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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보혜사, 곧 성령께서 하시는 일

본문

사랑하는 선교사여러분, 우리 주님의 은혜와 여호와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보혜사 성령의 위로하심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오늘은 삼위일체주일(성령강림절 후 첫째 주일)이며, 설교본문은 요한복음 16장 12절에서 15절의 말씀입니다.
(12)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13)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14)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15)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하였노라 아멘.
진리의 영(성령)으로서 ‘보혜사’란 명칭을 사용한 것은 신약성서에서 요한복음이 유일합니다. 요한복음의 고별사(13-17장)에서 예수는 다섯 번에 걸쳐서 ‘보혜사’에 대한 말씀을 하셨습니다(14:16-17; 14:25-26; 15:26-27; 16:7-11; 16:12-15). 그리스어 ‘파라클레토스’(παρκλζτο)는 ‘변호사, 조력자, 원조자’를 의미하며, 이를 영어성경(NASB)은 ‘조력자’(Helper)로, 독일어판 루터성경(Lutherbible)은 ‘위로자’(Troster)로, 한글판 성경은 ‘보혜사’(保惠師)로 번역한 것입니다.
예수께서 그의 고별사에서 다섯 번이나 언급하신 ‘보혜사’에 관한 말씀은, 예수께서 아버지 여호와 하나님께 간구 하셔서 예수의 이름으로 오실 ‘보혜사 성령께서 하실 일’에 관한 것입니다.
(1) 보혜사는 제자들을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고 늘 그들과 함께 머물러 있을 분입니다(14:16-18). 이는 보혜사가 이 땅의 교회공동체와 영원히 함께 하시는 현존(現存, Dasein)을 의미합니다.
(2) 보혜사는 모든 진리를 가르쳐 주실 것이고 예수의 모든 말씀(예수의 가르침의 모든 것, 계명)을 생각나게 하실 것입니다(14:25-26). 이것은 교회공동체가 제한되어 있는 이해력의 한계성을 극복하고 진리와 말씀 안에 서 있게 하는 보혜사의 가르침과 깨우침입니다.
(3) ‘보혜사 곧 성령께서 하실 일’이 제자들의 입을 통해서 예수를 증거 하는 일인데, 이는 제자들이 예수를 증거 하는 일과 그 일로 인하여 환란과 박해를 받게 될 때에 도우실 분이 보혜사라는 것입니다(15:26-27). 이것은 성령께서 이 땅의 교회가 예수를 증거 하는 선교사역에서 환란이나 박해를 당할 때에 도와주실 분이 곧 보혜사라는 것입니다(행5:32; 6:10; 마10:16-20; 막13;9-13 참조).
(4) ‘보혜사 성령께서 하시는 일’은, ‘죄’란 예수를 배척하고 그를 믿지 않는 불신앙이란 것을 깨우쳐주시고, 또한 성령께서 ‘의’에 대하여는 예수가 이 세상사람들에 의해 죄인취급을 받아 십자가형으로 죽으셨으나 부활 승천하셔서 아버지의 오른편에 올리워졌으므로써 오직 예수만이 ‘의’(義)롭다는 사실을 알게 하며, ‘심판’에 대하여 성령은 심판을 받을 자가 예수가 아니라 사탄, 즉 이세상의 통치자임을 알게 합니다(16:7-11). 이것은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 교회를 통해서, 이 세상의 죄를 들추어 내며, 여호와 하나님의 의가 무엇인가를 깨닫게 하며, 이로써 이 세상을 심판하신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까지 우리는 예수께서 그의 고별사에서 다섯 번에 걸쳐서 하신 보혜사에 관한 말씀, 즉 ‘보혜사 곧 성령께서 하실 일’에 대한 첫 번째의 말씀에서 네 번째의 말씀까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마지막 말씀이 남아있습니다. 이 마지막 말씀이 바로 오늘 우리의 설교본문(16:12-15)입니다. 이 본문말씀을 통해서 오늘 성령강림절 후 첫째주일을 지키는 우리들이 오늘날 이 땅의 교회를 위하여 ‘보혜사 곧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 무엇인가를 살펴보기를 윈합니다.
