호와 하나님 안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형상을 짓는 아름다운 사람일 뿐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사모하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대로 살겠다고 결심하는 사는 그런 참으로 미쁜 사람일 뿐입니다. 우리 이 모습으로 우리에게 펼쳐진 미래를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오늘 이 사건이 오늘 이 함께 드리는 예배가 성령강림의 사건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이제 사도 바오로가 에베소교인들에게 쓴 편지의 내용을 인용하면서 제 설교를 마치려고 합니다. ”성령께서 평화의 줄로 여러분을 묶어 하나되게 하여주신 것을 그대로 보존하도록 노력하십시오. 그리스도의 몸도 하나이며 성령도 하나입니다. 이와같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당신을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르셔서 안겨주시는 희망도 하나입니다. 주님도 한분이시고 믿음도 하나이며, 세례도 하나이며 만민의 아버지이신 여호와 하나님도 한분이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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