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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사순절이 주는 영적인 의미!

본문

성경에 40이란 숫자가 여러 귀절에 나오는데, 성경에서 40이란 숫자에는 영적인 뜻이 담겨 있습니다. 이 40이란 숫자에는 어떤 뜻이 담겨 있냐 하면은, 그것은 고난과 시련이 있으나, 이후에는 영광과 기쁨이 있다고 하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류의 죄악을 벌하시기 위하여 40일의 대홍수로 죄악된 세상을 심판하셨으나(창 7장 17절), 노아에게 새 천지를 다시 보여주셨습니다. 모세는 시내 산에 올라가서 40일을 머물면서 율법을 받았습니다. 그는 죄악된 세상을 떠났던 것이고, 빛 가운데 계신 여호와 하나님을 만났던 것입니다. “모세는 구름 속으로 들어가서 산 위에 올랐으며 사십일 사십 야를 산에 있으니라”(출 24장 18절). 산은 무엇입니까 높은 산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계시는 곳을 상징적으로 말합니다. 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계시는 성산에 올라가기 위해서는 구름을 지나가야 합니다. 의심의 구름, 좌절의 구름, 절망의 구름, 시기와 질투와 고통의 구름, 이성의 구름, 지식의 구름, 욕망의 구름, 이러한 구름을 지나가야 정상에 오를 수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 정상에 이르기 전에 그만 좌초하고 맙니다. 구름을 벗어나야 하는데, 이 구름 속에서 헤매며 방황하며 신음하며 절규하고 있습니다. 구름은 지옥으로 인도할 수도 있지만, 그러나 또한 천국으로 인도하는 지름길임을 알아야 합니다. 모세는 사십 일의 고독 속에서도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는 귀한 시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12명의 첩자를 보내었는데, 그들은 40일 동안에 전 가나안 지역을 두루 돌아 다녔습니다. 그런데 오직 두 사람, 갈렙과 여호수아만이 이 가나안 땅을 저희에게 주시리라 하신 사실을 믿었습니다. 나머지 10명은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는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민 13장 33절)하면서 자포자기하게 되었습니다. 똑 같은 조건과 여건 속에서 대다수는 자신을 메뚜기로 비하하였지만, 소수의 무리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실 것임을 굳게 믿었고, 가나안과 거기 거하는 백성을 “우리 밥이라”(민 14장 9절)고 이야기하면서 담대한 삶을 살았습니다. 이처럼 40이란 숫자에는 믿지 않는 불신자들에게는 멸망이나, 믿는 자에게는 구원이라는 놀라운 사실이 담겨 있습니다. 이 결과로 출애굽 제 1세대는 이 40일을 1년으로 계산하여 40년간 광야 생활을 하면서 불순종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징벌을 받아야 했습니다.
또 선지자 엘리야는 어떠하였습니까 엘리야는 왕후 이세벨의 칼날을 무서워하여 40일을 걸어서 호렙 산에 이르렀습니다. 이 40일의 기간은 그에게 있어서 엄청난 시련의 길이요, 사람의 말로는 형용조차 할 수 없는 기나긴 시간이었습니다.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왕상 19장 4절) 이처럼 자살하기 직전에 엘리야는 여호와 하나님에게서 새 힘을 공급 받고 40일의 기간을 거쳐서 여호와 하나님의 성산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한계 상황 속에서 그는 여호와 하나님을 만났다는 것입니다. 크고 강한 바람이 칩니다. 산이 갈라집니다. 바위가 부서집니다. 그리고 나서 지진이 일고 불길이 치솟았지만, 엘리야는 이 모든 소용돌이를 겪은 후에 여호와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었던 것입니다.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왕성 19장 12절) 그렇습니다. 이 40이란 숫자에서 우리는 구원과 멸망의 지름길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예배하는 여러분의 심령이 의심과 절망과 고난과 역경에 처하였다 하여도, 주님의 사십 주 사십 야 시련을 통하여 새 힘을 얻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사순절 첫 주를 보내게 됩니다. 우리 성도는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
