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사순절의 메시지
본문
사순절이란 부활절 전에 금식하는 40일간을 말한다. 사순절을 가리킨 듯한 40일간이라는 용어 '테사라코스테'의 최초의 언급은 니케아 교회법(AD 325: 교회법 5조)에서 나온다. 이 관습은 본래 세례 예비 자들에게 규정된 금식에서 유래된 듯 하다. 그리고 40이라는 숫자는 모세, 엘리야 그리 고 예수 자신이 40일간의 금식에 의해 밝혀진 것이다. 수세기 동안 금식의 준수는 대단히 엄격하 였고 회개적 성격의 전례에서 다양한 특성들이 반영되었다. 그러므로 일반적으로 사순절은 축제들 을 금하고 자선을 베풀고 평소보다도 더 많이 종교적 행사들에 참여함으로 회개의 절기를 지켜가 고 있다. 여기에 상응한 사순절의 메시지는 무엇일까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바탕으로 한 기독교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여기에 있다. 고난을 축복 으로 믿는 바로 그 마음이다. 고난도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와 그 뜻과 그 의를 이룩하기 위해서 겪는 고 난이다. 어두운 역사와 냄새나는 구조에 의해 억울하게 학대받는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과 구원과 해방을 위해 노력하고 싸우다가 당하는 고난이다. 이 같은 고난이 값진 은혜요 가장 영광스런 축복이다. 이것을 축복으로 보는 그리스도인의 마음은 곧 의롭고 자유롭고 보다 밝은 새 역사와 구조를 만 들려고 하는 마음과 같다.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그 자세를 가질 때 어두운 역사는 바꾸어 질 수밖에 없을 것이며 비뚤어진 구조는 온전케 되지 않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기에 기독교의 힘 이 있다.
예수의 산상수훈 가운데서 중반부를 차지하는 본 장의 강화(講話)주제는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합당한 삶을 말함이다. 즉 마태복음 5장이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될 자의 자격에 대한 원론적인 강화였다 면 본 장은 그러한 원리에 입각한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한 실천적인 문제에 대한 말씀이다. 유대 교 경건의 3대 요소는 본문이 제시한 기도와 금식과 구제행위를 말한다. 초대교회에서는 선교사 의 파송이라든지 장로의 임명 등 교회의 중요한 행사를 앞두고 주님의 뜻을 전적으로 구할 때 금 식했다. 이 같은 맥락에서 주님께서도 공생애의 사역을 앞두고 40일간의 광야 금식 기도를 했던 것이다. 그런즉 금식기도 자체는 참으로 소중한 것이요 고도의 경건의 행위로서 뜨겁고 깨어있는 신앙생활에 필요한 과정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예수 당시의 바리새인들처럼 외식적인 금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 당시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의 금식 사실을 널리 알리기 위해 재를 뒤집어쓰는 흉한 모습으로, 되도록 침울하고 괴로운 듯한 얼굴 모양을 지으면서 예루살렘 성전이나 큰길거리 를 방황하였던 것이다. 바리새인들의 외식적인 금식이 나쁘다고 금식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사랑하는 자녀가 금식의 고통으로 절박하게 간구하며 매달리는데, 또한 그것이 옳다고 필요한 일 이라고 판단 될 때 어느 아버지가 모르는 척 하겠는가
지금 한국 사회는 IMF관리체제하에 총체적 위기를 맞고 있다. 경제가 흔들리고 있고 실업대란 으로 실직자가 수백만에 달하고 연쇄부도로 기업들이 무너지고 중산층이 붕괴되고 있다. 그래서 불안 공포 자살 증후군이 생기고 집단 우울증 환자가 양산되고 있다. 1인당 국민소득은 8년 전 수준으로 되돌아가고 있다. 오늘의 위기는 단순한 경제 위기가 아니라 지난해 동안 양적 경제성장 에 몰두한 나머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노동 등 사회전반의 개혁과 시민덕성 및 공동체 윤리의 함양에 소홀한 결과 직면한 국가체제의 총체적 위기가 아닐 수 없다. 총체적 위기 극복은 무엇인가 고통분담이라는 나눔의 철학은 우리 현실의 당위이지 않는가 누구를 향하여 소리를 높이고 손가락질을 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돌아보고 자기 성찰과 회개를 통한 자기 개혁은 스스 로 이루어가야 하지 않는가 나부터 금욕적 생활로 합리적 소비 생활을 위한 근검절약의 정신이 사순절의 생활이어야 한다.
