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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보혜사 성령

본문

성도는 내주 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는 영적 평안을 소유하게 될 때 세상의 어떤 핍박과 고난을 겪더라도 능히 승리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이별하시면서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몇 가지 위로의 약속을 하셨는데 그 중에 하나가 오늘 살펴보려고 하는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보혜사 성령으로 말미암아 위로와 가르침을 받고 어떤 환경 속에서도 평안을 잃지 않고 담대하게 주의 말씀을 전하는 사역을 끝까지 담당할 수 있었습니다. 그 보혜사 성령은 지금도 주를 사랑하며 따르는 자들에게 힘과 능력이 되시며 위로와 평안이 되십니다. 개역 성경의 '보혜사'라는 말은 보호하시고 은혜를 주시며 가르치시는 분이라고 의역을 해 놓은 것입니다.
그러나 원어상 좀더 분명한 뜻은 "대언자" "위로자" "조력자"라는 뜻이 있습니다. 이것은 성령께서 성도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하시는 역할의 한 부분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지명된 두 대언자가 계십니다. 보좌에 계신 그리스도와 우리 마음에 계신 성령님이 그 두 분이십니다.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요일2:1)라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대언자시라는 성경의 선언입니다. 그리고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라는 말씀은 성령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히7:25)는 말씀처럼 지금도 하늘에서 우리를 위해 일하고 계십니다. 한편 다른 대언자이신 성령께서는 우리의 마음에서 그리스도의 일을 완성하고 계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서 그의 사람들과 교제하시고 권고하시며 위로와 사랑을 베푸신 것처럼 성령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주의 사람들과 교제하시며 권고하시고 위로와 사랑을 베푸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이 제자들에게 약속하신 "다른 보혜사"의 뜻입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보내주시겠다고 하신 보혜사 성령은 두려워하는 제자들을 위로하기 위한 약속이었습니다. 그러면 그것이 왜 제자들에게 위로의 약속이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 살펴보도록 합시다.
보혜사 성령은 그리스도를 사랑하여 그 계명을 지키는 자와 영원토록 함께 하실 것입니다.
1. 보혜사 성령님은 믿는 자와 영원히 함께 하실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주신 위로의 말씀은 다른 보혜사를 보내 주사 그들과 영원히 함께 있게 하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씀은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으로 성취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지금 우리에게도 위로의 말씀이 되고 있습니다. 이 위로의 말씀은 본문에서 여러 가지 표현으로 반복적으로 강조되고 있습니다.
1)보혜사 성령은 우리 속에 함께 계십니다.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17절)
그리스도께서는 육신으로 제자들과 함께 하셨지만 보혜사 성령은 제자들 속에 거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진리의 영이시기 때문에 거듭나지 않은 세상 사람들은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거듭난 사람은 성령을 압니다. 그분이 믿는 자들 속에 그의 거처를 정하시고 믿는 자의 몸을 전으로 삼으사 함께 하심을 거듭난 사람은 알게 됩니다. 죄인의 몸을 성전 삼고 그 속에 성령 여호와 하나님께서 거하신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은혜입니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속죄하는 피를 근거로 하여 믿는 자에게 들어오셔서 그 속에 거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의 내주 하심은 그 자체로 믿는 자에게 위로와 힘이 됩니다. 어린아이가 엄마가 그 곁에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 안심하고 뛰어 놀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엄마가 곁에 없으면 아무리 재미있고 즐거운 놀이가 있어도 집중할 수 없으며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 있어도 먹을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성령께서 내 안에 함께 계신다는 사실에 늘 위로와 소망을 갖고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2)보혜사 성령은 우리를 고아처럼 버려 두지 아니하실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 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18절)
주님은 그 사랑하는 자들을 보호자도 없이, 스스로 아무 것도 채울 능력이 없는 고아들처럼 버려져 낯선 사람들의 손에 맡겨지도록 방치해두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은 그렇게 무심한 분이 아니십니다. 주님은 부활하신 후에 부활의 몸을 입으시고 제자들에게 오셨으며 승천하신 후에는 다른 보혜사의 모습으로 제자들에게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 주님께서 오늘도 나와 여러분에게 다른 보혜사의 모습으로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분은 여전히 우리를 보호하시며 위로하시고 가르치시며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고 계십니다. 우리의 힘과 능력이 되어 주십니다. 우리는 절망적인 일을 만났을 때, 누구도 우리를 도와주려고 하지 않을 때, 하는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나는 세상에 버려진 고아와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단의 속임수입니다. 우리는 결코 홀로 버려진 고아가 아닙니다. 주님은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 다른 보혜사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그분과 상담하고 그분과 범사를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
3)보혜사 성령은 우리 안에 계십니다.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20절)
여기서 '그 날'은 일차적으로는 성령께서 강림하신 오순절을 가리키며 궁극적으로는 예수님의 재림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 이후에 주님은 다른 보혜사의 모습으로 우리 안에 계십니다.
