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 성령의 바른 이해
본문
성도들가운데 교회 몇 번 출석하시다가 잘 안나오시는 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 가 찾아간다던지, 연락해서 만나 그 이유를 물어보면 이렇게 대답하시는 분이 있습 니다. '목사는 사람들을 많이 알고 있기 때문에 내가 하는 일에 도움을 받을 수 있 을 것이다' 라는 생각을 해서 교회에 나와봤는데 아무리 다녀도 별도움이 되지 안 기 때문에 목사도 별 수 없다는 생각으로 출석을 포기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호와 하나님이 목사를 훈련시켜서 교회로 보내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목회자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잘 모르면 인간적으로 목사를 생각하게 됩니다. 목사는 인간적인 만족을 줄 수 있는 존재가 못됩니다. 목회자를 여호와 하나님께서 보내 주신 목적은 인간의 그 어떤 힘보다도 상상할 수 없고 비교할 수 없는 큰 힘을 갖 도록 도와주기 위함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아무리 좋은 자동차가 있다고 할지라도 그 자동차에 대해서 알지 못하면 그것이 오히려 우리에게 큰 짐이 될 수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어느날 자고 일 어났는데 너무나 좋은 자동차를 주셨다고 생각해 봅시다. 자동차를 왜 주셨는지 모 른다면 우리는 자동차를 앞에 두고 아주 신기해서 매일 쳐다보거나, 때론 앞에서 끌어보기도 하고 뒤에서 밀어보기도 하며 또 자동차를 두고 절을 할 수가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태양을 주시고 달을 주셨습니다. 또 별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 주신 목적을 모르면 달을 쳐다보고 절을하는 사람들이 생기게 되는 것입 니다.
우리는 언제나 무엇에 대하여 알지 못하면 그것에 대해서 손해보는 일이 참 많습 니다.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을 믿지만 무작정 믿으면 맹신이 됩니다. 인격적이시고 좋으신 여호와 하나님이지만 여호와 하나님중심 신앙이 아니고 내 중심의 신앙을 가질 때 고귀한 기독교 의 신앙이라 할지라도 형평없는 종교로 전략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모든 종교는 이러한 인간의 추악한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신이 존재하고 있으며, 이것을 노리고 그 종교를 찾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분명히 이러한 종교와는 구별됩니다. 기독교 신앙은 나의 인간적 욕구를 채우기 위한 내 중심의 신앙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완전한 뜻을 깨닫고 나를 비워서 그 뜻을 받아들이게 하는 종교가 기독교입니다. 거기에만이 진정한 행복이 있고 진정한 만족이 있습니다.
년초에 여호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곧 우리의 지혜요, 여호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우리의 능 력이요, 여호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곧 우리의 행복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내가 하나 님을 알수록 지혜로와 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을 모르면 내가 지혜로운 것 같아도 바보요, 여호와 하나님을 모르면 굉장히 힘이 있는 것 같아도 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모르면 진정한 행복을 맛볼 수가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알면 그 여호와 하나님을 믿지 아니할 수가 없고, 우리의 참신으로 받아들이지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더나아가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에 대해서도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알면 하 나님의 모든 것을 늘 누릴 수가 있지만, 모르면 오히려 성령을 내가 끌고 다니는 행동을 하게 됩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우리를 위해 오신 예수를 통해서 참행복을 누리지 못하고, 오히려 그 예수님을 끌고 다니시는 분들이 더러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왜 오셨으며 성령님이 왜 오셨는지, 그것을 우리가 모를 때 그렇게 되어 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은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항상 해 볼 필요 가 있습니다.
지난주에 성령은 완전한 인격을 가지신 여호와 하나님의 영이며, 그리스도의 영이라고 말 씀드렸습니다. 육신으로 오신 그리스도께서 다른 보혜사 곧 성령을 너희에게 주리 라고 말씀하셨는데, 성령은 육이 아니라 영으로 다시 오신 예수 그리스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지, 정, 의를 지닌 완전한 인격자이십니다.
