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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성령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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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세계 모든 교회가 성령 강림 주일로 지키는 날입니다. 성령 강림 주일은 유월절로부터 50일 째 되는 날 성령 강림을 기념하는 날로서 우리말로는 오순절이라고 합니다.
옛날에 우리 주님은 따르던 사도들을 한 자리에 모이게 하셨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후에 사방으로 흩어진 제자들을 모아 놓으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런 고통을 당하실 때 위로를 해 드려야 하는 건데 그렇게 사방으로 흩어짐으로서 불신의 모습을 보였던 제자들이지만, 그들을 다 불러 모아 놓으시고 한 사람도 의심하지 않도록 그들 전부 앞에 나타나셨습니다. 그럼으로써 그들이 부활 신앙을 갖도록 이끄셨습니다.
그리곤 주님께선 말씀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말입니다.
성령 강림의 역사는 저희가 다 한 곳에 모였을 때 일어났습니다. 함께 기도하고 함께 찬양하고 말씀을 상고했을 때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러한 성령의 역사는 옛날 그리스도를 믿는 형제 가운데 뿐 아니라 오늘날 우리에게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성령님과 함께 하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 모릅니다. 성령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우리에게도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마귀는 이러한 성령님께 의지하는 우리에게 대해 믿지 말라고 하지 않습니다. 대신에 마귀는 함께 하지 말라고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그에 대해서 "마지막 때에 모이기를 폐하지 말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주님께서도 제자들을 혼자 부르지 않으시고 "함께"하게 하려고 12명을 부르신 것입니다.
성령 강림할 때에 제자들이 모인 가운데 있었던 일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었고, 다른 하나는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보였다고 했습니다. 기록에서 보여지는 대로 불이 아니고 바람도 아닙니다. 불같다고 했고 바람 같다고 했습니다. 어떤 기도원 같은 데를 가면 '불 받아라' 소리를 지르고 마이크로 바람 소리를 내면서 성령 강림이라고 하는데 그런 것이 아닙니다.
혹자는 성령을 불이라고 여겨서 꼭 뜨거워야만 한다고 합니다. 꼭 뜨거운 쪽으로만 받으려고 하고 그것을 성령 충만이라고 합니다. 성령 받은 사람 대부분이 기도를 열심히 크게 소리지르면서 했더니 가슴에 불같은 뜨거운 것이 들어왔다고 하는데, 성령 충만은 화끈한 느낌이나 무당의 신내린 것 같이 된다거나, 혹은 내가 물건을 소유하는 것 같은 것이 성령 충만이 아닙니다. 오히려 인격자이시고 여호와 하나님이신 성령께 내가 "사로잡히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복'을 "받는다"고 생각하지만 서양 사람들의 사고 방식에 따르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애국한다는 것도 우리 나라 사람들은 자기의 모든 것을 버리는 것을 애국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우리 나라 독립 투사들은 당시에 자신의 가족은 돌보지 않고 오직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을 애국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서양의 사고 방식은 우리의 그것과는 다릅니다. 카터가 대통령 취임 때 한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가정에 충실하십시오. 그것이 바로 애국하는 길입니다" 영국의 처칠 수상도 전쟁 당시 국민들에게 TV를 보라고 권했습니다. 우리 나라 같으면 엄두도 안 날 일이겠지만, 그만큼 우리와 사고 방식이 다릅니다.
우리에겐 샤머니즘적인 생각이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데, 성령 충만이란 그런 것이 아니라 내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것입니다. 무례하고 거칠고 고집스럽고 자기 맘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인격적이시고 여호와 하나님이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것입니다. 이제껏 삶의 중심이 나였다면 성령 충만한 이후로는 중심이 예수 그리스도로 바뀌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을 받고 나면 내가 주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주인이 되는 것을 주변에서도 다 알게 된다. 혹 알콜 중독자들이 회개하고 성령을 받으면 때로는 몸을 바닥에 굴리면서 회개하고 눈물로써 기도하기도 하지만, 전부 다 그러는 것은 아닙니다.
