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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사순절입니다

본문

사순절(旬節)입니다. '사순절'이란 말은 무슨 뜻인가 하면, '순(旬)'이란 단어가 '열'을 한 단위로 셀 때 쓰는 말로, '칠순'하면 70을 가리키는 것과 같이 '사순'하면 40일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참회 수요일'에서부터 부활주일 앞의 6주간에서 6번의 주일을 뺀 40일을 사순절이라 합니다.
왜 40일 일까요 5세기경에 교회는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시험을 받기 전 40일간 금식하셨던 것에 맞춰 40일로 정하였습니다.
사순절이 되면 각 교회에서는 신앙 훈련으로 철야기도, 금식기도, 특별 새벽 기도, 성경 읽기 등등을 하는데 이는 초기 기독교에서부터 발전되어온 사순절 관행들입니다.
이러한 사순절의 초점은 신앙 교육과 부활절의 세례 준비와 회개와 변화를 통한 갱신에 있었습니다. 다소 풀어져 살던 성도들이 이 기간에 자기 생활을 돌아보며, 경건의 훈련으로 새로운 성도의 삶을 회복해 감에 그 의의가 있습니다.
그러기에 사순절은 신앙의 유익을 위해 만든 아주 좋은 절기요 은혜 받는 기간입니다. 신앙의 선배들은 믿음이 변질되고 세속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신앙 프로그램으로 이 사순절을 매우 훌륭한 절기로 만든 것입니다. 이 기간 동안만이라도 초대 교회 성도들이 했던 대로 따라가기만 하여도 우리의 신앙은 세속화되지 않고 믿음이 자랄 줄로 믿습니다.
2. 자, 그러면 이번 사순절, 우리는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할까요 참회하며 살아야 합니다. 늘 자기는 옳다고 여기며 살던 것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기도에 힘쓰며 살아야 합니다. 온통 세상에 관심 갖고 살았으나 고요한 여호와 하나님께로 향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살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내게 뭘 원하시는 지, 나는 이 현실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사순절의 경건 생활을 통 털어 오늘 본문은 한 마디로 이렇게 권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성령을 따라 행하십시오!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이라면 이 사순절 절기 동안만이라도 육체의 소욕, 육체의 욕망대로 살기를 원치 않습니다. 다른 때에는 몰라도 사순절 절기 동안이라도 평상시와 다르게 살고픈 데, 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려면 우리는 무엇보다 성령을 따라 가야 하고, 성령 안에서 행해야 합니다.
17절을 보십시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
육체의 소욕, 욕망은 성령을 거스르고, 반면에 성령은 육체의 소욕을 거스른답니다. 육체는 이렇게 하고 싶고, 성령은 저렇게 하고 싶으니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상태를 이룬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처음으로 교회에 갔습니다. 기도 시간이 되어 기도를 해야 하는데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 하는 지 몰랐습니다. 눈을 감고 하는 건지, 뜨고 하는 건지 잘 모르겠더랍니다. 그래서 한 눈은 감고 한 눈은 뜨고 했답니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상태, 그것이 그리스도인이면서도 육체의 소욕을 따라 사는 이의 모습입니다. 세상 사람들이야 성령도 없으니 그런 고민을 할 필요도 없지만, 우리 그리스도인은 분명 성령께서 내주(內住) 하시기에 성령의 감동과 지시가 있는데, 육체는 그걸 원하지 않고 저걸 원하기에 이런 사람은 늘 갈등하며 어정쩡한 생활을 해 갑니다. 세상과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에 양다리를 걸치고 필요에 따라 이랬다 저랬다 합니다.
둘 중에 하나를 택하십시오. 그 둘 사이에 왔다 갔다 하다가는 정말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한번도 이루지 못합니다. 육체는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릅니다. 성도 여러분, 이번 사순절에는 이 갈등에서 벗어나기 바랍니다. 과감히 성령을 따라 행하십시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십시오. 온전한 성도로 설 것입니다!
