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위일체] 삼위일체 하나님
본문
오늘은 삼위일체 주일입니다. 주로 교회력은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는데, 성령강림절과 삼위일체주일을 보완하므로 성부와 성자와 성령 삼위일체 여호와 하나님을 함께 기억하고 기념하는 교회력으로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늘 고백하는 사도신경이나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에는 삼위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고백이 나옵니다.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에는 사도신경보다 약간 더 자세하게 나옵니다.
우리는 한 분이시며, 전능하사 천지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두를 만드신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를 믿는다.
또 한 분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니, 그는 여호와 하나님의 독생자이시오 만유보다 먼저 아버지께로서 나신 자요, 신 중의 신이시며, 빛 중의 빛이시오, 참 여호와 하나님의 참 여호와 하나님이시오, 지음 받지 않고 나셨으며, 아버지와 한 본질을 가지셨고, 그로 말미암아 만물이 지은바 되었으며, 우리 인생과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하늘로부터 내려오사, 성령으로 말미암아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셨으며, 우리를 위하여 본디오 빌라도에게 십자가에 못 박히심을 당하시사, 고난을 받아 장사지낸 바 되었으며, 삼일만에 성경대로 부활하사 하늘에 올라 아버지 우편에 앉으시고, 영광 중에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사, 그의 나라를 그치지 않게 하실 것을 믿는다.
또 성령, 곧 주 되시고 생명을 주시는 자를 믿으니, 이는 아버지 (그리고 아들)에게서 나셨으며, 아버지와 아들과 더불어 찬송과 경배를 받으시며, 예언자들로 말씀하신 분이시다.
또 하나인 거룩한 교회와 사도적 교회를 (믿는다). 우리는 죄를 사하는 세례가 하나 있는 것으로 알며, 또 우리는 죽은 자의 부활과 세상에 생명이 임할 것을 기다린다.
신앙고백에서 우리는 성부는 천지를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으로, 성자는 여호와 하나님의 외아들로 성육신하시어 고난 당하시고 아버지 우편에 오르신 여호와 하나님으로,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과 더불어 찬송과 경배를 받으시는 여호와 하나님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주목할 것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역할이 각기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각각 독립적인 위격(位格)을 가지신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삼위일체 주일을 맞이하면서 좀 까다롭고 어려운 문제이지만 마냥 피해갈 수만은 없는 이 문제를 함께 생각하면서 우리의 신앙고백을 분명히 하고자 합니다.
성부성자성령 여호와 하나님
우리는 보통 여호와 하나님은 한 분이라고 믿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분’이라는 신앙고백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셋이 아닌 하나라는 뜻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 이외에 다른 신이 없다는 뜻입니다. 구약성경에 기술되고 있는 여호와 하나님은 일반적으로 성부 여호와 하나님을 지칭하는 표현으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신명기 6장 4절의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에서 표현되고 있는 ‘하나’라는 표현은 삼위일체론에 적용될 수 있는 표현이 아닙니다. 이 ‘하나’는 여호와 하나님만이 유일한 신이시고 참 신이라는 뜻의 하나입니다. 고대 근동 지방에 수많은 신들이 있지만 그 모든 신들은 거짓 신들이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 참 신이시고 유일한 하나밖에 없는 신이라는 뜻입니다.
