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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성령님! 우리 성령님

본문

오늘은 성령강림절입니다. 성령강림절은 성령님이 이 땅에 오신 날을 기념하여 지키는 절기입니다.
성령강림절을 맞아 이렇게 여호와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드리는 성도 여러분 모두에게 성령 충만의 은혜가 임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구원사역을 하실 때 예수님께서 당신이 바라는 간절한 소원을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혹시 그 소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우리가 언뜻 생각하기에는 영혼구원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닙니다.
예수님의 소원 중의 소원은 영혼구원이셨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게 되면 영혼구원 보다도 예수님께서 더 간절히 바라는 소원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눅12:49에 있습니다.
눅12:49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영혼구원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불을 땅에 던지러 오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불이 이 땅에 이미 붙었다면 더 이상 무엇을 원하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불을 이 땅에 부치려 왔는데 아직 불이 이 땅에 붙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만약 이 불만 이 땅에 붙으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간절히 바라셨던 소원은 이 땅에 불을 부치는 것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 도데체 예수님께서 이 땅에 부치고자 하신 불은 어떤 불일까요
그 불이 어떤 불이길래 예수님은 그렇게도 그 불이 붙기를 원하셨던 것일까요
그 불은 성령님이십니다. 할렐루야!
오늘 예배에 참석하신 성도 여러분들은 예수님의 소원대로 여러분들의 심령에 성령의 불이 붙게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령님은 불의 영입니다.
우리는 성령님이 이 땅에 강림하실 때 나타났던 현상을 통해서도 성령님이 불의 영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사도행전 2장1~4절 말씀은 성령님이 이 땅에 강림하실 때 어떤 현상이 있었는가를 우리에게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첫째로 바람이 부는 소리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성령님이 움직이는 것은 마치 바람이 움직이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3: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예수님께서 성령님에 대해서 가르쳐주신 말씀입니다. 성령님이 움직이는 것은 바람이 움직이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오순절 날 성령님이 이 땅에 강림하실 때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바람이 부는 소리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불이 보였다고 했습니다.
행2:3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불이 보였다고 했습니다. 그 불은 하나의 덩어리 모양으로 공중 위에 떠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 불은 불꽃 갈라지듯이 갈라져서 120명 각자의 머리 위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렇게 불이 각 사람위에 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 불에 접촉된 사람들이 모두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오순절 날 제자들이 본 불은 성령님이셨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불은 바람과 더불어 성령님을 나타내는 중요한 표현 양식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그렇게도 이 땅에 부치기를 원하셨던 불은 성령님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오순절 날은 이 땅에 성령님이 강림하신 날이기도 하지만 우리 예수님께서 그렇게도 원하셨던 소원을 이루신 날이기도 합니다.
오순절 날 예수님은 그렇게도 원하셨던 성령의 불을 이 땅에 부치신 것입니다.
오순절 날 이 땅에 붙은 성령의 불은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있던 120명의 심령에 불을 부쳤습니다.
그리고 그 불은 예루살렘을 태우고 사마리아로 번져나갔고, 사마리아에서 소아시아 지방으로, 소아시아 지방에서 유럽으로, 유럽에서 세계로 번져나갔습니다.
1885년에는 우리나라에도 마침내 성령의 불이 붙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 붙은 성령의 불은 다른 어떤 나라에서 보다도 강력하고 힘차게 번져나갔습니다.
오늘 이렇게 우리나라가 100여년의 짧은 선교역사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구원의 역사를 일으킨 것은 성령의 불이 다른 어떤 나라에서 보다도 강력하고 힘차게 번져나갔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우리나라에서 다른 어떤 나라에서 보다도 성령의 불이 강력하고 힘차게 번져나가게 된 것은 무엇보다도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 성도들의 열심도 한 몫을 하였습니다.
우리나라 성도들은 다른 나라 성도들에 비해서 정말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 성도들은 주일 예배 한번만으로 부족하다고 수요일 예배를 만들어 드렸습니다. 일주일에 한번 예배드리는 것으로는 너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주간의 중간에 한번 더 모이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수요예배를 만든 나라가 우리나라입니다.
수요예배만 만든 것이 아닙니다. 금요철야기도회도 우리나라에서 만들었고요, 새벽기도회도 우리나라에서 만든 것입니다.
정말 우리 한국 교회의 성도들은 다른 나라 성도들에 비해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한 것입니다.
이렇게 열심히 모여 예배드리고 기도하니까 다른 어느 나라에서 보다도 우리나라에서 성령의 불이 강력하고 힘차게 붙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10여년전부터 그 열심히 점점 약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성령의 불도 점점 약해지고 있습니다.
