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사순절
본문
교회는 지난 수요일부터 부활절 전날까지 사순절이라는 수난절을 지나게 됩니다. 교회는 예수님을 중심으로 해서 그의 탄생과 수난과 죽으심과 부활과 그리고 그의 생애를 기억하는 여러 가지 절기를 이어가면서 한해씩 지나가게 됩니다. 성탄절, 수난절, 부활절, 오순절 감사절 성탄절 이렇게 주님을 중심으로 계속 캘린더가 이어져 가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은 주님을 중심으로 살아가야 될 성도들의 삶을 인도하는 캘린더이고 교회를 중심으로 살아가야 될 성도들의 아름다운 발걸음을 정리한 것입니다. 그래서 늘 교회를 중심으로 주님을 중심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를 중심으로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주님 중심으로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순절에 주님의 십자가와 나는 어떤 관계가 있으며, 주님의 십자가 사건과 나의 신앙은 어떤 관계가 있는가 하는 주제를 가지고 오늘 말씀을 드리면서 수난절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하는 것이 전체적인 내용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나와 어떤 관계가 있는가 성경은 아주 선명하게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를 저주에서 속량했다고 말씀하십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에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나무에 달린 사람은 저주받았다 하는 구약의 말씀대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므로 저주를 받으셔서 저주 아래 있는 우리를 속량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죽어 저주받을 자리에 그가 대신 저주받으심으로 저주 아래 있는 우리를 속량하시고 해방시키셨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저주가 사라지고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율법은 사람의 죄를 지적합니다. 그래서 율법 앞에 있는 사람은 의로운 사람이 한 사람도 없고, 살 사람이 없습니다. 그 율법의 결과는 형벌과 저주로 끝납니다. 죄인이라는 것을 선포하고, 죄의 값은 사망이라는 것을 언도하고, 마침내 죄와 사망의 결과로 저주와 형벌을 받게 되는 것이 율법의 마침입니다. 그 율법의 저주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속량하셔서 건져내시고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시키셨다는 것입니다.
어떤 분이 성경을 읽으시다가 구약을 읽다보니 무서운 사건이 너무 많습니다. 세상에 살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어떻게 성경이 이렇게 무섭습니까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설명하기를 "율법이 죄인됨과 죄의 결과가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읽어 구약을 다 읽으시고 그 다음에 신약을 읽어 보십시오" 그가 얼마 후에 오셔서 하시는 말씀이 "신약을 읽어보니 죽을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간음하다 잡힌 여인도 "내가 너를 용서하노니다시는 죄를 짖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십자가 옆에 있는 강도도 용서를 받아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고 도둑도, 절도도, 강도도, 간음한 자도 다 용서하시고 병든 자도 고치시고 신약에 오니 완전 딴 판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다를 수 있습니까 그래서 설명하기를 "앞의 책은 인간이 죄인이라는 것을 전제하고 그 죄의 결과는 형벌이라는 것을 언도하고 그 죄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신해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죄에서 우리를 건져주셔서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한 은혜의 새 법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요,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생각하고 주님 믿고 구원을 받으라는 책이 성경입니다. 고 말씀드렸습니다.
롬8장은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고 하셨습니다. 속량하시고, 정죄함이 결코 없다는 것입니다. 의롭게 하시고 심판을 받지 아니하고, 죄를 정하지 아니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한 해방이 너를 사망의 법에서 해방했음이라. 성령의 법이 은혜의 법이 율법과 저주에서 너를 해방했음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십자가는 그래서 중요한 것입니다.