삼위일체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이해하는 데 흔히 발생하는 큰 오류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을 동일한 여호와 하나님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각각 다른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성부는 성자가 아니시고, 성자는 성령이 아니시며, 또한 성령은 성부나 성자가 아니십니다. 그래서 신앙고백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에 대한 각각의 신앙을 따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오늘 읽어 드린 요한복음 16장 13절에 이하에 보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모두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 곧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실 것이다. 그는 자기 마음대로 말씀하지 않으시고, 듣는 것만 일러주실 것이요, 앞으로 올 일들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다. 또 그는 나를 영광되게 하실 것이다. 그가 나의 것을 받아서,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아버지께서 가지신 것은 다 내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성령이 나의 것을 받아서,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라고 말하였다.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 성령을 진리의 영이라고 하시면서 ‘그’라는 삼인칭을 사용하셨고, 성부를 아버지라고 부르시면서 그가 가지신 것은 다 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각각 독립된 위격을 가지신 여호와 하나님을 뜻합니다. 이 본문에서는 아주 분명하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독립적으로 활동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가지신 것이 성자의 것이고, 성자의 것을 성령이 받아서 우리에게 알려주신다고 하였습니다. 한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때는 성자가 되고 어떤 때는 성령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성부 여호와 하나님 우편에 성자가 계시고 성령은 이 세상에 오셔서 여호와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하여 역사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 본문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한 뜻을 가지고 역사하고 계심을 보여줍니다. 아버지의 것을 아들이 받으셨고, 그것을 성령이 또한 받으셔서 우리에게 전하여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아버지의 뜻 다르고, 성자가 자기 뜻대로 따로 행동하고, 성령이 마음대로 역사 하시는 것이 아니라 성부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통일적으로 그대로 실현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하나이십니다. 이것을 가리켜 삼위일체라고 합니다. 셋이지만 하나처럼 역사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요한복음은 특별히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0절 이하에 보면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네가 믿지 않느냐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은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면서 자기의 일을 하신다.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어라. 믿지 못하겠거든, 내가 하는 그 일들을 보아서라도 믿어라.
성부께서 성자 안에 계시고 성자께서 성부 안에 계시기 때문에 성부와 성자는 둘이 아니고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성자께서 행하시는 일은 성부께서 성자 안에서 자신의 일을 행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특별한 여호와 하나님의 존재양식입니다. 이런 여호와 하나님의 존재 양식을 우리가 아는 방법은 예수께서 행하시는 일들을 통하여서입니다.
요한복음은 예수께서 오셔서 이 땅에서 행하신 모든 일들이 자기 마음대로 하신 것이 아니라 완전히 아버지의 뜻을 그대로 받아서 행하신 것임을 강조하였습니다. 둘이지만 완전히 하나가 된 것입니다. 또한 성자 예수께서 이 땅에 태어나실 때 성령으로 잉태되었고, 성령이 예수에게만 함께 하셔서 그를 광야로 인도하여 시험을 받게도 하셨고, 병을 고치게도 하셨으며, 그리고 그를 골고다 십자가로 인도하셨습니다. 결국 예수께서 이 땅에서 활동하시는 동안 성부와 성령이 예수 안에 들어오셔서 그와 함께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완전히 하나가 되어 만유 구원이라는 목표를 달성하셨습니다.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임무를 마치고 여호와 하나님 우편으로 가신 다음 성령이 오셔서 행하시는 모든 역사도 아버지의 뜻과 그 뜻을 받아서 이루신 아들의 역사를 그대로 우리에게 믿게 하시면서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십니다. 성령께서 처음부터 성자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셨기 때문에 그가 이루신 구원의 역사를 아주 분명하게 알고 계신 분입니다. 그런 성령께서 오늘 우리 가운데 역사하고 계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성령 안에 성부와 성자가 계신 것이며, 따라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하나이십니다. 그래서 성령을 가리켜 “그리스도의 영”(롬 9:8)이라고도 하며, “여호와 하나님의 영”(롬 9:8)이라고도 합니다. 우리가 성령의 임재를 기다리는 것은 그가 총괄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의 역사를 깨닫게 하며, 거기에 참여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그것은 삼위일체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가 성령의 임재를 기다림은 지금은 성령 여호와 하나님이 역사 하시는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와 같이 삼위일체 여호와 하나님이 이루시는 창조와 구원의 역사를 올바로 이해하고 올바로 그 여호와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겨야 할 것입니다.
