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본문
오늘은 사순절 주일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종려주일까지 주님의 발자취 를 더듬어 보면서 주님께서 무슨 일을 하셨으며 어떤 고통을 당하셨는가를 말 씀을 통하여 함께 살펴보면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사순절 기간동안 주님께 서 가신 길은 고난의 길이요 십자가의 길이었습니다.
1. 베드로(반석)와 사탄의 차이점이 무엇인가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 전도 시에 가이사랴 빌 립보라는 마을을 지날 때에 있었던 일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질문을 하 셨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고 물으시니 혹은 세례요한이 살 아왔다고 하고 또는 엘리야가 왔다고도 하고, 또는 예레미야 선지자라고도 하 고 어떤 사람은 선지자중의 한 사람이라고도 한다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다시 질문을 하셨습니다. "너희들은 나를 누구라고 믿느냐" 이런 질문을 하신 것은 예수님에 대한 바른 견해를 갖게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이 때 베드로가 그 유명한 말을 해서 주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았습니다. "주는 그리스도 시오 살아 계신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
이 말씀을 들으신 주님은 베드로를 극구 칭찬하셨습니다. 17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 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 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 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 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제 자신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과 앞으로 십자가를 통하여 구속 사업을 완성할 것을 말씀하시게 되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지금까지 예수님은 당신이 인류를 구원하시려고 오신 메시아 임을 드러내지 않으시다가 베드로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16;16) 라는 고백을 들으신 후에 주님께서는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셨다가 삼일만에 부활할 것을 처음으로 밝히 말씀하셨습니다. (21-23절) 그 리고 이때부터 십자가의 고난을 서서히 준비를 하셨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의 신앙고백은 지금까지 비밀에 붙여졌던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아 신분이 공개적 으로 드러난 획기적인 사건이요 교회가 세워지기 시작한 기초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예수님께서 장차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고난을 당하시고 이방인들에게 죽임 을 당한 후 3일만에 부활하시리라고 말씀을 하셨을 때 성격이 성급한 베드로는 주님의 그 말을 가로막았습니다. "주여! 그리하지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님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 속에는 '꼭 그렇게 하실 필요가 있습니까 예수님은 그런 방법이 아니더라도 하실 수 있습니다' 라는 뜻도 포함이 되어 있습니다. 즉 베드로는 주님께서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았으 나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 하찮은 인간들에게 죽임을 당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 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이와 같은 말을 하였던 것입니다. 베드로의 이 말속에는 남다른 의협심과 충성심을 가진 베드로가 목숨을 걸고라도 주님께 는 해가 미치지 않게 하겠다는 결심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주님의 사역이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십자가의 죽음과 대속하신 후에 얻어지는 구원과 영생을 상징하는 부활에 대하여 깨닫지 못하였 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인간적인 면에서는 실로 충성스러운 제자였지만 예수님 의 사역을 사람의 일로 생각하는 무지함을 범하여 주님으로부터 "사단아 내 뒤 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여호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 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도다"(23절) 라고 모진 책망을 받고 말았습 니다.
이 말은 베드로 자신이 사단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베드로 뒤에 바짝 붙어서 호시탐탐 베드로를 넘어뜨리려고 하는 마귀를 물리치라는 말씀입니다. 이 마귀 는 처음으로 만나는 마귀가 아닙니다. 태초에 여호와 하나님의 일을 방해를 하였고, 에 덴동산에서는 아담과 하와를 여지없이 타락시켰으며,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40 일간 금식기도를 하셨을 때 예수님을 시험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때 실패한 사 탄은 베드로를 통하여 예수님의 구원의 사역을 방해하려고 한 것입니다. 그러 나 이때도 실패한 사탄은 후에 가롯유다를 통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히 게 하고 말았습니다. 사탄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기만 하면 승리할 줄로 알았 다가 예수님이 3일만에 부활하시자 이제는 예수를 믿는 성도들을 넘어뜨리려고 우는 사자처럼(벧전5:8) 때로는 광명한 천사의 모습으로 가장하고(고후11:14) 성 도들을 시험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아무리 사랑하는 제자라도 여호와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고 예수님의 구원 사역에 방해가 될 때에는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고 책망을 하신 것입니 다.