무디도 무식한 구두공이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주를 믿도록 전도했던 유명한
사람이지만, 성령 충만을 경험하지 못하다가 성경을 열심히 읽은 후에 경험을 하게 되었고, 웨슬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미국으로 선교사로 갔음에도 불구하고, 어머님의 신앙 아래서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성령 충만을 받지 못하다가 시골 교회로 로마서 강해를 갔다가 성령 충만을 받게 되었습니다.
성령 충만을 풀이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성령님은 우리 위에 임하십니다. (The Holy Spirit upon us) 둘째, 성령님은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The Holy Spirit in us)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성령의 열매를 맺도록 하시고 인격에 변화를 가져다 주신다는 것입니다. 셋째, 성령님은 우리가 '받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신앙은 남을 도와주는 것이라고 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에 가서 그들에게 안수할 때 그들이 성령 충만함을 받았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것을 가리켜 '사마리아의 오순절'이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복음을 전하자 성령 충만함을 받는 모습을 본 시몬이란 사람이 가만 보니까 돈벌이가 될 것 같아서 돈을 많이 가져다가 그런 능력을 소유할 수 없냐고 했다가 베드로와 요한에게 야단을 맞았습니다.
어떤 신학자들은 성령 강림이 1회적인 것으로 해석하고 사마리아에 성령 충만하게 된 것을 성령의 은사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사도행전 19장 6절에 바울이 고린도 교회 제자들에게 성령에 대해 전혀 모른다는 말을 듣고 그들에게 안수했더니 성령이 임하고 그들이 방언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성령 충만은 첫째로 폭발적으로 채워지는 것을 말하기도 합니다. 사도행전 2장과 4장 8절, 4장 31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점진적으로 채워지는 것을 말하기도 합니다. 여자가 아기를 가지게 되면 배가 점점 불러오는 것처럼 성령이 점진적으로 채워지기도 합니다. 스데반이 성령과 지혜에 충만했다고 하는 것은 바로 이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성령의 의미도 여러 가지 인 것 같이 성령의 역사도 여러 가지였습니다. 우리의 성경에는 이를 모두 '감동'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것에 대해서 자세히 살펴보면, 첫째로 성령의 역사는 명령하심으로 나타납니다. 빌립을 향해 남으로 향하여 내려가라고 명령하셨고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다가 핍박하던 사울에게 가서 안수하라고 아나니아에게 명령하신 분도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사울에게 가기 싫다고 말하는 아나니아를 향해서 바울은 내가 택한 그릇이라고 말하신 분도 바로 성령이십니다.
 둘째로 성령의 역사는 막으심으로 나타납니다. 바울이 아시아 쪽으로 복음을 전하려고 할 때 우리 성령님께서는 막으셨습니다.
 셋째로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고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는 분도 성령이십니다. 로마서 8장에 보면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너무나 어처구니 없는 일을 당하게 되면 기도할 힘조차 없게 되는데 이러한 때에 성령님께서 우리를 위해 친히 간구하신다고 합니다.
넷째로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도 성령이십니다. 요한복음 14:16에 보면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시는 분이 보혜사 성령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 단독으로 인생을 걸어가는 게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흔히들 인생길에는 지도가 없다고 하지만 성령이 함께 하시면 친히 우리가 갈 길을 인도해 주십니다. 주저안고 싶을 때 우리를 일으키시고, 이끌어 주시는 분이 바로 성령이십니다.
다섯째로 우리를 북돋워주시는 분도 성령이십니다.
여섯째로 앞으로 나아가게 하십니다. 그 자리에 머무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십니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두 가지가 있습니다. 일곱째로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시는 분이 바로 성령이십니다. 스스로 똑똑한 체, 잘난 체 하지만 인도 받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늘 성령의 가르침을 받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며 위대한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성령은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해 주십니다. 제자들은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당시에는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3년을 주님과 공생애 기간을 가졌지만, 주님 말씀의 참뜻을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돌아가신 다음 부활하신 후 성령이 강림하실 때 모든 것을 깨달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성령 충만의 역사와 성령님의 인도하심이 오늘 성령 강림 주일에 우리에게도 함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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