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너의 십자가를 져라
본문
오늘은 사순절 셋째 주일입니다. 우리 기독교의 절기는 1년중 대강 절기(Advent), 성탄 절기(Christmas Season), 주현 절기(Epiphany Season), 사순 절기(Lent), 부활 절기(Easter Season), 성령 강림 절기(Pwntacost Season), 이렇게 여섯 절기로 나누어집니다.
그래서 이 절기에 따라 강단과 목사 가운의 스톨 색깔이 달라지는데 대강 절기와 성탄 절기 그리고 부활 절기는 기쁨과 성결을 뜻하는 흰색을, 주현 절기에는 성장을 뜻하는 녹색을, 사순 절기에는 고난을 상징하는 보라색을, 성령 강림 절기에는 불과 성령을 상징하는 빨강 색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지금은 사순절기이기 때문에 강단의 색깔과 목사의 가운 색깔도 보라색입니다.
사순절은 예수님의 부활하신 부활주일 전 6주 동안을 말하며 여섯째 주일은 종려주일과 고난주간으로 이어집니다. 사순절은 부활절 전의 40일로 이어지는 성회 수요일로서 시작하며 주일날은 포함하지 않습니다. 이 기간에는 회심과 예수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한 준비 기간으로 가무(歌舞)를 금하고 금식을 하며 경건된 생활을 하는 기간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예수님께서 고난당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말씀을 중심으로 함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실 때에 가이사라 빌립보 지방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이제 시시각각으로 십자가의 고난이 다가올 때에 예수님은 제자들의 믿음을 확실하게 해 줄 필요성을 느끼시고 제자들에게 질문을 하셨습니다.
(마16:13) “예수께서 빌립보 가이사라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이 질문에 제자들은 들은대로 대답을 하였습니다.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예수님은 다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고 질문을 하십니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이 대답을 들으신 예수님은 만족해 하셨습니다. 그리고 시몬에게 칭찬과 축복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16:17-19)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그리고 나서 예수님은 비로소 자신이 예루살렘에 가면 고난을 당하고 십자가의 죽음을 당할 것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마16:21)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그러나 문제가 발생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베드로가 성급한 나머지 주님의 길을 가로막고 나섰습니다.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베드로의 이와 같은 말은 여호와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구세주 되시는 주님이 하찮은 인간들에게 고난을 당하고 죽임을 당한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이 일이 절대로 주님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이 말속에는 남다른 의협심과 충성심을 가진 베드로가 목숨을 바쳐서라도 주님께 절대로 해가 미치지 않도록 하겠다는 베드로의 결심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의 이와 같은 생각은 예수님의 영적 사역을 깨닫지 못한 영적 무지에서 생각된 것입니다.
즉 베드로는 주님께서 십자가의 죽음이 인간의 죄를 대속 하기 위한 것이며 부활을 통하여 인간을 대속하신 후에 얻어지는 구원과 영생과 영광을 상징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인간적으로는 충성스러웠지만 주님의 사역을 사람의 일로 잘못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와 같은 베드로의 성급하고 어리석은 것을 모질게 꾸짖으셨습니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여호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그리고 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바른 제자의 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길이 바로 십자가의 길입니다.
본문 24절 말씀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십자가를 지는 것만이 우리가 주님을 바르게 알고 주님을 따르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는 것만이 이 마지막 말세를 당한 이때에 여호와 하나님의 뜻대로 살수 있는 길이요 영생으로 가는 길이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시간 좀 더 복음적인 의미에서 십자가를 생각하며 이 십자가를 통한 여호와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과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1. 예수님은 죄와 사망의 법아래서 탄식하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이사야 53장 5절에는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라고 인류의 죄를 위해 돌아가신 예수님의 고통에 대해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1) 그래서 십자가는 교회의 상징이요, 구원의 증표입니다.
우리 주님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고 로마서 5장 8절에 말씀하십니다.
로마서 4장 25절에는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2) 그러므로 십자가는 기독교인의 상징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상징은 모세의 체험처럼 불타는 가시덤불이 아닙니다.
또한 십계명이 새겨진 두 개의 돌 판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일곱 기둥이 있는 촛대도 아닙니다. 기독교의 상징은 십자가입니다.
갈라디아서 6장 14절에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느니라" 고 했습니다.