동등한 위격(位格)
그러나 이런 여호와 하나님 이해에서 우리가 오해하기 쉬운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면 여호와 하나님이 세 분이라는 말인데, 그것은 삼신론(神論)이 아닌가라는 오해입니다. 삼신론의 문제는 세 신이 분리되어 통일성을 갖지 못하였다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이단으로 규정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상호간에 아무런 관계도 없이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세 신(神)이 아니고 하나로 존재하는 여호와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과 같이 성부가 성자 안에 계시고 성자 안에 성령이 계시면서 하나의 목표를 향하여 나가고 있기 때문에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각각 독립된 위격이시면서도 하나의 목표인 창조와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삼위일체에 대한 여러 가지 논의들이 있었고, 그런 논의가 잘못되어 이단으로 규정된 경우들이 많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한 분(단수)인데 영계에서는 성부 여호와 하나님으로 계시다가 땅에 독생자의 양태로 오시고 부활 승천하신 후에 성령으로 오셨다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었고(樣態論的 位1體論), 천지를 창조하실 때는 성부사역으로, 구속사를 위하여 성부가 성자사역으로, 부활 승천한 성부께서 구속사 완성을 위하여 성령사역으로 임하신다는 사역적(使役的) 삼위일체론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여호와 하나님은 성부만이 여호와 하나님이시고, 성자는 피조 되었으며, 성령은 영감 받은 표식으로 비인격체라는 유일신론도 있습니다. 여호와의 증인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그 외에도 태양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비유하면서 태양에는 빛과 속도와 열이 있지만 한 태양인 것처럼 삼위일체를 설명하거나 혹은 나무로 비유하면서 잎과 줄기와 뿌리가 있지만 나무는 하나이다라고 삼위일체를 설명하는 것도 올바른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각각 존재하고 계시지만 동시에 서로가 서로 안에 계시므로 하나됨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런 삼위일체론 설명에서 또 하나 오해하기 쉬운 것은, 성부가 가장 높고 그 다음 성자, 그리고 성령의 순서로 서열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기 쉽다는 점입니다. 사실 성경에서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아버지 여호와 하나님이 더 높고 아들 여호와 하나님이 그보다 낮은 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성령은 심부름꾼처럼 인식되기 쉽습니다.
그러나 니케아신조에서 보는 대로 삼위 여호와 하나님은 동일한 신성과 위격을 가지신 분임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또 한 분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니, 그는 여호와 하나님의 독생자이시오 만유보다 먼저 아버지께로서 나신 자요, 신 중의 신이시며, 빛 중의 빛이시오, 참 여호와 하나님의 참 여호와 하나님이시오, 지음 받지 않고 나셨으며, 아버지와 한 본질을 가지셨고…”
이 신조의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항목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신조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부 여호와 하나님과 동일한 신성과 위격을 지니신 여호와 하나님임을 강조합니다. 또한 성령에 관한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를 보면, “또 성령, 곧 주 되시고 생명을 주시는 자를 믿으니, 이는 아버지에게서 나셨으며, 아버지와 아들과 더불어 찬송과 경배를 받으시며,…”라고 하였습니다. 이 성령에 관한 항목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성령께서 ‘아버지와 아들과 더불어 찬송과 경배를 받으실 주시라라는 표현입니다. 이 표현은 성령께서 성부와 성자와 동일한 신성과 위격을 가지신 여호와 하나님임을 고백한 것입니다. 따라서 삼위 여호와 하나님 사이에 어떤 서열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역할이 다른 것뿐임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누가복음을 보면, 성자이신 예수께서 이 땅에 태어나실 때 성령으로 잉태되셨을 뿐 아니라 성령에 이끌림을 받아서 광야로 나가 사탄의 시험을 받으시기도 하였고, 골고다로 나가시기도 하였습니다. 성령이 예수를 이끌었다는 사실만 놓고 보면, 성령의 서열이 더 높은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에서 보면, 성령은 진리의 영으로 자기 뜻대로 하지 않고 성자의 것을 받아서 전하신다고 하므로, 성자가 성령보다 더 높은 서열처럼 보입니다. 이것은 결국 서열과는 상관없이 역할이 다름을 뜻하는 것입니다. 삼위가 일체임을 강조하는 까닭이 바로 이런 서열 관념을 깨기 위함이기도 합니다.
삼위일체 여호와 하나님을 올바로 이해하는 것은 우리의 신앙을 바르게 세움에 있어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러나 교리적으로만 이해하는데 머물러서는 안 될 것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가 각각의 독립된 신성과 위격을 가지셨지만, 그들이 따로 따로 역사 하시지 않고 창조와 구원이라는 동일한 목표를 향하여 역할을 분담하시며, 이를 위해서 서로가 서로 안에 들어가 완전한 일치를 이루신다는 사실은 우리의 신앙의 목표가 어디에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분명 개별적 인격을 가진 독립된 존재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나 홀로 존재할 수는 없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받아드리면서 하나의 생명공동체를 이룰 때 우리는 비로소 온전한 생명을 누릴 수 있습니다. 삼위일체 교리는 우리에게 이런 생명의 원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성자 여호와 하나님이시면서도 그 모든 영광을 비우고 이 땅에 성육신하시어 고난 당하심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이 모두가 만유를 구원하시고자 하는 성부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스스로 택하신 십자가의 길입니다. 우리가 올바른 인격을 갖추고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와 이 세계를 올바로 볼 수 있다면, 자신의 자존심만을 고집하지 않고 기꺼이 그 역사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기도 하고, 자기 속에 남을 받아드리기도 할 것입니다.
