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불쌍한 사람, 행복한 사람
본문
오늘 사순절(旬節) 첫째 주일을 맞았습니다. 이 사순절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할 일은 "우리가 지금 우리 '영혼의 목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제대로 가고 있는지 살피는 것"입니다. 가만히 보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불쌍한 사람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짧은 인생을 살면서 불행하게 살고 싶은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겁니다. 아마 다들 행복하게 살고 싶을 겁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진정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하게 되는 건지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단도직입적(單刀直入的)으로 말해서, 주님 안에 사는 사람,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사람, 주님이 주신 사명을 발견하고 그 사명을 위해 사는 사람이야말로 정말 행복한 사람입니다.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牧者)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 23:1)고 했습니다. 이것은 다윗이 여호와 하나님을 목자로 모신 행복을 노래한 겁니다. 다윗은 막강한 권력을 가진 왕이었지만, 그 자신은 여호와 하나님의 전적인 지도와 인도를 받는 한 마리 양(羊)과 같은 존재임을 고백하며 살았습니다. 그러기에 오늘날까지 믿는 자들은 그를 '위대한 믿음의 사람'으로 우러러보는 겁니다. 여러분이 생각해 보십시오. 믿음이 있다는 것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그것은내(自我)가 삶의 주인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주인)이심을 인정하고 고백하며 사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렇지 않고 자아(自我)-중심적이 되어, 항상 "내가, 내가…" 하며 사는 자는 절대 행복하지 못합니다. 반면에 여호와 하나님-중심의 생활을 하며,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조용히 살피며 그 뜻에 복종하며 사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이렇게 사는 게 신자(信者)의 삶의 모습이요 믿음의 길입니다. 흔히십자가를 진다는 말을 하는데, 이게 무슨 뜻입니까 그것은나(自我)를 죽이고, 나를 버리고, 여호와 하나님의 뜻에 절대 복종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막 8:34)고 말씀하셨습니다.
앞에서 이 세상엔 불쌍한 사람들이 많다고 했는데,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불쌍하다고 보십니까 부모를 일찍 잃은 고아가 불쌍하다고 볼 겁니다. 몸이 아파 고생하는 사람, 돈이 없는 사람을 불쌍하다고 볼 겁니다. 본문에는, 예수님이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셨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사실 가만히 따지고 보면, 세상 사람들이 모두 불쌍한 사람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선 8복을 말씀하시면서 "긍휼(矜恤)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矜恤)히 여김을 받을 것이라"(Blessed are the merciful, for they will be shown mercy)고 하셨습니다. 남을 긍휼히 여기는 것은 남을 불쌍히 여기는 것―좀 더 자세하게 말하면―자비(慈悲)를 베푸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세 부류의 불쌍한 사람들이 나옵니다.
1. 쉼이 없는 사람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본문을 보면 사도들이 예수께 모여와서 자기들이 한 일과 가르친 일을 다 보고(報告)하였습니다. 그때에 예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으로(lonely place) 가서 좀 쉬어라"고 하셨습니다. 너무나 일에 지쳐 쉼이 없는 제자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이런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사는 게 피곤(疲困)하긴 옛날 사람이나 요즘 사람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언제나 쉬는 것보다 일하는 것을 더 귀하게 여기는 법입니다. 특히 오늘날 같은 산업사회에서는 쉬는 것은 별로 좋은 게 아니고, 일하여 많은 성과를 얻는 것을 귀한 것이란 생각이 지배적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은 "이는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아 음식 먹을 겨를조차 없었기 때문이다"(31절)라고 설명해 놓았습니다. 밥을 편안히 먹을 수도 없을 만큼 사람들이 많이 와서 제자들은 조금도 쉴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외딴 곳에 가서 좀 쉬어라" 하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주님은 피곤하고 지친 상태에 있는 여러분을 향해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자애(慈愛)로운 음성으로 말씀하십니다. 또 넌지시 "너희들도 한적한 곳에서 잠깐 쉬어라"고 말씀하십니다. 누구에게나 푹 쉬고 싶은 날이 있을 겁니다. 일주일 내내 일하고 주일에 지친 몸으로 교회오기가 어렵고, 또 봉사하기는 더 더욱 어렵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물론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으로 하면 할 수 있습니다. 또 그렇게 봉사하면 즐겁게 할 수 있습니다. 억지로, 할 수 없이 하는 게 아니라 열심히 주신 사명으로 알고 하면, 오히려 힘이 생기고, 보람과 기쁨이 샘솟게 될 것입니다. 물론 너무 지칠 때는 한적한 곳에 가서 따로 쉴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휴가가 있고, 안식년 제도도 있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나라에서 베스트셀러 1위를 유지하고 있는 책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단순하게 살아라―더 쉽고 행복하게 살기(Simplify your life)라는 책입니다. 그 만큼 사람들이 지쳤다는 얘기입니다. 물론 지치는 이유가 여러 가지 있겠지만, 저는 하고싶지 않은 일을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할 수 없이, 마지못해' 하기 때문입니다. '돈 벌기 위해' 하기 때문에 쉽게 지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말고, 여호와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使命)으로 믿고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하면, 별로 힘들지도 않고 어렵지도 않습니다.