소련 우주 비행사 유리 가가린이 한 국민학교를 방문했습니다. 그는 교단 위에 올라서서 엄숙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번에 전 지구 밖을 여행하고 왔습니다. 그 웅대한 우주 공간을 꿰뚫고 내려다 본 지구와 많은 별들을 보면서 나를 우주인이 되게 한 조국에 감사하며 자부심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 죽은 지 삼일만에 다시 살아나서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는 것을 많은 사람이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 이번 기회에 여호와 하나님과 예수님을 찾아내기로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우주선 밖을 아무리 살펴봐도 그런 건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영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우주에서 찾아내려 하다니 말입니다. 여러분은 주님을 어디서 찾고 게십니까 주님은 진정 내 안에 계십니다. 주께서 약속하신 성령은 영원토록 우리 안에 계십니다. 지금도 여러분 안에 계셔서 여러분의 고통과 아픔을 지켜보고 계시며 위로와 깨우침을 주십니다. 여러분 안에 계신 성령님의 위로와 가르침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4)보혜사 성령은 우리에게 나타나십니다.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21절)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은 곧 성령의 나타나심입니다. 우리에게 나타나시는 성령님의 힘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말씀을 매우 명료하게 만드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것을 읽을 때 우리로 하여금 주께서 가까이 계시다는 것을 느끼게 해줍니다. 그리고 성령의 나타나심은 주님의 은혜를 확신하게 만듭니다. 그의 현현은 또한 우리가 시험에 처했을 때에 "위로와 지지"를 해 주십니다. 마음의 시험, 가정 내의 시험, 너무나 은밀해서 다른 사람에게는 차마 말할 수 없는 사적인 슬픔들, 이 모든 시험들에 처했을 때 우리를 지탱해 주는 것은 우리에게 나타나시고 함께 하시는 성령의 임재 외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 불타는 용광로에 던져진 다니엘의 세 친구에게 자신을 나타내 주셨던 것처럼 이제 시험과 고통에 처한 주의 사람들에게 나타내 주십니다.
2. 보혜사 성령은 주를 사랑하여 그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함께 하십니다.
보혜사 성령이 그 안에 계시는 사람은 다윗처럼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그러면 주님께서, 그리고 보혜사 성령께서 어떤 조건에서 이와 같이 우리에게 가까이 오시는지 살펴보도록 합시다.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보십시오.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21절)
우리의 믿음은 순종을 통해서만 증거됩니다. 복음의 지극히 숭고한 약속이 성취되는 것은 믿음이 순종을 낳을 그 때뿐입니다. 어떤 희생에도 머뭇거리지 않고 그 길이 제아무리 거칠고 어둡다 할지라도 그만두지 않는 그런 순종을 낳을 때에만 복음의 지극히 숭고한 약속이 성취되는 것입니다. 주님에 대한 사랑으로 그의 거룩한 말씀을 지키게 될 때, 그래서 전적인 자기 포기와 희생의 정신으로 주의 뜻에 순종하게 될 때 비로소 성령은 우리에게 가까이 오실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이러한 나타나심과 성령의 내주 하심은 오직 주님을 진실로 사랑하는 자에게만 주어집니다. 그리고 주님을 사랑한다는 증거는 감정적인 표현으로써가 아니라 주의 뜻에 복종함으로써 나타나는 것입니다. 주님 사랑과 순종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가 주님을 사랑하는 자입니다.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않습니다. 주를 사랑한다면 당연히 그의 계명을 지켜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께서 그에게 나타나 주십니다.
