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 성령의 책망 - 심판에 대하여
본문
성령이 임하시면 세 가지에 대하여 가르쳐 주십니다.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책망하신다고 했는데 그 말씀은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을 바르게 알도록 깨우쳐 준다는 말씀입니다.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요16:8)
9절부터는 설명입니다.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니라'(요16:9-11)
원래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은 심판에 대한 공포가 마음 속에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임하면 그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오늘 성령이 오셔서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신다고 했는데 그것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심판은 네 가지가 있습니다. 그 중에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고 염려하는 것은 지옥가는 심판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자기가 살아온 삶의 내용을 가지고 천국과 지옥에 가는 일이 결정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늘 심판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일상적으로 짓는 죄가 다 심판과 직결되고, 그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아무리 작은 죄라도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심판을 잘못 이해하면 크게 고민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 명의 세상 임금
그러나 분명히 우리가 알 것은 심판은 이미 끝났습니다.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 부분을 정리하고 심판의 종류에 대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1절에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니라' 했습니다. 여기서 세상 임금은 누구입니까 만일 예수님이 세상 임금이라면 그것은 예수님이 심판을 받았다는 뜻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본문에서 세상 임금은 예수님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요절 하나를 더 찾아보겠습니다.
'이제 이 세상의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 임금이 쫓겨나리라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 이렇게 말씀하심은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보이심이러라'(요12:31-33)
이 말씀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것을 예고하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조금 있으면 이 세상 임금이 쫓겨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쫓겨나는 세상 임금, 그가 누구겠습니까 마귀입니다. 세상 임금이 세 사람이 있었습니다. 보통 세상 임금하면 세상의 왕들이지만 특별히 여기서 말하는 심판과 직결되는 세상 임금은 대통령과 같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세상 임금이 구체적으로 누구 누구였는가를 살펴봅시다.
① 아담
② 마귀
첫 번째 세상 임금은 아담이었는데 그가 죄를 지음으로 그것이 마귀에게로 넘어갔습니다. 그러므로 두 번째 세상 임금은 마귀입니다.
③ 예수님
예수님이 이 세상 임금이 쫓겨나리라 했을 때의 세상 임금은 마귀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승리하심으로 세상 임금이 다시 예수님으로 바뀌었습니다. 예수님은 아담이 마귀에게 빼앗겼던 왕권을 찾으셨습니다. 아담이 지은 죄값을 갚고, 아담이 마귀에게 잃어버렸던 왕권을 되찾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뒤에는 예수님이 세상 임금입니다.
이 부분을 성경을 통해서 다시 확인해 봅시다. 마귀는 예수님을 지극히 높은 산으로 데리고 가더니 온 천하 만국 영광을 다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는 말했습니다.
'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 만국을 보이며 가로되 이 모든 권세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나의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눅4:5-7)
마귀는 천하 만국의 영광은 본래 자기 것은 아니었지만 아담이 자기에게 넘겨준 것이므로 지금은 자기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원하면 누구에게든지 넘겨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아담을 지으시고 왕으로서의 지위와 축복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선악과를 따먹고 범죄함으로 왕권과 모든 축복을 마귀에게 다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만일 범죄하지 않고 지금까지 역사가 진행되어 왔다면 지금도 세상의 왕은 아담일 것입니다. 그리고 지구의 대표는 언제나 아담이 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왕권이기 때문에 따질 것도 없이 아담이 왕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마귀에게 빼앗겼습니다.
빼앗긴 왕권을 되찾으러 오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메시야라는 뜻은 유대 나라의 왕으로 그가 오신 것이 아니라 아담이 잃어버린 왕권을 찾으러 오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예수님이 왕되신 나라에 속한 백성이 된 것입니다. 새로운 나라의 새로운 시민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전에는 '이제 잠시 후면 세상 임금인 마귀가 쫓겨난다. '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이후에는 '세상 임금이 벌써 심판을 받았다. '고 했습니다.
마귀는 언제 심판을 받았을까요 십자가에서 받았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심판의 개념은 마귀가 자기가 가졌던 권세를 예수님에게 빼앗겼다는 말입니다. 아담은 이제 없어져 버렸습니다. 그러나 마귀는 지금도 살아서 존재합니다. 지금도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 속에 살아서 역사합니다.
사울의 나라, 다윗의 나라 - 마귀의 나라, 아들의 나라
다윗이라는 왕이 있었습니다. 다윗은 왕으로 왕권을 회복할 예수님의 모형과 그림자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다윗의 뿌리, 다윗의 왕좌라고 예수님의 왕권을 묘사했습니다. 메시야의 후손을 가리킬 때도 다윗의 후손이라고 말했습니다. 그가 와서 다윗의 왕권을 회복할 것이다. 다윗의 나라가 설 것이다. 이새의 줄기에서 싹이 날 것이다. 다윗이 가졌던 왕권을 통해 예수님이 아담이 잃어버린 왕권을 회복할 것을 묘사한 것입니다.
다윗은 첫 번째 왕이 아닙니다. 사울이 초대 왕입니다. 이스라엘 나라는 구약이 있고 신약이 있습니다. 구약은 모형과 그림자요, 신약은 실체입니다. 실체가 있으면 모형과 그림자가 있고, 모형과 그림자가 있으면 실체가 있기 마련입니다. 이 둘은 언제나 정확하게 맞아 들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회복할 왕권에 대한 모형도도 구약에는 있어야 합니다. 처음 왕은 아담입니다. 둘째 왕은 마귀입니다. 마지막 왕은 예수님입니다. 이것에 대한 모형과 그림자도 구약에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을 다스린 최초의 왕은 사울입니다. 그 다음은 다윗입니다. 사울에게서 왕권을 빼앗은 다윗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모형과 그림자입니다. 시편같은 곳에서는 아예 예수님을 다윗이라고 명명해 버렸습니다.