요한복음 17장에서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기도하셨습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지켜 주셔서 우리가 하나인 것과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우리가 하나인 것 같이, 즉 성부와 성자가 하나인 것 같이 우리 믿는 사람들도 하나가 될 것을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17장 23절에서는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신 것은, 그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모래알처럼 흩어진 인간과 피조계 모두를 구원하여 “완전히 하나”되게 하시는 것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 이루시는 구원의 목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삼위일체 여호와 하나님의 교리를 올바로 이해하게 될 때 완전히 하나되는 구원의 목표가 성취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삼위일체 여호와 하나님을 교리적으로만 이해하려 할 때 많은 이단들이 생겨났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삼위일체 여호와 하나님의 교리 속에 포함된 그 놀라운 희생과 양보와 겸손과 순종을 배우는 일입니다. 완전히 독립된 위격이시면서도 완전히 하나가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이런 존재양식이야말로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배워야 할 것이며, 이 세계가 따라야 할 모범입니다. 분열과 다툼으로 얼룩진 세계를 화해와 통일로 이끄시기 위하여 여호와 하나님은 삼위일체 여호와 하나님의 존재양식에서 모범을 보이신 것입니다. 삼위 여호와 하나님의 이 신비한 하나되심은 모래알처럼 흩어진 인간과 피조계를 완전히 하나로 만드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신비한 역사이기도 합니다. 성령께서 오늘 우리에게 오셔서 바로 이런 사실을 일깨우시면서 깨어진 우리의 인격을 새롭게 지으시고 우리의 지각을 세련되게 하셔서 하나된 생명공동체를 이루도록 이끌고 계십니다.
이제 이런 여호와 하나님의 오묘하신 섭리를 올바로 깨달으면서 적극적으로 하나됨에 동참하시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늘 고백하는 사도신경이나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에는 삼위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고백이 나옵니다.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에는 사도신경보다 약간 더 자세하게 나옵니다.
우리는 한 분이시며, 전능하사 천지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두를 만드신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를 믿는다.
또 한 분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니, 그는 여호와 하나님의 독생자이시오 만유보다 먼저 아버지께로서 나신 자요, 신 중의 신이시며, 빛 중의 빛이시오, 참 여호와 하나님의 참 여호와 하나님이시오, 지음 받지 않고 나셨으며, 아버지와 한 본질을 가지셨고, 그로 말미암아 만물이 지은바 되었으며, 우리 인생과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하늘로부터 내려오사, 성령으로 말미암아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셨으며, 우리를 위하여 본디오 빌라도에게 십자가에 못 박히심을 당하시사, 고난을 받아 장사지낸 바 되었으며, 삼일만에 성경대로 부활하사 하늘에 올라 아버지 우편에 앉으시고, 영광 중에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사, 그의 나라를 그치지 않게 하실 것을 믿는다.
또 성령, 곧 주 되시고 생명을 주시는 자를 믿으니, 이는 아버지 (그리고 아들)에게서 나셨으며, 아버지와 아들과 더불어 찬송과 경배를 받으시며, 예언자들로 말씀하신 분이시다.
또 하나인 거룩한 교회와 사도적 교회를 (믿는다). 우리는 죄를 사하는 세례가 하나 있는 것으로 알며, 또 우리는 죽은 자의 부활과 세상에 생명이 임할 것을 기다린다.
신앙고백에서 우리는 성부는 천지를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으로, 성자는 여호와 하나님의 외아들로 성육신하시어 고난 당하시고 아버지 우편에 오르신 여호와 하나님으로,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과 더불어 찬송과 경배를 받으시는 여호와 하나님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주목할 것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역할이 각기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각각 독립적인 위격(位格)을 가지신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삼위일체 주일을 맞이하면서 좀 까다롭고 어려운 문제이지만 마냥 피해갈 수만은 없는 이 문제를 함께 생각하면서 우리의 신앙고백을 분명히 하고자 합니다.
