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

TOP
DOWN

[성령강림] 5월의 크리스마스

본문

지난주에 예고해 드린 대로 오늘은 "5월의 크리스마스"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준비했습니다. "5월의 크리스마스!" the Christmas of (the) May! … May Christmas! Merry Christmas! … 다시 말해서 예수께서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던 날을 우리는 "크리스마스"라고 하고, 축하의 성탄 예배를 드려요. 그런데 이번에는 성자가 몸으로 오신 것이 아니라 영으로 오셨어요. 이 분을 우리는 성령이라고 불러요. 지난주가 바로 그 성령강림주일이어서, 성령강림주일예배를 드렸어요. 그때 생각해 본 것인데, 예수님이 영으로 오신 날이니 이날을 "5월의 크리스마스"라고 불러도 좋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참 기쁨의 성령강림주일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White Christmas가 아니라 Green Christmas이지요. 그런데 성령강림절을 Whitsunday라고도 해요. White Christmas와 비슷한 것 같아요. 또 성령강림절은 Pentecost라고도 해요.
 성령은 여호와 하나님의 영이지요. 여호와 하나님의 영일 뿐 아니라 또한 그리스도의 영이에요. 이것은 서기 589년 니케아 - 콘스탄티노플 신조에서부터 명시되고 있어요. Filioque(필리오케)라는 라틴말로 적혀 있어요. 이 라틴어의 뜻은 "그리고 성자로부터 (나왔다)"는 뜻이에요. 그러니 여호와 하나님의 영이고 그리스도의 영이란 말이에요....
 오늘 요한복음 본문에도 보면, 예수님이 이 세상에 계실 때 16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다는 것은 십자가의 죽음을 의미하지요. 그래서 보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세요. 그러나 " 또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리라"고 하시지요. 이 말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해석해요. ①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다시 볼 수 있다는 의미 ② 오순절 성령강림과 더불어 영적으로 볼 것이라는 의미 ③ 마지막 최후의 날에 다시 볼 것이라는 의미, 이런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되고 있어요. 그러나 문맥상 두 번째 의미가 가장 무난한 해석이라고 볼 수 있어요. 그래서 예수님이 영으로 오심으로 우리가 그를 다시 볼 수가 있게 되리라는 말씀이에요..... 그 다음으로 본문 바로 밑에 22절에서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고 하세요. 그렇다면 이 구절도 역시 예수님이 영으로, 성령으로 오셨을 때에는, 우리 마음이 기쁘고 우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는 말씀입니다.
 성령이 이미 오셔서 우리와 함께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속에서도, 우리 가정 속에서도, 교회 속에서도, 사회 속에서도 성령이 역사하고 계십니다. 성령이 역사하고 계심을 실감하시며 사십니까 ..... 지난주에 우리 마음속에 기쁨이 있는지 없는지가 성령이 임재하고 계신지 아닌지를 가늠할 수 있는 기준이라고 한 적이 있지요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우리 마음에, 우리 집에 성령님을 모시고 사십니까
 저는 지난주에 성령강림절이니 기쁨이 충만한 날이 되어야 하지 않겠나 생각하며 예배찬송을 고르고 있었어요. 성령에 관한 찬송은 169장부터 181장까지 있어요. 그래서 그 중의 하나 169장을 골랐어요. 오늘도 설교 끝나고, 이 찬송을 부를텐데..... "강물같이 흐르는 기쁨 성령 강림함이라..... 주님 주시는 참된 평화가 내 맘속에 넘치네..... " 그런데 아무리 불러도 축제적인 분위기가 잘 안 나는 것 같아요. 그래서 크리스마스 찬송가에다 "성령"을 넣어서 부르면 어떨까하고 생각도 해 봤어요...... "기쁘다 성령 오셨네. 만백성 맞으라. 온 교회여, 다 일어나 다 찬양하여라. 다 찬양하여라. 다 찬양 찬양하여라"(115장).... "천사 찬송하기를 거룩하신 성령께 영광 돌려보내세. 성령 오늘 오셨네. 크고 작은 나라들 기뻐 화답하여라..... "(126장).... 어때요 이렇게 부르니까 어떻습니까
 그러면서 생각해 보니까 성령의 오심에 대한 우리의 표현방법이 아직 서투른 것 같기도 하고, 모자란 것 같기도 해요. 그래서 제대로 표현을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또 어떤 것은 느낌이 세지요 "성령이 오셨네! 성령이 오셨네. 내 주의 보내신 성령이 오셨네. 이 기쁜 소식을 온 세상 전하세. 성령이 오셨네"(179장)..... 불같은 성령이어서 그러는 것 같아요. 그러나 비둘기 같은 성령도 있고, 단비 같은 성령도 있는데, 어머니 같은 성령인데, ... 성령의 느낌이 강해요.
 그러나 성령강림절은 또한 순수한 측면도 있어요. 기독교의 명절은 대개 세속화되어 있잖아요. 크리스마스, 부활절, 감사절등 이런 명절들은 세속화되어서 카드장사나 선물장사, 식당, 여행, 관광업자들... 이런 장사꾼들이 더 좋아하고 안 믿는 사람들도 좋아하는 그런 휴일이 되었어요. 그러나 성령강림절 만큼은 지금까지 아직 순수한 신앙적 절기로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 특이해요. 아직 상품화가 되지 않았어요. 상품으로 개발되지가 않았어요..... 그 이유가 있을 텐데, 그 이유는 무엇이겠어요 이 명절이 의미하는 내용이 물질적이 것이 아니라 영적이지요 영적인 선물이에요. 그래서 모방할 수가 없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아요. 그렇다면 어쨌든 간에 이 절기만큼은 더욱 더 순수한 신앙적 절기로 자리잡아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래서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영적 기쁨을 누리고, ...
