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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우리를 향하신 성령님의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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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어리게만 보이던 딸이 장성하여 결혼을 한 그 가정에 어느 집사님 내외분께서 초청을 받아서 가셨답니다. 데리고 있을 때는 철 부지한 딸로만 보았는데 결혼을 하더니만 으젓하게 한 가정을 맡아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서는 정말 마음이 푸근하고 자랑스러웠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집에 데리고 있을 때는 미덥지 못해서 밥하는 것도 시키지 못했는데 시집이라고 가서 남편을 위해서 밥도 짓고 반찬도 만들고 알뜰하게 살아가는 것을 보니 얼마나 눈물이 나던지 참 고맙더랍니다.
이런 것은 아마도 모든 부모의 공통된 마음일 것입니다. 자녀를 양육하는 부모의 마음은 내 자녀가 잘살아가길 바라는 것이고 행복하기를 원하는 것일 것입니다. 믿음 안에서 우리 모두들 바라보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도 아마 우리가 믿음이 성숙한 좋은 사람이 되길 바라고 계실 것입니다. 성숙한 믿음의 사람으로서 살아가길 원하고 있을 것입니다.
때로 우리가 믿음 안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잘 깨닫지 못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분별하지 못하면 여호와 하나님은 성령님을 통해서 깨닫게 하시고 우리를 도전하시는 것을 봅니다. 그래서 성경은 성령을 가르쳐 또 다른 이름으로 보혜사라고도 하는데 그 말은 말 그대로 해석하면 "우리를 보호해 주시고 깨닫게 하시고 가르쳐 주시는 분"이란 것입니다. 영어성경에서는 성령을 "Counselor" 즉 상담자라는 말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성령은 우리의 부족함을 함께 아파하고 또 우둔한 지혜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는 우리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가르쳐 주시고,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하신 영광의 자리로 인도해 주시고 그리고 때로 우리가 힘이 들어 피곤하고 지쳐 있을 그때 우리를 위로해 주시고 격려해 주시는 분이 바로 성령이시다 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오늘 본문7절에서 말씀하시길 "내가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 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라"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여호와 하나님께로 가시면 그 주님의 사역을 대신하여 우리와 함께 하시고 말씀을 가르치시고 깨우쳐 주시는 분이 바로 성령이시다 라는 것입니다.
행전1장에 보시면 주님께서 두려워서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려라"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봅니다. 그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은 바로 성령이십니다. 주님께서는 하늘로 오르시면서 제자들에게 내 아버지께서 나를 대신하여 너희들에게 성령을 주실 것이니 그것을 믿고 기다려라 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믿고 간절히 기도하던 제자들은 주님께서 하늘로 오르신 10일 뒤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받게 됩니다. 이 성령이 제자들에게 임하신 다음에 그들은 달라졌습니다. 두려워서 떨던 그들의 삶이 담대해 졌고, 눈치만 보고 숨을 죽이며 살던 소극적인 삶이 가슴을 활짝 펴고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예수는 우리의 구세주시라고 담대하게 선포하는 것을 봅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의 은혜에 붙잡힌 사람들의 삶의 모습입니다.
여러분! 감히 어느 누가 이 엄청난 사건을 스스로 감당하겠습니까 감히 어느 누가 이 엄청난 사건을 일으킬 수가 있겠습니까 성령의 은혜이고 도우심입니다. 그러면 이런 은혜를 주시고 엄청난 일을 감당케 하시는 성령이란 그러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성령은 "여호와 하나님의 영"입니다. 행전16:7절에서는 바울 사도는 이를 "예수의 영"이라고도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은 삼위일체 가운데 제 3위의 여호와 하나님으로서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 사역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에 함께 동참하셨고 주님께서 하늘로 오르신 지금은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우리 가운데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힘을 북돋아 주시는 분이 바로 성령이십니다. 우리는 흔히 성령 받았다고 하면 꼭 방언을 해야 하고 남다르게 전도를 열심히 해야 하는 줄 알고 있는데 반드시 그렇지만 않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은혜를 받게 되면 주님 앞에 더 귀한 섬김과 헌신을 하게 되니 이런 결과들이 나타나게 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방언도 하게 되고 전도도 열심히 하게 됩니다. 그러나 여러분! 꼭 이런 것만이 성령을 받은 증거는 아닙니다. 오히려 성령께서 내 마음에 임재하심으로 고요하게 구원을 확신하게 되고 여호와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형제를 더 귀하게 여기는 그런 일이 있기도 합니다.
아무튼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는 모든 사람과 함께 하실 뿐만 아니라 성령은 구원받은 우리의 마음속에 함께 계십니다. 고전6:19절에는 "너희 몸이 성령의 전 인줄 알지 못하느냐" 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봅니다. 그러면 그분 성령님이 왜 이 땅에 오셔야 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계실 때 하셨던 말씀을 기억나게 하시며 이 땅에서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담대하게 살아가도록 은혜를 베풀어주시며 용기를 주시는 일을 감당하시기 위해서 오신 분이 바로 성령이십니다. 뿐만 아니라 그분은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책망을 하기도 하신다는 것입니다.