조금 전에 예수께서 칭찬하시기를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 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 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 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 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고 하신 칭찬과는 정 반대로 베드로를 사단으로 몰아붙였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왜 자신이 십자가를 져야 하며 고난을 당해야 하는지를 말씀하셨고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도리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들은 예수님의 말씀 중에서 시몬을 칭찬하시면서 베드로라는 이름 도 주셨는데 금방 돌변하셔서 사탄이라고 책망을 하셨습니다. 불과 그 시간적 차이도 몇 분 사이밖에 안돼는 짧은 순간입니다. 오늘의 우리들도 주님으로부 터 칭찬 받는 성도가 될 수도 있지만 나도 모르게 사탄에게 미혹되어 여호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서 주님의 일 을 방해하고 교회 일을 방해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하여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여기서 아주 중요한 한가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베드로나 가롯유다는 똑같이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가롯유다도 베드로 못지 않게 예수님께 신임을 받은 제자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사탄이 그를 시험할 때 빨리 깨닫고 돌이켰 지만 가롯유다는 그렇게 하지 못하였습니다. 이 사탄은 오늘날도 우리들을 수도 없이 유혹하고 시험하고 있습니다. 이 사 탄의 시험을 베드로와 같이 이겨야 합니다. 이기지 못하면 결국 가롯유다와 같 이 되고 맙니다. 한 교회에서 함께 예배드리고 같은 설교를 들으면서 신앙생활 을 함께 하면서도 어떤 사람은 베드로가 될 수 있고 어떤 사람은 가롯유다가 될 가능성은 누구에게나 있다는 것을 깨달아 명심해야 합니다.
2. 우리 성도들은 먼저 자기 자신을 성찰할 줄 알아야 합니다.
베드로는 주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장로들과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고난을 받고 죽게 된다는 말에 진정 주님을 생각하는 마음에서 "주여! 그리하 지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님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라고 말했던 것입 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렇게 말하는 베드로를 책망하셨습니다. 베드로로서는 주 님을 생각하고 한 말이었는데 오히려 책망을 받은 것입니다. 베드로로서는 당 연히 할 말을 한 것입니다. 어떤 제자가 자기 선생님이 죽으로 간다는데 "빨리 가서 죽으십시오" 라고 할 제자가 있습니까 그러나 베드로의 생각은 주님의 뜻과 다르기 때문에 책망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의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할 때에 내 생각에는 제법 잘 하는 줄 알고, 잘 하는 것 같은데, 여호와 하나님 편에서 볼 때는 잘못되었을 때가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자신을 한 번 돌이켜 보아야 하겠습니다.
①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탄의 종노릇을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나의 행동과 말과 생각이 사탄의 짓이 아닌가 사탄을 기쁘게 하는 것은 아닌가 ② 지금 나의 행동이 주님을 넘어지게 하는 것은 아닌가 ③ 지금 나의 행동이 교회의 부흥을 방해하고 있지는 않는가 ④ 지금 나의 하는 일이, 나의 생각이 여호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않고 사람의 일 을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자기 반성과 자기 성찰을 해야 합니다.
모세는 므리바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지 않았기 때문에 가나안에 들어 가지 못하였습니다. 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신앙과 믿음을 빙자해서 자신의 생각을 고집하고, 예수를 빙자해서 자기의 욕심을 채우고 한다면, 이는 빨리 시 정하여야 합니다. 그것은 곧 예수님의 말씀처럼 사탄이 되기 때문입니다. (마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먼저 여호와 하나님을 생각하고 주님을 생각하여야 합니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이 여호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인가 교회의 부흥을 위한 것인가 오히려 교회의 전도 문을 막는 것은 아닌가 이웃에게 덕을 세우고 여호와 하나님을 증거 하는 생활이 될 수 있는가 자기반성 자기 성찰을 하여야 합니다.
3. 예수님은 주님을 믿는 성도들의 신앙자세에 대하여 가르쳐 주었습니다.
이와 같은 일이 있은 뒤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바른 제자의 길(道)을 제자 들에게 가르쳐 주시게 된 것입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하시면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로서의 필수 조건을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데도 많은 조건들이 있 습니다. 어느 회사에 들어가려고 해도 그 회사의 사원으로서의 갖추어야 할 조 건이 있습니다. 기술자도, 의사도, 목사도, 교인도 모두 조건이 있습니다. 오늘날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모두가 예수님의 제자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를 따르는 제자가 꼭 갖추어야 할 조건들은 무엇인지 함께 생각하 면서 은혜 받기를 바랍니다.