성령은 인간의 마음을 감찰하시며, 우리의 형편없는 모습을 보시고, 근심하시고 탄 식하시면서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들을 채워주시는 분입니다. 이러한 성령의 역사 를 우리가 받아들여 성령이 내주하면 우리는 가장 비인격적인 존재에서 인격 적인 존재로 바뀌어 지게됩니다.
오늘날 세상을 바라보면 인간이 너무나 비인격적인 존재임을 발견합니다. 매스컴에 보도되는 내용을 보십시오. 요즘은 상류층의 옷로비 사건으로 떠들썩합니다. 물론 부정적이고 잘못된 것을 찾아내서 드러낸다면 온전한 것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비인격적이라는 것은 완전한 인격자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떠난 상태를 말합니다. 온전한 인격은 완전한 인격이신 여호와 하나님과 연합될 때 만이 가능합니다.
우리의 어떠함이 온전한 인격이 아니라 완전한 인격자이신 그리스도께서 내 삶을 통해 표현되어질 때 이것이 온전한 인격입니다.
인간은 여호와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며 열정을 소모합니다.
바른 인격자라면 남을 판단할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자기를 뒤돌아보면서 자기의 일들을 성실히 해 가기가 바쁠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그렇게 살아가면 다른 문제 는 다 해결되어집니다. 그러나 서로 공방을 해나가면 어떠한 문제도 해결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 여호와 하나님이 없이 자신이 여호와 하나님이 되어 사는 가장 비인격적인 우리들 에게 역사하셔서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게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채워서 삶속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계속 들어나도록 하는 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지난 한주간 뒤돌아 보시면서 나는 인격적인 삶이었는가 아니면 비인격적인 삶이 었는가를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성령이 함께 하셨다면 여러분은 인격적인 삶을 사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함께하지 않고 여러분이 중심이 되어서 살았다면 비인격적인 일들이 많이 들어났을 것입니다.
오늘 말씀드릴 내용은 '성령이 무엇이냐'라는 것입니다.
본문에서는 성령을 '보혜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말로 보혜사라고 번역을 하고 있고, 헬라어로는 '파라클레토스'란 단어로 '~로부터 와서 옆에서 도와 준다 '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영어로는 prescript란 단어를 쓰는데 뜻은 '보호 자','변호자'란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또 '교사', '가르친다', '옆에서 변호해 주고 도와준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더 인격적인 존재로 쓰시며, 부족하지 만 여호와 하나님의 인격적인 형상이 드러나게 하기 위해서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완전한 인격을 가지신 예수님이 이땅에 인간의 몸으로 오셨습니다. 그분의 모든 가 르침은 완전한 인격에 대한 가르침이며, 그분의 모든 삶의 표현이 완전한 인격에 대한 표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예수를 눈앞에 두고도, 또한 그의 가르침을 받고도 전혀 깨닫지 못한 제자들은 늘 근심했고, 염려했고, 서로 시기하고 판단 했 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이들을 도우시려고 다시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셨다는 것입니다.
보혜사는 변호사처럼 우리를 도우시는 분입니다. 변호사는 법적인 전문용어를 잘 알고 있습니다. 법원에 가면 우리가 당황해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법적 전문 용어 를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신비로운 말씀입니다. 세상의 지식만으로는 성경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신비로운 영이 도와줄 때 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육은 육의 눈으로 판단하고 받아 들일 수 있지만 영의 것은 영으로만 깨달을 수 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역사가 아니면 절대로 성경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 크신 선물을 우리에게 주셔도 우리의 삶 가운데 아무런 유익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교회와서 성경을 많이 듣고 배워가지만 세상에 가면 이것과 무관한 삶을 살 때 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이 성경은 죽어있는 말씀이나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오셔서 우리에게 이 신비로운 전문용어들을 깨닫게 해 주시고, 해석해 주 시고 삶가운데 그 말씀을 계속 들려주셔서 적용하도록 해주시는 것입니다.
이제 성도들은 세상의 소리에 너무 민감하지 마시고 성령에 민감할 필요가 있습니다. 민감하면 성령은 언제나 우리에게 말씀해 줍니다.
