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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보혜사 성령님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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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작년에 캐나다 토론토에 있을 때 그랜드 캐논 종합대학에서 물리학과 종교철학을 가르치고 있는 최 형 섭 교수님을 만났고 자기가 직접 썼던 책 '성령의 학교'란 책을 사인을 하면서 제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전에 대충 한번 그 책을 보았지만 앞으로 성령님을 관해서 함께 말씀을 나누기 때문에 그 책을 다시 꺼내들고 열심히 읽었습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책을 보고 있습니다. 여러분께서도 성령님의 관심이 있으시면 요즈음에 그런 책들이 참 많습니다. 한번 읽어보시면 성령님과 더불어 함께 사는 생활이 얼마나 복된 것인가 알게 될 것입니다.
그 분이 서두에 이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여러 해전 여호와 하나님의 사역에 전 삶을 바쳐오신 어떤 우리 집을 방문하셨습니다. 그 분은 우리와 함께 가정 예배를 드리면서 야곱의 우물가에서 예수님을 만난 사마리아의 여인에 대해 말씀을 하시기 시작했습니다. 말씀을 계속하다가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하신 말씀에 이르렀습니다. "누구든지 이 물을 마시는 자 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한복음 4 : 13 - 14절 말씀입니다. 이 대목에서 그 분은 머리를 떨군 채 긴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를 이토록 오래 믿어왔는데 왜 아직도 계속해서 목말라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혼자 독백을 했습니다. 그 분은 이 약속하심 속에서 영원토록 솟아나는 샘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최 형 섭 교수님에게 물었다는 것입니다. 역시 이 교수님도 모태신앙이고 열심히 교회를 다녔습니다. 제가 거듭난 교인이고 건강한 교인인 줄을 알고 미국에 유학까지 갔습니다. 그는 폐결핵에 걸렸고 공부는 고사하고 죽음의 문턱에 이르렀을 때 그 분은 성령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분은 이 책을 쓰기를 자기 집에 찾아오신 이 손님처럼, 자기 자신처럼, 오래 교회를 다녔지만 아직도 목말라하고 갈증을 느끼고 갈등 속에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있다면 그분들에게 간증으로 이 책을 쓰고 있습니다.
모든 자연의 생물이 창조자가 세웠던 원칙에 순응할 때, 생성하고 번성하고 열매를 맺습니다. 우리 신앙에도 법칙이 있습니다. 두 개의 중요한 법칙이 있는데 우리가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골고다의 언덕에 세워진 십자가의 원리를 받아들여야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를 믿었을 때 우리의 죄를 사함을 받습니다. 또 하나의 원리가 있습니다. 마가의 다락방에 임재하신 성령님이 오시는 오순절의 사건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으려면 십자가를 믿어야 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능력의 삶을 살려면 오순절의 사건을 적용을 해보면 이 두 가지의 원리를 기도를 잘하실 때 능력있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제 앞으로 6월 한달 동안 계속해서 성령이 어떤 분이시고, 우리는 어떻게 하면 그분과 동행할 수 있겠는지, 이런 부분에서 함께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요한복음 14장은 대단히 중요한 말씀인데 예수님이 사랑하는 제자들을 놓고 마지막 고별설교입니다. 그 가운데 예수님께서 중요한 약속을 몇 가지하고 계십니다. 먼저 6절에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에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약속입니다. 12절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예수님 처럼 살 수 있다는 겁니다. 주님처럼 능력 있는 삶을 살수 있다는 겁니다. 주님처럼 때로는 기적도 할 수 있다는 겁니다. 13-14절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내게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을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무엇이든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십시오. 주님은 우리의 말을 따라서 그대로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명령한대로 주님이 마치 종처럼 시행하시겠다고 그렇게 약속을 하셨습니다. 15절에 보면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예수님을 사랑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주님의 말씀을 지키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21절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사랑의 언약입니다.