1. 첫째로, 믿는 자에게도 시험이 있습니다.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 성경께서 주님을 호화찬란한 세상으로 보내신 것이 아닙니다. 세상과는 절연된 그러한 공간으로 주님을 인도하셨다 했습니다. 주님은 이 광야에서 세가지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시험을 받으신 곳은 편안한 지역이 아니라, 거친 광야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서로 싸우고 이겨야 살아남는 곳이 세상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이 세상을 사랑치 말라”(요일 2장 15절) 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 시험을 받으신 시점은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심이 확증되신 직후였습니다. 즉 은혜를 받은 후에 일어난 일입니다. 첫째, 돌로 떡 덩이를 만들라고 시험합니다. 둘째,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고 시험합니다. 셋째, 사단에게 머리를 숙이면 세상 권세와 영광을 주리라고 시험합니다.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여호와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마 4장 10절) 이러한 40일의 시험에서 주님은 먹으면 없어지는 그러한 것을 신경 쓰신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의 양식을 제공해 주셨습니다. 때문에 이 양식을 취하는 사람은 누구나 다 구원을 받게 됩니다.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라”(요 6장 47절)
성도 여러분, 믿는 사람들도 이 40일의 시험을 거치게 됩니다. 은혜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헌신이 없습니다. 은혜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랑이 없습니다. 은혜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소망이 없습니다. 성령의 역사를 부인하고 마는 우를 범하게 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요 1장 16절) 바로 이 이 은혜를 받아야 헌신이 생깁니다. 순종할 분에게 순종하게 됩니다. 원수도 사랑하게 됩니다. 영생에 대한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는 시험을 통하여 더욱 밝은 영을 갖게 됩니다. 선과 악을 구분하게 되며,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사단은 이 40일의 기간에 더 많은 사람들을 멸망으로 인도하고자 하지만, 선하신 여호와 하나님은 이 40일의 기간을 복된 기간으로 삼아 주심을 굳게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2. 둘째로, 우리의 인생이 광야 인생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 광활한 사막을 지나다 보면 두려움이 일어납니다. 사람의 인기척이 사라집니다. 보호해줄 사람 하나 만나지 못합니다. 나 홀로 내 자신을 책임져야 할 상황입니다. 들짐승만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저들이 언제 나를 삼켜 먹을지 알 수 없을 지경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사단 또한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믿는 사람들을 해치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습니다. 무서운 공작이 오늘도 일어나는 이 광야를 어떻게 우리는 선한 세상이라 부를 수가 있겠습니까 이단자들은 이 세상이 선하고 복된 영원한 곳이라 유혹하고 있으나, 이 세상은 잠시 있을 곳에 불과함을 더욱 믿어야 할 것입니다. 승천하신 주님께서 다시 오신다 약속해 주셨습니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 14장 2절 이하)
그렇습니다, 여러분. 아버지가 계신 곳은 이곳 세상이 아니라, 저 하늘 나라입니다. 이 나라를 가기 위하여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굳게 믿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장 6절) 이것을 믿지 못하는 사람은 아버지를 믿지 못하기 때문에, 이 세상에 소망을 두는 관계로 그대로 망하게 됩니다. 여러분, 나는 오늘도 이 천국 소망으로 살고 있음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은 광야 인생이지만,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통하여 저 천성에 들어갈 수 있음을 굳게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3. 셋째로, 믿음으로 승리하게 될 때에 천군 천사들이 수종을 듭니다.