진리는 하나인 것입니다. 세상에 아버지가 많아도 나의 아버지는 한 분이십니다. 어머니가 많아도 나를 낳아주신 어머니는 한 분이십니다. 진리는 하나이어야 됩니다. 진리는 반드시 하나이어야 되며, 여호와 하나님도 한분이시어야 되며, 하늘 아래 인류를 구속할 유일한 구세주도 한분이셔야 됩니다. 그 이유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우리의 죄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사망과 저주에서 해방시키신 유일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인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축복이고 언약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문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으며 문으로 들어오지 않은 자는 강도요 절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저주를 받으셔서 저주 아래 있는 우리를 속량하시고 예수의 피로 구속한 사람들에게는 다시는 정죄함이 없나니 율법과 저주에서 우리를 해방하신 성령과 은혜의 새 법이 우리를 속량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은 다른 법을 적용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성문화된 법 이외의 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정마다 룰이 있고, 사람이 살아가는 인간의 법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그 피 아래 있는 성도들에게 여호와 하나님께서 죄와 사망과 율법과 저주에서 해방시키시고 여호와 하나님의 새로운 법, 은혜의 법을 적용시켜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이 여기시고, 죄사함을 주시고,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주시고, 거룩한 영광을 주셔서 여호와 하나님의 보좌에 앉게 하시는 줄 믿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참 잘 보십니다. 겉도 보시고 속도 보시고, 우측도 보시고, 좌측도 보시고, 앞도 보시고 뒤도 보시고 속도 겉도 다 보십니다. 그리고 x-ray 찍어도 안나오는 것 까지도 다 보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감정을 대단히 중요하게 여기신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사랑, 희생, 미움, 온유한 마음, 충성된 마음, 사랑하는 마음, 감사하는 마음 이런 것들이 모두 emotion이고 motivation인데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다 보십니다. 그런데 못 보시는 데가 있는데 무엇인가 하면 십자가 예수를 통해서 우리를 보실 때는 잘 보시지 못합니다. 잘 보셨으면 나와 여러분이 여기에 앉아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주님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우리가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다른 법을 적용하셔서 우리를 보시기 때문에 사랑하시고, 긍휼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시고, 측은히 여기셔서 그냥 좋아하시는 것입니다. 고슴도치도 새끼보고는 예쁘다고 합니다. 자기 자식이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사랑스럽고 귀여운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십자가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받은 성도들을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라고 일컬어 주시고 "너는 내 것이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이 사랑하시는 이유는 사랑을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과 교제하기를 원하고 사귐을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를 유지하고 그 아들의 피로 우리를 구속하셔서 거저 은혜를 우리에게 주셨고 그 영광의 찬송을 부르게 하게 하심이라. 그래서 우리가 저주에서 해방되었을 뿐 아니라 사망과 죄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시키셔서 성령과 새 법을 우리에게 적용시키시는 것입니다.
구속받은 성도들은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나의 형제여" 나의 기쁨이요, 나의 자랑이요, 나의 면류관이요, 나의 감사요라는 아름다운 단어들을 썼습니다.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시키시고,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새로운 피조물을 만들어 주신 줄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 아래 있으면 율법과 저주에서 해방을 받고,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가 되어서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을 받았습니다.
예수안에 진리가 여러분을 자유케 할 줄 믿습니다. 이 진리에 서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교회가 사회운동, 사회참여, 인권운동, 정치운동도 중요하지만 교회는 이런것들을 하는 기관이 아닙니다. 교회는 그리스도 예수의 구속을 전하는 redemption, 속죄와 용서를 전해서 영혼을 구원하는 참 진리의 말씀을 전하는 곳이 교회인줄 믿습니다. 성경에 예수님의 십자가 이외에는 다른 구원이 없습니다. 예수의 피를 통해서만이 구원이 이루어집니다. 이 진리가 영원한 진리인줄 믿습니다.
교회는 십자가 구원, 속죄, 영생을 빼놓고는 교회가 아닙니다. 구원의 확신을 받으면 무엇을 해야 되는가 성경에 보니 앉아 있는 사람, 일어나는 사람, 일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대부분은 여호와 하나님 앞에 부지런히 서성서성 합니다. 구원의 터가 흔들리면 집을 질 수 가 없습니다. 회개와 구원의 터를 다시 닥지 말라고 했습니다. 든든히 터를 쌓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거기에 앉으라는 것입니다. 하늘보좌에 이미 앉혔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과 복음의 진리를 깨달은 사람은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한 영광의 보좌에 이미 앉았습니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한 보좌에 앉아 있는 신분적 변화를 가져온 사람들입니다. 주님을 위해서 값있게 살라는 것입니다. 그가 값을 주고 우리를 구원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값있게 그에게 갚아 드리고 값없이 받은 구원을 값있게 살아 드리므로 그 구원에 대한 보답과 감사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구원받기 위해 교회에 다니지 마십시오. 구원받기 위해서 봉사하거나, 헌금하거나, 기도하지 마십시오. 이제는 구원받았기 때문에 감사해서 봉사하고, 헌금하고, 기도하고 수고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것은 다른 것입니다. 예수안에 자유가 있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후 8:9) 죄 없으신 분이 죄 있는 자리에 오셔서 죄를 담당하시고, 죄 있는 자를 죄 없게 하시려고 그가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기 위해서 낮아지셨다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성도가 일어나서 주님을 위해 살아드리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이요, 내게도 힘이 되고 나도 성숙할 수 있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그러므로 이제 그 구원에 감사해서 주님을 사랑하고, 구체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릴 방법을 연구해야 될 것입니다. 먼저 자기 위치에서 열심히 여호와 하나님의 교회를 섬겨 가십시오. 자기 위치에서 힘써 일하십시오. 작은 일에 충성하는 자에게 큰 일도 맡겨지게 됩니다.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전 4:2)고 말씀하셨습니다.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계 2:10)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오,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가라사대(계 3:14) 내가 맡은 일에 충성하라는 것입니다.