 기독교 역사를 통해서 보면, 성령은 수난을 많이 받았어요. 성령기피증이니, 성령공포증 등 믿는 사람들로부터 거부반응을 많이 받았어요....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고난 받으셨지만, 성령은 그후 계속해서 수난을 받아왔어요. 그래서 서구교회사를 통해서 봐도 성령이 설자리가 없었어요. 예수님도 물론 탄생하실 때부터 그러셨지요. 누우실 자리도 없으셔서, 빈방이 없어서 베들레헴 마굿간에서 태어나셨어요. 공생애기간에도 예수님은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하셨어요. 수없이 말씀과 이적으로 문을 두드리는데, 별 진전이 없었어요. 그래도 포기하지 아니하고 예수님이 십자가 죽음으로 인류 구원에 나서니까, 사람들은 서서히 예수를 기리기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20C에는 성령의 바람이 부는데, 성령운동은 북미와 남미에서 일어난 오순절 운동의 여파로 강세를 보이기 시작했지요. 그래서 여의도 순복음교회가 세워지기에 이르는데,...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도 성령이 홀대를 받기도 하고, 환대를 받기도 했어요. 그러면서 오늘날에는 이제 범교단적으로, 그리고 다양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추세입니다. 이런 성령운동은 공도 있고 과도 남기면서 오늘날에까지 왔어요. 침체된 교회역사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기도 하고, ... 십자가(희생) 대신 열광으로 나아가는 듯 하여 ... 기독교가 아닌 성령교가 되고 싶어하기도 하고, ... 아직도 이런 성령에 대한 인식은 편향적이기만 한 것 같습니다. 그러할 때 앞으로 이제 이런 성령운동이 어떻게 전개되어 나가야 할까도 함께 적극적으로 생각해 봐야 할 시점에 왔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이미 왔지요! 그러할때 아까 이미 말씀드렸듯이, 이 성령강림절은 순수한 신앙적 절기로 자리잡아 가기를 또한 바라마지 않습니다. 그래서 깨끗해지고, 성화되고, ... 위로받고, 치유받고, ... 거듭나고 변화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마치 이런 말씀의 연장선상 속에서 말씀하시듯 오늘 에베소서 본문에는 거룩한 건축, 신령한 건축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지요 마치 성령을 말하면서, 거룩한 영을 말하면서, 전혀 거룩하지 않은 인류문명의 탑을 오늘도 쌓아 올리는 인류를 향해 지적하듯이 ... 초대교회 이후 세계 도처에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세워지고 있습니다만, 이런 세상의 교회들은 모두 베들레헴 마굿간의 영성(spirituality)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리고 마가의 다락방의 영성을 잊어선 안될 것입니다. 세속화 , 물질화, 상품화!! 이런 세상의 건축은 헛된 건축이라는 거예요.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누가복음 12:16절)에 나오는 창고건축도 헛되고, ..... 요즘 수요일에 말라기를 공부하는데, 에돔인들의 건축도 헛되고(말라기 1:4), 지난번엔 하박국을 공부했는데, 하박국의 경우... 갈대아인들의 불의의 성건축도 헛되고(합2:12)....
 신앙인들의 건축은 이와는 달라야 한다는 거예요. 신령한 건축은 베들레헴의 마굿간을 보고 마가의 다락방을 보면서, 교회를 중심으로 신령한 건축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지요. 그래서 여기 에베소서 본문에 보면 건축의 터, 건축대지가 나오는데, 어디에 터를 잡아야 합니까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워져야 한다"고 하고 있어요. 선지자들은 구약을 대변하고 있고, 사도들은 신약을 대변하고 있지요. 그렇다면 이 말씀은 신구약의 말씀 위에 세워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씀 위에 세워지지 않으면 아무리 멋진 건축도 무너지고 맙니다. 그 다음 그 대지 위에 모퉁이 돌이 있어야 하는데,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모퉁이 돌로 삼아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어요. 모퉁이 돌이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예수가 중심이 되어야 해요. 예수가 빠지면 안돼요!! ... 그 다음 교회가 여호와 하나님이 거하실 거처가 되기 위해선 성도들이 성령 안에서 서로 연결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도가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여호와 하나님이 거하실 수가 없어요. 서로 연결되어 있어야 그 교회가 여호와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된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의 유대가 필수적인 건축재료이에요. 철골구조이에요. 그렇지 않으면, 성령 여호와 하나님이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탄식하세요.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5월의 크리스마스" 계절입니다. 이런 거룩한 영의 계절에 먼저 우리 교회가 날마다 예수가 탄생하는 교회가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성령이 항상 강림하여 역사하는 교회가 되길 바랍니다. 그렇다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위에 서야 합니다! 예수가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 안에서 서로 손을 잡아야 합니다. 성도가 서로 연결되어야 여호와 하나님이 들어와 사세요...... 그러면 사랑과 희락, 화평, 오래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가 주렁주렁 열리겠지요. 성령의 축제는 이래야 될 것입니다. 이런 교회가 되어갈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다같이 노력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