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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삶

본문

저는 오늘 본문 말씀을 읽을 때마다 마음에 깊은 평강과 기쁨을 누립니다. 저는 아직 젊은 목사입니다마는 솔직히 저의 남은 날이 얼마인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오늘 13절 말씀대로 성령께서 언제나 제 인생의 미래를 언제나 진리 속으로 인도해 주실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정말 평안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서 마음속으로 기도합니다.
"성령님! 언제나 저는 부족해도 저를 불쌍히 여겨 주옵시고 저의 마지막날까지 성령님께서 꼭 인도해 주옵소서. 그리고 저는 성령님 인도에 항상 순종하게 하옵소서. " 부족하지만 저는 이런 간절한 마음을 품고 삽니다.
성도의 생활은 한 마디로 말하면 성령님의 인도를 받는 생활이어야 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의 신앙은 너무나도 그리스도 중심적입니다. 물론 우리의 신앙은 반드시 그리스도 중심적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 여기서 제가 그리스도 중심적이라는 말은 좋은 의미로 사용한 말이 아닙니다. 좀 부정적인 의미에서 사용한 말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너무 원리적일 때가 많습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신앙생활이 맥이 빠져 있는 것입니다. 대부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위에서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사실만 믿을려고 합니다. 늘 예수님의 십자가, 예수님의 피만 생각합니다. 그리고는 구체적인 우리의 삶에서는 성령님을 의지하지 않고 여전히 자기의 머리와 방법으로 살려고 합니다.
성령님의 능력을 받고 성령님의 인도를 받는 삶을 살려고 애쓰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나의 죄를 위하여 죽으셨기 때문에 모든 것이 다 되었다고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사람들은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와 보혈은 확실히 믿는데 삶 속에서 성령님의 뜻을 찾지 않습니다. 또 여호와 하나님의 뜻과 인도하심을 아는데도 여전히 자기 소신, 자기 고집으로 나아갑니다. 신앙생활이 지나치게 원리적일 뿐, 삶의 적용이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그의 피를 확실히 믿고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은 남은 여생동안 얼마를 살든지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잘 따라야 합니다. 같은 자식이래도 부모의 말에 잘 따르는 자식이 있고 그렇지 않는 자식이 있습니다.
ex)탄생- 구원, 순종-성령인도에 순종
우리가 구원받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의 삶이 그렇게 복잡하고 피곤한 줄 아십니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것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잘 따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번민, 갈등 고통을 겪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잘 따르면 언제나 삶이 자유롭고 풍성합니다. 평안하고 행복합니다.
어차피 우리는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자원해서 적극적으로 순종을 하든지, 아니면 성령께서 우리를 억지로 데려가시든지간에 어떤 방법으로든지 성령의 인도를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자원해서 순종하든지, 아니면 성령께서 억지로라도 끌고 가십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멸망치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자원해서 적극적으로 순종하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 모두는 그렇게 되시길 축원합니다. 오늘 저는 본문을 세 가지로 나누어 말씀 드릴려고 합니다.
1) 예수님은 승천하셔서 우리에게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보혜사에 대해서 지난번에 쉽게 말씀 드렸지요 보혜사는 이스라엘에서 어머니의 역할과 같았다고 했습니다.
ex) 엄한 아빠에게 얻어맞고 상심해 있는 아이를 위로하는 어머니 역할.
탈선한 자식 때문에 진노해 있는 아버지의 노여움을 푸는 어머니 역할.
아버지에게 얻어맞으려는 아이를 회개케 하는 어머니 역할.
이것을 보혜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원래 예수님께서 보혜사로 오셨습니다. 병자를 치유하고 죄인을 구원하시며 위로해 주셨습니다. 38년된 병자, 소경을 고치시고 회당장의 딸과 나사로를 살리셨습니다.
바로 이런 예수님이 지금까지 계시면 얼마나 좋을까요
지금도 예수님이 우리 교회에 오셔서 이런 치유, 기적을 행해 주시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예수님이 육신으로 오늘 새에덴교회에 오시면 우리는 밟혀 죽습니다. 소목사부터 밟혀 죽습니다.