내게 욕심이 꽉 차있으면 무엇을 가져도 만족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말씀은 깨 닫게 해 주십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 임이요" 라 는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이 말씀한마디로 다 이루어 주셨습니다.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을 다 말씀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심령이 가난해 지지 않는한 세상을 다 주어도 만족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앞에 내가 죄인임을 알고 나를 비우면 비우는 만큼 정말 천국이 여기에 있구나 하는 것을 체 험할 수 있습니다. 무한한 것들이 계속계속 내게 채워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말씀 26절에 보혜사 성령이 '진리를 가르치시고 진리를 생각나게 한다'.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진리'를 헬라어로 '로거스'라고 합니다. 이미 이루어진 말씀입니다. 이것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성령은 이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태초에 여호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 느니라"는 이 말씀은 진리이지만 이성으로는 아무리 알려고 노력해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령의 도움을 받기 때문에 그 말씀이 와닿고 믿어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령의 역사가 없으면 같은 말씀이라도 절대로 믿어지지 않습 니다.
오늘 말씀은 핵심은 성령이 이 말씀을 가르쳐 주시고 진리를 생각나게도 하신다는 것입니다. 앞의 것은 기록된 말씀이요, 이 기록된 말씀은 그리스도를 설명하고 표 현하는 것입니다. 이 진리란 말은 현대적인 말씀입니다. 이것은 주께서 우리의 삶 속에서 순간순간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가지고 다니며 읽어도 삶속에서 이 말씀을 순간순간 듣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어떤 크리스찬이 가족들과 함께 식당에 식사를 하러 갔습니다. 그런데 식당입구에 실직당한 노숙자 한 사람이 구걸하고 있었습니다. 음식을 먹으려고 앉았는데 그 사 람이 자꾸 생각이 나며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음성이 들립니다. 그래서 1만원짜리 대신 5천원짜리로 먹고, 나가서 빵을 사서 그사람에게 주었습니다. 성령은 성령의 음성을 듣고 실천해 가면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성령의 역 사는 계속 이루어 집니다. 이 실직자가 빵을 받아서 먹으려고 하는데 바로 앞에서 신문을 파는 소년이 생각나서 도저히 혼자 먹을 수가 없었습 니다. 그래서 그 반을 떼서 아이를 위해 남겨두었습니다. 나머지 반을 맛있게 먹고 있는데, 마침 길잃은 개가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이 개가 먹고 싶어서 침을 흘리며 쳐다봅니다. 그래서 도저히 혼자 먹을 수가 없어서 그것을 조금 떼어서 개에게 주었습니다. 개가 고마 웠는지 꼬리를 설렁설렁 흔들면서 그 사람옆에 앉아 있습니다. 외로운데 잘됐다 싶 어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쳐다보니 목걸이가 있는데, 주인의 주소가 적혀져 있습니다. 주인을 찾아 주어야겠다는 생각으로 그 개를 끌고 물어 물어 주인을 찾아 갔습 니다. 찾아 갔는데 그 주인이 큰 회사를 경영하는 기업주였습니다. 실직이 끝났겠 어요 안 끝났겠어요
민감하게 세상소리에 귀를 귀울여서 어렵게 어렵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세상에 들 리는 소리는 우리를 계속 불안하게 하고 어렵게 만듭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을 듣고 쫓아가면 역사는 일어납니다. 평안을 가져다 줍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 으라" 라고 말씀해도 이들은 계속 근심하고 걱정했습니다.
보혜사 성령이 너희에게 와서 진리에 대해서 가르쳐 주시고 진리에 대하여 말씀해 주실 때 그것을 바로 배우고 들어서 순종해 가라. 그러면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 을 성령이 주실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살아가면서 불안하십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시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너무 무지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일에 좀 느려지십시오. 세상에 민감한 것은 자아가 너무 살아 있어서 입니다. 높이 치켜세운 자아의 안테나를 꺽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깨달으면 나를 드러낼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오히려 내 존 재가 얼마나 추한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럴때 온전하신 여호와 하나님앞에 내 자신을 드 리지 아니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신앙생활이 힙듭니까 우리가 주인이 되어서 여호와 하나님을 끌고 다니면 힘들 수밖에 없 습니다. 보혜사 성령은 우리 옆에서 우리를 끌어주시고 밀어주시며 도와주십니다.