제가 아는 어떤 40세 정도 된 개업의(開業醫)가 있습니다. 요즘 환자가 늘어서 하루 한 90명씩 본답니다. 그런데 그 얼굴이 아주 밝았습니다. 어떻게 그렇냐고 했더니, 지난 몇 년간 환자가 얼마 되지 않아서 참으로 힘들었다고 했습니다. 제가 하루에 80-90명씩 환자를 보면 힘들지 않느냐고 했더니, 몸은 좀 피곤하지만 기분이 좋다고 했습니다. 물론 그가 기분 좋은 것이 돈을 많이 벌고, 병원 운영이 잘 돼서 그럴 것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에게 여호와 하나님께서 생명을 살리는 의사의 사명을 당신에게 주신 것을 생각하고, 그 사명에 따라 살면 지치지 않고, 또 그렇게 열심히 일하고 쉬는 것은 꿀맛과 같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에게 한적한 곳에서 쉴 수 있는 축복이 주어지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찌됐건 이 시간 우리 주님은 지친 여러분에게 "한적한 곳에서 잠깐 쉬어라"고 말씀하십니다.
2. 목자 없는 양(羊)처럼 방황하는 사람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따로 한적한 곳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여러 마을에서 그들에게 왔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배에서 내려 큰 무리를 보시고 그들이 마치 목자 없는 양과 같음으로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34절을 봅니다.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을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 " 목자 없는 양 같은 무리들을 예수님이 불쌍히 여기셨다는 내용입니다. 목자(牧者)란 지도자를 말합니다. 예수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요 10:11).
오늘날 이 시대에는 선한 목자 같은 참 지도자를 찾기가 어렵다고들 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하여 업무를 보고 있습니다. 이번 대통령만큼은 역사에 남는 지도자가 되기를 국민들이 다 바라고 있습니다. 이건 대통령만이 아닙니다. 이 시대에는 '목자 같은 지도자'를 필요로 합니다. 어떤 방면에서건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번 대구 지하철 방화 사건만 봐도 사령실 근무자가 제대로 했으면 그렇게 희생이 크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 기관사들이 자기들의 책임을 제대로 감당하지 않고 자기만 살려고 뛰쳐나왔습니다. 오늘날이것이 우리 한국 사회의 자화상(김수환 추기경)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누구도―이 세상 사람이 아무리 훌륭해도―우리 영혼의 목자가 될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내 영혼을 맡길 수 있는 분은 오직 한 분밖에 없습니다. 그분은 주 예수님이십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벧전 2:25)고 했습니다. 우리가 돌아가 우리 영혼을 맡길 수 잇는 분은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그분에겐 내 생명을 맡길 수 있습니다. 나의 전부를 맡길 수 있습니다. 그분에게는 어떤 어려운 사정이라 해도 다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래도 안심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나를 잔잔한 물가로, 푸른 풀밭으로 인도해 주실 수 있는 분은 그분밖에 없습니다. 그분의 인도를 받을 때, 어떤 상황에서도 내가 안전하고 편안하게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분은 나의 지금의 고통스런 삶을 새롭게 변화시켜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목자 없는 양처럼 헤매는 무리들에게 불쌍히 여기시고 예수님이 해 주신 게 있습니다. 그들에게 여러 가지로 가르쳐 주셨습니다.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을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34절)고 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이런 확신을 얻게 됐습니다. ―"그렇다! 우리가 목자 없는 양처럼 방황하게 될 때,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주님의 가르침을 받는 길 밖에 없구나!. "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 교회에선 올해성경 일천독 대행진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왜 이런 운동을 합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도를 받자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어두운 우리 영혼에 빛을 던져주고 우리를 생명의 길로 인도해 주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방황할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목자 없는 양처럼 방황하지 말고, 우리 영혼의 목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 모두 맡기고 날마다 주님의 말씀으로 인도를 받읍시다. 그러면, 더 이상 방황할 필요도 없고, 두려워할 필요도 없습니다. 찬송 442장이 은혜가 됩니다.
