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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세상을 책망하시는 성령

본문

최후의 만찬석상에서 주님의 말씀을 듣던 제자들은 큰 근심 아래 처해있습니다. 제자들이 결정적으로 근심하게 된 이유는 지금까지 자신들이 의지했고 전 생을 걸고 따랐던 주님께서 제자들을 떠나신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에게 예수님은 인생의 의미였고 소망이었고 희망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우시는 나라에 동참하여 한 자리를 얻고자 하는 희망 아래서 주님과 동참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은 청천병력과도 같은 소식이었습니다. 제자들의 모든 희망이 사라지는 순간이었고 기대와 희망이 산산조각이 나게 하는 소식이었습니다. 제자들은 낙심할 수밖에 없었고 두려워하고 근심의 채 바퀴 안으로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더구나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떠난 뒤에 세상으로부터 많은 핍박과 고난에 노출될 것이라고 소식은 제자들에게 더 큰 근심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이런 제자들을 향해서 주님께서는 지금까지 자신이 제자들을 떠나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자세하게 설명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고아처럼 완전히 버려두고 떠나시는 것이 아니라 다시 오신다고는 약속으로 위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떠나시는 이유는 아버지 집에 처소를 마련하기 위함이라고 하며 위로하였습니다. 그리고 핍박에 처한 주의 교회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다른 보혜사인 성령을 보내서 위로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특히 제자들이 세상으로부터 온갖 고난을 당하며 고통당할 때 성령께서 친히 진리에 대해서 증거하시고 제자들도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주의 복음을 증거하는 능력있는 삶, 승리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15장 후반부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은 성령께서 증거하시는 승리의 사역에 대해서 더 자세하게 설명하시는 말씀입니다. 두려워 떠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자신이 제자들을 떠나는 것이 유익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다른 보혜사인 성령께서 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두 가지 유익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세상을 책망하고 승리를 주시는 유익이며, 다른 하나는 제자들을 진리 가운데서 인도하시는 유익을 주십니다. 오늘은 첫째 유익인 세상을 책망하시고 승리를 선언하시는 유익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내가 떠남이 너희에게 유익하다 함께 5-6절 말씀을 읽으십시다. "지금 내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가는데 너희 중에서 나더러 어디로 가느냐 묻는 자가 없고 도리어 내가 이 말을 하므로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였도다. " "어디로 가느냐고 묻는 자가 없다"고 하셨는데, 이 말은 묻지 않았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13:36절과 14:5절에 이미 베드로와 도마가 어디로 가시는지 물었기 때문입니다. "시몬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도마가 가로되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삽나이까"
그러니까 여기서 예수님이 "어디로 가시나이까 묻지 않았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어디로 가시는 지에 대해서는 아예 관심이 없고 단지 근심만 하고 있는 제자들의 행태를 책망하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해서 아버지께로 가셨다가 다시 오셔서 세상이 주지 못하는 평안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고, 예수님 안에 거하라고 하셨는데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세상이 제자들을 핍박하고 심지어 죽이리라고 말씀하시자 근심하고 있는 제자들의 모습을 그려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떠나심과 고난당하심에는 관심도 없고 단지 자신들에게 닥칠 고난에만 집착하고 있는 믿음없는 제자들의 모습 말입니다.
세상으로부터 올 고난을 생각하며 근심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계속해서 위로하시며 용기를 북돋아주십니다. 7-8절입니다.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 두려워 떠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자신이 제자들을 떠나가시는 것이 오히려 유익이라고 덧붙여 설명하십니다. 예수님께서도 지상 생애동안에 제자들에게 보혜사로 사역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세상을 떠나시면 다른 보혜사인 성령이 제자들에게 부어질 것입니다. 보혜사 성령께서 세상을 책망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제자들이 세상으로부터 고난을 당하고 두렵지만 보혜사 성령께서 오셔서 세상을 책망하며 승리와 영광과 위로를 제자들에게 주실 것입니다. 성령께서 세상을 책망한다는 본질적인 의미는 세상에 대한 승리의 선언이며 제자들을 향한 위로의 소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영광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승리를 통해서 세상에 대한 승리를 하셨습니다. 이 세상의 신을 심판하셨고 그 머리를 짓밟으셨습니다. 바로 성령께서 오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를 근거로 해서 세상을 책망하실 것이라는 선언입니다. 여기에 제자들이 고난 가운데서 위로를 얻고 소망과 기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을 책망하시는 성령
그렇다면 성령께서 어떻게 세상을 책망하시는 것입니까 또 성령께서 세상에 대해서 어떤 내용을 책망하신다는 말씀입니까 그리고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생각해보겠습니다. 8-11절입니다.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니라. "
죄에 대해서
성령께서 세상을 책망하시는데, 죄에 대해서 책망하십니다. 죄에 대해서 책망하신다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9절입니다.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예수를 믿지 아니한 것이 세상의 죄입니다. 3장 19절입니다.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빛이신 예수님이 세상에 오셨는데, 세상이 이 빛을 거절한 것입니다. 12장 37절입니다. "이렇게 많은 표적을 저희 앞에서 행하셨으나 저를 믿지 아니하니" 세상에 오신 구주로서 또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로서 죽은 나사로를 다시 살리는 표적을 나타냈어도 세상은 예수를 믿지 아니했습니다.
