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현대인과 사순절
본문
어느 비지니스맨이 하이웨이를 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큰 계약을 체결하러 이웃도시로 가고 있었습니다. 차를 Cruise Control로 해놓고 여유있게 한산한 시골 한 복판을 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길 옆에서 휘황찬란한 빛이 비춰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너무 현란한 광채였기에 그 빛이 비추는 곳을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하이웨이를 빠져나와 시골길로 접어 들었습니다. 멀리서 보니 교회 건물도 보였습니다. 그는 생각하기 를 교회에 있는 스태인 글래스일 것이라고 생각했고 이 스태인 글래스는 세계 10대 스태 인 글래스 안에 드는 것이리라 추측했습니다.
가까이 가는데 더욱 그 빛은 찬란해 보입니다. 잠깐 커브를 도는 사이에 구름이 끼었습 니다. 구름은 끼었지만 스태인 글래스를 볼 것이라 기대하면서 교회에 도착했습니다. 그런 데 그것은 무척 오래된 교회였습니다. 아니 크게 파괴된 더 이상 교회라고 할 수 없는, 3개 의 벽난로만 남아있는 폐허였습니다. 문은 하나도 없었고 거의 모든 창문들은 파괴되었습 니다. 비록 파괴된 교회였지만 사업가는 자기가 찾고 있는 창문을 찾으러 뒤로 돌아가 보 았습니다. 뒤로 돌아가서 위를 쳐다본 후 크게 실망합니다. 그는 평범하고 낡은 창문 앞에 서 있었습니다. 창틀은 다 낡아 있었고 얼마 안 있으면 곧 허물어질 것만 같아 보였습니 다.
사업가는 어리석은 자신의 모습을 느끼며 머리를 저으며 돌아서 나옵니다. 그가 막 차 를 타고 돌아서 나오는데 어느덧 구름이 걷혔습니다. 밝은 햇빛이 그 창을 비춥니다. 또다 시 휘황찬란한 광채가 사업가의 눈을 가득 채웁니다.
어느새 깊은 실망은 사라졌습니다. 그의 마음은 엄청난 여호와 하나님의 임재를 느낍니다. 하나 님께서는 평범한 것 가운데 임하셔서 놀라운 광채를 만드시는 분이심을 깨달게 되었습니 다.
일상생활에서 있을 수 있는 평범한 이야기지만 한편으로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이야 기입니다. 우리가 크리스챤으로서 세상에 빛된 삶을 살아야 하는데 그 빛도 우리의 삶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단순히 우리의 존재, 나라는 존재 자체가 여호와 하나님의 빛을 받을 때 우리 는 빛된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이야기입니다. 내 모습 이대로의 모습 속에 하 나님의 빛이 임할 때 무지개와 같은 아름다운 빛을 우리가 도리어 비출 수 있다는 교훈을 줍니다.
오늘 우리는 사순절 첫째주일로 지킵니다. 지난 수요일, 곧 재의 수요일부터 성금요일 전날까지 주일을 제외한 40일 간을 우리는 사순절로 지킵니다. 사순절은 영어로는 Lent 라고 하는데 이 Lent라는 말의 어원은 '봄'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Lent가 lenghten, '길어 진다'라는 영어와 같은 어원인데 곧 봄이면서 해가 길어진다 해서 Lent가 '봄'이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고 봅니다.
사실 우리는 한국말로 사순절이라해서 40일과 관련된 뜻을 갖고 있는데 반해 영어 Lent 에는 40일이란 뜻은 없고 도리어 해가 길어진다해서 봄이라는 뜻과 연관이 되어 있습니다. 하여튼 우리 한국에서는 사순절을 40일 광야 생활 등을 생각하면서 어둡게만 생각해 왔 는데 사실 서구전통으로는 물론 광야에서 시험받는 내용, 곧 금식과 구제 등을 강조하는 기간이지만 한편으로는 해가 길어짐의 의미와 함께 인생의 밝아오는 봄을 생각하며 사순 절을 지켜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곧 Lent 기간 사순절은 주님의 고난을 생각하면서 금식과 구제를 하는 기간인 동시에 따뜻한 햇빛, 길어지는 햇빛을 쬐면서 우리 안에 숨어있는 것들이 돋아나게 하는 계절인 것 같습니다. 아니 한편으로는 절제하면서 자신의 몸을 쳐 복종시키지만 또한편으로는 나 자신 안에 숨겨진 보화들을 캐어내어 주님의 빛 앞에 쬐이는 계절일줄로 압니다. 나 자신 안에 숨겨진 보화들을 더욱 밝게 빛나게 하는 것, 이것이 사순절 기간에 우리가 이루어야 할 또하나의 과제이자 축복일 줄 압니다.
