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위일체] 삼위 하나님께 영광
본문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의 근본은 삼위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분인가를 아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여호와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우리의 마음은 그분께 경외와 순종의 영으로 더욱 가득하게 된다.
본문은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환상이 기록되기 전, 복음의 초점이 무엇인지에 관하여 들려주시는 일종의 예고 같은 말씀이다. 내용의 장엄함과 깊음 때문에 본문은 계시록 전반부의 최고의 구절로 인정받고 있다. 이 구절은 삼위일체 여호와 하나님의 이해와 인식에 결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말씀이다.
순서는 성부, 성령, 성자의 순으로 되어 있다. ‘알파’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로부터 ‘오메가’로서 임하실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언급이 나타나 있다. 그 사이에는 ‘일곱 영’의 다양한 활동이 계심을 알게 된다.
본문 4절 초반부는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로 시작된다.
본서는 1세기 당시 아시아에 역사적으로 분명하게 존재했던 일곱교회에 회람된 서신이다. 그런 점에서 본서는 추상적인 내용을 다룬 것이 아니라 일곱 교회에 구체적인 정황에 부합되는 내용으로 구성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하필 일곱 교회만을 거론하고 있는가 요한은 완성의 숫자 일곱을 제시함으로써 본서가 역사적인 아시아의 일곱 교회를 넘어 당시의 모든 교회, 심지어는 오고 오는 세대의 모든 교회들에게 적용될 수 있도록 매우 독특한 방식으로 본서를 저술한 것이다.
본문을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삼위 여호와 하나님의 영원하심과 인류를 위한 위대한 사역이 어떠함을 모든 교회에게 선포하고 계신다.
우리는 주님의 장엄한 선포의 말씀을 받고 다시 한번 우리의 믿음을 새롭게 하자. 영원하신 여호와 하나님, 우리의 삶에 친히 개입하시는 성령님, 그리고 재림주로 오셔서 마침내 여호와 하나님 나라를 완성하실 주님께 가슴 뜨거운 찬송과 영광을 돌리자.
A. 성부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고 친히 말씀하신다.
1. 사도 요한이 여호와 하나님에 대하여 서술하는 표현은 대단히 장엄하다.
본문 4절 중반절에,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 라 한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영존성을 잘 풀어 운율에 맞춰 찬송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지금까지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께 사용되었던 일반적인 칭호였다. 일찍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광야의 떨기나무에서 모세에게 “나는 스스로 있는 자” (출 3:14)라고 말씀하셨다. 유대인들은 이것을 해석하여 과거에도 계셨고, 현재도 거하시고, 장래에도 계실 분이라고 표현하였다.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이런 표현은 계시록에서만 5번 나오는데(1:4, 1:8, 4:8, 11:7, 16:5), 여기에는 사도 요한의 의도적 패턴이 보인다. 즉, 앞의 세 경우 세 개의 시제로 표현하고 있지만, 11장과 16장에서는 두 개의 시제를 사용하고 있다. 곧,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라는 어구는 다섯 번의 언급 모두에 해당되지만, ‘장차 오실 이’라는 언급은 본절과 1:8, 4:8에만 등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장차 오실 이’로 번역된 말(호 에르코메노스)는 현재 분사형으로 문자적으로는 ‘오고 계시는 이’로 번역된다.
왜 요한은 여호와 하나님의 미래적 측면을 현재진행적 의미로 변형하고 있는가 그 이유는 여호와 하나님은 미래에 정태적으로 존재하시는 영원하신 분이 아니라 현재 속에 역동적으로 침투하고 계시는 미래의 힘으로서의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4:8에 언급된 환상 속에서 이미 여호와 하나님의 ‘종말론적인 도래’가 발생했으므로 뒤에 나오는 두 번의 경우에 ‘장차 오실 이’라는 언급이 생략되어 있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런 것이다.
과연 성부 여호와 하나님은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영원한 분이시다. 할렐루야!
2. 여호와 하나님은 스스로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고 말씀하신다.
본문 8절, “주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
본절은 여호와 하나님의 자기 선언이다. 본절을 어순에 주의하여 원문에 부합하게 다시 번역하면,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앞으로 오실 전능하신 주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는 알파요 오메가이다’ 라고 말씀하신다. ” 라고 할 수 있다.
즉 여호와 하나님의 자기 선언과 요한의 해석이 명확히 구분되고 있는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알게 된 사람들에게 새로운 문자적 서술을 하셨다. 본서가 기록된 때는 헬라어가 세계언어가 되어 예수님의 부활을 만방에 전하게 된 시점이다.
이 때에 ‘나는 알파요 오메가이다’라고 하신 것은 세계를 향한 현대적 의미를 갖는다.
