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사순절, 기도의 절기입니다
본문
기도는 여호와 하나님의 귀한 선물이다. 끊임없이 부딪히는 문제 앞에서 그 해결을 위해 기도의 길을 열어 주셨다. 여호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특권을 주시기 위해 주님은 십자가 위에서 살과 몸이 찢기셔야 했다. 우리가 이 특권을 누리기 위해 물과 피를 쏟아야 한다. 이 선물에 감격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어야 하며(욜 2:13) 말을 토하지 말고 마음을 토해야 한다. 아름다운 미사어구를 토하지 말고 마음 깊이 도사린 죄악을 토해내야 한다.
주의 뜻을 이루는 기도
우리가 드리는 대부분의 기도는 내 뜻을 세워 놓고 그것에 여호와 하나님이 동의하여 이루어 주시기를 바라고 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엄밀히 따져 보면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자기 중심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가 많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으로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 주님은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하고 세번이나 간절히 기도하셨다.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내 것에 대한 부단한 포기가 있어야 된다.
삶으로 드리는 기도
우리 신앙에 기도가 없어서 무능한 것이라 그 기도와 걸맞는 삶이 없기 때문에 무기력한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비난을 받는 것은 기도를 잘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삶으로 드리는 기도가 없기 때문이다. 기도는 노동이나 일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생활이어야 한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것은 호흡하는 것이 일이 아니라 삶의 부분이듯이 기도가 생활이라는 뜻이다. 성령 안에서의 삶은 기도가 생활이요 생활이 곧 기도인 것이다.
사순절 셋째 주일을 맞이하여, 오늘은 사순절이 기도의 절기임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문제에 부딪히게 됩니다. 그리고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상을 향해 끝없는 갈망을 가집니다. 이 갈망 때문에 이방 신상을 쫓아 가거나, 아무 것도 아닌 미신을 따라 가지만 거기에는 문제 해결이 없습니다.
우리가 참으로 감사해야 할 것은 저와 여러분에게 문제를 해결해 주실 분이 계십니다. 그 분이 바로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아버지십니다. 우리가 수많은 문제와 어려움을 여호와 하나님께 갖고 나아가 그것을 토로하며 의논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여호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려져 있는데 이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커다란 특권입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이 특권이 그렇게 쉽게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그것은 그리스도의 고통스러운 희생의 대가로 얻게 된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여호와 하나님께 나아가는 통로를 열어 주기 위하여 골고다 십자가 위에서 살과 몸이 찢기셔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친히 기도의 본을 보여 주셨으며 기도 외에는 그 어떤 것도 문제 해결의 능력이 못됨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사순절은 주님의 기도에 동참하는 절기요 주님의 기도를 배우는 절기이며 기도로써 승리하는 계절이 되어야 합니다. 그동안 기도에 게으르고 기도없이 살아온 나약함을 깨닫고 사순절 기간 동안 힘써 기도하는 시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에 기도없이 살아갈 수 있는 분이 있다면 오직 예수님 뿐이십니다. 그런데 주님은 기도로 일생을 사셨습니다.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께서 기도하신 내용이 열여덟번 나옵니다. 공생애 시작하시기 전 40일간 금식하시며 기도하셨고 제자를 택하시기 전 기도하셨습니다. 병자를 고치시기 전에 기도하셨고 복음을 전파하시기 위해 다음 마을로 가시기 전 기도하셨습니다.
인류 구원을 위해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는, 기도하시는 주의 모습을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십자가 상에서의 일곱 가지 말씀도 대부분 기도입니다. 원수를 용서해 달라는 기도이며 구원의 사역을 완성하시는 기도이며 영혼을 여호와 하나님의 손에 부탁하는 기도입니다.
기도없이도 승리할 수 있는 분, 기도없이도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는 분이 예수님이신데 기도로 일관하셨습니다. 새벽 미명에 기도하셨습니다. 한적한 곳을 찾아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에게 기도하라고 당부하십니다. "구하라 그러면 얻을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열릴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여호와 하나님께 구하면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요 15:17) 하셨습니다.