'여호와께서 그 왕에게 큰 구원을 주시며 기름 부음받은 자에게 인자를 베푸심이여 영영토록 다윗과 그 후손에게로다'(시18:50)
'내가 내 종 다윗을 찾아 나의 거룩한 기름으로 부었도다'(시89:20)
사울 왕 전에는 누가 왕이었습니까 모세부터 사사시대까지는 여호와 하나님이 직접 다스리시는 신정정치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왕이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왕일 때가 가장 중요한 때요, 완전한 때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무엘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이 자신들에게 왕을 세워 달라고 여호와 하나님께 애걸을 해서 사울 왕을 세워 주셨습니다. 처음에는 여호와 하나님이 번개와 우뢰를 보내면서도 허락지 않으셨습니다. 내가 너희의 왕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고집함으로 결국은 왕을 세워 주었는데 그 왕을 세운 뒤에 이스라엘이 망했습니다. 이와 같이 초대교회 당시에는 교권이 없습니다. 성령이 왕입니다. 성령의 은혜를 받으면 선지자도 되고, 사도도 되었습니다. 받은 바 성령의 은사를 따라 성도들은 충성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이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하는 것이라'(고전12:28)
초대교회에는 총회에서 누구를 임명하는 이런 식의 제도는 없었습니다. 철저하게 성령에 의하여 움직였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세상 나라의 조직과 같은 형태, 제도를 만들기를 사람들이 원했습니다. 이 때부터 교권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교권이 득세하기 시작하면 신앙이 타락하고, 끝내는 망하는 것입니다.
좀더 쉬운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목사님이 교회를 개척해서 능력이 나타납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능력이 나타나다가 성도가 늘고 조직이 갖춰지면 능력이 없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신유 은사자들을 연구했습니다. 왜 한 때 그렇게 능력이 나타나던 사람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능력이 멈추는가 처음에는 조직과 형태가 없이 그냥 능력받은 대로 밀고 나갑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교인들이 모이면 조직은 세워지는데 능력이 사라집니다. 나중에는 조직만 남게 됩니다.
미국에서 최고로 능력이 있다고 하는 교회를 한 목사님이 가 보았습니다. 강대상도 없고 창고같은 곳에서 목사님이 왔다갔다하면서 설교를 하는데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5년 후에 다시 그 교회를 가보았더니 건물을 짓고, 강대상을 갖다 놓고 성가대가 아름다운 가운을 입었습니다. 목사님은 옛날의 그 모습은 간 데 없고 근엄하게 설교를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목사님에게서 과거의 능력은 찾아볼 길이 없었습니다.
첫사랑은 규율이 없습니다. 첫사랑에는 계산이 없습니다. 신앙도 첫사랑에 역사가 나타납니다. 그래서 굳어지면 안 되는 것입니다. 잘못하면 조직이나 권위가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홍해바다가 갈라지고, 불이 떨어지는 등의 능력이 나타난 것은 다윗 왕 시대 이후에는 없습니다. 초대교회와 같은 역사가 지금도 간간이 일어나기는 하지만 거의 개척교회 시대에 나타납니다. 질서는 여호와 하나님의 질서지 인간의 질서로 일을 하려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영적인 질서는 은사입니다. 영력에 의해서 여호와 하나님의 권위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여호와 하나님이 왕이었습니다. 나중에 여호와 하나님이 원치 않았지만 백성들이 너무 원하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셨습니다. 그것을 주자 사울 왕이 금방 타락해 버렸습니다. 사울은 참으로 쉽게 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나귀 새끼 찾으러 갔다가 사무엘을 만나 기름 부음을 받고 왕이 되었습니다. 백성들이 그를 왕으로 인정하며 따랐습니다. 그 사울 왕이 타락하자 여호와 하나님은 그를 폐위시키고 다윗으로 왕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사무엘이 다윗의 머리에 기름을 부어 왕으로 세우기는 했지만 실제로 그는 왕이 되지 못했습니다. 사울이 죽고 나니까 그의 아들 이스보셋이 왕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동시대에 두 사람이 왕이 되었습니다. 영적으로 보면 다윗이 왕인데 육적으로 보면 사울이 왕입니다. 한 나라에 둘이 왕이 되었습니다. 다윗은 왕 노릇을 잘 못하고 있다가 나중에 왕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자기 지파인 유다 지파만을 7년간 다스렸습니다. 그 7년 동안은 사울의 집이 있었고, 다윗의 집이 있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사울의 집은 역사를 끝내시고, 다윗의 집은 임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사울의 집에 속한 사람들이 다윗의 집쪽으로 밤중에 도망함으로 사울의 집은 망해 가고 다윗의 집은 흥해 갔습니다.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 사이에 전쟁이 오래매 다윗은 점점 강하여 가고 사울의 집은 점점 약하여 가니라'(삼하3:1)
'그 맹세는 곧 이 나라를 사울의 집에서 다윗에게 옮겨서 그 위를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이스라엘과 유다에 세우리라 하신 것이니라 하매'(삼하3:10)
한 나라에 7년 동안 두 왕이 있어서 백성들은 두 왕 중에 한 왕을 선택하여 마음대로 가면 되는 것입니다. 다윗은 사울의 집을 쓸어버릴 수 있었지만 그대로 두었습니다. 이스보셋이 드디어 7년 후에 무너집니다. 이것은 지금의 무엇과 같은 것입니까 예수님이 오셔서 세상을 끝내 버리시는 것과 같습니다. 그 역사를 이루시기까지 이 나라는 둘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영적인 나라 여호와 하나님 나라와 육적인 마귀의 나라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세상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코스모스'입니다. 이것은 마귀를 우두머리로 한 세상 나라를 말합니다. 예수님을 우두머리로 하는 세상의 나라는 아들의 나라입니다.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서는 마귀의 나라를 떠나 아들의 나라에 속한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아들의 나라에 속하는 방법이 무엇일까요 예수님은 재림하셔서 자기 나라에 속한 백성들을 데려 가십니다. 비유로 하면 일제시대에 상해 임시정부가 있는 것같이 천국 임시정부가 지금 세상에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아들의 나라에 속하여야만 합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아들의 나라로 옮기는 일에 힘을 써야 합니다. 이것은 천국과 지옥에 대한 모형과 그림자인데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울의 집은 심판을 받으면 끝나는 것입니다. 다윗의 집은 구원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디에 속했느냐가 중요합니다. 사울의 집은 여호와 하나님이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시며 다윗에게 기름을 부으실 때 이미 사울의 집은 심판이 끝났습니다. 그러면 사울 밑에 있는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정받을 수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이 기름부은 바, 즉 십자가로 죄값을 치르시고 승리하신 그 시간부터는 마귀의 권세는 끝났습니다. 그 밑에 속한 백성은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습니다. 지금은 심판이 끝난 상태입니다. 그러므로 빨리 예수님 앞으로 와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의 나라로 옮길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의 나라로 올 수 있습니까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골1:13-14)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다는 것은 아들의 나라로 옮겨졌다는 표입니다. 왜 그럴까요 아담이 마귀에게 왕권을 빼앗긴 이유는 죄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 죄값을 갚으셨기 때문에 심판은 이미 끝났습니다. 죄값을 갚고 왕권을 찾아왔으니 누구든지 이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우리의 죄값을 십자가에서 청산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마귀의 나라가 아니라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긴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나라는 지역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백성, 그 자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여호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기 위해서 반드시 해야 할 일은 죄 사함받는 일입니다. 마귀에게 진 빚을 갚고 찾아온 사람이 여호와 하나님 나라의 백성입니다. 이것이 구속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그 아버지 여호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계1:5-6)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그 아버지 여호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래서 반드시 그의 피로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켜야 여호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될 수 있습니다.