그러면 우리가 밝게 빛나게 할 우리 안에 있는 보화는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예루살렘 베데스다 연못에 많은 병자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가끔 천사가 내려와서 물을 동하게 하는데 동한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가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되어 있었습니다. 거기 38년된 병자가 있었는데 이 병자는 물이 동할 때 먼저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에 치유 를 받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못에 가려면 벌써 다른 사람이 먼저 들어가 버리곤 했습니다. 어느날 예수님께서 환자들이 즐비하게 모여 있는 베데스다 연못을 찾아가 보았습니다.
그중 예수님의 눈에 띈 자는 38년된 병자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찾아가 인자한 말로 묻습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예수님께서 곧 이어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그런데 이 때는 안식일이었습니다. 안식일날에는 병을 고쳐도 안되고 설상 고침을 받았 다 하더라도 자기의 침상을 들고 갈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병자는 자리를 들고 걸어갔습 니다. 이에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자리를 들고 걸어갈 수 없다고 단호하게 잘라 말합니다. 그러나 병자는 자기를 낫게 한 자가 들고 걸어가라 말씀하셨기에 자기는 들고 걸어간다고 대답합니다. 후에 안식일에 이러한 일을 하였다하며 질책을 하니 예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엄청난 말씀을 하십니다.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이 때부터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죽 이려하기 시작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안식일을 범했을 뿐더러 여호와 하나님을 자기의 친아버 지라 하여서 자기를 여호와 하나님과 동등하게 삼았기 때문입니다. 이 38년된 병자를 고치는 이야기를 통해서 사도요한은 많은 것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요 한에게 있어서는 38년된 병자를 일으키는 것은 하나의 기적에만 불과한 것이 아니었습니 다. 이 병자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타난 것도 당연합니다. 그러나 사도요한은 더 욱 중요한 사실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첫번째로 예수님이 안식일보다 크신 분임을 증언합 니다. 안식일에도 예수님이 자리를 들고 걸으라하면 걸어도 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안 식일 보다 더 크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두번째로는 예수님께서 이 날로 인하여 처음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공개적으로 부르셨습니다. 곧 여호와 하나님은 자신의 친아버지라고 부르셔 서 여호와 하나님과 동등되심을 나타내셨습니다.
곧 38년된 병자를 통하여 인자하신 예수님의 빛이 온 세상에 새롭게 비추이게 되었습니 다. 그는 안식일보다 큰 자였고 더 나아가서 여호와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임이 온세계에 알려졌습 니다. 예수님의 이 귀한 빛이 38년된 병자를 통하여 세상에 비추이게 된 것입니다. 예수 님께서 이 환자를 통해서 당신의 빛을 나타내신 이유가 있습니다. 이 병자는 자신을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비천함을 알고 있었습니다. 38년간 병을 앓고 있었고 앞으로도 아무도 고칠 수 없는 환자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추함을 그대로 알고 있는 이 병자를 통해 서 예수님은 당신의 빛을 발하셨습니다.
사랑하는 교우여러분, 사순절은 단순히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는 주님의 모습만을 명상하는 시간이 아닙니다. 이 사순절에 우리는 우리의 병든 모습을 아울러 발견해야 하는 기간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38년된 고질적은 병들을 발견해야 하는 기간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병든 모습을 주님의 얼굴을 뵈면서 발견해 나아갈 때 우리에게는 봄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 빛이 임하게 됩니다. 어느덧 우리도 빛을 비추는, 아니 빛을 반사하는 도구로 사용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여러분, 이번 사순절 기간 우리 안에 있는 38년된 질병들을 발견하시게 되 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것을 치료하시는 주님의 능력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어느덧 우리 는 빛을 비추는 자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존 마틴(John Martin)이라는 카톨릭 신부가 재미있는 책을 썼습니다. 책제목은 "중독자 들은 복이 있다(Blessed Are The Addicts)"입니다. 마태복음 5장에 8복이 나오는데 "중독 자들은 복이 있다"는 아마도 9복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알콜중독자였는데 존 마틴이 사립학교를 가게 되었습니다. 사립학교에 입 학하자마자 아버지가 존을 방문했습니다. 존은 알콜중독자인 아버지 걱정에 집을 떠나 있 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충격을 받은 아버지가 술을 끊었습니다.
이러한 아버지를 가진 마틴 신부는 후에 알콜중독자들만을 위해서 섬기는 삶을 삽니다. 그리고 그 경험을 토대로 "Blessed Are The Addicts"라는 책을 편찬한 것입니다. 그는 중독의 시작은 삶의 현실을 도피하는데서부터 시작된다고 말합니다. 삶의 현실을 도 피하기 위해서 제일 쉽게 하는 것이 술이고 마약입니다. 그러나 술과 마약말고도 삶의 현 실을 도피하기 위해서 하는 모든 것들이 다 중독입니다. 도박, 음식, 성, 인간관계, 일 (Workaholic), 감정, 심지어 종교까지도 중독이 된다고 합니다. 그는 21세기에는 훨씬 많은 중독증상들이 발견케 될 것이라고 합니다.