왜냐하면 12장 43절에 보면, "저희는 사람의 영광을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고 하신 것처럼, 세상을 더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죽으실 때도 빌라도는 예수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고 예수를 놓으려고 힘썼으나 유대인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쳤습니다.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하면서 거절했습니다. 즉 예수를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로 영접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제 아들 안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하는 영광을 보이셨는데도 그를 거절한 것입니다. 모세가 보지 못했고 선지자들이 듣지 못했던 아버지의 영광과 음성을 아들 안에서 나타냈는데도 그를 거절한 것이 그들의 죄입니다. 그들은 주님 안에 거하기를 거절하고 세상과 함께하기를 원한 것입니다. 성령께서 오셔서 바로 이런 이들의 죄를 책망하실 것입니다.
의에 대해서
또 성령께서 세상을 책망하시는데, 의에 대해서 책망하십니다. 의에 대해서 책망하신다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10절입니다.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 주님을 보는 것이 의로움입니다. 7장 33-34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조금 더 있다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돌아가겠노라 너희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하신대" 주님께서 가신 곳에 이르지 못하므로 주님을 보지 못합니다. 이제 다른 보혜사 성령이 오시면 주님이 세상에 계실 때보다 더 밝히 주님을 드러내며 증거하실 것입니다.
이 성령 안에서 세상에 남겨진 주의 제자들은 주님을 보고 듣고 만집니다. 그러나 세상은 그를 보지 못하고 알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주의 교회가 성령 안에서 주님을 보는 것은 부활하신 주님이십니다.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문을 닫은 곳에 제자들을 찾아 오셔서 부활하신 주님의 영광을 보이시고 평강을 주시며 제자들로 크게 기뻐하신 분이십니다. 세례 요한을 비롯해서 안드레와 베드로, 빌립과 나다나엘이 보고 기뻐한 것은 유대인에게 약속하신 메시야 그를 보고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시라고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렇게 보고 기뻐하는 것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도마처럼 주님의 손과 옆구리에 손을 넣어보고 주님을 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더 복되다고 하신 것처럼 성령으로 주님 안에 거하는 것을 압니다. 주님이 내 안에 내가 주님 안에 있는 것을 봅니다. 세상의 고난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이기는 능력으로 이 몸 안에 주님이 사심을 압니다. 형제가 서로 사랑하므로 형제 안에 함께하시는 주님을 늘 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세상을 이기고 주님이 다시 오실 때 그의 영광을 눈으로 직접 보고 그의 영광에 함께 참여할 것입니다. 주님의 제자들과 믿는 자들은 주님과 항상 함께하며 보지만, 세상은 주님을 더 이상 보지 못합니다. 이런 세상을 성령께서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심판에 대해서
또 성령께서 세상을 책망하시는데, 심판에 대해서 책망하십니다. 심판에 대해서 책망하신다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11절입니다.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니라" 성령이 오심으로 세상은 심판을 받았음을 압니다. 요한복음 끝에서 주님은 빌라도와 유대인들로부터 심판을 받아 십자가에 저주스런 죽음을 받으신 것처럼 되어 있습니다. 세상이 보면 이 죽음으로 예수를 심판한 것이나, 주님은 이렇게 심판을 받으심으로 오히려 세상 임금을 심판하신 것입니다. 12장 31-32절입니다. "이제 이 세상의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 임금이 쫓겨나리라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 죽음을 이기시고 다시 사셨기 때문에 이제 모든 사람을 아버지의 처소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지금도 죽음의 권세가 왕처럼 활동하는 것처럼 보여도 주님을 이 사람들보다 더 사랑해서 주님을 따르는 베드로 안에서 죽음의 권세는 조롱을 당할 것입니다.