헬라어 문자는 ‘알파, 베타, 감마, 델타’로 시작하여 ‘피, 키, 프시, 오메가’로 끝나는 스물 네개로 조직되어 있다. 이 속에 인류의 역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루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섭리가 다 들어 있다고 본다.
유대의 랍비들은 그들의 관용구 가운데 ‘율법을 알렙부터 타우까지 지켰다’는 말을 사용하는데, 이것은 율법을 완전하게 준수한다는 의미이다. 히브리어는 ‘알렙, 베트’로부터 ‘신, 타우’까지 23개 자음글자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여호와 하나님의 영존성과 완전성은 히브리 문화와 헬라 문화를 넘어 온 세계에 임하여 있고, 우리 한국사람의 말과 생각 속에 들어와 계신다.
‘ㄱ, ㄴ, ㄷ, ㄹ’로부터 ‘ㅜ, ㅠ, ㅡ, ㅣ’까지 24글자 안에 들어오셔서 한국인의 사고와 표현을 완전케 하시며, 우리의 믿음을 영원토록 견고하게 하실 분은 바로 성부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이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 민족의 시작부터 지켜주시다가 때가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게하셨고, 장차 그 아들을 다시 보내실 때까지 우리의 믿음을 견고케 하실 것이다. 할렐루야!
B. 성령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 보좌 앞의 일곱 영”으로 나타나신다.
4절을 다시 보자.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와 그 보좌 앞에 일곱 영과…”
1. 여기 언급된 일곱 영은 스가랴 4장에서 끌어온 ‘성령에 대한 상징적 묘사’이다.
슥 4:2, “그가 내게 묻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대답하되, 내가 보니 순금 등대가 있는데 그 꼭대기에 주발 같은 것이 있고 또 그 등대에 일곱 등잔이 있으며 그 등대 꼭대기 등잔에는 일곱 관이 있고... ”
사도 요한은 이 문구로부터 일곱 영에 대한 상징을 끌어 왔다. 이 일곱 영이 여호와 하나님의 보좌 앞에 존재하고 있다는 점은 그가 여호와 하나님과 동등하다는 것을 뚜렷하게 드러낸다.
2. 성령님을 일곱 영으로 묘사한 것은 성령님의 사역이 매우 다양함을 가리킨다.
성령님은 온 땅에 퍼져 있는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들과 그들이 행하고 있는 수많은 일들에 직접 관여하신다. 이 사역이 단순한 것일 수 없다.
때로는 불같이 강한 임재를 보이신다. 성령님은 기도하며 순종하는 자 위에 강력히 역사하셔서, 저들의 세계관, 가치관을 일시에 바꾸시며, 일생을 바쳐 주의 일에 헌신토록 열정을 불러 일으키신다.
때로는 비둘기같이 온유하게 임재하신다. 구하며 기다리는 자 위에 조용히 임하셔서 어느덧 성품까지 바꾸시며, 겸손히 사명을 감당하는 여호와 하나님 나라의 일꾼이 되게 하신다.
성령님의 사역은 참으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이사야 11:2에 성령님을 가리켜서 “여호와의 신, 곧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모략과 재능의 신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라고 7가지로 묘사하고 있음은 흥미롭다.
3. 또한 일곱 영은 성령님의 사역이 완전함을 가리킨다.
원래부터 일곱은 완전함과 승리를 나타내는 여호와 하나님의 숫자로 인식되어 왔다.
계시록 전반에 일곱 영의 모양과 성격을 드러냄으로써 성령님의 존재와 사역에 확신을 갖도록 만들어준다(3:1, 4:5, 5:6).
어린 양에게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는데, 그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여호와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는 말씀은 성령님을 상징하는 세계화적 의미로 해석된다.
우리 나라 땅에서도 역시 ‘ㄱ’부터 ‘ㅣ’까지 어느곳 하나 빠뜨림없이 도우시는 손길이 이런 의미로 나타난다.
4. 아울러 일곱 영은 일곱 교회와 관련된 뜻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아는대로 계시록 2,3장에 언급된 일곱 교회는 1세기 당시의 실제 교회이기도 하지만, 실상은 당대의 모든 교회를 대표할 뿐 아니라 오고오는 세대의 모든 교회를 상징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일곱 영은 세상의 모든 교회에 임하시는 성령님의 권능을 함축하는 말이다. 오늘 우리가 해야할 일은 성령님 안에 거하면서 성령께서 우리와 우리 교회를 여호와 하나님의 은헤와 평강으로 가득 채우시도록 하는 일이다.
우리는 한국 땅 곳곳의 교회까지 빠짐없이 임재하시는 ‘보좌 앞의 일곱 영’되신 성령님께 더욱 큰 영광과 찬송을 드리자.