여러분은 순간순간 어떤 일이 있을 때마다 성령님에게 '이것을 어떻게 할까요 내게 말씀해 주십시오'라고 귀를 기울입니까 귀를 귀울이면 분명히 말씀해 주십니다. 우리는 자신의 생각과 판단, 그리고 세상의 방법대로 다 해놓고 걱정 하며, 기도해 달라고 합니다.
여러분! 목사가 기도해야 역사가 일어나는 것 아닙니다. 제가 아무리 여러분을 위해서 기도해 주어도 여러분이 예수를 구주로 받아들이는 마음이 없으면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제가 이 말씀을 강조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5월을 마지막 보내고 6월이 시작되었습 니다.
우리교회는 오랫동안 말씀을 묵상하기 위해 성경 다독 대행진을 해왔습니다. 모든 성도들이 참 열심히 읽으셨습니다. 성경을 열심히 읽는 것도 성령의 도움없이는 안 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 성경을 열심히 읽으십시오. 읽을 때 단어 하나 하나에 열중해서 읽으십시오. 단어 하나 하나에 모든 것이 다 들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예수란 단어안에 모든 것이 다 들어 있습니다. 깨달으면 예수 이름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기독교를 충분히 이해하고 구원의 은총을 이루면서 영원 한 생명 가운데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읽되, 삶가운데 읽고 배운 내용들을 들어내십시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우리가 성령의 음성을 듣고 성령이 우리와 함께 함을 느끼기만 한다면 겁날 것이 없습니다. 가난에서도 해방될 것입니다. 절망가운데서 새로운 소망을 갖게 될 것입니다. 오늘부터 시작하십시오. 정말 성령께서 도와주셔서 내 이번 성경을 읽을 때 가르쳐 달라고 기도하면서 읽으십시오. 그리고 삶가운데 무엇을 하든지, 어디에 있던지 늘 역사하시는 성령님께서 이 말씀이 기억나게 하셔서 내 방법대로 살아 가 지 않고 주님이 뜻하시는 방법을 통해서 나도 살고 너도 살려 정말 하늘을 이땅에 심는 그런 삶을 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여호와 하나님이 목사를 훈련시켜서 교회로 보내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목회자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잘 모르면 인간적으로 목사를 생각하게 됩니다. 목사는 인간적인 만족을 줄 수 있는 존재가 못됩니다. 목회자를 여호와 하나님께서 보내 주신 목적은 인간의 그 어떤 힘보다도 상상할 수 없고 비교할 수 없는 큰 힘을 갖 도록 도와주기 위함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아무리 좋은 자동차가 있다고 할지라도 그 자동차에 대해서 알지 못하면 그것이 오히려 우리에게 큰 짐이 될 수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어느날 자고 일 어났는데 너무나 좋은 자동차를 주셨다고 생각해 봅시다. 자동차를 왜 주셨는지 모 른다면 우리는 자동차를 앞에 두고 아주 신기해서 매일 쳐다보거나, 때론 앞에서 끌어보기도 하고 뒤에서 밀어보기도 하며 또 자동차를 두고 절을 할 수가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태양을 주시고 달을 주셨습니다. 또 별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 주신 목적을 모르면 달을 쳐다보고 절을하는 사람들이 생기게 되는 것입 니다.
우리는 언제나 무엇에 대하여 알지 못하면 그것에 대해서 손해보는 일이 참 많습 니다.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을 믿지만 무작정 믿으면 맹신이 됩니다. 인격적이시고 좋으신 여호와 하나님이지만 여호와 하나님중심 신앙이 아니고 내 중심의 신앙을 가질 때 고귀한 기독교 의 신앙이라 할지라도 형평없는 종교로 전략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모든 종교는 이러한 인간의 추악한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신이 존재하고 있으며, 이것을 노리고 그 종교를 찾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분명히 이러한 종교와는 구별됩니다. 기독교 신앙은 나의 인간적 욕구를 채우기 위한 내 중심의 신앙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완전한 뜻을 깨닫고 나를 비워서 그 뜻을 받아들이게 하는 종교가 기독교입니다. 거기에만이 진정한 행복이 있고 진정한 만족이 있습니다.