여러분, 사랑이 쉽습니까 어렵습니까 사랑을 해본 사람만이 압니다. 사랑이 인간의 삶 가운데 가장 어렵습니다. 사랑만 마스터하만 모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완성할 수 있는 자라고 그랬습니다. 사랑이 얼마나 어렵습니까 성경은 말합니다.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그게 가능할 말입니까 어렵습니다. 그런데 성령 안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게 되면 나도 모르게 미워했던 사람이 사랑으로 시작하고 원망했던 사람이 감사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능력을 주시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또 중요한 약속은 16절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다른 보혜사를 우리에게 보내주겠다고 약속을 합니다. 26절에도 동일한 약속이 되어있습니다. 이토록 대단한 약속이 있는데 중요한 것은 약속은 믿는 자에게만 효력이 있습니다. 믿는 사람에게 위로가 됩니다. 그리고 소망이 있습니다. 불행한 것은 3년 동안 예수를 따랐던 제자들이 이와 같은 놀라운 주님의 약속을 믿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16:6 "도리어 내가 이 말을 하므로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였도다" 예수님의 설교의 시작이 14:1절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가 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16:7절에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14:28 "내가 갔다가 너희에게로 온다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나니 나를 사랑하였더면 나의 아버지께로 감을 기뻐하였으리라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라" 16:6절 "도리어 내가 이 말을 하므로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함이라" 근심하지 말라고 하면 더 근심하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면 더 두려워하고, 믿으라고 말하면 의심으로 가득 차고, 이게 제자들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믿기를 바랍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자에게 더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의 결단인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취미 생활을 하나를 하시더라도 결단이 따릅니다. 먼저 시간을 투자해야 되고, 거기에 따른 돈도 투자를 하고, 땀을 흘리면서 노력을 투자해야, 작은 취미생활도 누릴 수가 있습니다. 신앙은 하나의 투자이고 결단이에요. 내 운명과 내 장래가 달린 이 중요한 일에 믿기로 결단하십시오. 우리 가운데는 믿으려고 죽으려 결단한 것이 아니라 의심하려고 결단하신 분들이 참 많아요. 믿으려고 애를 쓰려는 것이 아니라 안 믿으려고 애를 쓰는 분들이 참 많아요. 믿으십시오. 믿으면 마음의 평안이 올 것입니다.
결단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16:7에 " 내가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제자들에게 새로운 은혜를 주시기 위해서 예수님이 떠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만일에 예수님도 계시고 오실 성령을 기다렸다면 두 분을 놓고 제자들은 갈등을 하셨을 거예요. 예수님이 계시는데 굳이 성령이 필요 하느냐, 아무리 성령을 받으라고 말했지만 제자들은 주님만 바라보면서 성령을 사모하지를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제자들이 성령을 받는데 주님이 계신다는 것이 방해가 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떠나시겠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리라" 주님이 계실 때 얼마나 제자들에게 도움이 되었습니까 바다를 건너게 하고 보리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게 하고 좋은 말씀을 가르쳐주시고 바리새인들에게 비난을 받을 때 예수님이 제자들을 보호해주시고 변명해주시고 얼마나 사랑하셨습니까 바로 그 예수님이 보혜사이셨습니다. 그런데 보혜사이신 예수님은 떠나가시고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보내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새로운 은혜를 받기 위해서는 예수님도 제자들을 떠나시겠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게 믿음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성령을 기다리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러나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이 임재하신 이후에는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지금은 기다릴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 이미 성령이 와 계십니다. 성령이 나를 찾아오셨습니다. 내 마음 앞에까지 왔으니 예수님을 영접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령을 영접하시기를 바랍니다. 성령을 영접하시기 위해서는 결단하십시오. 떠나보낼 분은 떠나 보내십시오. 예수님도 떠나보내야 제자들이 성령을 영접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좋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제자들에게 더 좋으신 성령을 주시기 위해서 나는 떠나가야 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가장들이 집을 한번 1년 정도 떠나보십시오. 