곧 TV, 비디오, 운동, 권력, 돈, 모든 것이 중독 될 수 있는 여건들일 줄 압니다. 그런데 마틴 신부가 "Blessed Are The Addicts"라고 말할 수 있는데는 그의 철학이 있습니다. 그 는 "여호와 하나님 감사합니다. 중독을 허락하심을 감사합니다"라고 말을 하면서 계속 그 이유를 설명합니다. 중독을 통해서만 사람은 자신의 삶의 목적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중독을 통해서만 사람은 자신의 삶을 새롭게 보는 눈이 뜨이고 이때 자신의 삶을 더욱 건설적으 로, 창조적으로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중독 후에 비로써 인간은 자신의 길에 대해서 눈이 뜨이고 참 자신을 발견하고 세상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발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끝내 여호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회복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마틴 신부의 이 책을 오래 전에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이번주 설교준비를 하면서 본문말씀과 연관해서 마틴 신부의 철학을 다시 한번 고찰해 보면서 새롭게 많은 것을 깨 닫게 되었습니다.
먼저 우리는 모두 중독자임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는 무엇엔가에 중독되어 있습니 다. 우리는 38년간 중독이 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38년된 환자와 다른 점은 그는 자신의 문제를 알고 있었고, 우리는 우리의 중독된 것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마틴 신부는 중독의 시작은 삶의 현실을 도피하는데서부터 시작된다고 말합니다. 삶의 현실을 도피해서 술, 마약, 일, 음식 등에 빠질 때 중독현상이 생깁니다.
사랑하는 교우여러분, 만일 우리가 삶의 현실을 도피한다면 우리도 무엇엔가 중독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괴로움을 다른 무엇으로 경감시킨다면 그것이 바로 현실을 도피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엔가 중독되어 있는 것입니다.
저의 아들이 6학년인데 컴퓨터 게임을 좋아하고 잘하기도 합니다. 6학년이 되면서 학교 공부가 많아지기 시작하자 요즘 가끔 자기의 삶이 스트레스로 가득차 있다는 표현을 가끔 합니다. 한글학교 때문에 금요일에도 숙제를 해야 하고 토요일에는 꼬박꼬박 한글학교에 와야하니 미국 아이들보다 스트레스가 더 많은 것은 당연할 줄 압니다.
이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 중에 하나가 컴퓨터 게임을 하는 것입니다. 컴퓨터 게임을 하 면서 모든 것을 잊는 것 같습니다. 현실 도피하는 모습을 종종 봅니다. 그러면 왜 우리가 현실을 도피할까요 우리가 세상에서 되어지는 모든 것 안에 여호와 하나님 의 사랑의 섭리가 숨어 있음을 알지 못하기에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현실을 피하려고만 합니다.
사도바울은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말씀하셨는데 그처럼 고백할 수 있었던 것 은 그는 매사에 어떠한 억울한 일 가운데서도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의 섭리가 숨어 있는 것을 믿 었기 때문입니다. 그에게는 삶의 현실은 매사에 숨어 있는 여호와 하나님의 주권적 사랑이었습니 다. 만일 이처럼 세상이 주는 고통 뒤에 숨어있는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보지 못할 때, 믿지 못할 때 우리는 현실을 도피하게 됩니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즐거움을 다른 곳에서 찾게 됩니 다.
곧 우리가 우리의 주어진 삶 속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숨은 사랑을 믿지 못하는 순간 우리는 현 실 도피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학교나 직장과 사회에서 당하는 어려움 속에 여호와 하나님의 신비한 사랑의 손길이 뻗쳐있음을 망각할 때 우리는 괴로운 현실을 도피합니다. 중독자가 되는 것입니다. 어느새 우리에게 병이 찾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뜻대로, 생각되는 현실이 되어지지 않는다고 현실을 피해 다른 곳으로 갈 때 우 리의 삶은 파괴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처럼 파괴된 우리들의 삶은 절망적일까 요
38년된 환자가 자기의 파괴된 모습을 안고 주님을 만났을 때 도리어 세상에 빛으로 나 타났습니다. 우리가 파괴된 모습을 안고 주님을 만날 때 우리는 세상의 빛으로 나타납니 다. 우리의 파괴된 것이 도리어 보화였음을 발견합니다. 파괴된 우리의 모습이 바로 우리 의 독특한 축복의 모습임을 발견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순절 기간에 하여야 할 일이 있습니다.