년초에 여호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곧 우리의 지혜요, 여호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우리의 능 력이요, 여호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곧 우리의 행복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내가 하나 님을 알수록 지혜로와 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을 모르면 내가 지혜로운 것 같아도 바보요, 여호와 하나님을 모르면 굉장히 힘이 있는 것 같아도 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모르면 진정한 행복을 맛볼 수가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알면 그 여호와 하나님을 믿지 아니할 수가 없고, 우리의 참신으로 받아들이지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더나아가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에 대해서도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알면 하 나님의 모든 것을 늘 누릴 수가 있지만, 모르면 오히려 성령을 내가 끌고 다니는 행동을 하게 됩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우리를 위해 오신 예수를 통해서 참행복을 누리지 못하고, 오히려 그 예수님을 끌고 다니시는 분들이 더러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왜 오셨으며 성령님이 왜 오셨는지, 그것을 우리가 모를 때 그렇게 되어 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은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항상 해 볼 필요 가 있습니다.
지난주에 성령은 완전한 인격을 가지신 여호와 하나님의 영이며, 그리스도의 영이라고 말 씀드렸습니다. 육신으로 오신 그리스도께서 다른 보혜사 곧 성령을 너희에게 주리 라고 말씀하셨는데, 성령은 육이 아니라 영으로 다시 오신 예수 그리스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지, 정, 의를 지닌 완전한 인격자이십니다.
성령은 인간의 마음을 감찰하시며, 우리의 형편없는 모습을 보시고, 근심하시고 탄 식하시면서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들을 채워주시는 분입니다. 이러한 성령의 역사 를 우리가 받아들여 성령이 내주하면 우리는 가장 비인격적인 존재에서 인격 적인 존재로 바뀌어 지게됩니다.
오늘날 세상을 바라보면 인간이 너무나 비인격적인 존재임을 발견합니다. 매스컴에 보도되는 내용을 보십시오. 요즘은 상류층의 옷로비 사건으로 떠들썩합니다. 물론 부정적이고 잘못된 것을 찾아내서 드러낸다면 온전한 것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비인격적이라는 것은 완전한 인격자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떠난 상태를 말합니다. 온전한 인격은 완전한 인격이신 여호와 하나님과 연합될 때 만이 가능합니다.
우리의 어떠함이 온전한 인격이 아니라 완전한 인격자이신 그리스도께서 내 삶을 통해 표현되어질 때 이것이 온전한 인격입니다.
인간은 여호와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며 열정을 소모합니다.
바른 인격자라면 남을 판단할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자기를 뒤돌아보면서 자기의 일들을 성실히 해 가기가 바쁠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그렇게 살아가면 다른 문제 는 다 해결되어집니다. 그러나 서로 공방을 해나가면 어떠한 문제도 해결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 여호와 하나님이 없이 자신이 여호와 하나님이 되어 사는 가장 비인격적인 우리들 에게 역사하셔서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게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채워서 삶속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계속 들어나도록 하는 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지난 한주간 뒤돌아 보시면서 나는 인격적인 삶이었는가 아니면 비인격적인 삶이 었는가를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성령이 함께 하셨다면 여러분은 인격적인 삶을 사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함께하지 않고 여러분이 중심이 되어서 살았다면 비인격적인 일들이 많이 들어났을 것입니다.
오늘 말씀드릴 내용은 '성령이 무엇이냐'라는 것입니다.