(1) "자기를 부인해야 한다" 고 하셨습니다.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희생을 말합니다. 이 말씀에서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자신의 존재를 아주 없애버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모든 이기주의적인 사고방식과 편의주의와 자기체면과 자기의 안일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나와 주님 둘 중에 주님을 선택한 다는 것이고 나의 일과 주님의 일 중에 주님의 일을 먼저 선택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주님을 따른다고 하면서, 왜 주님의 뜻대로 살지를 못합니까 왜 여호와 하나님의 계명과 율례와 법도를 지키지 못합니까 자기를 부인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분명히 너희가 내 계명과 율례와 법도를 지켜 행하라 고 명하셨고, 그 명령을 지켜 행하면 하늘의 신령한 복과, 이 땅의 기름진 원천의 복과, 신상 의 건강의 복과, 자손 천대까지의 축복을 주신다고 약속을 해 주셨는데 왜 지 키지를 못합니까 바로 자기를 부인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왜 주일을 거룩하게 성수(聖守)하지 못하고, 십일조를 드 리지 못하고, 예배시간을 지키지 못합니까 바로 자신을 부인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부인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웁니까 참고 또 참고, 그래서 속병이 생겨도 참고 견디고, 주님만을 위하여 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이 땅에 오셔서 머리 둘 곳도 없이 지내셨고, 또 우리가 지은 허물과 죄악 때문에 성체를 상하셨습니다. 우리의 잘못 때문에 매를 맞으시고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그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지금까지 내 마음대로 내 욕 심대로 내 고집대로 살아왔습니다. 이제는 지금까지의 모든 허물과 죄악을 벗어버리고 여호와 하나님의 기뻐하시고 온 전하신 뜻대로 사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2) "자기 십자가를 지라" 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예수님도 십자가를 지셨는데 우리들 은 십자가를 지지 않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십자가가 무겁다고 이 핑계 저 핑 계를 대며 회피하고 있습니다. (본문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 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고 하였습니다. 십자가는 영광이 아닙니다. 수치와 고통입니다. 십자가는 죽음입니다. 고통과 죽음까지라도 주님을 위해서라면 끝까지 참고 감수를 하여야 합니다. 세상에서 돈 벌려고 얼마나 고생을 합니까 밤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새벽 같이 일어나 밤중까지 일해야 합니다. 세상에서 공부해서 학위를 받으려고 얼 마나 고생들을 합니까 하물며 우리가 예수를 믿고 영생을 얻는데 그냥 얻어지 는 것이 아닙니다.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자기의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사람 은 누구나 자신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십자가가 있다는 것 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 멘!
남이 진 십자가 넘보지도 말고, 자기 몫에 태인 십자가를 벗으려고도 말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합니다. 그렇게 믿으시면 다같이 아멘 하시기 바랍니 다. 아 멘! 그리고 십자가는 날마다 저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하루 이틀 하고 마는 것이 아닙니다. 1년, 2년하고 마는 것도 아 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앞에 서는 그날까지 해야 합니다. 신앙은 결코 일회용이 아닙니 다. 끝까지 참고 견디면서 앞으로 전진하여 나가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말 씀해 주고 있습니다. (마24:13)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내일도 내 십자가를 지고 주님계신 천국을 향하여 전진하여 반드시 주님 앞에 갈 수 있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3) "나를 쫓으라" 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주님을 따르지 못했습니다. 마지막 만찬을 할 때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이 모두 나를 버리리라" 고 말씀하시자 이구동 성으로 죽는 데까지라도 따라가겠노라고 장담을 하던 그들이 예수님이 겟세마 네 동산에서 잡히시자 모두 도망을 가고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 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뿐만이 아닙니다. 오늘의 우리들도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로 는 하지만 진정 예수를 따르려고 하지 않습니다. 입으로는 주여주여 하면서 실 제로는 주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행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4) 주님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까지도 버리라" 고 하였습니다.