(3)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는 나와 여러분의 죄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주님이 지신 십자가는 우리의 죄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구속의 은총입니다. 또한 부활과 영생에 대한 보장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인류에 대한 구원의 메시지가 되는 것입니다. 일찍이 예수님이 탄생하시기전 700여년전에 이사야 선지자는 이에 대하여 예언을 하였습니다.
(사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2. 누구든지 자기의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자기의 십자가를 지라고 하셨습니다.
본문 24절 말씀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예수님이 지라고 하신 십자가는 곧 죽음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을 때 이미 우리들은 과거의 나는 십자가에 못 박아 죽고 이제 내가 산 것은 예수 안에서 새 생명이 산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십자가의 공로로 얻은 생명을 주님을 위해서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위해서 죽고자 할 때 예수님은 영생의 생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본문 25절 말씀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그런데 자기 십자가에 무관심한 이가 있습니다. 어떤 이는 자기 십자가를 바라만 봅니다. 어떤 이는 자기 십자가를 명상만 합니다. 어떤 이는 자기 십자가를 노래만 하고 있습니다. 십자가를 달고는 다니는데 믿지는 않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명령하십니다.
아무리 잘 살아도, 아무리 큰 은혜를 받았어도, 아무리 많이 배우고 좋은 것을 갖고 있어도, 누구에게든지 자기 몫의 십자가는 있습니다.
그 십자가가 부모가 될 수도 있습니다.
남편이 될 수도 있고, 아내가 될 수도 있습니다.
자식이 될 수도 있고, 형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가난일 수도 있고, 질병이 될 수도 있고, 핍박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십자가가 어떤 형태의 십자가라도 그것이 여호와 하나님이 내게 주신 십자가라면 져야하고 내게 주시는 잔이라면 마셔야 합니다.
끝까지 참고, 묵묵히 지고 가야 합니다. 무겁다고 지기 싫다고 벗어버릴 수는 없습니다.
십자가는 내가 감당해야 할 의무이며 사명입니다.
십자가는 내가 걸어가야 할 신앙과 믿음의 좁은길이며
십자가는 벗어서는 안되는, 또 벗어버릴 수도 없는 구원의 멍에입니다.
그 십자가는 피해서도 안되고, 피할 수도 없는, 반드시 내가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기의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내 가정의 십자가도 져야 합니다. 교회의 십자가도 져야 합니다. 내 환경에 주신 십자가도 져야 합니다.
십자가 지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예수님은 우리에게 사명의 십자가를 지라 하십니다.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두 아들을 데리고 주님께 와서 “이 나의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할 때 예수님은 "나의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고 물을 때 저희가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라고 하였으니 이 말씀은 사명의 십자가를 질 수 있냐는 질문입니다.
골로새서 1장24절을 보면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했으니 바울은 자기 사명의 십자가를 지고 갔다는 고백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십자가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10)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 받은 우리는 주께서 내게 주신 사명 때문에 주일날이 되면 다른 불신자들 보다 더 바쁘고 고달프게 지냅니다. 또 물질을 드리고, 시간을 드립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것들이 주님이 날 위하여 져주신 십자가에 비하면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성도 여러분!!
사명의 십자가를 지시기 바랍니다. 억지로 지는 십자가가 아니고 기쁨으로 감사함으로 지는 십자가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나 위하여 지신 십자가를 생각하면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어찌 기쁨으로 지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주님이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명의 십자가를 은혜로 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결 론 : 오늘의 말씀을 마칩니다.
주님은 지금 “네가 십자가를 질 수 있느냐” 고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십자가는 여호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영원한 사랑의 증표입니다.
십자가는 예수님이 나를 구원하신 구원의 상징입니다.
십자가는 주님이 피 흘리신 흔적이며 나와 천국을 연결해 주는 가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를 져야합니다.
내가 십자가를 질 때 주님께서도 내 십자가를 져 주시는 것입니다.
환난이 와도 핍박이 와도 죽음이 온다 할지라도 십자가 지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롬8: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성도 여러분!
이 시간 십자가를 바로 이해하고 주님이 내게 주시는 십자가를 기쁨과 감사함으로 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는 십자가를 바라볼 때마다, 또 무엇을 생각하기 전에, 먼저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성령이 함께 하심을 믿고 십자가의 은혜를 찬양해야 합니다.