첫번째로는 우리의 파괴된 모 습을 발견하는 일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믿지 못한 결과로 찌들어진 우리의 모습을 발견 하는 일입니다. 남들에겐 없고 나에게만 있는 악질적인 요소 요소를 발견하여야 합니다.
두번째로는 우리가 발견한 파괴된 우리의 모습, 찌들어진 우리의 모습 그대로를 우리는 사랑해야 합니다. 안아주어야 합니다. 오늘날 크리스챤들이 세상에 빛으로 나타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우리는 악질적인 우리의 모습, 파괴된 우리의 모습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껴안아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악질적인 우리의 모습, 파괴된 우리의 모습을 껴안기 위하여 우리를 찾아 오셨습 니다. 십자가에서 피흘려 돌아가셨습니다. 우리의 이 악질적인 모습이 그리스도의 빛을 발하려면 우리도 우리의 파괴된 모습, 악질 적인 모습을 사랑해야 합니다. 안아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내모습 그대로를 안을 때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의 영광이 우리를 통해 빛으로 나타납니다.
사랑하는 교우여러분, 우리의 이그러진 모습을 껴안으십시다. 피로 멍들었던 우리의 모 습을 껴안으십시다. 우리의 이웃은 우리의 파괴된 모습을 비판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 의 모습, 그대로를 껴안습니다. 우리도 껴안아야 합니다. 우리는 파괴된 우리의 모습, 상처 난 우리의 모습을 껴안아야 합니다.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의 못난 모습을 사랑하면서 눈물 어린 눈으로 주님을 바라볼 때 주님은 우리를 껴 안으십니다. 보혈을 흘리시는 모습으로 우리를 안아주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향하여 말씀 하십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 그때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보화를 찾게 됩니다. 우리의 상처가 빛으로 나타남을 체험 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여러분, 사순절은 우리의 죄악된 모습을 그대로 껴안으신 주님을 바라보는 기간입니다. 아울러 주님을 괴롭힌 우리의 악한 모습 그대로를 우리가 껴안아주는 기간입 니다. 이때 우리는 삶의 보화를 발견합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껴안을 때 놀랍게도 우리 는 항상 기뻐하는 자가 됩니다. 항상 감사하는 자가 됩니다. 우리는 빛을 발하게 됩니다. 이것이 사순절의 축복입니다.
말씀을 거둡니다. 고아의 아버지인 조지 뮬러(George Muller)를 잘 아실줄 압니다. 그는 만명 이상의 고아들을 키운 사람입니다. 매주일 600파운드의 돈이 필요한 고아원을 운영했 는데 한번도 고아들을 굶게 한적이 없었습니다. 뮬러는 필요할 때마다 기도했고 기도할 때 마다 꼭 응답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한 분입니다. 얼마전 기독교 위인들이 소개된 책자에 조지 뮬러가 소개되어 있길래 그가 누렸던 기적 과 같은 체험들을 좀 자세히 알려고 그 책을 구입해 읽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13 페이지에 달하는 기사 가운데서 그가 체험한 기적과 같은 일은 전혀 소개되어 있지 않고 도리어 처 음 많은 부분에 그의 회심전 죄짓는 모습을 더 자세히 기록해 놓았습니다. 상상할 수 없이 추악한 죄인이었음이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어릴 때 그는 거짓말하고 훔치고 도박하고 낭비하는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그 책에서 아무도 이러한 소년이 그처럼 큰 일을 할 줄이야 상상도 못했을 것이라고 소개합니다. 그 는 때로는 아버지의 돈도 훔칩니다. 돈을 훔쳐서 멀리 다른 도시에 가서 비싼 호텔에 묵습 니다. 돈이 다 떨어질 때까지 낭비하다가 떨어지면 다른 호텔로 가서 묵습니다. 때로는 호 텔주인이 옷이나 물건을 압수하기도 합니다. 이러던 조지 뮬러가 좋은 친구 덕분에 기독교 모임에 참석합니다. 그 모임을 통해서 주 님을 영접합니다. 주님을 영접한 후 고아의 아버지가 됩니다. 그만이 비출 수 있는 아름다 운 빛을 온 세상에 비추었습니다.
그가 그토록 고아의 아버지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는 자기의 죄악된 모습을 안아주 시는 십자가의 주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자신의 악질적인 모습을 스스로 안아 주 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어느덧 고아의 아버지가 되어간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여러분, 이번 사순절을 통해 우리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시는 주님을 만나십시다. 아울러 죄로 병든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십시다. 아직도 우리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파괴된 모습, 악질적인 모습, 38년된 병든 모습이 많이 남아 있을 줄 압니다. 이번 사순절 기간 힘을 다하여 우리의 파괴된 모습을 발견하십시다. 명상을 통하여, 기 도를 통하여 거룩한 생활을 통하여 발견하십시다. 발견한 후 눈물을 흘리며 따뜻하게 안아 주십시다. 우리는 사순절의 축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빛을 발할 것입니 다.