C. 성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는 약속을 이루실 분이시다.
본문 7절,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1. 오늘 본문에서 사도 요한은 성자 예수님을 묘사하면서, 그의 종말론적인 재림을 크게 강조하고 있다.
사도에게 있어서 우리 예수님은 부활 승천하셔서 성령을 파송하고 계시는 분이심과 동시에, 장차 구름을 타고 오셔서 모든 역사를 마감하시며 여호와 하나님 나라를 완성하실 분으로 크게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오시리라’(에르케타이)는 직설법 현재형이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확실성과 임박성을 생생히 묘사한다.
“보라!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신다!”
그가 재림하시는 광경은 공개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보게 될 것이다. 특히 그를 찌른 자들도 보게 될 것이다.
실제 십자가 상의 예수님을 찌른 자는 요한복음에서는 단수로 되어 있는데, 여기서는 찌른 자들이 복수로 표현된 것은 당시의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나 그들과 야합했던 자들 뿐 아니라 오고 오는 세대에 그리스도를 대적한 모든 이들을 아울러 지칭하는 것이다.
그들 모두가 슬피 통곡할 것을 사도 요한은 “그러하리라 아멘”(nai amen)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 nai가 헬라식의 긍정을 의미한다면, amen은 히브리식의 긍정을 뜻한다. 이는 본서가 헬라적 전통과 히브리식 전통 아래 있는 모든 문화권의 성도들에게 주어진 것임을 잘 보여준다.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2. 본문 5절에서 요한은 재림하실 예수님에게 세가지 칭호를 드리고 있다.
5절,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
1)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세대에 여호와 하나님을 증거하시는 “충성된 증인” 이시다. 그분은 진리 자체이시며,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진리의 충성된 증인으로서 자신의 피를 뿌려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 경륜을 완수하신 분이시다.
증인(마르투스)이란 말에서 순교자(martyr)란 단어가 파생된 것을 보더라도, 충성된 증인이신 그리스도를 따르는 그의 제자들은 복음을 위하여 목숨까지도 불사하는 각오가 있어야 함을 이 칭호에서 알 수 있다.
2) 예수 그리스도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분” 이시다. 이 구절은 시 89:27 (“내가 또 저로 장자를 삼고 세계 열왕의 으뜸이 되게 하며”)의 인용인 듯 하다.
여기 ‘먼저 나시고’ (호 프로토토코스)는 단순히 출생의 순위에서 먼저 난 자라는 순열적 의미보다는 ‘절대적 군주로서 왕좌에 등극하는 것’을 의미한다. 단적으로 말해 이것은 메시야의 ‘주권’에 대한 언급이다.
그러므로 본절의 표현은 충성된 증인의 결말이 순교적 죽음으로 귀결된다면 그러한 순교적 죽음이 궁극적으로는 부활의 첫열매로 이어진다는 사상을 함축한다. (고전 15:20)
이것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역시 그의 죽음과 부활에 동참할 것임을 간접적으로 예시한다.
골 1:18,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그가 근본이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
3) 성자 예수님에 대한 세 번째 칭호는 “땅의 임금들의 머리” 이다. 이 표현 역시 앞서 말한 시편 89:27의 “열왕의 으뜸이 되게 하며” 라는 시편 기자의 찬양을 반영한다. 죽으시고 부활하사 승천하신 예수님은 여호와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며 만천하를 통치하신다. 그리스도는 만왕의 왕이시며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다.
빌 2:10~11,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
3. 그러나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에게 적용된 이러한 호칭은 그가 만왕의 왕으로 공개적으로 재림하실 것에 대한 기대를 예시하고 있는 것이다.
“보라!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요한의 묵시록을 읽게 될 당시의 교회 성도들은 참혹하고 교묘한 로마의 압제하에서 종말론적인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할 것을 누구보다도 절실히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에게 주님의 재림의 소식이야말로 가장 반가운 복음이 아닐 수 없었다. 이것은 오늘 마지막 시대에 사는 우리들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주님의 재림이 지금 늦추어지고 있는 이유를 아는가 주님은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받기를 원하셔서 교회의 전도 활동을 위한 시간을 주고 계신다.
벧후 3:9,10,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 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
예수님의 재림은 ‘알파부터 오메가까지’, ‘A부터 Z까지’, ‘ㄱ부터 ㅣ까지’ 실현된 성삼위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의 완성 사건이다.
세상의 모든 과학이나 상상적 인식을 뛰어넘는 초자연적 완전성을 경험하게 하시는 일이 반드시 일어난다!