선한 목자 되신 우리 주 항상 인도하시고,
방초 동산 좋은 곳에서 우리 먹여 줍소서
선한 목자 구세주여 항상 인도하소서
선한 목자 구세주여 항상 인도하소서(1절)
3. 예수님은 (영적으로) 배고픈 사람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예수님이 한참 말씀을 전하시고 나자 날이 이미 저물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많은 무리들을 그냥 허기진 채로 돌려보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을 먹이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곳은 빈들이었기에 그 무리들을 먹일 게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제자 중 어떤 이는 그 많은 사람들을 먹이려면 적어도 200 데나리온은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당시 한 데나리온은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한 아이가 드린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축사하신 후 나누어주심으로 그 사람들을 풍성히 먹이셨습니다. 그리고도 많이 남았습니다. 오늘날에도 배고픈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서울 지하철에 가면 구걸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 미국이나 유럽에도 이런 이들은 있습니다. 북한 동포들이 심히 굶주리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선 샬롬센터를 통해 배고픈 이들을 먹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밥을 못 먹는 것도 문제지만 '영혼의 배고픔과 갈증'도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삶의 목적이나 이유를 모르고 정신없이 허덕허덕하면서 영혼의 갈증을 느끼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정말 배고픈 사람들입니다. 지난 번 월드컵 할 때, 우리 나라가 좋은 성적을 올렸을 때 당시 축구 감독이었던 히딩크가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나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 " 이것은 그의 야망(野望)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이 너무 크면 문제가 생깁니다. 오늘날 야망 때문에 망가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도박하는 사람들, 복권에 월급·재산을 투자하는 사람들, 경매에 정신 팔린 사람들 등등... 물론 젊은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꿈(야망)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나이가 40이 넘으면 야망이 아닌, '내면 세계(영혼)를 풍성히 하기 위해 살아야 합니다. 소유가 아니라 존재(삶의 의미)를 추구해야 합니다. 분석심리학에서는 성숙의 과정은 "페르조나를 벗는 데서부터 시작된다"고 합니다. 페르조나란 그 사람의 진정한 인격이 아닙니다. 겉모습(outer face: 직위, 신분, 위치, 역할, 신분 등등)일 뿐입니다. 여러분이 어떤 사회적인 위치에 있건 어떤 직업을 가졌건, 그런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런 것에 매이지 말고,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합니다. 성실하고 소박하게 자기 자신의 길을 걸어가야만 진정 삶의 만족을 느낄 수 있고, 이렇게 살아야 날마다 행복할 수 있습니다.
며칠 전에 저는 행복해 보이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 사람은 나이가 51세의 중년 택시기사입니다. 딸이 셋이라고 했습니다. 첫째 딸은 4년 제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하여 직장 생활을 하고 있고, 둘째는 간호 전문대학을 졸업해서 간호사로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셋째 딸은 여고 3학년이라고 했습니다. 부인은 어느 부잣집(85평되는)에 파출부로 일하며 월 150만원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부인이 참 고맙다고 했습니다. 자기는 보통 수입이 200만원이 되는데 열심히 산다고 했습니다. 쉬는 날에도 차 청소를 하고, 손을 본다고 합니다. 손님을 더러운 상태로 모셔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 사람은 아주 젊게 보였습니다. 전라도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 온지 25년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열심히 살아서 서울 변두리에 30평 아파트도 장만했고 정말 열심히 산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모든 게 다 감사하지요"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택시에서 내리면서 교회 다니시냐고 했더니, "몇 달 전부터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고 했습니다. 저는 잔돈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의 얼굴엔 생기가 있었고, 그는 행복해 보였습니다. 그는 "죽겠다. 죽겠다!" 하지 않고, 남편으로서, 또 세 딸의 아빠로서 열심히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사명으로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택시를 타고 가는 한 20-30분 동안 저는 기분이 좋았습니다.