성령의 불이 점점 약해지는 것을 보면서 가장 안타까워하시는 분이 누구이겠습니까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오순절 날 120명의 성도들의 가슴에 성령의 불이 강력하고도 힘차게 붙었듯이, 지금 우리의 심령에도 성령의 불이 강력하고도 힘차게 붙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성령강림절 예배에 참석하신 성도 여러분은 열심히 신앙생활 하셔서 여러분의 심령에 성령의 불이 강력하고도 힘차게 붙게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럼, 예수님은 왜 그렇게도 이 땅에 성령의 불이 붙기를 원하셨을까요
다시 말해 왜 그렇게도 사람의 심령에 성령의 불이 강력하고도 힘차게 붙기를 원하셨을까요
우리는 그 이유를 사도행전을 읽어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사도행전은 성령의 불을 받은 사람들이 어떠한 삶을 살았는가를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성령의 불을 받은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았습니다.
성령의 불을 받은 사람들에게서는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불을 받은 사람들은 놀랍고도 위대한 삶을 살았습니다.
베드로를 보세요. 그는 고기 잡는 어부에 불과하였고, 예수님을 배신하는 부끄러운 과거를 가진 사람이어지만 성령의 불을 받고 난 뒤에는 완전히 변화되어서 수많은 사람들을 구원하는 위대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적도 많이 행하였습니다.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치료하여 걷게 하였고, 중풍병에 걸려 침상에 누워 꼼짝 못하는 사람을 치료하여 낫게 하였으며, 죽은 자도 살려내는 등 예수님 이름으로 수많은 기적을 행하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을 세상에 나타냄으로서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산 것입니다.
사도 바울을 보세요. 다른 사람 볼 것도 없이 사도 바울 한사람도 살펴보아도 우리는 예수님께서 왜 그렇게도 사람의 심령에 성령의 불을 부치기를 원하셨는지 알 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도 바울은 정말 놀랍고도 위대한 삶을 산 사람입니다.
그가 행한 기적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납니다. 그리고 그가 이룩한 업적은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이룩할 수 없는 위대한 업적입니다.
사도 바울 한사람 때문에 에베소라는 도시가 완전히 발칵 뒤집히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수많은 무당들과 복술자들이 회개하고 자신이 사용하던 책들을 불에 태웠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을 바꾸고 예수님께 헌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성경 27권 중에 절반에 가까운 13권을 혼자서 썼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라고 말씀하셨는데, 예수님의 이 말씀은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에 의해서도 증명되었지만 ,특히 사도 바울에 의해서 확실하고도 분명하게 증명이 되었습니다.
정말 사도바울의 삶은 예수님처럼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으로 산 삶입니다.
그럼, 사도 바울도 그렇고, 베드로도 그렇고 , 모두 다 우리와 똑 같은 사람들인데 어떻게 그들은 예수님처럼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그들이 성령의 불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예배에 참석하신 성도 여러분들도 성령의 불을 받아서 예수님처럼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령의 불을 받는다는 것은 다른 말로 말하면 성령의 충만을 받는 것을 말합니다.
엡5장18절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 악한 시대 속에서 우리가 가장 힘써야 할 일은 성령의 충만을 받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럼, 성령님은 누구입니까 잘 아시겠지만 우리의 신앙을 점검하기 위해서 한번 더 확인하고자 합니다.
오늘 봉독한 말씀은 예수님께서 성령님에 대해서 가르쳐주신 말씀 중에 하나입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에서 매우 중요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시는 것보다 예수님이 이 땅을 떠나 천국으로 가시고 대신 성령님이 이 땅에 오시는 것이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더 유익하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예수님이 우리 곁에 계시는 것이 우리에게 더 유익한 것 같은데 왜 예수님께서는 예수님 보다 성령님이 계시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하셨을까요
 첫째는 성령님은 예수님에 비해서 하나도 부족한 것이 없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여호와 하나님이시듯이 성령님도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성부 여호와 하나님과 같은 여호와 하나님으로서 여호와 하나님의 성품과 능력을 가지고 있듯이 성령님도 성자 예수님과 같은 여호와 하나님으로서 여호와 하나님의 성품과 능력을 가지고 있는 분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우리 믿는 자를 위해 해주실 수 있는 것을 성령님도 다 해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예수님 보다 성령님이 우리 믿는 자를 더 효과적으로 도와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우리와 같은 육체를 입고 있기 때문에 육체의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육체가 없고 영으로 계시기 때문에 믿는 자 한 사람, 한 사람 안에 거하셔서 언제든지, 어디를 가든지 함께 하시며 도우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육체의 한계를 가진 예수님이 우리 곁에 계시는 것보다 육체의 한계가 없는 성령님께서 우리 곁에 계시는 것이 우리에게 유익하다는 말씀입니다.