우리는 연약하고 무능하여 작은 문제라도 해결할 능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도 기도하지 않을때 많습니다. 기도의 통로를 열어 주셨고 기도 외에는 귀신을 쫓아 내거나 문제 해결의 길이 없음을 가르쳐 주셨는데도 기도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아무리 바빠도 기도하는 시간을 잘라 먹지는 맙시다.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께 마음껏 이야기할 수 있는 특권을 얻은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이 특권 때문에 가슴 뿌듯한 감격을 느낀 적이 얼마나 됩니까 좌절감을 느낄때, 매사가 잘 풀려지지 않을때, 근심, 걱정의 포로가 되어 한숨을 쉬고 낙담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열어 놓으신 통로에 서서 특권을 활용해야 합니다.
기도를 드리기는 드리는데 응답받지 못한 기도 생활입니까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기도를 하면서도 의심하는 기도는 응답을 기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의 이름으로 구하였으면 받은 줄을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신다는 사실에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또 하나, 기도해도 받지 못하였다면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인줄 알아야 합니다. (약 4:3) 이러한 잘못된 기도가 아닌 이상 주님은 우리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십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마 7:11)
먼저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 앞에 나의 허물과 죄악을 솔직히 고백하는 회개의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회개는 여호와 하나님의 귀한 선물을 담을 수 있는 깨끗한 그릇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기도가 간절해야 합니다.
마음을 토하는 기도여야 합니다.
요엘 선지자는 말씀하기를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여호와께로 돌아올찌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리라"(욜 2:13)고 하셨습니다.
형식적인 기도가 아니라 간절한 기도를 말합니다.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어야 합니다. 말을 토하지 말고 마음을 토하라는 뜻입니다. 아름다운 미사어구로 기도하지 말고 마음 깊이 도사린 죄악을 토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간구해야 합니다. 창자가 찢어지는 아픔을 경험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마음없이 하는 말은 사람들도 듣지 않습니다. 마음을 토하지 않는 기도에 주님이 들으시겠습니까 물에 빠져 들어가는 베드로가 뭐라고 외쳤겠습니까 '주여! 건져 주소서' 하지 않았겠습니까
우리가 마음을 토할때 주님이 들으십니다. 마음을 토하는 기도는 지겨운 노동이 아닙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 나오는 영혼의 호흡입니다. 숨쉬는 것을 일로 생각하거나 노동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호흡이 일이거나 노동이 된다면 정말 피곤해서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호흡은 일이거나 노동이 아닙니다. 삶의 일부분입니다.
마음을 토하는 기도는 기도할 마음이 있어서 하는 자연스러운 기도입니다. 마음을 토하는 기도는 마음에 평안이 옵니다. 마음을 토하는 기도는 기쁨이 옵니다. 마음을 토하는 기도는 여호와 하나님과 하나되는 영적 경험을 하게 됩니다.
주님의 뜻을 이루는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드리는 대부분의 기도는 내 뜻을 세워 놓고 그것에 여호와 하나님이 동의하여 이루어 주시기를 바라는 기도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많은 신자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말합니다. 사업을 할때, 입학 시험을 치를때, 중대한 진로를 결정할때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많이 찾습니다.
이런 때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찾는다는 것은 대부분 그 길이 안전한 길이요 성공이 보장된 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실패했을 경우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서 그렇게 되었다고 그 책임을 여호와 하나님께 전가시키곤 합니다.