그 십자가의 공로로 내가 구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주님의 말씀대로 믿음의 십자가, 구원의 십자가, 사명의 십자가를 짐으로 이 마지막 말세를 당한 이때에 교회에서, 가정에서, 사회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그래서 이 절기에 따라 강단과 목사 가운의 스톨 색깔이 달라지는데 대강 절기와 성탄 절기 그리고 부활 절기는 기쁨과 성결을 뜻하는 흰색을, 주현 절기에는 성장을 뜻하는 녹색을, 사순 절기에는 고난을 상징하는 보라색을, 성령 강림 절기에는 불과 성령을 상징하는 빨강 색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지금은 사순절기이기 때문에 강단의 색깔과 목사의 가운 색깔도 보라색입니다.
사순절은 예수님의 부활하신 부활주일 전 6주 동안을 말하며 여섯째 주일은 종려주일과 고난주간으로 이어집니다. 사순절은 부활절 전의 40일로 이어지는 성회 수요일로서 시작하며 주일날은 포함하지 않습니다. 이 기간에는 회심과 예수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한 준비 기간으로 가무(歌舞)를 금하고 금식을 하며 경건된 생활을 하는 기간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예수님께서 고난당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말씀을 중심으로 함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실 때에 가이사라 빌립보 지방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이제 시시각각으로 십자가의 고난이 다가올 때에 예수님은 제자들의 믿음을 확실하게 해 줄 필요성을 느끼시고 제자들에게 질문을 하셨습니다.
(마16:13) “예수께서 빌립보 가이사라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이 질문에 제자들은 들은대로 대답을 하였습니다.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예수님은 다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고 질문을 하십니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이 대답을 들으신 예수님은 만족해 하셨습니다. 그리고 시몬에게 칭찬과 축복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16:17-19)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그리고 나서 예수님은 비로소 자신이 예루살렘에 가면 고난을 당하고 십자가의 죽음을 당할 것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마16:21)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그러나 문제가 발생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베드로가 성급한 나머지 주님의 길을 가로막고 나섰습니다.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베드로의 이와 같은 말은 여호와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구세주 되시는 주님이 하찮은 인간들에게 고난을 당하고 죽임을 당한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이 일이 절대로 주님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이 말속에는 남다른 의협심과 충성심을 가진 베드로가 목숨을 바쳐서라도 주님께 절대로 해가 미치지 않도록 하겠다는 베드로의 결심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의 이와 같은 생각은 예수님의 영적 사역을 깨닫지 못한 영적 무지에서 생각된 것입니다.
즉 베드로는 주님께서 십자가의 죽음이 인간의 죄를 대속 하기 위한 것이며 부활을 통하여 인간을 대속하신 후에 얻어지는 구원과 영생과 영광을 상징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인간적으로는 충성스러웠지만 주님의 사역을 사람의 일로 잘못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와 같은 베드로의 성급하고 어리석은 것을 모질게 꾸짖으셨습니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여호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그리고 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바른 제자의 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길이 바로 십자가의 길입니다.
본문 24절 말씀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십자가를 지는 것만이 우리가 주님을 바르게 알고 주님을 따르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는 것만이 이 마지막 말세를 당한 이때에 여호와 하나님의 뜻대로 살수 있는 길이요 영생으로 가는 길이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시간 좀 더 복음적인 의미에서 십자가를 생각하며 이 십자가를 통한 여호와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과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1. 예수님은 죄와 사망의 법아래서 탄식하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이사야 53장 5절에는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라고 인류의 죄를 위해 돌아가신 예수님의 고통에 대해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1) 그래서 십자가는 교회의 상징이요, 구원의 증표입니다.
우리 주님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고 로마서 5장 8절에 말씀하십니다.
로마서 4장 25절에는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2) 그러므로 십자가는 기독교인의 상징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상징은 모세의 체험처럼 불타는 가시덤불이 아닙니다.
또한 십계명이 새겨진 두 개의 돌 판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일곱 기둥이 있는 촛대도 아닙니다. 기독교의 상징은 십자가입니다.
갈라디아서 6장 14절에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느니라" 고 했습니다.
(3)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는 나와 여러분의 죄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주님이 지신 십자가는 우리의 죄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구속의 은총입니다. 또한 부활과 영생에 대한 보장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인류에 대한 구원의 메시지가 되는 것입니다. 일찍이 예수님이 탄생하시기전 700여년전에 이사야 선지자는 이에 대하여 예언을 하였습니다.