오늘 우리는 예수의 십자가 사건 속에서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 인간의 생명과 역사 그 안에서 친히 들어 왔다는 사실을 인식하자.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이 인간의 상황 안쪽으로부터 우리들과 같은 인간을 향하여 말씀하시는 그 말씀을 듣는다. 십자가 사건은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떠난 죄 때문에 숨이 막히고 쓸쓸하여 비참하게 된 우리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여호와 하나님과 연합하는 자들로 바꾸어 놓는 사건이 다. 또한 십자가는 우리 모두를 위한 여호와 하나님의 조건 없는 사랑에 대한 상징이 되고 있다. 예수는 우리가 당하게 될 그 처지에 계셨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 사랑을 십자가 위에서 나타내 주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십자가를 바라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갖고 계신 초능력을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악을 선으로 바꾸 시는 그 능력이다. 여호와 하나님의 자기 표현은 우리를 위한 여호와 하나님의 신성한 사랑의 완전하고 궁극적인 계시가 되고 있다. 십자가를 바라보면 예수의 순종의 모습을 보게된다. 그러면 우리는 헌신 하고 자 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궁극적인 능력과 사랑의 보장을 마음속에 받아 들여 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순종하는 제자의 정신을 가져야 한다. 이제 나의 정신은 십자가에 달리신 그 분이 보여주신 희생적인 사랑을 그 안에 담고 있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이 선물로 주시는 사랑과 능 력뿐만 아니라 우리 시대에 여호와 하나님의 사람이 되려는 도전의 마음도 받아 들여야 한다. 이 도전의 마음은 우리들의 매일 생활 현장에서 적극적으로 예수를 따르고자 하는 마음이다. 그리고 예수의 정신이 우리들 속에서 그리고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 속에서 살아 움직이게 하는 마음이다.
이러한 마음을 갖기 위해서는 사순절을 앞두고 경건의 훈련을 쌓아야 한다. 첫째로 우리는 주 님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다. 주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좀더 수고하고 우리의 이웃을 위하여 좀 더 헌신하는 것이다. 우리를 위하여 고난의 종이 되었던 주님과 같이 고난에 참여하는 자들이 되 어야 한다. 두 번째는 주일을 지키는 힘은 영적인데 있고, 주일은 소망의 기도와 찬양을 드리는 날이기에 주일을 지켜 고난에 참여하는 자들이 얻게 되는 영광과 보상에 관한 말씀에 귀를 기울 여야 한다. 그리고 사랑의 공동체를 형성하여 뜨거운 교제를 나누어야 한다. 세 번째는 겸손을 배 워야 한다. 자기를 비우는 일이다 자기에게 있다고 생각되는 것을 비우어야 한다. 학벌, 인맥, 지 방색, 지식, 재산, 지위, 명예, 공적, 경험, 기술 모두 다 비워야 한다. 그리고 종의 입장으로 내려 가야 한다. 나의 생각, 계획, 야망, 공로 모두를 우리의 주인이신 주님께 굴복시켜야 한다. 그것은 죽기까지 복종하는 일이다. 목숨까지 주께 드리는 낮아진 자가 되어야 한다. 사순절은 고통스럽고 수고스러운 헌신의 날들이다. 그러나 영광스런 부활절이 약속되어 있는 소망의 날들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바탕으로 한 기독교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여기에 있다. 고난을 축복 으로 믿는 바로 그 마음이다. 고난도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와 그 뜻과 그 의를 이룩하기 위해서 겪는 고 난이다. 어두운 역사와 냄새나는 구조에 의해 억울하게 학대받는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과 구원과 해방을 위해 노력하고 싸우다가 당하는 고난이다. 이 같은 고난이 값진 은혜요 가장 영광스런 축복이다. 이것을 축복으로 보는 그리스도인의 마음은 곧 의롭고 자유롭고 보다 밝은 새 역사와 구조를 만 들려고 하는 마음과 같다.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그 자세를 가질 때 어두운 역사는 바꾸어 질 수밖에 없을 것이며 비뚤어진 구조는 온전케 되지 않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기에 기독교의 힘 이 있다.
