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천국 계단을 올라갑시다
본문
신약 27권 성경 중 야고보서, 베드로전·후서, 요한1·2·3서 그리고 유다서를 공동서신이라 부릅니다. 이 공동서신서들 중 베드로전서는 사도인 베드로가 흩어진 나그네들(1:1)에게 보낸 목회서신과 같은 것입니다. 이는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보내는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베드로가 주님을 만나기 전에는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를 잡는 어부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주님을 만나 헌신하게 되었고(마 4:19) 12사도의 반열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는 제자 중의 제자였습니다(막 5:37). 천국 열쇠를 받은 사람이었습니다(마 16:19). 이런 베드로에게도 지울 수 없는 아픈 경험이 있었으니 겟세마네 동산의 칼부림(요 18:1-12)과 가야바의 뜰에서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한 사건들(마 26:69-75)입니다. 이 모두 겟세마네 동산에서 주님과 함께 기도하지 못하고 잠들었던 결과가 아닙니까
그러나 갈릴리바다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오순절에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부터 완전한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도행전의 전반부(1-12장)는 그의 활약상을 기록한 것입니다.
이와 같은 베드로가 이 베드로전서를 쓴 목적은 신앙 때문에 성도들을 위로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통해 영광 받으셔서 모범을 보인 것처럼 성도요 그의 제자된 우리들도 주님을 바라보면서 겸손과 순종으로 장차 다가올 고난과 시련을 이겨 나갈 것을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순절 첫 주일을 맞이하는 오늘 아침, 우리는 고난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배워야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고난과 죽음에 이르기까지 여호와 하나님께 순종하였습니다. 이 고난은 우리의 허물 때문만이 아닙니다. 의를 위하여 당하는 승화된 믿음을 일깨워 주기 위한 것입니다.
1. 사순절의 의미
사순절이란 그리스도의 고난의 길에 동참하고자 했던 성도들이 부활절 전 40일간 자신들의 죄를 참회하고 욕망을 절제하는 자기 훈련의 기간입니다. 초기 교회사에서 사순절의 기원은 죄를 참회하고 절제하는 자기 훈련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순절이 시작되면 하루에 한 끼의 식사만이 허용되었고, 물고기와 육식 그리고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달걀과 우유로 만든 음식도 엄격히 금지되었습니다.
이런 극기와 절제의 생활을 통해서 주님의 배고프심과 죽음 앞에서의 자세를 배우고 극기의 훈련을 통해 믿음을 키우고자 금식, 기도회, 성경 읽기와 명상, 봉사와 헌신 등의 생활을 통해 주님의 뒤를 따라가는 자세를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고난을 즐거워하지 않습니다. 만약 여호와 하나님께서 똑 같은 조건 아래서 고난의 잔과 기쁨의 잔을 주시며 선택하라고 할 때 사람들은 누구나 기쁨의 잔을 선택할 것입니다.
본래 사순절 전날은 마음껏 먹고 즐기는 카니발 행사를 갖기도 헸습니다. 이 ‘카니발(Carnival)’이란 말은 ‘고기’를 의미하는 ‘카니스’라는 라틴어와 ‘안녕’을 나타내는 ‘발레’라는 라틴어의 합성어입니다. 그러므로 카니발은 ‘오, 고기여 안녕!’을 의미합니다. “앞으로 40일 동안은 고기와 술을 먹지 못할 것이니 금식을 시작하기 전에 마음껏 먹고, 그리고 나서 실제적으로 시작합시다” 라고 하면서 하루 쉬면서 마음껏 먹고 마셨는데 그 날을 카니발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2000여년이 지난 지금 사순절 고난과 절제와 극기의 행사는 점점 없어져가고 있는데 카니발 축제는 점점 더 활기를 띠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땅에 고난을 당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이사야 53:5을 보십시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하셨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이런 고난을 당해야 하셨습니까 오늘 봉독해 드린 18절의 말씀과 같이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 고난을 당한 것은 우리를 여호와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시기 위함이었다고 하였습니다.
오랫동안 신앙 생활을 해온 성도라 할지라도 핍박이 오고 견디기 어려운 시련이 닥치면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시는 벌이 아닌가’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것이 아닌가’ 하고 갈등을 느끼게 됩니다. 이 갈등이 믿음 안에서 녹아지지 않으면 교회를 등지고 여호와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그래서 심지어는 교회를 떠나 버리기까지 하는 죄를 범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서 종종 생겨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순절 첫 주일아침, 우리는 베드로의 가르침을 통해 고난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배워야 하겠습니다.