"책망한다"는 것은 원어적으로 보면 "깨닫게 한다", "밝히 드러낸다", "폭로한다" 등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이 땅에 오셔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들의 허물을 깨닫게 하시고 또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도록 용기를 주시는 분임을 우리는 알게 됩니다.
오늘 말씀에 기록된 성령께서 지적하시는 "죄에 대하여" 라는 말씀은 세상이 주님을 믿지 않은 일, 즉 불 신앙에 대하여 책망하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죄라는 것은 하마르티아 즉 "과녁을 벗어난 화살"을 의미합니다. 범죄 한 이후에 모든 인간은 여호와 하나님과 관계가 올바르지 못하고 모두가 여호와 하나님의 뜻에 빗나간 상태입니다. 이것을 책망하고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올바르게 회복되도록 도우시는 분이 "성령"이시라는 것입니다.
또 "의에 대하여"라는 말에서 "의"는 "그리스도 자신"을 나타냅니다. 주님 자신이 인간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대속적인 죽임을 당하셨음을 나타내고 우리는 그리스도만을 통해서 의롭게 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새롭게 깨닫게 하고 고백하게 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또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의 권세를 잡고 있는 권세자들이 이미 심판을 받았다는 것을 증거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권세자라면 바로 사탄과 마귀를 뜻하는 것입니다. 사탄은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을 때 이미 주님께 정복당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탄은 마지막 발버둥으로 성도들을 미혹케 하고 믿음에서 떠나 여호와 하나님을 거역하게 하고 시험에 들게 하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여러 가지 일들 속에서 우리들을 보호하고 지켜 주시기 위해서 이 땅에서 사역하시는 분이 성령이시다 는 것입니다. 이런 귀한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서 오신 성령께서 우리를 향하신 소망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이제는 지난날 아팠던 상처와 괴로움으로 인하여 더 이상 힘들어 하지 않고, 좌절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로 힘입어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성실히 살아가고, 담대하게 살아갈 것을 소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우리 성도들은 이제는 세상 속에서 담대히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면서 살아가야 하기에 건강한 교회란 "클리닉 센타"로서의 기능보다 즉 싸매고 위로하고 돌보는 그런 사역에서 이제는 "캠프" 즉 병영으로서의 기능을 갖추어서 성도들이 이 땅에서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말씀 안에서 훈련시키고 준비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때에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귀하게 쓰임을 받도록 준비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미 요16:33절에서 말씀 하셨지만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셨는데 아직도 우리는 세상을 정복 하기는 커녕 도리어 정복당하고 있으니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오랜 세월 동안 예수를 믿고 교회 생활을 하였지만 아직까지도 스스로 말씀을 펼칠 수 없고 스스로 무릎을 꿇어 기도할 수가 없다면 성령님께서 얼마나 안타깝게 여길 것입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4월 소망의 달" 마지막 주일을 지나면서 우리는 우리를 향한 성령님의 소망은 어떤 것인지 한번 정리해 보면
 첫째: 성령님은 우리가 "땅 끝까지 이르러 주님의 증인"이 되는 것을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13절에 보시면 "진리의 성령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셔서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게 하신다"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들려주시고 깨닫게 하신 그 말씀 그대로인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증인되는 것이 우리를 향한 성령님의 간절한 소망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일을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준비하고 있습니까 이 소망을 성취하기 위해서 어떻게 쓰임 받기를 원하십니까 언제 어느 곳에서라도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예수는 우리의 구세주라고 선포하고 증거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둘째: 성령님은 우리가 강하고 담대하게 살아가길 원하실 것입니다. 아마 자식을 가진 세상 모든 부모는 자기 자식이 다 잘 되길 원하고 있을 것입니다. 롬8:26절에 보시면 성령께서는 우리가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를 알지 못하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친히 우리를 위하여 기도해 주시는 분이 바로 성령이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세상을 이기셨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우리가 세상에 얽매여 살아간다면 그리고 세상의 많은 일로 인하여 번민하고 괴로워 한다면 성령님은 탄식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주안에서 담대하게 그리고 강하게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답게, 구원받은 성도들답게, 이 땅을 살아가는 거룩한 백성들답게 늘 밝게 그리고 반듯하게 살아가길 원합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한 성령님의 소망이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읽은 즉 깨닫는 영을 부어 주시고, 주님을 위하여 섬김의 일을 할 때는 기쁨과 감사와 순종함으로 일하게 하시고, 모든 것을 행함에 있어서는 반드시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일을 하게 되는 그런 아름다운 마음과 거룩한 마음을 주시는 분이 성령님이십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비록 주어진 삶의 여건이 나로 하여금 힘들게 하고 고통스럽게 한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결코 좌절하거나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성령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실 것이고 우리의 삶을 여호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귀한 삶으로 인도해 주시는 분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주안에서 늘 승리하시고 도우시는 성령을 의지하여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귀한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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