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예수님의 수난 예고와 제자들의 반응 (2)
본문
대구 상인동 가스폭팔 사고가 난 후에 영남중학교에서 합동 장례식이 있었습니다. 그때 영남중학교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많이 희생의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영남중학교 출신이었기에 하도 안타까워 참여를 했었는데, 그때 아주 마음 아팠던 기억은 그때 희생된 한 선생님의 어린 자녀가 아주 장난기 어린 모습으로 아버지의 영정을 들고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 옆에 희생자의 아내이자 그 아이의 어머니는 오열을 터트리는데, 그 아이는 아버지의 죽음의 의미가 무엇인지, 아버지를 잃은 슬픔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영정을 들고 가는 것이었습니다. 저를 비롯한 그곳에 온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면서 더욱 마음 아파했었습니다.
물론 그 아이는 어리고, 아직 철이 없기에, 그러는 아이를 잘못되었다고 혹은 불효 막심한 아이라고 비난할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행동이 성인이 그랬다면 비난이 빗발칠 것이고, 세상에 저런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욕할 것입니다. 사실 이보다 더 심한 일이 있어 비난받는 성인들이 실제로 있습니다. 곧 임종직전에 있는 부친을 옆에 두고 재산싸움을 한다든지, 장례를 마치고 부의금 서로 많이 차지하려고 싸우는 형제들의 경우입니다. 도무지 분위기 파악이 안 되는 사람들입니다. 한심하기 짝이 없고, 비난받아 싸고, 욕먹어 싼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예수 님과 예수 님의 제자들을 만나는데, 그 제자들이 글쎄 분위기 파악하지 못하고 비난받을 짓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내가 사람들의 손에 넘기워져서 죽임을 당하고 죽은지 삼일만에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을 두 번째로 예고를 하셨지만 그들은 누가 크냐 누가 높으냐 누가 높은 자리 차지할 것인가로 서로 다투고 있었으니 비난받아 마땅치 않습니까
30절 "그 곳을 떠나 갈릴리 가운데로 지날새" 33절 "가버나움에 이르러 집에 계실새 제자들에게 물으시되 너희가 길에서(오던 길에서) 서로 토론 한 것이 무엇이냐"
그 오던 길은 예수께서 수난 받을 실 것과 죽음과 부할을 말씀하시면서 오던 길이었습니다. 34절을 보세요. "그들이 잠잠하니 이는 길에서 서로 누가 크냐. 하고 쟁론하였음이라. " 제자들이 예수 님은 심각하게 고난을 말씀하시고 죽음을 말씀하시는데 누가 크냐 다투었으니 입이 백 개라도 어찌 할 말이 있겠습니까!
예수 님의 제자가 생각하는 것이 예수 님과 다르고, 가고자 하는 길이 예수 님과 다르고, 의도한 바가 다르니, 이 어찌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있습니까
2000년이 지난 지금 예수 님의 제자들은 어떻습니까 즉 우리는 어떤가 이 말씀입니다.
예수 님과 생각이 같고, 예수 님과 의도하는 바가 같고, 가는 길이 같습니까 전혀 엉뚱한 생각과 의도와 길을 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사순절 두 번째 주간에 우리의 모습을 함께 점검하고 우리가 제자로서 무엇을 어떻게 개선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 봅시다.
우선 그 당시에 제자들의 문제점를 살펴봅시다.
첫째는 예수 님의 의도하신 바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깨닫지 못하니 전혀 엉뚱한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도저히 해서는 안 되는 자리다툼을 했습니다.
제자들의 깨닫지 못함에는 몇 가지 이유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중에 가장 큰 이유는 성경에 대해서 너무 무지한 탓입니다.
이미 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해서 구세주가 오시면 고난을 받으시고, 모든 사람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킬실 것에 대해 수 차례 예언한 것을 기록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시편118:22 "건축자의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사야53장에는 아주 상세하게 고난받으심과 죽으심에 대해서 예언했습니다. 사람들에게 멸시받아 버림받고, 찔리고 상하고,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의 모든 죄악을 다 담당시키실 것을 상세하게 예언하였고, 은 삼십에 팔리실 것(스가랴11:12), 강도와 못 박히시고, 그 옷을 제비뽑아 나눌 것(시편22:15-18), 찔리심(스가랴12:10), 부자의 무덤에 장사지낼 것까지(이사야53:9) 다 예언이 되어있었습니다.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시작하면 제일 중요한 것은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아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에는 경험보다 말씀이 우선하고, 기적보다 말씀이 우선하고, 간증보다 말씀이 우선합니다. 특히 자기의 사고방식과 자기논리보다 말씀이 우선합니다.