해리 아이언싸이드 박사는 소년 시절에는 양화점의 직공이었다. 쇠가죽을 구두본에 맞추어 재단하고 물에 담그어 흠뻑 적셔서 가죽이 단단해지고 건조해질 때까지 계속 두드린 후에 구두창에 못을 박는 일이 매일의 그의 일이었습니다. 한번은 거리에 나갔다가 다른 양화점에 들린 일이 있었는데 거기에서 일하는 직공은 구두창을 두드리지도 않고 곧바로 물에서 꺼내어 못을 박고 있었다. 호기심이 생겨 가게 안으로 들어가서 쇠가죽을 단단해지도록 두드리지 않아도 품질 좋은 구두가 되는지 물어 보았다. 그러나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빠른 시간에 많이 만들어 내야지 두드릴 시간이 어디 있어. " 해리는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자기네 주인에게 달려와서 우리도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을 했습니다. 그러나 주인은 성경책을 열어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골3:23)를 읽어주며 "나는 돈을 벌기 위해 구두를 만드는게 아니야.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다" 나는 심판날에 주님 앞에서 '넌 참으로 비열한 짓을 했어. 최선을 다하지도 못했어' 하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아. 주님께서 웃으시면서 '참 잘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하시는 말씀을 듣고 싶어. 사람이란 자기가 가치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느낄 때 행복한 법이다. 이 구두를 주님 구두를 만드는 것처럼 만든다는 것입니다. 작은일이라고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큰 일만이 일이 아닙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작은 일이라도 내가 지금부터 준비하고 확신있게 서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유명한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마이클 코스타 경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오케스트라의 연습을 시키고 있을 때 일어났던 이야기입니다. 오케스트라 단원의 한 사람인 피콜로 주자가 연주하다가 옆을 보니 트럼펫 부는 사람은 크고 높은 음들을 웅장하게 잘 내고, 뒤를 보니 드럼을 치는 사람도 신나게 한 몫을 단단히 하는 것 같고, 앞에서는 바이올린도 그 아름다운 선율로 자랑하는데 나는 도대체 이 조그만 악기로 빈약한 소리만을 내고 있으니 불어보았자 들리지도 않을 걸 차라리 없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하고 피콜로를 불지 않고 부는 시늉만 하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 마이클 코스타 경은 지휘하다가 말고 전 오케스트라를 중지시키고 "피콜로는 어디 있지" 하면서 질문을 하였다고 한다. 모인 청중이야 어느 파트인지 큰 것 작은 소리를 분간할 수가 없다지만 지휘자의 귀는 다릅니다. 훌륭한 오케스트라가 되는 것은 큰 악기나 아름다운 바이올린 소리만 가지고는 안됩니다.
꽝꽝 울리는 소리와 미미한 모기 같은 소리 모두가 조화될 때 하나의 웅장하고 감동적인 음악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지휘자는 여러 사람이 입을 열어 불지만, 불고 불지 않는 것 모두를 듣고 있고 세미하게 주시하고 있으므로 알게 되어 있습니다. 종종 우리 인간들의 잘못된 생각은 나 하나쯤 안 하면 어때. 나 같은 인간이야 무슨 힘이 있나 자포자기하는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내 몸에 수천 수만 가지의 혈관이 있고 세포들이 있는데 하나의 세포가 터지거나 막히면 몸 전체가 마비되고 사망하는데 이른다. 공동체나 단체란 한 사람이 귀한 것이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라도 나에게 주어진 의무와 사명, 책임이 있는 법이다. 나 하나쯤 소홀히 생각하는 사람은 어느 단체에서나 무용한 자이며, 이런 사람이 끼어 있는 단체는 무너지고 맙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가장 작은 일에 충성하는 자가 큰 일에도 충성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한 역사를 위해 구원받은 거룩한 community, 거룩한 공동체를 만드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것처럼 세상을 구원하시고, 거룩한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 위에 건설하실 거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오케스트라를 만드시고, 각 자 위치에서 자기 일을 충성스럽게 하고 여호와 하나님 앞에 온전한 사명을 감당하게 하시려고 주님은 각가지 재질을 주셨습니다. 일이 작지만 최선을 다하는 이가 진정 기쁨이고 여호와 하나님의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을 받게 될 것입니다. 성가대에서 주일학교에서, 목자로 수고하시는 모든 분들이 최선을 다하시면 여호와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입니다.