예수의 산상수훈 가운데서 중반부를 차지하는 본 장의 강화(講話)주제는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합당한 삶을 말함이다. 즉 마태복음 5장이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될 자의 자격에 대한 원론적인 강화였다 면 본 장은 그러한 원리에 입각한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한 실천적인 문제에 대한 말씀이다. 유대 교 경건의 3대 요소는 본문이 제시한 기도와 금식과 구제행위를 말한다. 초대교회에서는 선교사 의 파송이라든지 장로의 임명 등 교회의 중요한 행사를 앞두고 주님의 뜻을 전적으로 구할 때 금 식했다. 이 같은 맥락에서 주님께서도 공생애의 사역을 앞두고 40일간의 광야 금식 기도를 했던 것이다. 그런즉 금식기도 자체는 참으로 소중한 것이요 고도의 경건의 행위로서 뜨겁고 깨어있는 신앙생활에 필요한 과정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예수 당시의 바리새인들처럼 외식적인 금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 당시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의 금식 사실을 널리 알리기 위해 재를 뒤집어쓰는 흉한 모습으로, 되도록 침울하고 괴로운 듯한 얼굴 모양을 지으면서 예루살렘 성전이나 큰길거리 를 방황하였던 것이다. 바리새인들의 외식적인 금식이 나쁘다고 금식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사랑하는 자녀가 금식의 고통으로 절박하게 간구하며 매달리는데, 또한 그것이 옳다고 필요한 일 이라고 판단 될 때 어느 아버지가 모르는 척 하겠는가
지금 한국 사회는 IMF관리체제하에 총체적 위기를 맞고 있다. 경제가 흔들리고 있고 실업대란 으로 실직자가 수백만에 달하고 연쇄부도로 기업들이 무너지고 중산층이 붕괴되고 있다. 그래서 불안 공포 자살 증후군이 생기고 집단 우울증 환자가 양산되고 있다. 1인당 국민소득은 8년 전 수준으로 되돌아가고 있다. 오늘의 위기는 단순한 경제 위기가 아니라 지난해 동안 양적 경제성장 에 몰두한 나머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노동 등 사회전반의 개혁과 시민덕성 및 공동체 윤리의 함양에 소홀한 결과 직면한 국가체제의 총체적 위기가 아닐 수 없다. 총체적 위기 극복은 무엇인가 고통분담이라는 나눔의 철학은 우리 현실의 당위이지 않는가 누구를 향하여 소리를 높이고 손가락질을 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돌아보고 자기 성찰과 회개를 통한 자기 개혁은 스스 로 이루어가야 하지 않는가 나부터 금욕적 생활로 합리적 소비 생활을 위한 근검절약의 정신이 사순절의 생활이어야 한다.
오늘 우리는 예수의 십자가 사건 속에서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 인간의 생명과 역사 그 안에서 친히 들어 왔다는 사실을 인식하자.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이 인간의 상황 안쪽으로부터 우리들과 같은 인간을 향하여 말씀하시는 그 말씀을 듣는다. 십자가 사건은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떠난 죄 때문에 숨이 막히고 쓸쓸하여 비참하게 된 우리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여호와 하나님과 연합하는 자들로 바꾸어 놓는 사건이 다. 또한 십자가는 우리 모두를 위한 여호와 하나님의 조건 없는 사랑에 대한 상징이 되고 있다. 예수는 우리가 당하게 될 그 처지에 계셨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 사랑을 십자가 위에서 나타내 주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십자가를 바라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갖고 계신 초능력을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악을 선으로 바꾸 시는 그 능력이다. 여호와 하나님의 자기 표현은 우리를 위한 여호와 하나님의 신성한 사랑의 완전하고 궁극적인 계시가 되고 있다. 십자가를 바라보면 예수의 순종의 모습을 보게된다. 그러면 우리는 헌신 하고 자 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궁극적인 능력과 사랑의 보장을 마음속에 받아 들여 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순종하는 제자의 정신을 가져야 한다. 이제 나의 정신은 십자가에 달리신 그 분이 보여주신 희생적인 사랑을 그 안에 담고 있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이 선물로 주시는 사랑과 능 력뿐만 아니라 우리 시대에 여호와 하나님의 사람이 되려는 도전의 마음도 받아 들여야 한다. 이 도전의 마음은 우리들의 매일 생활 현장에서 적극적으로 예수를 따르고자 하는 마음이다. 그리고 예수의 정신이 우리들 속에서 그리고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 속에서 살아 움직이게 하는 마음이다.
이러한 마음을 갖기 위해서는 사순절을 앞두고 경건의 훈련을 쌓아야 한다. 첫째로 우리는 주 님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다. 주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좀더 수고하고 우리의 이웃을 위하여 좀 더 헌신하는 것이다. 우리를 위하여 고난의 종이 되었던 주님과 같이 고난에 참여하는 자들이 되 어야 한다. 두 번째는 주일을 지키는 힘은 영적인데 있고, 주일은 소망의 기도와 찬양을 드리는 날이기에 주일을 지켜 고난에 참여하는 자들이 얻게 되는 영광과 보상에 관한 말씀에 귀를 기울 여야 한다. 그리고 사랑의 공동체를 형성하여 뜨거운 교제를 나누어야 한다. 세 번째는 겸손을 배 워야 한다. 자기를 비우는 일이다 자기에게 있다고 생각되는 것을 비우어야 한다. 학벌, 인맥, 지 방색, 지식, 재산, 지위, 명예, 공적, 경험, 기술 모두 다 비워야 한다. 그리고 종의 입장으로 내려 가야 한다. 나의 생각, 계획, 야망, 공로 모두를 우리의 주인이신 주님께 굴복시켜야 한다. 그것은 죽기까지 복종하는 일이다. 목숨까지 주께 드리는 낮아진 자가 되어야 한다. 사순절은 고통스럽고 수고스러운 헌신의 날들이다. 그러나 영광스런 부활절이 약속되어 있는 소망의 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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