주님의 부활은 이렇게 성삼위의 은총속에서 재림을 향한 영원성으로 나아간다.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을 창으로 직접 찌른 자들로부터 지금도 무수히 주님을 배반하면서 주의 몸된 교회를 찌르고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이 슬피 울며 통곡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맺는 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영존하시는 성부 여호와 하나님은 알파와 오메가가 되셔서, 과거· 현재· 미래를 완전하게 다스리신다. 우리 시대 한국 교회와 우리 교회를 섭리해 오면서 우리를 여호와 하나님 나라의 일꾼이 되게 하셨다.
‘일곱 영’되시는 성령 여호와 하나님의 도움으로 우리는 이처럼 세계사에 드문 복음의 나라를 이루어가고 있다.
이제 우리는 구름타고 재림하시는 그리스도 예수를 뵙게 될 확신을 갖는다. 주님은 과연 속히 오셔서 우리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 이 주님께 영광을 돌리자. 이 주님께 소리를 높여 찬양을 드리자.
많은 사람들이 영적인 생활이 부족하다고 불평하며 영적인 생활을 강화하기 위해 많은 기도를 하고 있다. 그렇지만 연약한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힘있고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사는 데 실제로 필요한 것에 관해서는 정말로 무시하고 있는 것이 있다. 영원히 찬송 받으실 삼위일체 여호와 하나님을 찬미하는 예배보다 더 이상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없다는 것을 배우자.
우리가 바라고 의지할 분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복을 주신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계속해서 여호와 하나님과 가까이 끊임없이 교제한다면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여호와 하나님과 여호와 하나님의 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놀라운 능력으로 아버지 여호와 하나님과 아들 그리스도의 임재를 알 수 있는 것은 바로 성령님을 통해서이다. 성령 여호와 하나님을 주신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실제로 알게 하시고,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 것이 되게 하시려고 하셨던 것이다.
전적으로 성령께 헌신하는 삶, 여호와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놀라운 일을 하실 것이라는 믿음과 확신이 가득찬 마음,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여호와 하나님의 제단에 거룩한 산 제물로 바쳐진 몸이라면 틀림없이 받아들이실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가 찬양의 노래를 부르도록 가르치실 것이다.
한 유대인 여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다. 가족들은 그 여자로 하여금 새로이 얻은 믿음을 버리게 하려고 온갖 노력을 다했다. 유럽 여행을 시켜주기도 하고, 그리스도를 부인하기만 한다면 갖고 싶은 것이나 하고 싶은 어떤 일이라도 다 하게 해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 여자는 그리스도께 대한 그녀의 사랑 안에서 조금도 흔들림이 없이 굳세게 버티었다.
마침내 여자의 부모는 딸을 위해 만찬을 베풀고 모든 친구들을 다 불렀다. 아버지가 식탁에 서서 손님에게 말했다. “우리는 오늘 밤 어떤 특별한 이유로 여러분을 이 자리에 모셨습니다. 우리 딸이 저 비천한 나사렛 사람을 따르기로 작정했습니다. 오늘 밤 내 딸은 마지막 결정을 내려야만 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를 단념하든가,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부모의 집을 떠나든가 해야 합니다. ” 놀라고 당황한 딸은 한동안 말문을 열지 못했다.
얼마 후 딸은 피아노를 치면서 찬송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십자가를 내가 지고 주를 따라가도다. 이제부터 예수로만 나의 보배 삼겠네. ” 노래를 마친 딸은 자기 방으로 들어가서 옷을 갈아입고 가방을 꾸려 부모의 집을 떠났다.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최상의 희생을 기꺼이 치렀던 것이다.
한 여성도가 핍박하는 경찰관과 싸우고 있었다. 그녀는 찬송가를 뺏기지 않으려 했던 것이다. 40년간이나 간직해 오던 찬송가를 내줄 수 없었던 것이다. 끝내는 피를 흘리게 되고 코뼈가 채찍에 맞아 부러졌을 뿐 아니라 팔에까지 심한 상처를 입게 되었다.
그녀는 여호와 하나님을 찬송하는 찬양곡이 담긴 찬송가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경관들의 폭력까지도 견디었는데, 우리들은 찬송가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교회에서나 겨우 부르는 정도가 아닌가
찬양은 구원받은 성도가 영원토록 하게 될 사역이다. 주님이 재림하셔서 우리를 여호와 하나님 보좌 앞으로 인도하시면 우리는 손에 손에 종려가지를 들고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할 것이다. 계 7:9~12절에 그 장엄한 장면이 잘 기록되어 있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여호와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섰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여호와 하나님께 경배하여 가로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능력과 힘이 우리 여호와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로다. 아멘 ’ 하더라”
그러므로 우리는 사도 요한과 같이 이 믿음을 가지고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자.
· 영원하신 여호와 하나님, 영존하신 아버지를 노래하자.
· 보혜사 성령님의 인도하심과 동행하심을 노래하자.