3. 그렇다면 육체의 일은 뭔가요 성경이 그토록 경계하는, 성령을 거스르는 육체의 일이 뭔가요 성령을 따르려는 우리의 발목을 잡는 육체의 일은 뭔가요
19절부터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하며 그 내용들이 나열됩니다. 크게 넷으로 구분되는 데 먼저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입니다. 이는 성적인 죄악들입니다. 성적으로 깨끗하십시오. 성적으로 추해지면 성령으로부터 멀어집니다.
얼마 전 유럽의 유학생 신앙 사경회에서 있었던 영국에 사는 어느 유명한 장로님의 간증 테이프를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불교 골수분자였던 이 분이 마침내 런던에서 예수를 영접하고,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주일 성수는 물론이거니와 모든 예배에 다 참석하고, 구역 예배조차 열심히 참여하여 성도의 교제를 돈독히 하며, 믿음 생활에 부족함이 없었답니다.
그런데 집사 시절에 이 분이 사업상 출장 갈 기회가 많았는데, 가족과 멀리 떨어져 혼자가 되면 외로운 낯선 도시에서 밤이면 반드시 즐기는 것이 있었답니다. '포르노 영화', '포르노 잡지'였습니다. 이 분은 그것들을 즐기면서 스스로 생각하기에 '이것은 개인적인 취향이지, 죄를 짓는 것은 아니다'했답니다. 자기 혼자 즐기는 거지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출장만 가면 밤에는 늘 혼자 포르노를 즐겼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출장 길에 나서면, 자기 집 식구 중에 누군가가 늘 심각하게 아픈 것이었습니다. 자기가 집에 돌아오면 언제 그랬느냐 싶게 싸악 낫고, 출장만 나가면 생각지 않은 이들이 아픈 것이었습니다. 이 분은 그렇게 몇 번 일을 당하고 나서 '주님, 왜 내가 출장만 나가면 가족들이 아픕니까'하고 기도하다가 성령의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너 때문이다. 네가 출장만 가면 내 마음은 마치 네 가족처럼 아프단다' 하며 자기가 어두컴컴한 포르노 상영관에 가 앉아 있는 모습이 기도 중에 떠올랐습니다.
이 때 이 분은 크게 깨달았다고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내가 성결키를 원하신다!' 그저 예수 믿고 구원받은 정도가 아니라 이 세상에서 성결하기를 여호와 하나님께서 원하신다는 것을 깨닫고 발길을 뚝 끊었다고 합니다.
성적으로 깨끗지 못할 때 우리는 성령을 따르기 힘듭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가 성결키 원하십니다!
 둘째로, '우상 숭배와 주술'이 있습니다. 우상 숭배는 여호와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의지하고 숭배하는 것입니다. 반드시 절간에 가서 절하고 시주해야만 우상 숭배하는 게 아닙니다. 살면서 여호와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는 것, 더 사랑하는 것, 그게 우리 신앙의 세계에선 우상 숭배입니다.
여러분, 자녀를 사랑하십시오. 그러나 그 자녀를 여호와 하나님 보다 더 앞세우지 마십시오. 꿈과 비전을 위해 열심히 사십시오. 그러나 그 꿈과 비전도 여호와 하나님 보다 더 중시하지 마십시오. 재물을 얻기 위해 열심히 사십시오. 그러나 그 재물을 여호와 하나님보다 더 좋아하지 마십시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여호와 하나님보다 더 앞서갈 때, 더 의지하고, 더 열심 내고, 더 사랑할 때 그것들은 우상으로 변질될 것입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 우상을 치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정말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 받는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라면 말입니다. 여전히 멸망의 자식이요, 패역의 자녀라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렇게까지 하실 일이 없지만, 예수를 영접하여 온전한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 성령께서 내주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 앞에 우상은 설자리가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고 사랑하고 열심 내는 것들을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멸하실 것입니다. 왜 그건 우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주술, 점 보러 다니고, 무당 집에 기웃거리고, 비정상적인 것을 더 좋아하는 그런 생활, 역시 여호와 하나님께 죄짓는 것입니다. 언젠가 어느 점쟁이가 TV 앞에 나와 인터뷰하는데 손님이 많다는 것을 자랑하며 붙이는 말이 '교회 다니는 사람들도 많이 옵니다'합니다. 이 얼마나 여호와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까!