(사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2. 누구든지 자기의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자기의 십자가를 지라고 하셨습니다.
본문 24절 말씀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예수님이 지라고 하신 십자가는 곧 죽음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을 때 이미 우리들은 과거의 나는 십자가에 못 박아 죽고 이제 내가 산 것은 예수 안에서 새 생명이 산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십자가의 공로로 얻은 생명을 주님을 위해서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위해서 죽고자 할 때 예수님은 영생의 생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본문 25절 말씀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그런데 자기 십자가에 무관심한 이가 있습니다. 어떤 이는 자기 십자가를 바라만 봅니다. 어떤 이는 자기 십자가를 명상만 합니다. 어떤 이는 자기 십자가를 노래만 하고 있습니다. 십자가를 달고는 다니는데 믿지는 않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명령하십니다.
아무리 잘 살아도, 아무리 큰 은혜를 받았어도, 아무리 많이 배우고 좋은 것을 갖고 있어도, 누구에게든지 자기 몫의 십자가는 있습니다.
그 십자가가 부모가 될 수도 있습니다.
남편이 될 수도 있고, 아내가 될 수도 있습니다.
자식이 될 수도 있고, 형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가난일 수도 있고, 질병이 될 수도 있고, 핍박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십자가가 어떤 형태의 십자가라도 그것이 여호와 하나님이 내게 주신 십자가라면 져야하고 내게 주시는 잔이라면 마셔야 합니다.
끝까지 참고, 묵묵히 지고 가야 합니다. 무겁다고 지기 싫다고 벗어버릴 수는 없습니다.
십자가는 내가 감당해야 할 의무이며 사명입니다.
십자가는 내가 걸어가야 할 신앙과 믿음의 좁은길이며
십자가는 벗어서는 안되는, 또 벗어버릴 수도 없는 구원의 멍에입니다.
그 십자가는 피해서도 안되고, 피할 수도 없는, 반드시 내가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기의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내 가정의 십자가도 져야 합니다. 교회의 십자가도 져야 합니다. 내 환경에 주신 십자가도 져야 합니다.
십자가 지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예수님은 우리에게 사명의 십자가를 지라 하십니다.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두 아들을 데리고 주님께 와서 “이 나의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할 때 예수님은 "나의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고 물을 때 저희가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라고 하였으니 이 말씀은 사명의 십자가를 질 수 있냐는 질문입니다.
골로새서 1장24절을 보면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했으니 바울은 자기 사명의 십자가를 지고 갔다는 고백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십자가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10)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 받은 우리는 주께서 내게 주신 사명 때문에 주일날이 되면 다른 불신자들 보다 더 바쁘고 고달프게 지냅니다. 또 물질을 드리고, 시간을 드립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것들이 주님이 날 위하여 져주신 십자가에 비하면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성도 여러분!!
사명의 십자가를 지시기 바랍니다. 억지로 지는 십자가가 아니고 기쁨으로 감사함으로 지는 십자가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나 위하여 지신 십자가를 생각하면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어찌 기쁨으로 지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주님이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명의 십자가를 은혜로 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결 론 : 오늘의 말씀을 마칩니다.
주님은 지금 “네가 십자가를 질 수 있느냐” 고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십자가는 여호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영원한 사랑의 증표입니다.
십자가는 예수님이 나를 구원하신 구원의 상징입니다.
십자가는 주님이 피 흘리신 흔적이며 나와 천국을 연결해 주는 가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를 져야합니다.
내가 십자가를 질 때 주님께서도 내 십자가를 져 주시는 것입니다.
환난이 와도 핍박이 와도 죽음이 온다 할지라도 십자가 지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롬8: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성도 여러분!
이 시간 십자가를 바로 이해하고 주님이 내게 주시는 십자가를 기쁨과 감사함으로 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는 십자가를 바라볼 때마다, 또 무엇을 생각하기 전에, 먼저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성령이 함께 하심을 믿고 십자가의 은혜를 찬양해야 합니다.
그 십자가의 공로로 내가 구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주님의 말씀대로 믿음의 십자가, 구원의 십자가, 사명의 십자가를 짐으로 이 마지막 말세를 당한 이때에 교회에서, 가정에서, 사회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