2. 천국 계단의 출발점
21절을 읽어보십시오. 선한 양심이 여호와 하나님을 향해 찾아가는 출발점이 무엇이라고 하였습니까 물 즉 세례입니다. 세례는 죄를 씻고 그리스도와 하나되어 여호와 하나님께 나아가는 표입니다. 마귀의 백성된 생활을 청산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로서 새로운 삶을 출발하는 출발점입니다. 구약 시대에 할례로서 선민의 표를 받았듯이 우리는 세례를 통해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된 표를 받은 것입니다.
세례는 자신의 소속을 분명히 밝혀줍니다. 이전까지는 세상에 속해 있었으나 이제는 우리의 시민권이 하늘에 있습니다(빌 3:20). 이제 세례 받은 우리는 당당히 그리스도의 편에 서게 된 것입니다.
얼마 전, 탁구 국가대표 유남규 선수와 중국의 국가대표 자오즈민 선수와의 결혼으로 화제가 된 일이 있었습니다. 결혼 후에도 유남규 선수는 한동안 탁구 국가대표 선수로 활약을 했습니다. 만약 유남규 선수와 중국 선수가 탁구 대결을 하게 될 때 자오즈민은 누구를 응원했을까요 아마도 중국을 응원한 것이 아니라 유남규 선수를, 아니 한국을 응원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의 신분이, 그의 소속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순절을 맞기 전에 먼저 나의 소속이 어디인지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모세의 인도를 따라 애굽을 떠났던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유대인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중다(衆多)한 잡족이 함께 하였습니다(출 12:38). 그런데 가나안을 향하는 여행이 재미있고 낭만적인 것만은 아니지 않습니까 외적의 위험이 있었습니다. 배고프고 목마르고 피곤했습니다. 그래도 백성들은 묵묵히 가나안 목적지를 행해 걷고 또 걸었습니다. 그런데 사사건건 불평하는 무리들이 있었습니다. 잡족들입니다. 민수기 11:4을 읽어보십시오. “이스라엘 중에 섞여 사는 무리가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가로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할꼬. ” 그렇습니다. 그들을 따라오면서 계속 원망을 하고 불평했고, 그들의 불평은 순식간에 백성들에게까지 전염되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자녀의 확신이 없는 사람이 이 사순절 고난의 길을 함께 가겠다고 따라 나선다면 얼마 가지 않아 불평하고 원망할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다른 성도들에게까지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섣불리 따라나서기 전에 나는 과연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인가, 여호와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이 있는가 확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3. 천국 계단의 과정
이것은 주님의 가신 길을 따라가는 길입니다. 또한 이것은 고난의 길입니다. 재미나 즐거움으로 따라가는 길이 아닙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 16:24) 말씀하신 대로 주님께서 가신 길은 골고다의 길이며 십자가의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길은 승리의 발자취요 영광의 길이었습니다(빌 2:6-11).
우리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해야 합니다(벧전 4:13-14). 주님은 마치 등산로를 개척하는 선발대장 처럼 인생의 미로 속에서 천국 계단을 찾아주셨습니다. 바울이 고린도후서 4:10-11에서 말했듯이 예수의 고난과 죽음이라는 십자가를 지고 주님께서 개척하신 골고다, 즉 천국 계단을 오르는 사람들에게는 예수의 생명이 나타납니다.
옛날 성도들은 자신의 가벼운 어깨를 부끄럽게 여기고 사순절 동안에 스스로 짊어질 십자가를 만들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지금도 많은 성도들은 40일 작정기도, 금식운동으로 모으는 성미 운동, 신앙의 절개를 위한 십자가를 만들어지고 마치 천국 계단을 오르듯 골고다의 길을 걸으려 노력하기도 합니다.
사순절 첫 주일을 맞이한 우리는 부활을 향한 40일, 40계단을 올라가기 위해 계단에 올라섰습니다. 오늘은 사순절 기간이 시작되고 벌써 4일이 지난 주일날입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내일부터 사순절 특별기도회를 가지려고 합니다. 40일 연속 금식기도, 수난일 38시간 연속기도 등 고난과 극기의 훈련과정을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힘들고 어려운 길임은 사실이지만 그때 그때마다 주님의 고난을 생각합시다. 힘들이지 않고 사순절 계단을 오르고 있는 모습에서는 주님의 십자가를 찾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마 10:38). 천국 계단은 이 십자가를 지고 가는 자에게만 의미가 있습니다. 가파른 빙벽을 타고 생명을 건 정상에 도전하는 알피니스트 처럼 선발대장이신 예수님의 뒤를 따라 천국의 정상에 오르는 그 때를 바라보며 가파른 고난의 빙벽을 올라갑시다. 우리가 십자가를 지고 오르는 동안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히 12:1)은 우리를 위해 격려하고 기도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십자가를 지고 오르는 동안 이 십자가는 예수와 나를 한 몸으로 만들어 여호와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고 원수된 것을 소멸시켜 주실 것입니다(엡 2:16).