세상에 연합해서 주님께 죄를 지우고 또 자신들이 의롭다고 주장하며 심판하였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의 사건과 부활의 사건은 모든 이런 세상의 거짓을 만천하에 드러냈습니다. 참된 죄는 예수님이 아니라 세상이며, 의인은 세상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시며, 심판받아 마땅할 자는 예수님이 아니라 세상이라는 사실이 명백하게 드러난 것입니다. 바로 십자가의 영광의 사건과 부활의 사건, 보혜사 성령의 오심으로 이런 역전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바로 성령께서 이처럼 세상을 향해 책망하실 것입니다. 이는 주님의 승리의 선언이며 믿는 자들과 제자들에게 소망의 메시지임에 없습니다. 두려워 떠는 제자들이 환경을 극복하고 승리하고 기뻐할 수 있는 복된 약속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약속하셨듯이, 주님의 영광의 십자가의 사건은 역사를 바꾸었습니다. 온 세상을 향한 여호와 하나님의 혁명의 사건이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구속의 결과 오신 보혜사 성령안에서 주님의 승리와 왕되심이 드러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우리는 어떤 시대를 살고 있습니까 제자들처럼 잠시 후면 떠나실 주님을 보면서 두려워떠는 제자들과 같은 자들이 아닙니다. 이 두려워 떠는 제자들에게 보혜사의 오심에 대한 약속과 세상을 책망하고 승리를 주실 것이라는 약속은 제자들에게 위로와 소망을 주기에 충분하였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주님께서는 부활하신 후에 제자 공동체를 찾으시며 도마에게 손의 못자국과 옆구리의 창자국을 보여주시며 위로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보고 믿는 자도 복이 있지만 보지 않고 믿는 자는 더 복되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우리들은 주님의 손의 자국과 옆구리의 고난의 자국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성령께서 증거하시는 은혜안에서 주님을 믿는 복된 새 백성들입니다. 우리들은 주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절 이후에 살고 있습니다. 성령 강림절 이후에 살고 있습니다. 이제 주님께서 약속하신 모든 말씀이 실재로 나타난 이후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이미 그리스도안에서 세상이 죄의 근본이며 예수님만이 의인이시며 세상을 향한 심판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또한 성령께서 이 사실을 거듭해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신을 심판하고 승리를 주신 부활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사는 시대는 지금도 죽음이 왕노릇하는 것처럼 되어 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악한 사단의 역사가 세상을 지배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에 속한 백성들, 악한 사단의 권세 아래 있는 세상은 여전히 땅에 속한 것을 추구하는데 그들의 전 생을 걸고 바칩니다. 명예와 출세와 부와 더 많은 힘을 얻기 위해 불철주야 애쓰고 있습니다. 이런 자들은 사단은 여전히 자기의 수하에 두며 세상에서 악한 권세를 휘두르고 있습니다. 이런 배교의 시대를 당하여 주님께 속한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고달플 수 밖에 없습니다. 악한 세상을 향해서 기독교적 가치와 말씀의 원리를 따라 살아야 하는 성도들의 삶이 고난의 연속일 수 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믿는 백성들이 고난당하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께서 세상을 이기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영원한 부활의 승리가 보장되었기 때문입니다. 고난을 역전케 하셔서 영원한 승리를 주신 그리스도가 우리의 왕이요 목자요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2002 월드컵에서의 한국 선수들의 눈부신 활약이 아직도 우리의 눈에 선합니다. 특히 16강전을 여러분은 기억하실 것입니다. 이탈리아와 치열한 싸움의 연장전에서 일어난 승리는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연장전에서의 안정환 선수의 골든골은 온 국민을 흥분과 함성의 도가니로 몰아 넣기에 충분하였습니다. 온 국민은 함께 울었고 온 국민은 하나가 되어 서로 손을 잡고 기쁨을 나누었습니다.
주님께서 이루신 승리는 이런 흥분과 기쁨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세상이 주님에게 죄를 지워 십자가에 죽였고 주님을 심판했지만, 오히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이런 일들을 통해서 본질적인 죄는 세상에 있으며 주님만이 의인이시며 오히려 세상이 스스로 심판을 자초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주님을 십자가에 내어 던진 일 때문에 바로 그 십자가의 구속의 사건 때문에 사단과 세상의 권세가 치명적인 상처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일 때문에 주님께서 승리하셨고 교회가 그 승리를 기업으로 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월드컵 경기의 승리보다도 주님의 승리를 기버하지 않고 감격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에게 문제가 있습니까 어려움이 있습니까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절망감에 사로잡혀 있습니까 우리를 역전하게 하시고 하늘의 승리를 주신 주님을 바라봅시다 지금도 우리안에 내주하셔서 승리를 증언하시며 세상을 책망하고 계시는 성령을 의지합시다. 그러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영원한 승리의 감격으로 우리를 감싸안으실 것입니다. 주님만을 의지하고 믿음으로 승리의 길을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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