가끔 성도 님들이 신앙생활에 대해서 불평 불만을 털어놓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신앙생활이 말씀에 근거하지 않고, 자기의 사고방식이나 세상적인 사고방식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성경을 바르게 알고 있었다면, 조금만 눈여겨보고, 가르쳐 줄 때 엉뚱한 짓 하지 않았더라면 예수 님 마음 아프게 하는 행동은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미 다 예고 된 사실을 예수께서 말씀하셨는데, 그것도 고난과 죽음을 말씀하시면 좀 진지하기라도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얼마나 괴로우십니까' 라는 표정이라도 지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했습니까 누가 크냐 누가 높은 자리 차지할까 다투기를 했으니 예수 님 마음이 오죽했겠습니까!
기독교 신앙은 절대적인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는 것이지 도 닦아서 터득하는 것 아닙니다. 어떤 종교에서처럼 아들 낳기 위해, 사업 성공하기 의해, 소원성취를 위해 천배(千拜), 혹은 만배하는 그런 종교가 아닙니다. 교회 백번 출석하고, 천번 출석해서 소원을 이루는 공덕사상의 종교가 아니라, 철저하게 말씀에 근거하고, 말씀에 따라서 행동하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바울은 말하기를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빌립보서3:8)
또 "우리가 다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리니"(에베소서4:13)
예수를 믿었으면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통해 예수를 알기 위해 힘쓰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당신은 예수 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예수 님을 기쁘시게 하면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잠언16:7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로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사이가 좋지 않던 부부사이, 고부(姑婦)간, 이웃간이 좋아집니다. 사업하는 사람들은 거래처가 많아집니다. 세일즈맨은 고객이 많아집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깨닫지 못함에 두 번째 이유는 그들에게 출세라고 하는 소위 높은 자리에 너무 집착하고 있었습니다.
사람이 어떤 일에 집착하면 다른 것은 눈에 보이지 않고, 듣기지도 않습니다. 제자들은 줄곧 관심이 예수 님이 왕권을 회복하시면 12명의 제자들 중에 과연 누구를 조선시대로 말하면 우의정과 좌의정을 할 것인가 지금으로 말하면 누가 국무총리가 되며, 누가 비서실장이 되느냐 있었으니 예수 님이 고난받고 죽는 다는 얘기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고 들어와도 거슬리게 들린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인이 너무 세상 영광에 집착하면, 예수 님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교회의 문제를 일으킵니다. 목회자를 괴롭힙니다. 세상 영광이 좋은 것입니다. 그리고 취하십시오. 그러나 거기에 집착하지 마십시오.
그리스도인의 관심은 먹든지 마시든지 죽든지 살든지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 돌려 드리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제자들의 문제점은 묻기를 두려워했습니다.
학생들이 공부 잘 하려면 모르는 것은 즉시 질문하여 알고 넘어가는 것입니다. 모르는데 그냥 넘어가면 지식의 향상이 없습니다.
기독교 신앙의 장점은 쌍방향 신앙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성도들이 여호와 하나님께 응답하며, 묻기도 하고 요구하기도 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니 무조건 해! 잔소리가 많아!' 그러는 것이 기독교 신앙이 아닙니다. 궁금하면 묻고, 의심나면 다시 볼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 놓았습니다.
예수께서 유년시절에 성전에 올라가셨다가 그만 부모님의 손을 놓쳐 버려 서로 이산가족이 되었을 때 사흘만에 성전 안에서 찾았는데, 그때 소년 예수는 성경 선생님들과 앉아서 듣기도 하시고 묻기도 하면서 있는 것이 아닙니까!
아니라고 바락바락 우기지도 말고, 뭐 그런 것을 시키시느냐고 원망도 하지 말고, 안 된다고 불평불만을 터트리다가 돌아서지 말고 여호와 하나님께 질문하세요.
32절에 "제자들은 묻기도 두려워하더라" 두려운 여호와 하나님께 묻지 마시고 사랑의 여호와 하나님께 물으세요. 목사에게도 물으세요. 이해 안 되는 일이 있거든 물으세요. 기도한번 안 해보고 혼자 다 판단하지 마세요.