베드로가 주님을 만나기 전에는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를 잡는 어부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주님을 만나 헌신하게 되었고(마 4:19) 12사도의 반열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는 제자 중의 제자였습니다(막 5:37). 천국 열쇠를 받은 사람이었습니다(마 16:19). 이런 베드로에게도 지울 수 없는 아픈 경험이 있었으니 겟세마네 동산의 칼부림(요 18:1-12)과 가야바의 뜰에서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한 사건들(마 26:69-75)입니다. 이 모두 겟세마네 동산에서 주님과 함께 기도하지 못하고 잠들었던 결과가 아닙니까
그러나 갈릴리바다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오순절에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부터 완전한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도행전의 전반부(1-12장)는 그의 활약상을 기록한 것입니다.
이와 같은 베드로가 이 베드로전서를 쓴 목적은 신앙 때문에 성도들을 위로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통해 영광 받으셔서 모범을 보인 것처럼 성도요 그의 제자된 우리들도 주님을 바라보면서 겸손과 순종으로 장차 다가올 고난과 시련을 이겨 나갈 것을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순절 첫 주일을 맞이하는 오늘 아침, 우리는 고난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배워야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고난과 죽음에 이르기까지 여호와 하나님께 순종하였습니다. 이 고난은 우리의 허물 때문만이 아닙니다. 의를 위하여 당하는 승화된 믿음을 일깨워 주기 위한 것입니다.
1. 사순절의 의미
사순절이란 그리스도의 고난의 길에 동참하고자 했던 성도들이 부활절 전 40일간 자신들의 죄를 참회하고 욕망을 절제하는 자기 훈련의 기간입니다. 초기 교회사에서 사순절의 기원은 죄를 참회하고 절제하는 자기 훈련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순절이 시작되면 하루에 한 끼의 식사만이 허용되었고, 물고기와 육식 그리고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달걀과 우유로 만든 음식도 엄격히 금지되었습니다.
이런 극기와 절제의 생활을 통해서 주님의 배고프심과 죽음 앞에서의 자세를 배우고 극기의 훈련을 통해 믿음을 키우고자 금식, 기도회, 성경 읽기와 명상, 봉사와 헌신 등의 생활을 통해 주님의 뒤를 따라가는 자세를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고난을 즐거워하지 않습니다. 만약 여호와 하나님께서 똑 같은 조건 아래서 고난의 잔과 기쁨의 잔을 주시며 선택하라고 할 때 사람들은 누구나 기쁨의 잔을 선택할 것입니다.
본래 사순절 전날은 마음껏 먹고 즐기는 카니발 행사를 갖기도 헸습니다. 이 ‘카니발(Carnival)’이란 말은 ‘고기’를 의미하는 ‘카니스’라는 라틴어와 ‘안녕’을 나타내는 ‘발레’라는 라틴어의 합성어입니다. 그러므로 카니발은 ‘오, 고기여 안녕!’을 의미합니다. “앞으로 40일 동안은 고기와 술을 먹지 못할 것이니 금식을 시작하기 전에 마음껏 먹고, 그리고 나서 실제적으로 시작합시다” 라고 하면서 하루 쉬면서 마음껏 먹고 마셨는데 그 날을 카니발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2000여년이 지난 지금 사순절 고난과 절제와 극기의 행사는 점점 없어져가고 있는데 카니발 축제는 점점 더 활기를 띠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땅에 고난을 당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이사야 53:5을 보십시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하셨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이런 고난을 당해야 하셨습니까 오늘 봉독해 드린 18절의 말씀과 같이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 고난을 당한 것은 우리를 여호와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시기 위함이었다고 하였습니다.
오랫동안 신앙 생활을 해온 성도라 할지라도 핍박이 오고 견디기 어려운 시련이 닥치면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시는 벌이 아닌가’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것이 아닌가’ 하고 갈등을 느끼게 됩니다. 이 갈등이 믿음 안에서 녹아지지 않으면 교회를 등지고 여호와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그래서 심지어는 교회를 떠나 버리기까지 하는 죄를 범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서 종종 생겨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순절 첫 주일아침, 우리는 베드로의 가르침을 통해 고난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배워야 하겠습니다.
2. 천국 계단의 출발점
21절을 읽어보십시오. 선한 양심이 여호와 하나님을 향해 찾아가는 출발점이 무엇이라고 하였습니까 물 즉 세례입니다. 세례는 죄를 씻고 그리스도와 하나되어 여호와 하나님께 나아가는 표입니다. 마귀의 백성된 생활을 청산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로서 새로운 삶을 출발하는 출발점입니다. 구약 시대에 할례로서 선민의 표를 받았듯이 우리는 세례를 통해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된 표를 받은 것입니다.