· 장차 오실 예수님을 소망하며 그가 이루신 구속의 역사를 노래하자.
본문은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환상이 기록되기 전, 복음의 초점이 무엇인지에 관하여 들려주시는 일종의 예고 같은 말씀이다. 내용의 장엄함과 깊음 때문에 본문은 계시록 전반부의 최고의 구절로 인정받고 있다. 이 구절은 삼위일체 여호와 하나님의 이해와 인식에 결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말씀이다.
순서는 성부, 성령, 성자의 순으로 되어 있다. ‘알파’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로부터 ‘오메가’로서 임하실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언급이 나타나 있다. 그 사이에는 ‘일곱 영’의 다양한 활동이 계심을 알게 된다.
본문 4절 초반부는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로 시작된다.
본서는 1세기 당시 아시아에 역사적으로 분명하게 존재했던 일곱교회에 회람된 서신이다. 그런 점에서 본서는 추상적인 내용을 다룬 것이 아니라 일곱 교회에 구체적인 정황에 부합되는 내용으로 구성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하필 일곱 교회만을 거론하고 있는가 요한은 완성의 숫자 일곱을 제시함으로써 본서가 역사적인 아시아의 일곱 교회를 넘어 당시의 모든 교회, 심지어는 오고 오는 세대의 모든 교회들에게 적용될 수 있도록 매우 독특한 방식으로 본서를 저술한 것이다.
본문을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삼위 여호와 하나님의 영원하심과 인류를 위한 위대한 사역이 어떠함을 모든 교회에게 선포하고 계신다.
우리는 주님의 장엄한 선포의 말씀을 받고 다시 한번 우리의 믿음을 새롭게 하자. 영원하신 여호와 하나님, 우리의 삶에 친히 개입하시는 성령님, 그리고 재림주로 오셔서 마침내 여호와 하나님 나라를 완성하실 주님께 가슴 뜨거운 찬송과 영광을 돌리자.
A. 성부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고 친히 말씀하신다.
1. 사도 요한이 여호와 하나님에 대하여 서술하는 표현은 대단히 장엄하다.
본문 4절 중반절에,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 라 한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영존성을 잘 풀어 운율에 맞춰 찬송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지금까지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께 사용되었던 일반적인 칭호였다. 일찍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광야의 떨기나무에서 모세에게 “나는 스스로 있는 자” (출 3:14)라고 말씀하셨다. 유대인들은 이것을 해석하여 과거에도 계셨고, 현재도 거하시고, 장래에도 계실 분이라고 표현하였다.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이런 표현은 계시록에서만 5번 나오는데(1:4, 1:8, 4:8, 11:7, 16:5), 여기에는 사도 요한의 의도적 패턴이 보인다. 즉, 앞의 세 경우 세 개의 시제로 표현하고 있지만, 11장과 16장에서는 두 개의 시제를 사용하고 있다. 곧,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라는 어구는 다섯 번의 언급 모두에 해당되지만, ‘장차 오실 이’라는 언급은 본절과 1:8, 4:8에만 등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장차 오실 이’로 번역된 말(호 에르코메노스)는 현재 분사형으로 문자적으로는 ‘오고 계시는 이’로 번역된다.
왜 요한은 여호와 하나님의 미래적 측면을 현재진행적 의미로 변형하고 있는가 그 이유는 여호와 하나님은 미래에 정태적으로 존재하시는 영원하신 분이 아니라 현재 속에 역동적으로 침투하고 계시는 미래의 힘으로서의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4:8에 언급된 환상 속에서 이미 여호와 하나님의 ‘종말론적인 도래’가 발생했으므로 뒤에 나오는 두 번의 경우에 ‘장차 오실 이’라는 언급이 생략되어 있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런 것이다.
과연 성부 여호와 하나님은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영원한 분이시다. 할렐루야!
2. 여호와 하나님은 스스로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고 말씀하신다.
본문 8절, “주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
본절은 여호와 하나님의 자기 선언이다. 본절을 어순에 주의하여 원문에 부합하게 다시 번역하면,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앞으로 오실 전능하신 주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는 알파요 오메가이다’ 라고 말씀하신다. ” 라고 할 수 있다.
즉 여호와 하나님의 자기 선언과 요한의 해석이 명확히 구분되고 있는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알게 된 사람들에게 새로운 문자적 서술을 하셨다. 본서가 기록된 때는 헬라어가 세계언어가 되어 예수님의 부활을 만방에 전하게 된 시점이다.
이 때에 ‘나는 알파요 오메가이다’라고 하신 것은 세계를 향한 현대적 의미를 갖는다.