사순절에 주님의 십자가와 나는 어떤 관계가 있으며, 주님의 십자가 사건과 나의 신앙은 어떤 관계가 있는가 하는 주제를 가지고 오늘 말씀을 드리면서 수난절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하는 것이 전체적인 내용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나와 어떤 관계가 있는가 성경은 아주 선명하게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를 저주에서 속량했다고 말씀하십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에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나무에 달린 사람은 저주받았다 하는 구약의 말씀대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므로 저주를 받으셔서 저주 아래 있는 우리를 속량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죽어 저주받을 자리에 그가 대신 저주받으심으로 저주 아래 있는 우리를 속량하시고 해방시키셨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저주가 사라지고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율법은 사람의 죄를 지적합니다. 그래서 율법 앞에 있는 사람은 의로운 사람이 한 사람도 없고, 살 사람이 없습니다. 그 율법의 결과는 형벌과 저주로 끝납니다. 죄인이라는 것을 선포하고, 죄의 값은 사망이라는 것을 언도하고, 마침내 죄와 사망의 결과로 저주와 형벌을 받게 되는 것이 율법의 마침입니다. 그 율법의 저주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속량하셔서 건져내시고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시키셨다는 것입니다.
어떤 분이 성경을 읽으시다가 구약을 읽다보니 무서운 사건이 너무 많습니다. 세상에 살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어떻게 성경이 이렇게 무섭습니까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설명하기를 "율법이 죄인됨과 죄의 결과가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읽어 구약을 다 읽으시고 그 다음에 신약을 읽어 보십시오" 그가 얼마 후에 오셔서 하시는 말씀이 "신약을 읽어보니 죽을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간음하다 잡힌 여인도 "내가 너를 용서하노니다시는 죄를 짖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십자가 옆에 있는 강도도 용서를 받아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고 도둑도, 절도도, 강도도, 간음한 자도 다 용서하시고 병든 자도 고치시고 신약에 오니 완전 딴 판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다를 수 있습니까 그래서 설명하기를 "앞의 책은 인간이 죄인이라는 것을 전제하고 그 죄의 결과는 형벌이라는 것을 언도하고 그 죄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신해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죄에서 우리를 건져주셔서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한 은혜의 새 법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요,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생각하고 주님 믿고 구원을 받으라는 책이 성경입니다. 고 말씀드렸습니다.
롬8장은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고 하셨습니다. 속량하시고, 정죄함이 결코 없다는 것입니다. 의롭게 하시고 심판을 받지 아니하고, 죄를 정하지 아니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한 해방이 너를 사망의 법에서 해방했음이라. 성령의 법이 은혜의 법이 율법과 저주에서 너를 해방했음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십자가는 그래서 중요한 것입니다.
진리는 하나인 것입니다. 세상에 아버지가 많아도 나의 아버지는 한 분이십니다. 어머니가 많아도 나를 낳아주신 어머니는 한 분이십니다. 진리는 하나이어야 됩니다. 진리는 반드시 하나이어야 되며, 여호와 하나님도 한분이시어야 되며, 하늘 아래 인류를 구속할 유일한 구세주도 한분이셔야 됩니다. 그 이유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우리의 죄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사망과 저주에서 해방시키신 유일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인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축복이고 언약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문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으며 문으로 들어오지 않은 자는 강도요 절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저주를 받으셔서 저주 아래 있는 우리를 속량하시고 예수의 피로 구속한 사람들에게는 다시는 정죄함이 없나니 율법과 저주에서 우리를 해방하신 성령과 은혜의 새 법이 우리를 속량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은 다른 법을 적용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성문화된 법 이외의 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정마다 룰이 있고, 사람이 살아가는 인간의 법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그 피 아래 있는 성도들에게 여호와 하나님께서 죄와 사망과 율법과 저주에서 해방시키시고 여호와 하나님의 새로운 법, 은혜의 법을 적용시켜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이 여기시고, 죄사함을 주시고,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주시고, 거룩한 영광을 주셔서 여호와 하나님의 보좌에 앉게 하시는 줄 믿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참 잘 보십니다. 겉도 보시고 속도 보시고, 우측도 보시고, 좌측도 보시고, 앞도 보시고 뒤도 보시고 속도 겉도 다 보십니다. 