세례는 자신의 소속을 분명히 밝혀줍니다. 이전까지는 세상에 속해 있었으나 이제는 우리의 시민권이 하늘에 있습니다(빌 3:20). 이제 세례 받은 우리는 당당히 그리스도의 편에 서게 된 것입니다.
얼마 전, 탁구 국가대표 유남규 선수와 중국의 국가대표 자오즈민 선수와의 결혼으로 화제가 된 일이 있었습니다. 결혼 후에도 유남규 선수는 한동안 탁구 국가대표 선수로 활약을 했습니다. 만약 유남규 선수와 중국 선수가 탁구 대결을 하게 될 때 자오즈민은 누구를 응원했을까요 아마도 중국을 응원한 것이 아니라 유남규 선수를, 아니 한국을 응원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의 신분이, 그의 소속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순절을 맞기 전에 먼저 나의 소속이 어디인지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모세의 인도를 따라 애굽을 떠났던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유대인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중다(衆多)한 잡족이 함께 하였습니다(출 12:38). 그런데 가나안을 향하는 여행이 재미있고 낭만적인 것만은 아니지 않습니까 외적의 위험이 있었습니다. 배고프고 목마르고 피곤했습니다. 그래도 백성들은 묵묵히 가나안 목적지를 행해 걷고 또 걸었습니다. 그런데 사사건건 불평하는 무리들이 있었습니다. 잡족들입니다. 민수기 11:4을 읽어보십시오. “이스라엘 중에 섞여 사는 무리가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가로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할꼬. ” 그렇습니다. 그들을 따라오면서 계속 원망을 하고 불평했고, 그들의 불평은 순식간에 백성들에게까지 전염되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자녀의 확신이 없는 사람이 이 사순절 고난의 길을 함께 가겠다고 따라 나선다면 얼마 가지 않아 불평하고 원망할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다른 성도들에게까지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섣불리 따라나서기 전에 나는 과연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인가, 여호와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이 있는가 확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3. 천국 계단의 과정
이것은 주님의 가신 길을 따라가는 길입니다. 또한 이것은 고난의 길입니다. 재미나 즐거움으로 따라가는 길이 아닙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 16:24) 말씀하신 대로 주님께서 가신 길은 골고다의 길이며 십자가의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길은 승리의 발자취요 영광의 길이었습니다(빌 2:6-11).
우리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해야 합니다(벧전 4:13-14). 주님은 마치 등산로를 개척하는 선발대장 처럼 인생의 미로 속에서 천국 계단을 찾아주셨습니다. 바울이 고린도후서 4:10-11에서 말했듯이 예수의 고난과 죽음이라는 십자가를 지고 주님께서 개척하신 골고다, 즉 천국 계단을 오르는 사람들에게는 예수의 생명이 나타납니다.
옛날 성도들은 자신의 가벼운 어깨를 부끄럽게 여기고 사순절 동안에 스스로 짊어질 십자가를 만들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지금도 많은 성도들은 40일 작정기도, 금식운동으로 모으는 성미 운동, 신앙의 절개를 위한 십자가를 만들어지고 마치 천국 계단을 오르듯 골고다의 길을 걸으려 노력하기도 합니다.
사순절 첫 주일을 맞이한 우리는 부활을 향한 40일, 40계단을 올라가기 위해 계단에 올라섰습니다. 오늘은 사순절 기간이 시작되고 벌써 4일이 지난 주일날입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내일부터 사순절 특별기도회를 가지려고 합니다. 40일 연속 금식기도, 수난일 38시간 연속기도 등 고난과 극기의 훈련과정을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힘들고 어려운 길임은 사실이지만 그때 그때마다 주님의 고난을 생각합시다. 힘들이지 않고 사순절 계단을 오르고 있는 모습에서는 주님의 십자가를 찾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마 10:38). 천국 계단은 이 십자가를 지고 가는 자에게만 의미가 있습니다. 가파른 빙벽을 타고 생명을 건 정상에 도전하는 알피니스트 처럼 선발대장이신 예수님의 뒤를 따라 천국의 정상에 오르는 그 때를 바라보며 가파른 고난의 빙벽을 올라갑시다. 우리가 십자가를 지고 오르는 동안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히 12:1)은 우리를 위해 격려하고 기도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십자가를 지고 오르는 동안 이 십자가는 예수와 나를 한 몸으로 만들어 여호와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고 원수된 것을 소멸시켜 주실 것입니다(엡 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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