(본문16:2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고 또 흠도 없으심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죄를 대신 지 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따라서 예수를 믿고 따르는 성도들은 자신 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목숨까지도 주님을 위해서 드릴 수 있어야 합 니다. 예수님은 내 죄를 사하시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예수님은 나를 죄로부터 자유케 하시려고 십자가에서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 극심한 고통과 수치를 당하심으로 나를 구원하셨고 영광 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기꺼이 주님을 위해서라면 우리의 목 숨까지도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목숨이란 단 한 번밖에 주어지지 않는 우리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목숨이 바로 주님 때문에 얻은 것 이므로 이것도 주님을 위해서 버릴 수 있는 용단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목숨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분명히 목 숨보다 더 귀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이 주시는 영생입니다. 이 영 생을 얻기 위해서는 나의 목숨을 주님께 바칠 때에 비로소 얻어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목숨은 오르지 주님만을 위해서 드려져야 합니다. 그 어떤 이유로도 나 의 유일한 목숨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주님을 위해서 지금 목숨까지 드릴 수 있습니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내너를 위하여 몸버려 피흘려 네죄를 속하여 살길을 주었다 너위해 몸을 주건만 날 무엇주느냐 너위해 몸을 주건만 날 무엇주느냐 우리가 주님을 따르는 성도로서 주님의 뜻대로 자기를 부인하고, 또 내 십자 가를 지고, 그리고 목숨까지도 주님을 위해서 바치는 사람에게 주님은 약속하 시기를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 의 행한대로 갚으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주님을 따르는 성도들의 마지막 해야 할 과제입니다.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있다면 바로 생명입니다. 이 생명을 누가 주었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을 위해서, 주님을 위해서, 목숨도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기독교의 2천년 역사상 수를 셀 수 없는 수많은 순교자들이 이 진리를 깨닫 고 이 비밀을 깨달았기에 그들은 주님을 위해 기꺼이 목숨도 바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결 론 : 오늘의 말씀을 마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과 주님의 사역이 어떻게 완성이 될 것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주님의 가시는 길을 막았습니다. 또한 베드로는 감 정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생각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하고 예수님의 사역을 방해하였습니다. 오늘날에도 감정적이고 세상 적인 관점에서 신앙생활을 하면 주님의 뜻을 분 별하기는커녕 주님의 사역을 방해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지금까 지 주님의 사역을 방해한 적은 없습니까 자신을 돌이켜 보시기 바랍니다. 주님으로부터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는 책망 받을 일은 없습니까 가롯 유다는 사단이 들어가서 예수님을 팔았습니다. 또 주님으로부터 "네가 여호와 하나님의 일은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라고 책망들을 말이나 일은 하지 않았는지 자신을 돌이켜 보시 기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의 우리들은 주님을 위해서 목숨도 버릴 수 있는 믿음이 있는지 도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본문 27절-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대로 갚으리라" 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행함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마25 장에 달란트 비유 중에는 행한 대로 보상을 해 주었습니다. 양과 염소를 구별 하는 비유 중에도 행한 대로 갚아주었습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 고 하였습니다. (약2:17) (눅6:46)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나의 말하는 것을 행치 아니하느냐" (눅6:49)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주초 없이 흙 위에 집 지은 사람과 같으 니 탁류가 부딪히매 집이 곧 무너져 파괴됨이 심하니라 하시니라" 이 시간 우리들은 자신을 반성해 보면서 과연 주님 앞에 주님을 따르기에 합 당한지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내깐에는 뭔가 하는 줄 알았는데 사 탄의 종노릇만 해 왔고, 주님을 넘어지게 하는 자가 되었고, 교회의 부흥을 오 히려 훼방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나를 부인하기보다는 자랑하고 교만하여 왔으며, 나에게 지워진 십자가는 지지 않고 벗으려고만 하였습니다. 주님의 보혈의 피 값으로 구원을 받아 새 생명을 얻었으나 주님을 위해 바치 기보다는 세상의 재물을 얻기 위해서, 내 육신 살기 위해서 사용하여 왔습니다. 과연 주님께서는 행한 대로 갚아주신다고 하였으니 내가 주님 앞에 무엇을 하였는가를 생각하니 두렵기 한량없습니다. 이제 우리들은 이 시간에 그리스도인으로써,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로서, 지켜야 할 도리가 무엇인가를 깨달았습니다. 