뉴키즈 사건을 상기해 봅시다. 유승준, HOT만 와도 앉을 자리가 없을텐데, 주님이 진짜 오시면 분당의 온 병자, 죽을 자들이 다 몰려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밟혀 죽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셔서 일찌감치 가시는 편이 좋았습니다. 따라서 , 주여 참 잘 가셨네요. 잘 가셨습니다.
이것은 주님도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16:7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
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무슨 말씀인가요 주님이 빨리 떠나는 것이 우리에게 유익이라는 말입니다. "내가 가야 다른 보혜사가 온다. 내가 안가면 다른 보혜사, 곧 성령님이 못 오신다. 그러므로 나는 가야한다. 내가 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란다. "
예수님은 육신으로 오신 보혜사였습니다. 그러므로 시공간의 제약을 받으십니다. 시공간을 초월할 수 없으십니다. 나사렛에 계신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계실 수가 없습니다. 이스라엘에 계신 예수님이 한국에 계실 수가 없습니다.
한쪽 집에 심방 하시면 이 집이 삐치고 이 집으로 가면 저 집이 삐칩니다.
예를 들어 소목사가 심방할 때도 그렇습니다. 예수님도 육신적으로 오신 보혜사였기에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을 대신해서 무소부재하신 보혜사, 어디에나, 언제든지, 누구와도 동시에 함께 할 수 있는 보혜사가 오셔야 합니다. 바로 그분이 성령님이십니다. 그분은 언제나 누구와도 함께 하십니다. 개개인에게 찾아오셔서 동시에 함께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님 때문에 누구도 삐치거나 시험들 수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성령 충만하고, 은혜 충만하며 축복 충만할 때 내가 시기, 질투가 나면 나도 구하면 됩니다. 그러면 구하는 자에게마다 찾아오셔서 우리에게도 충만한 은혜를 주십니다.
그런 의미에서 주님은 가셔야 합니다. 빨리 가셔야 보혜사 성령님을 우리에게로 빨리 보내실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주님! 일지감치 잘 가셨네요. '라고 한번 외쳐봅시다.
이렇게 주님은 일찌감치 가셨고 주님 대신 보혜사 성령님을 우리에게 보내 주셨습니다. 우리 위해 십자가에서 아낌없이 죽으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께 청구하여 성령님을 보내 주셨습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너무나 고귀한 축복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놓고 이렇게 상상해 봅니다. 예수님과 성령님 사이에 바로 내가 있고 우리가 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승천하시면서 나를 놓고 성령님께 이렇게 부탁의 말씀을 하십니다. 어디까지나 쉽게 설명하는 예입니다마는
"성령님이시여! 여기이란 아들이 있습니다. 이 아들이야말로 창세전에 성부 여호와 하나님께서 택한 아들이고 내가 십자가에서 피흘려 산 아들입니다. 이 아들이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반드시 잘 되어야 합니다. 큰 축복을 받고 승리하여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귀하게 쓰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나는 성부 여호와 하나님의 부름에 의해 영광의 보좌로 갑니다.
그리고 이 아들은 이 세상에 계속 머물러 있어야 하는데 이 세상은 악하고 험하며 이란 아들은 너무나 연약하고 어립니다.
그러므로 나 예수는 성령님께 부탁합니다. 이 이라는 아들을 책임져 주십시오. 반드시 이 땅에서 승리하고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행복한 삶을 살도록 이끌어 주십시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아버지가 계시는 천국까지 꼭 데려와 주십시오. "
그러면 성령님께서 이렇게 대답을 하십니다.
"성자 예수님이시여! 걱정 마십시오. 안심하십시오. 제가 어련히 알아서 하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피흘려 사신 이 이들을 반드시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겠습니다. 결코 예수님의 피를 헛되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만일 이라는 아들이 탈선을 하고 진리의 길을 떠난다면 제가 매질이라도하고 징계라도 해서 반드시 복된 길, 행복의 길, 승리의 길로 인도하겠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천국까지 제가 잘 이끌어 가겠습니다. 안심하십시오. " 할렐루야!
예수님과 성령님은 절대적이고 완벽한 삼위일체적인 신뢰 속에서 중간에 나를 놓고 예수님은 성령님께 나를 부탁합니다. 그리고 성령님은 예수님의 부탁과 위임을 받고 예수님께 약속을 하지요.