오늘 우리의 본문은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 분이 하실 일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성령은 제자들을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며, 그들로 하여금 진리를 밝히 깨닫게 하실 것이며, 그렇게 되면 그들에게 무엇이 중요하며 또 어떻게 새로운 상황들에 대처해야 할 것인지를 알게 된다는 것인데, 이것은 곧 진리의 성령이 장래 일을 알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예수가 아버지에게서 들으신 것만을 말씀하셨듯이(3:34; 8:28; 14:10 참조), 성령께서도 예수에게서 들어서 알게 된 것만을 말씀하실 것이며, 또한 예수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아버지의 영광을 위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듯이(7:7-18), 성령도 역시 예수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선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아들)와 여호와 하나님(아버지), 그리고 성령(보혜사)과의 관계입니다. 이 세분의 관계가 보통 관계가 아니고 특별한 관계라는 사실을 나타내는 것이 곧 예수가 아버지에게 들은 것만을 말씀 하셨듯이 성령도 역시 예수에게서 들어서 알게 된 것만을 제자들에게 알릴 것이라는 것과 또한 예수가 아버지의 영광만을 위하신 것처럼 성령도 역시 예수를 영화롭게 하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보혜사 곧 성령께서 일을 하실 때 혼자서 단독으로 하시지 않으시고 아버지(여호와 하나님)와 아들(성자)과 함께 서로 협력하여 사역하신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여기에서 우리는 ‘보혜사 곧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 성부(여호와 하나님)와 성자(예수)의 사역과 구별되면서도 세 분은 서로 깊이 연관되어 있는 삼위일체 여호와 하나님으로서 함께 사역하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의 설교본문이 삼위일체 주일의 본문으로 정해진 그 이유를 설명해 주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다음, 우리가 본문에서 특별히 주목하여 밝힐 것(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보혜사 곧 성령께서 하실 일’을 나타내는 동사(動詞) 중에 특별히 주목해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알리다’(ναελλειν)라는 동사입니다. 이 동사가 우리의 본문에서 세 번(13,14,15절) 반복해서 나타납니다.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13b)는 말씀과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리라’”(14,15절)는 말씀에서 ‘알리시리라’는 동사입니다.
그런데, 이 ‘알리다’라는 동사는 ‘보혜사 곧 성령께서 하시는 일’을 나타내는 ‘가르치다’와 ‘생각나게 하다’(14:26절), ‘증거하다’(15:26)와 ‘책망하다’(16:8), 그리고 본문의 ‘인도하다’(13절)의 동사들과 맥을 같이하는 아주 중요한 동사입니다. 그러므로 보혜사의 가장 중요한 기능들 가운데 하나는 ‘알리는 일’이라 하겠습니다.
우리는 ‘보혜사 곧 성령께서 하시는 일’에 대한 전반을 이미 살펴보았습니다. 하지만 앞서 열거한 동사들과 관련하여 보혜사의 역할을 다시 정리해 봅시다. 보혜사는 예수께서 하신 모든 말씀(계명)을 가르치며 생각나게 하십니다. 보혜사는 예수를 증거하며, 세상을 책망하며 심판합니다. 그리고 보혜사 곧 성령은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며, 우리들로 하여금 장래 일을 알게 하시는 진리의 영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나는 오늘 ‘보혜사 곧 성령께서 하시는 일’ 중에 우리의 본문이 말하는, “보혜사 곧 진리의 성령이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며 장래 일을 알게 한다”는 명제를 중심해서 선교사(혹은 설교자)로서 복음을 선포하는 선교사역(설교사역)에서 성령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이것은 곧 ‘설교와 성령’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사도생전은 사도들이 예수의 증인으로서 복음을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전한 역사이며, 이 일은 성령께서 사도들을 통해서 하신 일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을 성령에 사로잡혀 행해진 성령행전이라고도 합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이같은 사도들의 전통에 서 있는 선교사(설교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사도행전을 계속 써 가는 이 시대의 사도들이라 하겠습니다. 여러분, 이 일을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성령의 도우심 없이는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진리의 성령에 사로잡혀야하고, 장래 일을 알게 하시는 성령의 능력을 우리가 전적으로 의존해야 합니다.