고난 당하신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사순절 기간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주님의 축복을 받으십시다. 주님의 빛을 발하십시다. 주님의 음성을 들으십시다.
가까이 가는데 더욱 그 빛은 찬란해 보입니다. 잠깐 커브를 도는 사이에 구름이 끼었습 니다. 구름은 끼었지만 스태인 글래스를 볼 것이라 기대하면서 교회에 도착했습니다. 그런 데 그것은 무척 오래된 교회였습니다. 아니 크게 파괴된 더 이상 교회라고 할 수 없는, 3개 의 벽난로만 남아있는 폐허였습니다. 문은 하나도 없었고 거의 모든 창문들은 파괴되었습 니다. 비록 파괴된 교회였지만 사업가는 자기가 찾고 있는 창문을 찾으러 뒤로 돌아가 보 았습니다. 뒤로 돌아가서 위를 쳐다본 후 크게 실망합니다. 그는 평범하고 낡은 창문 앞에 서 있었습니다. 창틀은 다 낡아 있었고 얼마 안 있으면 곧 허물어질 것만 같아 보였습니 다.
사업가는 어리석은 자신의 모습을 느끼며 머리를 저으며 돌아서 나옵니다. 그가 막 차 를 타고 돌아서 나오는데 어느덧 구름이 걷혔습니다. 밝은 햇빛이 그 창을 비춥니다. 또다 시 휘황찬란한 광채가 사업가의 눈을 가득 채웁니다.
어느새 깊은 실망은 사라졌습니다. 그의 마음은 엄청난 여호와 하나님의 임재를 느낍니다. 하나 님께서는 평범한 것 가운데 임하셔서 놀라운 광채를 만드시는 분이심을 깨달게 되었습니 다.
일상생활에서 있을 수 있는 평범한 이야기지만 한편으로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이야 기입니다. 우리가 크리스챤으로서 세상에 빛된 삶을 살아야 하는데 그 빛도 우리의 삶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단순히 우리의 존재, 나라는 존재 자체가 여호와 하나님의 빛을 받을 때 우리 는 빛된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이야기입니다. 내 모습 이대로의 모습 속에 하 나님의 빛이 임할 때 무지개와 같은 아름다운 빛을 우리가 도리어 비출 수 있다는 교훈을 줍니다.
오늘 우리는 사순절 첫째주일로 지킵니다. 지난 수요일, 곧 재의 수요일부터 성금요일 전날까지 주일을 제외한 40일 간을 우리는 사순절로 지킵니다. 사순절은 영어로는 Lent 라고 하는데 이 Lent라는 말의 어원은 '봄'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Lent가 lenghten, '길어 진다'라는 영어와 같은 어원인데 곧 봄이면서 해가 길어진다 해서 Lent가 '봄'이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고 봅니다.
사실 우리는 한국말로 사순절이라해서 40일과 관련된 뜻을 갖고 있는데 반해 영어 Lent 에는 40일이란 뜻은 없고 도리어 해가 길어진다해서 봄이라는 뜻과 연관이 되어 있습니다. 하여튼 우리 한국에서는 사순절을 40일 광야 생활 등을 생각하면서 어둡게만 생각해 왔 는데 사실 서구전통으로는 물론 광야에서 시험받는 내용, 곧 금식과 구제 등을 강조하는 기간이지만 한편으로는 해가 길어짐의 의미와 함께 인생의 밝아오는 봄을 생각하며 사순 절을 지켜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곧 Lent 기간 사순절은 주님의 고난을 생각하면서 금식과 구제를 하는 기간인 동시에 따뜻한 햇빛, 길어지는 햇빛을 쬐면서 우리 안에 숨어있는 것들이 돋아나게 하는 계절인 것 같습니다. 아니 한편으로는 절제하면서 자신의 몸을 쳐 복종시키지만 또한편으로는 나 자신 안에 숨겨진 보화들을 캐어내어 주님의 빛 앞에 쬐이는 계절일줄로 압니다. 나 자신 안에 숨겨진 보화들을 더욱 밝게 빛나게 하는 것, 이것이 사순절 기간에 우리가 이루어야 할 또하나의 과제이자 축복일 줄 압니다.
그러면 우리가 밝게 빛나게 할 우리 안에 있는 보화는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예루살렘 베데스다 연못에 많은 병자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가끔 천사가 내려와서 물을 동하게 하는데 동한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가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되어 있었습니다. 거기 38년된 병자가 있었는데 이 병자는 물이 동할 때 먼저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에 치유 를 받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못에 가려면 벌써 다른 사람이 먼저 들어가 버리곤 했습니다. 어느날 예수님께서 환자들이 즐비하게 모여 있는 베데스다 연못을 찾아가 보았습니다.