"안심하십시오. 제가 틀림없이 그렇게 하겠습니다. " 그래서 성경은 예수님의 약속과 영광 안에서만 일하십니다. (요16:14) 그리고 이 약속은 성부여호와 하나님이 보증한 것입니다.
바로 이 놀라운 사랑과 축복가운데 여러분과 제가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성부 여호와 하나님의 보증으로 이루어진 이 예수님과 성령님의 약속 때문에 인도해 주십니다.
ex)우리가 죄짓고 여호와 하나님께 매맞았을 때 : "김 집사야! 그래도 여호와 하나님이 너를 사랑하신다. 너를 절 대로 안 버리시고 너와 함께 하신단다. "
우리가 걱정, 근심으로 가득할 때 : "김 집사야! 걱정마라. 여호와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신단다. 걱정말 고 기도만 해라. "
여호와 하나님이 무섭게 진노하실 때 : "여호와 하나님! 김집사는 그래도 여호와 하나님 아들입니다. 성자 예수 그리스도
가 저 아들을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그러니 김집사를 다시 붙들어 주옵소서. 다시 붙들어 귀하게 쓰시옵소서. "
우리가 유혹에 넘어지려 할 때 : 너 김집사! 네가 누구인줄 아느냐 이 놈아, 너 넌 예수님짜리야.
넌 어떤 일이 있어도 지옥갈 수 없어. 그러므로 이 유혹에 넘어지면 패 죽여 버린다이. 다리 몽뎅이를 분질러 버린다. 알았어
성령님은 언제나 우리를 인도하시고 보호하십니다. 결코 망하지 않게 하시고 지옥가지 않게 하시며 언제나 승리의 길, 복된길, 영광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그리고 반드시 우리를 천국까지 안전하게 이끌어 주십니다. 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할렐루야!
2) 둘째로 생각해 볼 것은 성령님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인도하시냐는 것입 니다. - 성령님의 구체적인 인도방법.
우리는 성령님이 우리를 인도하시는 축복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분의 구체적인 인도 방법도 잘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그분을 잘 따를 것이 아니겠습니까 주로 성령님은 다음과 같이 다섯 가지 방법으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①내 마음에 일어나는 소원을 통해 인도하실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마음에 무엇인가 하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그래서 계획을 세우고 꿈을 꿉니다. 물론 내가 하고 싶은 것이라고 다해서는 안됩니다. 거기엔 육신의 정욕이 갈망하는 소원도 있으니까요. 그것은 성령님께서 기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내 마음속에 있는 소원이 하나 있는데 성령께서 내 마음에 오셔서 " 그건 됐어, 네 소원대로 내가 되게 해주마. 너 하고 싶은 대로 하거라. 내가 함께 해 줄 것이다. "라고 하실 때가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께서 우리의 소원을 통해서 일하시는 방법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억할 것은 무슨 일이든지 마음에 소원이 있다고 해서 급히 해서는 안됩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의 소원을 검증하는 과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이 내 마음의 소원을 점검해서 합당한 것인가 아닌가 구별해 줄 때까지 우리는 기다리는 것이 좋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이런 일도 있습니다. 내게 어떤 강렬한 소원이 있습니다. 그래서 계획을 거창하게 세우고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모으면서 그것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갈수록 성령께서 정리를 해 주는데 그 소원은 기도를 할수록 자꾸 희미해지고 약해져 버립니다. 게다가 그쪽은 생각할수록, 기도하면 할수록 자꾸 불안해지고 답답해 집니다.
그와 반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소원을 처음에는 희미하고 막연하며 복잡하고 어려울 것처럼 생각되었는데 시간이 갈수록 점점 뜨거워지고 확실해 집니다. 자꾸 선명해 지고 확실해져서 꼭 뒤에서 누가 밀어주는 것같이 느껴집니다. 성령께서 자꾸 그렇게 하라고 밀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확신이라고 하지요. 그럴 때 마음에 평강이 오고 마음이 홀가분해집니다. 바로 이 확신대로 우리가 밀고 나가면 100% 틀림이 없습니다. 무조건 승리요, 축복이요, 영광입니다.
ex)박명환 야구선수 : 처음엔 공부시키려 했지만 ⇒ 박다윗.