성부성자성령 여호와 하나님
우리는 보통 여호와 하나님은 한 분이라고 믿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분’이라는 신앙고백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셋이 아닌 하나라는 뜻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 이외에 다른 신이 없다는 뜻입니다. 구약성경에 기술되고 있는 여호와 하나님은 일반적으로 성부 여호와 하나님을 지칭하는 표현으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신명기 6장 4절의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에서 표현되고 있는 ‘하나’라는 표현은 삼위일체론에 적용될 수 있는 표현이 아닙니다. 이 ‘하나’는 여호와 하나님만이 유일한 신이시고 참 신이라는 뜻의 하나입니다. 고대 근동 지방에 수많은 신들이 있지만 그 모든 신들은 거짓 신들이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 참 신이시고 유일한 하나밖에 없는 신이라는 뜻입니다.
삼위일체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이해하는 데 흔히 발생하는 큰 오류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을 동일한 여호와 하나님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각각 다른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성부는 성자가 아니시고, 성자는 성령이 아니시며, 또한 성령은 성부나 성자가 아니십니다. 그래서 신앙고백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에 대한 각각의 신앙을 따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오늘 읽어 드린 요한복음 16장 13절에 이하에 보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모두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 곧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실 것이다. 그는 자기 마음대로 말씀하지 않으시고, 듣는 것만 일러주실 것이요, 앞으로 올 일들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다. 또 그는 나를 영광되게 하실 것이다. 그가 나의 것을 받아서,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아버지께서 가지신 것은 다 내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성령이 나의 것을 받아서,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라고 말하였다.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 성령을 진리의 영이라고 하시면서 ‘그’라는 삼인칭을 사용하셨고, 성부를 아버지라고 부르시면서 그가 가지신 것은 다 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각각 독립된 위격을 가지신 여호와 하나님을 뜻합니다. 이 본문에서는 아주 분명하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독립적으로 활동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가지신 것이 성자의 것이고, 성자의 것을 성령이 받아서 우리에게 알려주신다고 하였습니다. 한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때는 성자가 되고 어떤 때는 성령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성부 여호와 하나님 우편에 성자가 계시고 성령은 이 세상에 오셔서 여호와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하여 역사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 본문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한 뜻을 가지고 역사하고 계심을 보여줍니다. 아버지의 것을 아들이 받으셨고, 그것을 성령이 또한 받으셔서 우리에게 전하여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아버지의 뜻 다르고, 성자가 자기 뜻대로 따로 행동하고, 성령이 마음대로 역사 하시는 것이 아니라 성부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통일적으로 그대로 실현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하나이십니다. 이것을 가리켜 삼위일체라고 합니다. 셋이지만 하나처럼 역사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요한복음은 특별히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0절 이하에 보면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네가 믿지 않느냐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은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면서 자기의 일을 하신다.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어라. 믿지 못하겠거든, 내가 하는 그 일들을 보아서라도 믿어라.
성부께서 성자 안에 계시고 성자께서 성부 안에 계시기 때문에 성부와 성자는 둘이 아니고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성자께서 행하시는 일은 성부께서 성자 안에서 자신의 일을 행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특별한 여호와 하나님의 존재양식입니다. 이런 여호와 하나님의 존재 양식을 우리가 아는 방법은 예수께서 행하시는 일들을 통하여서입니다.