헬라어 문자는 ‘알파, 베타, 감마, 델타’로 시작하여 ‘피, 키, 프시, 오메가’로 끝나는 스물 네개로 조직되어 있다. 이 속에 인류의 역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루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섭리가 다 들어 있다고 본다.
유대의 랍비들은 그들의 관용구 가운데 ‘율법을 알렙부터 타우까지 지켰다’는 말을 사용하는데, 이것은 율법을 완전하게 준수한다는 의미이다. 히브리어는 ‘알렙, 베트’로부터 ‘신, 타우’까지 23개 자음글자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여호와 하나님의 영존성과 완전성은 히브리 문화와 헬라 문화를 넘어 온 세계에 임하여 있고, 우리 한국사람의 말과 생각 속에 들어와 계신다.
‘ㄱ, ㄴ, ㄷ, ㄹ’로부터 ‘ㅜ, ㅠ, ㅡ, ㅣ’까지 24글자 안에 들어오셔서 한국인의 사고와 표현을 완전케 하시며, 우리의 믿음을 영원토록 견고하게 하실 분은 바로 성부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이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 민족의 시작부터 지켜주시다가 때가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게하셨고, 장차 그 아들을 다시 보내실 때까지 우리의 믿음을 견고케 하실 것이다. 할렐루야!
B. 성령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 보좌 앞의 일곱 영”으로 나타나신다.
4절을 다시 보자.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와 그 보좌 앞에 일곱 영과…”
1. 여기 언급된 일곱 영은 스가랴 4장에서 끌어온 ‘성령에 대한 상징적 묘사’이다.
슥 4:2, “그가 내게 묻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대답하되, 내가 보니 순금 등대가 있는데 그 꼭대기에 주발 같은 것이 있고 또 그 등대에 일곱 등잔이 있으며 그 등대 꼭대기 등잔에는 일곱 관이 있고... ”
사도 요한은 이 문구로부터 일곱 영에 대한 상징을 끌어 왔다. 이 일곱 영이 여호와 하나님의 보좌 앞에 존재하고 있다는 점은 그가 여호와 하나님과 동등하다는 것을 뚜렷하게 드러낸다.
2. 성령님을 일곱 영으로 묘사한 것은 성령님의 사역이 매우 다양함을 가리킨다.
성령님은 온 땅에 퍼져 있는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들과 그들이 행하고 있는 수많은 일들에 직접 관여하신다. 이 사역이 단순한 것일 수 없다.
때로는 불같이 강한 임재를 보이신다. 성령님은 기도하며 순종하는 자 위에 강력히 역사하셔서, 저들의 세계관, 가치관을 일시에 바꾸시며, 일생을 바쳐 주의 일에 헌신토록 열정을 불러 일으키신다.
때로는 비둘기같이 온유하게 임재하신다. 구하며 기다리는 자 위에 조용히 임하셔서 어느덧 성품까지 바꾸시며, 겸손히 사명을 감당하는 여호와 하나님 나라의 일꾼이 되게 하신다.
성령님의 사역은 참으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이사야 11:2에 성령님을 가리켜서 “여호와의 신, 곧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모략과 재능의 신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라고 7가지로 묘사하고 있음은 흥미롭다.
3. 또한 일곱 영은 성령님의 사역이 완전함을 가리킨다.
원래부터 일곱은 완전함과 승리를 나타내는 여호와 하나님의 숫자로 인식되어 왔다.
계시록 전반에 일곱 영의 모양과 성격을 드러냄으로써 성령님의 존재와 사역에 확신을 갖도록 만들어준다(3:1, 4:5, 5:6).
어린 양에게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는데, 그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여호와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는 말씀은 성령님을 상징하는 세계화적 의미로 해석된다.
우리 나라 땅에서도 역시 ‘ㄱ’부터 ‘ㅣ’까지 어느곳 하나 빠뜨림없이 도우시는 손길이 이런 의미로 나타난다.
4. 아울러 일곱 영은 일곱 교회와 관련된 뜻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아는대로 계시록 2,3장에 언급된 일곱 교회는 1세기 당시의 실제 교회이기도 하지만, 실상은 당대의 모든 교회를 대표할 뿐 아니라 오고오는 세대의 모든 교회를 상징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일곱 영은 세상의 모든 교회에 임하시는 성령님의 권능을 함축하는 말이다. 오늘 우리가 해야할 일은 성령님 안에 거하면서 성령께서 우리와 우리 교회를 여호와 하나님의 은헤와 평강으로 가득 채우시도록 하는 일이다.
우리는 한국 땅 곳곳의 교회까지 빠짐없이 임재하시는 ‘보좌 앞의 일곱 영’되신 성령님께 더욱 큰 영광과 찬송을 드리자.