세상에는 삶의 목적도 의미도 모르고, 이리저리 방황하며, 허세를 부리며, 헛된 것에 사로잡혀 그것이 인생의 전부인양, 허우적거리다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불쌍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정말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최선을 다하며 성실하게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주위 사람과 환경을 탓하지 말고, 영혼의 목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로 돌아와 주님을 마음 중심에 모시고, 날마다 주(主)안에서 쉼을 얻고, 주님과 조용히 교제를 나누며, 영혼의 갈증을 주님의 말씀으로 채우며 사는 사람, 풍성한 삶을 사는 행복한 사람들이 되십시오. 주님은 여러분 가까이 계십니다.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牧者)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 23:1)고 했습니다. 이것은 다윗이 여호와 하나님을 목자로 모신 행복을 노래한 겁니다. 다윗은 막강한 권력을 가진 왕이었지만, 그 자신은 여호와 하나님의 전적인 지도와 인도를 받는 한 마리 양(羊)과 같은 존재임을 고백하며 살았습니다. 그러기에 오늘날까지 믿는 자들은 그를 '위대한 믿음의 사람'으로 우러러보는 겁니다. 여러분이 생각해 보십시오. 믿음이 있다는 것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그것은내(自我)가 삶의 주인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주인)이심을 인정하고 고백하며 사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렇지 않고 자아(自我)-중심적이 되어, 항상 "내가, 내가…" 하며 사는 자는 절대 행복하지 못합니다. 반면에 여호와 하나님-중심의 생활을 하며,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조용히 살피며 그 뜻에 복종하며 사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이렇게 사는 게 신자(信者)의 삶의 모습이요 믿음의 길입니다. 흔히십자가를 진다는 말을 하는데, 이게 무슨 뜻입니까 그것은나(自我)를 죽이고, 나를 버리고, 여호와 하나님의 뜻에 절대 복종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막 8:34)고 말씀하셨습니다.
앞에서 이 세상엔 불쌍한 사람들이 많다고 했는데,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불쌍하다고 보십니까 부모를 일찍 잃은 고아가 불쌍하다고 볼 겁니다. 몸이 아파 고생하는 사람, 돈이 없는 사람을 불쌍하다고 볼 겁니다. 본문에는, 예수님이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셨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사실 가만히 따지고 보면, 세상 사람들이 모두 불쌍한 사람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선 8복을 말씀하시면서 "긍휼(矜恤)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矜恤)히 여김을 받을 것이라"(Blessed are the merciful, for they will be shown mercy)고 하셨습니다. 남을 긍휼히 여기는 것은 남을 불쌍히 여기는 것―좀 더 자세하게 말하면―자비(慈悲)를 베푸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세 부류의 불쌍한 사람들이 나옵니다.
1. 쉼이 없는 사람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본문을 보면 사도들이 예수께 모여와서 자기들이 한 일과 가르친 일을 다 보고(報告)하였습니다. 그때에 예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으로(lonely place) 가서 좀 쉬어라"고 하셨습니다. 너무나 일에 지쳐 쉼이 없는 제자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이런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사는 게 피곤(疲困)하긴 옛날 사람이나 요즘 사람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언제나 쉬는 것보다 일하는 것을 더 귀하게 여기는 법입니다. 특히 오늘날 같은 산업사회에서는 쉬는 것은 별로 좋은 게 아니고, 일하여 많은 성과를 얻는 것을 귀한 것이란 생각이 지배적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은 "이는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아 음식 먹을 겨를조차 없었기 때문이다"(31절)라고 설명해 놓았습니다. 밥을 편안히 먹을 수도 없을 만큼 사람들이 많이 와서 제자들은 조금도 쉴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외딴 곳에 가서 좀 쉬어라" 하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주님은 피곤하고 지친 상태에 있는 여러분을 향해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자애(慈愛)로운 음성으로 말씀하십니다. 또 넌지시 "너희들도 한적한 곳에서 잠깐 쉬어라"고 말씀하십니다. 누구에게나 푹 쉬고 싶은 날이 있을 겁니다. 일주일 내내 일하고 주일에 지친 몸으로 교회오기가 어렵고, 또 봉사하기는 더 더욱 어렵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물론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으로 하면 할 수 있습니다. 또 그렇게 봉사하면 즐겁게 할 수 있습니다. 억지로, 할 수 없이 하는 게 아니라 열심히 주신 사명으로 알고 하면, 오히려 힘이 생기고, 보람과 기쁨이 샘솟게 될 것입니다. 물론 너무 지칠 때는 한적한 곳에 가서 따로 쉴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휴가가 있고, 안식년 제도도 있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나라에서 베스트셀러 1위를 유지하고 있는 책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단순하게 살아라―더 쉽고 행복하게 살기(Simplify your life)라는 책입니다. 그 만큼 사람들이 지쳤다는 얘기입니다. 물론 지치는 이유가 여러 가지 있겠지만, 저는 하고싶지 않은 일을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할 수 없이, 마지못해' 하기 때문입니다. '돈 벌기 위해' 하기 때문에 쉽게 지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말고, 여호와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使命)으로 믿고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하면, 별로 힘들지도 않고 어렵지도 않습니다.