그러나 엄밀하게 따져 보면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아니어서 실패한 것이 아니라 지나친 욕심, 편견과 자기 중심에서 벗어나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기 뜻대로 욕심에 끌려 일을 시작해 놓고 거기에다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찾아 보려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뜻은 내가 원하는 일이 아니고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서 하시고저 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찾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 자신을 포기하고 여호와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을 받아들일 준비를 갖추어야 합니다. 자기 포기가 없으면 여호와 하나님의 뜻은 보이지 않습니다. 자기가 죽지 않는 한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알 길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얼마나 몸부림쳐 보았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분명한 뜻을 깨닫기 위해 얼마나 간절하게, 얼마나 아픔을 겪으며 기도해 보셨습니까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며 세번이나 반복 기도하셨습니다. 기도하실때 얼굴에서 흘러내리는 땀방울이 핏방울 같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위해 핏방울 같은 땀을 쏟으시며 기도하셨습니다.
오는 3월 23일부터 제일극장에서 하는 세실 B. 데밀 감독의 예수 그리스도라는 영화를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지난 주간 시사회에 참석하여 그 영화를 보고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때 핏방울처럼 떨어지는 땀을 보았습니다. 그 모습이 제 가슴에 그대로 와 닿았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닮자, 예수님의 마음을 품자고 말을 많이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닮고 예수님의 마음을 품는다면 진정 주님이 기도하신 그 모습을 체험해 보아야 합니다. 기름을 짜듯 내 자신을 짜면서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묻고 그 여호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깨닫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버리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길은 자기를 포기하는 길입니다. 생명을 버리는 길입니다. 내 유익과 명예를 위한 길이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 가운데 말씀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뜻은 "인간의 패배요 여호와 하나님의 승리"입니다. 십자가의 사건은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인간의 모든 불의한 세력의 패배요 여호와 하나님의 승리입니다. 예수님은 여호와 하나님의 승리를 이루어 놓으신 분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뜻은 여호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 여호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미가서 6:에 보면 남왕국 유다의 멸망이 임박했을때 유다 백성들은 스스로 묻고 답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갈까 송아지를 가지고 나갈까 수양이나 기름을 가지고 나갈까 또는 맏아들을 가지고 나아가 바칠까"라고 묻습니다.
그때 여호와께서 그들을 향해 하신 말씀은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 6:8)고 하셨습니다.
공의와 사랑과 겸손은 물건이 아닙니다. 만약 물건을 원하신다면 어디에 가서 구입하여 원하는 장소에 갖다 놓으면 됩니다. 그러나 공의와 사랑과 겸손은 우리가 받아 들이고 실천해 가야 할 여호와 하나님의 인격적 요구입니다. 이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신의 욕망과 이익을 앞세워서는 안됩니다. 전적으로 포기하고 손해보고 희생되어야 합니다.
찬송가 102장의 내용대로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 이 세상 부귀와 바꿀 수 없네 / 세상 즐거움 다 버리고 세상 자랑 다 버렸네 /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 예수 밖에는 없네라는 찬송이 생활 속에서 풍겨 나오고 이 고백이 삶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는 삶으로 드리는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에 기도가 없어서 무능한 것이 아니라 그 기도와 걸맞는 삶이 없기 때문에 무기력한 것입니다. 찬송은 부르는데 기쁨이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의 고백과 삶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기도와 삶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기도고, 믿는 것은 믿는 것이고 내 삶은 별개의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비난을 받는 것은 기도를 잘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삶으로 드리는 기도가 없기 때문입니다. 영에 속한 사람은 자신이 믿는대로 행합니다. 영적인 사람은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알았을때 그대로 살려고 합니다. 육적인 고달픔과 어려움이 있어도 달게 받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했습니다. (고후 2:15) 향기는 자연스럽게 풍겨나 다른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합니다. 삶속에 기도가 있는 사람은 어디에선가 영적 향기가 은은히 풍겨납니다. 말과 행동 속에 살아가는 모습 속에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흘러 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듯 삶속에 나타난 기도가 없다면 그 영은 죽은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 안에 계시고 내가 주님 안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호흡한다면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삶으로 드리는 기도는 내 안에 주님이 계심을 확신하고 주님과 속삭이는 것입니다. 성령의 이끄심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삶으로 드리는 기도는 요청이 많지 않습니다. 감사가 있고 즐거움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의 종이 아니라 주인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께 명령할 것이 아니라 순종할 뿐입니다.