심심풀이로, 믿지 않고 그저 즐기는 것뿐이라고, 친구가 가는데 동행한 것뿐이라고 그게 다 여호와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행위입니다. 미래는 정해진 바가 없습니다. 나의 삶의 태도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 속에 얼마든지 미래는 달라집니다. 이런 것은 모두 여호와 하나님께 범죄 하는 행위들로 육체의 소욕을 따라가는 생활입니다. 이런 것에 익숙해 있는 생활은 성령을 따르기 힘듭니다. 여기에서 돌아서십시오!
 셋째로,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가 있습니다. 이것들은 모두 서로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마음속에 원수 맺음으로 서서히 그렇게 발전되어 가는 것들입니다. 마음속에 원한을 가지니 분쟁이 생기고, 이 분쟁은 더욱 더 시기심으로 나아가고, 마침내 참지 못하고 상대방의 사소한 것에도 분을 내게 되고, 이것으로도 성이 차지 않아 자기편을 끌어 모으며 당을 짓고, 결국은 공동체 안에서 분열을 가져오며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되는 이단으로 발전하고, 서로 투기하는 지경으로 나아갑니다.
이런 죄를 짓지 않으려면 맨 처음, 시작 단계인 마음속으로 원수 맺는 일, 원한을 갖지 말아야 합니다. 웬만하면 사랑으로 덮어주어야 합니다. 우리네 삶의 모든 근본 치료책은 사랑이 아닙니까! '나를 무시해 너 어디 두고보자'하는 마음은 죄입니다. 이것이 결국 사랑의 공동체를 파괴하는 길로 나아갑니다.
벧전 4:8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육체의 소욕은 결국 용서하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고 제 감정대로, 제 분풀이로 나아가 성령을 따르지 못하게 합니다. 원한을 품고, 시기심과 투기가 가득하고, 분노와 마음이 가득한 데 어떻게 성령을 따를 수 있겠습니까 감정이 격해지고, 마음속에 격랑이 일 때에 주님의 사랑을 기억합시다.
넷째로,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로 자신에 대해 무절제한 죄악들이 있습니다. 술 취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방탕함으로 이어져 결국 성령의 거룩케 하심을 상실합니다. 술에 취해 횡설수설하고, 비틀비틀 대는 모습, 사순절의 그리스도인의 모습은 아닙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번 사순절에 이러한 육신의 소욕을 따르는 모습들을 버리립시오! 철저하게 버리십시오! 어떻게 버릴 수 있을까요
성령을 따르십시오. 성령의 감동에 순종하십시오. 성령을 따라 행하십시오! 기도 많이 하고, 성령을 따라 행하지 않는다면 그 많은 기도가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성경 많이 읽고, 많은 깨달음을 가졌으나 성령을 따라 구체적으로 행하지 않으면 그건 모두 길가에 떨어진 씨앗들입니다. 성령을 따라 행하십시오. 늘 내 안에서 감동을 주시는 성령을 따라 가십시오!
4.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24절,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런데 은혜 받았을 때에는 이 사실이 너무 고마워 눈물을 흘리던 이가, 며칠 지나면 다시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을 떼어냅니다. 마치 그것들이 죽으면 너무 아쉬운 것 같아 다시 십자가에서 떼어내어 정욕을 위하고, 탐심에 취하여 육체의 소욕을 따라갑니다.
아닙니다! 이번 사순절, 아직까지 자신에게 이런 육체의 소욕을 따라가려는 성향이 있거들랑 경건의 훈련으로 성령을 따라 행하십시오. 여러분 나름대로 이 사순절 기간을 통하여 영으로 육을 죽이는 경건의 훈련이 있기를 바랍니다. 성경을 읽으며, 공부를 하며, 기도에 힘쓰고, 잘못된 생활을 늘 회개하며, 육체의 소욕보다 성령을 따라 행하는 용기 있는 삶을 통하여 축복의 부활에 다함께 참여할 수 있는 거룩한 백성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성령을 통해 육체의 소욕과 욕망에서 승리한 사람으로 갈 2:20절에서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이 고백이 사순절에 여러분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 내가 산 것 아니요
오직 내 안에 예수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자기 몸 버리신
예수 위해 산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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