그래도 가족들이 잘 사나 못 사나 대개 많은 남성들이 내가 없으면 못 살겠지, 대단한 긍지를 가지고 사는데 내가 돈을 못 벌어다주면 굶고 살겠지, 학교도 못 다니겠지, 이러고 생각하는데 그거는 교만한 마음입니다. 떠나가도 잘 살아요. 오히려 가장이 있으므로 행복하게 살아야 할 아내에게 거침돌이 되는 수가 많고 잘 성장하는 자녀에게 거침돌이 되는 가장도 많아요. 그 좋으신 예수님도, 떠나서는 안 된다고 붙잡는 예수님도 더 좋은 은혜와 축복을 위해서 떠나가시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함이라" 떠나 보낼 것은 빨리 떠나 보내십시오. 그래야 좋은 것이 온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지난 금요 기도회를 하면서 아프리카 캐나에 가서 15년이 넘도록 선교하신 이 정환 선교사님의 태잎을 간증으로 들었습니다. 그분의 재미있는 감동적인 여러 가지 이야기 가운데 제가 충격으로 받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분이 후배 선교사님들에게 꼭 부탁하는 말이 "너희들 선교지로 가려면 선교 후원금 끊고 1년만 살아보아라. 여호와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는지를 체험하고 싶으면 선교후원금을 끊고 생활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는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어느 교회가 파송해서 선교지를 갔는데 15년 동안에 2달만 보내고 안 보내주더라는 겁니다. 얼마나 황당하겠습니까 그러니 그때부터 오직 누구만 의지하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하늘을 바라보고 만나를 기다리듯이 날마다 날마다 만나를 기다리는데 15년 한끼도 굶기는 적이 없으시고 15년 동안 돈이 없어서 살림을 못하는 적이 없도록 여호와 하나님이 정확하게 채워주셨다는 겁니다. 정말 여호와 하나님이 살아 계시고 나와 함께 계시고 도우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체험하려면 의지했던 인간의 관계도 한번 끊어보라는 것입니다. 때로는 남편도, 아내도, 자식도, 좀 떼어보내고 고독하게 홀로 나와 여호와 하나님 사이에서 여호와 하나님만 기다려보라는 뜻이에요. 그러면 정말 여호와 하나님이 도와주시나 안 도와주시나 여호와 하나님은 사람이 도와주시는 것보다도 더 정확하고 더 좋게 도와주심을 믿습니다. 우리를 그렇게 도와주시려고 하시려고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주시겠다고 예수님이 약속하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봉독한 말씀을 보면 보혜사 성령님이 오면 어떻게 우리를 도와주시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16절에 보면 그 분의 이름이 보혜사라고 하셨습니다. "그분이 오시면 너희와 함께 영원히 함께 하실 것이다" 17절 "그분은 진리의 영이시다 그분이 오면 내가 누구인지 너희로 하여금 알게 할 것이다" 18절 "너희를 고아나 과부같이 홀로 두지 않을 것이다" 19절 "주님을 보여 주실 것이다 예수님이 영원히 사는 것처럼 너희도 영원히 살 것이다" 예수님을 보고싶으십니까 먼저 성령님을 만나십시오. 성령님을 체험하시면 예수님을 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믿음 없는 눈으로 성령 없는 인간의 시각으로 주님을 보려고 하니까 볼 수가 있나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하니까 들려지지가 않아요. 거부감만 생겨요. 주님을 사랑하라 그러면 나의 계명을 지키게 될 것이다. 계명을 지킴으로 사랑을 터득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다보면 그분의 모든 말씀이 달콤하게 귀로 들려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도 마음대로 못합니다. 내 안에 성령이 오시면 사랑이 생겨요. 주님을 사랑하고 싶고 교회를 사랑하고 싶고 믿는 성도를 사랑하게 됩니다. 우리는 성령의 도움이 없이는 신앙생활을 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사랑하다보면 교회에 나오는 이유가 없어요. 주일이니까 가고, 수요일이니까 가고, 예배드리니까 가고 그렇지를 않아요. 시도 때도 없이 교회에 와있는 거예요. 오전에도 오후에도 안가요. 이유를 물어보면 이유가 없어요. 물론 이유가 댈 수가 있어요. 그런데 사랑한 다음에 나중에 사랑하는 이유를 찾는 것입니다. 이유 때문에 사랑하는 것은 진짜 사랑이 아닌 것입니다. 오늘 주일이니까 교회에 가야지, 그건 조금 문제가 있어요. 교회를 갈까 말까 고민하다가 여기에 오신 분이 있습니까 월요일부터 주일을 기다린 것이에요. 주님을 사랑하게 되면 시도 때도 없이 가보고 싶고, 만져보고 싶고, 만나보고 싶은 것입니다. 이 은혜를 누가 주십니까 성령님이 주십니다. 예수님을 보게 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하십니다. 20절에 말씀하십니다. 주님이 우리 안에 계신다는 것을 누가 깨닫게 해주십니까 성령님이 깨닫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숱한 세월을 다 보낸 다음에 늙어서 깨닫지 마시고, 젊었을 때 성령 안에서 깨달을지어다. 건강할 때 성령 안에서 건강의 소중함을 깨달을지어다. 젊은 날의 부부가 얼마나 귀중한 시기인가 성령 안에서 깨달으십시오. 믿음 안에서 자녀를 키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성령 안에서 깨달으십시오. 배워서 아는 것보다 성령이 가르쳐주시면 얼마나 완벽하게 바르게 가르쳐주시는지 몰라요. 그런 점에서 성령은 최고의 스승이십니다. 이런 것 하기 위해서 성령이 우리 가운데 오셨다는 것입니다. 16절에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심이라" 본명이 성령님이시고 별명이 보혜사입니다. 보혜사라는 뜻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우리는 신앙고백을 할 때 어김없이 성령님을 믿사오며 이렇게 하는데 여러분은 그 부분에 어떤 마음을 가지고 하십니까 뜻을 알고 하십니까 사랑하는 마음으로 고백하십니까 성령의 기름부음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성령을 내가 믿사오며" 고백하십니까 모르긴 모르지만 그냥 주문 외우듯이 무심결에 하는 사람이 참 많을 것입니다.