이제부터는 오직 주님만을 위하여 주님 뜻대로 살아서 이 시대에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1. 베드로(반석)와 사탄의 차이점이 무엇인가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 전도 시에 가이사랴 빌 립보라는 마을을 지날 때에 있었던 일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질문을 하 셨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고 물으시니 혹은 세례요한이 살 아왔다고 하고 또는 엘리야가 왔다고도 하고, 또는 예레미야 선지자라고도 하 고 어떤 사람은 선지자중의 한 사람이라고도 한다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다시 질문을 하셨습니다. "너희들은 나를 누구라고 믿느냐" 이런 질문을 하신 것은 예수님에 대한 바른 견해를 갖게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이 때 베드로가 그 유명한 말을 해서 주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았습니다. "주는 그리스도 시오 살아 계신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
이 말씀을 들으신 주님은 베드로를 극구 칭찬하셨습니다. 17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 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 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 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 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제 자신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과 앞으로 십자가를 통하여 구속 사업을 완성할 것을 말씀하시게 되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지금까지 예수님은 당신이 인류를 구원하시려고 오신 메시아 임을 드러내지 않으시다가 베드로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16;16) 라는 고백을 들으신 후에 주님께서는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셨다가 삼일만에 부활할 것을 처음으로 밝히 말씀하셨습니다. (21-23절) 그 리고 이때부터 십자가의 고난을 서서히 준비를 하셨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의 신앙고백은 지금까지 비밀에 붙여졌던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아 신분이 공개적 으로 드러난 획기적인 사건이요 교회가 세워지기 시작한 기초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예수님께서 장차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고난을 당하시고 이방인들에게 죽임 을 당한 후 3일만에 부활하시리라고 말씀을 하셨을 때 성격이 성급한 베드로는 주님의 그 말을 가로막았습니다. "주여! 그리하지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님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 속에는 '꼭 그렇게 하실 필요가 있습니까 예수님은 그런 방법이 아니더라도 하실 수 있습니다' 라는 뜻도 포함이 되어 있습니다. 즉 베드로는 주님께서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았으 나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 하찮은 인간들에게 죽임을 당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 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이와 같은 말을 하였던 것입니다. 베드로의 이 말속에는 남다른 의협심과 충성심을 가진 베드로가 목숨을 걸고라도 주님께 는 해가 미치지 않게 하겠다는 결심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주님의 사역이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십자가의 죽음과 대속하신 후에 얻어지는 구원과 영생을 상징하는 부활에 대하여 깨닫지 못하였 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인간적인 면에서는 실로 충성스러운 제자였지만 예수님 의 사역을 사람의 일로 생각하는 무지함을 범하여 주님으로부터 "사단아 내 뒤 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여호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 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도다"(23절) 라고 모진 책망을 받고 말았습 니다.
이 말은 베드로 자신이 사단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베드로 뒤에 바짝 붙어서 호시탐탐 베드로를 넘어뜨리려고 하는 마귀를 물리치라는 말씀입니다. 이 마귀 는 처음으로 만나는 마귀가 아닙니다. 태초에 여호와 하나님의 일을 방해를 하였고, 에 덴동산에서는 아담과 하와를 여지없이 타락시켰으며,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40 일간 금식기도를 하셨을 때 예수님을 시험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때 실패한 사 탄은 베드로를 통하여 예수님의 구원의 사역을 방해하려고 한 것입니다. 그러 나 이때도 실패한 사탄은 후에 가롯유다를 통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히 게 하고 말았습니다. 사탄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기만 하면 승리할 줄로 알았 다가 예수님이 3일만에 부활하시자 이제는 예수를 믿는 성도들을 넘어뜨리려고 우는 사자처럼(벧전5:8) 때로는 광명한 천사의 모습으로 가장하고(고후11:14) 성 도들을 시험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아무리 사랑하는 제자라도 여호와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고 예수님의 구원 사역에 방해가 될 때에는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고 책망을 하신 것입니 다.