제가 아는 어떤 40세 정도 된 개업의(開業醫)가 있습니다. 요즘 환자가 늘어서 하루 한 90명씩 본답니다. 그런데 그 얼굴이 아주 밝았습니다. 어떻게 그렇냐고 했더니, 지난 몇 년간 환자가 얼마 되지 않아서 참으로 힘들었다고 했습니다. 제가 하루에 80-90명씩 환자를 보면 힘들지 않느냐고 했더니, 몸은 좀 피곤하지만 기분이 좋다고 했습니다. 물론 그가 기분 좋은 것이 돈을 많이 벌고, 병원 운영이 잘 돼서 그럴 것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에게 여호와 하나님께서 생명을 살리는 의사의 사명을 당신에게 주신 것을 생각하고, 그 사명에 따라 살면 지치지 않고, 또 그렇게 열심히 일하고 쉬는 것은 꿀맛과 같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에게 한적한 곳에서 쉴 수 있는 축복이 주어지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찌됐건 이 시간 우리 주님은 지친 여러분에게 "한적한 곳에서 잠깐 쉬어라"고 말씀하십니다.
2. 목자 없는 양(羊)처럼 방황하는 사람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따로 한적한 곳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여러 마을에서 그들에게 왔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배에서 내려 큰 무리를 보시고 그들이 마치 목자 없는 양과 같음으로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34절을 봅니다.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을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 " 목자 없는 양 같은 무리들을 예수님이 불쌍히 여기셨다는 내용입니다. 목자(牧者)란 지도자를 말합니다. 예수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요 10:11).
오늘날 이 시대에는 선한 목자 같은 참 지도자를 찾기가 어렵다고들 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하여 업무를 보고 있습니다. 이번 대통령만큼은 역사에 남는 지도자가 되기를 국민들이 다 바라고 있습니다. 이건 대통령만이 아닙니다. 이 시대에는 '목자 같은 지도자'를 필요로 합니다. 어떤 방면에서건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번 대구 지하철 방화 사건만 봐도 사령실 근무자가 제대로 했으면 그렇게 희생이 크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 기관사들이 자기들의 책임을 제대로 감당하지 않고 자기만 살려고 뛰쳐나왔습니다. 오늘날이것이 우리 한국 사회의 자화상(김수환 추기경)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누구도―이 세상 사람이 아무리 훌륭해도―우리 영혼의 목자가 될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내 영혼을 맡길 수 있는 분은 오직 한 분밖에 없습니다. 그분은 주 예수님이십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벧전 2:25)고 했습니다. 우리가 돌아가 우리 영혼을 맡길 수 잇는 분은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그분에겐 내 생명을 맡길 수 있습니다. 나의 전부를 맡길 수 있습니다. 그분에게는 어떤 어려운 사정이라 해도 다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래도 안심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나를 잔잔한 물가로, 푸른 풀밭으로 인도해 주실 수 있는 분은 그분밖에 없습니다. 그분의 인도를 받을 때, 어떤 상황에서도 내가 안전하고 편안하게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분은 나의 지금의 고통스런 삶을 새롭게 변화시켜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목자 없는 양처럼 헤매는 무리들에게 불쌍히 여기시고 예수님이 해 주신 게 있습니다. 그들에게 여러 가지로 가르쳐 주셨습니다.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을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34절)고 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이런 확신을 얻게 됐습니다. ―"그렇다! 우리가 목자 없는 양처럼 방황하게 될 때,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주님의 가르침을 받는 길 밖에 없구나!. "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 교회에선 올해성경 일천독 대행진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왜 이런 운동을 합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도를 받자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어두운 우리 영혼에 빛을 던져주고 우리를 생명의 길로 인도해 주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방황할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목자 없는 양처럼 방황하지 말고, 우리 영혼의 목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 모두 맡기고 날마다 주님의 말씀으로 인도를 받읍시다. 그러면, 더 이상 방황할 필요도 없고, 두려워할 필요도 없습니다. 찬송 442장이 은혜가 됩니다.