주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자 가룟 인 아닌 유다가 묻기를 "주여 어찌하여 자기를 우리에게는 나타내시고 세상에게는 아니하려 하시나이까"(22절)라고 합니다. 유다는 주님께서 방금 전에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17절)고 말씀하신 것을 아직도 알아듣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은 거듭나지 않았기 때문에 주님을 모릅니다. 그들은 진리의 영이신 성령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합니다. 그들은 주님께 순종하지도 않고 주를 사랑하지도 않습니다. 주님의 나타나심은, 그리고 성령의 내주 하심은 그를 사랑하여 순종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23절)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마음으로 그를 영접하고 사랑하며, 그의 말에 복종함으로써 그의 사랑을 나타내는 자들하고만 교제를 나누신다는 사실을 반복하여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은 이와 동일한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잠8:17). 모든 참된 신자는 그리스도를 사랑합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또한 그의 말씀을 지킵니다. 보혜사 성령은 이러한 자들을 사랑하시며 함께 하십니다.
월남전 때에 있었던 실화입니다. 전세가 불리해서 후퇴하는데 그 중에 한 사람이 총에 맞았습니다. 뒤에서 쏘는 총에 맞아서 지금 비틀거리고 있습니다. 그 때 사랑하는 친구 하나가 그 총알이 비오듯하는 가운데를 뚫고 들어가서 구출하겠다고 하니까 소대장이 말렸습니다. "이미 총을 맞았고 피를 많이 흘렸고, 저 사람은 살지 못한다. 굳이 네가 거기에 들어갔다가 너까지 죽을 거 없지 않느냐 가지 마라. " 그랬습니다. 그러나 이 청년은 거기서 손을 들며 쓰러져있는 그 친구를 바라보고 그냥 있을 수가 없어서 그대로 그 총알 속을 뚫고 들어가서 친구를 업고 나옵니다. 업힌 친구는 귀에다 대고 자기를 업고 가는 친구에게 말했습니다. 빙그레 웃으면서 "네가 올 줄 알았다. 나는 너 같은 친구가 있어서 행복했다. 나는 아무 여한이 없다. " 그리고 죽었습니다. 죽은 시체를 업고 와서 내려놓을 때에 소대장이 "거 봐라! 어차피 죽을 사람 살리려고 하다가 너까지 죽을 뻔했다. "
그럴 때에 이 친구는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내 친구는 내 등에 업혀서, '네가 올 줄 알았다. 너 같은 친구가 있어서 나는 행복하다' 하고 죽었습니다. "
여러분 정말 주님을 사랑합니까 주님을 정말 사랑하는 사람은 주님과 함께 하는 것이 생명을 요구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행합니다. 그래서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걸고 그 계명을 지키려고 합니다. 여러분은 주님으로부터 "나는 너 같은 친구가 있어서 행복하다. "라는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까 주를 사랑하고 그래서 그 계명을 지키는 자는 보혜사 성령께서 영원토록 함께 하실 것입니다.
주를 사랑하며 그 계명을 지키는 자는 성령의 사역으로 말미암는 참된 평안을 소유하게 될 것입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26-27절)
성령께서는 주님의 말씀 중에 우리가 아직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밝히 알려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필요로 하는 아주 적절한 때에 그 말씀을 생각나게 하십니다. 우리가 잠 못 이루는 밤이나 또는 병상에 누워 있을 때에도 그의 위로를 주는 약속의 말씀들을 생각나게 하십니다. 또는 우리가 시험을 당할 때에도 그의 약속이 번쩍 떠오르게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형편 속에서도 평안을 누리게 하십니다. 따라서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평안은 내재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는 것입니다. 그 평안은 결코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않습니다. 세상이 갖고 있는 평안은 천박하고 불안정하며 불만스럽고 거짓된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주시는 평안은 어떤 환경이나 조건에도 불구하고 즐거워할 수 있는 완전한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주를 사랑하며 그 계명을 지키시기 바랍니다. 그런 사람은 성령의 내주 하시는 사역으로 말미암는 참된 평안을 소유하게 될 것입니다.
보혜사 성령은 주를 사랑하며 그 계명을 지키는 자와 영원토록 함께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누리신 참된 평안을 소유하게 될 것입니다. 이 평안을 소유한자는 세상의 어떤 핍박과 고난을 겪더라도 능히 승리할 수 있습니다. 오직 성령을 기대하고 의지하십시오. 그래서 성령의 힘을 입어 주를 사랑하며 그의 계명을 온전히 지키는 자가 되십시오. 보혜사 성령은 반드시 여러분과 함께 하실 것이며 주님이 주시는 참된 평안을 소유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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