조금 전에 예수께서 칭찬하시기를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 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 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 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 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고 하신 칭찬과는 정 반대로 베드로를 사단으로 몰아붙였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왜 자신이 십자가를 져야 하며 고난을 당해야 하는지를 말씀하셨고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도리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들은 예수님의 말씀 중에서 시몬을 칭찬하시면서 베드로라는 이름 도 주셨는데 금방 돌변하셔서 사탄이라고 책망을 하셨습니다. 불과 그 시간적 차이도 몇 분 사이밖에 안돼는 짧은 순간입니다. 오늘의 우리들도 주님으로부 터 칭찬 받는 성도가 될 수도 있지만 나도 모르게 사탄에게 미혹되어 여호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서 주님의 일 을 방해하고 교회 일을 방해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하여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여기서 아주 중요한 한가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베드로나 가롯유다는 똑같이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가롯유다도 베드로 못지 않게 예수님께 신임을 받은 제자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사탄이 그를 시험할 때 빨리 깨닫고 돌이켰 지만 가롯유다는 그렇게 하지 못하였습니다. 이 사탄은 오늘날도 우리들을 수도 없이 유혹하고 시험하고 있습니다. 이 사 탄의 시험을 베드로와 같이 이겨야 합니다. 이기지 못하면 결국 가롯유다와 같 이 되고 맙니다. 한 교회에서 함께 예배드리고 같은 설교를 들으면서 신앙생활 을 함께 하면서도 어떤 사람은 베드로가 될 수 있고 어떤 사람은 가롯유다가 될 가능성은 누구에게나 있다는 것을 깨달아 명심해야 합니다.
2. 우리 성도들은 먼저 자기 자신을 성찰할 줄 알아야 합니다.
베드로는 주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장로들과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고난을 받고 죽게 된다는 말에 진정 주님을 생각하는 마음에서 "주여! 그리하 지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님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라고 말했던 것입 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렇게 말하는 베드로를 책망하셨습니다. 베드로로서는 주 님을 생각하고 한 말이었는데 오히려 책망을 받은 것입니다. 베드로로서는 당 연히 할 말을 한 것입니다. 어떤 제자가 자기 선생님이 죽으로 간다는데 "빨리 가서 죽으십시오" 라고 할 제자가 있습니까 그러나 베드로의 생각은 주님의 뜻과 다르기 때문에 책망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의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할 때에 내 생각에는 제법 잘 하는 줄 알고, 잘 하는 것 같은데, 여호와 하나님 편에서 볼 때는 잘못되었을 때가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자신을 한 번 돌이켜 보아야 하겠습니다.
①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탄의 종노릇을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나의 행동과 말과 생각이 사탄의 짓이 아닌가 사탄을 기쁘게 하는 것은 아닌가 ② 지금 나의 행동이 주님을 넘어지게 하는 것은 아닌가 ③ 지금 나의 행동이 교회의 부흥을 방해하고 있지는 않는가 ④ 지금 나의 하는 일이, 나의 생각이 여호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않고 사람의 일 을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자기 반성과 자기 성찰을 해야 합니다.
모세는 므리바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지 않았기 때문에 가나안에 들어 가지 못하였습니다. 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신앙과 믿음을 빙자해서 자신의 생각을 고집하고, 예수를 빙자해서 자기의 욕심을 채우고 한다면, 이는 빨리 시 정하여야 합니다. 그것은 곧 예수님의 말씀처럼 사탄이 되기 때문입니다. (마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먼저 여호와 하나님을 생각하고 주님을 생각하여야 합니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이 여호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인가 교회의 부흥을 위한 것인가 오히려 교회의 전도 문을 막는 것은 아닌가 이웃에게 덕을 세우고 여호와 하나님을 증거 하는 생활이 될 수 있는가 자기반성 자기 성찰을 하여야 합니다.
3. 예수님은 주님을 믿는 성도들의 신앙자세에 대하여 가르쳐 주었습니다.
이와 같은 일이 있은 뒤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바른 제자의 길(道)을 제자 들에게 가르쳐 주시게 된 것입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하시면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로서의 필수 조건을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데도 많은 조건들이 있 습니다. 어느 회사에 들어가려고 해도 그 회사의 사원으로서의 갖추어야 할 조 건이 있습니다. 기술자도, 의사도, 목사도, 교인도 모두 조건이 있습니다. 오늘날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모두가 예수님의 제자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를 따르는 제자가 꼭 갖추어야 할 조건들은 무엇인지 함께 생각하 면서 은혜 받기를 바랍니다.