그리고 x-ray 찍어도 안나오는 것 까지도 다 보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감정을 대단히 중요하게 여기신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사랑, 희생, 미움, 온유한 마음, 충성된 마음, 사랑하는 마음, 감사하는 마음 이런 것들이 모두 emotion이고 motivation인데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다 보십니다. 그런데 못 보시는 데가 있는데 무엇인가 하면 십자가 예수를 통해서 우리를 보실 때는 잘 보시지 못합니다. 잘 보셨으면 나와 여러분이 여기에 앉아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주님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우리가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다른 법을 적용하셔서 우리를 보시기 때문에 사랑하시고, 긍휼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시고, 측은히 여기셔서 그냥 좋아하시는 것입니다. 고슴도치도 새끼보고는 예쁘다고 합니다. 자기 자식이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사랑스럽고 귀여운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십자가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받은 성도들을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라고 일컬어 주시고 "너는 내 것이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이 사랑하시는 이유는 사랑을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과 교제하기를 원하고 사귐을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를 유지하고 그 아들의 피로 우리를 구속하셔서 거저 은혜를 우리에게 주셨고 그 영광의 찬송을 부르게 하게 하심이라. 그래서 우리가 저주에서 해방되었을 뿐 아니라 사망과 죄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시키셔서 성령과 새 법을 우리에게 적용시키시는 것입니다.
구속받은 성도들은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나의 형제여" 나의 기쁨이요, 나의 자랑이요, 나의 면류관이요, 나의 감사요라는 아름다운 단어들을 썼습니다.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시키시고,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새로운 피조물을 만들어 주신 줄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 아래 있으면 율법과 저주에서 해방을 받고,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가 되어서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을 받았습니다.
예수안에 진리가 여러분을 자유케 할 줄 믿습니다. 이 진리에 서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교회가 사회운동, 사회참여, 인권운동, 정치운동도 중요하지만 교회는 이런것들을 하는 기관이 아닙니다. 교회는 그리스도 예수의 구속을 전하는 redemption, 속죄와 용서를 전해서 영혼을 구원하는 참 진리의 말씀을 전하는 곳이 교회인줄 믿습니다. 성경에 예수님의 십자가 이외에는 다른 구원이 없습니다. 예수의 피를 통해서만이 구원이 이루어집니다. 이 진리가 영원한 진리인줄 믿습니다.
교회는 십자가 구원, 속죄, 영생을 빼놓고는 교회가 아닙니다. 구원의 확신을 받으면 무엇을 해야 되는가 성경에 보니 앉아 있는 사람, 일어나는 사람, 일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대부분은 여호와 하나님 앞에 부지런히 서성서성 합니다. 구원의 터가 흔들리면 집을 질 수 가 없습니다. 회개와 구원의 터를 다시 닥지 말라고 했습니다. 든든히 터를 쌓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거기에 앉으라는 것입니다. 하늘보좌에 이미 앉혔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과 복음의 진리를 깨달은 사람은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한 영광의 보좌에 이미 앉았습니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한 보좌에 앉아 있는 신분적 변화를 가져온 사람들입니다. 주님을 위해서 값있게 살라는 것입니다. 그가 값을 주고 우리를 구원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값있게 그에게 갚아 드리고 값없이 받은 구원을 값있게 살아 드리므로 그 구원에 대한 보답과 감사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구원받기 위해 교회에 다니지 마십시오. 구원받기 위해서 봉사하거나, 헌금하거나, 기도하지 마십시오. 이제는 구원받았기 때문에 감사해서 봉사하고, 헌금하고, 기도하고 수고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것은 다른 것입니다. 예수안에 자유가 있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후 8:9) 죄 없으신 분이 죄 있는 자리에 오셔서 죄를 담당하시고, 죄 있는 자를 죄 없게 하시려고 그가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기 위해서 낮아지셨다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성도가 일어나서 주님을 위해 살아드리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이요, 내게도 힘이 되고 나도 성숙할 수 있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그러므로 이제 그 구원에 감사해서 주님을 사랑하고, 구체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릴 방법을 연구해야 될 것입니다. 먼저 자기 위치에서 열심히 여호와 하나님의 교회를 섬겨 가십시오. 자기 위치에서 힘써 일하십시오. 작은 일에 충성하는 자에게 큰 일도 맡겨지게 됩니다.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전 4:2)고 말씀하셨습니다.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계 2:10)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오,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가라사대(계 3:14) 내가 맡은 일에 충성하라는 것입니다.