'새 노래를 노래하여 가로되 책을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여호와 하나님께 드리시고 저희로 우리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으니 저희가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계5:9-10)
우리는 왕권을 회복했으니 땅에서는 여호와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왕노릇만 하면 됩니다. 이 나라 백성은 교파, 혹은 직분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죄 사함받은 경험, 예수 피로 얻은 구속의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세상 임금은 심판을 받았습니다. 값주고 사 왔기 때문에 마귀의 나라에서의 일은 이미 끝났습니다. 이미 끝났기 때문에 죄에 따른 심판을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쉽게 말하면 이런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많은 빚을 지고 지금 감옥에서 재판받을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돈 많은 부자가 그것을 불쌍히 여기고 옥문을 열고 해방시켜 버렸습니다. 그러면 이제는 재판을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감옥에서 나오고 죄와 상관없는 사람이 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롬8:1)
정죄함이 없다는 말은 감옥에서 나온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재판받을까봐 겁을 내고 있는 사람은 아직 감옥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감옥은 마귀 나라입니다. 지옥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이 땅에서 구원받지 못하고 사는 것이 지옥입니다. 그 사람들이 죽어서 진짜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 나라도 두 가지가 있습니다. 이 땅에서 여호와 하나님 나라를 체험하는 것과 그 나라를 체험 사람들이 죽은 후에 가는 천국입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나는 날마다 천국에 간다고 했습니다. 천국의 본점은 하늘 나라인데 지점은 내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심령에 여호와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지 못하면 천국갈 자격이 없습니다. 이 땅에 살면서 여호와 하나님 나라에 대한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구원받은 기쁨, 평강, 만족, 행복이 그것입니다.
이 땅에서도 지옥을 경험합니다. 유치장에 있는 사람은 늘 내가 재판을 받으면 어떻게 될까 염려합니다. 유치장에 있는 사람은 감옥 가기 전에 감옥에 대한 경험을 하는 것입니다. 천국에 가기 전에 이 땅에서 경험을 하듯이 지옥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마귀가 패하고 그 나라 자체가 끝나 버리면 재판받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마귀 권세가 끝나고, 그의 왕권이 끝나 버렸으므로 재판을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계속 거기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심판을 받습니다.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니라'(요16:11)
심판의 종류
① 현세적 심판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시1:4-5)
악인은 심판을 견디지 못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심판은 내세의 심판이 아니라 현세의 심판입니다. 현세에도 불의한 일을 하면 그것에 대한 저주와 심판을 받습니다. 목사님을 대적하던 사람이 큰 어려움을 당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을 사람들이 보면서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합니다. 불신자들에게는 이것이 현세적 심판이지만 믿는 우리에게는 여호와 하나님의 징계입니다.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 앞에 의롭게 행하면 현세적으로 복을 받습니다. 불의한 일을 행하면 현세적으로 저주를 받습니다. 그런데 현세적 심판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혼동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부모님은 자식이 잘못할 때마다 때리지 않습니다. 때로는 잘못했는데 참습니다. 그러다가 계속 잘못하면 몰아서 때리는 것입니다. 그것처럼 잘못하면 매맞는 식으로 도식적으로 이해되는 것은 아닙니다.
② 내세의 심판
이것은 행한 그대로 받는 심판입니다. 죄를 지은 사람은 죄의 종류, 죄의 크기에 따라 심판을 받습니다.
③ 상벌심판
구원받은 사람이 받는 심판은 상벌심판입니다. 천국에 가서 믿음으로 충성한 분량에 따라, 면류관의 종류와 크기에 따라 상벌심판을 받습니다.
④ 정죄심판
천국에 가느냐 못 가느냐 구원을 받느냐 못 받느냐 이것은 현세에서 결정이 됩니다. 구원받은 생명의 부활로 부활합니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심판을 받기 위하여 부활합니다.
