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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십자가를 준비하신 예수님

본문

다음 주일은 종려주일입니다. 종려주일이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주일을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다음 주일은 확신반 두 번째 시간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오늘 예수님의 고난에 대해 묵상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매년 고난주간을 앞두고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하곤 합니다. 2000여 년 전에 당하신 고난이지만, 우리는 예수님의 고난 때문에 살림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우리를 위해 고난당하신 주님 곁으로 가고자 합니다. 십자가를 앞두고 기도하셨던 그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고자 합니다. 그 십자가를 준비하신 현장으로 가고자 합니다. 그리고 제자들처럼 졸지 않고, 십자가의 현장을 떠나지 않고, 베드로처럼 부인하지 않고, 주님 곁에 머물러 있고, 주님의 십자가에 동참하였으면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주님의 십자가를 생각할 때마다 우리 주님이 얼마나 외로우셨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주님은 애를 태우며 기도하셨는데, 제자들은 졸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은 고난의 십자가를 지시는데, 제자들은 다 떠나버렸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은 제자들을 품고 계시는데, 베드로 같은 제자는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하였기 때문입니다. 주님도 우리와 동일한 인성을 가지신 분임을 생각하면, 이 때만은 외로움과 섭섭함이 밀려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물론 우리 주님은 다 알고 계셨지만, 그래서 베드로에게 닭이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 번 부인하리라고 말씀하셨지만, 그래도 제자들이 자기 곁을 떠나고 모른다고 부인했을 때에는 외로움과 섭섭함을 느끼셨으리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십자가를 앞두고 아버지와 교통하시기 위해서 올라가셨습니다. 십자가를 앞두고 밀려드는 고통을 아버지께 아뢰기 위해 올라가셨습니다. 그러니까 십자가를 준비하시기 위해 올라가신 것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 오르신 주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36절) 그리고 주님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올라가시며 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38절) 십자가를 앞두고 얼마나 힘드셨으면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고 하셨을까요 주님은 제자들이 함께 기도해주지 않으면 안 될 만큼 힘드셨던 것입니다.
주님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에게 함께 기도할 것을 말씀하시고, 몇 걸음 더 올라가 무릎을 꿇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기도하셨습니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 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39절) 인류의 죄를 짊어지는 일은 너무도 힘든 일이었습니다. 십자가를 지는 일은 너무도 고통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계십니다. 주님은 자신이 왜 성육신 하셨는지 알고 계십니다. 주님은 자신이 왜 십자가를 져야 하는지 알고 계십니다. 그러기에 주님은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한 참을 기도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가셨습니다. 아마도 예수님은 제자들도 아버지 여호와 하나님과 생명의 교통을 나눔으로 새 힘을 얻기 원하셔서 제자들에게 내려 가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졸고 있었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몰라도,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만은 함께 기도하길 원하셨는데, 이들마저 자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찌 주님이 외롭지 않으시겠습니까 어찌 주님이 섭섭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주님은 베드로를 깨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 동안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40-41절) 주님은 십자가를 앞두고 힘들고 고통스러웠지만, 또 한편으로는 다가오는 십자가를 아는지 모르는지 잠에 취해있는 제자들이 크게 걱정되었습니다.
제자들은 주님의 마음을 더 무겁게 만들었습니다. 주님은 제자들도 깨어 함께 기도하길 원하셨는데, 함께 기도할 줄 알았던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마저 자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깨어 기도하지 않으면, 시험에 들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깨어 기도하지 않으면, 고난의 파도를 이겨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과 생명의 교통을 나누어야 새 힘을 공급받게 되고, 그래야 고난을 이겨낼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도해야 고난에 동참할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도해야 여호와 하나님나라에 가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깨어 기도하라는 주님의 말씀은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라는 부탁인 것입니다. 베드로가 깨어 기도하였더라면, 주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제자들이 깨어 기도하였더라면, 주님이 십자가를 지실 때 도망치지 않았을 것입니다.