“천사들이 수종 들더라. ” 여러분, 광야의 시험을 거치신 주님을 섬긴 자는 사람들이 아니라 천사들이었습니다. 광야에 아무도 없는지 알았습니다. 나 홀로 덩그러니 떨어져 있는 줄 알았습니다. 나 혼자 버림을 받았는지 알았습니다. 그런데 믿음으로 승리하고 나니까, 어느덧 천군 천사가 나를 둘러 싸고 함께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것은, 죄악에 빠져 죽을 수밖에 없던 한 사람이 은혜를 받고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산 후에, 이내 시험에 빠졌으나, 이 시련을 잘 극복하게 될 때에, 나타날 귀한 역사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사람의 일은 사람이 시작하여 그 결과가 실패로 끝날지 성공으로 끝날지 알 수 없지만, 여호와 하나님의 일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시작하시며 인도하여 주시기에, 반드시 그 결과는 성공적이요 너무도 풍성한 결실을 거두게 하여 주십니다. 이러한 믿음의 기쁨은 시험을 잘 극복한 자에게만 주시는 천국의 잔치와도 같습니다. 믿음에는 고난이 있어야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더욱 분명하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평온한 온실에서는 믿음이 자라지도 않거니와 세상에서 힘을 내지 못하는 약초와도 같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하기를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님이라”(데후 3장 2절) 했습니다. 여러분, 믿음에는 인내가 필요하며 소망이 있어야 하는데, 그러기가 참 어렵다는 말씀입니다. 인내가 부족하여 가정을 버리며, 인내가 부족하여 교회를 버리며, 인내가 부족하여 친구를 버리며, 인내가 부족하여 자기 생명을 버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비록 내 생활이 어렵고, 내 믿음이 내가 보기에 너무 연약하다 하여도, 믿음으로 살게 될 때에, 주님께서 내 인생을 책임져 주심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천사들이 수종 들더라. ” 사람이 아닙니다. “천사들이 수종 들더라. ” 성령께서 나와 함께 하셔서, 악으로 치우치고자 하는 내 마음을 돌이켜 주시고, 내가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더욱 깨닫게 해 주시고, 내 마음의 끔찍한 모든 악한 것을 회개하게 해주셔서 나를 정결케 해 주실 때에, 이 천사들이 나와 함께 하고 있음을 체험하게 됩니다. 내 힘으로 되는 것이 없음을 고백하시기를 바랍니다. 비록 사단이 나를 꾀어 세상으로 데려간다 하여도, 내게 이 믿음만 있으면, 주님께서 나를 지켜주시어 영생의 나라로 인도하여 주시리라는 믿음이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5. 그러므로 사순절에 성령께서 여러분의 마음에 역사하심을 체험해야 합니다.
성령으로 인도함을 받아야 합니다. 내가 내 주인이 아닙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내 고집이 꺾이게 되고, 내 인격이 더욱 윤택하게 됩니다. 믿음이 깊어졌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것은 내 인격이 변화되었느냐 변화되지 않았느냐 하는 것으로 알게 됩니다. 말이 필요 없습니다. 억지로 꾸밀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 자기 고집으로 망한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다만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여호와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 도다”(롬 2장 5절) 빨리 고집을 버리고 회개해야 구원이 임한다는 말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 예루살렘 백성이 항상 나를 떠나 물러감은 어찜이뇨 그들이 거짓을 고집하고 돌아오기를 거절하도다”(렘 8장 5절) 거짓말을 잘 하는 사람들을 한번 살펴 보세요, 누가 거짓말을 잘 합니까 고집인 센 사람은 거짓을 쉽사리 말합니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에게 망신을 당하고 패망하게 됩니다.
성도 여러분, 성도는 끝까지 참말을 해야 합니다. 이 사순절에 오직 참된 말을 함으로써 마음이 깨끗해지는 생활을 해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복된 사순절을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마음에 깨끗함을 얻어서 여호와 하나님의 얼굴,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사모하시기를 바랍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멀리하게 만드는 내 고집을 버리고, 가장 좋은 옷을 입혀주시는 아버지시요 내 손에 가락지를 끼워주시고 내 발에 신을 신겨 주시는 아버지를 섬길 때에,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 깊게 체험하게 될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사순절은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를 반대하는 사단의 역사가 더욱 들끓는 시간입니다. 더욱 순결한 삶을 살아감으로써 사단에게서 승리를 거두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더욱 깨끗한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며 이 사순절을 승리의 시간으로 삼으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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