(1) "자기를 부인해야 한다" 고 하셨습니다.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희생을 말합니다. 이 말씀에서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자신의 존재를 아주 없애버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모든 이기주의적인 사고방식과 편의주의와 자기체면과 자기의 안일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나와 주님 둘 중에 주님을 선택한 다는 것이고 나의 일과 주님의 일 중에 주님의 일을 먼저 선택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주님을 따른다고 하면서, 왜 주님의 뜻대로 살지를 못합니까 왜 여호와 하나님의 계명과 율례와 법도를 지키지 못합니까 자기를 부인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분명히 너희가 내 계명과 율례와 법도를 지켜 행하라 고 명하셨고, 그 명령을 지켜 행하면 하늘의 신령한 복과, 이 땅의 기름진 원천의 복과, 신상 의 건강의 복과, 자손 천대까지의 축복을 주신다고 약속을 해 주셨는데 왜 지 키지를 못합니까 바로 자기를 부인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왜 주일을 거룩하게 성수(聖守)하지 못하고, 십일조를 드 리지 못하고, 예배시간을 지키지 못합니까 바로 자신을 부인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부인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웁니까 참고 또 참고, 그래서 속병이 생겨도 참고 견디고, 주님만을 위하여 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이 땅에 오셔서 머리 둘 곳도 없이 지내셨고, 또 우리가 지은 허물과 죄악 때문에 성체를 상하셨습니다. 우리의 잘못 때문에 매를 맞으시고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그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지금까지 내 마음대로 내 욕 심대로 내 고집대로 살아왔습니다. 이제는 지금까지의 모든 허물과 죄악을 벗어버리고 여호와 하나님의 기뻐하시고 온 전하신 뜻대로 사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2) "자기 십자가를 지라" 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예수님도 십자가를 지셨는데 우리들 은 십자가를 지지 않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십자가가 무겁다고 이 핑계 저 핑 계를 대며 회피하고 있습니다. (본문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 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고 하였습니다. 십자가는 영광이 아닙니다. 수치와 고통입니다. 십자가는 죽음입니다. 고통과 죽음까지라도 주님을 위해서라면 끝까지 참고 감수를 하여야 합니다. 세상에서 돈 벌려고 얼마나 고생을 합니까 밤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새벽 같이 일어나 밤중까지 일해야 합니다. 세상에서 공부해서 학위를 받으려고 얼 마나 고생들을 합니까 하물며 우리가 예수를 믿고 영생을 얻는데 그냥 얻어지 는 것이 아닙니다.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자기의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사람 은 누구나 자신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십자가가 있다는 것 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 멘!
남이 진 십자가 넘보지도 말고, 자기 몫에 태인 십자가를 벗으려고도 말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합니다. 그렇게 믿으시면 다같이 아멘 하시기 바랍니 다. 아 멘! 그리고 십자가는 날마다 저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하루 이틀 하고 마는 것이 아닙니다. 1년, 2년하고 마는 것도 아 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앞에 서는 그날까지 해야 합니다. 신앙은 결코 일회용이 아닙니 다. 끝까지 참고 견디면서 앞으로 전진하여 나가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말 씀해 주고 있습니다. (마24:13)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내일도 내 십자가를 지고 주님계신 천국을 향하여 전진하여 반드시 주님 앞에 갈 수 있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3) "나를 쫓으라" 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주님을 따르지 못했습니다. 마지막 만찬을 할 때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이 모두 나를 버리리라" 고 말씀하시자 이구동 성으로 죽는 데까지라도 따라가겠노라고 장담을 하던 그들이 예수님이 겟세마 네 동산에서 잡히시자 모두 도망을 가고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 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뿐만이 아닙니다. 오늘의 우리들도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로 는 하지만 진정 예수를 따르려고 하지 않습니다. 입으로는 주여주여 하면서 실 제로는 주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행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4) 주님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까지도 버리라" 고 하였습니다.