요한복음은 예수께서 오셔서 이 땅에서 행하신 모든 일들이 자기 마음대로 하신 것이 아니라 완전히 아버지의 뜻을 그대로 받아서 행하신 것임을 강조하였습니다. 둘이지만 완전히 하나가 된 것입니다. 또한 성자 예수께서 이 땅에 태어나실 때 성령으로 잉태되었고, 성령이 예수에게만 함께 하셔서 그를 광야로 인도하여 시험을 받게도 하셨고, 병을 고치게도 하셨으며, 그리고 그를 골고다 십자가로 인도하셨습니다. 결국 예수께서 이 땅에서 활동하시는 동안 성부와 성령이 예수 안에 들어오셔서 그와 함께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완전히 하나가 되어 만유 구원이라는 목표를 달성하셨습니다.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임무를 마치고 여호와 하나님 우편으로 가신 다음 성령이 오셔서 행하시는 모든 역사도 아버지의 뜻과 그 뜻을 받아서 이루신 아들의 역사를 그대로 우리에게 믿게 하시면서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십니다. 성령께서 처음부터 성자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셨기 때문에 그가 이루신 구원의 역사를 아주 분명하게 알고 계신 분입니다. 그런 성령께서 오늘 우리 가운데 역사하고 계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성령 안에 성부와 성자가 계신 것이며, 따라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하나이십니다. 그래서 성령을 가리켜 “그리스도의 영”(롬 9:8)이라고도 하며, “여호와 하나님의 영”(롬 9:8)이라고도 합니다. 우리가 성령의 임재를 기다리는 것은 그가 총괄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의 역사를 깨닫게 하며, 거기에 참여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그것은 삼위일체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가 성령의 임재를 기다림은 지금은 성령 여호와 하나님이 역사 하시는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와 같이 삼위일체 여호와 하나님이 이루시는 창조와 구원의 역사를 올바로 이해하고 올바로 그 여호와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겨야 할 것입니다.
동등한 위격(位格)
그러나 이런 여호와 하나님 이해에서 우리가 오해하기 쉬운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면 여호와 하나님이 세 분이라는 말인데, 그것은 삼신론(神論)이 아닌가라는 오해입니다. 삼신론의 문제는 세 신이 분리되어 통일성을 갖지 못하였다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이단으로 규정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상호간에 아무런 관계도 없이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세 신(神)이 아니고 하나로 존재하는 여호와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과 같이 성부가 성자 안에 계시고 성자 안에 성령이 계시면서 하나의 목표를 향하여 나가고 있기 때문에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각각 독립된 위격이시면서도 하나의 목표인 창조와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삼위일체에 대한 여러 가지 논의들이 있었고, 그런 논의가 잘못되어 이단으로 규정된 경우들이 많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한 분(단수)인데 영계에서는 성부 여호와 하나님으로 계시다가 땅에 독생자의 양태로 오시고 부활 승천하신 후에 성령으로 오셨다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었고(樣態論的 位1體論), 천지를 창조하실 때는 성부사역으로, 구속사를 위하여 성부가 성자사역으로, 부활 승천한 성부께서 구속사 완성을 위하여 성령사역으로 임하신다는 사역적(使役的) 삼위일체론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여호와 하나님은 성부만이 여호와 하나님이시고, 성자는 피조 되었으며, 성령은 영감 받은 표식으로 비인격체라는 유일신론도 있습니다. 여호와의 증인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그 외에도 태양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비유하면서 태양에는 빛과 속도와 열이 있지만 한 태양인 것처럼 삼위일체를 설명하거나 혹은 나무로 비유하면서 잎과 줄기와 뿌리가 있지만 나무는 하나이다라고 삼위일체를 설명하는 것도 올바른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각각 존재하고 계시지만 동시에 서로가 서로 안에 계시므로 하나됨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런 삼위일체론 설명에서 또 하나 오해하기 쉬운 것은, 성부가 가장 높고 그 다음 성자, 그리고 성령의 순서로 서열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기 쉽다는 점입니다. 사실 성경에서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아버지 여호와 하나님이 더 높고 아들 여호와 하나님이 그보다 낮은 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성령은 심부름꾼처럼 인식되기 쉽습니다.