그중 예수님의 눈에 띈 자는 38년된 병자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찾아가 인자한 말로 묻습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예수님께서 곧 이어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그런데 이 때는 안식일이었습니다. 안식일날에는 병을 고쳐도 안되고 설상 고침을 받았 다 하더라도 자기의 침상을 들고 갈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병자는 자리를 들고 걸어갔습 니다. 이에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자리를 들고 걸어갈 수 없다고 단호하게 잘라 말합니다. 그러나 병자는 자기를 낫게 한 자가 들고 걸어가라 말씀하셨기에 자기는 들고 걸어간다고 대답합니다. 후에 안식일에 이러한 일을 하였다하며 질책을 하니 예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엄청난 말씀을 하십니다.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이 때부터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죽 이려하기 시작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안식일을 범했을 뿐더러 여호와 하나님을 자기의 친아버 지라 하여서 자기를 여호와 하나님과 동등하게 삼았기 때문입니다. 이 38년된 병자를 고치는 이야기를 통해서 사도요한은 많은 것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요 한에게 있어서는 38년된 병자를 일으키는 것은 하나의 기적에만 불과한 것이 아니었습니 다. 이 병자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타난 것도 당연합니다. 그러나 사도요한은 더 욱 중요한 사실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첫번째로 예수님이 안식일보다 크신 분임을 증언합 니다. 안식일에도 예수님이 자리를 들고 걸으라하면 걸어도 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안 식일 보다 더 크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두번째로는 예수님께서 이 날로 인하여 처음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공개적으로 부르셨습니다. 곧 여호와 하나님은 자신의 친아버지라고 부르셔 서 여호와 하나님과 동등되심을 나타내셨습니다.
곧 38년된 병자를 통하여 인자하신 예수님의 빛이 온 세상에 새롭게 비추이게 되었습니 다. 그는 안식일보다 큰 자였고 더 나아가서 여호와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임이 온세계에 알려졌습 니다. 예수님의 이 귀한 빛이 38년된 병자를 통하여 세상에 비추이게 된 것입니다. 예수 님께서 이 환자를 통해서 당신의 빛을 나타내신 이유가 있습니다. 이 병자는 자신을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비천함을 알고 있었습니다. 38년간 병을 앓고 있었고 앞으로도 아무도 고칠 수 없는 환자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추함을 그대로 알고 있는 이 병자를 통해 서 예수님은 당신의 빛을 발하셨습니다.
사랑하는 교우여러분, 사순절은 단순히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는 주님의 모습만을 명상하는 시간이 아닙니다. 이 사순절에 우리는 우리의 병든 모습을 아울러 발견해야 하는 기간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38년된 고질적은 병들을 발견해야 하는 기간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병든 모습을 주님의 얼굴을 뵈면서 발견해 나아갈 때 우리에게는 봄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 빛이 임하게 됩니다. 어느덧 우리도 빛을 비추는, 아니 빛을 반사하는 도구로 사용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여러분, 이번 사순절 기간 우리 안에 있는 38년된 질병들을 발견하시게 되 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것을 치료하시는 주님의 능력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어느덧 우리 는 빛을 비추는 자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존 마틴(John Martin)이라는 카톨릭 신부가 재미있는 책을 썼습니다. 책제목은 "중독자 들은 복이 있다(Blessed Are The Addicts)"입니다. 마태복음 5장에 8복이 나오는데 "중독 자들은 복이 있다"는 아마도 9복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알콜중독자였는데 존 마틴이 사립학교를 가게 되었습니다. 사립학교에 입 학하자마자 아버지가 존을 방문했습니다. 존은 알콜중독자인 아버지 걱정에 집을 떠나 있 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충격을 받은 아버지가 술을 끊었습니다.
이러한 아버지를 가진 마틴 신부는 후에 알콜중독자들만을 위해서 섬기는 삶을 삽니다. 그리고 그 경험을 토대로 "Blessed Are The Addicts"라는 책을 편찬한 것입니다. 그는 중독의 시작은 삶의 현실을 도피하는데서부터 시작된다고 말합니다. 삶의 현실을 도 피하기 위해서 제일 쉽게 하는 것이 술이고 마약입니다. 그러나 술과 마약말고도 삶의 현 실을 도피하기 위해서 하는 모든 것들이 다 중독입니다. 도박, 음식, 성, 인간관계, 일 (Workaholic), 감정, 심지어 종교까지도 중독이 된다고 합니다. 그는 21세기에는 훨씬 많은 중독증상들이 발견케 될 것이라고 합니다.