여러분도 깨어 있지 못하고 졸은 적이 있지요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5:8절) 마귀는 오늘도 삼킬 자를 찾고 있습니다. 사탄은 오늘도 넘어뜨릴 자를 찾고 있습니다. 마치 굶주린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고 있습니다. 두루 다니며 넘어뜨릴 자를 찾고 있습니다. 그런즉 우리가 근신하지 못하면, 마귀에게 삼키움을 당합니다. 우리가 깨어 있지 못하면, 사탄에게 넘어지고 맙니다. 그래서 주님도 제자들에게 깨어 기도하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사탄에게 넘어지지 말라고, 사탄에게 당하지 말라고 깨어 기도하라고 당부하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깨어서 졸지 않는다면, 설사 사탄이 집중 공격을 한다 해도 넘어지거나 당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종종 사탄의 공격을 보고 느낍니다. 잠시만 근신하지 못하면 사탄이 금방 공격하는 것을 봅니다. 잠시만 깨어 있지 못하면 어김없이 사탄이 공격하는 것을 느낍니다. 또 저는 사탄이 여러분을 공격하는 것도 보고 느낍니다. 우리 교회를 공격하는 것도 보고 느낍니다. 사탄은 할 수 만 있으면 여러분을 넘어뜨리고 교회를 훼방하려고 합니다. 어떨 때는 살살 접근하여 발을 걸기도 하고, 또 어떨 때는 권투 선수가 잽을 날리듯이 툭툭 쳐보기도 하면서 결정적인 찬스를 노리고 있는 것이 보이고 느껴집니다. 저의 이러한 말이 이상한 말로 들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저는 신비주의자도 아니고 오직 말씀을 강조하는 목사입니다. 다만 제가 깨어 있으므로 사탄의 공격이 보이고 느껴질 뿐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깨어 있을 때에 사탄을 이기고 주님의 고난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다시 올라가 기도하셨습니다. 제자들을 깨워 함께 기도할 것을 권하신 후에 다시 올라가 기도하신 것입니다.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42절) 십자가를 지는 일이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그래도 주님은 아버지께 순종하겠다고 기도하신 것입니다. 십자가의 고난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이지만, 그래도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겠다고 기도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참으로 위대한 순종을 결심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순종이 죄와 사망에 빠진 인류를 구원하셨으니 이보다 위대한 순종은 없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주님은 골고다가 아니라 바로 이 겟세마네에서 이미 승리하신 것입니다.
첫째 아담은 에덴동산에서 불순종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전 인류를 죄 가운데 빠뜨렸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과 인류를 원수 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둘째 아담이신 예수님은 겟세마네에서 아버지께 순종하셨습니다. 첫째 아담의 불순종을 둘째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순종하신 것입니다. 첫째 아담의 실패를 둘째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성공하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아담 안에서 죄 가운데 빠진 인류를 구원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과 인류를 화목케 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과 인류의 생명의 교통을 가져오셨습니다. 첫째 아담은 실패하여 사망과 생명의 불통을 가져왔으나, 둘째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성공하여 생명과 영통을 가져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다시 제자들에게 내려오셨습니다. 십자가를 지시기로, 곧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기로 결심하고 내려오신 것입니다. 첫째 아담의 불순종을 순종하기로 결심하고 조금은 평안한 마음으로 내려오신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여전히 깨어 있지 못하고 자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부탁하셨건만, 제자들은 깨어 있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당부하셨건만, 제자들은 자고 있었던 것입니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만은 함께 기도하자고 깨우셨건만, 그들마저 자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낙심이 되고 외로웠겠습니까 우리 주님께서 사람을 의탁하신 분은 아니지만, 그래도 십자가의 고난을 준비하시는 데, 제자들은 깨어 있지 못하고 자고 있으니, 그것도 깨워놓아도 자고 있으니, 그 마음이 어찌 낙심되지 않고 외롭지 않으셨겠습니까
예수님은 제자들을 두고 또 다시 올라가 기도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낙심을 주고 외롭게 만들어도, 아버지는 결코 버리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 기도하실 때에 “사자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돕더라”(눅22:43절)고 말합니다. 주님은 아버지와 생명의 교통을 나누며 새 힘을 입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누가복음은 또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데 피 방울 같이 되더라”(눅22:44절) 땀방울이 피방울 같이 되었다면 주님의 기도는 그야말로 사투하는 기도였다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누가의 이러한 기록은 의사로서 그의 관찰력이 돋보인 부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기도를 다 마치신 주님은 제자들에게 내려오셨습니다. 이제는 가벼운 마음으로 내려오셨습니다. 이미 십자가를 지시기로 마음의 준비를 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로부터 그만한 힘을 공급받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제는 자고 쉬라 보라 때가 가까웠으니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우느니라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45-46절) 주님은 아버지의 뜻을 받아들이셨습니다. 아버지의 원대로 이루어지게 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죄인에게 팔리우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저주의 십자가를 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주님과 함께 하지 못했습니다. 제자들은 주님과 함께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이로써 제자들은 주님의 고난에 동참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일단은 여호와 하나님나라에 가담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주님도 마음이 아프셨지만, 일단은 제자들을 포기하셨습니다. 그리고 오직 아버지만을 바라보시고, 오직 성령의 힘주심만을 기대하셨습니다. 주님 홀로 십자가를 지셔야 합니다. 주님 홀로 그 멸시와 천대와 조롱을 당하셔야 합니다. 제자들이 깨어 있었더라면, 힘은 될 수 없어도 위로가 되었을 텐데, 오히려 제자들은 예수님께 짐이 되었습니다. 