'또 인자됨을 인하여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느니라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내가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원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원대로 하려는 고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 내가 만일 나를 위하여 증거하면 내 증거는 참되지 아니하되 나를 위하여 증거하시는 이가 따로 있으니 나를 위하여 증거하시는 그 증거가 참인 줄 아노라'(요5:27-32)
구원의 받을 자와 못 받을 자는 부활 자체가 다릅니다. 생명의 부활과 심판의 부활로 나뉘어집니다. 구원이냐 멸망이냐 천국이냐 지옥이냐 이것은 현세에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현세적으로 생명의 부활이 확정되면 다른 심판은 겁낼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지금 내가 어떻게 되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닷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 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 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계20:11-14)
12절에 펼쳐진 처음 책은 죄책이고, 또 다른 책은 생명책입니다. 이 책에 의하여 지옥가고 천국가는 일이 결정됩니다. 백보좌 심판은 전부 지옥가는 심판입니다.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계20:15)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는 죄책에 그 이름이 기록되지 않습니다. 지옥갈 사람은 백보좌 심판 이전에 이 세상에서부터 이미 결정되었습니다. 벌써 구속시켜 유치장에 넣은 사람은 앞으로 감옥갈 사람입니다. 세상 법정에서는 무죄한 사람을 가두는 일도 더러 있지만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대에서는 그런 실수가 없습니다. 이미 재판받기 전에 다 결정되어 있습니다. 성도는 죄가 없으므로 재판을 받지 않습니다. 그래서 갇힐 때가 중요하지 않고 고발될 때가 중요합니다. 이게 어느 때 결정될까요 천국이냐 지옥이냐를 결정하는 것이 심판의 내용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봅니다.
'여호와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여호와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이 어떠하며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얻으면 경건치 아니한 자와 죄인이 어디 서리요'(벧전4:17-18)
여호와 하나님의 집은 성전입니다. 성전에서 심판할 때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베드로가 베드로전서를 기록할 때 이미 심판할 때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구원받은 자들입니다.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되 성전 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을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저희가 거룩한 성을 마흔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계11:1-2)
척량한다는 말은 재본다는 뜻입니다.
'또 보니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하는 자들 곧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그가 큰 음성으로 가로되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계14:6-7)
여기서도 심판할 시간이 이르렀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내세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가 또 큰 소리로 내 귀에 외쳐 가라사대 이 성읍을 관할하는 자들로 각기 살육하는 기계를 손에 들고 나아오게 하라 하시더라 내가 본즉 여섯 사람이 북향한 윗문 길로 좇아오는데 각 사람의 손에 살육하는 기계를 잡았고 그 중에 한 사람은 가는 베옷을 입고 허리에 서기관의 먹 그릇을 찼더라 그들이 들어와서 놋 제단 곁에 서더라 그룹에 머물러 있던 이스라엘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이 올라 성전 문지방에 이르더니 여호와께서 그 가는 베옷을 입고 서기관의 먹 그릇을 찬 사람을 불러 이르시되 너는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하라 하시고 나의 듣는데 또 그 남은 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그 뒤를 좇아 성읍 중에 순행하며 아껴 보지도 말며 긍휼을 베풀지도 말고 쳐서 늙은 자와 젊은 자와 처녀와 어린아이와 부녀를 다 죽이되 이마에 표 있는 자에게는 가까이 말라 내 성소에서 시작할지니라 하시매 그들이 성전 앞에 있는 늙은 자들로부터 시작하더라 그가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성전을 더럽혀 시체로 모든 뜰에 채우라 너희는 나가라 하시매 그들이 나가서 성읍 중에서 치더라'(겔9:1-7)
아까는 여호와 하나님의 집에서부터 심판할 때가 이르렀다고 했습니다. 여기서는 성전에서부터 시작한다고 했습니다. 요한계시록에서는 성전 안에 있는 자들부터 척량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이 말들을 한 가지로 연결시켜 보겠습니다.
⒜ 성전에서부터 심판을 시작합니다.
⒝ 늙은 자는 장로, 목사님을 뜻하는데 그들부터 심판합니다.
이것은 현세적 심판이며, 지금 우리가 겪는 심판입니다. 이것을 보면 심판 뒤에 앞에 가는 사람들이 먹 그릇을 가지고 표를 했습니다. 영원한 복음을 가진 사람, 아까는 척량하는 갈대, 에스겔서는 서기관의 먹 그릇을 찬 사람이 인을 치라. 이마에 표를 하라. 표 있는 자는 가까이 하지 말라. 이 세 가지결론을 보면 이것은 반드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한다는 뜻입니다.
성도들의 신앙은 무엇을 잽니까 잣대는 말씀입니다. 영원한 복음도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먹 그릇으로 표하라는 것도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것을 모두 성령의 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인은 에베소서 1:13을 보면 구원의 복음을 들을 때 받습니다.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엡1:13)
말씀 중에서도 꼭 구원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진리의 말씀, 구원의 복음을 들음으로 믿고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습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심판을 받을 때 지옥갈 사람이 있고, 천국갈 사람이 있습니다.
내가 복음을 전하면 이것은 두 갈래로 갈라집니다. 내가 전하는 복음이 두 갈래의 갈대가 됩니다. 어떤 사람은 천국이고, 어떤 사람은 지옥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심판하는 사람입니다. 계시록 11장에서 여호와 하나님은 요한에게 갈대를 주고 이것을 가지고 가서 측량하라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 복음을 전했을 때 믿느냐 안 믿느냐에 따라 구원의 유무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 때 구원의 복음을 듣고도 불신앙하면 틀림없는 지옥입니다. 그러면 이미 믿었느냐 안 믿었느냐 심판을 받았느냐 안 받았느냐가 결정되어 버립니다.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여호와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요3:18)
9우리가 복음을 전했는데 그가 아직 안 받아들이면 그는 벌써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는 일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구원받은 사람을 여호와 하나님이 보내시고, 그가 가서 복음을 전파하게 하셔서 우리가 믿고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구원을 주기 위하여 복음을 안 받아들이면 여지없이 지옥입니다. 여기에서도 두 가지 증상이 나타납니다. 아직 복음을 안 들은 사람은 가능성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완전히 들었는데도 방해하고 떠나버린 사람에게는 다시는 길이 없습니다. 이미 그는 말씀의 맛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요, 구원의 날입니다. 구원받은 자는 지금 은혜받기 위하여, 구원받지 못한 자는 지금 구원받기 위하여 힘써야 하겠습니다.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니라'(요16:11)
여호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 놓으신 구원을 우리의 것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날마다 구원의 은혜를 감사하며 충성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요16:8)
9절부터는 설명입니다.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니라'(요16:9-11)
원래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은 심판에 대한 공포가 마음 속에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임하면 그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오늘 성령이 오셔서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신다고 했는데 그것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심판은 네 가지가 있습니다. 그 중에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고 염려하는 것은 지옥가는 심판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자기가 살아온 삶의 내용을 가지고 천국과 지옥에 가는 일이 결정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늘 심판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일상적으로 짓는 죄가 다 심판과 직결되고, 그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아무리 작은 죄라도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심판을 잘못 이해하면 크게 고민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 명의 세상 임금
그러나 분명히 우리가 알 것은 심판은 이미 끝났습니다.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 부분을 정리하고 심판의 종류에 대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1절에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니라' 했습니다. 여기서 세상 임금은 누구입니까 만일 예수님이 세상 임금이라면 그것은 예수님이 심판을 받았다는 뜻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본문에서 세상 임금은 예수님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요절 하나를 더 찾아보겠습니다.