C. 성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는 약속을 이루실 분이시다.
본문 7절,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1. 오늘 본문에서 사도 요한은 성자 예수님을 묘사하면서, 그의 종말론적인 재림을 크게 강조하고 있다.
사도에게 있어서 우리 예수님은 부활 승천하셔서 성령을 파송하고 계시는 분이심과 동시에, 장차 구름을 타고 오셔서 모든 역사를 마감하시며 여호와 하나님 나라를 완성하실 분으로 크게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오시리라’(에르케타이)는 직설법 현재형이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확실성과 임박성을 생생히 묘사한다.
“보라!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신다!”
그가 재림하시는 광경은 공개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보게 될 것이다. 특히 그를 찌른 자들도 보게 될 것이다.
실제 십자가 상의 예수님을 찌른 자는 요한복음에서는 단수로 되어 있는데, 여기서는 찌른 자들이 복수로 표현된 것은 당시의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나 그들과 야합했던 자들 뿐 아니라 오고 오는 세대에 그리스도를 대적한 모든 이들을 아울러 지칭하는 것이다.
그들 모두가 슬피 통곡할 것을 사도 요한은 “그러하리라 아멘”(nai amen)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 nai가 헬라식의 긍정을 의미한다면, amen은 히브리식의 긍정을 뜻한다. 이는 본서가 헬라적 전통과 히브리식 전통 아래 있는 모든 문화권의 성도들에게 주어진 것임을 잘 보여준다.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2. 본문 5절에서 요한은 재림하실 예수님에게 세가지 칭호를 드리고 있다.
5절,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
1)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세대에 여호와 하나님을 증거하시는 “충성된 증인” 이시다. 그분은 진리 자체이시며,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진리의 충성된 증인으로서 자신의 피를 뿌려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 경륜을 완수하신 분이시다.
증인(마르투스)이란 말에서 순교자(martyr)란 단어가 파생된 것을 보더라도, 충성된 증인이신 그리스도를 따르는 그의 제자들은 복음을 위하여 목숨까지도 불사하는 각오가 있어야 함을 이 칭호에서 알 수 있다.
2) 예수 그리스도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분” 이시다. 이 구절은 시 89:27 (“내가 또 저로 장자를 삼고 세계 열왕의 으뜸이 되게 하며”)의 인용인 듯 하다.
여기 ‘먼저 나시고’ (호 프로토토코스)는 단순히 출생의 순위에서 먼저 난 자라는 순열적 의미보다는 ‘절대적 군주로서 왕좌에 등극하는 것’을 의미한다. 단적으로 말해 이것은 메시야의 ‘주권’에 대한 언급이다.
그러므로 본절의 표현은 충성된 증인의 결말이 순교적 죽음으로 귀결된다면 그러한 순교적 죽음이 궁극적으로는 부활의 첫열매로 이어진다는 사상을 함축한다. (고전 15:20)
이것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역시 그의 죽음과 부활에 동참할 것임을 간접적으로 예시한다.
골 1:18,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그가 근본이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
3) 성자 예수님에 대한 세 번째 칭호는 “땅의 임금들의 머리” 이다. 이 표현 역시 앞서 말한 시편 89:27의 “열왕의 으뜸이 되게 하며” 라는 시편 기자의 찬양을 반영한다. 죽으시고 부활하사 승천하신 예수님은 여호와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며 만천하를 통치하신다. 그리스도는 만왕의 왕이시며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다.
빌 2:10~11,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
3. 그러나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에게 적용된 이러한 호칭은 그가 만왕의 왕으로 공개적으로 재림하실 것에 대한 기대를 예시하고 있는 것이다.
“보라!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요한의 묵시록을 읽게 될 당시의 교회 성도들은 참혹하고 교묘한 로마의 압제하에서 종말론적인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할 것을 누구보다도 절실히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에게 주님의 재림의 소식이야말로 가장 반가운 복음이 아닐 수 없었다. 이것은 오늘 마지막 시대에 사는 우리들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주님의 재림이 지금 늦추어지고 있는 이유를 아는가 주님은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받기를 원하셔서 교회의 전도 활동을 위한 시간을 주고 계신다.
벧후 3:9,10,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 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
예수님의 재림은 ‘알파부터 오메가까지’, ‘A부터 Z까지’, ‘ㄱ부터 ㅣ까지’ 실현된 성삼위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의 완성 사건이다.
세상의 모든 과학이나 상상적 인식을 뛰어넘는 초자연적 완전성을 경험하게 하시는 일이 반드시 일어난다!
주님의 부활은 이렇게 성삼위의 은총속에서 재림을 향한 영원성으로 나아간다.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을 창으로 직접 찌른 자들로부터 지금도 무수히 주님을 배반하면서 주의 몸된 교회를 찌르고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이 슬피 울며 통곡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맺는 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영존하시는 성부 여호와 하나님은 알파와 오메가가 되셔서, 과거· 현재· 미래를 완전하게 다스리신다. 우리 시대 한국 교회와 우리 교회를 섭리해 오면서 우리를 여호와 하나님 나라의 일꾼이 되게 하셨다.