(본문16:2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고 또 흠도 없으심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죄를 대신 지 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따라서 예수를 믿고 따르는 성도들은 자신 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목숨까지도 주님을 위해서 드릴 수 있어야 합 니다. 예수님은 내 죄를 사하시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예수님은 나를 죄로부터 자유케 하시려고 십자가에서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 극심한 고통과 수치를 당하심으로 나를 구원하셨고 영광 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기꺼이 주님을 위해서라면 우리의 목 숨까지도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목숨이란 단 한 번밖에 주어지지 않는 우리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목숨이 바로 주님 때문에 얻은 것 이므로 이것도 주님을 위해서 버릴 수 있는 용단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목숨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분명히 목 숨보다 더 귀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이 주시는 영생입니다. 이 영 생을 얻기 위해서는 나의 목숨을 주님께 바칠 때에 비로소 얻어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목숨은 오르지 주님만을 위해서 드려져야 합니다. 그 어떤 이유로도 나 의 유일한 목숨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주님을 위해서 지금 목숨까지 드릴 수 있습니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내너를 위하여 몸버려 피흘려 네죄를 속하여 살길을 주었다 너위해 몸을 주건만 날 무엇주느냐 너위해 몸을 주건만 날 무엇주느냐 우리가 주님을 따르는 성도로서 주님의 뜻대로 자기를 부인하고, 또 내 십자 가를 지고, 그리고 목숨까지도 주님을 위해서 바치는 사람에게 주님은 약속하 시기를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 의 행한대로 갚으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주님을 따르는 성도들의 마지막 해야 할 과제입니다.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있다면 바로 생명입니다. 이 생명을 누가 주었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을 위해서, 주님을 위해서, 목숨도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기독교의 2천년 역사상 수를 셀 수 없는 수많은 순교자들이 이 진리를 깨닫 고 이 비밀을 깨달았기에 그들은 주님을 위해 기꺼이 목숨도 바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결 론 : 오늘의 말씀을 마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과 주님의 사역이 어떻게 완성이 될 것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주님의 가시는 길을 막았습니다. 또한 베드로는 감 정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생각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하고 예수님의 사역을 방해하였습니다. 오늘날에도 감정적이고 세상 적인 관점에서 신앙생활을 하면 주님의 뜻을 분 별하기는커녕 주님의 사역을 방해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지금까 지 주님의 사역을 방해한 적은 없습니까 자신을 돌이켜 보시기 바랍니다. 주님으로부터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는 책망 받을 일은 없습니까 가롯 유다는 사단이 들어가서 예수님을 팔았습니다. 또 주님으로부터 "네가 여호와 하나님의 일은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라고 책망들을 말이나 일은 하지 않았는지 자신을 돌이켜 보시 기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의 우리들은 주님을 위해서 목숨도 버릴 수 있는 믿음이 있는지 도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본문 27절-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대로 갚으리라" 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행함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마25 장에 달란트 비유 중에는 행한 대로 보상을 해 주었습니다. 양과 염소를 구별 하는 비유 중에도 행한 대로 갚아주었습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 고 하였습니다. (약2:17) (눅6:46)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나의 말하는 것을 행치 아니하느냐" (눅6:49)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주초 없이 흙 위에 집 지은 사람과 같으 니 탁류가 부딪히매 집이 곧 무너져 파괴됨이 심하니라 하시니라" 이 시간 우리들은 자신을 반성해 보면서 과연 주님 앞에 주님을 따르기에 합 당한지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내깐에는 뭔가 하는 줄 알았는데 사 탄의 종노릇만 해 왔고, 주님을 넘어지게 하는 자가 되었고, 교회의 부흥을 오 히려 훼방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나를 부인하기보다는 자랑하고 교만하여 왔으며, 나에게 지워진 십자가는 지지 않고 벗으려고만 하였습니다. 주님의 보혈의 피 값으로 구원을 받아 새 생명을 얻었으나 주님을 위해 바치 기보다는 세상의 재물을 얻기 위해서, 내 육신 살기 위해서 사용하여 왔습니다. 과연 주님께서는 행한 대로 갚아주신다고 하였으니 내가 주님 앞에 무엇을 하였는가를 생각하니 두렵기 한량없습니다. 이제 우리들은 이 시간에 그리스도인으로써,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로서, 지켜야 할 도리가 무엇인가를 깨달았습니다. 이제부터는 오직 주님만을 위하여 주님 뜻대로 살아서 이 시대에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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