여러분, 앞으로 성령님이 내게 얼마나 소중한 분이신가 아까 말씀을 드렸듯이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십자가의 도를 터득해야 되고, 능력 있는 성도의 삶을 살려면, 풍족한 삶을 살려면, 마가의 다락방에 오시는 오순절의 원리를 아셔야 됩니다. 이 두 가지의 원리를 아셔야만 우리가 신앙생활을 바로 할 수가 있습니다. '보혜사'라는 뜻은 여러 가지로 해석합니다 만 위로 자, 대언 자 ,동반자, 친구, 스승, 인도자, 상담 자입니다.
유태인들은 자녀교육을 할 때 체벌을 합니다. 과잉보호를 하지를 않고 훈계를 해요. 매가 집집마다 하나씩 있어서 그 매를 가지고 자녀들을 훈계합니다. 아들이 잘못했으면 아버지가 혼자 그 아들을 데리고 방으로 들어갑니다. 회초리를 가지고 아들을 때립니다. 다 때린 다음에 아버지가 나옵니다. 그러면 밖에 어머니가 반드시 기다리고 있습니다. 자식 훈계를 부부가 같이 해요. 어머니가 들어가서 매를 맞고 아파서 울고 있는 아이를 끌어안습니다. "애야, 네가 잘못했기 때문에 아버지에게 매 맞는 게 아니냐 아프지, 너를 때리는 너의 아빠도 매를 맞고 아파하는 너의 마음만큼이나 아프단다. 아빠가 너를 미워해서 때렸겠니 실수를 깨닫고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때린 거야. 매 맞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 그리고 네가 잘못한 것도 괜찮아. 네가 깨달으면 이런 것들이 좋은 교훈이 되어 가지고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어. 그리고 지금은 못 깨닫지만 너도 커서 자식을 키워보아라. 그때는 너의 아버지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것이다. 그리고 아빠가 너를 사랑한단다. 그리고 아이를 끌어 안아줍니다. " 자식을 훈계하려면 그렇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성령님을 어머니라고 부릅니다. 성령님은 나의 없어서 안될 어머니 같은 분이세요. 이 세상을 살아갈 때 힘들고 어려울 때 언제나 성령은 내 옆에 계시면서 나를 고아와 같이 버려 두지 아니하시고 영원히 나와 함께 하시겠다고 그러면서 그분은 나의 진정한 위로자가 되시겠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이 약속을 믿으십시오.
예수 믿으면 천당 갈 것을 믿으시지요. 지금 성령님이 여러분과 동행하심을 믿습니까 그런데 이게 문제라고요. 아멘은 잘하는데 나가면 근심, 걱정, 불안, 초조, 똑 같아요. 왜 십자가의 능력은 믿으면서 성령의 약속은 믿지를 않습니까 우리의 갈등이 여기에서 오는 것입니다. 앞으로 강조하는 것은 십자가의 도만 도통하지 마시고 보혜사 성령님을 통해서 통달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세상을 이길 수가 있고 행복할 수가 있어요. 때로는 기적도 체험할 수 있음을 믿습니다. 나를 위로하시는 성령이 옆에 있다는 것을 믿어보십시오. 그 순간에 두려운 마음들이 다 사라질 겁니다. 불면증에 걸렸습니까 수면제로 밤을 보내지를 마시고 나를 도우시는 성령님의 도우심을 진정으로 요청해보세요. 그분은 나에게 깊은 잠에 들 수 있도록 도와주실 줄로 믿습니다. 어떤 사업에 문제를 놓고 고민하세요 혼자 그 짐을 지고 해결하려고 하지를 마시고 나를 돕기 위해서 와 계시는 성령님께 위탁하시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성령님은 정확하게 우리를 도와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서양에서는 의사들이 치료할 때 병을 고친다, 치료한다, 용어를 요즈음에 잘 안 쓰고 그 대신에 병을 관리한다는 말을 전문적으로 쓰고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의사가 병을 고칩니까 의사도 알아요. 그래서 의사들이 고친다는 말을 잘 쓰지를 않아요. 병을 관리할 뿐입니다. 모든 병은 고치는 능력이 그 몸 안에 생명 안에 있는 것이지 외부에서 밖에서 의사가 치료하는 게 아닙니다. 몸이 건강해서 병균을 이길 수 있도록 건강을 도와주고 세균이 감염하지를 못하도록 막는 겁니다. 칼로 잘라서 붙여놓았습니다. 붙는 것이 의사의 마음대로 못하고 회복되어지는 것을 기다릴 뿐이고 환자를 잘 관리해줄 뿐입니다. 그것이 치료예요. 그러나 예수님은 직접 고쳐주셨음을 믿습니다. 세상의 의사하고 예수님의 의사하고는 치료방법이 다릅니다. 그것을 구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의사도 인간의 병을 하나도 못 고치고 스스로 몸이 자생적으로 치료할 수 있도록 돕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여호와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너무 의학을 의존하지를 마시고 약을 의존하지를 마십시오. 필요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잠이 안 올 때는 때로는 수면제를 먹으라고 권장하고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병원에 가고 약을 쓰세요. 그러나 나를 치료하실 분은 여호와 하나님밖에 없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내 지식이 짧습니까