근심거리가 되었습니다. 그건 제자들이 깨어 있지 못하고 졸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졸지 말고 깨어서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도 그 필요성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41절) 깨어 있어야 시험에 들지 않습니다. 깨어서 기도해야 사탄의 공격을 이길 수 있습니다. 깨어서 기도하지 않으면, 사탄의 공격을 보지도 못하고 느끼지도 못하고 쉽게 당하고 맙니다. 깨어서 기도하지 않으면, 사탄의 유혹에 쉽게 넘어가고 맙니다. 베드로를 보십시오. 그가 뭐라고 장담하였습니까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도 가기를 준비하였나이다. ”(눅22:33절) 그러나 베드로는 어찌 되었습니까 “저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가로되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마26:74절) 그렇게 장담했던 베드로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씩이나 부인했는데, 깨어서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넘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하십시오. 여러분이 이렇게 하면 깨어 있음으로 사탄의 공격에 쉽게 넘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첫째, 깨어서 기도하십시오. 기도해야 능력을 얻습니다. 기도해야 여호와 하나님이 도우십니다. 예수님도 기도하여 새 힘을 공급 받으셨고, 기도하여 순종하셨고, 기도하여 인류를 품으셨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실패하게 됩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시험에 빠지게 됩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사탄의 공격에 넘어지게 됩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에 가담할 수 없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주님의 고난에 동참할 수 없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제자들처럼 주님의 마음을 외롭게 만들고 섭섭하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깨어서 기도하기를 축원합니다.
둘째, 말씀을 가까이 하십시오. 말씀이 있어야 사탄의 음성과 일을 제대로 분별할 수 있습니다. 말씀이 없으면 사탄의 음성과 일을 분별할 능력도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만 하고 말씀이 없으면 신비주의에 빠지기 쉬운 것입니다. 기도와 말씀은 항상 함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말씀을 가진 사람이 사탄을 이길 수 있습니다. 예수님도 광야에서 사탄이 시험할 때에 말씀으로 이기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말씀을 가까이 하시길 축원합니다.
셋째, 자아를 죽이십시오. 기도하고 말씀을 가까이 하면, 그는 깨어 있게 되어 사탄의 공격에 넘어지지 않게 됩니다. 그러나 이 때 마지막으로 방해하는 요소가 있는데, 그게 바로 내 자아입니다. 주님이 주신 힘으로 행하려 하면 내 자아가 태클을 겁니다. 주님의 생명으로 행하려 하면 내 자아가 태클을 겁니다. 이 자아 때문에 실패할 수 있습니다. 이 자아 때문에 순종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자아를 죽이시길 축원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깨어 있을 때에 사탄을 이기고 주님의 고난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은 깨어 있을 때에 사탄을 이기고 주님의 고난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능동적으로 주님의 나라에 가담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나라의 진행을 보고만 있지 말고, 구경만 하지 말고, 그 나라의 진행에 발을 맞추어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에게도 이런 소망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깨어서 기도하고 말씀보고 자아를 죽이심으로 사탄을 이기고 주님의 고난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나라에 가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깨어 있지 못하면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에 가담하지 못합니다. 사탄에게 넘어지고 맙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깨어 있을 때에 사탄을 이기고 주님의 고난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자기 생명으로 여러분을 품으셨습니다. 우리를 품으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자신의 생명을 던져 우리를 품으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 일은 간단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십자가를 지셔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냥 십자가를 지시는 것이 아니라, 저와 여러분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를 지시는 일이었습니다. 인류의 죄를 짊어지고 저주를 받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셨습니다. 그 일을 감당하시기 위해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셨습니다. 얼굴을 땅에 엎드리고 기도하셨습니다. 땅 방울이 피 방울로 변하도록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주님의 고난에 동참해야 할 것입니다. 타자를 품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나라의 가담자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깨어 있을 때에 사탄을 이기고 주님의 고난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의 고난은 아직 다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고난은 아직 남아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그 주님의 남은 고난을 채워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나라에 가담해야 합니다. 아직도 불신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직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아직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 경영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다가오는 고난 주간을 어떻게 맞이하시렵니까 다가오는 고난주간을 어떤 마음으로 보내시렵니까 저는 이런 마음으로 보내려 합니다. “주님! 나도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게 하옵소서. 나도 주님의 남은 고난을 채우게 하소서. 주님이 나를 품으셨던 것처럼, 나도 주님의 생명으로 타자를 품게 하소서. 주님이 나를 위해 생명을 던져주신 것처럼, 나도 너를 위해 생명을 주게 하소서. 그리하여 여호와 하나님나라 진행에 가담자로 살게 하소서” 여러분도 저처럼 기도하지 않으시렵니까 우리 그리스도인은 깨어 있을 때에 사탄을 이기고 주님의 고난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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