참된 기도의 자세는 마음에 없는 입술의 기도가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을 토하는 기도여야 하며 그 기도한대로 실천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순절 절기 동안 주님과 함께 기도하는 기도의 계절이 되기를 원합니다. 기도로 새 힘을 얻고 능력을 받아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승리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의 뜻을 이루는 기도
우리가 드리는 대부분의 기도는 내 뜻을 세워 놓고 그것에 여호와 하나님이 동의하여 이루어 주시기를 바라고 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엄밀히 따져 보면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자기 중심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가 많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으로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 주님은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하고 세번이나 간절히 기도하셨다.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내 것에 대한 부단한 포기가 있어야 된다.
삶으로 드리는 기도
우리 신앙에 기도가 없어서 무능한 것이라 그 기도와 걸맞는 삶이 없기 때문에 무기력한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비난을 받는 것은 기도를 잘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삶으로 드리는 기도가 없기 때문이다. 기도는 노동이나 일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생활이어야 한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것은 호흡하는 것이 일이 아니라 삶의 부분이듯이 기도가 생활이라는 뜻이다. 성령 안에서의 삶은 기도가 생활이요 생활이 곧 기도인 것이다.
사순절 셋째 주일을 맞이하여, 오늘은 사순절이 기도의 절기임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문제에 부딪히게 됩니다. 그리고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상을 향해 끝없는 갈망을 가집니다. 이 갈망 때문에 이방 신상을 쫓아 가거나, 아무 것도 아닌 미신을 따라 가지만 거기에는 문제 해결이 없습니다.
우리가 참으로 감사해야 할 것은 저와 여러분에게 문제를 해결해 주실 분이 계십니다. 그 분이 바로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아버지십니다. 우리가 수많은 문제와 어려움을 여호와 하나님께 갖고 나아가 그것을 토로하며 의논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여호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려져 있는데 이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커다란 특권입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이 특권이 그렇게 쉽게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그것은 그리스도의 고통스러운 희생의 대가로 얻게 된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여호와 하나님께 나아가는 통로를 열어 주기 위하여 골고다 십자가 위에서 살과 몸이 찢기셔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친히 기도의 본을 보여 주셨으며 기도 외에는 그 어떤 것도 문제 해결의 능력이 못됨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사순절은 주님의 기도에 동참하는 절기요 주님의 기도를 배우는 절기이며 기도로써 승리하는 계절이 되어야 합니다. 그동안 기도에 게으르고 기도없이 살아온 나약함을 깨닫고 사순절 기간 동안 힘써 기도하는 시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에 기도없이 살아갈 수 있는 분이 있다면 오직 예수님 뿐이십니다. 그런데 주님은 기도로 일생을 사셨습니다.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께서 기도하신 내용이 열여덟번 나옵니다. 공생애 시작하시기 전 40일간 금식하시며 기도하셨고 제자를 택하시기 전 기도하셨습니다. 병자를 고치시기 전에 기도하셨고 복음을 전파하시기 위해 다음 마을로 가시기 전 기도하셨습니다.
인류 구원을 위해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는, 기도하시는 주의 모습을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십자가 상에서의 일곱 가지 말씀도 대부분 기도입니다. 원수를 용서해 달라는 기도이며 구원의 사역을 완성하시는 기도이며 영혼을 여호와 하나님의 손에 부탁하는 기도입니다.
기도없이도 승리할 수 있는 분, 기도없이도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는 분이 예수님이신데 기도로 일관하셨습니다. 새벽 미명에 기도하셨습니다. 한적한 곳을 찾아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에게 기도하라고 당부하십니다. "구하라 그러면 얻을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열릴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여호와 하나님께 구하면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요 15:17) 하셨습니다.