이렇게 성령님은 우리의 소원을 정리해서 여호와 하나님이 기뻐하신 길로 우리를 인도해 나가십니다.
②두 번째 방법은 말씀으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어떤 문제를 놓고 기도할 때 자비하신 성령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시로 감동과 말씀을 주십니다. 그래서 그런 경우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거나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
※성령님께서 주로 우리에게 말씀하신 음성 :
"어떤 것을 하거라. 아니면 하지 말거라. 사랑하고 용서하라. 참고 인내하라.
네 받는 사명을 잘 감당하라. 더욱 충성하고 헌신하라. 겸손하라. 실망하지 말고 담대하라. "
③세 번째 방법은 환경을 통해서 인도하십니다.
이상하게 어떤 일은 처음부터 꼬이고 막힙니다. 이것은 주로 빨간 신호등이 켜진 것입니다. 그때는 가지 말라는 신호가 아니겠습니까
ex)행16장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바울의 선교방향을 아시아에서 유럽쪽으로 옮기십니다.
그러나 반대로 어떤 것은 처음부터 일이 시원하게 뚫립니다. 처음부터 일이 잘 됩니다. 이것은 파란 불이 켜진 것입니다. 더 잘해 나가라는 신호이지요.
그러나 주의해야 할 것은 하는 일이 처음부터 막힌다고 해서 무조건 때려치우란 말이 아닙니다. 또 처음부터 시작이 순조롭다고 무조건 앞으로 나가라는 말이 아닙니다. 세상 모든 일이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처음 시작을 조심스럽게 해야 합니다. 시작하면서 여호와 하나님 뜻을 묻지 말고 시작 전에 여호와 하나님 뜻을 성령님께 물어야 합니다. 몇 달, 몇 년이 걸려도 괜찮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뜻만 확실하게 알면 말입니다.
ex) 출애굽때에 여호와 하나님 뜻인데 홍해바다란 커다란 장애물이 놓여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전진해야 했습니다.
새에덴 성전을 건축할 때도 여호와 하나님 뜻인데 여러 장애가 있었습니다. 그래도 건축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특수한 때를 제외하면 보통은 이런 일반법칙이 적용됩니다. 여호와 하나님 뜻이면 시작이 순조롭고 여호와 하나님 뜻이 아니면 환경에서 반대 요인이 나타나게 됩니다.
④어떤 사람을 통해서 인도하십니다.
이 방법이 아마 50-60%이상 될 것입니다. 성령께서 가장 많이 쓰신 일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가장 가까운 아내, 남편, 자녀의 말을 통해 역사 하십니다. 또 주의 종이나 교구 전도사님, 혹은 구역장의 말을 통해 역사 하십니다. 도저히 안될 것 같았는데 그 말을 듣고 해보니 됩니다.
이렇게 성령님은 사람을 통해서 인도하십니다. 물론 여기에도 사탄의 역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괜히 사람 잘 못 만나서 안 들어야 할 소리를 들어 믿음도 망치고 신세도 망친 사람이 있습니다.
⑤ 아주 특별한 방법으로 인도하십니다.
그것은 꿈, 환상, 직접적인 응답이나 음성, 예언 등을 통해서 인도하는 방법입니다. 성령님은 비상수단으로 일생에 몇 번 이렇게 하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소목사의 부르심과 인도가 광주로, 서울로 부르시는 것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이렇게 인도하십니다. 그러나 이것은 늘 하는 방법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조심해야 합니다. 늘 예언기도나 받고 늘 뭘 볼려고만 하면 안됩니다.
어느 신학생 ⇒ 김집사(영님 오빠에게 뺨만 맞고 돌아갔음. )
(홍춘이 사람 죽겠네 ⇒ 여호와 하나님 뜻이 아니면!)
그러므로 모든 성령 인도의 검증기준이 있습니다.
성령인도 : 어떤 방법이든 기쁨, 평안, 안식, 감사, 찬송이 나옴.
성령인도가 아닌 것 : 불안, 초조, 근심, 걱정, 불평, 불만만 생김.