우리는 다 예수로 말미암아 죄 사함 받고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 되었으니, 이제는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삶을 사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지금 우리를 통해서 하시고자 하는 일이 무엇인지 깨닫고 거기에 반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시대에 주시는 주님의 메시지에 열심히 경청하고, 이해 안되고, 뭔가 석연찮으면 기도라는 좋은 방법이 있으니 묻고 또 물으시기 바랍니다. 목사가 여러분이 궁금하여 물을 때 대답하라고 있는 것 아닙니까 물으세요. 그래서 주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일에 더 잘 쓰여지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물론 그 아이는 어리고, 아직 철이 없기에, 그러는 아이를 잘못되었다고 혹은 불효 막심한 아이라고 비난할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행동이 성인이 그랬다면 비난이 빗발칠 것이고, 세상에 저런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욕할 것입니다. 사실 이보다 더 심한 일이 있어 비난받는 성인들이 실제로 있습니다. 곧 임종직전에 있는 부친을 옆에 두고 재산싸움을 한다든지, 장례를 마치고 부의금 서로 많이 차지하려고 싸우는 형제들의 경우입니다. 도무지 분위기 파악이 안 되는 사람들입니다. 한심하기 짝이 없고, 비난받아 싸고, 욕먹어 싼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예수 님과 예수 님의 제자들을 만나는데, 그 제자들이 글쎄 분위기 파악하지 못하고 비난받을 짓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내가 사람들의 손에 넘기워져서 죽임을 당하고 죽은지 삼일만에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을 두 번째로 예고를 하셨지만 그들은 누가 크냐 누가 높으냐 누가 높은 자리 차지할 것인가로 서로 다투고 있었으니 비난받아 마땅치 않습니까
30절 "그 곳을 떠나 갈릴리 가운데로 지날새" 33절 "가버나움에 이르러 집에 계실새 제자들에게 물으시되 너희가 길에서(오던 길에서) 서로 토론 한 것이 무엇이냐"
그 오던 길은 예수께서 수난 받을 실 것과 죽음과 부할을 말씀하시면서 오던 길이었습니다. 34절을 보세요. "그들이 잠잠하니 이는 길에서 서로 누가 크냐. 하고 쟁론하였음이라. " 제자들이 예수 님은 심각하게 고난을 말씀하시고 죽음을 말씀하시는데 누가 크냐 다투었으니 입이 백 개라도 어찌 할 말이 있겠습니까!
예수 님의 제자가 생각하는 것이 예수 님과 다르고, 가고자 하는 길이 예수 님과 다르고, 의도한 바가 다르니, 이 어찌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있습니까
2000년이 지난 지금 예수 님의 제자들은 어떻습니까 즉 우리는 어떤가 이 말씀입니다.
예수 님과 생각이 같고, 예수 님과 의도하는 바가 같고, 가는 길이 같습니까 전혀 엉뚱한 생각과 의도와 길을 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사순절 두 번째 주간에 우리의 모습을 함께 점검하고 우리가 제자로서 무엇을 어떻게 개선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 봅시다.
우선 그 당시에 제자들의 문제점를 살펴봅시다.
첫째는 예수 님의 의도하신 바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깨닫지 못하니 전혀 엉뚱한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도저히 해서는 안 되는 자리다툼을 했습니다.
제자들의 깨닫지 못함에는 몇 가지 이유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중에 가장 큰 이유는 성경에 대해서 너무 무지한 탓입니다.
이미 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해서 구세주가 오시면 고난을 받으시고, 모든 사람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킬실 것에 대해 수 차례 예언한 것을 기록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시편118:22 "건축자의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사야53장에는 아주 상세하게 고난받으심과 죽으심에 대해서 예언했습니다. 사람들에게 멸시받아 버림받고, 찔리고 상하고,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의 모든 죄악을 다 담당시키실 것을 상세하게 예언하였고, 은 삼십에 팔리실 것(스가랴11:12), 강도와 못 박히시고, 그 옷을 제비뽑아 나눌 것(시편22:15-18), 찔리심(스가랴12:10), 부자의 무덤에 장사지낼 것까지(이사야53:9) 다 예언이 되어있었습니다.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시작하면 제일 중요한 것은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아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에는 경험보다 말씀이 우선하고, 기적보다 말씀이 우선하고, 간증보다 말씀이 우선합니다. 특히 자기의 사고방식과 자기논리보다 말씀이 우선합니다.