우리는 연약하고 무능하여 작은 문제라도 해결할 능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도 기도하지 않을때 많습니다. 기도의 통로를 열어 주셨고 기도 외에는 귀신을 쫓아 내거나 문제 해결의 길이 없음을 가르쳐 주셨는데도 기도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아무리 바빠도 기도하는 시간을 잘라 먹지는 맙시다.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께 마음껏 이야기할 수 있는 특권을 얻은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이 특권 때문에 가슴 뿌듯한 감격을 느낀 적이 얼마나 됩니까 좌절감을 느낄때, 매사가 잘 풀려지지 않을때, 근심, 걱정의 포로가 되어 한숨을 쉬고 낙담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열어 놓으신 통로에 서서 특권을 활용해야 합니다.
기도를 드리기는 드리는데 응답받지 못한 기도 생활입니까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기도를 하면서도 의심하는 기도는 응답을 기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의 이름으로 구하였으면 받은 줄을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신다는 사실에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또 하나, 기도해도 받지 못하였다면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인줄 알아야 합니다. (약 4:3) 이러한 잘못된 기도가 아닌 이상 주님은 우리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십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마 7:11)
먼저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 앞에 나의 허물과 죄악을 솔직히 고백하는 회개의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회개는 여호와 하나님의 귀한 선물을 담을 수 있는 깨끗한 그릇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기도가 간절해야 합니다.
마음을 토하는 기도여야 합니다.
요엘 선지자는 말씀하기를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여호와께로 돌아올찌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리라"(욜 2:13)고 하셨습니다.
형식적인 기도가 아니라 간절한 기도를 말합니다.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어야 합니다. 말을 토하지 말고 마음을 토하라는 뜻입니다. 아름다운 미사어구로 기도하지 말고 마음 깊이 도사린 죄악을 토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간구해야 합니다. 창자가 찢어지는 아픔을 경험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마음없이 하는 말은 사람들도 듣지 않습니다. 마음을 토하지 않는 기도에 주님이 들으시겠습니까 물에 빠져 들어가는 베드로가 뭐라고 외쳤겠습니까 '주여! 건져 주소서' 하지 않았겠습니까
우리가 마음을 토할때 주님이 들으십니다. 마음을 토하는 기도는 지겨운 노동이 아닙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 나오는 영혼의 호흡입니다. 숨쉬는 것을 일로 생각하거나 노동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호흡이 일이거나 노동이 된다면 정말 피곤해서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호흡은 일이거나 노동이 아닙니다. 삶의 일부분입니다.
마음을 토하는 기도는 기도할 마음이 있어서 하는 자연스러운 기도입니다. 마음을 토하는 기도는 마음에 평안이 옵니다. 마음을 토하는 기도는 기쁨이 옵니다. 마음을 토하는 기도는 여호와 하나님과 하나되는 영적 경험을 하게 됩니다.
주님의 뜻을 이루는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드리는 대부분의 기도는 내 뜻을 세워 놓고 그것에 여호와 하나님이 동의하여 이루어 주시기를 바라는 기도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많은 신자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말합니다. 사업을 할때, 입학 시험을 치를때, 중대한 진로를 결정할때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많이 찾습니다.
이런 때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찾는다는 것은 대부분 그 길이 안전한 길이요 성공이 보장된 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실패했을 경우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서 그렇게 되었다고 그 책임을 여호와 하나님께 전가시키곤 합니다.
그러나 엄밀하게 따져 보면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아니어서 실패한 것이 아니라 지나친 욕심, 편견과 자기 중심에서 벗어나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기 뜻대로 욕심에 끌려 일을 시작해 놓고 거기에다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찾아 보려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뜻은 내가 원하는 일이 아니고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서 하시고저 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찾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 자신을 포기하고 여호와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을 받아들일 준비를 갖추어야 합니다. 자기 포기가 없으면 여호와 하나님의 뜻은 보이지 않습니다. 자기가 죽지 않는 한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알 길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얼마나 몸부림쳐 보았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분명한 뜻을 깨닫기 위해 얼마나 간절하게, 얼마나 아픔을 겪으며 기도해 보셨습니까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며 세번이나 반복 기도하셨습니다. 기도하실때 얼굴에서 흘러내리는 땀방울이 핏방울 같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위해 핏방울 같은 땀을 쏟으시며 기도하셨습니다.