해리 아이언싸이드 박사는 소년 시절에는 양화점의 직공이었다. 쇠가죽을 구두본에 맞추어 재단하고 물에 담그어 흠뻑 적셔서 가죽이 단단해지고 건조해질 때까지 계속 두드린 후에 구두창에 못을 박는 일이 매일의 그의 일이었습니다. 한번은 거리에 나갔다가 다른 양화점에 들린 일이 있었는데 거기에서 일하는 직공은 구두창을 두드리지도 않고 곧바로 물에서 꺼내어 못을 박고 있었다. 호기심이 생겨 가게 안으로 들어가서 쇠가죽을 단단해지도록 두드리지 않아도 품질 좋은 구두가 되는지 물어 보았다. 그러나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빠른 시간에 많이 만들어 내야지 두드릴 시간이 어디 있어. " 해리는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자기네 주인에게 달려와서 우리도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을 했습니다. 그러나 주인은 성경책을 열어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골3:23)를 읽어주며 "나는 돈을 벌기 위해 구두를 만드는게 아니야.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다" 나는 심판날에 주님 앞에서 '넌 참으로 비열한 짓을 했어. 최선을 다하지도 못했어' 하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아. 주님께서 웃으시면서 '참 잘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하시는 말씀을 듣고 싶어. 사람이란 자기가 가치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느낄 때 행복한 법이다. 이 구두를 주님 구두를 만드는 것처럼 만든다는 것입니다. 작은일이라고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큰 일만이 일이 아닙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작은 일이라도 내가 지금부터 준비하고 확신있게 서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유명한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마이클 코스타 경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오케스트라의 연습을 시키고 있을 때 일어났던 이야기입니다. 오케스트라 단원의 한 사람인 피콜로 주자가 연주하다가 옆을 보니 트럼펫 부는 사람은 크고 높은 음들을 웅장하게 잘 내고, 뒤를 보니 드럼을 치는 사람도 신나게 한 몫을 단단히 하는 것 같고, 앞에서는 바이올린도 그 아름다운 선율로 자랑하는데 나는 도대체 이 조그만 악기로 빈약한 소리만을 내고 있으니 불어보았자 들리지도 않을 걸 차라리 없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하고 피콜로를 불지 않고 부는 시늉만 하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 마이클 코스타 경은 지휘하다가 말고 전 오케스트라를 중지시키고 "피콜로는 어디 있지" 하면서 질문을 하였다고 한다. 모인 청중이야 어느 파트인지 큰 것 작은 소리를 분간할 수가 없다지만 지휘자의 귀는 다릅니다. 훌륭한 오케스트라가 되는 것은 큰 악기나 아름다운 바이올린 소리만 가지고는 안됩니다.
꽝꽝 울리는 소리와 미미한 모기 같은 소리 모두가 조화될 때 하나의 웅장하고 감동적인 음악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지휘자는 여러 사람이 입을 열어 불지만, 불고 불지 않는 것 모두를 듣고 있고 세미하게 주시하고 있으므로 알게 되어 있습니다. 종종 우리 인간들의 잘못된 생각은 나 하나쯤 안 하면 어때. 나 같은 인간이야 무슨 힘이 있나 자포자기하는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내 몸에 수천 수만 가지의 혈관이 있고 세포들이 있는데 하나의 세포가 터지거나 막히면 몸 전체가 마비되고 사망하는데 이른다. 공동체나 단체란 한 사람이 귀한 것이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라도 나에게 주어진 의무와 사명, 책임이 있는 법이다. 나 하나쯤 소홀히 생각하는 사람은 어느 단체에서나 무용한 자이며, 이런 사람이 끼어 있는 단체는 무너지고 맙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가장 작은 일에 충성하는 자가 큰 일에도 충성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한 역사를 위해 구원받은 거룩한 community, 거룩한 공동체를 만드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것처럼 세상을 구원하시고, 거룩한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 위에 건설하실 거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오케스트라를 만드시고, 각 자 위치에서 자기 일을 충성스럽게 하고 여호와 하나님 앞에 온전한 사명을 감당하게 하시려고 주님은 각가지 재질을 주셨습니다. 일이 작지만 최선을 다하는 이가 진정 기쁨이고 여호와 하나님의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을 받게 될 것입니다. 성가대에서 주일학교에서, 목자로 수고하시는 모든 분들이 최선을 다하시면 여호와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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