그러나 성령이 나와 함께 하시면 지식이 모자란 것이 하나도 문제가 되지를 않는다는 것을 믿으십시오. 몸이 약하십니까 성령이 나와 함께 하신다고 믿는다면 바울을 보세요. 의사를 동행하지 않으면 설 수 없는 연약한 몸이지만 그는 육신의 가시를 지니고 살았지만 "약한 중에 강하니라 네 은혜가 족하도다. " 바울이 못한 게 없었어요. 그 연약한 몸으로 매를 맞고도 감옥에 들어가면 즐겨 찬송을 부르고 감사했습니다. 왜냐하면 성령이 나와 함께 하심을, 여호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죽으면 어때요 천당에 가는데, 얼마나 베짱이 있습니까 그러니까 때린 사람이 고맙고 핍박을 받으면 더욱 감사한 거예요. 그런고로 원수라도 사랑할 수 있는 겁니다. 내 편에는 성령님이 계신다는 것을 믿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런 믿음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돈이 없습니까 굴하지를 마시고 오히려 돈이 없을 때, 직업을 잃었을 때, 성령께서 나의 연약함을 도우시고 날마다 만나를 내 입에서 채우신 여호와 하나님인 것을 믿으십시오.
저희 교회를 보면 젊은 나이에 일찍 남편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돈이 문제가 아니지만 정신적으로 어떻게 살까 애잔한 마음으로 지켜봅니다. 그렇지만 부부 생활할 때보다 혼자 되었을 때 더 주님을 사랑하고 기도하고 교회 생활을 즐겁게 하는 것을 보면 너무 감사해요. 물론 그런 약함 때문에 세상에 돌아간 사람도 있습니다.
저의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교회를 다녔는데 목사 될 마음은 없었습니다. 첫째로는 내가 목사 될만한 자격이 없었고 두 번째로는 한 집에서 거의 15년 가까이 한 집에서 살았기 때문에 목사가 고생하는 것을 제가 누구보다 잘 알아요. 내가 장로가 되어서 돈을 많이 벌어서 교회를 섬기고, 목회자 섬기고, 보고싶을 때 책이라도 사 드리면 참 좋겠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어렸을 때 얼마나 수줍음을 많이 타고 소심한 마음인지 겁쟁이였습니다. 그래서 남한테 서서 말하면 덜덜 떨어서 별명이 재봉틀이었습니다. 더구나 여학생 앞에서는 얼굴이 빨개 가지고 지금도 설교를 하지만 남 앞에서는 늘 긴장이 되고 왜 그렇게 떨리는지를 모르겠어요. 그런데 젊은 신학생 목회자들이 그렇게 태연하게 말을 잘하는 것을 보면 얄미워요. 어쩌면 저렇게 뻔뻔스러울 수가 있을까 그런 생각이 어렸을 때 들었어요. 그래서 나는 말하는 직업을 가지기보다 글쟁이가 되었으면 좋겠다. 책 보기를 좋아했고 글쓰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저로 하여금 성령체험을 하게 하고 담대함을 주시고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지금은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열정적인 사람이 되었어요. 한 가지를 하면 끝내주어야 됩니다. 그러니까 제가 무엇을 하십시다. 그러면 도망을 가지를 마시고 어차피 할 것 빨리 하시면 좋지를 않겠습니까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 앞에 감사합니다.
저는 믿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고린도서 1장 끝 부분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가난한 자, 어리석은 자, 부족한 자, 모자란 사람을 다 선택해서 강한 자, 지혜로운 자를 부끄럽게 하신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부족함을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성령을 믿지 않는 것을 부끄러워하십시오. 성령을 의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참 좋으신 보혜사 성령 여호와 하나님, 우리는 성령 여호와 하나님을 믿을 뿐만 아니라 사랑하십시다. 21절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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