본문에서는 성령을 '보혜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말로 보혜사라고 번역을 하고 있고, 헬라어로는 '파라클레토스'란 단어로 '~로부터 와서 옆에서 도와 준다 '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영어로는 prescript란 단어를 쓰는데 뜻은 '보호 자','변호자'란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또 '교사', '가르친다', '옆에서 변호해 주고 도와준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더 인격적인 존재로 쓰시며, 부족하지 만 여호와 하나님의 인격적인 형상이 드러나게 하기 위해서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완전한 인격을 가지신 예수님이 이땅에 인간의 몸으로 오셨습니다. 그분의 모든 가 르침은 완전한 인격에 대한 가르침이며, 그분의 모든 삶의 표현이 완전한 인격에 대한 표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예수를 눈앞에 두고도, 또한 그의 가르침을 받고도 전혀 깨닫지 못한 제자들은 늘 근심했고, 염려했고, 서로 시기하고 판단 했 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이들을 도우시려고 다시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셨다는 것입니다.
보혜사는 변호사처럼 우리를 도우시는 분입니다. 변호사는 법적인 전문용어를 잘 알고 있습니다. 법원에 가면 우리가 당황해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법적 전문 용어 를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신비로운 말씀입니다. 세상의 지식만으로는 성경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신비로운 영이 도와줄 때 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육은 육의 눈으로 판단하고 받아 들일 수 있지만 영의 것은 영으로만 깨달을 수 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역사가 아니면 절대로 성경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 크신 선물을 우리에게 주셔도 우리의 삶 가운데 아무런 유익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교회와서 성경을 많이 듣고 배워가지만 세상에 가면 이것과 무관한 삶을 살 때 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이 성경은 죽어있는 말씀이나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오셔서 우리에게 이 신비로운 전문용어들을 깨닫게 해 주시고, 해석해 주 시고 삶가운데 그 말씀을 계속 들려주셔서 적용하도록 해주시는 것입니다.
이제 성도들은 세상의 소리에 너무 민감하지 마시고 성령에 민감할 필요가 있습니다. 민감하면 성령은 언제나 우리에게 말씀해 줍니다.
내게 욕심이 꽉 차있으면 무엇을 가져도 만족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말씀은 깨 닫게 해 주십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 임이요" 라 는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이 말씀한마디로 다 이루어 주셨습니다.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을 다 말씀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심령이 가난해 지지 않는한 세상을 다 주어도 만족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앞에 내가 죄인임을 알고 나를 비우면 비우는 만큼 정말 천국이 여기에 있구나 하는 것을 체 험할 수 있습니다. 무한한 것들이 계속계속 내게 채워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말씀 26절에 보혜사 성령이 '진리를 가르치시고 진리를 생각나게 한다'.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진리'를 헬라어로 '로거스'라고 합니다. 이미 이루어진 말씀입니다. 이것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성령은 이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태초에 여호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 느니라"는 이 말씀은 진리이지만 이성으로는 아무리 알려고 노력해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령의 도움을 받기 때문에 그 말씀이 와닿고 믿어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령의 역사가 없으면 같은 말씀이라도 절대로 믿어지지 않습 니다.
오늘 말씀은 핵심은 성령이 이 말씀을 가르쳐 주시고 진리를 생각나게도 하신다는 것입니다. 앞의 것은 기록된 말씀이요, 이 기록된 말씀은 그리스도를 설명하고 표 현하는 것입니다. 이 진리란 말은 현대적인 말씀입니다. 이것은 주께서 우리의 삶 속에서 순간순간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가지고 다니며 읽어도 삶속에서 이 말씀을 순간순간 듣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어떤 크리스찬이 가족들과 함께 식당에 식사를 하러 갔습니다. 그런데 식당입구에 실직당한 노숙자 한 사람이 구걸하고 있었습니다. 음식을 먹으려고 앉았는데 그 사 람이 자꾸 생각이 나며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음성이 들립니다. 그래서 1만원짜리 대신 5천원짜리로 먹고, 나가서 빵을 사서 그사람에게 주었습니다. 성령은 성령의 음성을 듣고 실천해 가면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성령의 역 사는 계속 이루어 집니다. 이 실직자가 빵을 받아서 먹으려고 하는데 바로 앞에서 신문을 파는 소년이 생각나서 도저히 혼자 먹을 수가 없었습 니다. 그래서 그 반을 떼서 아이를 위해 남겨두었습니다. 나머지 반을 맛있게 먹고 있는데, 마침 길잃은 개가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이 개가 먹고 싶어서 침을 흘리며 쳐다봅니다. 그래서 도저히 혼자 먹을 수가 없어서 그것을 조금 떼어서 개에게 주었습니다. 개가 고마 웠는지 꼬리를 설렁설렁 흔들면서 그 사람옆에 앉아 있습니다. 외로운데 잘됐다 싶 어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쳐다보니 목걸이가 있는데, 주인의 주소가 적혀져 있습니다. 주인을 찾아 주어야겠다는 생각으로 그 개를 끌고 물어 물어 주인을 찾아 갔습 니다. 찾아 갔는데 그 주인이 큰 회사를 경영하는 기업주였습니다. 실직이 끝났겠 어요 안 끝났겠어요
민감하게 세상소리에 귀를 귀울여서 어렵게 어렵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세상에 들 리는 소리는 우리를 계속 불안하게 하고 어렵게 만듭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을 듣고 쫓아가면 역사는 일어납니다. 평안을 가져다 줍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 으라" 라고 말씀해도 이들은 계속 근심하고 걱정했습니다.