‘일곱 영’되시는 성령 여호와 하나님의 도움으로 우리는 이처럼 세계사에 드문 복음의 나라를 이루어가고 있다.
이제 우리는 구름타고 재림하시는 그리스도 예수를 뵙게 될 확신을 갖는다. 주님은 과연 속히 오셔서 우리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 이 주님께 영광을 돌리자. 이 주님께 소리를 높여 찬양을 드리자.
많은 사람들이 영적인 생활이 부족하다고 불평하며 영적인 생활을 강화하기 위해 많은 기도를 하고 있다. 그렇지만 연약한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힘있고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사는 데 실제로 필요한 것에 관해서는 정말로 무시하고 있는 것이 있다. 영원히 찬송 받으실 삼위일체 여호와 하나님을 찬미하는 예배보다 더 이상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없다는 것을 배우자.
우리가 바라고 의지할 분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복을 주신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계속해서 여호와 하나님과 가까이 끊임없이 교제한다면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여호와 하나님과 여호와 하나님의 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놀라운 능력으로 아버지 여호와 하나님과 아들 그리스도의 임재를 알 수 있는 것은 바로 성령님을 통해서이다. 성령 여호와 하나님을 주신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실제로 알게 하시고,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 것이 되게 하시려고 하셨던 것이다.
전적으로 성령께 헌신하는 삶, 여호와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놀라운 일을 하실 것이라는 믿음과 확신이 가득찬 마음,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여호와 하나님의 제단에 거룩한 산 제물로 바쳐진 몸이라면 틀림없이 받아들이실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가 찬양의 노래를 부르도록 가르치실 것이다.
한 유대인 여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다. 가족들은 그 여자로 하여금 새로이 얻은 믿음을 버리게 하려고 온갖 노력을 다했다. 유럽 여행을 시켜주기도 하고, 그리스도를 부인하기만 한다면 갖고 싶은 것이나 하고 싶은 어떤 일이라도 다 하게 해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 여자는 그리스도께 대한 그녀의 사랑 안에서 조금도 흔들림이 없이 굳세게 버티었다.
마침내 여자의 부모는 딸을 위해 만찬을 베풀고 모든 친구들을 다 불렀다. 아버지가 식탁에 서서 손님에게 말했다. “우리는 오늘 밤 어떤 특별한 이유로 여러분을 이 자리에 모셨습니다. 우리 딸이 저 비천한 나사렛 사람을 따르기로 작정했습니다. 오늘 밤 내 딸은 마지막 결정을 내려야만 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를 단념하든가,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부모의 집을 떠나든가 해야 합니다. ” 놀라고 당황한 딸은 한동안 말문을 열지 못했다.
얼마 후 딸은 피아노를 치면서 찬송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십자가를 내가 지고 주를 따라가도다. 이제부터 예수로만 나의 보배 삼겠네. ” 노래를 마친 딸은 자기 방으로 들어가서 옷을 갈아입고 가방을 꾸려 부모의 집을 떠났다.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최상의 희생을 기꺼이 치렀던 것이다.
한 여성도가 핍박하는 경찰관과 싸우고 있었다. 그녀는 찬송가를 뺏기지 않으려 했던 것이다. 40년간이나 간직해 오던 찬송가를 내줄 수 없었던 것이다. 끝내는 피를 흘리게 되고 코뼈가 채찍에 맞아 부러졌을 뿐 아니라 팔에까지 심한 상처를 입게 되었다.
그녀는 여호와 하나님을 찬송하는 찬양곡이 담긴 찬송가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경관들의 폭력까지도 견디었는데, 우리들은 찬송가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교회에서나 겨우 부르는 정도가 아닌가
찬양은 구원받은 성도가 영원토록 하게 될 사역이다. 주님이 재림하셔서 우리를 여호와 하나님 보좌 앞으로 인도하시면 우리는 손에 손에 종려가지를 들고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할 것이다. 계 7:9~12절에 그 장엄한 장면이 잘 기록되어 있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여호와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섰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여호와 하나님께 경배하여 가로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능력과 힘이 우리 여호와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로다. 아멘 ’ 하더라”
그러므로 우리는 사도 요한과 같이 이 믿음을 가지고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자.
· 영원하신 여호와 하나님, 영존하신 아버지를 노래하자.
· 보혜사 성령님의 인도하심과 동행하심을 노래하자.
· 장차 오실 예수님을 소망하며 그가 이루신 구속의 역사를 노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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