'이제 이 세상의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 임금이 쫓겨나리라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 이렇게 말씀하심은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보이심이러라'(요12:31-33)
이 말씀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것을 예고하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조금 있으면 이 세상 임금이 쫓겨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쫓겨나는 세상 임금, 그가 누구겠습니까 마귀입니다. 세상 임금이 세 사람이 있었습니다. 보통 세상 임금하면 세상의 왕들이지만 특별히 여기서 말하는 심판과 직결되는 세상 임금은 대통령과 같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세상 임금이 구체적으로 누구 누구였는가를 살펴봅시다.
① 아담
② 마귀
첫 번째 세상 임금은 아담이었는데 그가 죄를 지음으로 그것이 마귀에게로 넘어갔습니다. 그러므로 두 번째 세상 임금은 마귀입니다.
③ 예수님
예수님이 이 세상 임금이 쫓겨나리라 했을 때의 세상 임금은 마귀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승리하심으로 세상 임금이 다시 예수님으로 바뀌었습니다. 예수님은 아담이 마귀에게 빼앗겼던 왕권을 찾으셨습니다. 아담이 지은 죄값을 갚고, 아담이 마귀에게 잃어버렸던 왕권을 되찾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뒤에는 예수님이 세상 임금입니다.
이 부분을 성경을 통해서 다시 확인해 봅시다. 마귀는 예수님을 지극히 높은 산으로 데리고 가더니 온 천하 만국 영광을 다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는 말했습니다.
'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 만국을 보이며 가로되 이 모든 권세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나의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눅4:5-7)
마귀는 천하 만국의 영광은 본래 자기 것은 아니었지만 아담이 자기에게 넘겨준 것이므로 지금은 자기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원하면 누구에게든지 넘겨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아담을 지으시고 왕으로서의 지위와 축복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선악과를 따먹고 범죄함으로 왕권과 모든 축복을 마귀에게 다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만일 범죄하지 않고 지금까지 역사가 진행되어 왔다면 지금도 세상의 왕은 아담일 것입니다. 그리고 지구의 대표는 언제나 아담이 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왕권이기 때문에 따질 것도 없이 아담이 왕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마귀에게 빼앗겼습니다.
빼앗긴 왕권을 되찾으러 오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메시야라는 뜻은 유대 나라의 왕으로 그가 오신 것이 아니라 아담이 잃어버린 왕권을 찾으러 오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예수님이 왕되신 나라에 속한 백성이 된 것입니다. 새로운 나라의 새로운 시민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전에는 '이제 잠시 후면 세상 임금인 마귀가 쫓겨난다. '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이후에는 '세상 임금이 벌써 심판을 받았다. '고 했습니다.
마귀는 언제 심판을 받았을까요 십자가에서 받았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심판의 개념은 마귀가 자기가 가졌던 권세를 예수님에게 빼앗겼다는 말입니다. 아담은 이제 없어져 버렸습니다. 그러나 마귀는 지금도 살아서 존재합니다. 지금도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 속에 살아서 역사합니다.
사울의 나라, 다윗의 나라 - 마귀의 나라, 아들의 나라
다윗이라는 왕이 있었습니다. 다윗은 왕으로 왕권을 회복할 예수님의 모형과 그림자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다윗의 뿌리, 다윗의 왕좌라고 예수님의 왕권을 묘사했습니다. 메시야의 후손을 가리킬 때도 다윗의 후손이라고 말했습니다. 그가 와서 다윗의 왕권을 회복할 것이다. 다윗의 나라가 설 것이다. 이새의 줄기에서 싹이 날 것이다. 다윗이 가졌던 왕권을 통해 예수님이 아담이 잃어버린 왕권을 회복할 것을 묘사한 것입니다.
다윗은 첫 번째 왕이 아닙니다. 사울이 초대 왕입니다. 이스라엘 나라는 구약이 있고 신약이 있습니다. 구약은 모형과 그림자요, 신약은 실체입니다. 실체가 있으면 모형과 그림자가 있고, 모형과 그림자가 있으면 실체가 있기 마련입니다. 이 둘은 언제나 정확하게 맞아 들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회복할 왕권에 대한 모형도도 구약에는 있어야 합니다. 처음 왕은 아담입니다. 둘째 왕은 마귀입니다. 마지막 왕은 예수님입니다. 이것에 대한 모형과 그림자도 구약에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을 다스린 최초의 왕은 사울입니다. 그 다음은 다윗입니다. 사울에게서 왕권을 빼앗은 다윗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모형과 그림자입니다. 시편같은 곳에서는 아예 예수님을 다윗이라고 명명해 버렸습니다.