곧 TV, 비디오, 운동, 권력, 돈, 모든 것이 중독 될 수 있는 여건들일 줄 압니다. 그런데 마틴 신부가 "Blessed Are The Addicts"라고 말할 수 있는데는 그의 철학이 있습니다. 그 는 "여호와 하나님 감사합니다. 중독을 허락하심을 감사합니다"라고 말을 하면서 계속 그 이유를 설명합니다. 중독을 통해서만 사람은 자신의 삶의 목적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중독을 통해서만 사람은 자신의 삶을 새롭게 보는 눈이 뜨이고 이때 자신의 삶을 더욱 건설적으 로, 창조적으로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중독 후에 비로써 인간은 자신의 길에 대해서 눈이 뜨이고 참 자신을 발견하고 세상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발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끝내 여호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회복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마틴 신부의 이 책을 오래 전에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이번주 설교준비를 하면서 본문말씀과 연관해서 마틴 신부의 철학을 다시 한번 고찰해 보면서 새롭게 많은 것을 깨 닫게 되었습니다.
먼저 우리는 모두 중독자임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는 무엇엔가에 중독되어 있습니 다. 우리는 38년간 중독이 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38년된 환자와 다른 점은 그는 자신의 문제를 알고 있었고, 우리는 우리의 중독된 것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마틴 신부는 중독의 시작은 삶의 현실을 도피하는데서부터 시작된다고 말합니다. 삶의 현실을 도피해서 술, 마약, 일, 음식 등에 빠질 때 중독현상이 생깁니다.
사랑하는 교우여러분, 만일 우리가 삶의 현실을 도피한다면 우리도 무엇엔가 중독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괴로움을 다른 무엇으로 경감시킨다면 그것이 바로 현실을 도피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엔가 중독되어 있는 것입니다.
저의 아들이 6학년인데 컴퓨터 게임을 좋아하고 잘하기도 합니다. 6학년이 되면서 학교 공부가 많아지기 시작하자 요즘 가끔 자기의 삶이 스트레스로 가득차 있다는 표현을 가끔 합니다. 한글학교 때문에 금요일에도 숙제를 해야 하고 토요일에는 꼬박꼬박 한글학교에 와야하니 미국 아이들보다 스트레스가 더 많은 것은 당연할 줄 압니다.
이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 중에 하나가 컴퓨터 게임을 하는 것입니다. 컴퓨터 게임을 하 면서 모든 것을 잊는 것 같습니다. 현실 도피하는 모습을 종종 봅니다. 그러면 왜 우리가 현실을 도피할까요 우리가 세상에서 되어지는 모든 것 안에 여호와 하나님 의 사랑의 섭리가 숨어 있음을 알지 못하기에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현실을 피하려고만 합니다.
사도바울은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말씀하셨는데 그처럼 고백할 수 있었던 것 은 그는 매사에 어떠한 억울한 일 가운데서도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의 섭리가 숨어 있는 것을 믿 었기 때문입니다. 그에게는 삶의 현실은 매사에 숨어 있는 여호와 하나님의 주권적 사랑이었습니 다. 만일 이처럼 세상이 주는 고통 뒤에 숨어있는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보지 못할 때, 믿지 못할 때 우리는 현실을 도피하게 됩니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즐거움을 다른 곳에서 찾게 됩니 다.
곧 우리가 우리의 주어진 삶 속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숨은 사랑을 믿지 못하는 순간 우리는 현 실 도피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학교나 직장과 사회에서 당하는 어려움 속에 여호와 하나님의 신비한 사랑의 손길이 뻗쳐있음을 망각할 때 우리는 괴로운 현실을 도피합니다. 중독자가 되는 것입니다. 어느새 우리에게 병이 찾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뜻대로, 생각되는 현실이 되어지지 않는다고 현실을 피해 다른 곳으로 갈 때 우 리의 삶은 파괴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처럼 파괴된 우리들의 삶은 절망적일까 요
38년된 환자가 자기의 파괴된 모습을 안고 주님을 만났을 때 도리어 세상에 빛으로 나 타났습니다. 우리가 파괴된 모습을 안고 주님을 만날 때 우리는 세상의 빛으로 나타납니 다. 우리의 파괴된 것이 도리어 보화였음을 발견합니다. 파괴된 우리의 모습이 바로 우리 의 독특한 축복의 모습임을 발견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순절 기간에 하여야 할 일이 있습니다.
첫번째로는 우리의 파괴된 모 습을 발견하는 일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믿지 못한 결과로 찌들어진 우리의 모습을 발견 하는 일입니다. 남들에겐 없고 나에게만 있는 악질적인 요소 요소를 발견하여야 합니다.