보혜사 성령이 너희에게 와서 진리에 대해서 가르쳐 주시고 진리에 대하여 말씀해 주실 때 그것을 바로 배우고 들어서 순종해 가라. 그러면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 을 성령이 주실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살아가면서 불안하십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시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너무 무지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일에 좀 느려지십시오. 세상에 민감한 것은 자아가 너무 살아 있어서 입니다. 높이 치켜세운 자아의 안테나를 꺽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깨달으면 나를 드러낼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오히려 내 존 재가 얼마나 추한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럴때 온전하신 여호와 하나님앞에 내 자신을 드 리지 아니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신앙생활이 힙듭니까 우리가 주인이 되어서 여호와 하나님을 끌고 다니면 힘들 수밖에 없 습니다. 보혜사 성령은 우리 옆에서 우리를 끌어주시고 밀어주시며 도와주십니다.
여러분은 순간순간 어떤 일이 있을 때마다 성령님에게 '이것을 어떻게 할까요 내게 말씀해 주십시오'라고 귀를 기울입니까 귀를 귀울이면 분명히 말씀해 주십니다. 우리는 자신의 생각과 판단, 그리고 세상의 방법대로 다 해놓고 걱정 하며, 기도해 달라고 합니다.
여러분! 목사가 기도해야 역사가 일어나는 것 아닙니다. 제가 아무리 여러분을 위해서 기도해 주어도 여러분이 예수를 구주로 받아들이는 마음이 없으면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제가 이 말씀을 강조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5월을 마지막 보내고 6월이 시작되었습 니다.
우리교회는 오랫동안 말씀을 묵상하기 위해 성경 다독 대행진을 해왔습니다. 모든 성도들이 참 열심히 읽으셨습니다. 성경을 열심히 읽는 것도 성령의 도움없이는 안 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 성경을 열심히 읽으십시오. 읽을 때 단어 하나 하나에 열중해서 읽으십시오. 단어 하나 하나에 모든 것이 다 들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예수란 단어안에 모든 것이 다 들어 있습니다. 깨달으면 예수 이름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기독교를 충분히 이해하고 구원의 은총을 이루면서 영원 한 생명 가운데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읽되, 삶가운데 읽고 배운 내용들을 들어내십시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우리가 성령의 음성을 듣고 성령이 우리와 함께 함을 느끼기만 한다면 겁날 것이 없습니다. 가난에서도 해방될 것입니다. 절망가운데서 새로운 소망을 갖게 될 것입니다. 오늘부터 시작하십시오. 정말 성령께서 도와주셔서 내 이번 성경을 읽을 때 가르쳐 달라고 기도하면서 읽으십시오. 그리고 삶가운데 무엇을 하든지, 어디에 있던지 늘 역사하시는 성령님께서 이 말씀이 기억나게 하셔서 내 방법대로 살아 가 지 않고 주님이 뜻하시는 방법을 통해서 나도 살고 너도 살려 정말 하늘을 이땅에 심는 그런 삶을 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