선한 목자 되신 우리 주 항상 인도하시고,
방초 동산 좋은 곳에서 우리 먹여 줍소서
선한 목자 구세주여 항상 인도하소서
선한 목자 구세주여 항상 인도하소서(1절)
3. 예수님은 (영적으로) 배고픈 사람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예수님이 한참 말씀을 전하시고 나자 날이 이미 저물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많은 무리들을 그냥 허기진 채로 돌려보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을 먹이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곳은 빈들이었기에 그 무리들을 먹일 게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제자 중 어떤 이는 그 많은 사람들을 먹이려면 적어도 200 데나리온은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당시 한 데나리온은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한 아이가 드린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축사하신 후 나누어주심으로 그 사람들을 풍성히 먹이셨습니다. 그리고도 많이 남았습니다. 오늘날에도 배고픈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서울 지하철에 가면 구걸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 미국이나 유럽에도 이런 이들은 있습니다. 북한 동포들이 심히 굶주리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선 샬롬센터를 통해 배고픈 이들을 먹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밥을 못 먹는 것도 문제지만 '영혼의 배고픔과 갈증'도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삶의 목적이나 이유를 모르고 정신없이 허덕허덕하면서 영혼의 갈증을 느끼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정말 배고픈 사람들입니다. 지난 번 월드컵 할 때, 우리 나라가 좋은 성적을 올렸을 때 당시 축구 감독이었던 히딩크가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나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 " 이것은 그의 야망(野望)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이 너무 크면 문제가 생깁니다. 오늘날 야망 때문에 망가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도박하는 사람들, 복권에 월급·재산을 투자하는 사람들, 경매에 정신 팔린 사람들 등등... 물론 젊은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꿈(야망)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나이가 40이 넘으면 야망이 아닌, '내면 세계(영혼)를 풍성히 하기 위해 살아야 합니다. 소유가 아니라 존재(삶의 의미)를 추구해야 합니다. 분석심리학에서는 성숙의 과정은 "페르조나를 벗는 데서부터 시작된다"고 합니다. 페르조나란 그 사람의 진정한 인격이 아닙니다. 겉모습(outer face: 직위, 신분, 위치, 역할, 신분 등등)일 뿐입니다. 여러분이 어떤 사회적인 위치에 있건 어떤 직업을 가졌건, 그런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런 것에 매이지 말고,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합니다. 성실하고 소박하게 자기 자신의 길을 걸어가야만 진정 삶의 만족을 느낄 수 있고, 이렇게 살아야 날마다 행복할 수 있습니다.
며칠 전에 저는 행복해 보이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 사람은 나이가 51세의 중년 택시기사입니다. 딸이 셋이라고 했습니다. 첫째 딸은 4년 제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하여 직장 생활을 하고 있고, 둘째는 간호 전문대학을 졸업해서 간호사로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셋째 딸은 여고 3학년이라고 했습니다. 부인은 어느 부잣집(85평되는)에 파출부로 일하며 월 150만원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부인이 참 고맙다고 했습니다. 자기는 보통 수입이 200만원이 되는데 열심히 산다고 했습니다. 쉬는 날에도 차 청소를 하고, 손을 본다고 합니다. 손님을 더러운 상태로 모셔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 사람은 아주 젊게 보였습니다. 전라도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 온지 25년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열심히 살아서 서울 변두리에 30평 아파트도 장만했고 정말 열심히 산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모든 게 다 감사하지요"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택시에서 내리면서 교회 다니시냐고 했더니, "몇 달 전부터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고 했습니다. 저는 잔돈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의 얼굴엔 생기가 있었고, 그는 행복해 보였습니다. 그는 "죽겠다. 죽겠다!" 하지 않고, 남편으로서, 또 세 딸의 아빠로서 열심히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사명으로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택시를 타고 가는 한 20-30분 동안 저는 기분이 좋았습니다.
세상에는 삶의 목적도 의미도 모르고, 이리저리 방황하며, 허세를 부리며, 헛된 것에 사로잡혀 그것이 인생의 전부인양, 허우적거리다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불쌍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정말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최선을 다하며 성실하게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주위 사람과 환경을 탓하지 말고, 영혼의 목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로 돌아와 주님을 마음 중심에 모시고, 날마다 주(主)안에서 쉼을 얻고, 주님과 조용히 교제를 나누며, 영혼의 갈증을 주님의 말씀으로 채우며 사는 사람, 풍성한 삶을 사는 행복한 사람들이 되십시오. 주님은 여러분 가까이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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