다만 육체를 입은 예수님이 우리 곁에 계시는 것보다 성령님이 우리 곁에 계시는 것이 우리에게 어려운 점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육체를 입은 예수님은 우리 눈에 보였지만 성령님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우리로 하여금 성령님과 함께 하는 것을 어렵게 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성령님이 곁에 계심에도 불구하고, 아니 자기 안에 계심에도 불구하고 성령님의 도움을 받지 못합니다.
그러나 성령의 충만함을 받게 되면 성령님이 눈에만 안보일 뿐이지 자기 안에 있는 성령님을 거의 눈에 보듯이 느낄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님의 도움을 잘 받을 수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 충만한 사람이 되면 성령의 도움을 잘 받음으로서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예배에 참석하신 성도 여러분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서 성령의 도움을 잘 받음으로서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성령의 도움을 받고 사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별 차이가 없는 것처럼 생각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작은 차이가 우리의 인생을 행복하게도 하고 불행하게도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난 번 김해 공항 중국항공기 추락 사고를 조사한 보고에 의하면 6m만 높이 날았어도 사고를 면했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별것 아닌 6m 높이가 130여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끔찍한 사고로 이어진 것입니다.
김해 공항 중국항공기 추락 사고가 난 다음 날 국민일보에는 공군 조종사로, 그리고 대한 항공 기장으로 비행사들이 꿈꾸는 2만 시간을 넘어 2만 1천200시간을 아무 사고 없이 비행한 분의 간증문이 실렸습니다.
이 분의 간증문 중에 이런 글이 있었습니다.
1990년 11월16일 신혼부부 61쌍을 비롯해 모두 165명을 태우고 사이판에 가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이판 공항에 착륙을 하려고 하는데 비행기 바퀴를 자동으로 빠져나오게 하는 기계에 고장이 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수동으로 핸들을 돌려서 바뀌를 빼게 되었는데 핸들이 꿈쩍도 않더라는 것입니다. 기관장을 비롯해서 승무원 모두가 있는 힘을 다해 돌려봤는데 꿈쩍도 않더라는 것입니다.
그순간 큰일 났구나. 다 죽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 등에 식은 땀이 쫙 흐르더래요. 그래도 정신을 차리고 일단 기내 방송을 통해서 승객들에게 동체 착륙을 해야 할지 모르니 안전띠를 단단히 매고 고개를 숙이고 있으라고 방송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승객있는 쪽에서 울며 불며 난리가 났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분이 조종간을 부기장에게 맡기고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그리스챤인 기관장하고 둘이서 울면서 간절히 여호와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한참을 기도하는데 마음속에 이사야 41장 10절 말씀이 부드럽게 들렸다고 합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여호와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그래서 마음에 평안을 얻고 기관장에게 다시 한번 바퀴가 나오게 하는 수동핸들을 돌려보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 순간 믿기 어려운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렇게 몇 사람이 돌리려고 하여도 꿈쩍도 않던 핸들이 술술 잘 돌아가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사히 착륙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너무 감격스러워서 마이크를 잡고 이렇게 승객들에게 방송했다고 합니다.
"살아계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의 소원을 들으시고 우리에게 큰 축복을 허락하셨습니다. 모든 영광을 여호와 하나님께 드립니다"
그랬더니 승객들 쪽에서 박수를 치고 만세를 부르며 좋아라 난리가 났다고 합니다.
핸들이 돌아가고 안돌아가고는 지극히 작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작은 것 때문에 하마터면 새롭게 인생을 시작하는 신혼부부 61쌍을 비롯해 165명의 목숨이 끔찍한 사고를 당할 뻔 했었습니다.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순간에 그는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했고 바로 그가 기도할 때 그의 마음속에 들려온 이사야41:10절 말씀은 그 분 안에서 그와 함께 하고 있던 성령님이셨습니다.
그는 성령님의 도움을 받아서 절대 위기의 순간에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냄으로써 수많은 생명을 구하고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가 있었습니다.
6m 높이 날고 안날고의 차이, 바퀴를 빼는 수동핸들이 돌아가고 안돌아가고의 차이.
별것 아닌 작은 차이가 행복과 불행을 갈라놓았습니다.
성령님의 도움을 받고 안받고의 차이는 어떻게 보면 별것 아닌 차이 같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의 도움을 받고 안받고에 따라 우리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길 성령님은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를 도우시는 보혜사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진리 안으로 인도하시는 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장래 일어날 일들을 알게 하여 주시는 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예수님의 영광을 나타내주시는 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나 사도 바울처럼 예수님의 이름으로 능력을 행하고 기적을 행하도록 도우시는 분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령님의 도움을 받는다면 우리는 예수님처럼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고,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는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오늘 예배에 참석하신 성도 여러분들은 성령님의 도움을 받아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시고,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는 아름답고 행복한 삶을 사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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