여기에서 먼저 규명해야 할 것은, 성령께서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는 것인데, 진리가 무엇인가라는 것입니다.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난 ‘여호와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계시는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여호와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을 세상에 알리는 일입니다.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길과 진리와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인간에게 계시하신 구원의 도리입니다. 이 놀라운 구원의 도리인 진리를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진리의 영이신 보혜사를 통해서입니다. 이것이 본문이 말하고 있는 ‘알리다’의 의미이며, ‘보혜사 곧 성령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일’과 우리로 하여금 그 진리를 깨달아 ’알 수 있게 하는 일‘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라 하겠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그다음 규명해야 할 것은, 성령께서 우리에게 장래 일을 알게 하신다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것입니다. 장래 일을 알게 한다는 것은 우리가 새로운 상황(때)에 직면했을 때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를 알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달리 말하면, 성령께서 우리 선교사(설교자)들로 하여금 이 시대의 징조(시대정신)와 여호와 하나님의 때(카이로스)를 미리 깨달아 앎으로써 그 때와 상황을 잘 대처 할 수 있게 한다는 말입니다. 이것을 ‘예언자적 감각’이라고 합니다(노발리스, 보렌).
복음을 선포하는 우리 선교사(설교자)들은 이 시대의 예언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예언자로서 우리 선교사(설교자)들은 예언자적 감각을 가져야 합니다. 이 예언자적 감각을 가지고 여호와 하나님을 거역하고 인간을 억압하고 파멸로 가는 시대정신(악령의 정체)을 꿰뚫어 보고, 여호와 하나님의 때(카이로스), 즉 구원과 심판의 때, 종말론적인 때를 미리 깨달아 앎으로써 인간들로 하여금 그 때와 상황을 대처케 하여 구원의 길로 가게 해야 합니다.
보렌은 예언자로서 설교자가 예언자적 감각을 가질 수 있는 것을 ‘성령론적 사고’를 할 때 가능하다는 것이고, 이 성령론적 사고는 바로 ‘시대의 징조를 올바르게 인식하는 사고’라고 합니다. 보렌은 누가복음 12장 54-56절을 가지고 시대의 징조를 올바르게 인식하는 성령론적 사고를 설명합니다. 예수는 당시 사람들에게 “너희가 천지의 기상은 분별할 줄 알면서 어찌 이 시대는 분별치 못하느냐”고 책망한 바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기상’은 ‘징조’이고, ‘시대’는 ‘때’(카이로스)를 말합니다. 때는 위기의 때, 심판과 구원의 때, 종말론적인 때(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를 말합니다. 예수는 이토록 새로운 때, 새로운 상황이 도래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사람들은 그 때와 상황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으며, 따라서 그 때와 상황을 대처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는 이같은 사실을 안타깝게 생각하시고 책망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선교사 여러분, 우리는 이 시대의 예언자로서 예언하기를 힘쓰고 사모해야 합니다. 바울은 성령의 은사를 사모하는 고린도 교회를 향해서 “성령께서 주시는 특별한 재능, 특히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전하는 예언의 은사를 구하라”(고전14:1절 현대어성경)고 권면 하였으며, 또한 바울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명료하게 설교할 수 있는 예언자가 되도록 간절히 원하라”(고전14:39절, 현대어 성경)고 권면 하였습니다.
여러분, 성령께서 우리로 하여금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잘 전할 수 있는 특별한 은사를 허락해 주십니다. 그리고 ‘보혜사 곧 성령께서 하시는 일’은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여 그 진리를 깨달아 알게 하며, 우리로 하여금 장래 일을 알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의 생각에 따라 사는 생각하는 성경론적 사고를 하며 성령의 능력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삶을 살 수 있으시길 바라오며,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성삼위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을 살으시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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