그러나 니케아신조에서 보는 대로 삼위 여호와 하나님은 동일한 신성과 위격을 가지신 분임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또 한 분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니, 그는 여호와 하나님의 독생자이시오 만유보다 먼저 아버지께로서 나신 자요, 신 중의 신이시며, 빛 중의 빛이시오, 참 여호와 하나님의 참 여호와 하나님이시오, 지음 받지 않고 나셨으며, 아버지와 한 본질을 가지셨고…”
이 신조의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항목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신조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부 여호와 하나님과 동일한 신성과 위격을 지니신 여호와 하나님임을 강조합니다. 또한 성령에 관한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를 보면, “또 성령, 곧 주 되시고 생명을 주시는 자를 믿으니, 이는 아버지에게서 나셨으며, 아버지와 아들과 더불어 찬송과 경배를 받으시며,…”라고 하였습니다. 이 성령에 관한 항목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성령께서 ‘아버지와 아들과 더불어 찬송과 경배를 받으실 주시라라는 표현입니다. 이 표현은 성령께서 성부와 성자와 동일한 신성과 위격을 가지신 여호와 하나님임을 고백한 것입니다. 따라서 삼위 여호와 하나님 사이에 어떤 서열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역할이 다른 것뿐임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누가복음을 보면, 성자이신 예수께서 이 땅에 태어나실 때 성령으로 잉태되셨을 뿐 아니라 성령에 이끌림을 받아서 광야로 나가 사탄의 시험을 받으시기도 하였고, 골고다로 나가시기도 하였습니다. 성령이 예수를 이끌었다는 사실만 놓고 보면, 성령의 서열이 더 높은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에서 보면, 성령은 진리의 영으로 자기 뜻대로 하지 않고 성자의 것을 받아서 전하신다고 하므로, 성자가 성령보다 더 높은 서열처럼 보입니다. 이것은 결국 서열과는 상관없이 역할이 다름을 뜻하는 것입니다. 삼위가 일체임을 강조하는 까닭이 바로 이런 서열 관념을 깨기 위함이기도 합니다.
삼위일체 여호와 하나님을 올바로 이해하는 것은 우리의 신앙을 바르게 세움에 있어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러나 교리적으로만 이해하는데 머물러서는 안 될 것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가 각각의 독립된 신성과 위격을 가지셨지만, 그들이 따로 따로 역사 하시지 않고 창조와 구원이라는 동일한 목표를 향하여 역할을 분담하시며, 이를 위해서 서로가 서로 안에 들어가 완전한 일치를 이루신다는 사실은 우리의 신앙의 목표가 어디에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분명 개별적 인격을 가진 독립된 존재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나 홀로 존재할 수는 없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받아드리면서 하나의 생명공동체를 이룰 때 우리는 비로소 온전한 생명을 누릴 수 있습니다. 삼위일체 교리는 우리에게 이런 생명의 원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성자 여호와 하나님이시면서도 그 모든 영광을 비우고 이 땅에 성육신하시어 고난 당하심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이 모두가 만유를 구원하시고자 하는 성부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스스로 택하신 십자가의 길입니다. 우리가 올바른 인격을 갖추고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와 이 세계를 올바로 볼 수 있다면, 자신의 자존심만을 고집하지 않고 기꺼이 그 역사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기도 하고, 자기 속에 남을 받아드리기도 할 것입니다.
요한복음 17장에서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기도하셨습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지켜 주셔서 우리가 하나인 것과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우리가 하나인 것 같이, 즉 성부와 성자가 하나인 것 같이 우리 믿는 사람들도 하나가 될 것을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17장 23절에서는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신 것은, 그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모래알처럼 흩어진 인간과 피조계 모두를 구원하여 “완전히 하나”되게 하시는 것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 이루시는 구원의 목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삼위일체 여호와 하나님의 교리를 올바로 이해하게 될 때 완전히 하나되는 구원의 목표가 성취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삼위일체 여호와 하나님을 교리적으로만 이해하려 할 때 많은 이단들이 생겨났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삼위일체 여호와 하나님의 교리 속에 포함된 그 놀라운 희생과 양보와 겸손과 순종을 배우는 일입니다. 완전히 독립된 위격이시면서도 완전히 하나가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이런 존재양식이야말로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배워야 할 것이며, 이 세계가 따라야 할 모범입니다. 분열과 다툼으로 얼룩진 세계를 화해와 통일로 이끄시기 위하여 여호와 하나님은 삼위일체 여호와 하나님의 존재양식에서 모범을 보이신 것입니다. 삼위 여호와 하나님의 이 신비한 하나되심은 모래알처럼 흩어진 인간과 피조계를 완전히 하나로 만드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신비한 역사이기도 합니다. 성령께서 오늘 우리에게 오셔서 바로 이런 사실을 일깨우시면서 깨어진 우리의 인격을 새롭게 지으시고 우리의 지각을 세련되게 하셔서 하나된 생명공동체를 이루도록 이끌고 계십니다.
이제 이런 여호와 하나님의 오묘하신 섭리를 올바로 깨달으면서 적극적으로 하나됨에 동참하시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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