'여호와께서 그 왕에게 큰 구원을 주시며 기름 부음받은 자에게 인자를 베푸심이여 영영토록 다윗과 그 후손에게로다'(시18:50)
'내가 내 종 다윗을 찾아 나의 거룩한 기름으로 부었도다'(시89:20)
사울 왕 전에는 누가 왕이었습니까 모세부터 사사시대까지는 여호와 하나님이 직접 다스리시는 신정정치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왕이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왕일 때가 가장 중요한 때요, 완전한 때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무엘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이 자신들에게 왕을 세워 달라고 여호와 하나님께 애걸을 해서 사울 왕을 세워 주셨습니다. 처음에는 여호와 하나님이 번개와 우뢰를 보내면서도 허락지 않으셨습니다. 내가 너희의 왕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고집함으로 결국은 왕을 세워 주었는데 그 왕을 세운 뒤에 이스라엘이 망했습니다. 이와 같이 초대교회 당시에는 교권이 없습니다. 성령이 왕입니다. 성령의 은혜를 받으면 선지자도 되고, 사도도 되었습니다. 받은 바 성령의 은사를 따라 성도들은 충성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이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하는 것이라'(고전12:28)
초대교회에는 총회에서 누구를 임명하는 이런 식의 제도는 없었습니다. 철저하게 성령에 의하여 움직였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세상 나라의 조직과 같은 형태, 제도를 만들기를 사람들이 원했습니다. 이 때부터 교권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교권이 득세하기 시작하면 신앙이 타락하고, 끝내는 망하는 것입니다.
좀더 쉬운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목사님이 교회를 개척해서 능력이 나타납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능력이 나타나다가 성도가 늘고 조직이 갖춰지면 능력이 없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신유 은사자들을 연구했습니다. 왜 한 때 그렇게 능력이 나타나던 사람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능력이 멈추는가 처음에는 조직과 형태가 없이 그냥 능력받은 대로 밀고 나갑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교인들이 모이면 조직은 세워지는데 능력이 사라집니다. 나중에는 조직만 남게 됩니다.
미국에서 최고로 능력이 있다고 하는 교회를 한 목사님이 가 보았습니다. 강대상도 없고 창고같은 곳에서 목사님이 왔다갔다하면서 설교를 하는데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5년 후에 다시 그 교회를 가보았더니 건물을 짓고, 강대상을 갖다 놓고 성가대가 아름다운 가운을 입었습니다. 목사님은 옛날의 그 모습은 간 데 없고 근엄하게 설교를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목사님에게서 과거의 능력은 찾아볼 길이 없었습니다.
첫사랑은 규율이 없습니다. 첫사랑에는 계산이 없습니다. 신앙도 첫사랑에 역사가 나타납니다. 그래서 굳어지면 안 되는 것입니다. 잘못하면 조직이나 권위가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홍해바다가 갈라지고, 불이 떨어지는 등의 능력이 나타난 것은 다윗 왕 시대 이후에는 없습니다. 초대교회와 같은 역사가 지금도 간간이 일어나기는 하지만 거의 개척교회 시대에 나타납니다. 질서는 여호와 하나님의 질서지 인간의 질서로 일을 하려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영적인 질서는 은사입니다. 영력에 의해서 여호와 하나님의 권위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여호와 하나님이 왕이었습니다. 나중에 여호와 하나님이 원치 않았지만 백성들이 너무 원하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셨습니다. 그것을 주자 사울 왕이 금방 타락해 버렸습니다. 사울은 참으로 쉽게 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나귀 새끼 찾으러 갔다가 사무엘을 만나 기름 부음을 받고 왕이 되었습니다. 백성들이 그를 왕으로 인정하며 따랐습니다. 그 사울 왕이 타락하자 여호와 하나님은 그를 폐위시키고 다윗으로 왕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사무엘이 다윗의 머리에 기름을 부어 왕으로 세우기는 했지만 실제로 그는 왕이 되지 못했습니다. 사울이 죽고 나니까 그의 아들 이스보셋이 왕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동시대에 두 사람이 왕이 되었습니다. 영적으로 보면 다윗이 왕인데 육적으로 보면 사울이 왕입니다. 한 나라에 둘이 왕이 되었습니다. 다윗은 왕 노릇을 잘 못하고 있다가 나중에 왕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자기 지파인 유다 지파만을 7년간 다스렸습니다. 그 7년 동안은 사울의 집이 있었고, 다윗의 집이 있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사울의 집은 역사를 끝내시고, 다윗의 집은 임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사울의 집에 속한 사람들이 다윗의 집쪽으로 밤중에 도망함으로 사울의 집은 망해 가고 다윗의 집은 흥해 갔습니다.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 사이에 전쟁이 오래매 다윗은 점점 강하여 가고 사울의 집은 점점 약하여 가니라'(삼하3:1)
'그 맹세는 곧 이 나라를 사울의 집에서 다윗에게 옮겨서 그 위를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이스라엘과 유다에 세우리라 하신 것이니라 하매'(삼하3:10)
한 나라에 7년 동안 두 왕이 있어서 백성들은 두 왕 중에 한 왕을 선택하여 마음대로 가면 되는 것입니다. 다윗은 사울의 집을 쓸어버릴 수 있었지만 그대로 두었습니다. 이스보셋이 드디어 7년 후에 무너집니다. 이것은 지금의 무엇과 같은 것입니까 예수님이 오셔서 세상을 끝내 버리시는 것과 같습니다. 그 역사를 이루시기까지 이 나라는 둘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영적인 나라 여호와 하나님 나라와 육적인 마귀의 나라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세상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코스모스'입니다. 이것은 마귀를 우두머리로 한 세상 나라를 말합니다. 예수님을 우두머리로 하는 세상의 나라는 아들의 나라입니다.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서는 마귀의 나라를 떠나 아들의 나라에 속한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아들의 나라에 속하는 방법이 무엇일까요 예수님은 재림하셔서 자기 나라에 속한 백성들을 데려 가십니다. 비유로 하면 일제시대에 상해 임시정부가 있는 것같이 천국 임시정부가 지금 세상에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아들의 나라에 속하여야만 합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아들의 나라로 옮기는 일에 힘을 써야 합니다. 이것은 천국과 지옥에 대한 모형과 그림자인데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울의 집은 심판을 받으면 끝나는 것입니다. 다윗의 집은 구원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디에 속했느냐가 중요합니다. 사울의 집은 여호와 하나님이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시며 다윗에게 기름을 부으실 때 이미 사울의 집은 심판이 끝났습니다. 그러면 사울 밑에 있는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정받을 수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이 기름부은 바, 즉 십자가로 죄값을 치르시고 승리하신 그 시간부터는 마귀의 권세는 끝났습니다. 그 밑에 속한 백성은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습니다. 지금은 심판이 끝난 상태입니다. 그러므로 빨리 예수님 앞으로 와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의 나라로 옮길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의 나라로 올 수 있습니까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골1:13-14)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다는 것은 아들의 나라로 옮겨졌다는 표입니다. 왜 그럴까요 아담이 마귀에게 왕권을 빼앗긴 이유는 죄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 죄값을 갚으셨기 때문에 심판은 이미 끝났습니다. 죄값을 갚고 왕권을 찾아왔으니 누구든지 이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우리의 죄값을 십자가에서 청산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마귀의 나라가 아니라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긴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나라는 지역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백성, 그 자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여호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기 위해서 반드시 해야 할 일은 죄 사함받는 일입니다. 마귀에게 진 빚을 갚고 찾아온 사람이 여호와 하나님 나라의 백성입니다. 이것이 구속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그 아버지 여호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계1:5-6)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그 아버지 여호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래서 반드시 그의 피로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켜야 여호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될 수 있습니다.