두번째로는 우리가 발견한 파괴된 우리의 모습, 찌들어진 우리의 모습 그대로를 우리는 사랑해야 합니다. 안아주어야 합니다. 오늘날 크리스챤들이 세상에 빛으로 나타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우리는 악질적인 우리의 모습, 파괴된 우리의 모습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껴안아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악질적인 우리의 모습, 파괴된 우리의 모습을 껴안기 위하여 우리를 찾아 오셨습 니다. 십자가에서 피흘려 돌아가셨습니다. 우리의 이 악질적인 모습이 그리스도의 빛을 발하려면 우리도 우리의 파괴된 모습, 악질 적인 모습을 사랑해야 합니다. 안아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내모습 그대로를 안을 때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의 영광이 우리를 통해 빛으로 나타납니다.
사랑하는 교우여러분, 우리의 이그러진 모습을 껴안으십시다. 피로 멍들었던 우리의 모 습을 껴안으십시다. 우리의 이웃은 우리의 파괴된 모습을 비판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 의 모습, 그대로를 껴안습니다. 우리도 껴안아야 합니다. 우리는 파괴된 우리의 모습, 상처 난 우리의 모습을 껴안아야 합니다.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의 못난 모습을 사랑하면서 눈물 어린 눈으로 주님을 바라볼 때 주님은 우리를 껴 안으십니다. 보혈을 흘리시는 모습으로 우리를 안아주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향하여 말씀 하십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 그때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보화를 찾게 됩니다. 우리의 상처가 빛으로 나타남을 체험 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여러분, 사순절은 우리의 죄악된 모습을 그대로 껴안으신 주님을 바라보는 기간입니다. 아울러 주님을 괴롭힌 우리의 악한 모습 그대로를 우리가 껴안아주는 기간입 니다. 이때 우리는 삶의 보화를 발견합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껴안을 때 놀랍게도 우리 는 항상 기뻐하는 자가 됩니다. 항상 감사하는 자가 됩니다. 우리는 빛을 발하게 됩니다. 이것이 사순절의 축복입니다.
말씀을 거둡니다. 고아의 아버지인 조지 뮬러(George Muller)를 잘 아실줄 압니다. 그는 만명 이상의 고아들을 키운 사람입니다. 매주일 600파운드의 돈이 필요한 고아원을 운영했 는데 한번도 고아들을 굶게 한적이 없었습니다. 뮬러는 필요할 때마다 기도했고 기도할 때 마다 꼭 응답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한 분입니다. 얼마전 기독교 위인들이 소개된 책자에 조지 뮬러가 소개되어 있길래 그가 누렸던 기적 과 같은 체험들을 좀 자세히 알려고 그 책을 구입해 읽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13 페이지에 달하는 기사 가운데서 그가 체험한 기적과 같은 일은 전혀 소개되어 있지 않고 도리어 처 음 많은 부분에 그의 회심전 죄짓는 모습을 더 자세히 기록해 놓았습니다. 상상할 수 없이 추악한 죄인이었음이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어릴 때 그는 거짓말하고 훔치고 도박하고 낭비하는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그 책에서 아무도 이러한 소년이 그처럼 큰 일을 할 줄이야 상상도 못했을 것이라고 소개합니다. 그 는 때로는 아버지의 돈도 훔칩니다. 돈을 훔쳐서 멀리 다른 도시에 가서 비싼 호텔에 묵습 니다. 돈이 다 떨어질 때까지 낭비하다가 떨어지면 다른 호텔로 가서 묵습니다. 때로는 호 텔주인이 옷이나 물건을 압수하기도 합니다. 이러던 조지 뮬러가 좋은 친구 덕분에 기독교 모임에 참석합니다. 그 모임을 통해서 주 님을 영접합니다. 주님을 영접한 후 고아의 아버지가 됩니다. 그만이 비출 수 있는 아름다 운 빛을 온 세상에 비추었습니다.
그가 그토록 고아의 아버지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는 자기의 죄악된 모습을 안아주 시는 십자가의 주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자신의 악질적인 모습을 스스로 안아 주 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어느덧 고아의 아버지가 되어간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여러분, 이번 사순절을 통해 우리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시는 주님을 만나십시다. 아울러 죄로 병든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십시다. 아직도 우리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파괴된 모습, 악질적인 모습, 38년된 병든 모습이 많이 남아 있을 줄 압니다. 이번 사순절 기간 힘을 다하여 우리의 파괴된 모습을 발견하십시다. 명상을 통하여, 기 도를 통하여 거룩한 생활을 통하여 발견하십시다. 발견한 후 눈물을 흘리며 따뜻하게 안아 주십시다. 우리는 사순절의 축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빛을 발할 것입니 다.
고난 당하신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사순절 기간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주님의 축복을 받으십시다. 주님의 빛을 발하십시다. 주님의 음성을 들으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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