오는 3월 23일부터 제일극장에서 하는 세실 B. 데밀 감독의 예수 그리스도라는 영화를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지난 주간 시사회에 참석하여 그 영화를 보고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때 핏방울처럼 떨어지는 땀을 보았습니다. 그 모습이 제 가슴에 그대로 와 닿았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닮자, 예수님의 마음을 품자고 말을 많이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닮고 예수님의 마음을 품는다면 진정 주님이 기도하신 그 모습을 체험해 보아야 합니다. 기름을 짜듯 내 자신을 짜면서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묻고 그 여호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깨닫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버리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길은 자기를 포기하는 길입니다. 생명을 버리는 길입니다. 내 유익과 명예를 위한 길이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 가운데 말씀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뜻은 "인간의 패배요 여호와 하나님의 승리"입니다. 십자가의 사건은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인간의 모든 불의한 세력의 패배요 여호와 하나님의 승리입니다. 예수님은 여호와 하나님의 승리를 이루어 놓으신 분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뜻은 여호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 여호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미가서 6:에 보면 남왕국 유다의 멸망이 임박했을때 유다 백성들은 스스로 묻고 답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갈까 송아지를 가지고 나갈까 수양이나 기름을 가지고 나갈까 또는 맏아들을 가지고 나아가 바칠까"라고 묻습니다.
그때 여호와께서 그들을 향해 하신 말씀은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 6:8)고 하셨습니다.
공의와 사랑과 겸손은 물건이 아닙니다. 만약 물건을 원하신다면 어디에 가서 구입하여 원하는 장소에 갖다 놓으면 됩니다. 그러나 공의와 사랑과 겸손은 우리가 받아 들이고 실천해 가야 할 여호와 하나님의 인격적 요구입니다. 이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신의 욕망과 이익을 앞세워서는 안됩니다. 전적으로 포기하고 손해보고 희생되어야 합니다.
찬송가 102장의 내용대로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 이 세상 부귀와 바꿀 수 없네 / 세상 즐거움 다 버리고 세상 자랑 다 버렸네 /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 예수 밖에는 없네라는 찬송이 생활 속에서 풍겨 나오고 이 고백이 삶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는 삶으로 드리는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에 기도가 없어서 무능한 것이 아니라 그 기도와 걸맞는 삶이 없기 때문에 무기력한 것입니다. 찬송은 부르는데 기쁨이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의 고백과 삶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기도와 삶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기도고, 믿는 것은 믿는 것이고 내 삶은 별개의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비난을 받는 것은 기도를 잘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삶으로 드리는 기도가 없기 때문입니다. 영에 속한 사람은 자신이 믿는대로 행합니다. 영적인 사람은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알았을때 그대로 살려고 합니다. 육적인 고달픔과 어려움이 있어도 달게 받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했습니다. (고후 2:15) 향기는 자연스럽게 풍겨나 다른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합니다. 삶속에 기도가 있는 사람은 어디에선가 영적 향기가 은은히 풍겨납니다. 말과 행동 속에 살아가는 모습 속에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흘러 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듯 삶속에 나타난 기도가 없다면 그 영은 죽은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 안에 계시고 내가 주님 안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호흡한다면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삶으로 드리는 기도는 내 안에 주님이 계심을 확신하고 주님과 속삭이는 것입니다. 성령의 이끄심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삶으로 드리는 기도는 요청이 많지 않습니다. 감사가 있고 즐거움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의 종이 아니라 주인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께 명령할 것이 아니라 순종할 뿐입니다.
참된 기도의 자세는 마음에 없는 입술의 기도가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을 토하는 기도여야 하며 그 기도한대로 실천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순절 절기 동안 주님과 함께 기도하는 기도의 계절이 되기를 원합니다. 기도로 새 힘을 얻고 능력을 받아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승리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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