'새 노래를 노래하여 가로되 책을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여호와 하나님께 드리시고 저희로 우리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으니 저희가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계5:9-10)
우리는 왕권을 회복했으니 땅에서는 여호와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왕노릇만 하면 됩니다. 이 나라 백성은 교파, 혹은 직분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죄 사함받은 경험, 예수 피로 얻은 구속의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세상 임금은 심판을 받았습니다. 값주고 사 왔기 때문에 마귀의 나라에서의 일은 이미 끝났습니다. 이미 끝났기 때문에 죄에 따른 심판을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쉽게 말하면 이런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많은 빚을 지고 지금 감옥에서 재판받을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돈 많은 부자가 그것을 불쌍히 여기고 옥문을 열고 해방시켜 버렸습니다. 그러면 이제는 재판을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감옥에서 나오고 죄와 상관없는 사람이 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롬8:1)
정죄함이 없다는 말은 감옥에서 나온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재판받을까봐 겁을 내고 있는 사람은 아직 감옥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감옥은 마귀 나라입니다. 지옥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이 땅에서 구원받지 못하고 사는 것이 지옥입니다. 그 사람들이 죽어서 진짜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 나라도 두 가지가 있습니다. 이 땅에서 여호와 하나님 나라를 체험하는 것과 그 나라를 체험 사람들이 죽은 후에 가는 천국입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나는 날마다 천국에 간다고 했습니다. 천국의 본점은 하늘 나라인데 지점은 내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심령에 여호와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지 못하면 천국갈 자격이 없습니다. 이 땅에 살면서 여호와 하나님 나라에 대한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구원받은 기쁨, 평강, 만족, 행복이 그것입니다.
이 땅에서도 지옥을 경험합니다. 유치장에 있는 사람은 늘 내가 재판을 받으면 어떻게 될까 염려합니다. 유치장에 있는 사람은 감옥 가기 전에 감옥에 대한 경험을 하는 것입니다. 천국에 가기 전에 이 땅에서 경험을 하듯이 지옥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마귀가 패하고 그 나라 자체가 끝나 버리면 재판받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마귀 권세가 끝나고, 그의 왕권이 끝나 버렸으므로 재판을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계속 거기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심판을 받습니다.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니라'(요16:11)
심판의 종류
① 현세적 심판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시1:4-5)
악인은 심판을 견디지 못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심판은 내세의 심판이 아니라 현세의 심판입니다. 현세에도 불의한 일을 하면 그것에 대한 저주와 심판을 받습니다. 목사님을 대적하던 사람이 큰 어려움을 당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을 사람들이 보면서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합니다. 불신자들에게는 이것이 현세적 심판이지만 믿는 우리에게는 여호와 하나님의 징계입니다.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 앞에 의롭게 행하면 현세적으로 복을 받습니다. 불의한 일을 행하면 현세적으로 저주를 받습니다. 그런데 현세적 심판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혼동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부모님은 자식이 잘못할 때마다 때리지 않습니다. 때로는 잘못했는데 참습니다. 그러다가 계속 잘못하면 몰아서 때리는 것입니다. 그것처럼 잘못하면 매맞는 식으로 도식적으로 이해되는 것은 아닙니다.
② 내세의 심판
이것은 행한 그대로 받는 심판입니다. 죄를 지은 사람은 죄의 종류, 죄의 크기에 따라 심판을 받습니다.
③ 상벌심판
구원받은 사람이 받는 심판은 상벌심판입니다. 천국에 가서 믿음으로 충성한 분량에 따라, 면류관의 종류와 크기에 따라 상벌심판을 받습니다.
④ 정죄심판
천국에 가느냐 못 가느냐 구원을 받느냐 못 받느냐 이것은 현세에서 결정이 됩니다. 구원받은 생명의 부활로 부활합니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심판을 받기 위하여 부활합니다.