가끔 성도 님들이 신앙생활에 대해서 불평 불만을 털어놓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신앙생활이 말씀에 근거하지 않고, 자기의 사고방식이나 세상적인 사고방식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성경을 바르게 알고 있었다면, 조금만 눈여겨보고, 가르쳐 줄 때 엉뚱한 짓 하지 않았더라면 예수 님 마음 아프게 하는 행동은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미 다 예고 된 사실을 예수께서 말씀하셨는데, 그것도 고난과 죽음을 말씀하시면 좀 진지하기라도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얼마나 괴로우십니까' 라는 표정이라도 지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했습니까 누가 크냐 누가 높은 자리 차지할까 다투기를 했으니 예수 님 마음이 오죽했겠습니까!
기독교 신앙은 절대적인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는 것이지 도 닦아서 터득하는 것 아닙니다. 어떤 종교에서처럼 아들 낳기 위해, 사업 성공하기 의해, 소원성취를 위해 천배(千拜), 혹은 만배하는 그런 종교가 아닙니다. 교회 백번 출석하고, 천번 출석해서 소원을 이루는 공덕사상의 종교가 아니라, 철저하게 말씀에 근거하고, 말씀에 따라서 행동하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바울은 말하기를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빌립보서3:8)
또 "우리가 다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리니"(에베소서4:13)
예수를 믿었으면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통해 예수를 알기 위해 힘쓰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당신은 예수 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예수 님을 기쁘시게 하면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잠언16:7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로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사이가 좋지 않던 부부사이, 고부(姑婦)간, 이웃간이 좋아집니다. 사업하는 사람들은 거래처가 많아집니다. 세일즈맨은 고객이 많아집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깨닫지 못함에 두 번째 이유는 그들에게 출세라고 하는 소위 높은 자리에 너무 집착하고 있었습니다.
사람이 어떤 일에 집착하면 다른 것은 눈에 보이지 않고, 듣기지도 않습니다. 제자들은 줄곧 관심이 예수 님이 왕권을 회복하시면 12명의 제자들 중에 과연 누구를 조선시대로 말하면 우의정과 좌의정을 할 것인가 지금으로 말하면 누가 국무총리가 되며, 누가 비서실장이 되느냐 있었으니 예수 님이 고난받고 죽는 다는 얘기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고 들어와도 거슬리게 들린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인이 너무 세상 영광에 집착하면, 예수 님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교회의 문제를 일으킵니다. 목회자를 괴롭힙니다. 세상 영광이 좋은 것입니다. 그리고 취하십시오. 그러나 거기에 집착하지 마십시오.
그리스도인의 관심은 먹든지 마시든지 죽든지 살든지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 돌려 드리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제자들의 문제점은 묻기를 두려워했습니다.
학생들이 공부 잘 하려면 모르는 것은 즉시 질문하여 알고 넘어가는 것입니다. 모르는데 그냥 넘어가면 지식의 향상이 없습니다.
기독교 신앙의 장점은 쌍방향 신앙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성도들이 여호와 하나님께 응답하며, 묻기도 하고 요구하기도 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니 무조건 해! 잔소리가 많아!' 그러는 것이 기독교 신앙이 아닙니다. 궁금하면 묻고, 의심나면 다시 볼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 놓았습니다.
예수께서 유년시절에 성전에 올라가셨다가 그만 부모님의 손을 놓쳐 버려 서로 이산가족이 되었을 때 사흘만에 성전 안에서 찾았는데, 그때 소년 예수는 성경 선생님들과 앉아서 듣기도 하시고 묻기도 하면서 있는 것이 아닙니까!
아니라고 바락바락 우기지도 말고, 뭐 그런 것을 시키시느냐고 원망도 하지 말고, 안 된다고 불평불만을 터트리다가 돌아서지 말고 여호와 하나님께 질문하세요.
32절에 "제자들은 묻기도 두려워하더라" 두려운 여호와 하나님께 묻지 마시고 사랑의 여호와 하나님께 물으세요. 목사에게도 물으세요. 이해 안 되는 일이 있거든 물으세요. 기도한번 안 해보고 혼자 다 판단하지 마세요.
우리는 다 예수로 말미암아 죄 사함 받고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 되었으니, 이제는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삶을 사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지금 우리를 통해서 하시고자 하는 일이 무엇인지 깨닫고 거기에 반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시대에 주시는 주님의 메시지에 열심히 경청하고, 이해 안되고, 뭔가 석연찮으면 기도라는 좋은 방법이 있으니 묻고 또 물으시기 바랍니다. 목사가 여러분이 궁금하여 물을 때 대답하라고 있는 것 아닙니까 물으세요. 그래서 주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일에 더 잘 쓰여지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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