따라서 어떤 방법이든 이 기준에서 보면 다 분별이 가능함.
왜 성령님은 언제나 평안의 영이요, 기쁨과 감사의 영이시기 때문에 ⇒ 언제나 성령의 인도를 잘 따르셔서 승리하시길 축원합니다.
3) 성령님의 인도를 잘 따르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①성령님을 근심케 말아야 합니다. (엡4:30)
성령님의 인도를 따르려면 성령님을 근심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②성령님의 감동을 소멸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엡5:198)
정자동 지하개척교회 시절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어떤 성도님이 여호와 하나님 앞에 어떤 큰 목적을 놓고 기도해서 응답 받았습니다. 너무 너무 사업이 잘 나갔습니다. 그때 너무나 감사해서 여호와 하나님께 서원을 했습니다. "주님! 무엇이든지 바치라는 대로 다 바칠께요"
성령께서 가라사대 "내가 너에게 이렇게 큰 축복을 주었으니 적어도 건축헌금 500만원은 드려야 되겠구나. " 하시더랍니다. "그 까짓 것 500만원을 내가 못 드리겠습니까 주님이 주신 축복은 얼마나 큰데요. 돌아오는 주일에 반드시 500만원을 드리겠습니다. "
그런데 토요일 날이 되니까 갑자기 마음이 바뀌기 시작합니다. 다 드릴려니 아깝더랍니다. 그래서 100만원만 바쳤습니다. 자기가 자원해서 드린다고 하더니 스스로 인색한 마음이 든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소리 들으면 마음이 찝찝하지요 다 우리에겐 같은 본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얼마후 그 가정엔 좋지 않는 일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억울하게도 그 돈의 몇 배가 나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때 그분이 저에게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목사님! 얼마 전에 여호와 하나님 앞에 온전히 순종했더라면 사고도 안 났을 것이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더 계속해서 축복해 주셨을텐데 이 미련한 사람이 멍청하게 깎을 것을 깎아야지 별걸 다 깎아 가지고 이런 낭패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
여러분! 성령의 감동은 소멸시켜선 안됩니다. 소멸시키면 성령께서 섭섭해 하십니다. 언젠가는 성령께서 반드시 깨닫게 하시고 억지로라도 바른 길로 인도하십니다. ⇒ 다음주는 맥추감사주일 : 성령의 감동대로 감사하십시오.
③ 언제나 성령님을 의지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성령님! 저는 내 힘으로는 살수가 없습니다. 내 지혜로도 살수가 없습니다. 성령님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살수가 없습니다. 성령님이 은혜주지 않으시면 살수가 없습니다. 저를 도와주십시오. 저를 바른 길로 인도해 주십시오.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저를 꼭 붙잡아 주옵소서. 이것이 저의 행복이고 축복입니다. "
이런 사람에게 성령님은 더욱 감동을 풍성히 주십니다. 더 복된 길, 더 아름다운 길, 더 깊은 진리의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어떤 사람이 새벽기도좀 나가자고 했더랍니다.
"집사님! 새벽기도좀 나갑시다. 얼마나 말씀이 좋고 은혜스러운지 몰라요. 새벽기도 나가서 기도좀 합시다. "
그랬더니 "아이고 그런 말 마시오. 나라도 여호와 하나님 걱정 안 시켜 드려야지, 교인들이 새벽마다 나가서 저렇게 부르짖으면 여호와 하나님이 얼마나 성가시겠느냐" 고. 그래서 자기는 여호와 하나님께 성가시게 안해 드리기 위해서 새벽기도를 안나간다는 거예요.
여러분! 속초앞바다에 가서 물 한 통 떠간다고 바닷물이 줄어듭니까 아예 드럼통으로 떠가보세요. 줄어지나요. 바닷물도 이렇게 많거늘 하늘나라 창고는 언제나 더 가득차 있습니다. 성령님의 은혜와 축복은 저 바닷물보다 더 창일하게 넘칩니다.
그러므로 걱정 마시고 더욱 성령으로 충만하십시오. 더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하십시오. 더 성령님의 충만한 인도 속에서 사십시오. 그런 인생엔 언제나 승리, 축복, 영광만 있을 뿐입니다. 그런 여러분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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