'또 인자됨을 인하여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느니라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내가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원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원대로 하려는 고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 내가 만일 나를 위하여 증거하면 내 증거는 참되지 아니하되 나를 위하여 증거하시는 이가 따로 있으니 나를 위하여 증거하시는 그 증거가 참인 줄 아노라'(요5:27-32)
구원의 받을 자와 못 받을 자는 부활 자체가 다릅니다. 생명의 부활과 심판의 부활로 나뉘어집니다. 구원이냐 멸망이냐 천국이냐 지옥이냐 이것은 현세에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현세적으로 생명의 부활이 확정되면 다른 심판은 겁낼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지금 내가 어떻게 되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닷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 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 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계20:11-14)
12절에 펼쳐진 처음 책은 죄책이고, 또 다른 책은 생명책입니다. 이 책에 의하여 지옥가고 천국가는 일이 결정됩니다. 백보좌 심판은 전부 지옥가는 심판입니다.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계20:15)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는 죄책에 그 이름이 기록되지 않습니다. 지옥갈 사람은 백보좌 심판 이전에 이 세상에서부터 이미 결정되었습니다. 벌써 구속시켜 유치장에 넣은 사람은 앞으로 감옥갈 사람입니다. 세상 법정에서는 무죄한 사람을 가두는 일도 더러 있지만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대에서는 그런 실수가 없습니다. 이미 재판받기 전에 다 결정되어 있습니다. 성도는 죄가 없으므로 재판을 받지 않습니다. 그래서 갇힐 때가 중요하지 않고 고발될 때가 중요합니다. 이게 어느 때 결정될까요 천국이냐 지옥이냐를 결정하는 것이 심판의 내용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봅니다.
'여호와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여호와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이 어떠하며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얻으면 경건치 아니한 자와 죄인이 어디 서리요'(벧전4:17-18)
여호와 하나님의 집은 성전입니다. 성전에서 심판할 때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베드로가 베드로전서를 기록할 때 이미 심판할 때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구원받은 자들입니다.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되 성전 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을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저희가 거룩한 성을 마흔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계11:1-2)
척량한다는 말은 재본다는 뜻입니다.
'또 보니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하는 자들 곧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그가 큰 음성으로 가로되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계14:6-7)
여기서도 심판할 시간이 이르렀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내세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가 또 큰 소리로 내 귀에 외쳐 가라사대 이 성읍을 관할하는 자들로 각기 살육하는 기계를 손에 들고 나아오게 하라 하시더라 내가 본즉 여섯 사람이 북향한 윗문 길로 좇아오는데 각 사람의 손에 살육하는 기계를 잡았고 그 중에 한 사람은 가는 베옷을 입고 허리에 서기관의 먹 그릇을 찼더라 그들이 들어와서 놋 제단 곁에 서더라 그룹에 머물러 있던 이스라엘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이 올라 성전 문지방에 이르더니 여호와께서 그 가는 베옷을 입고 서기관의 먹 그릇을 찬 사람을 불러 이르시되 너는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하라 하시고 나의 듣는데 또 그 남은 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그 뒤를 좇아 성읍 중에 순행하며 아껴 보지도 말며 긍휼을 베풀지도 말고 쳐서 늙은 자와 젊은 자와 처녀와 어린아이와 부녀를 다 죽이되 이마에 표 있는 자에게는 가까이 말라 내 성소에서 시작할지니라 하시매 그들이 성전 앞에 있는 늙은 자들로부터 시작하더라 그가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성전을 더럽혀 시체로 모든 뜰에 채우라 너희는 나가라 하시매 그들이 나가서 성읍 중에서 치더라'(겔9:1-7)
아까는 여호와 하나님의 집에서부터 심판할 때가 이르렀다고 했습니다. 여기서는 성전에서부터 시작한다고 했습니다. 요한계시록에서는 성전 안에 있는 자들부터 척량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이 말들을 한 가지로 연결시켜 보겠습니다.
⒜ 성전에서부터 심판을 시작합니다.
⒝ 늙은 자는 장로, 목사님을 뜻하는데 그들부터 심판합니다.
이것은 현세적 심판이며, 지금 우리가 겪는 심판입니다. 이것을 보면 심판 뒤에 앞에 가는 사람들이 먹 그릇을 가지고 표를 했습니다. 영원한 복음을 가진 사람, 아까는 척량하는 갈대, 에스겔서는 서기관의 먹 그릇을 찬 사람이 인을 치라. 이마에 표를 하라. 표 있는 자는 가까이 하지 말라. 이 세 가지결론을 보면 이것은 반드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한다는 뜻입니다.
성도들의 신앙은 무엇을 잽니까 잣대는 말씀입니다. 영원한 복음도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먹 그릇으로 표하라는 것도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것을 모두 성령의 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인은 에베소서 1:13을 보면 구원의 복음을 들을 때 받습니다.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엡1:13)
말씀 중에서도 꼭 구원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진리의 말씀, 구원의 복음을 들음으로 믿고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습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심판을 받을 때 지옥갈 사람이 있고, 천국갈 사람이 있습니다.
내가 복음을 전하면 이것은 두 갈래로 갈라집니다. 내가 전하는 복음이 두 갈래의 갈대가 됩니다. 어떤 사람은 천국이고, 어떤 사람은 지옥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심판하는 사람입니다. 계시록 11장에서 여호와 하나님은 요한에게 갈대를 주고 이것을 가지고 가서 측량하라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 복음을 전했을 때 믿느냐 안 믿느냐에 따라 구원의 유무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 때 구원의 복음을 듣고도 불신앙하면 틀림없는 지옥입니다. 그러면 이미 믿었느냐 안 믿었느냐 심판을 받았느냐 안 받았느냐가 결정되어 버립니다.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여호와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요3:18)
9우리가 복음을 전했는데 그가 아직 안 받아들이면 그는 벌써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는 일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구원받은 사람을 여호와 하나님이 보내시고, 그가 가서 복음을 전파하게 하셔서 우리가 믿고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구원을 주기 위하여 복음을 안 받아들이면 여지없이 지옥입니다. 여기에서도 두 가지 증상이 나타납니다. 아직 복음을 안 들은 사람은 가능성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완전히 들었는데도 방해하고 떠나버린 사람에게는 다시는 길이 없습니다. 이미 그는 말씀의 맛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요, 구원의 날입니다. 구원받은 자는 지금 은혜받기 위하여, 구원받지 못한 자는 지금 구원받기 위하여 힘써야 하겠습니다.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니라'(요16:11)
여호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 놓으신 구원을 우리의 것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날마다 구원의 은혜를 감사하며 충성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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